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이해

팔상전(八相殿)

by 무구 김정희 posted Dec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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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전(八相殿)

법주사 팔상전(국보55호).jpg

 법주사 팔상전 (국보 제55호)


'팔상전(八相殿)'이란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구분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를 봉안한 전각을 말한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어 '영산전'이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는 본존으로 삼고 있다. 주불은 석가모니불이며,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좌우에 있다. 불상은 있으나 불단이 크지 않으며, 벽에 붙은 팔상도와 불상 뒷면의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가 주된 경배 대상이다.  


이곳에 걸려 있는 그림을 '팔상도'라 하는데, 8가지 그림 중에서도 성도(成道)가 중심이 되므로 '팔상성도'라고도 한다.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간추리는 데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의 여덟가지이다.  


팔상도(八相圖)란,

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 태어나는 장면,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궁궐의 네 문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 시키는 장면,

7)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성불 후 녹야원에서 초전설법하는 장면,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 등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팔상도는 화폭에 문자로 그림의 내용을 써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린다. 현재 법주사.통도사.쌍계사.운흥사.개심사.선암사.송광사.해인사 등의 팔상도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팔상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후 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으며, 법주사의 현판은 우리들 마음의 '상(相)을 깨뜨리자'는 의미에서 '깨뜰릴 팔'을 써 '팔상전(捌相殿)'이라 이름하였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팔상도(八相圖)

 

1) 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 - 도솔천에서 내려오시다.1_dosol.jpg  

  

지금으로부터 한량없는 오랜 세월 전에 수메다(선혜 善慧)라는 한 수행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 양친을 잃고 7대조부터 내려오는 막대한 재산을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보시한 후 출가하여 히말라야에 들어가 수행자가 되었다.  


그때 연등(燃燈)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수도인 디파바티(Dipavati)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연등 부처님을 공양하고자 온갖 향과 꽃 훌륭한 음식을 준비하고 연등 부처님을 기다렸다. 마침 공양물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들른 수메다는 연등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말을 듣자 기쁜 마음이 치솟았다.


'나는 여기에 깨달음의 씨앗을 뿌려야겠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한 수메다는 부처님께 공양물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도시에는 왕의 지시로 모든 공양물이 부처님께 바쳐져 하나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수메다는 아름다운 꽃 일곱 송이를 들고 가는 여인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가서 그 꽃을 팔 것을 간청했다. 그녀는 팔지 않을 마음으로 이 꽃 한 송이는 은 1백 냥이며, 또한 나와 결혼을 약속한다면 이 꽃을 팔겠다고 했다.

 

수메다는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결국 그 꽃을 부처님께 바칠 숭고한 마음으로 그녀의 조건을 받아들여 다섯 송이를 샀다. 그러자 그녀는 수행자의 진지한 마음에 감탄하여 나머지 두 송이 꽃마저 부처님께 공양하라고 주었다. 수메다는 그 꽃을 연등부처님께 바쳤다. 연등 부처님께서는 뭇 중생을 가르치고, 젊은 구도자 수메다에게 기쁨 을 주기 위해 대중이 바친 꽃을 허공에 떠있게 하는 기적을 보이셨다.

 

그때 마침 연등 부처님과 제자들이 지나는 길에 진흙 웅덩이가 있었다. 수메다는 부처님께서 발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흙 위에 머리를 풀고 엎드렸다. 진흙 바닥에 엎드린 채 그는 다짐했다.


"아! 나도 언젠가는 지금의 세존(世尊)이신 연등 부처님같이 완전한 인격자가 되기를… 세존이신 연등 부처님께서 지금 하셨듯이, 나도 이 최고 법의 수레(法輪)를 돌릴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오직 세상에 대한 연민의 정에서 많은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할 수 있고 또한 무수한 생명들의 이익과 행복이 될 수 있는 연등 부처님과 같은 생명이 되게 하소서."


이 광경을 본 연등 부처님은 제자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견디기 힘든 고행을 하고 있는 이 수행자를 보라. 그는 지금으로부터 무량한 겁이 지난 후 세상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될 것이니라."

 

견줄 사람 없는 대성인의 말씀을 듣고 천인과 인간들은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

 

"수행자 수메다는 분명 부처님이 될 씨앗이요, 부처님이 될 싹이로다."

