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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경
(入楞伽經 입능가경)
입능가경(入楞伽經), 상편
一, 청 불 품(請佛品)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큰 바닷가
말라야[摩羅耶]산 위에 있는 란카[楞伽] 성중(城中)에 계시었다.
그 말라야산은 온갖 보배로 된 것이니, 여러 가지 보배가 사이 사이로 얽혀 빛나는 광명은
백천 일광이 금산(金山)을 비추는듯 하며, 또 한량없는 꽃동산과 향나무가 있으니,
다 보배로 된 향기로운 숲이다. 산들바람이 불어 가지와 잎이 흔들릴 적마다
백천 묘한 향기는 일시에 흘러 번지고, 백천의 묘한 소리가 일제히 들려오며,
큰 바위가 여기 저기 있는 곳에 신선(神仙)들이 사는 신령스러운 집이 있으며,
바위 굴집이 무수한데 모두 보배로 되었고, 안팎이 환히 트여 일월의 광채도 빛을 잃을 지
경이었다.
이곳은 옛적 여러 신선과 현성(賢聖)들이 진실한 법을 생각하여 도를 얻은 곳이었다.
큰 비구 스님과 큰 보살 대중이 온갖 다른 불국토에서 와서 함께 이곳에 모였다.
이들 보살은 한량없이 자재한 삼매의 신통력을 구족하여, 날쌔고 신속하게 중생을 교화할
수 있고,
다섯 법의 성질[五法自性]과 두가지 <나>없는 [二種無我]이치를 끝까지 통달하였다.
대혜 보살(大慧菩薩)마하살이 으뜸이 되시니,
그는 여러 부처님의 손으로 그의 정수리에 물부어 부처의 지위를 주셨으며,
자기 마음으로 경계를 삼아 그 이치를 잘 해득하며, 가지 가지 중생과,
가지 가지 마음의 상태[心色]로 가지 가지 마음과 가지 가지 달라지는 생각을 따라서
한량없이 중생을 건져 주는 문으로 그가 제도 될 바를 따르고,
그가 보게 될 바를 따라서 널리 몸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때에 부처님이 큰 바다 용왕의 궁전에서 칠일간 설법을 마치시고 남쪽 언덕으로 건너 가
시니,
한량없는 나유타(那由他)수의 제석(帝釋)과 범천왕(梵天王)과
용왕들과 가없는 대중들이 모두 따라서 바다의 남쪽 언덕으로 향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멀리 말라야[摩羅耶]산의 란카성[楞伽城]을 바라 보시고,
빛난 얼굴에 기쁨이 넘쳐 금산(金山)을 움직이는 듯경화스러운 미소를 띄우시면서 말씀하셨
다.
“과거의 여러 부처님, 응공(應供),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께서 저곳 말라야산 위의 란카 성
중에서
스스로 증득한 지혜로 체득하신 법을 말씀하였으니,
이는 모든 사견(邪見)인 머트러운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을 떠난 것이니,
그것은 외도(外道)와 성문(聲聞)과 벽지불(酸支佛)들의 수행할 경계가 아니었다.
나도 또한 저 말라야산 란카 성중에서 야차(夜叉)중에서도
우두머리인 라바나[夜叉王]를 위하여 그의 법을 말하겠노라.”
그때에 라바나이 부처님의 신력으로 여래의 음성을 듣더니,
때마침 부처님께서 바다용왕의 궁전을 떠나 큰 바다를 건느시고서,
나유타(那由他)수의 한량없는 제석과 범천왕과 여러 용왕들에게 둘러싸여 공경함을 받으셨
다.
그때에 여래께서 중생의 아라야식[阿梨耶識]인 바다물이 경계인 바람에 불리어 전식(轉識)인
물결이 인연을 따라 일어나게 됨을 관찰하였다.
그때에 라바나 야차왕이 스스로 찬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지금 부처님을 청하여 란카성에 들어가서 오랫 동안 인천중(人天中)에 있던 나와
여러 인천(人天)으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고 안락을 얻게 하리라.”
