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이해

산신각(山神閣)

by 무구 김정희 posted Dec 2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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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山神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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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천사 산령각

 

산신각(山神閣)은 산신을 . 사찰에 따모시는 전각이다라서는 '산령각(山靈閣)'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사찰에 삼성각(三聖閣)을 따로 두지 않으면, 이 산신각(山神閣)은 거의 대부분 갖추고 있다. 산신은 우리나라 고유의 신앙인 무속신앙의 전통이 고스란히 뭍어나는 신이다.

 

산신은 보통 삼성각(三聖閣)에 칠성신, 독성(獨星)과 함께 모시는 경우가 많다.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많이 믿던 중국.한국 등의 토착신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또는 현재까지도 이 산신신앙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불교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므로 산신도 비교적 일찍 불교에 수용되었을 것을 여겨지나, 산신각이 세워진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다. 

 

산신각내에는 산신탱화를 모시는데, 대개 흰수염, 대머리,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손에는 하얀 깃털부채나 파초선·불로초 등을 들고 있고, 주로 봉래산·영주산·방장산 등의 삼신산을 배경으로 한다. 

 

한라산이나 속리산·계룡산·지리산 등지의 사찰에는 드물게 여자 산신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여자 산신은 트레머리에 댕기를 두르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호랑이에 걸터앉거나 기대고 있는 모습이며, 손에는 대개 불로초를 들고 있다.  

 

이밖에 복건(福巾)이나 유건(儒巾)·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지팡이를 든 유교적 산신도 있고, 삭발한 스님이 《묘법연화경》과 같은 불경을 들고 있는 불교식 산신도 흔하다. 이 경우 의상은 가사와 비슷하나 적녹색이 주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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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어사 산령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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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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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도사 산령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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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의사 산신각

 

화성 만의사 (32-1).jpg

만의사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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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 각원사 산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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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각원사 산신

 

공주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中嶽壇) -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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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신원사 중악단 - 산신각 (보물 제12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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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사 중악단 - 산신각

 

신원사 중악단은 대웅전 오른쪽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산신각으로, 계룡산 산신을 모시던 제단(祭壇)이다. 산신각 중에서는 전국 최대의 규모라 할 수 있다. 태조는 1394년(태조 3) 북쪽 묘향산의 상악, 남쪽 지리산의 하악과 함께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꼽히는 3악(岳)의 하나인 계룡산의 신원사 경내에 계룡단(鷄龍壇)이라는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1651년(효종 2)에는 이 단이 폐지되었다가 1879년(고종 16) 명성황후의 명으로 재건하고 중악단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중악단은 완만한 구릉지에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배치하였고 둘레에는 네모난 담장으로 둘렀다.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건물로, 솟을삼문 양쪽에 2칸씩을 덧붙이고 양쪽 끝에서 뒤쪽으로 2칸씩을 덧붙여 凹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삼문 양쪽에도 작은 2짝 판문을 달아 평상시 드나들게 하였다. 중문간채 안쪽에는 비교적 넓은 마당 가운데에 신도(神道)를 설치하였다. 대문간채의 중앙칸 및 중문간채의 중앙칸 판문에 신장상(神將像)이 그려져 있고, 이들의 화방벽 및 담장에는 기왓조각으로 수(壽)·복(福)·강(康)·녕(寧)·길(吉)·희(喜) 등의 문자를 무늬로 장식하였다. 본전 중악단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집이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가운데 벽면에는 단을 설치하였으며, 감실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두었다. 공포는 정면 각 칸에 2조씩, 측면에는 1조씩의 공간포를 배열하고 외3출목, 내4출목의 포작을 두었으며, 내·외부 살미는 조선 말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장식되었다. 본전 단청은 약간 변형된 부분이 있지만 건립 당시의 수법을 살필 수 있고, 각 추녀마루 위에 각각 7개씩의 잡상을 배치한 점도 특이하다.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李重夏)가 1891년에 쓴 것이다.

 

조선시대의 상악단과 하악단은 멸실되어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중악단만은 그 일곽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또한 왕실 주도로 건축되면서 조선 후기의 장식적이며 특징있는 궁전 건축 양식 및 수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단묘건축물로서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소규모의 건물임에도 화려하고 위엄있게 조성된, 조선 말기의 빼어난 건축물로 꼽힌다. 따라서 계룡산 중악단은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건축사적·기술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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