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이해

범종각(梵鐘閣)

by 무구 김정희 posted Dec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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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梵鐘閣)

법주사 범종각.jpg

 

범종각은 불전사물인 범종(梵鐘), 운판(雲版), 목어(木魚), 법고(法鼓)를 비치하는 당우로서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梵鐘閣)'이라고 하고, 이층의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루(梵鐘樓)'라고 한다.

'범종'은 청정하고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으로 천상과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의미로 법음을 전파하고, '운판'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조류중생을 제도하며, '목어'는 수중의 어류중생을 구제하며, '법고'는 축생을 구제하는 상징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범종각에 비치되는 사물은 모두 부처님께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로서 새벽예불, 사시마지, 저녁예불 때사용하는데, 사물을 치는 순서는 조석예불에서는 '법고→운판→목어→범종'로 하며 이들이 내는 소리는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시마지(巳時摩旨) 때에는 범종만 울린다.

이 범종각은 일반적으로 불이문과 동일선상에 위치하게 되며 불이문을 들어서는 사람이 볼 때 왼쪽, 법당에서 볼 때 오른쪽에 자리하게 된다.


왜 범종각은 불이문과 동일선상에 위치하는가. 이는 글자 그대로 범종에서 범천(梵天)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불이문과 범천은 수미산 정상에 우뚝 서서 그곳으로 들어오는 구도자를 환영하고 구도자가 불이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입증하는 하늘의 주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불이문과 범종각은 동일선상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범종각은 법당에서 볼 때 오른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것은 불교의 체용설(體用說)에 의하면 왼쪽은 체(體)에 해당하고 오른쪽은 용(用)에 해당하게 되는데 소리는 이 중 용에 속하기 때문이다. 체는 본질이요,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용은 작용이다. 항상 체에 근거하녀 다양한 움직임을 나탄낸다.


바꾸어 말하면 범종각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중생의 일심의 작용이요, 부처님의 위대한 작용임을 상징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범종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곧 우리들 일심의 작용이요 부처님의 위대한 작용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소리는 스스로 맑히고 중생을 교화하는 크나큰 울림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범종각은 법당쪽에서 볼 때 오른쪽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법고(法鼓)

 

법고.png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즉, 북소리가 세간에 널리 울려 퍼지듯이 불법(佛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울려 ‘일심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나아가 중생들이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온갖 번뇌를 없애는 것을 , 마치 진을 치고 있던 군사들이 북소리에 따라 적군을 무찌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법고에는 불법(佛法)을 널리 전하여 중생의 번뇌를 물리치고 해탈을 이루게 한다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소리, 화합의 소리, 조화의 소리야말로 중생의 심금을 울리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상징성으로 암수소의 가죽을 양면으로 사용해야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가죽을 댄 법고는 축생(畜生)의 제도를 위하여 친다고 한다.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이 법고는 조석예불시간에 가장 먼저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로 된 두 개의 북채로 마음 ‘심(心)’자를 그리면서 두드린다. 그 소리가 장중하고 무거워 부처님의 소리인 사자후를 상징한다. 즉, 북소리가 세간에 널리 울려 퍼져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중생들이여, 한 마음 미한 자가 곧 중생이요 한 마음 깨달은 자가 곧 부처이니라. 마음의 눈을 떠라. 그대 마음을 밝혀라. 그것이 곧 해탈의 첩경이요 부처를 이루는 길이니…….” 라며 중생계속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금광명경(金光明經)에 나오는 경구를 음미해 보자.


“보라! 이 빛나는 둥근 북을. 여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그대는 이 소리의 본체가 무엇인지를 아는가? 그대는 왜 이 소리만 듣고 그 소리없는 소리는 듣지 못하는가? 설혹 그대가 좋아하는 것이 그 소리뿐이라고 하자. 그러나 그 소리가 이 둥근 형상, 이 텅빈 공간, 이 팽팽한 가죽, 이 방망이, 그리고 이 방망이를 들고치는 기술과 곡조,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삼매의 힘, 이것들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나올 수가 있다더냐?……”

  

운판(雲板)

 

운판.png

 

청동이나 철로 만든 얇은 판으로, 전체적으로 하늘의 구름 모양을 하고 있어서 운판(雲板)이라고 한다. 보통 판 위에 보살상이나 진언을 새기고 가장자리에 승천하는 용을 조각하며, 구름이나 달을 조각하기도 한다. 진언은 대개 '옴마니반메훔'을 새기며, 매달 수 있도록 위쪽에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이러한 운판이 울리는 소리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며,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遷度)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을 때 허공계의 중생은 안식을 얻어서, 용이 구름 사이를 뚫고 승천하듯이 해탈의 세계로 향한다는 것이다.


운판은 본래 부엌이나 식당에 걸어 두고 식사 때 등을 알리기 위해 치는 도구였는데, 차츰 불전사물의 하나로 바뀌어 조석 예불 때 사용하는 의식 용구가 되었다. 
  

