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p Context::set('xe_version', __ZBXE_VERSION__);?>

경전읽기
2012.12.19 03:19

대보적경(大寶積經)

조회 수 1817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大寶積經)은 대승 불교의 심묘(深妙)한 법보를 담고 있는 여러 경들을 한데 묶어 놓은 경이다.12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唐) 시대(A.D. 706∼713) 보리류지(菩提流志)가 번역. [범어] Mah ratnak a-s tra라 함. [약칭] 보적경(寶積經).

전체 49회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회마다 별도의 경들로서 각각 독립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대승의 법보(法寶)를 담고 있는 여러 경들을 한데 모아서 편찬하였기 때문에 각각에 담긴 사상적 배경도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제5회의 경우에는 정토(淨土) 사상을, 제46회의 경우에는 반야(般若) 사상을, 제2, 3, 7, 11, 24회의 경우에는 밀교(密敎) 사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총 49회로 이루어져 있는 본문은 매 회마다 독립적인 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총 49개의 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품수는 대략 77품에 이른다. 또한 각각의 회마다 별도의 이역본들이 다양하게 성립되어 있다. 보리류지가 본 경을 편찬할 때 이미 축법호를 비롯한 여러 고승들이 번역해 놓은 23종의 경은 그대로 포함시켰으며, 번역본이 있었으나 다시 번역한 경이 15종이며, 처음 번역한 것이 11종이었다고 전한다.

제1 삼율의회(三律儀會)의 이역본으로서는 북량(北?) 때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대방광삼계경(大放廣三戒經)이 있다. 본 회에서는 신(身), 구(口), 의(意), 세 가지에 따른 계율을 주제로 한다. 비구와 보살들은 마땅히 계율을 지킴으로써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2 무변장엄회(無邊莊嚴會)에서는 갖가지 다라니(陀羅尼)와 부처님의 이름을 외우는 공덕에 대해서 말한다.

제3 밀적금강역사회(密迹金剛力士會)의 이역본에는 북송(北宋) 때 법호(法護)가 번역한 여래불사의비밀대승경(如來不思議秘密大乘經)이 있다. 본 회에서는 밀적 금강 역사가 불보살의 뛰어남을 설명한다. 그 밖에 밀적 금강 역사의 전생 인연을 비롯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 이야기 및 밀적 금강 역사가 수기받는 이야기 등이 들어 있다.

제4 정거천자회(淨居天子會)에서는 정거천(淨居天)의 천신이 등장하여 부처님에게 보살의 여러 수행 단계를 묻고 그에 대해서 부처님이 설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제5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의 이역본으로서 불설무량청정평등각경(佛說無量淸淨平等覺經),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도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불설대승무량수장엄경(佛說大乘無量壽莊嚴經), 불설대아미타경(佛說大阿彌陀經) 등이 있다. 본 회의 내용은 일명 아미타불이라 하는 무량수 여래의 성불 인연과 무량수 여래의 세계를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무량수 여래의 이름을 외우면 서방 극락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는 아미타 신앙의 근거가 되는 부분이다.

제6 부동여래회(不動如來會)의 이역본으로서 후한 때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아촉불국경(阿 佛國經)이 있다. 본 회에서는 동쪽에 있는 극락 세계인 묘희 세계의 부동 여래가 오랜 수행 끝에 부처가 된 인연을 말한다.

제7 피갑장엄회(被甲莊嚴會)에서는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굳세고 견고한 마음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8 법계체성무분별회(法界體性無分別會)에서는 세상 모든 것의 본래 체성(體性)은 분별할 수 없는 공(空)에 불과한 것임을 말한다.

제9 대승십법회(大乘十法會)의 이역본으로서 양(梁) 시대 때 승가바라(僧伽婆羅)가 번역한 대승십법경(大乘十法經)이 있다. 여기서는 대승 보살이 닦아야 할 열 가지 법을 설명한다.

제10 문수사리보문회(文殊師利普門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보문품경(普門品經)이 있다. 문수사리 보살이 등장하여 부처님에게 깨달음에 대해서 묻자 부처님은 선정 삼매를 통해서 공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제11 출현광명회(出現光明會)에서는 부처님이 월광 보살에게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지혜를 갖게 된 연유와 그 지혜의 힘이 얼마나 큰지 설명하고 있다.

제12 보살장회(菩薩藏會)에서는 6바라밀을 중심으로 하여 대승 보살이 수행해야 할 불도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13 불위아난설처태회(佛爲阿難說處胎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불설포태경(佛說胞胎經)이 있다. 본 회에서는 부처님이 아난에게 수태 과정부터 태아의 성장, 출생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제14 불설입태장회(佛說入胎藏會)에서는 부처님이 여자의 수태에 대해서 설명한다. 특히 이 설교를 통해서 난다를 교화시킨 인연 이야기도 함께 들어 있다.

제15 문수사리수기회(文殊師利授記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때 축법호가 번역한 문수사리불토엄정경과 당(唐) 시대 때 불공(不空)이 번역한 대성문수사리보살불찰공덕장엄경이 있다. 본 회는 문수사리가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게 된 인연 이야기이다.

제16 보살견실회(菩薩見實會)의 이역본으로서 북량(北?) 때 일칭(日稱) 등이 번역한 부자합집경(父子合集經) 등이 있다. 본 회에서는 대승 보살들이 불법의 참된 이치를 깨닫고 마침내 부처가 되는 수기를 받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제17 부루나회(富樓那會)에서는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설법 제일로 불렸던 부루나의 인연 이야기를 중심으로 보살이 닦아야 할 수행 지침을 설명한다.

제18 호국보살회(護國菩薩會)의 이역본으로서 북송(北宋) 때 시호(施護)가 번역한 불설호국장자소문대승경이 있다. 여기서는 호국 보살을 주인공으로 하여 불법을 깨닫고 수행에 힘써 불도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제19 욱가장자회(郁伽長者會)의 이역본으로서 후한(後漢) 때 안현(安玄)이 번역한 법경경(法鏡經)과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욱가라월문보살행경이 있다. 여기서는 재가 보살과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과 행법들을 설명한다.

제20 무진복장회(無盡伏藏會)에서는 세상 모든 법의 무차별상(無差別相)에 대해서 설명하고 보살은 중생들이 온갖 번뇌를 떨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21 수환사발다라기회(授幻師跋陀羅記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불설환사인현경이 있다. 발다라라는 환술사(幻術士)가 부처님의 교화를 통해서 마침내 수기를 받게 되었다는 인연 이야기이다.

제22 대신변회(大神變會)에서는 부처님의 뛰어난 신통력과 보살의 능력을 설명하고 누구든지 공의 이치를 터득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23 마하가섭회(摩詞迦葉會)에서는 부처님이 입멸한 뒤에 보살이 어떻게 불도를 닦아야 하는지 설명한다.

제24 우파리회(優波離會)의 이역본으로서 동진(東晋) 시대 때 번역된 불설결정비니경과 당(唐) 시대 때 불공(不空)이 번역한 불설삼십오불명예참문이 있다. 여기서는 보살이 계율을 어기는 이유와 죄를 참회하는 방법, 대승 계율의 특징 등을 설명한다.

제25 발승지요회(發勝志樂會)의 이역본으로서 수(隋) 시대 때 사나굴다가 번역한 발각정심경이 있다.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바른 뜻을 세우고 불도를 닦는 보살은 마침내 극락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제26 선비보살회(善臂菩薩會)에서는 보살이 갖추어야 할 6바라밀의 수행에 대해서 말한다.

제27 선순보살회(善順菩薩會)의 이역본으로서 위(魏) 시대 때 백연(白延)이 번역한 불설수뢰경(佛說須賴經)과 전량(前?) 시대 때 지시륜(支施崙)이 번역한 불설수뢰경이 있다. 선순 보살의 설법으로 듣고 파사닉왕(波斯匿王)이 마침내 불법에 귀의하게 된 인연을 말한다.

제28 근수장자회(勤授長者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백법조(白法祖)가 번역한 불설보살수행경(佛說菩薩修行經)과 북송(北宋) 때 시호(施護) 등이 번역한 불설무외수소문대승경(佛說無畏授所問大乘經)이 있다. 부유한 장자의 신분으로도 탐욕심을 버리고 불도를 잘 닦는다면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제29 우다연왕회(優陀延王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법거(法炬)가 번역한 불설우전왕경(佛說優塡王經)과 북송(北宋) 때 법천(法天)이 번역한 불설대승일자왕소문경(佛說大乘日子王所問經)이 있다. 우다연왕과 그의 두 부인의 일화를 통해서 색욕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제30 묘혜동녀회(妙慧童女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불설수마제보살경(K-39), 후진(後秦) 때 구마라집이 번역한 불설수마제보살경(T-335), 당(唐) 시대 때 보리류지가 번역한 수마제경(K-36) 등이 있다. 본 회에서는 어린 묘혜 동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불도 수행에는 남녀 노소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제31 항하상우바이회(恒河上優婆夷會)에서는 부처님과 여자 신도 사이의 문답을 통해서 대승 불법을 설하고 있다.

제32 무외덕보살회(無畏德菩薩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불설아사세왕녀아술달보살경이 있다. 본 회에서는 대승과 소승을 대비하여 대승 불교의 우월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33 무구시보살응변회(無垢施菩薩應辯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불설이구시녀경과 동위(東魏) 시대 때 반야류지가 번역한 득무구녀경이 있다. 무구시 보살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여러 가지 대승 불법에 대해서 문답한다.

제34 공덕보화부보살회(功德寶華敷菩薩會)의 이역본으로서 보리류지가 번역한 문수사리소설불사의불경계경이 있다. 공덕보화부 보살과 부처님 사이의 문답을 통해서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지니는 공덕이 얼마나 큰지 설명한다.

제35 선덕천자회(善德天子會)에서는 부처님이 깨달음의 경지란 일체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깨달음을 성취한 불보살의 능력을 말하고 있다.

제36 선주의천자회(善住意天子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불설여환삼매경과 북위(北魏) 시대 때 비목지선(毘目智仙) 등이 번역한 성선주의천자소문경(聖善住意天子所問經)이 있다. 선주의 천자와 문수 보살의 문답을 통해서 대승 불법을 수행하는 보살의 위신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말하고 있다.

제37 아사세왕자회(阿 世王子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불설태자쇄호경과 서진(西晋) 시대 때 번역된 불설태자화휴경이 있다. 부처님이 아사세왕의 왕자에게 불도를 닦으면 현세와 내세에 좋은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을 요지로 하여 보살 수행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38 대승방편회(大乘方便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혜상보살문대선권경과 북송(北宋) 때 시호(施護)가 번역한 불설대방광선교방편경이 있다. 대승 보살이 갖가지 방편으로써 중생들을 불법으로 이끄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제39 현호장자회(賢護長者會)의 이역본으로서 당(唐) 시대 때 지바가라(地婆訶羅)가 번역한 대승현식경이 있다. 현호 장자와 부처님 사이의 문답을 통해서 중생의 식(識)에 대해 설명한다. 이것은 원래 사나굴다가 번역한 이식경(移識經)을 현호장자회로서 대보적경에 편입한 것이다.

제40 정신동녀회(淨信童女會)에서는 여자의 몸으로 닦아야 할 불도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41 미륵보살문팔법회(彌勒菩薩問八法會)의 이역본으로서 후한(後漢) 시대 때 안세고가 번역한 불설대승방등요혜경(K-50)이 있다. 미륵 보살이 부처님에게 깨달음을 얻는 방도를 묻자, 부처님은 보살이 닦아야 할 여덟 가지 법과 그 공덕을 설명해 주고 있다. 보살의 8법이란 깊은 믿음과 아낌없이 베푸는 마음, 자비로운 마음 등이다.



제42 미륵보살소문회(彌勒菩薩所問會)의 이역본으로서 서진(西晋) 시대 때 축법호가 번역한 미륵보살소문본원경(K-51)이 있다. 보살이 닦아야 할 열 가지 불도를 설명한다. 예컨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서원을 세울 것, 마음의 동요가 없을 것, 모든 것을 분별하지 말 것, 계율을 지킬 것 등이다.

제43 보명보살회(普明菩薩會)의 이역본으로서 진(晋) 시대 때 번역된 불설마하연보엄경이 있다. 부처님이 가섭과 보명 보살에게 설법한 내용으로서 보살이 닦아야 할 행법(行法)이 주제이다.

제44 보량취회(寶梁聚會)에서는 비구들이 지켜야 할 계율 등 수행도에 대해서 말한다.

제45 무진혜보살회(無盡慧菩薩會)의 이역본으로서 북송(北宋) 시대 때 시호(施護)가 번역한 대가섭문대보적정법경(大迦葉問大寶積正法經)이 있다. 부처님과 무진혜 보살 사이의 문답을 통해서 깨달음을 이루는 마음과 그 마음을 지니기 위해서 닦아야 할 불도에 대해서 말한다.

제46 문수사리설반야회(文殊師利說般若會)의 이역본으로서 양(梁) 시대의 만다라선(曼陀羅仙)이 번역한 문수사리소설마하반야바라밀경, 같은 시대의 승가바라(僧伽婆羅)가 번역한 문수사리소설반야바라밀경, 당(唐) 시대의 현장(玄 )이 번역한 대반야경 제7 만수실리분이 있다. 보살이 닦아야 할 반야 바라밀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47 보계보살회(寶 菩薩會)의 이역본으로 북량(北?) 시대 때 담무참이 번역한 대방등대집경보계보살품이 있다. 부처님이 보계 보살의 청을 받고 나서 보살이 닦아야 할 네 가지 수행법 및 37도품 등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48 승만부인회(勝 夫人會)의 이역본으로서 유송(劉宋) 시대 때 구나발다라(求那跋陀羅)가 번역한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이 있다. 승만 부인이 대승 불교에 대해서 설명하는 가운데 오로지 1승 법인 대승만이 참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49 광박선인회(廣博仙人會)의 이역본으로서 북위(北魏) 시대 때 반야류지가 번역한 비야사문경이 있다. 브라만교를 따르던 광박 선인을 비롯하여 여러 브라만들이 불법에 귀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상과 같이 전체 49회 가운데 열거되는 품은 총 77개 품에 이르지만 실제로 품이 나오는 경은 제2 무변장엄회를 비롯한 8개 회에 국한된다. 그 나머지 회에 나오는 경들은 품의 구별이 없는 경들이다. 총 49개의 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는 대승 보살이 닦아야 할 여러 가지 수행법을 통해서 대승의 불법을 터득하여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 제1권

대당(大唐) 삼장법사 보리류지(菩提流志) 한역 - 송성수 번역

 

1. 삼률의회(三律儀會)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시었다.

그 산은 높이 솟아 장엄하여 볼 만하고 온갖 것을 지니고 있음이 마치 대지(大地)와 같았다.

여러 가지 꽃·풀·나무들이 무성하며 그 가운데 하늘·용·야차·비사사·긴 나라 등이 항상 머물러 놓고, 또는 사자·호랑이·기린·코끼리·말·곰 등의 갖가지 짐승과 공작·앵무·팔가새·왜가리·오리·기러기·원앙·공명조(共命鳥)와 같은 날짐승들이 깃들고 있었다.

이런 중생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탐욕내고 성내며 잡아먹는 일이 없고, 서로 친하고 사랑하기를 마치 어미와 자식 사이처럼 하였다.

이 산은 갖가지 나무가 많아서 숲은 우거지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였다. 그것들은 천목향(天木香) 나무와 암마라(菴摩羅)·견숙가(甄叔迦)·니구타(尼俱陀)·전단향 나무 등이었다. 또는 물과 뭍의 온갖 꽃이 있으니 아제목다꽃[阿提目多華]·첨파향꽃[瞻婆香華]·파타라꽃[波吒羅華]·파사가꽃[波師迦華]·소만나꽃[蘇曼那華]·유제가꽃[由提迦華]·우발라꽃[優鉢羅香華]·파두마꽃[波頭摩華]·구물두꽃[俱物頭華]·분타리꽃[芬陀利華]·가라사꽃[迦羅娑華]·마하가라사꽃[摩訶迦羅娑華] 등 온갖 이름난 꽃이 온 산을 아름답게 꾸미었다.

이 산은 밤에는 늘 큰 구름을 일으켜, 가벼운 우레와 가랑비를 산꼭대기로부터 차츰 온 산에 두루 내리며, 여덟공덕수(功德水)가 흘러 내려 두루 번졌다가 소젖짤 만한 동안에 활짝 개이고는 시원한 바람이 사르르 불어와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하였다.

이 산중에 머물러 사는 중생과 온갖 풀과 나무는 윤택하고 빛나기가 묘한 꽃꾸러미와 같았으며, 비가 내린 뒤에는 빛깔이 갑절이나 더 선명하였다.

이 산중의 여러 가지 부드러운 풀은 바람에 쓸린 듯이 오른쪽으로 누웠으며, 빛깔과 향기를 갖추었고, 푸르고 빛남이 공작의 털과 같고 그 향기는 파사가꽃[婆師迦華] 같았으며, 그것이 몸에 부딪치면 도라(兜羅)솜과 같았다. 가지·잎·꽃·과일 등이 번성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이 산의 흙은 부드럽고 연하여 맨발로 걸어도 다치지 않으며, 발을 디디면 네 발가락이 묻히고 발을 들면 도로 솟아 원상으로 되었다.

그 가운데 못과 늪[池沼]이 많은데 맑고 시원한 물이 가득 차 있으며, 푸른 빛·누런 빛·붉은 빛·흰빛·보라빛·파리빛·금빛·불빛 등의 갖가지 연꽃이 피었는데, 크기가 수레바퀴 같았으며, 향기는 한 유순(由旬)이나 풍기었다.

이 산꼭대기에 크고 묘한 보배 연화좌(蓮花座)가 있었는데, 무항복보제청금강(無降伏寶帝靑金剛)으로 그 줄기를 삼았고, 큼 폐유리(吠琉璃)로 보배 방울을 삼았으며, 섬부단금(贍部檀金)으로 넓고 깨끗한 잎이 되었고, 순시청정전단(順時淸淨旃檀

)으로 그 받침을 삼고, 마노보왕(瑪瑙寶王)으로 수염이 되었으니, 그 꽃의 길이와 넓이는 마치 큰 바다와 같았다.

십억 아수라왕이 항상 받들어 가졌고, 십억 잡색 마니보배 그물을 그 위에 덮었으며, 십억 용왕이 묘한 향물의 비를 뿌리고, 십억 금시조왕(金翅鳥王)이 입으로 무늬 놓은 비단을 물었다. 또 십억 긴나라왕이 지성으로 우러러보고, 십억 마후라가왕이 공손히 굽어보며, 십억 건달바왕이 노래하고 찬탄하며, 십억 백·천 천제(天帝)들이 상서로운 구름을 일으켜 가루향·사르는 향·의복·꽃꾸러미·당기[幢]·번기[幡]·보배 일산을 내렸다. 십억 범왕(梵王)이 몸을 굽혀 공경하고, 십억 정거천(淨居天)이 합장 정례하며, 십억 전륜왕(轉輪王)이 칠보로 시중하여 그곳에 이르렀고, 십억 해왕(海王)이 큰 바다에서 나와 경례하며, 십억 광명 마니보배로써 조명(照明)을 삼고, 십억 정복 마니보주(淨福摩尼寶珠)로 장엄하였으며, 십억 변조(遍照) 마니보배로 무구장(無垢藏)을 삼고, 십억 묘광(妙光) 마니보배로 큰 조명(照明)을 삼았다. 십억 잡색 마니장보배로 변조(遍照)를 삼고, 섬부당(贍部幢)보배로 받침[善安持]을 삼으며, 십억 금강사자 마니보배로 최승 장엄을 삼고, 십억 일장(日藏) 마니보배로 사이사이 섞바꾸어 채워서 장엄하게 꾸몄으며, 십억 부사의 마니보배는 갖가지 빛을 내어 묘한 장엄을 이루고, 십억 여의보배는 무진 장엄을 내었었다.

이 큰 연꽃은 여래의 세간을 뛰어나는 착한 뿌리[善根]로부터 난 것이요, 보살이 마음으로 사랑하며 여러 곳에 두루 나타나니, 그것은 환술[幻]과 같은 법으로부터 생긴 선법업(善法業)에서 난 것이었다. 다툼이 없는 법성 이취(法性理趣)로써 꿈과 같은 법성을 장엄하여 무생법인(無生法印)으로 무착(無着)의 이치에 따라 시방 일체 법계(法界)에 가득하니, 이것은 부처님 경계에 순응하는 공덕으로 이룬 것이므로, 설사 한량없는 아승지겁에 그 색상(色相)의 공덕 장엄을 찬탄할지라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세존이 그 연꽃 위에 가부좌를 맺고 앉아, 큰 비구의 무리 팔천인과 함께 계시었다. 그들은 존자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존자 아습파씨다(阿濕婆氏多)·존자 마사파(摩史波)·마하남(摩訶男)·우다이(優陀夷)·야사(耶舍)·부나(富那)·무구(無垢)·선비(善臂)·교범바제(憍梵鉢提)·우루빈나 가섭(優樓頻螺迦葉)·나제 가섭(那提迦葉)·마하 가섭(摩訶迦葉)·사리불(舍利弗)·대목련(大目連)·아나율(阿那律)·수보리(須菩提)·이파다(離波多)·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우바리(優波離)·라후라(羅睺羅)·난타(難陀) 등이 상수(上首)가 되었는데, 다 자성(自性)의 진리를 깨닫고 몸으로 실제(實際)를 증득하여 법의 본성(本性)에 들어가 모든 번뇌의 바다를 건넜고, 여래 허공의 행을 밟아서 능히 번뇌의 결박을 끊어 버리고, 모든 감관을 조복(調伏)하여 머무를 것 없는 데 머물러서, 비고 고요함을 행하여 길이 의혹을 끊었었다. 부처님의 지혜 바다인 거룩한 믿음의 도 가운데 들어가서 세간을 이익케 하되, 청하지도 않은 벗이 되어 항상 모든 중생을 보호하며, 모든 중생에게 버리지 못할 벗이 되며, 불법을 통달하여 행하는 바 경계에 성인의 법을 수호하여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받아 지니기를 서원하였으며, 현재는 여래의 종성(種性)에 태어나 온갖 지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혜에 잘 나아갔었다.

