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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이해
2012.12.24 00:52

금강문(金剛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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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金剛門)
 법주사 금강문.jpg

 

금강문은 사찰 입구의 일주문 다음에 있는 문으로,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한다. 흔히 [인왕상]이라 불리는 두 명의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어 [인왕문]이라고도 한다.

 

이중 오른쪽을 지키는 역사가 [나라연금강]이고, 왼쪽을 지키고 있는 역사가 [밀적금강]이다. [나라연금강]은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하고, 야차신(夜叉神)의 우두머리인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있다. 금강저는 지혜의 무기이며 번뇌를 부수는 보리심의 상징이다. 오른쪽에 입을 벌리고 서 계신 분은 [나라연금강]으로 [아형 금강]이라고도 하며, 왼쪽에 입을 다물고 서 계신 분은 [밀적금강]으로 [옴형 금강]이라고도 한다. 이 두 분을 합쳐서 우주 만물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상징하는 진언 “옴”을 의미한다.


천왕문과 마찬가지로 보통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정면 3칸 중 가운뎃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양쪽 1칸은 바깥쪽 3면을 벽으로 처리하여 안에[금강역사상]을 세워 둔다.

 

[금강역사상]은 불법을 훼방하려는 세상의 사악한 세력을 경계하고, 사찰로 들어오는 모든 잡신과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승불교의 《오분율(五分律)》에 따르면 부처가 있는 곳에는 항상 5백의 금강신이 있어 좌우에서 부처를 호위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찰에서는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서 금강역사상을 안치하고 있다.

 

흔히 [사찰의 삼문]이라 하면 일주문·천왕문·불이문(不二門)을 말하며, 따라서 '금강문'을 세우지 않은 사찰도 많다. 금강문이 있는 사찰은 금강문이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지만, 금강문이 없는 사찰은 천왕문이 대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찰에 따라서는 금강문없이 천왕문에 금강역사를 모시기도 하고, 영광 불갑사(佛甲寺)의 경우처럼 천왕문에 금강역사의 모습을 그려 놓기도 한다.

 

영암 도갑사(道岬寺)와 공주 마곡사(麻谷寺)에는 [해탈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문을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고, 보은 법주사(法住寺)는 4개의 문을 모두 갖추고 있다. 최근에 중수한 사찰은 대개 금강문을 갖추고 있다.

 

금강역사(Vajradhara) - 사찰과 불탑의 수문장 

 

여러 신장형 신중들

 

불교의 여러 호법신들 중에 갑옷을 몸에 걸치고 무기를 든 채 성난 표정 을 하고 있는 무인상(武人像)이 있는데, 이들을 일러' 신장형(神將形) 신중'이라 한다. 금강역사( 또는 仁王), 사천왕(四天王), 12신장(十二神將), 16선신(十六善神)이 그들이다.

 

이들은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로 본래 인도 귀족의 의상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중국으로 전해질 무렵에는 완전히 서역풍(西域風)의 갑옷으로 갈아입게 되었으며, 그 얼굴 모습도 분노하는 모습의 험악한 인상으로 굳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주변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서역이란 오늘날의 중앙아시아를 말한다. 지금이야 현대식 도로가 뚫려 있기는 하지만, 세계의 지붕이라 하는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하는 큰 산들이 솟아 있는 데다가 타르 사막이 펼쳐지는 등 척박한 자연 조건으로 사람들의 접근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옛날 현장 스님이 이곳을 지날 때, 귀신 소리가 귀전을 때리며 곳곳에 인골이 나뒹군다고 했을 정도니, 그 살벌하고도 무시무시한 풍광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죽음보다 무서운 악조건을 퇴지하는 강력한 무인의 모습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은 무력(武力)이 뛰어나서 그 힘으로 불법을 수호한다. 더불어 국가를 수호할 뿐더러 전쟁의 승리와 개인의 안전도 이들로부터 구하기에 이르렀다.

 

금강역사의 역할

 

이들 신장들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눈에 익은 것이 [사천왕]과 [금강역사]일 것이다. 그 둘은 사찰의 입구에서 눈을 부릅 뜨고 지켜 서서 도량이 삿된 무리의 출입으로 오염되는 것을 막아서고 있다. 보통 우리나라의 금강역사상은 사찰의 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사천왕문의 좌우측 대문에 그려져 있거나 사천왕문과는 별도로 금강문 안에 조각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석탑과 부도의 탑신부라든가 사리기, 불감(佛鑒), 신중태화 등에서도 턱하니 버텨 서서 불보살이며 사리를 수호하고 있다.

 

이 금강역사의 산스크리크 명은 바즈라파니(Vajra pani), 또는 바즈라다라(Vajra dhara)이다. 금강저(金剛杵)인 바즈라의 주인 또는 그 금강저를 들고 있는 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집금강(執金剛) 또는 금강수(金剛手)라고도 했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우리나라 및 중국의 금강역사상을 보면 맨손인 경우가 대다수이며 간혹 왼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도 보인다. 발사라파이(跋사羅波이), 벌절라타라(伐折羅陀羅)는 각각 이 바즈라파니와 바즈라다라를 음역한 말이다.

