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

미리 찾아가는 승가사

by 마니주 임경분 posted Mar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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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제일의 비구니 선원, 승가사

● 한양근교의 명승사찰
예부터 북에는 승가사, 서에는 진관사, 남에는 삼막사, 동에는 불암사라 하여 한양 근교의 명승사찰을 꼽았는데 그중에서도 신라의 고찰로서 참선수도 도량으로 이름 높은 승가사는 고려시대부터 많은 시인 묵객이 승가사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절찬하는 시와 글을 남겨 놓아 그 발자취가 우리에게 이어져 지금도 세상에 회자되고 있어 감명을 새롭게 하고있다.

승가사의 창건은 756년(경덕왕 15) 수태(秀台)스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수태(秀台)스님은 중국 당나라 고종때 장안 천복사(薦福寺)에서 생불(生彿)소리를 들었던 서역 출신의 승가대사(僧伽大師)의 거룩한 행적을 듣고 그를 경모하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승가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이야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권 한성부 불우(佛宇)조에 잘 보이고 있다.
곧 이예라는 사람의 중수기에 있는 말이라고 하면서 최치원의 문집을 보면,
\"옛날 낭적사(浪跡寺)스님 수태가 승가대사의 거룩한 행적을 익히 듣고 삼각산 남쪽에 좋은 자리를 정하여 바위를 뚫어 굴을 만들고 돌을 쪼아 형상을 새기니 대사의 어진 모습이 더욱 우리나라에 비추었다.
나라에서 천지의 재변과 홍수와 한발 등의 재난이 있으면 기도를 드려 물리치곤했는데, 그럴때마다 언제나 효험이 있었다.\"
라는 말을 옮겨 놓았다.
이예가 쓴 이 중수기는 현재 『동문선(東文選)』 제64권에 그 전문이 전하고있다.

● 북한산 제일의 비구니 선원, 승가사(僧伽寺)
고려시대에 와서 1024년(현종 15)에 지광(智光), 성언(成彦)스님 등에 의하여 중창되었고, 1090년(선종 7)에는 구산사(龜山寺) 주지였던 영현(領賢)스님이 왕명으로 다시 중수하였다.
1099년(숙종 3)에도 영현스님이 재차 중수하였는데, 이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왕과 왕비를 모시고 참배하면서 불상을 개금하고 불당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422년(세종 4)에 왕이 전국의 사찰을 통합, 선교양종으로 나눌 때 선종에 속하게 되었다.
임진왜란을 맞아 절이 크게 소실되었고, 병자화란 때 다시 북한산 일대의 절이 화란을 입으면서 승가사는 자치를 감추게 되었다.
이후 1780년(정조 4)에 성월(城月)선사가 폐허로 남아 있던 곳에 돌을 고르고 전각을 재건하여 승가사의 법등은 다시 이어져 갔다.
이후로도 절은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쳤으며, 고종 때는 명성황후와 엄상궁의 후원으로 중건하기도 했다.

근대에는 1941년 도공(道空)스님이 다시 중수하였고, 비구니 도원(道圓)스님이 도량을 가꿔 나갔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다.
그러던 것을 1957년 비구니 도명(道明)스님이 산신각, 향로각, 동정각, 대방, 요사 등의 불사를 이루어 절을 일신하였다.
1971년에는 상륜(相侖)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마애석불에 오르는 백팔계단의 대리석 조성을 시작으로 절의 진입로를 확장하고 전기를 가설하는 등 20여 년 동안의 정진을 통해 사세를 확장시켰다.
이렇게 해서 대웅전 중창을 비롯하여 명부전, 영산전, 향로각, 산신각, 동정각, 적묵당, 대중선방, 일주문 등 현재의 대가람을 형성하게 되었다.

현재는 비구니 스님들의 선원으로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는 적묵당에는 “삼각산제일선원(三角山第一禪院)”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불당이 구름 속에 묻히고 희뿌연 안개 속에 잠긴 가운데 청풍 속에 풍경 소리와 낭랑한 독경 소리는 청산 속에 흘러나오며, 이미 속세를 떠난 신비롭고 그윽한 경지에 이르러 부처님이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황홀경에 빠져들 것이다.

● 정교하고 섬세한 국내 유일의 호국보탑
승가사 9층 석탑은 아자형 평면의 9층 석탑으로 이러한 양식은 우리나라에는 유일한 것이다.
1994년 3월 준공예정으로 7년여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다.
석탑은 8각의 지대석 위에 16각 기단을 올리고 기단 위에 다시 아자형 기단과 계단을 설치하였다.
아자형 기단위에는 8각의 감실형 탑신을 올렸는데 이 부분이 특징적이다.
감실은 조작된 원형 석주 8개를 세우고 4면에 사천왕상을 주칸사이에 조각하고 그 내부에 탑신을 별설하였다.
이 감실 상부에는 다시 9층 석탑의 기단을 8각으로 돌리고 그 위에 아자형 탑신, 옥개를 9층까지 체감하면서 올렸다.
이 아자형은 경천사 10층 석탑이나 원각사 10층 석탑의 모양과 흡사하나 경천사 및 원각사의 것은 하층만을 아자형으로 한 것인데, 이 석탑은 9층 각층이 모두 평면을 아자형으로 하여 특이롭다.
탑 정상에는 상륜석을 조각하여 올렸는데 그 모양이 고식을 본받고 있다.
이 석탑조성의 발원은 주지 상윤 스님이고, 설계는 김광항씨가 맡고 조각은 김광열씨가 담당하였다.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출처 : http://blog.naver.com/thailee_ohpy/20122169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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