다시 큰 보살 무리 팔천인과 함께 계시니, 보현보살과 문수사리보살 등이 상수가 되었다. 그들은 최상지지(最上智智)보살·최상보지(最上寶智)보살·일체어언지(一切語言智)보살·무착지(無着智)보살·화상지(花上智)보살·일상지(日上智)보살·월상지(月上智)보살·무구상지(無垢上智)보살·금강지(金剛智)보살·원진지(遠塵智)보살·광당(光幢)보살·묘고당(妙高幢)보살·무애당(無碍幢)보살·화당(華幢)보살·정당(淨幢)보살·일당(日幢)보살·단엄당(端嚴幢)보살·이구당(離垢幢)보살·변조당(遍照幢)보살·다라니위덕(多羅尼威德)보살·보위덕(寶威德)보살·대위덕(大威 德)보살·금강지위덕(金剛智威德)보살·무구위덕(無垢威德)보살·일위덕(日威德)보살·월위덕(月威德)보살·복산위덕(福山威德)보살·지조위덕(智照威德)보살·보승위덕(普勝威德)보살·지장(地藏)보살·허공장(虛空藏)보살·연화장(蓮花藏)보살·보장(寶藏)보살·일장(日藏)보살·청정공덕장(淸淨功德藏)보살·법해장(法海藏)보살·변조장(遍照藏)보살·제장(齊藏)보살·승련화장(勝蓮華藏)보살·일안(日眼)보살·정안(淨眼)보살·무구안(無垢眼)보살·무애안(無碍眼)보살·보명안(普明眼)보살·선리안(善利眼)보살·금강안(金剛眼)보살·보안(寶眼)보살·허공안(虛空眼)보살·보안(普眼)보살·천관(天冠)보살·조법계마니관(照法界摩尼冠)보살·묘보리마니관(妙菩提摩尼冠)보살·조시방관(照十方冠)보살·출현일체불장관(出現一切佛藏冠)보살·초일체세간관(超一切世間冠)보살·보조관(普照冠)보살·무영폐관(無映蔽冠)보살·집지일체여래사자좌관(執持一切如來師子座冠)보살·보조법계허공관(普照法界虛空冠)보살·범왕계(梵王髻)보살·용왕계(龍王髻)보살·일체불변화영상계(一切佛變化影像髻)보살·묘보리계(妙菩提髻)보살·일체음성마니왕계(一切音聲摩尼王髻)보살·방일체여래원광마니보뢰성계(放一切如來圓光摩尼寶雷聲髻)보살·일체허공무차별표시마니보망계(一切虛空無差別表示摩尼寶網髻)보살·일체여래법륜성계(一切如來法輪聲髻)보살·일체삼세명륜성계(一切三世名輪聲髻)보살·대광(大光)보살·무구광(無垢光)보살·보광(寶光)보살·이진광(離塵光)보살·법광(法光)보살·적정광(寂靜光)보살·일광(日光)보살· 신변광(神變光)보살·천광(天光)보살·보광(寶光)보살·지광(智光)보살·법광(法光)보살·신통광(神通光)보살·광조(光照)보살·화광(華光)보살·보광(寶光)보살·이진광(離塵光)보살·법광(法光)보살·적정광(寂靜光)보살·일광(日光)보살·신변광(神變光)보살·천광(天光)보살·보광(寶光)보살·지광(智光)보살·법광(法光)보살·신통광(神通光)보살·광조(光照)보살·화광(華光)보살·보광(寶光)보살·각광(覺光)보살·범광(梵光)보살·보조광(普照光)보살·범음(梵音)보살·해음(海音)보살·지후음(地吼音)보살·세간왕음(世間王音)보살·산왕음(山王音)보살·산왕상격음(山王相擊音)보살·변법계음(遍法界音)보살·일체법해뢰음(一切法海雷音)보살·최복제마음(摧伏諸魔音)보살·대비리취운뢰음(大悲理趣雲雷音)보살·변식일체세간고뇌음(遍息一切世間苦惱音)보살·법승통(法勝通)보살·수승통(殊勝通)보살·복수미승용(福須彌勝涌)보살·공덕최승용(功德最勝涌)보살·명문승용(名聞勝涌)보살·보광승용(普光勝涌)보살·대비승용(大悲勝涌)보살·지조승용(智照勝涌)보살·여래종성승용(如來種性勝涌)보살·광덕(光德)보살·승덕(勝德)보살·법용덕(法涌德)보살·변조덕(遍照德)보살·법덕(法德)보살·월덕(月德)보살·허공덕(虛空德)보살·보덕(寶德)보살·실덕(實德)보살·지덕(智德)보살·바라제왕(婆羅帝王)보살·법제왕(法帝王)보살·상제왕(象帝王)보살·범제왕(梵帝王)보살·산제왕(山帝王)보살·중제왕(衆帝王)보살·천제왕(天帝王)보살·적정제왕(寂靜帝王)보살·부동제왕(不動帝王)보살·최승제왕(最勝帝王)보살·보리적정성(菩提寂靜聲)보살·무착성(無着聲)보살·지성(地聲)보살·대해성(大海聲)보살·음성(音聲)보살·조법성(照法聲)보살·허공성(虛空聲)보살·일체성(一體聲)보살·선근뢰성(善根雷聲)보살·발오본원성(發悟本願聲)보살·최일체마군성(摧一切魔軍聲)보살·지수미각(智須彌覺)보살·허공각(虛空覺)보살·청정각(淸淨覺)보살·무애각(無碍覺)보살·개오각(開悟覺)보살·조삼세각(照三世覺)보살·보각(寶覺)보살·광대각(廣大覺)보살·보광각(普光覺)보살·법계이취각(法界理趣覺)보살들이 있는데, 이런 큰 보살 팔천인과 함께 계시었다.

그들은 다 보현행원(普賢行願)에 머물러서 행하는 바에 집착이 없는 이들이니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득한 까닭이며, 끝없는 몸을 변화하는 이들이니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는 까닭이며, 관계하는 끝없는 경계가 청정한 이들이니 모든 부처님의 신변(神變)을 깨달아 안 까닭이며, 한량없는 곳에 나아가는 이들이니 모든 부처님이 등각(等覺)을 나타내시는 곳에 나아가서 잠깐도 쉼이 없는 까닭이며, 끝없는 광명자(光明者)이니 온갖 법 실상의 바다에서 끝없는 지혜 광명을 얻은 까닭이며, 끝없는 겁(劫)에서 공덕을 연설하기를 다함 없는 이들이니 변재가 청정한 까닭이며, 허공계와 같은 이들이니 지혜로 행하는 경계가 청정한 까닭이며, 의지함이 없는 이들이니 세간이 좋아하는 데를 따라 몸을 나타내어 보이는 까닭이며, 능히 가리움을 여읜 이들이니 중생계가 없는 줄을 깨달아 아는 까닭이며, 허공과 같은 지혜를 지닌 이들이니 광명의 그물을 놓아 법계에 가득한 까닭이며, 근본까지 적정(寂靜)한 이들이니 마음이 적정한 까닭이며, 일체 다라니 종성의 지혜 경계에 이른 이들이며, 삼매에 용맹스러워 두려움이 없는 이들이며, 눈으로 법계 끝을 다한 경계에 머무른 이들이며, 온갖 법에 얻을 것 없는데 머무른 이들이며, 끝없는 지혜 바다에 노니는 이들이며, 지혜의 저 언덕에 건너간 이들이며, 지혜 바라밀을 성취한 이들이며, 지혜 바라밀로 일체 세간 바라밀에 도달한 이들이며, 삼매 저 언덕에 자재를 얻은 이들이었다.

또 오백 비구니와 함께 계시었으니 그 이름은 마하 바사바제(摩訶波闍波提)비구니·구담미(瞿曇彌)비구니·안온(安穩)비구니·우발라꽃(優鉢羅華)비구니·수구담미(瘦瞿曇彌)비구니·야수타라(耶輸陀羅)비구니 등을 상수로 하였다.

또 오백 우바새와 함께 계시었으니 그 이름은 선위덕(善威德)우바새·천위덕(天威德)우바새·혜광(慧光)우바새·명칭위덕(名稱威德)우바새·월환희(月歡喜)우바새·대환희(大歡喜)우바새·라후현우바새·대현(大賢)우바새 등을 상수로 하였다.

또 오백 우바이와 함께 계시었으니 그 이름은 대광(大光)우바이·선광(善光)우바이·선신(善身)우바이·가락신(可樂身)우바이·현덕(賢德)우바이·월광(月光)우바이·광명(光明)우바이·승광(勝光)우바이·선안(善眼)우바이를 상수로 하였다.

그리고 한량없는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등이 둘러싸고 공경하였다. 부처님은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셨는데, 이른바 삼률의품(三律儀品)을 널리 말씀하시니 그것은 일체 여래의 율법(律法)이었다. 일체 보살행을 열어 보이며, 법계를 밝게 비추어 모든 법문에 들어가며, 능히 모든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고, 모든 삿된 이름을 꺾고, 마군을 항복받아 중생계로 하여금 마음에 환희를 얻게 하며, 유정(有情)의 번뇌 숲을 열어 밝히어 중생의 뜻을 따라 선설(宣說)하시며, 중생의 모든 감관을 열어 보이고 비추어 그들을 좋은 데로 나아가게 하였다.

그때에 존자 마하 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어깨에 가사를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중생이 부처님 법의 힘과 두려움 없는 것을 구하려면 어떤 법을 받아 지녀서 수행하며, 어떤 법을 받아 지녀서 모든 부처님 도를 길러 성숙하며, 어떤 법을 받아 지녀 모든 공덕을 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 불퇴전을 얻게 되오리까?”

부처님은 마하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가섭아, 네가 이제 물은 것은 안온케 할 바가 많도다. 세간을 불쌍히 여기고 인간과 천상을 이롭게 하고 안락케 하기 위하여 그런 일을 물었으니, 너는 이제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할지니라. 나는 너를 위해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마하 가섭과 대중들은 분부를 받고 듣고 있었다.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중생이 부처의 지혜력과 두려움 없음을 구하려면 적은 법도 얻을 것이 있다고 하지 말 것이며, 의지하고 기대임 없이 모든 착한 뿌리[善根]를 심을지니라.

가섭아,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 얻을 것이 있는 자는 곧 상(想)에 집착하게 되느니라. 만일 상에 집착하면 불법 외에 유위상(有爲想)을 일으키게 되며, 유위(有爲) 외에 무위상(無爲想)을 일으키게 되며, 유위(有爲) 외에 무위상(無爲想)을 일으키어 곧 불법에 상의 집착함을 내며, 또한 알음알이의 집착을 일으키게 되며, 유위(有爲) 외에 무위상(無爲想)을 일으키게 되며, 유위(有爲) 외에 무위상(無爲想)을 일으키어 곧 불법에 상의 집착함을 내며, 또한 알음알이의 집착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알음알이의 집착을 일으킬 때에는 불법 가운데 굳게 주착(住着)되어 버리지 않느니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위없는 불도로 향해 나아간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불법에 상을 일으키고 '나[我]'에 집착함으로써 부지런히 닦음을 삼나니 곧 '아집(我執)'과 자주 서로 응하는 까닭에 분별과 분별하는 것을 놓아버리지 못하느니라.

이 분별과 분별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곧 해치는 바가 되나니, 만일 해치는 바가 되면 이내 그에 끌려가게 되며, 만일 끌려가게 되면 흘러 구르게 되며, 만일 흘러 구르게 되면 구멍 뚫리게 되고, 구멍 뚫리게 되면 망상이 있게 되고, 망상이 있으면 분별이 있고, 분별이 있으면 망상을 더 늘게 하고, 망상이 늘게 되면 변계(遍計)가 있고, 변계가 있으면 적정(寂靜)을 여의게 되고, 적정을 여의면 따라 좇아 가게 되고, 따라 좇아 가면 몰아남이 있고, 놀아남이 있으면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어떤 것을 잃어버림이라 하는가. 안온을 잃어버림이라 하나니, 어떤 것을 안온이라 하는가 하면, 분별 없는 것을 말함이니라. 만일 잃어버리면 늘 들어가게 되고, 늘 들어가면 친근하게 되고, 친근하면 수면(睡眠:번뇌)이 있게 되고, 수면이 있으면 상속(相續)이 있고, 상속이 있으면 증상속(增相續)이 있고, 증상속이 있으면 변상속(遍相續)이 있고, 변상속이 있으면 말이 미쳐 어지럽고, 말이 미쳐 어지러우면 속이 미혹하게 되고, 속이 미혹하면 근심·걱정하게 되고, 근심·걱정하면 뉘우쳐 한하게 되고, 뉘우쳐 한하면 무명(無明)에 의탁하여 변민의 손해가 되느니라.

이 가운데 적은 법도 의지하고 기댈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망상의 흐름에서 생기는 까닭에 상(想)의 얽힘이 되고, 상의 얽힘에서 상이 상속하므로 상의 얽힘이라 할지언정 실다운 것이 없느니라. 모든 탐욕·분함·성냄·어리석음이 다 허망한 변계의 분별에 분별을 더하며, 계탁(計度)에 계탁을 더할 뿐이니라. 이러므로 저 사람은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히 얻지 못하느니라.

가섭아, 이것을 '애처(愛處)'라 이름하니 어찌하며 애처라 하는가. 정한 법 없는 것을 '애(愛)'라 하나니 애라 한 것을 '애의 처소'라 이름하느니라. 그러나 애가 있다는 것은 다만 굳은 집착으로 말미암음이니, 굳게 집착할 때에는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애착함이니,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집착을 내는 이는 곧 애의 집착, 아애(我愛)의 집착자, 중생애(衆生愛)의 집착자, 선(善과) 불선(不善)의 집착자가 되느니라.

가섭아, 이 사람은 일체 '공(空)'한 법에서 공이 아니라는 분별을 일으키어 '물(物)'이 아닌 것을 물이라 생각하느니라.

어떤 것을 물이라 하는가. 이른바 '보리'로써 물이라 하나니 만일 보리로써 물이라 한다면 저 중생의 '아상(我想)'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니 아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니라.

이 가운데서 생각[想]이란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 가운데서 생각하는 자도 또한 얻지 못할 것이니, 이것을 아상은 진실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아상을 부질 없는 말[增語:增益語]이라 이름한 것이니라.

만일 또 살타(薩埵)를 원만히 함이 있다고 하면 곧 보리를 원만히 한다고 하리니 무엇을 보리라 하는가. 말하자면 원만하다는 것은 마치 요술과 같으니 어떤 것을 요술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대아상자(大我想者)와 대명상자(大命想者)를 말함이니라.

만일 또 생각으로써 생각에 의지한다는 자는 곧 생각 아닌 것으로 생각 아닌 데 의지한다는 것과 같다. 만일 생각 아닌 것으로써 생각 아닌 데 의지한다면 곧 생각이 돌았기 때문에 돌았다는 것과 같다. 만일 돌았기 때문에 돌았다면 곧 일부러 괴로움을 만들어서 괴로움에 따라가는 것과 같다. 만일 괴로움을 만들어 괴로움에 따라간다면, 모든 여래가 다 미쳐 떠들며 돌아 다니는 자라고 말하느니라. 어떤 것을 미쳐 떠들며 돌아 다니는 자라 하는가. 쓸데없이 뜻을 일으킴을 말함이니라. 만일 쓸데없이 뜻을 일으키면 곧 잘난 체하고 잘난 체하면 곧 쓸데없는 언설(言說)이 있고, 만일 언설이 있으면 곧 부질없는 말[增說]이 있고, 부질없는 말이 있으면 여래는 이것을 말쟁이[言說者]며, 말품팔이[敎授者]며, 말만 지닌 자[所持者]라고 말하느니라. 이러므로 모든 법이 다 뜻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생장하느니라. 가섭아, 저 공중에 구름 덩어리가 일어나는 것과 같아서 사방(四方)·사유(四維)·상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여래를 실다운 말을 하는 자(實語者)라고 하느니라. 이 구름 덩어리가 시방(十方)에서 온 것이 아닌 줄 알고 사실과 같이 말하며, 그 뜻대로 말하며, 이치에 맞도록 말하느니라.

구름 덩어리라 함은 덩어리가 아니언만 일부러 덩어리라고 이름한 것이니 어찌하여 구름 덩어리라 하는가. 그것은 본래 각기 다른 부분이 모여 이룩된 형상인 까닭이니라. 어떤 것이 갖가지 다른 형상인가. 그것은 갖가지 형상이 한데 연결되어 큰 덩어리로 나타났으므로 그 가운데 작고 큰 모양을 분별할 수 없느니라.

네가 저 구름 덩어리를 보아라. 광대한 모양[廣大相]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광대한 모양이 아니니라. 만일 생각이 없으면 다만 저 광대한 모양이라고 하는 것도 실로 구름 덩어리가 없는 것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같이 그늘진 곳에 나아가 앉겠는가.' 슬기로운 이는 말하기를 '그늘이란 형상 없는 것이니 어떻게 가서 앉겠느냐?' 그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그늘의 형상을 말한 것이 아니요, 다만 이 그늘진 곳이라고 말하였노라.' 그때에 슬기로운 이가 다시 말하기를 '네가 말한 그늘이란 것이 곧 그늘이 아니니라'고 하느니라.

가섭아, 네가 저 사람을 보아라. 오히려 이렇게 세속을 따라서 능히 깨우쳐 주기를 이와 같이 하도다. 이와 같이 가섭아, 여래는 여실히 모든 법의 진실 이성(眞實理性)을 깨달아 알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獅子吼)를 하느니라.

가섭아, 여래가 법에 수순하여 머무르기를 즐겨하지만 상(想)에 따르지는 않느니라. 모든 중생이 지닌 아상은 여래에 있어서는 이것이 제일의(第一義)가 되나니, 그 까닭은 여래는 이제 이미 저 생각을 알고 일체 중생의 생각이 곧 생각 아님을 아느니라. 이것이 가장 그윽한 비밀의 말이니라.

혹 어리석은 사람이 이 이치를 등지고 여래와 다투려 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상이 나와 다툴지언정 내가 세상과 다투는 것은 아니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세상이라 하느냐? 중생을 말함이니, 왜 중생을 세상이라 하는가. 여래가 이러한 세간을 알기 때문에 중생을 세상이라 하느니라.

저런 어리석은 범부의 견해는 부셔 없애라. 매우 해로운 것이 되느니라. 이것이 그들에게 항상 믿음을 얻어 머무르게 함이니라.

세속을 따라가는 것을 무명이라 하나니, 세속의 캄캄한 데[大闇] 머물러 사는 것을 세상에 머무르는 자라고 하느니라. 만일 세상에 머무르면 탐심이 있게 되고, 탐심이 있으면 진심(瞋心)이 있고, 진심이 있으면 어리석음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으면 부정(不淨)이 있고, 부정하면 서로 엇갈리게 되나니, 누구와 서로 엇갈리게 되느냐 하면 여래와 성문중(聲聞衆)이니라.

만일 여래와 성문중이 서로 엇갈리면 곧 등지게 되고, 서로 등지면 거듭 서로 어그러지고, 서로 어그러지면 세속의 것[有]을 즐기게 되고, 세속의 것을 즐기면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게 되고, 세속의 것을 구하면 자꾸 끝없이 구[遍求]하게 되고, 끝없이 구하면 만족을 얻지 못하며 짓는 것이 많게 되고, 짓는 것이 많으면 곧 삼계(三界) 속에 잠들게[睡眠] 되느니라.

만일 삼계에 잠들게 되면 곧 다른 이도 잠들게 하고, 다른 이도 잠들게 하면 그는 곧 따라 흐르게 되고, 또한 따라 흘러 다니는 자가 되느니라. 따라 흐르고 따라 흘러 다니는 자는 죽음에 나아가게 되고, 죽음에 나아가는 자는 열반에 나아가지 못하느니라.

열반에 나아가지 못하면 못 갈 곳에 이르게 되고, 못 갈 곳에 이르면 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이와 같이 가섭아, 상서롭지 못한법과 성내고 분하게 여기는 독한 마음과 덮어 가리우지 못하는 짓과 서로 응하느니라. 덮어 가리우지 못하면 아상(我相)을 관찰하지 못하고, 관찰하지 못하는 자는 한 덩어리의 생각을 지어서 '나[我]'라든가 '나의 것[我所]'이라는 집착을 녹여 없애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아집(我執)'이라 하는가. 실답지 못한 까닭에 갖가지 생각에 머물러 모든 세업(世業)을 지으며, 이런 사람은 아상에 집착하여 그것이 '나'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의 것'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탐욕이니 이것을 '나의 것'이라 하나니, 모든 욕심 낼 경계에 자기와 어울리며 탐심을 일으켜, 탐착을 낸 뒤에는 능히 금계(禁戒)를 파괴하고, '남의 것'에 좋지 못한 마음을 내어 진심의 덮임으로 말미암아 서로 경멸하며 남의 재물을 제것으로 만들어 애호하니 이것을 '남의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12 / 3476] 쪽

'남의 것'이 있으면 유전(流轉)이 있고, 유전이 있으면 미혹이 있고, 미혹이 있으면 비방이 있고, 비방이 있으면 진에(瞋恚)가 있고, 진에가 있으면 해칠 마음을 먹게 되고, 해칠 마음을 먹으면 마음이 불타게 되고, 마음이 불타면 남을 불사르니, 이와 같은 허물이 다 탐욕으로 말미암느니라.

남녀라는 생각과 목숨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어 이것이 '나의 소유'라고 하나니, 이것을 '나의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런 뜻에서 '나의 것'을 말하는 자는 자기 몸을 반성하여 꾸짖으라.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나'라는 번뇌로서 어리석은 범부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나의 것'이라 말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중생이 이 법을 듣지 못하고 '보리'와 '보살행'을 말하는 것은 올바른 행이 아니니라. 실로 행할 것 없는 것이 '보살행'이니라.

또 가섭아, 만일 모든 보살이 행이 원만하여 이지러짐이 없고 청정하고 매우 청정하며 두루 청정함을 얻었다면 이 사람은 곧 큰 법을 말하리니, 위력이 있고 용맹 정진하는 자라 이름하리라. 그가 말한 법은 허공과 같아, 막히고 걸림이 없으리니, 이치다운 자며, 공덕 있는 자며, 능히 수행하는 자라 하리라. 그는 끝내 저 이치답지 못한 자, 공덕 없는 자, 수행하지 않는 자가 되지 않으리니, 너희들은 마땅히 이 법을 받아 지니되 이 법에 집착을 내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말씀은 제일이 되나니 최상승 중생의 물음을 위하여 최승(最勝)의 법으로 해설함이니라.

어떤 것이 최승의 법이냐 하면, '법이란 생각 없는 것[無法想]'이 바로 그것이니라.

가섭아, 이렇게 보살이 최초의 정계(淨戒)를 갖추어 호지(護持)하여 마음에 잘하는 체하지 말고 무간업(無間業)을 짓지 말지니라.

비구니를 범하지 말며, 또한 속인의 집을 친하고 가까이 말며, 살생(殺生)·도둑질·사음(邪淫)의 행을 멀리 여의며, 거짓말·이간하는 말·추악한 말·잡된 말을 여의며, 탐욕·진에·사견(邪見)을 멀리 여읠지니라.