 

모든 이가 지나간 뒤 엎드려 있던 수메다는 몸을 일으켜 앉아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지금껏 쌓아온 수행을 생각해 보자.'

 

그때 1만 큰 세계가 크게 진동하였고 그 진동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연등 부처님은 현자 수메다가 부처님이 되기 위한 근본적인 덕목을 모두 깊이 사유하고 있는 까닭에 이 대지와 1만 큰 세계가 진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연유를 말씀해 주셨다. 이때 1만 큰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기필코 부처님이 되실 것이옵니다. 흔들림 없이 정진하여 주소서. 멈추시거나 물러나서는 안되나이다. 저희들도 한 당신이 기필코 깨닫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나이다."

 

수메다는 모든 부처님이 이루신 깨달음의 근본적인 덕목인 10바라밀 수행을 남김없이 생각해 낸 후 한량없는 세월동안 보살행을 닦은 뒤 도솔천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이름은 호명(護明)보살이었다. 호명보살이 10바라밀 수행을 닦고 도솔천에 머물고 있던 어느날 모든 하늘 세계의 천인들이 보살의 처소에 모여들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당신이 10바라밀을 행하심은 제석천이나 마왕, 범천, 전륜왕의 영광을 위해 이룬 것이 아니옵고, 오직 세상의 중생을 제도하고자 일체지를 추구함으로써 이루신 것이나이다. 스승이시여, 바야흐로 부처님이 되기 위한 때가 왔나이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부처님이 될 때이나이다."


호명보살은 천인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이 태어날 때와 지방, 가계와 생모에 대해 살핀 뒤 석가족의 카필라국에 있는 마야부인의 태중에 드시리라 결정하셨다.

 
그리고 나서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하시던 호명보살은 바로 깊은 선정 속에서 마야부인의 태에 들었다. 정반왕과 결혼한 지 2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던 마야부인은 그 때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자를 잉태하였다. 이를 팔상성도에서는 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이라 한다.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 세상에 태어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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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필라국은 히말라야 남쪽 기슭의 초목 지대에 자리한 조그만 왕국으로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다. 이웃에는 코살라국과 마가다국 같은 큰 나라들이 있어 위협을 받고 있었으나 비교적 풍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카필라국의 왕 정반왕은 석가족의 후예로서 용감하고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부인인 마야 왕비가 늦도록 슬하에 왕자가 없자 걱정이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커다란 흰 코끼리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데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지고 있었다. 흰 코끼리는 마야왕비에게 다가와 엎드려 절을 하고는 왕비의 옆구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꿈 이야기를 들은 당시의 많은 예언가들은 "성인이 태어나실 꿈이다. 왕자님이 태어나실 꿈이다.'라고 하였으며, 온 나라 백성들도 장차 태어날 왕자를 생각하면서 기뻐하였다.

 

마야 왕비는 태아를 위하여 더욱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졌다. 아이를 잉태한 후 마야 왕비의 신상에는 예전에 몰랐던 지식이나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되는 신통한 변화가 일어났다. 말을 하는데 막힘이 없고 논리가 정연해져서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어느덧 모든 백성들의 기대 속에 따스한 봄이 되고 왕비의 산달이 다가 왔다. 마야부인은 해산 일이 다가오자 당시의 관습에 따라 하산을 하기 위해 친정인 콜리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화창한 봄날, 왕비를 태운 가마 행렬이 룸비니동산에 이르자, 때마침 예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며 왕비를 맞았다.

 

마야 왕비는 무우수(無憂樹)나무의 신비스런 향기에 끌리어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갑자기 진통이 일면서 산기를 느꼈다. 왕비는 침착하게 장막을 치도록 시녀들에게 이른 뒤 오른손을 뻗어 무수우 나무의 동쪽 가지를 잡고 아기 왕자를 낳았다. 그 날이 바로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이다. 이를 팔상성도에서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라 한다.

 

인류의 스승이시며 중생의 어버이신, 거룩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렇게 이 세상에 오셨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보며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아래와 같이 탄생게인 사자후를 토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모든 세상이 고통 속에 잠겨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여기서 태자가 외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종종 독불장군이라는 식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본래 의미는 태자가 도솔천에서 내려온 일생보처보살로서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는 의미이며 동시에 깨달음을 구하는 모든 중생 하나하나가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지혜의 외침, 생명 존엄의 선언이다.