목어(木魚)


조계사 목어.jpg

 

목어는 나무로 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서 걸어 두고 두드리는 법구로 어고(魚鼓) 목어고(木魚鼓) 어판(魚板)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식당이나 창고 등에 걸어두고 오르지 대중을 모으는 데만 사용하다가 뒷날 독경이나 의식에 쓰는 법구(法具)로 용도가 바뀌게 된 것이다.

또한 그 형태도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었으나 차츰 용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취한 용두어신(龍頭魚身)의 형태로 변형되어 갔고, 입에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모습을 많이 취하게 되었다. 물고기라는 중생이 뜻과 같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여의주를 문 용(龍)이라는 깨달은 중생 즉 보살이 됨을 상징화하여 갔던 것이다.

“눈을 떠라. 눈을 떠라. 물고기처럼 항상 눈을 뜨고 있어라.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언제나 혼침(昏沈;어둡고 혼미한 정신 상태)과 산란에서 깨어나 일심으로 살아라. 그와 같은 삶이라면 너도 살고 남도 살리고 너도 깨닫고 남도 능히 깨달을 수 있게 하리니…‥.”

나무에 등을 진 물고기는 마침내 여의주를 입에 문 목어로 화하였으며, 목어는 다시 비김어린 음성을 토하여 혹업(惑業)의 중생을 대자재(大自在)한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것이다.


'목어'는 나무를 깎아 큰 잉어 모양으로 만들고 속이 비게 파낸 다음 배 부분 안쪽의 양 벽을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나게 함으로써 불사(佛事)에 쓰는 기구인데, 본래 중국의 선원(禪院)에서 아침의 죽 때와 낮의 밥 때를 알리기 위해서 치던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 '목어'가 시대를 흐르면서 차츰 모양이 변하여 지금 불교 여러 의식에서 승려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불구(佛具) 중 하나인 목탁(木鐸)이 되었다고 한다.

불교의 경전에는 그 '목어'가 생겨난 유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어느 절에 덕이 높은 승려가 몇 사람의 제자를 가르치면서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가르침에 따라 힘써 도를 닦았으나, 유독 한 제자만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위할 뿐 아니라, 계율이란 계율은 모조리 어기면서 망난이 짓 저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몹쓸 병에 걸려 일찍 죽게 되었는데, 그 다음 생에서는 업보를 받아 물고기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것도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난 물고기가 되었으므로 헤엄치기가 여간 힘들었을 뿐 아니라, 바람이 불어 물결이 칠 때마다 그 나무가 흔들려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계속 받아야만 했다.

하루는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은 물고기가 뱃전에 머리를 들어대고 슬피 우는 모습을 보였다. 스승이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가 그 물고기의 전생을 살펴보니, 그게 바로 자기의 가르침을 멀리 하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가 일찍 죽은 과거의 제자임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가여운 마음에 그 스승은 고통에 처한 제자를 위하여 뭍이나 물에서 사는 미물과 함께 외로운 영혼들을 천도(薦度)하는 법회인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서 제자를 물고기의 몸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 날 밤 스승의 꿈에 물고기의 몸을 벗은 제자가 나타나서 감사를 드림과 함께 다음 생에서는 참다운 발심을 하여 바르게 정진할 것을 다짐하고, 자신의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물고기의 형상을 만들어서 막대로 쳐 주기를 청하였다. 그리하게 되면 수행하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교훈으로 삼게 될 것이고,아울러 강이나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 그 소리를 듣고 해탈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이 될 것이라 하였다. 스승은 그 부탁에 따라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을 한 목어를 만들어 침으로써 많은 중생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었다.

절에 그 '목어'가 있는 뜻은 주지하다시피 물고기류가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고 움직이고 자고 하므로 모든 수행자로 하여금 잠을 멀리 하고 수도하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 곧 그것을 두드려 수행자가 어둡고 혼미한 정신 상태에 드는 혼침(혼沈)을 경책(警策)하기 위하여라 하고, 혹은 그 '목어'를 두드려 소리나게 함으로써 물 밑 세계에 사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상징적 의미로 삼는다고도 하였다.