이미 스스로 시끄럽지 아니하고 또한 남을 시끄럽게 하지 말며, 욕심과 함께 하지 아니하고 또한 욕심을 받지 아니하며, 도박놀이 하지 않고 또한 남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며, 마침내 불남인(不男人:中性)을 친근하지 아니하고, 음녀·과부·처녀의 집에 가지 말며, 남의 아내를 가까이하지 말고, 또


[13 / 3476] 쪽

한 물고기와 새를 잡는 사람이나 사냥꾼·백정 등을 친하지 말지니라.

술 마시는 사람과 그 손을 잡고 더불어 싸우거나 다투지도 말라. 이런 모든 일을 여의기를 사나운 개와 백정의 무리를 피하듯 하라.

사랑하는 마음에 머물러서 저 일체 멀리 여읠 것을 한 생각 나쁜 마음이라도 일으키지 말지니라.

마땅히 여읠 것이 이십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이십가지냐?

말하자면 여인을 여의라. 또한 그들과 시시닥거리어 희롱하고 잡된 말로 논란하거나 다투고 송사하지 말지니라.

부모와 불(佛)·법(法)·승(僧)에 공경하지 않는 일을 여읠지니라.

만일 여인이 이십명이 되지 않거든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지 말지니라. 남자가 있는 곳은 제외하느니라.

끝내 비구니가 설법하는 처소에 나아가지 말지니라.

모든 비구니에게 안부를 묻지 말지니라.

여인과 더불어 편지를 주고받거나 혹은 여인을 시켜 글을 남에게 전하지 말지니라. 서신은 남자에게 부칠 것이요 여인에게 부치지 말지니라.

일체 친족의 별청(別請)은 끝내 받지 말지니라.

욕심으로써 잠깐 동안이라도 여인 앞에 머물러 있지 말지니라.

또한 제 처소를 떠나서 은밀한 곳에 가서 여인과 더불어 같이 이야기하지 말지니라.

비구니를 좋아하여 같이 다니지 말지니라.

만일 비구니가 의복을 베풀어 주거든 받아 쓰지 말지니라. 다만 사부중에 설법할 때는 제외하느니라. 설법을 위하여 옷을 베푸는 이가 있거든 마땅히 대지(大地)와 같이 평등한 마음으로 받을 것이요, 따로 베푸는 자의 낯을 보고 받아 쓰지 말지니라.

만일 비구니가 권도(勸導)하여 옷을 베풀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거든 마땅히 받지 말지니라.

만일 비구니가 음식 받기를 권청하거든 설사 병중에 있더라도 받지 않겠거든 하물며 병이 없이 받겠는가.

만일 과부가 와서 공양을 청할 때 승수(僧數)가 차지 못하거든 또한 받지


[14 / 3476] 쪽

말지니라.

또 마땅히 여승들 안에 들어가서 어떤 비구니를 불러내지 말라. 만일 비구니가 와서 보살을 부르거든 마땅히 그 처소를 옮겨 두 손을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버리고 갈지니라.

만일 설법할 때에 비구니가 와서 그 발에 예배하거든 발을 움직이지 말고 다만 눈으로 두 손바닥만 볼지니라.

선남자여, 다만 몸으로 정진할 뿐 아니라 또한 부지런히 마음으로 한 곳을 바로 생각하여 모든 경계에 탐냄·성냄을 일으키지 말지니라.

온갖 지혜[一切智]를 구하기 위하여 굳은 맹세를 일으켜 이 법을 듣고는 신심을 성취하여 마땅히 닦아 배울지니라.

가섭아, 만일 보살승(菩薩乘)에 나아가려는 선남자·선여인들이 이 법을 듣고 여실한 깊은 믿음을 내지 않으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닦아 배움으로 말미암아 저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요, 닦지 않고서는 능히 증득할 수 없느니라. 만일 닦아 익히지 않고 보리를 증득한다면 고양이와 토끼 따위도 또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리니, 왜냐하면 바로 행하지 않는 자는 능히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만일 바로 행하지 않고 보리를 얻을진대 음성과 언어도 또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리니 이렇게 말하리라. '나도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 나도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 이것으로 보리를 증득한다면 끝없는 중생이 마땅히 바른 깨달음[正覺]을 이루리라.

중생이 이 행을 닦아 배우기는 매우 어려우니, 하루 낮과 밤 동안만이라도 순일한 생각을 마음에 두지 못하거든 하물며 어찌 일겁 내지 천 겁에 이르겠는가. 그러므로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 되느니라.

가섭아,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일체 중생이 일겁, 백 겁, 천 겁 내지 억천 겁을 지나도록 한 중생을 위하여 같이 이런 말을 하여라. '너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라, 너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라.' 이 모든 중생이 다 같이 에워싸고 끊임없이 외치기를 '장차 부처가 되어라. 장차 부처가 되어라.' 이렇게 차례로 하되 숨쉬는 것은 오히려 그칠 수 있지만 이 외치는 소리는 그침이 없다고 하자. 이러한 외침이 오히려 처음 보리심을 익히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능


[15 / 3476] 쪽

히 위없는 불과(佛果)를 증득하겠느냐? 만일 증득한다면 이런 이치가 없느니라.

가섭아, 내가 멸도(滅度)한 뒤 말법 시대거나 또는 너희들이 이미 열반에 들어서 모든 하늘의 믿고 보호할 바가 되지 못할 적에 많은 중생이 나의 공덕을 듣고 보리심을 발하리라. 그 가운데 어떤 비구들이 비록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였더라도 다시 이십가지 법 가운데 머무르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이십가지냐, 말하자면 비구니에게 친근하는 일, 부정식(不淨食)을 받고 아름다운 맛에 탐착하는 일, 권화(勸化)하여 얻은 음식을 받는 일 등이니라.

가섭아, 지금 들은 것이 많은 비구가 고요한 곳이나 혹은 촌락에 머물러서 부지런히 닦아 익히듯이 수세에 모든 비구들도 또한 이와 같이 촌락이나 혹은 고요한 곳에서 비구니와 더불어 모여 언론으로 법의(法義)를 답문하리니, 그 비구·비구니가 물든 마음을 내는 것은 많고 법의 마음 내기는 적으리라.

가섭아, 너는 관찰할지니라. 이런 무리가 보살의 이름을 얻는다면 크게 위험한 데 떨어져 악취(惡趣)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때를 당하여 처음에는 법의 인연으로 서로 친근하였지만 보고 나서는 욕심의 불이 마음을 불사르며 입술을 움직이어 그 욕정을 표현하나니, 그들이 서로 가까이 할 적엔 처음에는 제자니 스승이니 하면서 예경을 표하다가, 다음은 차츰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여 서로 만날 기회를 만들고 혹은 길거리나 절 안에서 멀리 서로 바라보며, 나고 들 적에 어디로 다니는 길을 묻고 서로 친족이라 하고 남매를 맺으며, 이로 인하여 자주 서로 보는 까닭에 서로 친하게 되고, 친한 뒤에는 물든 마음을 내게 되고, 물든 마음을 낸 뒤에는 같이 부정한 일을 하게 되고, 부정한 일을 한 뒤에는 다시 범행(梵行)이 아닌 이름으로 서로 부르게 되느니라. 이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보리와 좋은 곳에 태어나는 일을 잃게 되며, '열반'을 멀리 여의고 여래를 놓아 버리며, 바른 법을 등지고 승가(僧伽)에게 버림 받게 되니, 그윽한 곳에 숨어서 탐욕과 진에와 남을 해칠 온갖 나쁜 생각을 일으키나니, 이 사람은 보살의 거룩한 업과 '네 가지 깨끗한 행[四淨行]'이 없느니라. 오늘에 부지런히 범행을 닦는 모든 보살도 미래세에 욕심과 진심과 남을 해칠 생각을 일으


[16 / 3476] 쪽

키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가섭아, 그때를 당하여 이런 종류에 처하는 자를 이른바 악한 행위·도둑의 행위·꾸미는 행위[矯行]라 하느니라.

너는 그때에 금계를 허는 자를 보아라. 이런 경을 듣고 곧 비방하리라. 만일 계와 보시에 머물러서 기쁘게 보리심을 냈다가도 뒤에 이 경을 듣고 다시 비방하리라.

네가 그때에 이런 모양이 있는 것을 보거든 명심하여 증험할지니라. 만일 이 경을 들으면 비방할 것이니라.

그 가운데도 슬기로운 자와 깨끗한 계를 닦는 자와 바른 법을 지니는 자는 이 경을 알고 말하리라.

'이 경을 비방하는 비구는 법을 알지 못하나니 마땅히 이런 사람은 멀리 여의라. 이런 무리는 마음으로 법을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까닭이라' 하느니라.”

대보적경 제2권

“다시 가섭아, 그때를 당하여 어떤 사람이 거짓 보살행을 닦는 체하면서 스스로 드날리어 게으른 마음을 내리라. 게으른 마음을 내고는 독각(獨覺)과 아라한보다 거룩하다고 하며 이치 아닌 데 머무나니 이것을 치료할 수 없는 것이라 이름하며, 장차 악취에 떨어지게 되리라.

다시 가섭아, 미래세에 어떤 사람이 나쁜 짓에 머물러서 나쁜 짓을 짓는 까닭에 중생상(衆生相)을 취하여 설법하기 위하여 닦나니, 그럴 듯하게 보시·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정려(靜慮)·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야단스럽게 유포하느니라. 만일 진실히 이 경을 설하는 자가 있으면 곧 남들이 미워하고 협의하여 버림받게 된다 하느니라. 이 경 가운데 사견(邪見)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말하기를 '이 어리석은 사람이 이 경을 알지 못하고 비방함으로써 파계가 된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그때를 당하여 다들 도둑 행위의 더럽힘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그 사람이 제 허물을 생각지 않고 함부로 정등보리(正等菩提)를 파괴하느니라. 덮어 감춤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품고 위없는 불과[無上佛果]를 비방하느니라.

다시 가섭아, 그때를 당하여 승가(僧伽)에 수순치 아니하고 은혜 갚을 줄을 알지 못하며 개발(開發)을 행하니, 어떤 것을 개발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남의 마을을 개발한다 하면서 자주 말로써 남을 속이고 유혹하는 까닭에 음식을 받아 먹게 되느니라.

가섭아, 그때에는 말을 잘 보호하지 아니하고 여래의 별해탈계(別解脫戒)를 나무라고 훼방하느니라. 다시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그 일을 같이하여 위의를 거두어 잡지 아니하고 부정한 곳에 머무르며, 부정한 곳에 머무른 자를 위하여 법문을 설하므로 이 법은 차츰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고 천히 여김이 되느니라. 이렇게 차츰 많은 여인들이 남편을 버리고 절에 들어와서 법을 듣기 위하여 자리에 나아가 앉으니, 그때에 비구가 그들을 위하여 열반과 흡사한 것을 연설하느니라.

가섭아, 내가 보건대 그때에 오백의 법 아닌 문이 있나니, 수행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따라가니 오백 번뇌가 조금도 줄어듦이 없으며 하는 일이 속인과 다름이 없느니라. 장차 이러한 큰 두려운 일이 있으니, 다시 그 가운데서 이익을 희망하겠는가.

그러므로 보리를 구하는 마땅히 모든 비구니를 가까이 친하지 말며, 또한 마땅히 이러한 짓을 하지 말지니라. 항상 일체 사귀어 놀기를 버리며, 어느 때나 모든 이익[利養]을 버리고 걸식을 받들어 행하며, 좋은 요를 버리고 누더기[糞掃衣]를 받아 지니며, 일체의 누각·방우(房宇)·평상·와구(臥具)를 버리고 시냇가나 바위 굴·나무 아래에 머무르며, 온갖 병의 인연으로 의약·자구(資具)의 수용물을 버리고 내버린 약에 의지할지니라.

모든 중생이 옛적의 친속인 줄을 알고 크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몽둥이로 치거나 나무라고 꾸짖음을 항상 참고 견디며, 끝내 남을 치거나 헐고 꾸짖지 아니하며, 일체 친구와 시주와 권속과 집을 버리고 마땅히 자기의 업행(業行)과 지혜를 수순하여 저 집에 있는 속인과 같게 하지 말며, 항상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교훈을 수순하여 받들지니라.

가섭아, 세상에 만일 어떤 사람이 별해탈을 등질 생각을 일으키면 곧 부처의 두려움 없는 힘을 등짐이 되나니, 만일 부처의 두려움 없는 힘을 등지는 자면 곧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등지게 되느니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받을 이숙(異熟)의 한량없는 큰 고통은 가령 삼천대천세계 일체 중생이 지옥고를 받을지라도 앞 중생이 받는 고통에 비하면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백·천 구지(俱胝)내지 산수 비유와 우파니사담분(優波尼沙曇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만일 이러한 큰 고뇌를 여의려면 마땅히 이러한 종류의 악행을 멀리 떠날지니라. 비구가 이런 악인과 비록 천 유순이나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또한 마땅히 멀리 피할 것이어늘 하물며 가까이 하겠느냐? 만일 이런 나쁜 이름만 듣더라도 오히려 놓아 버리겠거든 하물며 어찌 보고 듣고서 멀리 여의지않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한 가지 법을 가까이 친할지니 어떤 것이 한 가지 법이냐? 말하자면 온갖 법이 다 있는 것이 없느니라. 만일 모든 법이 있음이 없는 법의 지혜[法忍]를 얻으면 곧 이러한 악인을 가까이 친하여 공양하고 이점 어기지 않으리라.

이 사람은 다시 마땅히 두 가지 법을 가까이 친하나니 어떤 것이 두 가지 법이냐? 말하자면 모든 법이 본래 있음이 없음을 구하며, 또한 모든 법성(法性)을 구하되 또한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어떻게 구하는가. 저 구하는 바와 같이 도무지 얻을 것이 없나니, 얻을 것 없는 가운데 마땅히 얻을 것 없다는 마음도 일으키지 않느니라. 마치 사견(邪見)을 여의듯이 삼계 일체의 마음을 여의는 것이 보리행을 따르는 것이요, 온갖 형상의 마음[一切相心]을 여의는 것이 보살행을 따르는 것이니라. 보살행이란 앞에서 말한 것이 보살행이 되느니라.

이러므로 이 법을 듣고 마땅히 버리면 곧 미래세에 미륵세존을 섬기어 마음에 잘난 체하지 않고 또한 비열하지 않고 이렇게 외쳐 말하리라. '쾌하도다. 안락하도다. 내가 마군의 그물과 모든 악취를 벗어났도다.'

가섭아, 후세에 이 경을 듣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몸이 이 법에 수순하는가를 관찰하고 다시 발심하여 이 가르침을 받아 지니면 여래는 '이 사람이 결정코 마땅히 나의 바른 법을 수호하리라'고 아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재물이 한량없는 어떤 장자의 아들이 그 집에서 한 물그릇을 보고 아버지 재물이란 생각을 일으켰다고 하자. 그가 후에 그 아버지가 죽고 재물이 흩어져 없어졌을 적에 문득 그 그릇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물건이로다'라고 하며, 곁에 두거나 혹은 잘 간직하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그때에 모든 비구가 또한 이와 같이 이 경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여래께서 부드럽고 미묘한 큰 범음성(梵音聲)으로 연설하신 것이다'라고. 또 어떤 비구는 듣고 비방하리라. 법을 지니는 자가 대중[人衆:件侶]이 적고 처소가 좋지 못한 데서 이 경전을 가지고 밤낮으로 수호하면 심히 비방을 당하리라. 이와 같은 사람은 내가 또한 알고 보느니라. 미륵세존에게 부촉하노니, 말법시대에 마땅히 여래의 법성(法城)을 수호하여 다음 세상에 걸림 없는 큰 보시를 삼게 하리라.

또 가섭아, 만일 선남자 중에서 이 법을 듣고는 그 지혜를 따라 수행하여 깊은 믿음과 바른 소견을 성취한 중생은 미래세에 미륵불을 만나 처음 법회에서 범행(梵行)을 갖추어 닦으며, 미륵불 말법시대에 또한 여래의 법성을 수호하리라.

가섭아, 내가 이제 두루 관찰하노니 한 사람도 나를 가까이 친하지 않은 이가 없고, 당래세(當來世) 오십년 중에 이 경전을 얻어 듣고 비방하지 않고 능히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운다는 것은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지금 나를 보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한 자는 당래세 오십년 중에 이 경을 받아 자녀 읽어 외우게 되리라. 내가 그 공덕을 찬탄하게 하기 전에 저희들이 스스로 온갖 지혜의 지혜[一切智智]와 한 몸이 될 때에 나를 생각하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희유하고 기특하도다, 석가모니불께서 우리를 잘 거두어 잡아 주시고 호념하셨도다'라고 말하리라.

이러므로 가섭아, 마땅히 이 법을 배울지니라. 이 법을 배우는 자는 그 구함에 따라 일체 공덕을 증득하기에 어렵지 않으리라.”

그 때에 마하 가섭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성문(聲聞)의 도를 끝마치었으므로 다시 큰 법을 희구함이 없으니, 이 법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물러나게 되었사오며, 저는 여기서 매우 만족한 줄을 알아 끝내 온갖 지혜의 지혜를 이룩하지 못하오니 세존이시여, 위없는 보리는 희유한 일이오니 우리 성문에게는 증즉하기가 어려울까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위하여 말함이 아니니라. 그러나 이제 너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부연하노니, 네가 이제 이러한 큰 일에 의혹을 내지 말라. 너희들이 또한 마땅히 속히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하리라.

가섭아, 만일 모든 중생이 법에 목말라 하는 마음을 성취하며, 법을 구하는 마음을 성취하면 차츰 다 '무상보리'를 증득하리라. 이미 증득하고는 일체의 희구심[希求心)을 끊기 위하므로 모든 중생으로 더불어 바른 법을 선설하리라.

가섭아, 보살이 마땅히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큰 정진을 발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물질[色]·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을 구하지 않고 무루법(無漏法)을 구하는 것이며, 지계(地界)도 없고 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도 없으며, 지계라 말하지 않고 수계·화계·풍계라 말하지 않는 것이며, 온갖 언설(言說)이 다 이름으로 표시할 뿐, 이 표시법이 다 실로 있는 것이 아니며, 보살이 마땅히 이 표시법을 가지고 묻고 실다웁게 여기지 않음이 그것이니라.”

그때 가섭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우리들은 여래께 실로 의혹이 없나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묻기를 '이 표시법이 진실이 아니라 할진대 부처님의 음성과 말씀으로 표시하신 것이 허망함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오리까?”

“미래세에 모든 비구가 몸으로 계행을 닦지 않고, 마음으로 의리를 알지 못하며, 진심이 치성하고 언사가 사나워서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법대로 읽어 외우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그는 물질·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기 때문이니라.

미래세의 비구가 이 경전이 표시한 법에 머무르는 것이 물질·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머물러 마음을 내는 것과 같으리라. 다시 어떤 비구들은 재가자(在家者)의 법에 머물러서 저 승의제(勝義諦)에 희구함이 없나니, 마치 장님이 금관으로 그 머리를 꾸몄어도 자기는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그때를 당하여 모든 비구들도 또한 그러하여 이런 경의 언설·문자를 보고 오히려 받아 지니지도 못하거니, 하물며 다시 닦을 승의(勝義)에야 들어가겠느냐?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꾸지람을 받았다면 이 아이가 뒷날에 이 사람의 이름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때의 비구들도 이와 같이 이 경이 여실히 허물을 말하는 것을 듣고 알고도 뉘우치지 않으며, 좋은 의복을 탐내어 도리어 이 경에 공포심을 내느니라.

가섭아, 마치 개구리를 잡아매듯이 원숭이의 손을 잡아매면, 이 원숭이가 그 잡아맨 끈을 얼굴로 돌아보지도 않으며 그 앞에 머무르지도 않느니라.

가섭아, 마치 여우가 개에게 쫓겨 무덤 사이 굴 속 깊은 구덩이로 달려 들어가듯이 그때에 비구들이 이 경을 듣고는 여우가 달음질하듯 하느니라. 여우의 달음질이란 말하자면 금계를 범하고 이 경을 비방하며, 이 경을 듣고는 퇴속하여 집으로 돌아가서 욕심의 경계에 달려가며, 여인에게 달려가며, 싸운는 데·시끄러운 데 ·의술과 단사(斷事)에 달려가느니라. 거기에서 함부로 금계를 범하나니 나는 '이들이 무덤 사이로 달려간다'고 하느니라.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지면 악취에 떨어지나니 마치 여우가 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고 칼나무·칼날·창숲 등 큰 지옥에 달리게 되나니 여우가 깊은 구덩이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말세의 비구가 '말로 표시한 법이 진실이 아닐진대 여래의 말씀도 진실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그가 또 말하기를 '부처님이 표시한 법을 진실이라 할진대 모든 표시한 법도 또한 진실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느니라.

슬기로운 비구는 묻기를 '대덕(大德)이여, 이제 무엇을 내세워서 하는 말인가. 공(空)을 내세워서 하는 말인가, 표시(말)를 내세워서 하는 말인가'라고 하여, 그가 만일 '나는 표시를 내세워서 하는 말이다'라고 한다면, 마땅히 대답하기를 '네가 곧 부처님이로다. 왜냐하면 네가 언설로 표시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내가 공을 내세워서 하는 말이다'라고 한다면, 마땅히 그에게 묻되 '마땅히 나를 위하여 말하라. 어떤 것을 내세워서 공이라 하는가. 왜냐하면 말로 표시할 수 없는 것을 공이라 하나니, 만일 말로 표시하여 공이라 한다면 혹 나[我]와 나의 것·중생·수자(壽者)에 공이 아닌 것을 공이라 하리라'고 하라.