 

태자의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아홉마리 용이 나타나 오색의 감로수인 화탕수로 태자의 몸을 씻어 주었다. 땅은 은은히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천신들이 내려와 차례로 예배드리며 이 세상 가장 존귀한 분의 탄생을 축복하였다.

 

정반왕은 태자의 이름을 '고타마 싯달타'(모든 목적을 달성한 사람 * 고타마-위대한 소 * 싯탈다-모든 목적을 이룬 사람)라고 지었다. 왕자의 앞날이 마음먹은 대로 만사 형통하라는 축원이 깃든 이름이었다. 태자가 태어나자 서른 두 가지의 서응(瑞應)이 생겨났는데 땅이 평평해지고, 길과 거리가 저절로 깨끗해졌으며, 마른나무에서 꽃과 잎이 피어나고, 저절로 기이하고 단 과일이 났으며, 땅 속에 묻혀 있던 보배들이 저절로 튀어나오고, 해와 달과 별이 모두 멈추고, 온갖 질병이 모두 나으니 이는 부처님의 탄생으로 인해 풍요롭고 맑은 세상이 이루어지고, 죽음의 존재가 생명을 회복하며, 감추어졌던 가치와 진리가 나타나고, 해와 달이 멈추고 같이 시간이 한계 즉, 무상을 초월하는 일대 전환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태자를 데리고 신묘에 참배를 하자 신묘의 여러 신상들이 모두 거꾸로 넘어지므로 모든 대중이 이에 놀라며 태자의 거룩한 덕에 천신들도 귀명한다고 하면서 태자를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이라고 하였다. 이는 신들마저 조복을 받는 참된 인간 해방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태자가 태어난 지 닷새가 되자 히말라야로부터 당시 유명한 수도자이자 예언가였던 아시타 선인이 내려와 태자를 뵙고자 했다. 백 살이 넘은 아시타 선인은 백발의 흰 수염을 한 신선의 모습으로, 그의 눈은 지혜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타 선인은 태자의 얼굴을 살펴보고난 후 슬피우는 것이었다. 불길하게 생각한 정반왕이 연유를 묻자 아시타 선인은 태자의 앞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왕자님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훌륭한 상호(相好)를 갖추고 태어났습니다. 왕자님은 훗날 성장하셔서 전 인도를 통일하여 세상을 덕으로 다스리는 이상적인 제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걸으시면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구제하는 위대한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늙어 부처님의 출현을 뵐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정반왕은 싯달타 태자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길보다는 장차 자신의 왕위를 계승하여 훌륭한 왕이 되기를 바랐다. 훌륭한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의 일이었다. 태자를 낳은 지 7일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잃은 태자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의 양육을 받으면서 총명하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성장하였다. 그리고 정반왕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에 딸라 아들이 출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태자의 성 밖 출입을 막고 호화로운 궁궐에서만 머물게 하였다.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 괴로움의 실상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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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달타 태자는 왕궁의 풍요 속에서 총명하고 건강하게 자랐다. 7세가 되자 태자는 학문과 무예를 익히기 시작하여 곧 모든 학문과 무에를 통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만한 스승이 없게 되었다.


아버지 정반왕은 그를 극진히 생각하여 계절에 따라 생활하도록 호화로운 궁전을 세 곳(삼시전 三時殿)이나 지어주는 등 온갖 호사 속에 성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도성 출입만은 언제나 금지시켰다. 태자가 현실세계의 고통을 모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12세 되던 어느 봄날 태자는 부왕과 함께 농경제(農耕祭)에 참석하였다.

 

그때 태자는 농경제에 참가한 농부들의 마르고 고단한 모습과 쟁기를 끄는 소들이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다. 또한 쟁기가 지나간 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벌레를 새가 날아와 부리로 쪼아 먹는 약육강식의 광경을 보았다.


"농부는 낡은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소는 농부의 채찍을 맞으며 힘들게 밭갈이를 하고, 쟁기에 의해 흙 밖으로 나온 벌레는 새들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이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고 사는 것이 과연 이 세상의 올바른 질서인가?"


약육강식의 세상을 직접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싯달타 태자는 염부수나무 아래에서 그 고통의 해결을 찾기 위한 깊은 명상에 잠겼다. 이를 '염부수아래의 정관(靜觀)'이라고 한다. 이 때 태자는 초선(初禪)의 경지에 들었다고 한다.

