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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에 지극정성 귀의하옵고...

봉축과 연이은 기타 행사들을 진행하시고 동참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회원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대한불교청년회가 창립된지 올해로 어언 9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동란의 어려움 속에서도 부처님의 깨달음과 정법을 수호해주신 선배도반님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대불청 창립 9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우리 조계사에서 \'불청 90년, 희망 100년-불청, 세상과의 소통을 꿈꾸다\'란 주제를 가지고 29번째 행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 제29차 전국불교 청년대회==========================

일 시 : 불기2554년 6월 19일(토) ~ 6월 20일(일)

장 소 :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주 최 : (사)대한불교청년회

주 관 : (사)대한불교청년회 직할 조계사청년회

후 원 :대한불교조계종 종무원, 포교원,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불교진흥원, 조계사

참가문의 : 대한불교 청년회 02-738-1920 / 조계사 청년회 02-735-3724

=======================================================================

우리 홈페이지의 상단과 우측하단에 제29차 \'전국불교 청년대회\' 개최와 관련하여 안내 및 홍보 동영상 등이 링크되어 있으니, 회원님들께서는 모쪼록 많은 관심과 홍보를 부탁 드리며, 크고 작은 행사로 심신이 불편하시겠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 회원분들이 함께하여 큰 행사를 여여하게 진행하였으면 감사하겠습니다.

PS. 전국불교 청년대회 준비를 위한 회의가 매주 목요일 불교대학 2층 강의실에서 오후 7시 30분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일반 법우님도 동참이 가능하오니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사)대한불교청년회 직할 조계사청년회 제23대 전반기 사무처.





===================대한불교 청년회 역사=====================

우리나라의 불교는 1600여 년의 장구한 생명력을 가지며 민족사의 줄기마다 그 영욕을 함께 하며 깊게 뿌리 내려 왔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사상과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어 왔으며 숱한 국난을 함께 극복하며 역사의 창달에도 지대한 역할을 해 나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사의 근·현대 이후 세계사의 큰 조류 속에서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분단 반세기를 청산하기 위하여 힘껏 복무하여야 할 이 땅 불교의 큰 화두 속에 오늘날 우리 불교청년들은 보다 큰 역사적 사명과 각오를 새로이 하여야 할 때이다. 이에 우리의 모습인 불교청년을 고민하고 그 역사와 전통을 돌이켜 봄으로써 우리 신행의 모습을 바로잡고 그 실천의 의미와 지향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유구한 우리 불교역사 속에서 불교청년이란 이름으로 나서게 되었던 것은 일제 강점시기인 1920년 6월 20일이다. 만해 한용운 스님을 위시로 하는 청년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불교를 통한 민족의 각성, 조선의 독립\'\'과 조선불교를 일제에 기속하려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조선불교 청년회\"를 창립함으로써 비로소 그 시작을 열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1909년 한일합방의 강제조약 이후 총칼을 앞세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거족적인 3.1 독립운동을 거쳐 전 민족적인 항일 민족 해방운동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또한 불교 내적으로는 일제의 조선불교 예속화 정책이 완비되고 조선의 모든 사찰이 \'\'사찰령\'\'의 강압적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역사 의식의 무지로부터 기득권에 연연하던 매불, 매국 스님들이 일본불교와 야합하여 민족전래불교의 기풍과 전통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내외적 수난과 억압에 대항하고 불교를 바로잡기 위하여 조선불교 청년회는 1921년 결성된 \'\'불교유신회\'\'와 연대하여 친일 매국 승려로 변질되어버린 31본사 주지들에게 전면 대항하는 등 불교를 바로잡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다하게 된다.