또 그에게 '네 뜻에 어떠한가. 온갖 법이 공한 것을 좋아하는가'고 물어, 그가 만일 '나는 온갖 법이 공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면, 슬기로운 자는 말하기를 '너는 오랫동안 사문(沙門)·석자(釋子)임을 잊었도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일체가 공하여 나라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나와 중생·수자와 삭취취(數取趣)를 말하지 않느니라'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온갖 법이 공하였으므로 내가 공성(空性)을 좋아하노나'라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마음으로 오히려 온갖 법이 공한 것을 좋아하니 하물며 여래의 정등각(正等覺)이겠느냐'라고 하라. 다시 '인자(仁者)여, 눈이 이 여래인가. 귀·코·혀·몸·뜻이 이 여래인가'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눈이 이 여래며, 귀·코·혀·몸·뜻이 여래이다'라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너도 이제 또한 여래로다'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눈이 여래가 아니며, 귀·코·혀·몸·뜻이 또한 여래가 아니다'라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인자여, 너는 이렇게 말하라. 눈이라는 표시(말)는 여래가 아니며, 뜻이라는 표시는 여래가 아니다. 곧 표시 아닌 것이 이 여래이다'라고 하면, '내가 이곳에 어찌 깨닫지 않겠느냐'라고 하여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눈이 여래가 아니지만 또한 눈을 떠나서 여래가 있는 것이 아니며, 뜻이 여래가 아니지만 또한 뜻을 떠나서 여래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여래가 말씀하신 바 십이처(處)란 것은 말하자면 눈의 경계[眼處]·빛깔의 경계[色處] 내지 뜻의 경계[意處]·법의 경제[法處]이다. 이것이 곧 중생과 중생이란 명자(名字)이다. 인자여, 눈의 경계가 이 여래냐 , 여래가 아니냐'라고 하라. 그가 만일 대답하기를 '눈의 경계가 이 여래며, 법의 경계가 이 여래이다'라고 하거든 '인자의 말과 같을진대 일체 중생과 산림(山林)·대지(大地)가 다 이 여래겠도다'라고 하라. 그가 만일 대답하기를 '눈의 경계가 여래가 아니며, 뜻·법의 경계도 여래가 아니다'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빛깔이 여래가 아니며, 법도 여래가 아니다'라고 하거든 '만일 그렇다면 어찌 법 아닌 것으로써 여래라 하겠는가'라고 하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곧 법 아닌 것으로써 여래라 한다'고 하거든, '만일 그렇다면 모든 중생이 부모에 불효하고 사문·바라문과 모든 어른을 공경치 않으며, 생명을 살해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간음하며, 거짓말·이간질·사나운 말·잡된 말과 탐냄·성냄·사견 등이 이 여래겠도다'라고 하여라. 그가 만일 말하기를 '비법(非法)과 비법 아닌 것이 이 여래이다'라고 하거든. '만일 비법과 비법 아닌 것이 이 여래 일진대 곧 표시가 없도다. 인자여, 그러면 표시할 수 없는 것이 이 여래이냐'라고 하라.

가섭아, 마땅히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을 절복(折伏)할지니라. 내가 세간 사람이나 하늘에게 이렇게 법대로 말하면 같이 맞서서 변론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노라. 오직 진에(瞋恚)·우치한 사람은 나의 말을 견디어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열어 보이더라도 믿음을 내지 않고 공법(空法)을 비방하고 놓아 버리고 가느니라.

가섭아, 너희들은 마땅히 이 경을 받아 지닐지니라. 미래세에 비구가 이 경을 지니는 자는 장차 세 가지 이름으로 표시하리니, 세 가지라 함은 말하자면 '단멸(斷滅)이라 말하며 아무 것도 없다. 온(蘊)도 없다, 또는 공경할 것도 없다'고 말하느니라.

그때에 이러한 경전이 사람들의 비방거리가 되느니라. 네가 그때를 관찰해 보아라. 부처님을 공경하지않으며 법을 공경하지 않고 다만 표시된 명자(名字)와 언어에 의지하여 중[僧]이란 이름을 띠었을 뿐 진실한 덕이 없느니라. 비록 부처님의 명호를 일컬으며 남에게 말하여 보이지만 바로 알지 못하니, 어떻게 여래를 우러러 받들까보냐? 비록 불법을 해설하지만 능히 여래의 뜻을 알지 못하나니 어떻게 잘 설법한다고 하겠느냐, 사쌍(四雙)·팔배(八輩)가 부처님의 제자이지만 성문의 중[僧]들은 다만 그 이름만 알았지 공덕에는 그 뜻을 알지 못하며, 능히 이름에 의한 실덕(實德)을 거느려 지니지 못하고, 의복·음식·와구·의약의 인연을 위하여 법을 비방하느니라.

보살은 그 가운데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러한 경(經)에 깊이 희유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어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울지니라. 왜냐하면 이 사람이 말세에 법성(法城)을 수호하기 위함이니라.

가섭아, 내가 생각건대 과거 구십일겁에 비어[空] 법이 없을 적에 이런 경이 다시 유포되지 않았느니라. 또 과거에 천 겁을 뛰어넘어 부처님이 출현하셨으니 이름을 휴식열뇌(休息熱惱)라 하였다. 세상에 머무르시기를 팔만 사천 겁, 보살을 성숙시키고 세간을 이익케 하셨느니라.

또 과거에 여래가 계셨으니 이름을 무변력(無邊力)이라 했고, 세상에 머물기를 이십억 겁, 저 이십억 겁에 보살도를 행한 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느니라.

가섭아, 네가 부처님을 보아라. 얼마나 하기 어려운 일을 닦아서 중생을 거두어 들였던가.

가섭아, 말세에 겁이 다하려 할 적에 이 경을 지니는 사람은 제 몸을 가볍게 하고 천히 여기지 않을지니라. 왜냐하면 겁이 다할 때에 한 사람이라도 능히 나의 처소에서 이 법을 믿어 안다면 매우 희유한 일이라고 생각하라. 모든 중생이 칼과 몽둥이를 지니고 우리를 쫒지 않으면 또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라. 모든 중생이 칼과 몽둥이를 지니고 우리를 쫒지 않으면 또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라. 왜냐하면 이 법이 곧 이 선장부(善丈夫)의 법이라, 저 모든 행(行)에 행의 생각이 없으며 깨달아 알기 어려운 까닭이니라.

만일 아견(我見)·중생견(衆生見)·명견(命見)·삭취취견(數取趣見)·유견(有見)이 있거나 만일 모든 온(蘊)에 의하여 계견(戒見)·다문견(多聞見)·불견(佛見)·법견(法見)·열반견(涅槃見)을 일으키는 자는 여래가 다 이것이 사견(邪見)이 되는 줄을 아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는 저 열반에도 분별이 없으며 또한 얻을 것이 없나니, 만일 열반에 분별을 일으키거나 또는 얻을 것이 있다고 하면 여래는 다 사견이라고 말하느니라.

사견은 곧 무지(無智)라 이름하고 무지는 손해라 이름하고 손해는 우부(愚夫)라 이름하나니, 우부는 큰 보리에 욕망이 없으며 멀리 하늘의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없느니라.

가섭아, 미래세에 비구의 나이가 이십·삼십·사십 내지 백세에 이르러서 늙음에 핍박되어도 의복을 치장하며, 비록 머리를 깎았더라도 위의(威儀)를 훼손하게 되며, 늙고 병들어 위광(威光)이 없으며, 삿된 법에 끌려들어서 목숨을 마칠 때에 죄의식의 막고 가리움이 되고, 게을러서 닦지 못한 것을 깊이 생각하고는 세 가지로 도를 증득한 체 나타내어 보이나니 어떤 것이 셋이냐? 혹은 위의를 꾸미어 나타내며, 혹은 거짓 정행(淨行)을 닦아 지니는 체하며 혹은 손을 들어 외치기를 '나와 동등한 자가 없다'고 하느니라. 이 세 가지 일로 증득한 체하느니라. 이 사람은 다 증상만(增上慢)에 떨어지나니 목숨을 마칠 적에 뉘우치느니라. 목숨을 마친 뒤에는 지옥에 나리라. 그러므로 가섭아, 내가 이제 분명히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나는 너희들의 참 선지식이라, 너희들을 이익케 하고 불쌍히 여기어서 뒤에 큰 괴로움을 받기를 저 모리가(募理迦)와 반지가(畔地迦)·파리바라리가(波利婆羅理迦)가 모든 고통을 받듯이 하지 않게 하려 하느니라.

가섭아, 나는 끝내 아견·중생견·수자견·보특가라견(補特迦羅見)에 집착한 자로서 내 법 가운데 출가하기를 허락지 않느니라. 내가 허락지 않는데 억지로 출가하면 다 이 도둑이라, 시주의 무거운 보시를 먹을 뿐, 또한 참된 비구계를 성취하지 못하느니라.

가섭아, 차라리 육일 동안 단식할지언정 내 법에 출가하고는 무거운 시주의 보시를 먹으면서 아견·중생견·수자견·삭취취견 내지 열반견을 일으켜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러므로 보살이 마땅히 정진심을 발하되 아견·중생견·수자견·삭취취견·유견·열반견에 집착하지 말지니라. 일체의 견을 끊기 위하여 마땅히 설법할지니라.

가섭아, 이러한 경을 내가 이제 모든 보살에게 부촉하노니, 왜냐하면 그들의 의욕이 나와 같기 때문이니라. 만일 그들의 의욕이 나와 같을진대 이것은 나의 반려(伴侶)라, 곧 나의 부촉을 감당할 만하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온갖 괴로움이 핍박하여도

도무지 구호할 이 없도다.

오직 세간의 큰 길잡이[導師]로서

희론 여읜 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고뇌의 중생들

하찮은 사도를 닦으며

차츰 탐욕만 늘어가

이 때문에 악취에 떨어지네.

길잡이도 보호자도 없이

험악한 광야에 머물러

삿된 길에 빠져드니

마침내 안온(安穩)함이 없도다.

마치 사람이 재물을 지니고

먼 길에 장사를 떠났다가

중도에 도둑이 덤비어

재물 몽땅 빼앗기듯이.

재물 잃고 빈손으로 돌아오니

이익 보려다 괴로움만 더하고

남에게 꾸어온 빚 때문에

시달림 받기 더욱 괴로워.

비구도 또한 이처럼

법을 위하여 집을 나왔건만

본래 지녀온 법의 재산

깨끗한 행업(行業) 다 소멸되고

오직 머리만 빡빡 깎고

모든 사견에 어리석게 떨어져

'나[我]'니 중생이니 하는

'보특가라'의 생각에 집착하도다.

공법(空法)을 말하는 비구

삭취취에 집착하지 않음을

이 사람에 비방심 일으키면

어느덧 지옥에 떨어지리니.

화내고 꾸짖는 인연으로

서로서로 비방만 하며

제 허물 남 알까 겁내며

남의 허물만 망령되어 퍼뜨리며.

몸으로 나쁜 짓, 입으로 나쁜 짓

뜻으로는 아첨만하고

뒤바뀐 생각으로 사견에 흐르니

이 사람은 악취에 떨어지리.

온갖 나쁜 짓하고는

쏜살같이 삼도(三途)에 가서

뭇 괴로움에 불타게 되니

누가 능히 구호해 주리.

오는 세상의 어떤 비구는

난폭하고 진심(嗔心)이 많아

보리도로 달려 나아가는

참다운 행자를 괴롭히나니.

이 모든 사나운 무리는

이러한 경전을 비방하여

다시는 석사자(釋師子)의 가르침

받들어 지니지 않으리.

서로 진심만 일으켜

번갈아 괴롭히고 해치며

남의 허물만 드날려

사나운 소문 사방에 퍼지네.

헛되이 남에게 누명 씌움은

자기의 수치처럼 되나니

선량한 이는 돕는 이 적고

삿된 친구는 세력이 늘도다

이것은 바른 법이 없어질 때

악인의 세력이 강할세라

나의 사랑하는 제자로서

이른바 착한 비구들은

마땅히 다른 방향을 향하여

안온한 곳을 찾아갈지니.

사나운 무리에서 벗어난

그들에게 불쌍한 마음 일으켜

마땅히 이 경 가운데

자세히 살피어 생각하라.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장소를 가리어 머무르라'고.

바른 법이 무너져 없어질 때

선량한 벗 얻기 어렵나니

여래가 찬탄한 장소에

서로 따라 함께 나아가라.

누가 말하기를 이곳은

머무를 곳이 못된다거든

마땅히 대선인(大仙人)께서

도 얻는 곳으로 나아갈지니라.

다시 말하기를

'인자여, 그대가 실로 말하도다.

불탑(佛塔)을 돌며 도를 구하라'라고.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이니.

차라리 저곳으로 가보리.

마음도 기쁜 보리의 도량

이곳은 머무를 곳 못되나니

사나운 무리에게 핍박되기에.

비구여, 저리로 나아가자.

나를 위하여 나아가자.

부처님 노니시던 곳

그 옛날 조용히 계시던 곳.

거닐고 조용히 앉으시던 곳

돌이나 또는 빈 터이거나

모여 같이 탄식하고

위하여 자주 울어도 보리.

이것이 저 대선인께서

거닐고 수용(受用)하며

옛날에 일찍이 노니시면서

위없는 법바퀴[法輪]를 굴리셨나니.

유위(有爲)는 마침내 무상(無常)한 것

옛적엔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 등

하늘·용이 다 모였을 적에

교화하여 기쁘게 하시던 일

우리는 이제 볼 수 가 없고

어찌하여 이에 빈 것만 볼까?

때로는 이 도량의

가장 거룩한 보리지(菩提地)에

같이 와 모인 뒤에는

이치와 같이 생각할지니.

이것은 보리의 도량

부처님이 일찍이 이곳에 앉으시어

위없는 불과(佛果)를 이루시고

악마의 무리를 두렵게 하시기

마치 여우의 무리와 같이.

이것은 보리의 도량

부처님께서 단정히 계신

과거와 또는 미래의

모든 부처님 자리.

조용히 앉으신 대웅(大雄) 세존님

백억 하늘의 경례 받으시며

이레 동안 가부좌(跏趺坐)하시어

자세히 보리수를 보셨네.

우러러보기와 공양을 마치시자

다음엔 녹림(綠林) 동산으로

여기서 처음 법바퀴 굴리시니

그 음성 범천[梵世]을 울리었네.

저 모든 비구들은

자주 슬피 울었다.

'다섯 사람 제도하시려고

도사가 이곳에 오시었다'고.

다섯 사람은 처음 부처님 뵙고

근심·걱정 자아내면서

규칙을 세워 약속하기를

'우리는 일어나 맞지 말자'고.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다섯 비구 위하여 설법하시니

감로(甘露)의 열매가 때에 익었네.

법바퀴 굴리던 곳에 경례하며

슬퍼하며 자주 우나니

다음엔 열반하시던 곳을 찾아

부처님이 최후의 몸으로

이 사리수(沙羅樹) 쌍림 아래

중생에 이익 주시던 일을.

몸을 부수고 지절(支節)을 나누어

이곳에서 열반에 드심이여.

슬프도다, 우리 부처님 대성존

석가의 큰 열반이시여.

이제 다만 이름만 듣고

아깝다. 우리가 뵙지 못함이여.

도사는 또한 이곳에서

최후로 선현(善賢)을 제도하셨네.

지혜의 눈으로 먼저 보시고

이것이 최후의 제도를 받을 것

혹은 닦을 때에 명(命)이 마치거나

혹은 목숨 질 때에 발심하거나

혹은 닦음을 마치고는 죽거나

다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을.

이후 말세에는

깊고 넓은 법이 잠겨 버리어

계를 지니거나 계를 허는 사람이

다 신도의 공양을 얻어

남의 무거운 시은(施恩)을 받고는

살같이 악취에 떨어지리니.

너희들 비구들은 이러한 차별을 관하라.

'슬기로운 이는 나중에 닦더라도

재빨리 인간·천상의 과보 받을 것을.'

이들은 세상을 비치는 등불

세간을 불쌍히 여기는 자며

모든 슬기로운 보살은

자비심으로 중생을 이익케 하네.

항상 부지런히 닦아 나아가며

뛰놀며 기뻐하면서

장차 대각존(大覺尊)이 될 것이며

또한 미륵불을 만나 섬기리.

저 부처님께 공양 드리고

대중 가운데서 수기(授記)를 받아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자재로운 위신력 나타내리니.

나는 성실한 말로

이러한 무리를 위안하노니

그가 부처를 못 보았더라도

부처 본 것과 다름 없으리.

내가 옛적 보리를 구할 제

모든 부처님을 예경했으니

만일 모든 여인들이

위없는 보리에 나아가리라.

나와 또는 한량없는 부처가

다 그를 위안하나니

재빨리 사내몸 얻어

미륵세존을 만나보리라.

저 부처님 공양하고는

구하는 바가 뜻대로 되리니

마땅히 지혜를 배우는 자는

깨끗한 믿음으로 집을 떠나니.

굳고 즐겨하는[樂欲] 마음으로

많이 듣고 계 지니기를 배워

저 미륵부처님께

수기를 받으리.

이러므로 커다란 이김[勝利]을 듣고

믿음을 일으켜 착한 뿌리를 닦아

굳은 마음에 편안히 머물러

모든 중생들 거두어 안아 들이리.

그 누가 이러한 곳에서

구하여 이것을 얻지 못하리

슬기롭고 정진한다면

보리를 얻기는 어렵지 않으리.

자비의 마음 닦아 익히어

굽은 마음 놓아 버리고

항상 조용함을 즐거워하면

이것이 곧 보리의 도.

만일 사람이 이 법에 있어

빈 말만 하고 실행 없다면

대중이 비록 예경하여도

이것이 두려운[可畏] 도적이로다.

만일 사람이 음식이나

여러 가지 이익을 위하여

바른 법문을 받아 지니며

서로서로 전하여 말하면

이것은 나쁜 생활의 수단

헛되이 세상을 지내감이니

이 생에 사람의 몸 버리고 보면

악취에 들어가 괴로움 받으리.

혹은 불법 안에 숨어서

거짓 비구라 이름하고

경전을 비방하며

'해탈계[解脫禁]를 설한다'하나니.

말하되 내가 능히

'별해탈[木又]의 교법을 선포한다'고.

비록 비구의 몸 되었지만

마침내 인간·천상의 몸 잃으리로다.

만일 인간·천상을 비방하고

또한 온갖 지혜를 헐뜯으면

이렇게 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그 죄가 저것보다 지나가리니.

몸과 말·뜻을 잘 보호하여

모든 나쁜 짓 일으키지 말라.

능히 이 세 가지 없애는 이는

반드시 열반을 얻게 되리라.

“다시 가섭아, 여래가 멸도에 든 뒤에 당시 여래 처소에서 착한 뿌리를 심은 모든 비구들은 다 열반에 들며, 수승한 의욕을 갖춘 모든 중생들이 또한 다 세상을 떠난후 오십세의 바른 법이 없어지려 할 때에 어떤 비구가 탐착심을 품고 그 치열한 탐욕이 그 마음을 가려서 이간질하는 말로 남을 독해하며, 말씨가 거칠고 사나우며 과격하고 악랄하여 세 가지의 법에 머무르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냐? 말하자면 의도(醫道)와, 판매하는 것과 여인을 친근하는 것이니라. 이 세 가지 법에 머무므로 네 가지의 일을 잃게 되니, 어떤 것이 넷이냐? 말하자면 계온(戒蘊)과 선취(善趣)에 나는 일과 진실한 과(果)를 증득하는 일과 부처를 보는 일을 잃어버림이니라.

이 네 가지를 잃어버리므로 다시 네 가지 법을 이루게 되며, 세속을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번뇌는 더욱더 치성하느니라. 어떤 것이 넷이냐? 말하자면 질투심이 더욱 치성하며, 진에의 사나운 마음이 더욱 치성하며, 종족에 탐착하는 마음이 더욱 치성하며, 음식에 탐착하는 마음이 더욱 치성하며, 음식에 탐착하여 여러 가지의 맛난 것을 쌓아 두며, 의복을 탐내어 마음을 가리우므로 상자에 쌓아 두는 것이니라. 오로지 이런 일로 업을 삼아 사문의 법에는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으며, 또한 사문의 도는 증득할 마음을 내지 않으며, 이 경을 듣고는 네 가지 곳에 떨어지느니라. 어떤 것이 넷이냐? 말하자면 법을 비방하는 데 떨어져 부처님이 의 허락하지 않은 것을 도리어 말하며, 홀로 여인을 위하여 법요(法要)를 선설하며, 여래의 별해탈계를 훼방하며, 이런 경을 듣고는 더욱 법을 헐려 하여 악법에서 자라나는 것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쓴 쓸개를 사나운 개의 코에 부으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개가 갑절이나 더 사나운 마음을 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가섭아, 저 사나운 사람은 마치 사나운 개와 또는 비사차(毘舍遮)와 같으니라. 어떤 비구가 깨끗한 마음으로 이 법을 지니고 이 법을 말하며, 진실에 머물러 욕심이 적은 자와 욕심 적음을 찬탄하는 자를 보면 이 사람에게 기쁜 마음을 내지 않고, 싫어하고 배반하는 마음을 내어 겁내고 또는 고민하느니라. 그 진에심이 마음을 가로막으므로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들이 때 아닌 때, 곳 아닌 곳에 머물러 있었다. 때 아닌 때, 곳 아닌 곳에서 남들이 우리를 업신 여기고 훼방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경을 들으면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켜 훼방하고 성내고 거친 말을 더한다'고 하나니 이것은 내 가르침이 아니니라. 이들은 욕심 많은 자요, 욕심 적은 자가 아니니라.

가섭아, 나는 갖가지 이름으로 욕심 적고 족함을 좋아하는 자를 찬탄하노니, 이름하여 기르기 쉬운 자·만족하기 쉬운 자·깨끗이 닦은 자·두타행을 행하는 자·극히 단정한 자라고 하느니라. 나는 또한 아란야(阿蘭若)에 머무는 자·정진하는 자·깨끗이 사는 자라고 찬탄하느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상자 속에 많이 저축하는 일을 하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마땅히 이러한 법을닦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구리쇠 주발이 빌수록 그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이 하지 말고, 여래의 가르침을 따라 이 법을 수행할 것이요, 또한 거듭 진에를 일으키지 말며, 또한 사물을 섭취하지 말고 일 없고[無事] 아무 것도 없는 데[無物]에 머무르며, 머무르는 처소에 머문다는 생각을 내지 말고 머무르는 바가 없을지니라. 제 자랑하지 말며, 또한 소와 말 등을 기르지 말며, 방일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머무르지 말고, 마땅히 용맹 정진의 마음을 일으켜 모든 착하지 않은 법을 놓아 버리고 착한 법을 거두어 잡아 지닐지니라.

가섭아, 내가 갖가지 이름으로 적정(寂靜)을 찬탄하나니 아란야에 머무르고 시끄러운 데 처하지 말지니라. 이제 이 가운데 갖가지 이름으로 매우 깨끗이 닦는 행을 말하노니, 만일 매우 깨끗한 행에 머무르지 않는 이는 큰 욕심을 갖춘 이며 죄악을 짓는 이니, 곧 매우 깨끗한 행에 머문 이는 사월 중에 부자(附子)를 먹고 갈증이 생겨서 다른 사람에게 물을 구해 마실 때에 그 사람이 말하기를 '네가 이미 부자를 먹었으니 다시 물을 마시고 죽음에 이르지 말게 하라'고 하나, 어리석은 사람은 진심에 가리어져서 나무라고 꾸짖으며 남의 말을 따르지 않고 물을 마시고 죽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미래세의 비구가 유견(有見)에 탐착하여 선정에 머무르지 아니하거든 법을 지니는 자가 가르쳐 말하기를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하고 이것은 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면, 저 나쁜 비구는 진심에 가리어져서 나무라고 꾸짖으며 이 경전을 비방하느니라.