 

태자가 자비심으로 세상을 고통 속에서 구원할 길을 찾아 선정에 들었을 때, 이를 지켜 본 정반왕은 아시타 선인의 "출가하여 수행하면 부처님이 도리 것이다."라는 예언을 떠올리며 오히려 태자를 세상과 더울 멀어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더욱 생활을 즐겁고 호화스럽게 보살펴서 출가의 길을 미연에 막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태자의 가슴속에 자리한 고뇌는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성년이 되니 태자는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살피기 위해 부왕 몰래 성문 밖으로 유람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동문, 남문, 서문에서 각각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을 보게 되는 것이다. 경전은 그 때의 심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났다가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고 마는 것. 어머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버님도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가 필연적으로 겪는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 아아, 인생은 허무하고 괴로운 것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수렁이 앞에 막아 서 있다."


생명을 가지 어떤 것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번민하던 싯달타 태자는 다음 날 북문으로 나갔다가 출가 수행자를 발견했다. 수행자의 얼굴은 여유 있고 평화스럽게 보였다. 그의 눈에는 깊은 사색으로 지혜가 담겨 있었다. 싯달타 태자는 수레를 멈추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무엇 하는 사람이요. 나는 당신처럼 평화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소."


"예. 저는 출가 사문입니다. 사문이란 가정을 떠나 세상의 잡된 일을 모두 잊고. 오직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진리를 찾아서 수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왕궁의 영화와 권세, 향락과 사치 그리고 어떤 학문과 종교에서도 생로병사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지못했던 태자는 출가 수행자에게서 그 길을 찾았던 것이다. 부처님게서 이러한 동.남.서.북 네 성문을 밖으로 나가 인간의 노.병.사와 출가 수행자의 모습을 본 것을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환희에 찬 태자는 그 후부터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사유를 하기 시작하였다.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 성을 넘어 출가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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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를 만난 후 태자의 인생관은 점차 변모되었고, 마침내 부왕에게 출가하여 수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정반왕은 크게 놀라 온갖 말로 희유를 하였지만 태자의 결심은 추호의 변동이 없었다.

 

결국 부왕은 태자에게 왕위를 이을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세워 같은 석가족인 이웃나라 콜리성의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을 시켰다. 결혼을 하면 마음이 돌아설 것이라는 부왕의 생각도 해탈의 길을 찾으려는 태자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하였다.

 

마침내 아들 라훌라가 태어나자 태자는 모든 사람이 잠든 한밤중에 마부 찬다카를 깨워 애마 칸타카를 타고 카필라의 성벽을 뛰어넘어 동쪽을 향하여 어둠을 뚫고 달렸다. 이를 유성출가(踰城出家)라고 한다,


"나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 있지 아니한가. 나는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집을 나가는 것이니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오분율>


왕궁이 멀어지자 태자는 말과 마부를 돌려보내고 값비싼 옷을 벗어 사냥꾼의 낡은 옷과 바꾸어 입고 스스로 머리와 수염을 깎은 위 당시의 유명한 수행자들을 찾아 외롭고 힘든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왕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 야쇼다라와 아들 라훌라마저 뒤로 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 이 날이 태자 나이 29세 되던 해 음력 2월 8일이었다. 이

 

싯달타 태자는 결코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고심한 끝에 이 출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병듦의 고통이 없고, 늙음의 고통이 없고, 온갖 구속과 장애에서 벗어나 근심과 걱정과 번뇌가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구현할 수 있는 진리를 찾아서 출가한 것이다. 이 때부터 싯달타 태자는 수행자 고타마라고 불렸다.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의 유명한 수도자들을 찾아 인도 남쪽의 신흥 공업국가인 마가다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훌륭한 종교가들이 운집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찾아간 스승은 고행으로 유명한 수행자인 박가바를 찾아가 고행을 통해 천상에 나는 법을 배웠으나 부처님께서 출가 목적인 삼라만상의 생로병사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자 그의 곁을 떠났다.