특히 1921년에는 매불, 매국승려로 대표적 지탄을 받아오던 \'\'강대련\'\' 승려를 축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20년대 문화정책이라는 일제의 술책으로 전 민족적 항일 운동은 분열과 변질의 기로 위에 갈등을 겪게 되었으며 이의 극복을 위해 1927년 전 민족적 통일 전선체인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이에 조응하여 조선불교청년회는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기존의 스님 중심의 활동에서 재가청년으로 확대함으로써 신간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으며 대표인 만해스님은 신간회의 경성(서울) 지회장을 맡아 항일 운동을 지도하게 된다. 또한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의 조직개편 뒤 \'\'불교 여자 청년회\'\'를 창립하여 신간회의 자매단체인 \'\'근우회\'\'에 가입 활동함으로써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30년대 일제는 대대적인 만주 침공을 자행하면서 조선에 대한 문화정치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국내에 애국애족 단체 및 역량에 대해 무자비한 침탈을 감행하였으며 이에 국내 모든 단체는 해체 및 파괴를 당하게 된다. 따라서 국내 모든 항일 운동은 지하(비밀 조직화)로 잠복하게 되며 불교계 역시 비밀결사 조직인 卍당을 조직하고 만해스님을 당수로 추대하여 새로운 활동 준비에 들어간다. 이에 조선불교청년동맹은 외부적 표현 단체로 卍당의 지도 아래 1932년에는 비밀당원인 김상호님을 추대한 뒤 항일과 불교 혁신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날로 강고해지는 일제의 야수적 탄압 속에서 1938년 김법린 등 卍당의 대표적 당원들이 검거됨으로써 우리나라 불교청년 활동의 시작은 쓰라린 패배의식 속에서 1945년 조국해방의 날까지 실질적 활동이 중단된다.
(한편 우리나라 불청활동의 첫발을 내딛게 한 만해스님은 조국해방을 1년여 앞둔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열망하시던 조선독립을 못 보신 채 성북동 심우장에서 열반하셨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갖은 역경 속에서도 항일 조국 해방 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패망과 함께 조국 해방을 쟁취한다. 그러나 또 다른 외세의 간섭과 침략에 의하여 친일 잔재의 청산과 자주 독립 국가의 건설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루지 못하고 분단과 대결의 역사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남쪽의 경우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이 땅에 친미 기독교 문화가 본격적으로 이식된다.
(일례로 미군정은 당시 전체 인구 중 40만명에 불과하던 기독교도를 위하여 크리스마스를 국정 공휴일로 정하였다. 이에 비해 1600여년 이상을 민족과 함께 해 온 불교의 \'\'부처님 오신날\'\'은 1975년이 되어서야 한 불자 변호사의 끈질긴 법적 투쟁과 불교도들의 열망, 정치적 조건 등으로 국정 공휴일이 되었다.)

해방 직후 우리 불교계는 일제 식민잔재의 청산과 교단의 혁신, 불교의 대중화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주화라는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었으며 아울러 외세와 민족 분열주의자(친일파)들의 음모에 맞서 조국분단을 저지하고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의 건설이라는 전민족적인 과제에 부응할 것을 요청받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당시 불교계는 수많은 단체들을 결성하여 불교혁신과 자주 독립국가 건설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8.15 해방시기 불교계는 주로 기성 종단내의 친일 매국승려 청산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었고 이와 함께 \'\'조선불교청년동맹\'\'과 \'\'조선불교 혁신회\'\' 등이 재결성 및 창립되어 불교 대중화를 통한 일제 잔재의 청산과 불교의 자주적 발전을 위한 토대 형성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불교의 정치조직으로서 청년스님들의 \'\'조선불교청년당\'\'과 불교청년 학생들의 \'\'조선불교 학생동맹\'\'도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계의 자주적 노력은 미군정과 궁지에 몰린 친일불교파들로부터 \'\'좌익\'\'으로 매도되어 대대적인 탄압을 받는다. 이에 불교계의 각종 단체들은 지도조직으로 \'\'불교혁신 총동맹\'\'과 대중단체로서 \'\'전국 불교도 총연맹\'\'을 결성하여 힘을 결집하고 불교혁신과 대중화를 위한 노력에 매진하게 된다.

더불어 1948년 4월 김구, 김규식 등이 좌우합작을 통한 민족 대단결의 자주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주도했던 \'\'남북 전 조선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가하는 등 힘찬 노력을 경주한다. 그러나 분단이 고착화되고 불교 혁신세력은 친일파와 결탁한 사대주의자들과 군정의 야수적인 탄압으로 무너져 갔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한내의 혁신 역량들과 함께 대량 학살, 검거, 투옥의 과정에서 불교 혁신과 중흥은 한낱 역사 속의 꿈으로 사라져 갔고 불교도들의 가슴 속 응어리와 함께 깊은 피해 의식으로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혹독했던 과정에서 1948년 11월 11일 조선불교청년회를 재창립하고 초대회장에 김법린 님, 52년에 2대 유진학 님, 54년에 3대 반재현 님이 회장직을 맡으며 현재 대한불교청년회의 족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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