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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수덕사 이야기 - ②

by 마니주 임경분 posted Jul 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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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의 햇살이 들판의 언 가슴을 부드럼게 쓸어내리고, 새파란 하늘 아래 드러낸 황량한 들판은 오히려 고풍스럽다.
삽교를 지나고 덕산온천을 지나 수덕사까지 이어진 길은 따스한 정감이 느껴진다.
충청도 특유의 향토색과 끈끈한 정, 충청남도 예산과 덕숭산 수덕사가 한 형제처럼 다정다감하게 어울린다.
충절과 예의의 고장 충청도에 그만한 기개를 지닌 인물 만공스님이 주석했던 수덕사가 자리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듯 싶다.

허허로운 들판길을 달리며 출가자의 마음을 지닌 이는 단 하나의 욕심을 가져도 좋다.
그것은 올바르게 수행생활을 이끌어 줄 스승을 만나는 일이다. 원효와 같이 별다른 스승 없이도 홀로 자재로울 수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그건 너무 외롭다.
서로가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눈빛만으로도 미소를 흘릴 수 있는 스승을 만나서 흐뭇함을 전해줄 제자가 되고 싶다.
덕숭산의 따뜻한 품안에는 그런 스승이 있을 법하다. 멀리는 조주에게 있어 남천이 그러했고, 우리에게는 송담에게 있어 전강이 그러했다.
그리고 이제 여기 제자 만공과 스승 경허와의 인연의 법맥이 한 없이 자랑스럽고 부럽다.

어느덧 다다른 수덕사 입구에는 일주문이 우뚝 서서 1일 출가자를 맞이하고 1일 출가자는 합장으로 답례한다.
계단을 밞고 올라선 수덕사의 경내는 경계를 여의어서 맘껏 운신하는 자유로움이 있고, 그러면서도 방종하지 않은 절제미가 흐른다. 곧이어 다가선 대웅전은 수덕사 예술의 백미로 나라에서도 국보로 정해 보호하고 있다.
단청의 빛깔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대웅전은 그야말로 소박한 우리민족의 얼굴과도 같다.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로 꼽히는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 최고의 명장 아버지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건립 연대를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수덕사의 깊은 덕은 아주 오래된 훈풍으로 긴 역사를 통해 많은 출가자를 이 곳에 모이게 했고 깨침을 주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맥이 살아 덕숭총림의 커다란 불가를 이루어 놓은 곳이다.
모든 고찰의 창건이 그러하듯이 수덕사의 창건연대 역시 확실하지 않다.

사기에 의거해 보면, 백제 말엽에 숭제법사가 창건했고, 제30대 무왕에 이르러 혜헌법사가 이 곳에서 법화경을 강론했다고 되어있다. 달리는 신라 제 26대 진평왕 21년(599)에 지명법사가 창건하였고 원효대사가 중수했다고 한다.
이러한 창건의 시비를 따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아직 만공선사를 찾아 뵐 산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만공스님의 기개를 이은 후손으로 스님의 일화를 동행자와 함께 자랑스레 나누었을 이 길은 1천 20개나 되는 계단으로 덕숭산을 오를 수 있게 해놓았다.
다행이다.
만공탑이 대웅전의 위치와 비슷한 곳 어디엔가 세워졌다면, 사람들의 발길은 그만큼 뜸했을거고 그래서야 덕숭산의 푸근한 덕을 느끼기 힘들었으라라.
이런 길을 오르며 수덕사의 재건에 얽힌 설화 하나 떠올리는 것도 재미롭다.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가아제로 끌어아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수덕각시인 이 여인은 관음바위라 불리웠다.
관음바위를 지나면 거대한 관음석불이 고요한 주위의 산세를 다스리고 서 있고, 그 위에는 드디어 만공스님이 주석했다는 정혜사와 만공탑이 모습을 나타낸다.



③편에서 계속 ~~~ ☆

출처 : http://cafe.naver.com/buj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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