 

보통 사찰 출입구[금강문]의 오른쪽에 [아형(阿形) 금강역사], 왼쪽에는 [훔형(沔形) 금강역사]가 배치되어 사찰을 수호하고 있는데, [아형 금경역사]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으로, [훔형 금강역사]는 [밀적금강(密赤金剛)]으로 각각 부르기도 한다.

 

[아형 금강역사]는 '아'하고 입을 벌린 채 공격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훔형 금강역사]는 '훔'하고 입을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때의 '아(A)'는 산스크리트 알파벳의 첫글자이며 '훔(M)'은 그 끝 글자로, 바로 알파와 오메가를 일컫는 것이다.


이를 일러 김현준씨는 『사찰 그 속에 깃든 의미』에서 '두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한 통일과 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의 상세한 설명을 더 들어보자.

 

'아'와 '음'(원문에는 훔으로 되어 있다)은 범어인 '옴'에서 나온 말이 다. 옴은 ' A+U+M - '의 결합문자로서 A는 창조와 출발과 시작, U는 유 지와 존립, M은 끝과 소멸 등을 상징하며. ' - '는 시작과 끝을 넘어서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여운을 뜻한다.


따라서 이 네 가지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옴'은 영원, 완성, 조화, 통일, 성취 등 모든 성스러움 을 포함하고 있는 신령스러운 주문으로 받아들져지고 있다. 두 금강역사는 '아', '음'으로 나누어서 이 신령스러운 주문인 '옴'을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 금강역사가 공격형 자세를 취하는 것은 출발 시점에서의 진취 적인 나아감을 뜻하고, 음 금강역사가 방어형 자세를 취하는 것은 소멸의 단계를 거두어 들이는 것을 상징화시켜 묘사한 것이다.

 

게다가 경전 상에서는 이 두 금강역사가 자성(自性)의 이치를 통하여 실상문(實相門)을 열고, 신(身) 구(口) 의(意) 삼업(三業)을 폐하여 악취문(惡取門)을 닫는 모습도 보여준다고도 한다.

 

금강역사

 

1. 밀적금강 

밀적금강.jpg
 

본래 이 금강역사는 불탑을 수호하는 야차류, 또는 야차와 똑같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유형의 신이었다. 이 야차의 모습은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적을 제외하고는 볼 수 없으며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다. 이 남들에게 띄지 않는 '감추게 하다'(guhya) 라는 것에서 [밀적(密赤)]이라는 이름이 탄생되었으리라고 본다.

 

[밀적]은 분명히 산스크리트 구흐야카(guhyaka)의 번역이다. 그 구흐야카는 야차와 더불어 쿠베라신의 재보를 지키는 반신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야차의 일종이 불교권으로 들어와 밀적금강이라 이름하게 되었으며, 그 [밀적]이라는 뜻도 그가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사적을 들으려는 본원을 품은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해석하게 되었는가.

 

원래 바즈라파니(vajra pani)라는 표현은 구흐야카에 따라붙던 말이다. 구흐야카 바즈라파니(guhyaka vajra pani), 즉 '금강저의 주인공 구흐야카'로 말이다. 나는 바즈라파니'라는 말과 관련지어 그 야차류의 신이었던 구후야카가 밀적금강으로 재창조된 해답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석존의 수호신으로서 바즈라파니에 대한 신앙은 서북 인도를 중심으로 삼아 퍼져나갔지만, 인도 중심부의 왕사성에도 존재했던 걸로 보고 있다. 그런데 그 바즈라파니는 사실 금강저를 들로 있기 때문에 제석천 인드라의 이명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불교의 대 주석가인 부다고샤(Buddha : 馬鳴)는 이 바즈라파니를 인드라라고 해설하고 있을 정도다.


이를 일러 우에무라(上村)는 바즈라 파니라는 신격, 그 금강저를 든 인드라신의 이미지가 불교로 들어와서 석존을 호의하는 신으로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분명 인드라는 불교 신중의 제석천으로 자리잡고 있는 터, 그렇다면 그 금강저를 들고 있는 인드라의 이미지와 '감추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구흐야카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밀적금강으로 탄생한 것은 아닐까.

 

『대보적경』 '밀적금강 역사회(密赤金剛力士會)'에서는 이 금강역사가 석가모니의 구생신(俱生神), 즉 수호를 해야하는 그 대상과 함께 태어난 신으로서 언제나 금강저을 들고 석가모니을 호의하며 그 설법을 도와준다고 한다. 더불어 그는 온갖 비밀스러운 사적(事跡)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진쟁중인 현겁 천불의 법을 수호한다.

 

2. 나라연금강

 나라연금강.jpg

 

밀적금강의 동반자인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란 누구인가. 나라연은 산스크리트 나라야나(narayana)의 음역이다. 나라(nara)는 물, 또는 원인(原人), 원초인(原初人)이라는 뜻이고 아야나(ayana)는 계통, 또는 자식이라는 의미인 바, 우주 생명의 근본 주체를 말한다.