그때에 란카 성주(城主)인 라바나 야차왕이 여러 권속과 함께 꽃궁전을 타고 여래의 처소에
와서는
여러 권속과 같이 궁전에서 내리어 부처님을 세겹으로 돌면서
부처님께 온갖 풍류를 베풀어 기쁘게 공양(供養)하였다.
가지고 온 악기들은 다 크고 푸른 인다라(因陀羅)보배로 만든 것이며,
큰 비유리(毘琉璃)와 마노(瑪瑙)등 여러 가지 보배로 사이사이 장식하였고,
값진 색옷으로 둘러싼 것이니, 그가 범음성(梵音聲)등
한량없는 소리로 여래의 모든 공덕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마음은 법장(法藏)을 갖추시고,
무아(無我)의 소견까지 떠나셨네.
세존이 말씀하신 모든 법이란
마음으로 아시는 법이니.
깨끗한 법으로 부처몸 얻으셨고,
스스로 증득한 법으로는
화신(化身)에서 화신을 나투시며,
때가 되자 이곳에 오셨네.
지금 이곳 란카성엔
옛적 한량없는 부처님과
또한 많은 불자들의
한량없는 몸을 수용하셨네.
세존께서 만일 설법하시면
한량없는 야차들도
능히 한량없는 몸 나타내리니,
설법소리 듣고자 합니다.
그때에 라바나 란카왕이 기쁜 소리와 여러가지 묘한 음성으로
여래의 모든 공덕을 노래하며 찬탄하고, 또한 다시 게송의 묘한 소리로
여래를 노래하고 찬탄하여 게송을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칠일간을
바다의 모진 짐승속에서
바다 건너 저 언덕에 이르러
거기서 이내 머무셨다.
라바나 야차왕과
그의 처자들이며,
한량없는 권속들과
지혜 있는 대신들이며.
숙가(叔迦)바라나(婆羅那)인
이러한 하늘무리
그네들이 제각기
한량없는 신통 나투고.
묘한 꽃궁전 타고
부처님 처소에 함께와서
꽃궁전에서 내리고는
부처님께 예배 공양하였네.
그는 부처님의 힘을 입어
바로 부처님 앞에서
자기들의 이름을 말하되,
우리는 십두(十頭) 나찰이옵니다.
원하옵노니 우리들과
성안의 중생을 어여삐 여기시어
이곳 란카성과 말라야산을
받아 주소서.
옛적 한량없는 부처님도
이곳 란카성의
갖가지 보배산 위에서
당신의 증득한 법 말씀하셨네.
지금 부처님께서도
이곳 보배 산중에서
옛적 부처님과 같이
또한 이 법 말씀하소서.
여러 불자들과 함께
청정한 이 법 설하소서
나와 능가 대중은
모두 듣고자 합니다.
입능가경이란
옛적 부처님이 찬탄하신
마음으로 얻은 깊은 지혜의 경계
말씀하신 그 명자(名字) 조차도 떠나셨네.
내 기억하노니 지난 세상의
한량없는 부처님이
여러 불자가 둘러 모신데서
이 경을 설하셨나이다.
부처님이시어, 오늘에도
또한 곧 우리들과
여러 대중 위하시어
깊은 이 법 말씀하소서.
미래의 여러 세존과
또한 여러 불자들도
이곳 보배산 위에서
깊은 이 법 설하시리.
지금 이곳 란카성은
천궁보다 미묘하여
장벽은 흙과 돌 아니오며,
모든 보배 그물로 덮었나이다.
이의 여러 야차들도
이미 옛적 부처님께
닦고 배워 모든 허물 떠나며
마침내 대승법에 머무르고,
내심(內心)으로 잘 생각하여
여실한 생각 상응(相應)하였아오니,
원컨대 부처님은 어여삐 여기시어
야차들을 위해 설법하소서.
원컨대 부처님
말라야산에 드시옵소서.
야차와 그의 처자들이
대승법을 얻고자 합니다.
옹이(甕耳)등 나찰도
이 성에 또한 있으면서
일찍 과거의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였고.
지금 또 다시
현재 대법왕께 공양 원하옵고,
속마음의 법행을 듣사오며,
대승법을 얻고자 합니다.
원하옵노니 부처님은
저희와 야차무리를 연민(憐愍)하시어
여러 불자들과 함께
이곳 란카성에 드시옵소서.