가섭아, 오늘의 여래 앞에서도 오히려 시비를 일으키거늘 하물며 미래세일까보냐? 네가 또한 현호비구(賢護比丘)를 보아라. 여래가 계를 제정하여 모든 비구로 하여금 한자리에 앉아 먹게 하였거늘 저는 진심에 가리어졌으므로 여름 석 달 동안을 나의 처소에 오지 않았느니라.

가섭아, 이제 내 앞에서 오히려 이렇게 범행(梵行)을 가벼이 하는 자가 있거든 하물며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야 음식·의발(衣鉢)·의약에 탐착하여 번뇌에 덮여 진에가 치성하리니, 이런 비구는 이 법을 득고 오히려 여래 큰 스승을 공경치 않으니리, 어찌 능히 법 지니는 비구를 공경하겠느냐? 가섭아, 이것을 착하지 않음이라 이름하며 또한 극악(極惡)이라 이름하나니 이러한 법보는 곧 숨어 없어지느니라.

그 중에 만일 큰 이익을 구하는 선남자·선여인이 있어서 나의 가르침을 받는 자라도 뒤에 오탁(五濁)의 찌꺼기가 덮여 올 때에는 착한 사람이 되기 어려우니라, 그때에 이러한 매우 깊은 법을 듣고서 법답게 행하는 자를 위하여 말할 것이요, 법답지 못한 자에게 말하지 말며 믿는 자를 위하여 말할 것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 말하지 말라. 내가 이제 또한 법다운 자를 위하여 말하고 법답지 못한 자에게 말하지 않으며, 믿는 자를 위하여 말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 말하지 않느니라.

가섭아, 마치 사나운 말[馬]이 갑옷[被甲]을 받지 않는 것이, 만일 좋은 말[良馬]과 같이 갑옷을 입히려 하면 도리어 놀라고 두려워하나니, 이와 같이 파계 비구가 어느 때든지 선장부(善丈夫)의 법을 견디어 받지 않나니 마치 나쁜 말이 도리어 놀라며 두려워함과 같으니라.

가섭아, 파계 비구가 한마디라도 '모든 법이 나[我]가 없다'고 말함을 듣고는 아상(我相)에 집착하므로 문득 두려워하나니, 하물며 선(善)의 갑주 입는 것을 말하겠느냐? 만일 능히 갑주를 입으면, 곧 능히 백억 마군을 항복받아서 끝내 투쟁심을 내지 못하게 하느니라. 모든 착한 비구가 정진의 갑주를 입고 근본 두타의 공덕을 깨뜨리지 아니하면 이것은 깨끗이 닦는 근본, 탐냄·성냄·어리석음이 없는 근본, 질투가 없는 근본, 욕심을 여읜 근본, 홀로 처하는 성행(性行)의 근본, 잠을 깨는 근본으로서 언제나 어떤 종족에게나 성내고 탐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갖가지 물건에 희구함이 없나니, 이러한 갑주 입기를 무(無) 근본이라 이름하느니라. 만일 갖가지 갑주를 입고는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일으켜 일체 처(處)에 집착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아상(我想)을 일으키겠느냐? 이러므로 마땅히 아상·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想)·삭취취상(數取趣想)·여상(女想)·남상(男想), 지·수·화·풍이라는 생각,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라는 생각, 지계상(持戒想)·파계상(破戒想)·공성상(空性想)을 내지 말지니라. 요컨대 온갖 생각을 다 일으키지 않을 것이니 온갖 생각이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탐이 만일 실로 없다면 곧 깨달아 알고 그 본바탕이 무엇인가를 찾아 탐애심을 없애려 하면 어떤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머무른 곳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은 거짓말[妄語]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여래는 실다운 말을 하는 이[實語者]라고 하느니라.

여래가 말한 모든 탐욕은 다 '나'라는 것이 아니니 이러한 모든 법이 사문법이며 모든 사문법은 다 얻을 것이 없느니라. 만일 실로 없다면 곧 깨달아 알고 그 본바탕이 무엇인가를 찾아 탐애심을 없애려 하면 어떤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머무른 곳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은 거짓말[妄語]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여래는 실다운 말을 하는 이[實語者]라고 하느니라.

여래가 말한 모든 탐욕은 다 '나'라는 것이 아니니 이러한 모든 법이 사문법이며 모든 사문법은 다 얻을 것이 없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생각에 집착하면 이사람은 곧 '나'라는 생각에 집착함이 수미산(須彌山)과 같으니 성인의 가르침과 사문법을 잃어 조금도 내지 못할 것이며, 또한 사문법에 머무르지 못하리니, 이러한 넓고 큰 최승의 법도 저 어리석은 자에게는 도리어 손실이 되므로 조금도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만일 적은 법이라도 집착하면 곧 극히 두려운 큰 지옥에 껴들어 가서 한겁을 머무르리라.

가섭아, 네가 구가리(俱迦利)비구·건다달라(騫茶達羅)비구·가로저수(迦盧底輸)비구·모달라다(母達羅多)비구·아습번(阿濕繁)비구·포나파소(布那婆蘇)비구·소기달라(蘇氣怛羅)비구를 보아라. 이들은 나의 시자로서 친히 내 앞에서 나의 설법을 듣고 내가 거니는 것도 보았고, 내가 백·천 외도를 항복받고 대중 가운데서 삿된 도법을 굴복시키는 것도 보았느니라. 이런 사람들도 오히려 나에게 신락심(信樂心)을 내지 않고 잠깐 사이라도 항상 나를 훼방하려 하므로 차츰 그 악심이 늘어갔느니라.

다시 만일 부처의 이름을 말하거든 믿어 실답게 생각하는 이는 마땅히 수미산 같은 좋은 그릇을 가지고 전단향 가루를 담아 그 위에 흩을 것이며, 삼천대천세계 같은 일산으로 공중에서 그 위에 덮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를 믿는 까닭이니라. 하물며 믿고 욕심을 버리고 집을 나와서 의지할 것 없이 모든 선정을 닦음이랴.

가섭아, 이러한 중생은 그 중에서 가장 희유하다고 인정하노라. 능히 부처의 법을 잘 호지하며 능히 저 감로법(甘露法)을 깨달아 알리라. 마치 여러 사람이 짐승의 가죽이나 썩고 더러운 물건으로 인형(人形)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라. 혹은 갖가지 잡된 얼굴 모습을 만들고 채색을 하여 꾸며서 매우 단정하게 만들고는 사람의 얼굴위에 올려 놓기도 하고, 옷으로 얽어 싸서 노리개를 만드나니, 어찌 그 겉모양으로 좋다 하겠느냐? 그것이 더러운 물건으로 만든 줄을 알면 곧 내버리려는 생각을 내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나쁜 비구가 여래의 위덕과 의용(儀容)으로서 자기의 겉치레를 하지만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로소 극악인 줄을 알 것이다. 나와 남의 치레를 하지만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면 비로소 극악인 줄을 알 것이다. 나와 남의 꼭 있는 생각[我想]으로 말미암아 탐애심을 내는 까닭이다. 만일 사람이 나라는 생각이 실답지 않은 줄을 알면 이런 경을 들어도 진에심을 내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훼방하고 거슬림을 당하더라도 이 경을 듣고는 그런 무리를 멀리 떠날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지기 때문이니라. 만일 중생이 집착심을 품으면, 이것은 곧 사견의 사람이니라. 만일 사견을 일으키면 이런 경의 여실한 교훈에 곧 진심을 내리라. 왜냐하면 나라는 생각이 있는 자는 진심이 있는 까닭이니라.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이 경을 듣고 진심을 내어 헐뜯고 비방하는 이는 곧 사문이 아니니라. 비록 사문이란 명칭이 있더라도 나의 성문제자가 아니며 나는 그의 스승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나의 성문제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나는 거짓말 하는 자의 스승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여래는 이 실다운 말을 하는 이[實語者]라 능히 온갖 법의 '공(空_]을 진실하게 말하는 자이니라.

가섭아, 여래는 능히 '아집(我執)'을 깨뜨리고 그것과 싸우느니라. 만일 여래와 더불어 싸우는 자는 악마니라. 여래는 악마의 무리가 집을 떠나 구족계(具足戒) 갖기를 허락지 않느니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청작(靑雀)이라는 작은 새가 큰 용·코끼리를 낳았다'고 하면 어떻겠느냐? 이런 말을 믿겠는


[42 / 3476] 쪽

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네 뜻에 어떠한가, 같은 종류가 된다고 하는가.”

“같은 종류가 되지 않나이다.”

“다시 가섭아, 또 말하기를 '묘시조왕(妙翅鳥王)이 뱁새에서 났다'고 하면 믿겠는가. 같은 종류가 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같은 종류가 아닙니다.”

“다시 가섭아, 또 말하기를 반딧불의 작은 벌레가 수미산을 지고 공중으로 날아 갔다면 믿겠는가. 같은 종류가 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같은 종류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악인이 만일 '나'라는 생각과 열반이란 생각에 머무르는 자가 나를 일컬어 스승이라 한다면 엉뚱하게 같은 종류가 아니니라. 가섭아, 만일 제왕이 편안히 국계에 머물러서 백성을 어루만져 기르고 쾌락이 한량없으며 갖가지 음식이 절로 갖추었고 곁에 시신들이 왕의 교화를 받들던 때에, 어떤 모르는 사람이 재리(財利)를 위하여 왕의 신하라 자칭하고 왕의 명을 받지 않고서 스스로 임금과 신하들 가운데서 거짓 왕의 명을 펴되 '너희들은 마땅히 이에 머물러 있어라'하거나, 혹은 '너희들은 이런 일을 하여라'하는 것도 같도다. 가섭아, 여래 법왕도 이와 같이 대천세계에서 왕 노릇하여 일체의 삼승(三乘) 중생을 교화하되 십력(十力)의 공덕을 원만히 성취하여 모든 불사를 짓되, 안락하기 끝이 없으며 음식 공양이 절로 풍족하도다. 그 가운데 남 모르는 어떤 중생이 먹고 살기 위하여 '나'와 중생 내지 열반을 말하고 여래의 나 없는 성교[無我聖敎]를 받지 않고 이런 말을 한다. '여래의 말씀은 이 일은 마땅히 할 것이요, 이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고.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부처를 믿고 가르침에 순종하여 비방하지 않고 그 말을 듣고, '이것이 훌륭하고 깨끗한 복밭[福田]이라'하여 자기의 재산과 처자의 부분을 가져서 은근한 신심으로 법대로 베풀되, 모든 허물을 깨닫지 못하고 그 뒤로 잠깐도 끊임이 없느니라.

이러한 악인은 남이 모르는 어떤 사람과 같으니라. 음식을 얻어먹고는 시끄러운 곳에서 나날이 왕의 하는 일[王事]·도둑의 일[賊事]·음식에 대한


[43 / 3476] 쪽

일[食事]·음란한 일[淫事]·여인에 대한 일[女人事]·의방에 대한 일[醫方事]·술 마시는 일[飮酒事]·일식과 월식에 대한 일[日月薄蝕事]·왕의 사신 다니는 일[王使去來事]·종족에 대한 일[種族事] 등을 논설하며, 혹은 '어느 날 어디를 가면 음식이 생긴다'느니 이런 종류의 갖가지의 말로 밤낮을 보내고 절에 돌아온다. 혹 두 번 자고 엿새를 지내면서 머무르는 곳에 또한 항상 이런 일을 말하여 바른 생각과 지혜를 잃고 위의를 바로잡지 못하며, 몽롱히 잠들 적엔 침이 흘러 내리며, 항상 낮에 하던 일이 꿈에 나타나며, 혹 자기가 다른 곳으로 가되 빨리 가고 느리게 가는 갖가지의 일을 보게 되느니라. 이미 깨어나서는 서로 향하여 말하기를 '꿈에 네 몸이 이렇게 다니고 앉았다. 이런 곳으로부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다'고 하며, 다시 말하기를 '이 꿈은 길한 꿈이다. 마땅히 빨리 촌·읍·왕성에 가서 다른 집에 이르러야 된다'고 하며, 나들이하여 쏘다니면서 얼굴과 눈을 희번덕거리다가 괴로움에 시달리므로 마음이 안정치 못하여 고요한 선정[等引定]이 없고 교만하고 방자하며, 여섯 감관[六根]이 혼잡하여 속인과 다름 없으며, 말은 때를 맞추지 못하고 마음은 달려 흩어져서 마을의 큰 성바지 집에 돌아다니며 별해탈계를 받들어 지니지 아니하고, 홀로 연인을 위하여 법문을 말하되 법을 말할 때엔 물든 마음에 머무느니라. 이런 가운데 좋은 음식·의복을 얻으면 물든 마음이 마치 좋은 음식물을 씹어 삼키듯이 어리석고 탐착하여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집착하며, 뉘우칠 줄을 모르고 떠날 때에는 울고 가느니라.

또 두 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열어 보이느니라. 둘이라 함은 깨끗하고 좋은 보시를 얻으면 찬탄하고, 그렇지 못함을 얻으면 문득 나무라느니라. 서로 만날 때엔 서로 그 소득을 보느니라. 서로 묻기를 '시주가 이제 무엇을 보시할 것이며, 누구에게 베풀어 줄까, 음식·자재가 얼마나 되는가' 하느니라.

가섭아, 이것을 수행 않는 자라 이르며, 내지 목숨이 마치기까지 수행하지 않는 자라 말하느니라. 다시 남은 허물이 있어서 나쁜 뜻을 내나니, 이른바 바른 법을 비방함이니라. 가섭아, 마땅히 이러한 모든 비구에게 불쌍한 마음을 낼지니라. 왜냐하면 그들이 장차 괴로움의 과보를 받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저 살기 위하여

제왕의 신하라 자칭하며

남 몰래 다른 곳에 나아가서

거짓 왕의 제령(制令)을 펴나니.

저곳에서 비밀의 말을 전하되

'왕의 명령이니 거슬리면 안 된다'고.

어리석은 사람이 이곳에서

저 살기 위하여 이런 짓 하도다.

하물며 거룩한 부처는

저 수없이 많은 겁(劫) 속에

목숨과 몸을 버리고

허다한 어려운 일 다 겪었나니.

이것은 법왕가(法王家)의 하인에게

꾸지람이나 벌받음으로서가 아니며

또는 이것은 하고 이것은 하지 말라고

문책하는 자가 있음도 아니니라.

비구에게 도 닦을 장소며

아름다운 진수 성찬이며

또는 가장 묘한 의복을

이런 것 모두 다 바치었노라.

부지런히 재물을 구하여

계 지니는 이에게 베풀어 주고

제 몸에 이바지하거나

또한 처자를 위함이 아니었네.

법대로 머물지 않는 사람은

공양만 받아 먹고 달아날 뿐

다음날 서로 만날 적에는

'내가 그때에 잘 먹었다'고.

어디나 한데 모이는 곳에서

왕의 정사가 어떠니, 도둑의 일 어떠니

국경을 지키는 일이 어떠니

갖가지의 음식 요리가 어떠니.

일식·월식에 대한 일이며

왕의 사신으로 가고 오는 일이며

혹은 '마땅히 이기리라'

혹은 '장차 망하리라'고.

이것이 말할 바 아니언만

그들은 항상 이야기하면서

화려한 침상에 누워서

밤낮으로 즐겨 잠만 자나니.

낮으론 신도 집에 나가고

부자 많은 곳을 찾아서

'이 보시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최상의 보시는 될 수 없다'고.

이런 일로 찾아가고는

자리에 앉아 부질없는 이야기로

어리석고 게을러 닦지는 않나니

마치 노새가 무거운 짐 지듯이.

잠자다 꿈꾸는 가운데

이런 것 저런 것 본 것을

깨어서 남에게 말하며

서로 향하여 이야기하나니.

'걱정 말고 웃지도 말라.

네가 장차 좋은 일 있으면

이 일이 빨리 이룩되리니

다시는 근심 걱정 말라'고.

자주 촌·읍에 쏘다니며

동작이 볼 모양 없이

마치 방정맞은 원숭이가

얼굴과 눈을 희번덕거리듯.

어느 부락에 들어가

여인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과

별해탈계법을 내버리나니.

시주의 집을 나와서는

물건의 다소를 따지면서

적으면 준 사람 나무라기

그 집안 권속도 훼방하나니.

그 다음 서로 만날 적에

서로 물어 말하기를

'무슨 물건, 무슨 음식을 얻었는가.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먹었다'고.

대강 말하노니 이러한 일로

백 년 동안 지나리로다.

이렇게 익히어 생각하면서

스스로 그 목숨 살려가지고.

맛있는 포도술이며

향과 꽃을 서로 다투며

'그 몸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것을 구하여 병뇌(病惱)를 적게 한다'고.

가령 백 불이 출현한들

저 사람을 어찌할 수 없나니

닦을 바 행을 버리니

속인과 다를 것이 없도다.

그 몸을 사랑하고 보호하여

'나[我]'·인상(人相)을 여의지 못하노니

그가 이러한 행을 짓고는

반드시 악취에 떨어지리니.

만일 바른 법을 비방하면

무거운 괴로움에 불타게 되나니

깨침의 슬기 없는 범부여,

속인과 다를 것이 무엇이리.

만일 모든 석사자(釋師子)로서

실행(實行)을 닦는 성문일진대

목숨을 살리는 인연으로써

적은 계라도 헐지 않으리.

슬기로운 이는 밥을 탐내지 않고

항상 무거운 짐이라 생각하여

몸은 부정한 것이라는 관법[不淨觀]을 닦아

시주의 빚을 돌려 갚나니.

욕심의 번뇌를 여의므로

온갖 법을 깨달아 아나니

나는 이런 것을 듣고

이 가르침 가운데 출가하였네.

슬기로운 이는 법을 듣고는

저 말한 바 공한 이치[空性]에

쉼 없이 부지런히 구하여

세상 것이 모두 다 진실치 않은 줄을.

용맹스럽고 슬기로운 이는

공한 이치를 깨달아 알아서

능히 마군을 겁나게 하나니

그는 넉넉히 공양을 녹이리.

만일 탐착심을 여의어

공한 성품 무너버림 없으면

불자로 매우 씩씩한 사람이라

인간·천상의 공양을 받으리.

바른 법이 장차 멸하려 할 제

세상 사람들 어리석기만

부드럽고 선량한 비구로서

부지런한 자 구하기도 드무리.

슬기로운 자 마땅히 걱정하라.

오래지 않아 자멸될 것을

그 뒤에 낮이고 밤이고

'나[我]'가 있다고 이야기할 뿐.

세간을 구호할 이 그 누구리.

오직 사람 중 높은 이가 있을 뿐

배울 것을 닦아 행하는 이도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는.

저들은 이러한 밀의언(密意言)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부처와 위없는 바른 법을

공경할 줄을 알지 못하나니.

바른 법이 없어지려 할 제

부지런히 정진할지니

잠깐 사이라도 법을 들으라.

오래지 않아서 못 들을 것을.

대보적경 제3권

그때에 존자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매우 기이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사람들이 이 경을 듣고 세속 여읠 마음을 내지 않사오리까?”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중생이 사법(四法)을 성취하면 이 경을 듣고도 세속 떠날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사법이라 함은 게으름이 많은 까닭이며, 지은 업이 다른 때에 과보 받을 것을 깊이 믿지 않는 까닭이며, 또한 큰 지옥을 깊이 믿지 않은 까닭이며, 내가 꼭 죽는다는 것을 살펴 믿지 않는 까닭이니라. 만일 사람이 이 사법을 성취하면 세속 떠날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가섭아, 다시 중생이 사법을 성취하면 세속 떠날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사법이라 함은 아이가 젊을 때에는 자기의 힘을 믿으며, 욕락에 탐착하며, 술 마시기를 즐겨하며, 밝은 사유관(思惟觀)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니라. 만일 사람이 이 사법을 성취하면 세속 떠날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가섭아, 만일 비구가 사법을 성취하면 '불보리'를 비방하느니라. 사법이라 함은 본래 지어온 악업이 이미 성취된 까닭에 바른 법을 훼방하느니라. 이런 비구는 스스로 착하지 못한 이숙(異熟)의 모든 악업을 드러내지 않는 까닭이며, 비구에게 음욕을 행한 까닭에 그는 화상(和尙)이나 혹은 아사리(阿闍梨)와 많은 사람들이 공경하는 '불보리'를 비방하느니라. 이런 제자는 스승을

따라 배울 적에도 또한 비방하느니라. 들은 것이 적은 자는 질투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부처님을 훼방하느니라. 비구가 이러한 사법을 성취하므로 '불보리'를 비방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한 가지 법이 있으면 사문과 바라문을 얻어 이루리니, 하나라 함은 온갖 법에 마음이 머무름이 없는 것이니라. 이러한 한 가지의 법으로 사문 및 바라문을 이루느니라. 마치 사람이 높은 산꼭대기에서 떨어질 적에 대지의 풀·나무·숲이 없다고 하여 오직 허공뿐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숨[出入息]이 곧 막히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모든 법에 집착한 자도 또한 그러하니라. 만일 눈이란 생각과 또는 눈의 모양[相]에 집착하거나, 귀·코·혀·몸·뜻이란 생각과 뜻이란 모양에 집착하거나, 만일 물질[色]·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에 집착하거나, 정계(淨戒)·다문(多聞)·참괴(慙愧)·경행(經行)·왕래·보리를 얻는다는 생각에 집착하면 곧 해가 되니 무엇에게 해침이 되는가. 탐냄·성냄·어리석음이 그것이니라.

만일 눈의 모양에 집착하면 사랑할 것, 사랑하지 못할 것의 색상(色相)에 집착하는 까닭에 눈의 해침이 되느니라. 이와 같이 귀·코·혀·몸·뜻의 모양에 집착하면 사랑할 것, 못할 것의 모양에 집착하는 까닭에 뜻의 해침이 되느니라. 만일 해를 입으면 지옥·축생·아귀·인간·천상 가운데 해침이 되느니라.

무엇을 인연하여 해를 입는가. 생각의 집착으로 말미암음이니, 무엇을 생각의 집착이라 하는가.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가과 계집이란 생각·사내란 생각·지(地)·수(水)·화(火)·풍(風)이란 생각·백골이라는 생각·무너진다는 생각·푸르뎅뎅하고 어혈진 모양의 생각·피가 번지르르한 생각·색깔이 변한 생각·사지가 여의어 흩어진다는 생각·뛰어난 해탈[勝解脫]이라는 생각·저는 조금 뛰어난 해탈을 얻었다는 생각·이는 조금 거룩한 해탈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한량 없는 숙명통[宿住]이 있어 생각을 따라 증득[現證]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내가 생각을 따라 헤아림[想]은 과거와 다르고 현재와 다르지만 '나는 이 과거다, 나는 이 현재다'고 하여 모든 법에 생각을 일으키며, 열반이란 생각·내가 열반을 얻었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요컨대 집착이란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생각을 일으키어, 공성(空性) 가운데 일체의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다 사문·바라문을 이룩하는 법이 아니며 사문의 행이 아니며 바라문의 행이 아니니라.

