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이해

조사전(祖師殿)

by 무구 김정희 posted Dec 2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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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전(祖師殿)

신륵사 조사당(보물180호).jpg

조사전은 역대 조사나 그 종파의 조사스님, 대덕스님,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스님 등 해당사찰과 관련하여 후세에 존경받는 스님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이다. 조사전을 사찰에 따라서는 조당, 조사당, 국사전(國師殿), 국사당(國師堂), 영각(影閣) 등으로도 부른다.

선종사찰은 조사에 대한 신앙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조사의 사리탑인 부도를 건립하고 조사전을 지어 역대조사의 영정을 봉안한다. 선종사찰에서는 보통 인도와 중국의 조사인 마하가섭에서 혜능스님까지 33조사와 함께 우리나라 고려의 보조국사, 태우 보우국사 등을 조사전(祖師殿)에 모시는데 일명 '국사당(國師堂)'이라고 한다.

선종의 문중에서는 스승에 대한 공경이 깍듯이 한다. 그 중에 조사(祖師)는 특히 더 떠받든다. 조사는 종(宗)이나 어떤 계파를 개창한 분이므로 그 선덕(善德)에 귀의하는 일이 후인들은 지극히 하였다.

선종에서는 달마스님을 제일가는 조사스님으로 떠받들고 있다. 조사를 존숭하기 위하여 그의 사리를 봉안하는 사리탑을 세우고 그의 뛰어난 행장(行狀)을 금석에 남기기 위하여 탑비를 건립하기도 하지만 경내에 조사전(祖師殿)을 짓고 거기에 조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의를 받들기도 한다.

조사전이 없는 절에서는 대신 영각(影閣)을 짓는다. 선사들의 영정을 봉안하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린다. 이 일은 조사의 덕을 기리는 마음의 발로이지만 그 절이 지내온 역사가 담긴 일이기도 하다. 즉 그 절의 생상한 역사는 조사당이나 영각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국사가 배출된 절에서는 국사전(國師殿)을 짓기도 한다. 순천 송광사 국사전에 유명하다. 송광사에서는 고려 지눌국사를 비롯하여 16국사가 배출되어 이 국사전에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송광사에는 따로 조선시대에 배출된 선덕들을 기리기 위한 영각과 구산스님을 모신 영각이 따로이 있다.

양산 통도사 개산조당, 밀양 표충사 사명대사 사당, 대흥사 서산대사 사당 등은 유교적 요소가 반입된 것으로 보인다. 조사전 중 특히 '통도사 영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영정을 보존하고 있으며, 송광사 국사전과 해인사 조사전, 부석사 조사당, 신륵사 조사당 등이 대표적이고, 불영사의 의상전에는 의상조사의 영정과 더불어 원효대사, 종봉대선사, 청허대선사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부석사 조사당 (국보 제19호)
부석사 조사당은 무량수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측면 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진입하여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넉넉하게 뻗어 나와 결코 작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장여 위의 묵서에 의하면 조사당은 고려 우왕 3년(1377)에 원응 국사가 재건한 것이다. 조선 성종 21년(1490)에 중수하고 성종 24년(1493)에 단청하였으며 선조 6년(1573)에는 서까래를 수리하였다.

부석사 160.jpg

 부석사 160-1.jpg

송광사 국사전 (국보 제19호)

송광사 국사전은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옛날에는 참선을 하던 곳이었다.

이 건물은 송광사의 3조사(三祖師)의 화상(畵像)을 모시기 위하여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창건되었으며,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중수(重修)를 하였다. 건축 구조상 조선 초기 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경내 하사당(下祠堂, 보물 제263호)과 함께 같은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소박하고 아담한 형태와 그 기법에서도 주심포 중기 형식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앞면 4칸·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천장의 연꽃무늬와 대들보의 용무늬는 건물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의 특색은 정면을 4칸으로 한 것과 양 측면에 측고주(側高柱)를 세워 전면쪽을 퇴칸(退間)처럼 가구한 점이다. 공포(공包)는 기둥 위에만 배치한 주심포(柱心包) 양식으로 짜임새는 단순하나 세부수법에 장식적인 요소가 짙게 나타나 있다. 공포는 헛첨차(虛첨遮)로부터 전개되고 행공첨차(行工첨遮)와 통장혀(通長舌)가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게 하였으며, 내부에서는 헛첨차와 살미(山彌)가 보아지가 되어 힘있게 대들보를 받치고 있다.
현재 대들보 윗면에 우물천장을 전면 가설하였으나 그 위의 가구부재(架構部材)가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당초에는 연등천장이었던 것 같다. 대들보 위의 가구는 동자주(童子柱)가 종보를 받게 하였다.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 (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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