 

그는 당시 높은 참선 수행자로 명성을 얻고 있던 알라라 칼라마의 문하에서 그가 가르치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라는 수행을 배웠는데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해 버렸다. 다시 그는 다른 스승인 웃다카 라마풋타에게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선정을 배웠지만 그 경지 역시 곧 도달해 버렸다. 수행자 고타마는 스승에게서 배운 선정을 통해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 곁을 떠나 독자적인 수행을 시작하였다.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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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스승에게서 배웠으나,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이가 없었을 때,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 다른 수행자들이 그러했듯이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고행은 실로 다른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것이었다. 부처님의 일생을 찬탄한 《불소행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실로 고행자 중에 최상의 고행자였다. 남들이 바치는 음식도 받지 않았으며 풀과 떨어진 과일만 주워 먹었다. 나는 무덤 사이에서 시체와 해골고 함께 지냈다. 그대 목동들은 내게 와서 침을 뱉고 오줌을 누기도 했으며 귀에 나무 꼬챙이를 쑤셔 넣기도 했다. 내 목에는 여러 해 동안 때가 끼어 저절로 살가죽을 이루었으며 머리는 길어 새들이 찾아들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더한 고독한 고행자였다. 나는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낮은 땅에서 낮은 땅으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홀로 지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모든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고행자였다. 나아가거나 물러서거나 조심하여 한 방울의 물에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그 가운데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일지라도 죽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를 대추 한 알로도 보냈으며 멥쌀 한 알을 먹고도 지냈으며 하루에 한끼, 사흘에 한끼, 이윽고 이레에 한끼를 먹고 보름에 한끼를 먹었다. 그래서 내 몸은 무척 수척해졌다.

 

내 볼기는 마치 낙타의 발 같았고 내 갈비뼈는 마치 오래 묵은 집의 무너진 서까래 같았다. 내 뱃가죽은 등뼈에 들러붙었기 때문에 일어서려고 하면 머리를 처박고 넘어졌다. 살갗은 오이가 말라비틀어진 것 같고, 손바닥으로 몸을 만지면 몸의 털이 뽑혀 나갔다."


이를 팔상성도에서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이라고 한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아 싯달타 태자는 이미 목숨을 마쳤구나. 이제 곧 목숨을 다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부처님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고행을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과거의 어떤 수행자도,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자신과 같은 고행을 할 수 없을 것이라 하실 만큼 고행에 몰입하였다. 이 때 정반왕은 아들을 염려하여 다섯 사람을 보냈는데 이들도 고타마와 함께 수행자가 되어 고행을 하였다.

 

고타마의 수행은 무서우리 만치 엄격한 것이었다. 몸이 쇠약해져 죽음 직전의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고타마는 6년에 걸친 극심한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고, 육체를 학대하는 것만이 진정한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고행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당시 출가 사문이나 인도 사람들은 고행을 함으로써 욕망을 억제하고 정신생활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행을 한 사람은 모종의 신비하고도 초인간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고행의 포기는 출가 수행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나 관습까지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수행자들로부터 타락한 사문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결정이었다. 그러나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 많은 수행자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주저 없이 고행을 포기했다. 이것은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수행자 고타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네란자라강에 내려가 지치고 때묻은 몸을 씻었다. 그리고 소를 몰고 지나가던 수자타라는 소녀가 바치는 우유만든 유미죽을 마시고 건강도 회복하였다. 고타마와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들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크게 실망하여 그를 비난하며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다. 당시의 고행자는 목욕을 해서도 안되며 더욱이 여인으로부터 우유죽을 받아먹는다는 것은 금기를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타마는 건강을 회복하고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붇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나무 아래 높인 반석 위에 풀잎을 깔고 앉아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여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이처럼 부처님의 생애에는 위대한 포기가 몇 번이나 있다.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왕위를 포기했고, 행복과 안락이 보장된 가정을 떠났으며, 모두가 믿는 당시 최고의 사상을 포기했다.

 

최고의 고행자라는 명예도 포기했다. 이것은 세상 전부가 자신을 외면할지라도 참된 것이라면 주저 없이 결단을 내리는 진정한 수행자의 길을 보여준 것이다.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 마왕을 항복시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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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고타마는 고행을 포기한 뒤 수자타가 올리는 우유죽 공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하고 지나가는 목동 스바스티카(길상 吉祥)가 바친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인 길상초을 보리수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앉아서 굳은 다짐을 하였다.


"내 여기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수행본기경》

 

금강석보다 굳센 의지 때문인지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깨달으셨고, 깨달으신 그 자리는 훗날 금강보좌(金剛寶座)라 부른다. 바야흐로 수행자 고타마가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으려 하자 가장 다급해진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중생을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고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마왕 파순이었다.