가섭아, 여래가 말하는 사문법·바라문법이란 것은 마치 허공과 대지와 같으니라. 왜냐하면 허공은 끝내 내가 허공이라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가섭아, 사문·바라문은 끝내 내가 사문·바라문이라고 이르지 않느니라. 사문법·바라문법이란 것은 만드는 것도 아니고 없애는 것도 아닌 것, 이것이 사문·바라문이 되느니라.

가섭아, 마치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밤에 손과 팔을 휘두르고 얼굴과 눈을 흔들면서 말하기를 '내가 세상을 희롱한다, 내가 세상을 희롱한다'라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가 누구를 희롱함이 되느냐?”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스스로를 희롱함입니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 희롱할 만한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만일 비구가 아란야(阿蘭若), 혹은 나무 아래 빈집·한데[露地]에 앉아서 이렇게 생각한다. '눈이 무상(無常)하다. 귀·코·혀·몸·뜻이 무상하다' 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빛[色]이 무상하다. 소리·냄새·맛·부딪침·법이 또한 무상하다'고. 이 생각을 하고는 '내가 열반에 나아간다'고 하나니 이런 종류는 스스로 수고로울 뿐, 사문의 행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여러 가지 사집(邪執)이 있기 때문이니라. 눈의 상[眼相]을 알고는 그 상을 없애기 위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히나니 이와 같이 귀·코·혀·몸·뜻의 상을 알고는 뜻을 없애기 위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히느니라.' 만일 3처(處)에서 분별해 알고 믿고는 곧 삼처에 분별을 내느니라. 만일 모든 견해에 분별을 일으키면 어떻게 능히 마음의 통일된 경지[心一境性]를 얻겠느냐?

가섭아, 매우 깊은 보리는 들어가기 어렵고 나아가기 어려우며 자량(資糧)을 갖추기 어려우니라. 마음의 통일된 경지란 어떤 것을 말함인가. 널리 찾아보아도 한 법도 얻지 못하나니, 말하자면 눈에 실다운 것을 얻지 못하며 귀·코·혀·몸·뜻에 또한 실다운 것을 얻지 못하며 온갖 법에 다 실다운 것을 얻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본성이 이러하여 심성이 나지 않나니 온갖 법에 실다운 것을 얻을 것이 없으므로 저 마음을 얻지 못하느니라. 과거·미래·현재에 얻을 것이 없는 까닭이며 조작할 것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것은 조작할 것이 없는 가닭이니 이것을 조작할 수 없는 것이라 이르느니라. 어찌하여 조작할 것이 없다고 하는가. 새 것이나 묵은 것이나 함께 조작할 것이 없는 것을 조작할 것 없다고 이르느니라. 이 가운데 과거의 마음도 해탈하지 못하며, 현재의 마음도 해탈하지 못하며, 미래의 마음도 해탈하지 못하나니 그 마음에 따라 얻을 것이 없는 것, 이것을 마음의 통일된 경지라 하느니라. 이것을 마음의 수(數)에 든다고 하느니라.”

가섭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미래세에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있어서 눈 등의 모양에 집착하여 그것을 없애 버린다고 말하면서 모든 온(蘊) 가운데 물(物)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나니 여래께서는 '온이 꿈과 같다'고 말씀하셨나이다. 그러나 그들은 꿈이 실로 있다고 말하나니 그 까닭은 세간에서 이 꿈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꿈이 없었을진대 우리들이 꿈이란 것이 있다고 표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이 잠자고 꿈꿀 적에 꿈이란 생각을 일으키나이다.”

“그렇다. 온에 인연함이 있으므로 꿈과 같다고 말하느니라. 만일 온이 없었을진대 꿈과 같다고 말하지 않으니라. 저 어리석은 사람은 꿈이 실로 있다고 하므로 이 경을 듣고는 비방하리라.

그 가운데 비구니 등이 시주 집에서 망령되게 '내가 아라한의 과를 얻었다'하며, 혹은 옅은 지혜로 '내가 도를 얻었다'고 말하느니라. 만일 우바새·우바이 등이 경(經)·율(律)을 들으면 '내가 도를 얻었다'고 말하느니라.

가섭아, 그때에 만일 어떤 비구가 이십년·삼십년 동안 조용한 절에서 부지런히 공부하다가 불법을 위하여 처음 믿는 우바새 곁에 가서 오직 빈말로 서로 이론하되 공(空)·공(空)을 말하므로 '내가 이미 알았다. 내가 이미 알았다'고 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가 이 경을 듣고 서로 향하여 이야기하거든 어떤 사람이 듣고 문득 겁내어 말하기를 '저 재가(在家)나 출가인들은 마땅히 가까이할 것이 아니요, 멀리 여윌 것이다. 그들은 교사(敎師)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 만한 사람도 서로 가까이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하느니라. 다시 매우 깊은 법을 연설하는 이가 있으면 여러 재가·출가인들에게 버림받고 천히 여김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오늘에 거룩한 범행(梵行)을 말하더라도 오히려 아는 자가 적으니 하물며 미래세는 조금 아는 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설법하는 비구 천명 가운데 능히 사실대로 알고 믿어 들어오는 자는 하나도 있기 어려우며, 내지 이천 명이라도 또한 그러하리라. 그 가운데 어떤 비구들은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나니 하물며 잘 알겠는가.

가섭아, 그때에는 재가와 출가인이 같이 교훈을 가볍게 여기느니라. 만일 비구가 부지런히 정진하여 불선법을 줄게 하고 선법을 늘게 하기 위하여 밤과 새벽으로 잠을 많이 줄이고 정진하여 닦으면 다른 사람에게 흉보고 버림받게 되며, 혹 목숨을 끊으며, 이런 경을 헐어 없애리니 법을 지니는 비구도 또한 다 없어지리라. 그 가운데 슬기롭고 물듦 없이 법을 잘 아는 자는 마땅히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여 같이 모여 조용한 절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말한 착한 법은

제일의와 서로 맞나니

온(蘊)은 견실(堅實)함 없어

마땅히 꿈과 같다 관찰하라.

그때의 비구들은

투쟁심이 많아서

높고 낮음을 가림 없이

오직 빈 명목만 있으니라.

비구가 말하는 것은

세속도 그렇게 말하리니

이와 같은 교법은

도(道)·속(俗)의 말도 같도다.

비구가 속인에게 말하기를

'네가 법 닦는 것이 희유하도다

이것을 불보리라 이르나니

이미 초지과(初地果)를 발하였다'고.

그는 마음으로 법을 보았다 하고

재가(在家)를 가까이하면

그는 비구를 받들어 보시하여

최상의 공양을 바치느니라.

이런 비구의 말과 같이

틀림없이 다 참되다 하여

그와 더불어 서로 친하여

'나도 능히 법을 보았다'하리라.

그때에 나는 이는

보시를 위해 집을 떠나서

바른 법에 머물지 않고

'보리도'를 헐어 부수리라.

'나는 너에게 도를 보인 자니

나를 친하고 다른 이는 가까이 말라.

오래지 않아 너의 얻음도

또한 나의 얻음 같으리라'고.

'이 가장 적정(寂靜)한 지위는

너에게만 서로 말할지언정

여러 대중에게 말하면

나의 교법을 파괴하리라'고.

마치 촌락을 겁박(劫迫)하는 도둑이

흉험한 마음을 품고

모든 국성(國城)과

큰 부락을 파괴하듯이.

비구도 그러하여

지혜 없고 어리석음 많아

슬기 적으므로 온갖 허물 일으켜

목숨에 집착해 자주 육취(六趣)에 드나니.

내가 말한 바 교법 여의고

모든 사견(邪見)에 의지하여

이것이 아라한(阿羅漢)이라 말하나니

다 증상만(增上慢)을 지님이니라.

큰 화합중(和合衆)이 모인

모든 비구들 앞에서

자기의 지혜와 명예를 말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도 얻기 어려우니라.

혹 어떤 비구가

여실(如實)의 도에 머무르면

그를 악지식[惡名聞]이라 비방하며

불자 아니라고 말하나니

법왕(法王)의 큰 보리도

그때에 비방을 받나니

하늘 무리가 걱정하고 슬퍼하여

서로 향하여 눈물을 뿌리며,

저 신심(信心)의 하늘에 대하여

몸을 스스로 땅에 던지며

이 석사자(釋師子)의

위없는 법의 수레 쓰러짐을 보고

'거룩하셔라 부처님이시여

장하여라 말씀하신 법문이여

기특하셔라 복전승(福田僧)이시여

부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로다.

우리들이 다시는 법왕의

말씀하신 법을 듣지 못하고

모니(牟尼)께서 이에 열반에 드시매

지각 없이 미혹할 뿐이라' 하리.

지거천(地居天)이 뒤를 이어

큰 목소리를 떨치어

모든 하늘에게 외치기를

'법의 횃불이 장차 꺼지려 하나니,

너희들이 부처님 법 듣더라도

여래를 친근하지 않으면

뒤에 하늘[天]·용(龍)의 몸도 잃으리니

장차 회한(悔恨)만 품으리.

무수 겁을 지내시면서

나를 위하고 또는 남을 위하여

온갖 괴로움 받으시고

그제야 비로소 부처되셨네.

이것은 모든 부처님께서

온갖 중생들 위하시와

말씀하신 거룩한 법문이

이제는 장차 멸해 버리고.

외도[矯亂人]만 세상에 나타나서

함부로 온갖 죄악을 지어

마군의 무리와 악마가

제 마음대로 사나운 말하나니,

아첨하고 간사하며 우둔(愚鈍)한 것이

어리석은 중생들을 광혹(誑惑)하나니

화를 내거나 안 내거나

스승과 그 가르침을 훼방하도다' 하리.

지거천의 소리를 듣고

윗 하늘이 다 슬퍼하며

사람과 사왕천이

다 근심 걱정을 품도다.

야차들이 모두 와서

아타벌지성에 모이어

떨리는 음성을 내면서

슬픈 눈물을 흘리도다.

온갖 보배로 꾸민 천궁(天宮)과

성곽의 미묘한 장엄도

다 광채를 잃고

마치 흙무더기 같으리.

'국성(國城)이 옛적과 달라졌구나

사랑하고 즐거워할 만하더니

이제 보배의 성을 보니

잠깐도 즐거울 것 없도다'고.

모든 하늘이 함께

부처님[善逝] 옛 나라에 나아가서

발굴러 뛰며 부르짖으며

크게 슬픔과 괴로움에 북받쳐

'내가 하늘에거 내려와

모든국성에 나아가 보니

참된 법은 다 멸해 버리어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네.'

염부제(閻浮提)에 이르러서

법이 죄다 무너짐 보고

모든 출가인을 핍박하면서

소리 내어 부르짖어 울며

훌륭한 성(城)이 칠일 동안에

어디나 다 빛을 잃고

하늘도 또한 칠일 동안에

자주 슬퍼하고 자주 울면서

'슬프도다, 대웅존(大雄尊)이시여,

옛적에 친히 받들어 뵈었더니

어찌하여 이제 뵈올 수 없고

말씀도 또한 사라지셨네.

일찍이 사위성(舍衛城)에 계실 적에

가서 뵙고 공경했더니

이제 그 경계 안에서

자주 슬퍼하고 자주 울었네.

부처님이 앉으시던 숲에는

부처님이 일찍이 이곳에서

사제(四諦]의 법바퀴 굴리실 적에

우리들도 친히 들었었도다.

세간이 도리어 어두워지며

다시 서로 존경치 않으며

이미 온갖 죄의 씨 뿌리어

삼악취에 떨어지나니

하늘 무리의 많은 궁전이

이제 다 텅 비었으며

염부주 모든 중생은

그 누가 구제할까?

부처님이 거니시던 곳도 허물어져 잡초만 우거지고

법왕은 이미 가셨으니

세간에 즐거울 것 없네' 하리라.

삼십삼천의 왕 모임에

제석이 그 가운데 서서

번민하고 걱정하면서

높은 소리로 슬퍼하도다.


모든 도리천의 무리들도

손 들어 슬피 애도할 때에

듣자니 동산 가운데서

뒤따라 다 울었다네.

이들 하늘 무리가

항상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슬프도다, 부처님께서

언제 다시 법 설하시리.'

감로(甘露)도 먹으려 않고

노래·풍악도 끊어 버리고

이러한 모든 하늘이

근심 속에서 유월을 지냈네.

아수라(阿修羅)는 들었다.

설법하는 이 없다는 소식을

곧 서로 외쳐 부르며

군사 일으켜 도리천을 치자고

염부주 모든 왕들도

불법을 허는 이 많아

아수라는 하늘과 더불어

그때를 타서 서로 싸우네.

많은 비구와 비구니는

악취 가운데 태어나서

온갖 고통 모두 받으리.


[62 / 3476] 쪽

재가(在家)도 온갖 죄 짓고

우바새·우바이도 금계를 헐고

서로서로 악명(惡名)을 날리나니

이 까닭에 괴로운 길에 나리.

여인도 나쁜 짓 하고

다 같이 악도에 드나니

이런 일 일어날 때에

세상 안정치 못하여

어떤 때엔 촌락으로 떠돌고

혹은 산숲에 숨나니.

사람 무리가 많은데

수명이 짧고 빨라

도둑이 일어나고

흉년에 굶주림 많네.

오곡이 여물지 않고

황충 등 재앙이 일어나

이러한 기근(飢饉)의 세상에

굶주려 목숨이 지면

곧 다시 아귀(餓鬼)에 태어나

온갖 맵고 씀 받으리.

탑과 절에 시주한 것과

여러 스님에게 베풀어 준 것

그때의 모든 비구가

다 같이 나누어 가지나니


[63 / 3476] 쪽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이러한 고통이 일어나리니

재빨리 정근(精勤)하여서

다시 뒤돌아보지 말라.

어리석은 중생들이여,

지혜 없는 사람들이여,

어리석은 짓[業] 이루어지면

바로 저 악취에 떨어지리니

읽고 외우고 말하기를 즐기라

지혜가 이로부터 느느니라

사람이 슬기로운 마음 닦으면

재빨리 좋은 곳에 올라가리니

항상 지혜로써 관하여

내가 하듯이 배워 가면

길이 매이고 얽힘 여의고

재빨리 열반에 이르리.

바른 법[正法]이 오래 머물지 않나니

마땅히 굳은 정진(精進)을 발하라.

내가 이미 이렇게 말했으니

재빨리 바른 생각 닦을지니라.

이 현겁(賢劫)이 지나가면

육십겁이 차도록

부처님 이름도 못 들으리니

어떻게 신락심(信樂心) 낼 수 있으리.


[64 / 3476] 쪽

사람이 서로 만나면

굶주림의 괴로움에 핍박되어

어미와 자식이라도 이때가 되면

서로서로 고기를 먹나니.

이때에 태어난 자식이

집을 나가도 편안치 않고

제 집에 잇어도 떨리나니.

이런 일 보고 듣고는

나고 죽음이 불구덩이 속

그 어떤 슬기로운 사람이

이 속에 애착심 내랴.

무명(無明)의 생(生)의 근본

여인은 애욕의 근본

5온(蘊)은 번뇌의 근본

그러므로 이것 다 놓아 버리라.

세상에 어리석은 중생은

욕심에 탐착하나니

능히 이 어리석음 여의는 자

재빨리 열반을 얻으리.

이 법을 연설할 때에

나쁜 과보를 만나지 않나니

유루(有漏)의 과(果)의 법은

악취에 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65 / 3476] 쪽

온갖 무루(無漏)의 법은

비고 비어 있는 것이 없나니

적정하여 본래 굳건함 없나니

마땅히 재빨리 깨칠지니라.

“다시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나 혹 어떤 중생이 능히 이 제일법을 성취하여 무루법(無漏法)을 구하는 이는 마땅히 이런 말을 하느니라. '온갖 법에 마음의 머무름이 없다.'

다시 가섭아, 보살이 마땅히 굳게 닦아 익힐지니라. 어떤 것을 '굳음'이라 하며 어떤 것을 '닦아 익힘'이라 하느냐? '굳음'이라 함은 말하자면 '굳은 마음·굳은 정진'이니라.

어떤 것을 '굳은 마음'이라 하는가. 보살이 생각하되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을 공양한 연후에 한 생각 마음을 내어서 불도를 구하리라. 다시 항하의 모래처넘 많은 겁을 지나서 한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시니라. 왜냐하면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마음을 일으킨 때문이다. 한 번 사람의 몸을 얻으며 이렇게 항하 모래수처럼 많은 사람의 몸으로 비로소 한 구(句)의 법문을 얻어 들은 지혜 광명(智慧光明)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큰 이익을 지으리라'고, 마땅히 이와 같은 굳은 마음을 일으킬지니라.

또 '갖가지의 방편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거두어 잡아들이며 갖가지의 고행으로 그 지혜 얻기를 희구(希求)하고 갖가지의 고행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겠다'고 하나니 다시 이러한 굳은 마음이 있어야 하느니라.

다시 가섭아,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비유를 들겠노라.이런 비유로 말미암아 슬기로운 사람은 능히 그 말뜻을 깨닫느니라. '이러한 갖가지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능히 보리를 얻는다면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에 마땅히 쉬지 않고 닦으리라. 만일 항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에 쉬지 않고 닦으면 곧 무상보리를 증득하리라'고. 마땅히 이러한 굳은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큰 세력이 되어 정책을 삼아서 끝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놓아버리지 않느니라. 이러한 굳은 마음을 발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보살이 이러한 마음을 일으킨 자는 어떻게 거두어 주는가.


[66 / 3476] 쪽

말하자면 옳은 이치[處]에 취하지 않으며 이치 아닌 데[非處]도 취하지 않느니라. 어찌하여 옳은 이치와 이치 아닌 데 취하지 않는가. 만일 이치와 이치 아닌 데 취함이 있으면 위없는 깨침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니 옳은 이치와이치 아닌 데에 취하지 않으므로 빨리 위없는 정등각(正等覺)을 얻느니라.

가섭아, 마치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보배를 가져 보시하는 것과 만일 이러한 경전에 여래가 말한 바를 보리에 수순하여 받아 지니고 믿음으로써 머무르면 그 복이 저것보다 갑절이나 되느니라.

가섭아, '보살이 이러한 굳은 마음이 있지만 굳은 마음이란 생각도 지니지 않으니, 수행이 쉼이 없느니라.

말한 바 '닦아 익힘'이라는 수행에는 몇 가지가 있느냐? 약간의 수행법이 있느니라. 만일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면 능히 알아 깨치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저 법은 표시할 수 없는 까닭이니라. 그러나 이 가장 거룩한 법은 말하자면 견고(堅固)한 심성(心性)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 없는 데서 마음을 일으키면

장차 큰 두려움이 있으리라.

내가 응당 이룰 것도 이루지 못하리니

이 일이 어찌하여 그런가.

항상 심사(尋伺)를 일으켜

한쪽 가에 머물러 있으면서

바른 법을 비방하나니

보리를 얻지 못하리로다.

이것이 게으름뱅이의 마음씨요

보리의 참모습이 아니로다.

이 사람 모두를 의심하나니

부처님과 성문(聲聞)까지도


[67 / 3476] 쪽

닦지는 않으면서

성현되기를 바라나니

다만 말만으로는

안락(安樂)의 과보 이룩되지 않으리.

믿고 즐거워하는 마음 지니면

능히 넓고 큰 법[廣大法]을 이루나니

오직 마음만으로

거룩한 결과를 얻지 못하리.

오직 한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할 일을 다하나니

그것이 기특한 줄을 알거든

부처되고자 닦을지어다.

“가섭아, 보살이 이 법을 성취하면 모든 부처님을 친근·공양하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내가 장차 여래·응공(應供)·정등각을 얻으리라'고 예언할 수 있으리라.

가섭아, 재가 보살이 세 가지의 닦는 법이 있으면 능히 보리에 유익하리라. 세가지라 함은 온갖 지혜를 위하므로 깊이 애락심(愛樂心)을 내며 본래의 하던 짓에 덜어지지 않으며 굳게 오계(五戒)를 지니는 것이니라. 이 세 가지를 갖추면 능히 여섯 가지의 법을 이루리라. 어떤 것이 여섯이냐? 말하자면 좋은 곳에 태어나는 것, 나는 곳마다 벙어리나 어눌하거나 귀머거리가 되지 않고 총명한 것, 몸이 단정하고 속히 깊은 믿음을 얻는 것, 매우 깊은 법에 두려운 마음을 내지 않은 것, 법을 듣는 대로 힘들지 않게 잘 받아 지니는 것, 능히 알아 깨달아도 재빨리 물러남 없는 지위를 얻는 것이니라. 이 육법에서 마땅히 다섯 가지 장애에 굴려짐을 알아야 한다. 다섯 가지 장애라 함은 말하자면 이간질·거짓말·성냄·질투심·탐욕, 이러한 오법이 장애의 굴려짐이 되느니라.


[68 / 3476] 쪽

다시 세 가지의 법을 마땅히 닦아 행할지니라. 세 가지라 함은 말하자면 항상 마음을 일으켜 집을 떠나고자 하는 것이며, 계를 지니는 사문·바라문에게 존중하고 공경하며, 외도로서 설법을 하거든 마땅히 멀리 여의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마땅히 그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이니 만일 배운다면 썩은 풀[腐草]을 짊어진 것 같으니라. 왜냐하면 불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만일 그것을 짊어진다면 곧 집착이 되나니 저 바보와 같은 것이니라. 이러므로 그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이니라.

다시 가섭아, 보살이 또 세 가지의 법을 받아 배울지니라. 세 가지라 함은 항상 모든 부처님께 수순하며, 남을 위하여 연설하고 스스로 부지런히 수행하며, 저 중생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라. 이 세 가지를 닦아 배울지니라.

다시 세 가지의 법을 친근할지니라. 세 가지 법이라 함은 남을 내질[捶打]하지 않으며, 남을 훼방하여 업신여기지 않으며, 공포심을 가진 이에게 두려움 없는 힘을 베푸는 것이니라. 마땅히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친근할지니라.”

그때에 세존게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하열(下劣)한 사람 친하지 말고

정직치 못한 이 보거든

보는 즉시 멀리 여의라.

마치 독사를 피하듯.

외도 따라 배우지 말고

예경도 말고 멀리 여의라.

마치 사나운 개가

개떼 속에 있는 것을 보듯이.