 

그래서 우주 생명의 근본인 이 나라야나는 보통 인도신화상에서 힌두교의 삼신(三神)인 브라마와 비슈누, 그리고 쉬바와 동일시되었다. 이들은 각각 우주의 창조, 유지, 파괴를 담당한다하지만, 세 신 모두 넓은 의미에서 창조와 유지, 그리고 파괴를 관장하는 최고신으로 군림한다.

 

그런데 이들 세 신은 무지무지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나라야나, 즉 나라연천은 역사(力士)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나라야나를 일러 인중역사(人中力士)라 했으며, 견고한 그 굳센 힘은 다이아몬드, 즉 금강석(金剛石)을 따라갈 만한 것이 없기에 [금강역사(金剛力士)], [견고역사(堅固力士)]라고 칭하였다.


아무튼 그 [나라연금강]은 천상의 역사로서 그 막강한 파워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 그리고 이 신에게 공양하면 대신력을 얻는다고 전한다. 소림사 권법은 달마가 인도에서 전한 나라연권(那羅延拳)의 비법을 이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결과적으로 불교는 부처님을 수호하는 [밀적금강]과 막강한 힘을 지닌 금강역사인 [나라연금강]을 사찰문을 지키는 수호 신장으로 배치하여 그 수문장으로서의 역할을 이들에게 부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소림사 권법은 달마가 인도에서 전한 [나라연권(那羅延拳)]의 비법을 이은 것이라고 한다.

 

금강역사의 다양한 이름과 모습들

 

나라연금강과 밀적금강, 다른 말로 해서 '아 금강역사'와 '훔 금강역사'는 인왕(仁王)으로도 불려진다. 특히 사찰문에 배치될 때 인왕 또는 이왕(二王)이라 하여 좌우 이존(二尊)으로서 밀적과 금강 또는 금강과 역사로도 불리기도 했단다. 또한 입을 연 자를 금강(金剛)이라 하고 입을 다문 자를 역사(力士)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다른 경전에는 금강역사는 두 명 뿐만이 아니라 500, 8만 등 무수하다고 전한다.

 

금강역사의 수효에 대해서 왜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가. 원래 금강역사는 단 한 분뿐이었다. 심지어 우에무라는 금강역사에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있다는 오해를 하지 말기 바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하나에서 다(多)로 증식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 가장 타당한 해석은 본래 한 분이었던 금강역사가 점차 석가모니 이외에 제불보살로부터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수호 영역을 확대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서 본래 하나였던 금강역사가 그 자재한 동적 작용으로 인하여 수를 증식하여 아형과 음형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금강과 역사,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라는 각각 다른 인물로 묘사될 수 있었다는 개연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섭무애경(攝無碍經)』에서는 이 금강역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신체의 모습은 적육색(赤肉色)이다. 분노를 머금은 모습으로 마귀의 무리를 항복시킨다. 머리의 육계는 불꽃이 타오르는 듯하는 관을 쓰고 있다. 왼손은 주먹을 쥔 채 허리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다. 금강보(金剛寶)의 보석 구슬에, 천의(天衣)는 맹수 가죽으로 만든 옷, 신체를 묘보색(妙寶色)으로 장식하고 있다. '


이러한 금강역사상의 적나라한 모습은 석굴암의 금강역사상에 잘 표현되어 있다. 거기 석굴암 전실을 지나 주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금강역사가 1구씩 양측에 배치되어 있는데, 금강저를 들고 있지는 않지만, 웃옷를 벗어버리고 하의만 입은 채, '아'하고 입을 벌린 공격형의 자세와 '음'하고 입을 다문 방어형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격노하는 모습, 근육의 긴장과 자태의 약동에 의한 힘의 표현은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으로 넘쳐흐른다.

 

근육이 툭툭 불거져나와 울퉁불퉁거리는 데다가 왕방울만한 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 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와서 검은 무리들을 가로 막을 자세다.

 

이들의 주된 역할은 앞서도 말했다시피 불보살 및 일반 성중(聖衆)을 수호하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수문신(守門神) 기능을 맡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사찰로 들어서는 금강문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지만, 사찰의 출입문뿐만 아니라 경내의 전각, 특히 명부전 출입구라든가 탑신이며 불감(佛鑒)의 문비 등 여러 불교 조형물의 출입구에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분황사 전탑(塼塔)을 비롯해서 안동 동부동 전탑, 조탑동 전탑의 탑신부에도 그 감실로 들어가는 입구 좌우에 금강역사가 굳건히 서서 탑과 그 탑의 생명인 사리를 수호하고 있는데, 이러한 금강역사의 사리 수호 기능은 월성 장항리 5층석탑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황룡사지 9층 목탑지에서 발견된 사리기에 새겨진 금강역사상도 사리 수호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실한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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