저희들의 있는바 궁전과
처자와 또한 권속들과
보배 갓과 모든 영락(瓔珞)과
가지가지 꾸미개와
아쇼카[阿舒迦] 동산의 숲과
갖가지 모두 좋은 것과
타고 있는 꽃궁전까지
부처님과 대중에게 보시합니다.
저희가 부처님 앞에서는
아끼는 물건 없아오니,
원컨대 큰 모니 어른이시여
불쌍히 여겨 받아 주소서.
저희와 여러 불자들은
부처님 설법 받겠아오니,
원컨대 부처님은 어여삐 여기시어
저희 위해 받으시고 설법하소서.
그때에 부처님은
야차의 청함 들으시고,
즉시 야차들을 위하여
과거, 미래 부처님을 말씀하셨다.
야차여, 과거의 부처님도
이곳 보배 산중에서
야차를 어여삐 여기시기에
스스로 증득한 법 말씀하셨고,
미래의 부처님도
이곳 보배 산중에서
야차들을 위하여
역시 깊은 법 말씀하시리라.
야차여, 이곳 보배산에는
참다히 수행하는 사람과
현재 법을 보아 수행하는 이만
이곳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야차여, 지금 그대에게 말하노니,
나와 여러 불자들이
그대들을 어여삐 여기기에
그대의 줌과 청함 받아 말하노라.
부처님은 약간의 답을 마치시고,
말없이 고요히 계시니,
라바나나찰왕은
꽃궁전을 부처님께 올렸다.
부처님과 불자들은,
꽃궁전 받아 타셨고,
라바나야차왕도
또한 꽃궁전을 탔었다.
그리고 아릿다운 계집과
좋은 음악 가지고서
부처님을 기쁘게 하려고
성안으로 들어 왔었다.
성안에 들어 와서는
라바나와 그의 아내와,
야차의 남녀들도
또한 좋은 공양구 가졌었다.
가지 가지 모두 좋은 공양구를
부처님과 불자에게 올리니,
부처님과 보살들은
모두 그의 공양 받으셨다.
또한 라바나등 대중들이
설법할 이에게 공양하려고,
부처님의 설법에서
스스로 증득한 법 관찰하고서,
대혜보살께 공양 올리고
여러번 청하여 말하되,
보살님만이 능히 부처님께
안으로 행하는 경계 물으리라.
저희와 야차 무리들과
또한 여러 불자들이
모두 들으려는 이는
보살님의 물으심 바랍니다.
보살님은 설법도 훌륭하시며,
수행도 제일 훌륭하시니,
저는 보살님을 존경하기에
부처님의 훌륭한 법 청하옵니다.
그 법은 외도의 치우침 떠났으며,
또한 二승(乘)의 허물도 떠나고
내법(內法)청정함을 말함이오니,
그는 최고인 여래의 경지랍니다.
그때 부처님의 신력으로
변화로 된 산성이 또한 생기니,
높다란 온갖 모양엔
장엄한 것이 수미산을 비할 듯.
한량없는 꽃동산은
모두 여러가지 보배의 숲이며
향기가 널리 퍼지는데,
꽃다운 향기는 전에 없던 것이다.
낱낱 보배 산 가운데는
부처님의 몸이 모두 보이고
또한 라바나와
야차 무리들이 살고 있었다.
시방세계의 불국토와
여러 부처님의 몸과
불자와 야차왕은
그 산에 모두 모였다.
이곳 란카성에 있던 대중도
모두 자기네의 몸들이
변화로 된 란카성중에
들어가 있는 것 보았었다.
여래의 신비로운 힘으로서
또한 그 란카산과 같이
다른 여러 산과 동산 숲도
보배장엄이 또한 같았다.
낱낱 산에는 부처님마다
큰 지혜로 묻는 이가 있는데,
부처님은 모두 그를 위하여
스스로 증득한 법 말씀하실제
백천가지 묘한 음성으로
이의 경법을 설하시고
부처님과 불자들은
모두 숨어 보이지 않았다.