사견에 집착한 사람에게

배우면 같이 악한 길에 나리니

거룩한 공(空)의 법 듣거든

마땅히 애락심 낼지니라.

공의 법을 즐기는 비구에게

마땅히 존경심 일으키면

많이 듣는 길을 넓혀가며

날카로운 지혜의 마음 내게 되리.

뛰어난 보리(普提)를 친근하는 이에게

중생은 마땅히 경례하여

부지런히 그 가르침 받으면

얼른 모든 착한 뿌리를 내게 되리.

지혜의 마음 길러 내기를

연꽃이 물에 나 있듯이

들을 만한 법을 많이 들으면

불어날 선(善)은 얼른 불어나리.

지혜의 마음을 길러 내어

능히 온갖 번뇌 끊으며

큰 위덕 두려움 없이

큰 지혜로 정근(精勤)하라.

남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는

자기의 이익을 더 충실하여

세속에 있더라도 마땅히

남 매질하는 일 버릴지니라.

원 세우고 보리 구하며

불법에 물러감 없으면

병 없고 단정한 모습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하리.

만일 자비로운 마음 닦아 익히면

모든 악도 놓아 버리고

삼십삼천 위에 태어나

오욕(五欲)으로 스스로 즐기라.

하늘에서 목숨이 다하여도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짐 없고

이 인간에 태어나되

늘 호귀한 종족의 집

몸과 얼굴이 단정하여

사람들이 허물함이 없으며

하늘·용이 수호할 것이며

법을 따라 올바로 수행하리.

훌륭한 곳에 태어나서

사람들이 애중히 여길세라

잘 때에도 안온히 잠들고

깨어도 마음 또한 편안하리.

하늘이 항상 옹호할세라

끝내 공포심 없나니

이 넓고 큰 법이

이러한 거룩한 모습 있나니

집에 있거나 혹 집을 나가거나

다시 큰 요익(饒益) 있으면

많은 사람의 착한 뿌리[善根]를

개발시키고 억념(憶念]케 하나니

겁먹는 자에게 안온을 주어

보리과에 달려 나아가게 하여

다른 신이나 하늘 섬기지 않나니

오직 온갖 지혜를 내어 놓고는

이 사람은 정도를 얻어

온갖 지혜와 서로 응하리.

이러한 모든 착한 뿌리로

삼악도를 놓아 버리리.

지혜를 얻고 삼명(三明)을 얻어

삼학(三學)을 잘 배우면

지은 공덕과 같이

그에게 으레 경례하리니

홀로 중생의 어른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경례하나니

여래를 예경하는 자는

무리 가운데 최상이 되리.

재가 불자의 위치에서

만일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노니

너와 함께 들을지니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마땅히 세 가지 법을 성취할지니라. 세 가지 법이라 함은 마땅히 세간의 유희와 방일과 서로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며 좋은 날과 길한 때를 선택하는 일을 여의며, 항상 청렴하여 많이 받아들이는 것을 여의며, 다시 정진하여 배움을 닦고 많이 들을지니 보살이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성취할지니라.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마땅히 받아 수행할지니라. 세 가지라 함은 설법자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는 것, 마땅히 설법하는 사람을 권청하는 것, 항상 등촉을 밝히는 것이니, 이 세 가지의 행을 닦을지니라.

다시 가섭아, 세 가지 짓을 끝내 하여서는 아니 되느니라. 만일 하는 자가 있으면 여인의 몸을 받으리라. 세 가지라 함은 그 어머니가 바른 법을 듣거나 비구를 보는 것을 가로막지 말 것이며, 아내가 비구를 보거나 바른 법 듣는 것을 가로막지 말것이며, 그 아내에게 길 아닌[非路] 데를 범하게 하지 말지니라. 이러한 세 가지 법을 끝내 하지 않을 것이니 만일 하는 자가 있으면 곧 여인의 몸을 받으리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항상 깨끗한 신심으로

등불을 밝혀 빛나게 하면

그 과보로 티끌이 없어

깨끗한 부처눈 얻으리로다.

이 눈으로 말미암아

알아야 할 모든 법 깨달아 알고

만일 알 것을 깨달아 알면

과거의 법도 알게 되리라.

현재를 아는 것도 또한 그러나

미래는 분별치 않나니

세 가지의 모습이 없지만

이에 세 가지 모습이 있도다.

이 제삼의 모습 놓아 버리면

상(相) 있는 것 곧 무상(無相)이라 이름하리.

부처님 말씀하신 모든 감관[根]이

다 같이 일의(一義)가 되나니

그러나 법은 근본이 없건만

이곳에 분별을 일으키므로

미묘한 보리를 잃게 되나니

깨끗이 부처눈 닦은 뒤에는

눈앞에서 온갖 법 증득하리니

이 글[句]이 곧 보리의 경지

위에서 열어 보인 바와 같이

법은 능히 보일 것이 없으며

또한 능히 헐 수도 없나니

모든 법이 허공과 같은 것.

이러므로 열어 보이어

길잡이[導師]가 이 뜻을 펴나니

재가(在家)을 위하여

'항상 등촉을 밝히면

부처눈 얻어 깨달아 알고

저 설법을 방해 말라'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끝내 삼악도에 가지 않고

장님의 과보 받지 않으며

능히 항상 남에게 권하여

최승(最勝)의 교법 드날리면

이 착한 뿌리의 힘으로

최상의 법바퀴 굴리게 되리.

만일 사람이 그 어머니에게

법 배우기를 방해하면

못생긴 여인의 몸 받고

장님·꼽추로 죄보가 많으리.

온갖 빛깔 보지 못하고

또한 소리도 듣지 못하며

캄캄한 곳에 머물게 되나니

마치 박쥐 족속과 같이

아내에게 질투심 내어

법 듣는 일을 방해하면

이곳에서 빨리 목숨이 끊어져서

가장 못난 여인 몸 되어.

노랑 터럭에 퍼런 눈동자

그렇지 않으면 소경되거나

절름발에 독한 마음 품고

귀머리거리에 수다스런 이버릇

이런 종류의 처소에서

온갖 나쁜 몸 받고서

항상 욕정의 인연으로

남편에게 질투심 내나니.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세 가지 짓을 하지 말지니라. 세 가지라 함은 만일 남에게 물건을 베풀 적에 설사 적은 우유 등이나 혹 베풀기 어려운 많은 물건이 있을지라도 주인이 청하지 않거든 베풀지 말지니라.

남이 집을 나가겠다거든 그것을 만류하지 말고 출가하지 않은 자는 마땅히 권유하여 출가케 할지니라. 여래의 탑묘(塔廟)를 건립함을 보거든 마땅히 도와 주되 그 때문에 재물을 취하지 말지니라. 이러한 세 가지 법은 재가 보살이 마땅히 하지 말지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에게 공덕재(功德財)를 베풀거든

이치 아닌 데는 주지 말지니라.

무거운 것은 곧 죄를 얻나니

베푸는 것을 못 막는 때문,

신자가 나와서 베푸는 앞에

합장하고 엄연히 서라.

그 가운데 심부름꾼이 적어서

스님의 일 돕고자 하거든

마땅히 시주에게 말하라.

모자라는 힘 돕도록 하라고.

음료[水獎]며 국거리거나

나머지 가벼운 물건이라도

시주의 마음 어기게 되면

남의 원망을 사게 되리니,

만일 출가하려는 자 있거든

혹 자식이거나 친속이거나

보살은 마땅히 그에게

붙들어 말리지 말지니라.

원컨대 중생들 안락하기를

원컨대 열반을 증득하기를

나의 좋은 뜻 흔연스럽게

원컨대 위없는 법[無上法] 말하기를.

그 허물을 알고는

다시는 제 몸 더럽히지 않으리.

길이 캄캄한 밤에 슬퍼함은

번뇌의 악마에 물들기 때문.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세 가지 일을 마땅히 행하지 말지니라. 세 가지라 함은 사내나 계집을 판매하지 말며, 또 남에게 독약을 주지 말며, 만일 그런 짓하는 자가 있거든 친근하지 말지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내를 팔거나

또한 계집을 팔지 말라.

독한 약을 남 주지 말며

그런 자를 보거든 멀리 여의라.

중생을 괴롭게 한 까닭에

모든 하늘이 꾸짖나니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근심의 화살 맞아 다치리.

긴 밤에 시름 쌓이고

온갖 괴로움이 몸을 핍박하며

또한 단명하리니

그런 짓 하지 말지니라.

이 허물과 저 허물도

나는 다 그 원인 밝게 아나니

이제 모든 보살들 위하여

대강 그 일부를 말하였노라.

“다시 가섭아, 제가 보살이 세 가지의 마땅히 하지 않을 짓이 있으니, 세 가지라 함은 음녀(淫女)의 집에 들어가지 말며, 중매꾼을 친하지 말며, 도살장 부근에 머물지 말지니, 이러한 세 가지 짓을 하지 말지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음녀의 집에 이르지 말라.

부정한 음행을 업으로하나니

세상 사람의 비난을 받으리라.

하천한 사람을 가까이한 까닭에.

존자가 만일 그것을 알면

당장에 흉보고 나무라리니

병 얻어 몸 해치니

그로 인하여 목숨이 마치리.

사내와 계집 중매하는 자

그런 이는 마땅히 가까이 말라.

남의 딸 꼬여 결혼시키는 이

가까이하면 비난 받으리.

소·돼지 잡는 백정의 집에

또한 마땅히 나아가지 말라.

보살·선지식 그 누구든지

다들 그에게 칭찬 않으리.

이러한 깊은 허물과 걱정

여래가 다 잘 알고는

부정(不正)한 행자를 위하여

실답게 내 이제 말하노라.

세존의 가르침을

제자는 능히 알아

이 사람 부처님 앞에

제 갈 곳 능히 찾아 나가리.

중생들이 성도(聖道)에 머무른다면

재빨리 열반에 이르게 되리.

부처는 이 사람 위할 것이요

악행자(惡行者) 위하여 말함은 아니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마땅히 세 가지 법을 성취할지니라. 세 가지라 함은 집에 머물러 있어 자기 신명을 관찰하되 손님[過客]과 같이 생각하며, 이미 베푼 물건에 쌓아 놓은 생각을 일으키고 베풀지 않는 것은 멀리 나를 여의기 백 유순이나 된 듯이 생각하며, 처자를 위하여 쌓아 두려는 생각을 하지 말지니, 재가 보살이 마땅히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성취할지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죽는다는 생각을 항상 닦으라.

내 목숨 멀지 않아 사라지리.

쌓아 놓은 재물을

유익하게 써서 실다움을 취하라.

재물은 처자를 위함도 아니요

또한 제 몸을 위함도 아니니

재빨리 무너짐 없는 금강신(金剛身)과

공덕의 재산 얻도록 하라.

은근히 불도를 구하여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만일 요익의 문 버리면

항상 온갖 손해 만나리니.

마치 아이들이 희롱하느라고

음식을 맛봄은 배 부르지 않듯이

법의 맛[法味]이 아직 짙지 못하면

믿더라도 도를 감당 못하리.

행을 닦되 용맹스럽지 못하면

도에 가기가 까마득히 멀어라

끊임없이 포교[弘揚]함을

끝가는 법[究竟法]이라 이름하리.

가섭아, 내가 이제

이러한 법문을 말하노니

사람이 능히 알아 깨치면

온갖 지혜라 이름하리.

지혜로 잘 관찰하여

그 몸에 싫증을 내며

항상 바로 생각하여

생각 생각 나를 대한 듯이.

“가섭아, 재가 보살이 세 가지 법을 성취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남이 없게 되느니라.

세 가지라 함은 부모가 믿지 않거든 잘 권하여 믿게 하며, 부모가 계를 헐거든 잘 권고하여 계를 지니게 하며, 부모가 간탐하거든 잘 권고하여 버리게 하고,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찬탄하며 남을 위하여 설법하라.

이것이 첫째로 무상보리에서 물러남 없게 되느니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공양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 공양할 것을 공양하고 하지 않을 것은 공양하지 않을지니라. 그러나 그곳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닦아 익히느니라. 이러한 제이법을 성취하므로 무상보리에 물러남 없게 되느니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부지런히 재물을 쌓아 허비하지 아니하고 잘 보호하여 함부로 남에게 주지 않고 값 있게 쓰되 정계(淨戒)를 지니는 사문·바라문과 여러 중생에게 평등하게 보시하며, 같은 도반(道伴)에게 잘 도와 주느니라. 이렇게 제삼법을 성취하므로 무상보리에 물러남 없게 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슴하셨다.

만일 재가한 보살로서

무상보리를 구하려면

세 가지의 근본 지혜를 기르라.

이것이 최상각(最上覺) 되리라.

만일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쁜 지혜로 믿음이 없거든

권고해 믿는 마음 나게 하여

그로 하여금 거룩한 법에 머물게 하라.

간탐심 버리고 계에 머물게 하며
슬기롭지 못하면 슬기롭게 가르치라.

항상 이렇게 권고하면

보리의 거룩한 법이 되리라.

동·서·남·북 돌아다니며

설법자를 널리 구하라.

법의 보시로 사람을 가르치면

이로 말미암아 지혜를 더하리.

계를 범한 이를 계에 머물게 하고

믿음 없는 이를 믿게 하고

슬기롭지 못한 이를 슬기롭게 하면

보리에 물러남 없음 얻게 되리라.

만일 비구로서 슬기롭고

계 지니고 들음 많거든

공경하고 친근히 하여

자주 가서 법을 물으라.

재가자는 이 법으로 말미암아

보리에 물러남 없음을 얻으리.

저 거룩한 덕을 지닌 분

들음 많고 지혜를 갖추어

존중할 만한 선지식에겐

살을 베어서 베풀 만하리.

이것은 신심(信心)의 모습

내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믿음이 없고는 어떻게

커다란 보리심 낼 수 있으리.

총명하여 큰 일을 보고

재빨리 이익을 얻으면

저 미묘한 법에

증득하기가 어렵지 않으리.

나와 또한 남에게

이러한 이익됨 알고

세속을 여의려 하면

지혜 더욱 불어나리라.

평소에 부지런히 쌓아 모은

온갖 생활 도구와 재산

계 지니는 이에게 베풀기 위하여

두고두고 저축한 물건.

주는 자 다른 말 없고

받는 이 또한 헛된 말 않고

정진으로 이룩된 보시의 공덕

머지 않아 여래과(如來果) 얻게 되리.

계 지니는 사람끼리 화합해 살며

용맹스럽게 자비심 닦아

보시로 중생 거두어 들이되

이렇게 선후가 다름이 없이

깨끗한 최상의 보시는

아무 것도 바라는 일 없이

금이나 혹은 은이나

있는 대로 보시하지 않음이 없네.

용맹스럽게 일체에 베풀되

숙세부터 닦아 온 단바라밀(檀波羅蜜)

최상승(最上乘)의 깊고도 묘한

거룩한 부처의 도 구해 보자고

법답지 않게

일체 천상·인간 공양치 말고

법답게

한 중생을 공양하여라.

용맹스럽게 법을 구하기 위하여

법으로써 능히 법을 깨달아

슬기롭게 거룩한 도[勝道] 밟으면

무상보리를 얻으리.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세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성문승(聲聞乘)에서 열반에 들게 되느니라. 세 가지라 함은 이에 어떤 한 무리[一類]가 삼악도를 겁내면서 큰 보리에 무거운 짐이라는 압박감을 일으키며, 이미 모아 온 착한 뿌리를 오롯이 생각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다음에 장애됨이 있으면 곧 괴롭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이것이 첫째로 보리를 잃고 저 성문승의 열반에 들게 되는 것이니라.

다시 가섭아, 어떤 한 무리는 보시를 행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아니하고, 설사 보시를 행하고는 문득 후회하며 다시 불지혜에 회향(回向)하지 않느니라. 이것이 둘째로 보리를 잃고 저 성문승의 열반에 들게 되는 것이니라.

다시 가섭아, 어떤 한 무리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많이 듣기를 구하지 않고 변변치 않은 착한 뿌리로 빨리 열반에 들게 되나니, 이것이 셋째로 보리를 잃고 빨리 성문승에 나아가서 열반에 드는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리심을 일으킨 뒤에는

바른 보살의 도 따르지 않으면

불승(佛乘)을 잃어 버리고

성문도에 들게 되리라.

보리를 믿지 않은 마음이거나

게으른 마음으로 얻을 수 없나니

지혜 없고 간탐심 지니면

곧 장애됨 있으리로다.

은혜를 알고 정계(淨戒)에 머무르며

항상 보시하기를 즐겨하면

보리를 얻어 어렵지 않으리.

악업을 짓는 것도 이 마음

보시하는 것도 이 마음

중생의 마음이 진실하면

세간의 공덕탑 되지 않으랴.

만일 세 가지 성문법 여의고

마음으로 큰 보리에 나아간다면

세간에 높은 이 되어서

최상의 공양 받을 이 되리니.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세 가지의 법으로 말미암아 보리를 잃어 버리고 독각승(獨覺乘)에서 열반에 들게 되느니라. 세 가지라 함은 어떤 한 무리가 비록 큰 보리심을 냈더라도 법에 인색하거나, 다시 어떤 한 무리가 고용한 각(覺)·관(觀)에 탐착하거나, 또한 세간의 길상(吉相)·흉상(凶相)을 취하며 또 어떤 한 무리가 보리심을 냈더라도 게으름으로 능히 보리 부분법[菩提分法]을 두루 구하지 못하나니, 이 세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낱낱이 다 보리를 잃어버리고 저 독각승에서 열반에 드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바른 법에 인색하여

남 가르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독각(獨覺)의 도를 얻을지언정

최상의 도는 잃어버리리.

이 세가지 뜻으로 말미암아

이로움 잃고 온갖 고통 생기나니

이 법을 따라 수행하면

보리의 도를 의혹하리라.

대승법을 생각한다면서

길한 데 나가고 흉한 것 피하면

이것은 바른 믿음이 아니라

부처님의 버린 바 되리라.

능히 한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진실히 보리에 향하거든

다른 신이나 하늘에 절하지 말라.

오직 부처님 탐묘를 제하고는.

만일 깨끗한 신심이 있다면

다른 하늘을 섬기지 않아도

이것이 최상이 되다니

그 이름 하늘 가운데 하늘.

만일 보리를 즐기거든

다른 하늘을 섬기지 말라.

태어나는 곳마다

육신과 기력[色力]을 다 갖추리.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세 가지의 법으로 말미암아 흑인(黑人)의 몸을 받느니라. 세 가지라 함은 여래의 탑에서 그 등불을 가져가거나, 남과 송사하여 화내고 원한 품거나, 다른 검은 사람에게 자기와 관계 없는 일로 부질없이 흉보고 나무람이니라.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검은 몸을 받아 나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탑에다 등불을 밝히거든

그 등불을 가져다 쓰면

그 몸이 검고 어둡거나

마치 까마귀의 터럭과 같으리.

검은 사람을 흉보고 나무라기를

'나는 희고 네 몸은 검다'고

이렇게 남을 업신여기면

그 몸 검게 받아 나리라.

항상 말을 잘 조심하면

하는 짓 끝내 잘못됨 없으리.

자기의 지은 바 업에 따라

그 업의 그릇대로 받으리.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세 가지의 업(業)으로 말미암아 공장 집[工匠家]에 나게 되느니라. 세 가지라 함은 보살이 자신은 능히 오계를 지니는데 만일 친척이 먼 곳에서 와서 더불어 술을 마시거나, 혹 남을 권하여 술을 마시게 하면 장차 저 공장 집에 나게 되나니 이것을 제일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스스로 범행(梵行)을 닦으면서 남을 중매하여 음욕을 행하면 이런 것을 많이 쌓음으로 말미암아 장차 공장 집에 나게 되나니 이것을 제이법이라 하느니라.

다시 가섭아, 다른 사람이 부지런히 경전을 읽고 외우는 것을 보고서는 집안에서 무슨 큰 일을 한다고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또한 읽고 외우는 일을 그만두고 내가 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나니, 이런 업연(業緣)을 쌓아 오므로 장차 공장 집에 나게 되나니 이것을 제삼법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술을 남에게 권하거나

또한 친속에게 주어서

취하고 미치게 하므로

그는 곧 요어장(饒語匠)이 되리라.

칼과 바늘 만들 줄 모르고

다른 기술도 없으면서

오직 앉아 손을 흔들며

화로 앞에서 풀무만 돌리나니.

저는 능히 범행을 닦더라도

남을 위하여 음행을 칭찬하면

이 업이 과보 받을 때

마땅히 요어장이 되리.

칼과 바늘은 만들 줄 모르고

풀무도 또한 돌리지 못하고

오직 긴 쇠망치만 휘둘러

방치돌 앞에 쇠를 치나니

남으로 하여금 파계케 하면

이 세상에서 목숨 마치면

재빨리 공장 집에 태어나

성품이 미련하고 우둔하리.

처음에 풀무도 보지 못하고

또한 쇠망치도 보지 못했네.

그 업보가 그렇게 됨이라

온갖 기물만 들부수나니

가섭아, 그 뜻을 잘 방어하고

그 말도 잘 보호하여

언제나 남에게

모든 불선법 가르치지 말라

생사의 바퀴 도는 괴로움

애욕으로 인하여 더 생기가니

선법은 부지런히 닦고

불선법은 버리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세 가지의 법을 취하므로 찰리[刹帝利] 호족(豪族)의 집에 태어나서 얼굴이 단정하여 사람들이 존경하며, 총명하고 재주 있어 게으름이 없나니, 세 가지라 함은 처음 보는 사문·바라문을 만나더라도 곧 신심을 내며, 공양·예경하여 복밭[福田]이라 말하며, 깨끗한 마음으로 맞이하여 의복·음식·와구(臥具)·의약의 일체 수용품을 공급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제이법을 성취하면 장차 찰리 호족의 집에 태어나느니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굳게 서원을 세우고 말과 같이 수행하며 마침내 거짓말을 하지 않나니, 이러한 제이법을 성취하므로 장차 찰리 호족의 집에 태어나느니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구족계(具足戒)를 지니는 사문·바라문에게 공양을 드릴 적에 능히 굳은 신심을 가지나니, 이러한 제삼법을 성취하므로 장차 찰리 호족의 집에 태어나느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슬기로운 사람은

계 지니고 널리 아는 이 보거든

마땅히 기쁜 마음으로

그를 청하여 맞이할지니라

그를 청하여 맞이하고는

법대로 공양하되

싫증 내거나 뉘우침 없이

베푸는 것이 아낌없네.

이것이 신심의 견고(堅固)한 법

이것이 가까이 모시는 이[親近侍者]니

온갖 지혜와 서로 응하여

얻기 어려운 도 빨리 얻으리.

