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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古愚) 스님이 살고 있는 경북 봉화군 각화사 서암(西庵) 앞 산자락엔 낙락장송 사이로 복사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산 아래 속세는 때 이른 무더위가 맹렬했지만 이 산자락에는 청정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우 스님은 평생을 선방(禪房)에서 참선수행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속세의 명리(名利)를 초탈한 때문일까, 그는 지금도 시봉(侍奉) 상좌 없이 손수 밥 끓이고 빨래하면서 그 흔한 자가용 한 대 없이 버스로 전국을 다닌다. 스님에게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들어보았다.
―며칠 후면 부처님오신날(15일)입니다. 스님은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어떤 의미로 맞으십니까?
“부처님은 흔히 이야기하는 세속의 행복 조건을 모두 갖춘 분이었습니다. 그 조건을 포기했지만, 희생한다는 생각보다는 행복감에서 그 길을 가신 것이지요. 지금 우리는 부처님이 주신 행복한 깨달음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혹은 그 반대로 편가르기와 갈등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최근 간화선(화두를 가지고 참선하는 불교 수행법) 법회 때면 일반 신도들까지 수천명씩 운집합니다. 이 열기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인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달한 과학과 물질의 풍요로도 극복할 수 없는, 시공(時空)을 초월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불안입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정치·경제·교육의 혼란 등 현실적인 불안감까지 더해지면서 그 탈출구로 선(禪)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불안은 왜 생기고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나다’ ‘너다’ 하는 편가르기 때문에 불안이 생깁니다. 이기심이 극대화하면서 온 지구를 무한경쟁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상대방, 상대 기업, 상대 정당, 상대 나라를 구별하지만, 너와 나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제가 잘 쓰는 표현 중에 ‘새끼줄, 짚신, 가마니, 덕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새끼줄이라고, 짚신이라고 고집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모두 짚이라는 하나의 재료입니다. 너와 나를 걷어내면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며 모두가 공통된 원리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간화선은 그 원리를 깨닫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속세의 현실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성나게 만듭니다.
“결국 증오심을 내는 것은 나 자신이고, 나의 허물입니다. 저 사람이 내게 준 불이익을 받은 것도 억울한데 화까지 내면 내가 나를 구박하고 학대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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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참자는 것은 아닙니다. 독도나 역사교과서 문제로 우리를 자극하는 일본 이야기를 하지요. 그들은 욕심, 특히 경제적 욕심을 부리는 것인데 그것은 존재의 원리를 모르고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과수원을 지나는데 손자가 사과를 그냥 따먹으려 합니다. 그럴 때 할아버지가 모른 척 해서는 안 되지요. 손자를 평화적, 효과적으로 타이르지 않겠습니까. 연민과 자비심으로 대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렇게 존재원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은 ‘어른의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지금도 이라크에서 싸우고 있는 미국을 보십시오.”
―외환위기를 졸업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이 많습니다.
“세상에선 소유, 무소유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부처님도 당시에 거부(巨富)였던 제자 수달타에게 ‘너는 더 가져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다 가져도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존재원리를 알고 실천하면 많이 가진 것이 아닙니다. 반면 먼지 한 톨 가진 것 없어도 이기심으로 살면 무소유가 아닙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남도 함께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 존재 원리는 만드는 것이 아니고 원래 있는 것이고, 발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우리 모두는 본래 부처’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평생직장에 대한 생각, 직업에 대한 의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직장과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너와 나를 가르지 않으면, 즉 동료나 다른 회사를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게 되면 다른 세상이 열립니다. 스스로에게 눈을 돌려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노력하면 무한경쟁이 아닌 무한향상(無限向上)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면 경쟁으로 인한 상처와 스트레스가 해소되면서 강력한 지혜가 생깁니다. 스스로 무한향상하려는 사람이 많은 직장·사회·나라는 저절로 훌륭하게 됩니다.”
―지난해엔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 공방으로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올해에도 아직 상생(相生)의 문화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상생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중도(中道)’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엔 민주화를 위해 독재와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싸움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밴 것이 편가르기였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다음엔 또 무엇으로 갈라지겠습니까. 중도란 물리적으로 양극단의 중간 지점이 아닙니다. 양극단을 초월한 것입니다.”
―최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몇몇 사건 때문에 조계종 종단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승가(僧家)의 문제는 정말 부끄럽습니다. 세속 사람과 똑같이 행복의 가치를 밖에서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 지탄 받아야 하겠지만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자정(自淨)을 위해 노력했으면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근 이혼율 증가와 출산율 저하 등 우리 사회에 가정 해체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높습니다.
“얼마 전 대구 동화사에서 한 신혼부부를 만나 ‘지구 60억 인구 중에서 서로를 고른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고 은혜냐. 그런 은혜를 느끼며 사랑하는 은애(恩愛)로 평생을 살라’고 했습니다. 특히 부모자식, 부부 등 가족 사이에 ‘은애’를 느끼며 살아갈 것을 권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젠 무한경쟁의 굴레를 벗고 무한향상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행복한 부처님오신날 맞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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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은?
1937년 경북 고령 출생으로 1961년 청암사로 출가했다. 평생 봉암사·축서사·금영사·용주사·각화사 등의 선방(禪房)에서 간화선 수행에 전념해온 이 시대 대표적 선승(禪僧)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0년대 말엔 문경 봉암사 결사를 통해 선풍(禪風)을 진작, 봉암사가 오늘날 조계종 종립 특별선원으로 발전하는 초석을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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