 

마왕 파순은, "사문 고타마가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려 한다. 그가 깨달음을 성취하면 일체 중생을 제도할 것이다. 그 깨달음의 경지는 나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가 깨닫는 것을 막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여 먼저 자신의 세 딸을 보내 고타마를 유혹하도록 하였다. 마왕의 세 딸은 온갖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였으나 고타마는 수미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의 몸은 비록 아름답지만 모든 악이 가득해 견고하지 않고 부정이 흘러 생로병사가 항상 따른다. 손에는 팔지, 귀에는 귀고리를 흔들면서 교태 섞인 웃음으로 탐욕의 화살을 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들의 욕망을 독약으로 안다.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하게 하고 사악한 욕정은 독사의 머리와 같으니 내 이미 모든 유혹을 뛰어넘었다. 너희들은 모두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물러가거라."


이렇게 말하자 마왕의 세 딸들은 모두 추한 노파로 변해 탄식하며 물러갔다. 그러나 마왕은 화가 나서 수행자 고타마를 향해 태풍, 폭우를 보내고 창칼, 불화살, 돌을 던지며 악귀를 동원하여 수행을 방해했다. 그러나 수행자 앞에서 그것은 모두 꽃으로 변하여 흩날릴 뿐이었다. 유혹과 폭력으로도 수행을 막지 못한 마왕은 직접 고타마 앞에 나타나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석가족의 아들 고타마여! 그대는 속히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그대에게는 전륜성왕의 지위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 곧 가서 세간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이 되어 그들을 지배하고 오감의 쾌락이 주는 미묘한 맛을 마음껏 즐기라. 석가족의 아들이여! 그대가 추구하는 도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피로만 더할 뿐임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이렇게 회유하자 수행자 고타마는 마왕을 향해 다음과 같은 준엄한 사자후를 한다.

 

"게으른 자의 무리여, 사악한 자여, 그대가 여기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

그대가 말하는 그 좋은 공덕이란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런 것은 그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말해 주어라.

……

나는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묵묵히 감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어떤 욕망에도 끌려가지 않는다.

보라, 내 존재의 이 순수를...

 

그대의

제1군대는 욕망이며,

제2군대는 혐오이며,

제3군대는 기갈이며,

제4군대는 집착이다.

제5군대는 피로와 수면이며,

제6군대는 공포심이요,

제7군대는 의혹이며,

제8군대는 위선과 고집.


그리고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이익과 명성이며,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전 병력이며 검은 마군이다.

 

그러므로 용감한 자가 아니면 너를 이겨낼 수 없으리.

그러나 용감한 사람은 그대의 공격을 이렇게 잘 막아내고 있다.

……

악마여, 사람들도 저 신들마저도

그대의 군대를 격파할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지혜의 힘으로

그대의 군대를 쳐부수리라.

굽지 않은 질그릇을 돌로 쳐 깨뜨리듯이" 《숫타니파타》

 

그리고 수행자 고타마는 머나먼 과거 세부터 한량없는 세월동안 선근공덕을 쌓아왔기에 악마의 군대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마왕 파순은 그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외쳤다.

 

수행자 고타마는 오른손을 내밀어 땅을 가리키며 '이 땅은 능히 일체의 물건을 내어 차별이 없는 평등한 행을 하도다. 원컨대 지금 진실을 말하라'고 했다. 이때 땅을 지키고 있던 지신(地神)이, '가장 큰 대장부시여, 내 당신을 증명하리다. 제가 아나이다'라고 외치자 대지와 삼천대천 세계의 국토는 두루 크게 진동하였다. 마왕은 이 우렁찬 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수행자 고타마는 마왕의 항복을 받고 아무런 방해도 없이 깊은 선정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불상을 보면 왼손은 가부좌한 발 위에 올려놓고 오른 손은 무릎 위에서 아래로 땅을 향하는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항복 받으신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이제 수행자 고타마에게 어떤 장애도 없게 되었다. 깨달음을 끝까지 가로막고 있던 악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든 구속이 사라진 수행자 앞에 세상의 이치가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그 이치는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고,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기에 저것도 멸하는 것이다'라는 연기(緣起)의 진리이다. 수행자 고타마는 바로 이 '연기의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한편 부처님의 깨달음을 방해한 악마들의 면면을 다시 살펴보면, 이들이 수행자 고타마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세간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듯하다. 끝까지 그를 붙들고 있던 욕망 가운데 가장 먼저 끊을 수 있었던 것을 바로 육체의 욕망 즉, 색욕이었다.