이러한 깊은 신심으로

큰 보리를 향하여 나아가면

이것이 슬기로운 이의 소행

불도를 얻기 어렵지 않으리.

항상 도를 위하여 산다면

가장 깨끗한 재물을 받아

수승하고 묘한 법을 희구하여

위없는 열반을 증득하리.

장차 호족 가운데 태어나서

얼굴이 매우 단정하고

가장 좋은 의복을 입으며

최상의 열반을 증득하리라.

부처님의 칭찬하심과 같이

최상승을 닦아 행하여

불승(佛乘)의 맑고 시원한

최상의 열반을 증득하리라.

이것이 가장 거룩한 과보

그 지은 업과 같이

과보도 또한 그에 맞추어

설사 백·억 겁을 지날지라도

이 업은 끝내 무너지지 않으리.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세 가지의 법을 성취하여 착한 뿌리를 심으면 무상보리를 증득하기까지 끝내 세속의 오욕락을 받지 않느니라. 세 가지라 함은 재가 보살이 오계를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을 향하여 오욕락을 찬양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제 할 일을 하되 여인을 부리지 않으며, 마음 먹기를 '내가 이제부터 일체 여인을 친근하지 않고 무상보리를 증득할 때까지 세속의 오욕락을 받지 않으리라'고 하느니라. 이러한 제일법을 성취하므로 보리를 증득할 때까지 세속의 오욕락을 받지 않느니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이 이런 경을 듣고는 깊은 믿음을 내어 열반의 도에 나아가기를 구하느니라. 비록 이런 가르침을 받아 지니더라도 숨겨 버리는 일을 하지 않고 능히 연설하거나 칭찬하면 사람이 듣고는 곧 온갖 나쁜 짓 하는 것을 여의게 되리니, 이 착한 뿌리로 걸림 없는 변재를 얻으며 집착 없는 변재를 얻으리라. 혹 현세에서나 또 숨이 질 적에 부처님을 뵙게 되며 목숨이 마친 뒤에 천상에 태어나면 현세에서나 또 숨이 질 적에 부처님을 뵙게 되며 목숨이 마친 뒤에 천상에 태어나면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니 이러한 제이법을 성취하므로 보리를 얻을 때까지 오욕락을 받지 않느니라.

다시 가섭아, 재가 보살의 온갖 착한 뿌리를 다 무상보리에 돌리고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부딪침[觸]·법(法)과 재보와 높은 지위 등을 즐기지 않으며, 권속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하염없는 마음·하염없는 과보로 재빨리 '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하리니, 이러한 제삼법을 성취하므로 보리를 얻을 때까지 오욕을 받지 않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재가 보살로서 오계를 닦되

굳게 지키고 잘 보호하여

여인을 가까이 말고

그리고 싫증을 낼지니라.

이러한 법문을

부지런히 구하여 싫증냄 없이

나쁜 짓 하는 곳일랑

재빨리 놓아 버리라.

온갖 착한 법을

다 보리에 돌리어

이 착한 뿌리로써

재빨리 오욕락 여의리.


[92 / 3476] 쪽

항상 훌륭한 지식을 쌓아

중생 위하여 법을 설하여

대자심(大慈心)을 일으키어

무상보리를 구하게 하라.

이러므로 이 법문 듣고

마땅히 착한 마음 내어

오욕락에 가까이 말고

재빨리 법바퀴를 굴리기를.

그때에 가섭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이제 이 경전을 무엇이라 부르며 우리들이 이제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이 경은 '삼률의를 말함'이라고 부를 것이며, 또한 '보리금계를 선설함'이라 부를 것이며, 또한 '같이 온갖 법에 들어감'이라고 부를 것이니라.”

부처님이 이 경을 말씀하시니 존자 마하 가섭과 모든 대중이며 일체 세간의 하늘·사람·아수라·건달바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다 크게 기뻐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대보적경 제4권

2. 문변장엄회(無邊莊嚴會)

1) 무상다라니품(無上陀羅尼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가란타 대숲 절에서 큰 비구들과 한량없는 보살과 함게 계시었다.

이 모든 보살은 다 일생보처(一生補處)로서 다른 부처님 나라에서 와 모이었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대중에게 둘러싸이어 공양·공경을 받으시면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었다.

대중 가운데 한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은 무변장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른 어째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합장하고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한 가지 의심이 있사와 묻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허락하옵소서.”

그때에 부처님은 무변장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如來)·응(應)·정등각(正等覺)에게 네가 묻고 싶은 대로 물어라. 너의 의심을 따라 해설하여 너를 기쁘게 하리라.”

그때에 무변장엄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끝없는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정진의 갑주(甲冑)를 입은 모든 보살들의 큰 방편선교(方便善巧)의 경지를 구하는 자, 끝없는 지혜선교를 구하는 자, 결정적인 큰 지혜를 처음 열어 깨달은 자, 보리의 도에 이미 편히 머무른 자 등 이러한 여러 보살을 위하여 제가 여래께 묻자오며, 또한 중생들을 이락(利樂)케 하기 위한 마음 비교할 데 없으며, 모든 법 청청 지의(智義)의 매우 깊은 큰 지혜방편[大智方便]을 사유(思惟)하며, 간택하여 무량의(無量義)를 잘 결정하는 힘을 얻으며, 큰 사자좌(獅子座)를 구하여 일체 사자좌에 오르고자 하며, 처음 발심으로부터 용맹 정진하여 물러남이 없는 데 이르러서 말씨[言詞]가 교묘하고 정진을 쌓아 모으려고 갑주를 입은 자등 이러한 모든 보살을 위하여 여래께 묻자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보살이 저 중생에게 생사를 뛰어넘어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게 하고자 하거나 다시 걸림 없고 두려움 없는 경지를 구하여 두려움 없는 가운데 머물러서 방편으로 근기를 따라 법을 연설하되 교묘하게 분별하여 보태지도 줄이지도 않게 하며, 또 모든 법 본래의 자성을 여실히 드날리나이다.

세존이시여, 다시 어떤 보살은 비교할 데 없는 마음·가장 거룩한 마음·위없는 마음에 달려 들어가서 자재를 얻으므로 이런 것들을 위하여 여래께 묻자옵니다.

세존이시여, 중생이 자연지(自然智)와 무사지(無師智)를 구하여 무명(無明)의 껍질을 깨뜨리고 인간·천상을 뛰어넘어 가장 거룩함이 되며, 혹은 일체 세간을 이락(利樂)케 하기를 희망하여 큰 지혜, 두려움 없는 힘을 구하고자 함에 자연지를 제하고는 끝없는 지견(知見)의 선교(善巧)를 보이고자 하며, 한량없는 결정법(決定法)을 설하려 함에 지혜의 빛으로 세간천상·인간을 비추고자 하나이다.

다시 모든 중생의 낙욕(樂欲)을 위하여 위없고 걸림 없는 지혜방편을 열어 보이어 마침내 청정한 지견을 구하여 온갖 지혜선교의 경지를 구하려 하는 자가 있나이다. 제가 이제 그 모든 보살을 위하여 여래께 묻고자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이 경지에 머물러서는 재빨리 여래지(如來地)를 원만히 성취하며, 또는 능히 생각할 수 없는 방편선교의 바라밀다를 증득하여 적은 노력으로 중생을 위하여 눈앞에서 능히 이러한 지혜를 얻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악법을 내버리고 선법을 자라나게 하여 보리도와 부처의 성품을 보게 하며 또한 능히 한량없는 중생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여 다물러나지 않게 하리이다.

세존이시여, 저 보살들에게 능히 깨달음의 길을 열어서 불법가운데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제가 이들을 위하여 여래께 묻자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여러 보살이 이미 다모이었사오니 미묘한 법을 말씀하실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옵서 이러한 법문을 열어 보이시어 연설하시와 모든 보살에게 맡겨 주시와, 그들이 생각할 수 없는 원과 일생보처가 지는 바 착한 뿌리를 성취케 하옵소서.

세존이시여, 이러한 미묘한 다라니문을 여래께서 수시로 가를쳐주시와 모든 보살로 하여금 능히 무량한 법문의 이취(理趣)를 지니어 선교로 결정하고 말씀으로 의리(義理)를 연설케 하옵시며, 다시 장차 보리를 증득할 것을 지원하여 끝없는 큰 신통업에 머무르며,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선교지(善巧智)를 거두어 잡아 지니게 하오리니 오직 바라옵건대 이러한 법문을 열어 보이시어 중생들이 보리도를 증득케 하옵소서.

세존께서는 지나간 먼 세상에 이미 넓은 서원을 발하시와 수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와 자연지에 머물게 하셨사오니, 이러한 다라니문을 연설하시와 보살들이 착한 뿌리를 성취케 하시며 또한 여래의 위신력으로 위없고 생각할 수 없는 원을 힘입게[加持]하여 주소서.

세존이시여, 여래 정등각께서는 이미 한량없는 방편선교를 증득하시와 생각할 수 없는 경지를 얻으시고, 두려움 없는 경지에 머무르시와 모든 중생이 뜻으로 좋아하는 성품의 차별을 잘 아시며 한량없는 겁에 깨달음의 지혜를 쌓으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대중이 여래를 우러러뵈옵기 잠깐도 끊임 없사오며 온갖 지혜의 지혜와 또한 법장(法藏)에 오래 게으르지 않고 마음에 싫증이 없이 여래의 결정의(決定義)를 듣고자 하나이다.

세존께서는 온갖 지혜의 경계에 조용히 머무르시와 다 이미 이 모든 보살의 원과 발심·수행[發趣]을 아시고 선교방편이 성숙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법문·다라니문·원만한 구의(句義)와 온갖 법의 결정선교, 이러한 법문을 여래께서 말씀하시와 아직 성숙되지 못한 모든 보살을 다 성숙케 하시면, 이미 성숙한 이는 속히 신통과 온갖 지혜와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얻게 하소서.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들이 부정지(不定智)에 머물렀다면 이 보살들이 이 법을 듣고는 온갖 지혜의 경계를 성취하게 하여지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인연으로 감히 큰 물음을 여쭙나이다. 바라옵건대 큰자비와 위력으로 모든 보살을 가피(加被)하시고 수호하시와 이러한 법을 말씀하소서.

세존이시여, 이 뒤 말세에 쟁론(諍論)이 일어날 때에 자기 주장에 집착된 중생이 서로서로 해치고 삼독이 부쩍 늘어 바른 법을 허물 때에, 모든 보살들은 그때에 큰 자비로 이 일을 견디어 참고 이 법을 유포하여 쟁론이 없게 하옵소서. 무쟁(無諍)의 법에 순응하므로 곧 능히 대자대비를 거두어 지니오면 모든 착한 뿌리를 쌓아 모으리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감히 이뜻으로 말미암아 여래의 걸림없는 법문의 결정의를 묻자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여 모든 보살의 한량없는 법문·법광명문(法光明門)과 온갖 법의 방편을 일으키게 하오리까?

다시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무너짐 없는 고요한 [不滅壞寂靜] 법문'을 말씀하시며, 겸하여 끝없는 비밀 법장을 연설하시와 구족히 성취하여 생각하는 힘이 끊임없게 하시며, 원수[魔怨]와 외도들을 항복받아 굴복되는 일 없게 하소서. 바라옵건대 여래는 바른 법을 연설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착한 뿌리를 쌓아 모으게 하시며, 또한 끝없는 방편을 쌓아 모으게 하시며, 온갖 지혜를 세상에 나타내시어 생각하는 대로 한량없는 법문을 엮어내어 모든 변재가 청정 구족하며 서로 잇달아 어지럽지 않은 최상의 구의(句義)를 얻어서 한량없는 법문과 다라니의 진실한 방편을 증득케 하시며, 또 중생들이 기쁜 마음을 내게 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먼저 하고 뒤에 할 정진 방법을 말씀하시며,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수행법을 보여 주시어 이러한 인행(因行)에 자재하므로 법에 머무름 없게 하시며, 보살들이 시방 여래의 전생 일[本事]을 잘 알고 신통과 두려움 없는 힘[無畏力]으로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득하여 중생에게 청정한 법의 눈[法眼]을 맡겨 주시며, 또한 생각할 수 없는 법을 열어 보여 부처님의 지혜 방편선교를 성취케 하옵소서.

제가 이런 뜻으로 말미암아 감히 청하오니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여래지(如來地)의 광대 방편의 매우 깊은 법을 말씀하시어 온갖 지혜가 되도록 모든 선교와 헤아릴 수 없는 법 이취를 거두어 지니어 저 보살의 원과 방편선교를 원만케 하옵소서. 보살이 이 법을 듣고는 다 큰 법의 광명을 증득하여 보리의 수승한 선교와 넓은 서원을 성취하여 다 원만케 하옵소서.”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변장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무변장엄아, 네가 이제 모든 보살을 위하여 청정한 원력, 방편선교에 머무르며 또한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결정한 지혜로 여래에게 묻자옵나니, 너의 공덕은 한량이 없도다. 잘 듣고 사실대로 생각하라.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법을 해설하여 모든 보살로 하여금 불지경(佛智境)의 한량없는 공덕을 길러내게 하리라.”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듣기를 원하나이다.”

“만일 보살이 끝없는 선교원(善巧願)을 구하기 위하여서는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비밀어(秘密語)를 알고 받아 지니고 사실대로 관찰할지니라.

어떻게 관찰하는가. 무변장엄아, 여래의 지혜는 모든 교묘한 방편을 거두어 지녔으므로 법을 설함이 청정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모든 보살은 마땅히 이러한 법요(法要)를 닦을지니라.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다 평등하여 대비심에 머물러서 중생을 널리 덮어 주며, 결정코 모든 중생들을 성숙케 하느니라.

혹은 하승법(下乘法)에 해탈을 구하여 성문도에 진실·최상의 열반을 목적하는 이에게 넓은 서원을 원만히 채워 온갖 지혜를 이루게 하며, 내가 이제 무상 해탈에 머무르게 하여 나머지 소승법을 멀리 여의게 하고 모든 부처님 비밀어에 잘 들어가게 하며, 여래의 미묘한 언구(言句)를 말하여 광대 청정하여 모든 법을 거두어 가지며, 중생들의 그 근성을 따라서 해탈을 성취케 하느니라. 그러나 이 법은 평등하여 느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니며 모자람도 없고 잃어버림도 없으며, 색(色)도 없고 등색(等色)도 없으며 끝없고 가없는 자성의 청정함은 모든 부처님이 연설하신 바이니라.

본래의 자성을 진실히 깨달아 알면 어떤 법이나 다 깨달아 알게 되리니, 왜냐하면 온갖 법은 다 여래가 이름을 붙여(假名] 말했을 뿐이기 때문이니라.

만일 모든 법이 다 이 붙인 이름을 말미암았다면 이것을 곧 법으로써 시설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나타내어 보일 수 없을 것이다. 나타내어 보일 수 없으므로 여래가 말씀한 것이 다 진실한 제일의(第一義)니라. 법을 따라 다 같이 온갖 법에 들어가서 온갖 법의 분별에 머무르지 않으면 또한 머무르지 않음도 아니니라. 분별법과 분별 없으므로 진실하고 평등하게 온갖 법을 증득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법은 남[生]이 없나니 이렇게 나는 법이 없는 까닭이니라. 법이라 함은 실로 법이 없나니, 망령된 분별을 내어 널리 계탁(計度)하는 까닭이니라. 법은 일어남이 없나니 자재하지 못한 까닭이니라. 법은 관(觀)할 경계[待]가 없나니 원만도 버린 까닭이니라. 법은 작용이 없으니 가고 옴이 없는 까닭이니라. 법은 자성이 없으니 일체의 자성법(自性法)을 뛰어넘은 까닭이니라. 법은 본래 평등하여 차별이 없나니 희론(戱論)이 없는 까닭이니라. 하는 일[所作法]을 따라 수승한 원을 일으켜 성취되지 않음이 없나니 그 가운데 하는 자[作者]가 없으며 적은 법이라도 얻은 것이 없이 다 '공(空)'에 돌아가느니라. 이러므로 온갖 법이 꼭두각시 같고 꿈과 같아서 높고 낮음이 없나니 내가 마땅히 청정한 넓은 원으로 중생을 교화할 적에 실로 적은 법에라도 집착함이 없었느니라. 무변장엄아, 이것이 모든 보살의 법광명을 얻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모든 보살이 안으로 바로 생각하고 밖으로 산란한 마음이 없이 조용히 머물러서 모든 장애를 끊은 자는 보살의 보광상매(普光三昧)를 따라서 생각하고, 매우 깊은 법을 믿어 아는 자는 마땅히 이 모든 법문을 관찰할지니라. 온갖 법을 여래가 다 알고 연기문(緣起門)으로써 열어 보이어 연설하느니라. 이와 같은 연기는 허망하여 실답지 않은지라 본래의 자성이 다 공적하나니 이 연기성도 또한 진실이 아니지마는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물들게도 하고 청정케도 하나 시방에 구해도 다 얻지 못하느니라. 얻을 것이 없으므로 받아 지닐 것도 없으며, 받아 지닐 것이 없으므로 내가 설한 법을 오히려 놓아 버릴 것이니,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놓아 버린다 함도 또한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취할 것이 없으며 공용(功用)도 없고 본성이 청정하여 온갖 법이 분별이 없나니 분별의 진실성을 분명히 안 까닭이니라. 온갖 법이 머무를 것이 없으며 또한 보지 못하나니 다른 성질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러므로 모든 법이 머무름이 없고 의지할 것이 없건마는 다만 이름을 붙임으로써 있느니라. 저것이 다 공적하여 자성이 없으며 머무름이 없이 머무느니라. 이러므로 모든 법 머무를 곳이 없느니라. 머무를 곳이 없는 까닭에, 다[盡]한 까닭에, 멸한 까닭에, 변역(變易)한 까닭에, 여래가 다만 다른 이름으로 연설할 뿐이니라. 이러한 그윽한 뜻을 응당 잘 알 것이요, 선과 불선에 집착하지 말지니라. 만일 선법에 집착하면 불선법도 또한 집착하리라. 이러한 불선법에 집착하므로 모든 번뇌를 내나니 부처가 다른 이름으로 말하여 고성제(古聖諦)라 하며, 선과 불선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느낌[惑受]이 없어지나니 여래가 이 선법으로 끊을 것을 다른 이름으로 말하여 집성제(集成諦)라 하느니라.

제이 성제를 능히 깨달아 아는 까닭에, 멸한 까닭에, 다한 까닭에, 억상(憶想)이 없는 까닭에, 생사를 여의어 버리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을 관찰한 까닭에, 생각[想]과 느낌[受]을 즐기지 않고 분별이 없는 까닭에, 여래가 다른 이름으로 말하여 멸성제(滅性諦)라 하느니라.

제삼 멸성제를 깨달아 앎으로써 이 구할 것의 도에 사실대로 깨달아 들어가 온갖 법에 생각·분별·희론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8지(支)의 성도(聖道)와 서로 응하여 바른 소견[正見)과 바른 선정[正定]을 닦아 익히므로 괴로움이 없어지고 도에 나아가는 성제(聖諦)를 깨달아 알게 되나니 부처는 다른 이름으로 제사제(第四諦)를 삼았느니라.

모든 부처님이 이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고 괴로움 없는 이치를 깨닫고는 도를 닦으며 괴로움·괴로움의 원인·고멸 및 괴로움 없는 데로 나아가는 도를 베풀어 놓으셨느니라. 그러나 괴로움이 본래 없는 것이지만 세속적으로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니라.

'무명(無明)' 등의 일체가 다 무지(無智)로 인연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저 무지에는 작은 반연도 가히 취할 것이 없으며, 증(證)할 것이 없으며, 광명 있을 것도 없으며, 깨달아 알 것도 없으며, 또한 얻을 것도 없느니라. 그 가운데 무엇이 있겠는가. 일체가 다 이 허망하고 없어지는 법이라 결심함이 없느니라. 그 가운데 만일 실물이 있다고 내세우면 저들이 곧 세속의 상법(常法)에 집착할 것이다. 만일 분별 없다는 데 집착하면 저희들은 곧 끊을 것에 집착하리라. 이러므로 괴로움에 분별을 내지 말고 지혜로써 무지의 자성이 곧 괴로움의 자성인 줄을 비추어 보아라. 무명과 서로 응하는 까닭이니라. 무명이 또한 물(物:경계)과 서로 응하지 않나니 서로 응하지 않으므로 저것도 또한 없는 것이니라. 저것이 서로 응하지 않으므로 무명이 분별도 아니며, 분별 아닌 것도 아니니, 만든 것도 아니며,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만드는 자도 없나니 시설해 만드는 자를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무변장엄아, 이것이 모든 보살이 무명의 자성을 깨달아서 밝은 법을 따르는 문이니라. 이 문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체 무명의 어둠을 놓아 버리고 눈앞의 밝은 법에 수순한 줄을 알게 되므로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잘 닦아 익혀 모든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느니라.

이 보살들은 이 법문에 능히 청정함을 얻나니, 말하자면 불생(不生)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에 청정하며, 반연하지 않으므로 괴로움의 원인[集]에 청정하며, 괴로움이 다함으로 말미암아 없어짐의 이치에 청정하며, 닦아 익힘으로 말미암아 도에 청정하며, 믿음이 평등하므로 도가 곧 평등하나니 이와 같이 모든 법의 다른 이름을 알아 둘지니라. 알고는 마땅히 끊고 깨닫고 닦을지니라. 만일 여래의 말을 능히 이해하면 그는 곧 널리 알 것이며 그는 곧 따라 끊을 것이며, 그는 곧 깨달을 것이며 그는 곧 닦아 익히리라. 이러므로 성자가 이렇게 알고는 온갖 법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놓아 버리지도 아니하며, 곧 사제 법문에 편히 머무느니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이 분별이 없으며 또 자라남[增長]도 아니며 쌓아 모임[積集]도 아니니라. 성자는 사실대로 잘 앎으로써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며 희론을 행하지 않으며, 능히 사실대로 보고 훼방하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도로 말미암아 끊을 것을 끊으므로 모든 선법에 분별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희론이 없나니 하물며 불선법임에랴.

분별과 서로 응하므로 다시 법과 비법을 끊음에 머무르지 않느니라. 만일 널리 끊을 줄을 알면 곧 법의 얽매임[結]과 비법의 얽매임이 없느니라. 그가 능히 얽매임의 법이 허망한 줄을 알면 이 허망한 법이 비어서 있는 것이 없

 

- 이하 생략 -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03144)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45-24, 지하1층(수송동,조계사 안심당)
Tel)02-735-3724, Fax) 02-722-4994, Email) jgs1977@daum.net
COPYRIGHT© 1977-2012 조계사청년회 ALL RIGHT RESERVED. designed by 겨울나기

LOGIN INFORMATION

로그인
비쥬얼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