이 '목어'의 형태가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모습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용 머리에 물고기 몸을 취한 용두어신(龍頭魚身)으로 되었고, 그 용은 흔히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데, 이는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應傳)>에 보이는 등용문(登龍門)의 고사(故事)가 윤색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곧 복숭아꽃이 필 무렵 황하(黃河)의 잉어들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오르다가 용문(龍門)의 거칠고 가파른 협곡을 뛰어올라야 하는데, 거의가 실패를 하지만 요행히 성공한 잉어는 용으로 화한다는 전설이 있는데, 불도에 들어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또한 그와 같은 어변성룡(魚變成龍)일 것이라 상징하여 모습이 차츰 변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여러 의식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불구(佛具)인 목탁(木鐸)은 위에서 본 바의 '목어'로부터 유래한 것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탁' 역시 물고기의 형상으로 되었다. 다만 크고 긴 고기 모습인 '목어'와는 달리 길이가 짧아져 둥근 형태로 되고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손잡이 부분을 만들었으나, 앞 부분의 긴 입과 입 옆의 둥근 두 눈이 고기임을 나타낼 뿐 사실적(寫實的)인 고기의 모양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 나라 절에서 쓰는 '목탁'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렇게 일컫지 아니하고, 범종각에 걸어두는 '목어'와 구별하지 않고 함께 '목어'라고만 한다. 우리가 흔히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다.'라는 등의 말을 하는데, 그 때의 '목탁'은 물론 '세상 사람을 가르쳐 바로 이끌 만한 사람이나 기관'등을 은유한 것이며, 분명히 한어(漢語)에 연원하지만 그 '목탁'은 절에서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사물이다. 이제 이 '목탁'과 관련하는 한문의 쓰임을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목탁은 쇠붙이로 만들어 나무 손잡이를 단 방울 종으로 옛적에 정사(政事)를 펴거나 교학(敎學)을 진작시키고자 할 때 중인(衆人)을 경계코자 하여 사용했다'.(金口木舌之鈴, 古時施政敎振之以警衆也)<서(書), 윤정(胤政)>


'목탁은 쇠붙이로 만든 방울 종으로 나무 손잡이를 단 것인데, 문교(文敎)를 진작코자 하여 사용한다'.(木鐸, 金鈴木舌, 所以振文敎)<주례(周禮) 천관(天官) 소재(小宰)>


'절'에서의 그 '목탁'은 대추나무로 만든 것을 선호하나 구하기 어려워 '박달나무, 은행나무, 괴목(槐木)' 등을 이용하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손잡이가 없이 포단(蒲團) 위에 얹어 놓고 치는 큰 것과 규모의 차이는 다양하지만 손잡이가 달려 들고 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 나라 절에서는 대개 손에 잡고 두드리는 작은 형태의 목탁이 흔하다.

이 '목탁'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모두 일정한 법도에 맞추어 두드리게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승려 사이의 일정한 약속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곧 보통 길게 한 번을 치되 처음에는 소리를 크게 했다가 차츰 줄이면서 치면 공양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오라는 뜻이 되고, 두 번을 길게 치면 논밭을 갈거나 공동의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이라는 뜻이며, 세 번을 길게 치면 학습이나 입선(入禪)의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라 한다. 그 밖에도 새벽에 절 경내를 두루 다니면서 뭇 생명을 잠에서 깨게 하고 청정함을 깃들게 하는 도량석(道場釋)이나 새벽 예불 때에는 어둠이 가고 광명이 오는 것을 상징하여 처음에는 작을 소리로부터 시작하여 차츰 크게 두드리며, 반대로 해 질 무렵 이후에는 점차 어둠이 깃드는 것을 상징하여 처음을 세게 치다가 나중에 여리게 두드리는 게 격식에 맞는 것이라 한다.

 

범종(梵鐘)

 

불국사 범종.jpg

 

범종은 본래 대중을 모으고 때를 알리기 위해 쳤으나, 점차 조석예불이나 의식을 치를 때 치게 되었다. '범'이란 우주 만물이며 진리란 뜻으로, 바로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 범종이다. 범종 소리는 하늘 나라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신호인 동시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염원하는 소리이다. 종소리로 울려 퍼지는 불법(佛法)의 소리를 지하의 모든 지옥 중생에게까지 들려 주어서 고통을 벗게 하고 위로 하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더해 주기 위해 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범종의 신앙적 의미는 모든 중생이 종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생겨 악도(惡道)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지옥 중생까지 제도하는 데 있다. 종소리가 지옥으로 울려 퍼지라는 의미에서 종 입구는 아래를 향한다.
범종은 보통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을 치는데, 아침은 욕계.색계.무색계중 천상계인 28천의 중생을 깨우며, 저녁은 인간.수라.축생.아귀.지옥의 5계과 28천을 합쳐 33세계를 모든 중생들에게 들려 주기 위한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수행자가 입적했을 때 임종과 동시에 느린 속도로 108번을 치기도 하는데, 이는 생을 마감하며 백팔번뇌를 타파하고 열반으로 들어가는 장중한 뜻을 담고 있다.
조석 예불 때에는 범종을 치며 게송을 외우는데, 아침과 저녁의 게송은 아래와 같다.

<아침 쇳송>
원차종성변법계 願此鐘聲遍法界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하여
철위유암실개명 鐵圍幽暗悉皆明 철위산 아래 어두운 지옥 밝혀주고
삼도리고파도산 三途離苦破刀山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여의고 칼산지옥 무너지며
일체중생성정각 一切衆生成正覺 모든 중생 깨달음을 이루게 하소서.

<저녁 쇳송>
문종성번뇌단 聞種聲煩惱斷 종소리 들어 번뇌를 끊고
지혜장보리생 智慧長菩提生 지혜를 길러 보리를 이루어
이지옥출삼계 離地獄出三界 지옥을 떠나고 삼계에서 벗어나
원성불도중생 願成佛度衆生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모두 건지라.

 

ㄱ.종구조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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