 

이 세 딸의 이름이 첫째는 은애(恩愛), 둘째는 상락(常樂), 셋째는 대락(大樂)이라는 것을 보아도 성적 쾌락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마왕의 공격은 마왕의 여덟 가지 군대라고 표현된 욕망, 혐오, 기갈, 집착 등 마음속의 온갖 번뇌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왕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것은 전륜성왕의 자리였다. 이것은 곧 권력욕을 뜻한다. 즉, 권력욕은 색욕과 공포보다도 더 질기고 뿌리가 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권력욕은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한 국가와 민족, 세계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욕망이다.


부처님은 마왕의 항복을 받은 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선 무기를 써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나 나는 중생을 평등하게 여기는 까닭에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평등한 행과 인자한 마음으로 악마를 물리쳤나니" 《수행본기경》


결국 이 세 가지 욕망을 극복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육체적, 정신적, 제도적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마왕의 온갖 유혹과 물리적 위험, 그리고 회유를 극복하는 이 장면은 우리가 가져야 할 '불퇴전의 수행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마왕의 항복을 받은 수행자 고타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셨다. 이때가 부처님이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이었다. 이날은 사실상 불교가 시작된 역사적인 날이며 불교에서는 성도절(成道節)이라 하여 뜻깊은 날로 삼고 있다.


성도절은 수많은 마왕의 군대를 항복 받고 깨달은 날이며, 인간의 몸으로 신의 세계를 뛰어 넘어 대자유인의 시대를 연 날이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셨다. 온갖 번뇌와 고통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중생들도 사실은 모두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세상에 알려주신 것이다. 부처님의 성불이후 새로운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까지 인간은 고통과 혼돈, 무명 속에서 신과 제도와 욕망에 사로잡힌 노예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성불하심으로 중생도 대자유, 대자재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7)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 진리를 설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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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한동안 보리수 아래 머물며 삼매에 들어 있었다. 삼매에 든 부처님은 깨달음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셨다. 이 때 최고의 신인 범천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다고 한다. 이를 불전문학에서는 '범천의 권청'이라고 한다.


당시 부처님의 심정은 이렇게 전해진다.


"고생 끝에 겨우 얻은 이것을 또 남들에게 어떻게 설해야 하는가?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상응부경전》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에게 진리를 깨우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을 지혜의 길로 이끌기 위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로 한다. 범천의 간청에 따라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하고 이렇게 알린다.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전도를 결심한 부처님은 깨달음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때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아시고, 전에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가 생각나 그들이 머물고 있는 녹야원으로 갔다.

 

다섯 수행자는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자 타락한 사문이라 비난한 이들이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들을 깨달음을 전하는 첫 대상으로 삼으셨다. 사슴동산에 있던 다섯 수행자는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타락한 고타마에게 아는 체도 하지 않기도 하였으나, 부처님께서 다가오자 그 위엄과 자비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자리를 권하였다. 이를 위의교화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첫 설법을 시작하셨다.


"수행자들아,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느니라. 그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맡기는 쾌락의 길이고, 또 하나는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괴롭히는 고행의 길이다. 수행자는 이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배워야 한다. 나는 바로 중도를 깨달았으며, 중도에 의하여 생로병사의 온갖 괴로움을 버리고 평화로운 해탈의 기쁨을 얻었느니라."


첫 설법은 이렇게 중도와 사성제 등을 설하여 연기의 이치를 가르치셨다. 이것을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한다. 설법과 대화, 토론을 통해 다섯 수행자 가운데 교진여가 맨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고 곧 나머지 수행자 모두 그 가르침을 이해하여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이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로 비구(比丘)의 시초이다.

 

사슴동산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장자(長者)의 아들 '야사'라는 청년과 그 친구들이 출가하여 부처님을 따랐다. 또 그 아들을 찾으러 왔던 야사의 부모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재가의 신도로서 부처님께 귀의(歸依)하여 최초의 재가신도인 우바새·우바이가 되었다.

