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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집을 정리하던 도중 언제 받았는지도 모를 <금강반야바라밀경> 사경집이 눈에 띄었다. 청소를 마친 후 따로 빼두었던 사경집을 펼쳐봤다. 

한자도 제대로 모르면서 삐뚤빼뚤 따라 쓰는 글씨였지만, 한 장 한 장 채워갈수록 묘한 뿌듯함이 생겼다. 글자 아래엔 우리말 번역이 있어, 비로소 금강경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고, 법회 중 독경도 해봤지만 부끄럽게도 자신 있게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전은 없던 나였다.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사경 수행에 돌입했다. 처음엔 <금강경>으로 시작해 백중 기간에는 <부모은중경>을, 마음이 힘들 땐 <광명진언>을 사경했다. 한 권씩 끝낼 때마다 내 삶도 조금씩 변화했다.

사경에 앞서 늘 외우던 발원문은 내가 다시 사람들을 만날 용기를 주었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게 했으며,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게 해줬다. 그 시기를 지나 다시 만난 사람들은 내 얼굴이 좋아 보인다며 “삶의 원동력이 뭐야?”라고 묻곤 했다. 나는 씩 웃으면서 “부처님 덕분이죠”라고 답한다. 


빠르게 철들어야 했던 그 시절, 불교는 나를 어긋나지 않게 지켜준 빛이었다. 불교에서 만난 인연들이 나를 이끌었고, 이제는 내가 받은 것을 회향하며 살아가야 할 시기다. 지금 이렇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살아가게 해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힘. 어쩌면 그것은 사경을 통해 한 글자 한 글자 차곡차곡 쌓아온 마음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게 쌓인 정성이 진정한 ‘가피’ 아닐까.


오윤겸 불자

출처 : 현대불교(https://www.hyunbulnews.com)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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