 

이로써 교주이신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僧寶) 즉, 불·법·승의 삼보(三寶)를 갖춘 불교 교단이 비로소 성립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섯 비구와 야사와 야사의 친구 55명 등 60명의 수행자를 제자로 삼아 진리를 가르쳐 깨달음을 얻게 하고, 여러 지방으로 가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 가르침을 전할 것을 이렇게 권유하였다.


"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고 안락을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을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 <잡아함경>


이것을 전도(傳道)선언이라 한다.

 

그 뒤 부처님께서는 우루벨라로 가서 당시 가장 이름 있는 종교가였던 가섭 삼형제를 교화하여 그들과 제자 1,000여명을 함께 받아들였다. 마가다국 왕사성의 종교가를 모두 교화한 이 사건은 국왕과 백성을 놀라게 하였고, 국왕인 빔비사라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다.


특히 빔비사라왕 은 부처님께서 우기(雨期)동안 머무시며 가르침을 펴실 수 있는 사원을 기증했으니 바로 불교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10대 제자의 한 분인 사리불과 목건련이 제자 250인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과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왕사성의 죽림정사는 사위성의 기원정사(祇園精舍)와 함께 전도의 양대 거점이 되었다.

 

부처님은 성도하신 지 몇 년 후에 고향인 가필라국에 가서 부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교화하고 역시 10대 제자가 된 아난과 라훌라, 아나율, 우팔리 등의 제자를 출가시켰다.

 

십대제자란 《유마경》에 언급되는 말로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수승한 능력을 가진 열분의 제자를 말하는데 지혜제일 사리불(舍利弗), 신통제일 목건련(目 連), 두타제일 마하가섭(摩訶迦葉), 천안제일 아나율(阿那律), 해공제일 수보리(須菩提), 설법제일 부루나(富樓那), 논의제일 가전연(迦 延), 지계제일 우팔리(優婆離), 밀행제 일 라훌라(羅 羅), 다문제일 아난다(阿難陀) 등의 열 분의 제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 열 분의 제자들은 불법의 홍포와 전수는 물론 교단의 유지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분들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깨달으신 뒤부터 입멸할 때까지 45년 동안 중인도 지방을 유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했다. 또한 불교는 당시 많은 제자들에 의하여 널리 전파되었다.

 

부처님 재세시에 이미 불교의 가르침은, 동쪽은 갠지스강 하류까지 전해졌으며, 서쪽은 아라비아해 연안에까지 전파되었다. 부처님은 수행자와 재가자, 귀족과 평민, 노예를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셨다.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깨달음에는 빈부귀천이 없기 때문이었다.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 법신으로 상주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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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 그 동안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 속에서 동고동락하셨다. 그러나 80세가 되신 해에 부처님은 아난 종자에게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고 내게 비밀은 없으며 육신은 이제 가죽끈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설법을 하였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장아함경》<유행경>


이것이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열반유훈이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 전법의 길을 떠나시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의심나는 것이 있는가를 세 번이나 물으신 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라."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길에서 가시니 이 날이 음력 2월 15일 열반절이다. 열반이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에서 온 말로 '불어서 끈다'는 뜻이다. 무엇을 불어서 끄는 것인가? 바로 욕망과 번뇌의 불을 끄는 것이다.


지혜 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은, 열반이란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을 영원히 없애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것이며, 열반에 이르는 방법은 바로 '팔정도(八正道)'라 하였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성도를 이루신 그 순간부터 이미 열반에 드신 것이다. 세상에 인연으로 생긴 것은 반드시 소멸하는 데 부처님께서는 이 무상의 진리를 스스로 따랐다. 원래 부처님은 업의 굴레에 매인 몸이 아니다. 깨달으신 부처님은 영원하여 태어난다거나 죽은 일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나의 육신은 설사 멸하더라도 제자들이 법과 계율을 잘 지키고 행하면 나의 법신(法身)은 영원히 상주하여 멸하지 않으리라'말씀하셨다.


결국 부처님의 생애는 누구든지 부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수행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이신 길이다. 이는 모든 중생이 지닌 불성으로 가능하며 열반은 그 최고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제 부처님의 육신은 소멸하였지만 그 가르침은 어두운 밤에 등불처럼 중생의 앞길을 밝게 비추고 있다. 이 세상에 인류가 살아 있는 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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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어사 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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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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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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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 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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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사 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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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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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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