라바나 야차왕도
문득 자기의 몸이
본집에 있는 것만 보이며,
딴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야차는 생각하기를
아까 본 것은 어찌 된 것이며
설법한 이는 누구였을까,
이 설법은 누가 들었던가.
내가 본 것은 무슨 법인데
이런 일이 있었던고,
그의 모든 불국토와
또한 여러 부처의 몸.
여러가지 신기한 이것은
지금 어느 곳으로 갔는고
꿈속에 생각한 것이었던가
요술에 홀린 것일까.
이 참으로 성읍(城邑)이었드냐
건달바의 성이던가
눈병으로 허망하게 본 것인가
아지랑이가 일어났을까.
꿈에 돌계집이 애를 낳느냐
빨리 도는 불 바퀴를 본 것이냐
또는 불 바퀴의 연기를 본 것일까
나의 본 것은 도대체 무엇인고.
그리고 야차는 다시 생각하되
모든 법의 체성은 이러한 것,
내 마음의 경계로 될 뿐이며
속마음으로 능히 알바로다.
그렇건만 모든 범부들은
무명(無明)의 덮이고 가리움으로
허망한 마음으로 분별하여
능히 깨닫지 못 하는구나.
능견(能見)과 소견(所見)
모두 있을 수 없고,
말하는 이와 말할 법인
이러한 것들도 또한 없나니라.
불법의 진실한 체성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어서
법의 모양 항상 이렇거늘
괜히 마음으로 분별하네.
물건을 보고 진실인양 하면
이 사람은 부처 볼 수 없고,
분별하는 마음 없다해도
또한 부처를 보지 못하네.
모든 행(行)이 있다고 보지 않으면
이것이야말로 부처일세.
만약 능히 이렇게 본다면
그 사람은 여래를 본 것일세.
지혜있는 사람은 이렇게
모든 경계를 관찰하리
이몸 변해 묘한 몸 얻으리니,
이것이 곧 부처의 보리라네.
그때에 라바나 십두[十頭]나찰인 란카왕은 분별하는 마음이 허물임을 보았기에
분별하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세(過去世)의 선근의 힘으로 여실히 모든 이론을 깨달
으며,
여실히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깨닫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를 것 없이
스스로 잘 생각하여 모든 법을 알았건만, 능히 일체의 사견(邪見)을 각지(覺知)함을 떠났으
며,
곧 잘 여실(如實)한 행법(行法)을 수행하여 자신안에 있어서 능히 가지가지 색상(色像)을 나
타내고
구경(究竟)인 큰 방편 알음[方便解]을 얻어 모든 지위에 오르는 체성과 모양을 잘 알았다.
또한 마음[心], 뜻[意], 의식(意識)의 제모습을 관찰하기 좋아하여
삼계(三界)에서 상속(相續)하는 몸임을 보았으나, 외도들의 항상 있다고 보는[常見]것을 떠났
고,
지혜로서 여실히 여래장(如來藏)을 알고서 부처님의 속마음 참다운 지혜에 들어 갔다.
허공과 자기 몸속에서 묘한 소리가 나면서 이와 같은 말이 들렸다.
“착하다. 착하다. 란카왕이여, 모든 수행자는 너의 수행과 같아야 한다.”
또한 말하기를,
“착하다. 란카왕이여, 부처님의 여래법과 및 비법(非法)도 너의 보는 바와 같나니라.
만일 너의 보는 것과 다르다면, 이는 단견(斷見)이라 할 것이니라.
란카왕이여, 너는 마땅히 마음, 뜻, 의식을 멀리 떠나고 모든 법의 실상을 여실히 수행하라.
너는 이제 마땅히 안의 법[內法]을 수행하고, 바깥 의리[外義]인 사견(邪見)에는 집착하지 말
지어다.
란카왕이여, 너는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외도들의 수행하는 것을 닦지 말고,
너는 마땅히 모든 외도들의 다른 삼매(三昧)에도 머무르지 말며,
너는 외도들의 가지 가지 희론(戱論)도 좋아하지 말고,
너는 모든 외도들의 베타(葦陀) 사견(邪見)에도 머무르지 말 것이며,
너는 마땅히 왕위에서 방일(放逸)함과 자재(自在)한 힘에도 집착하지 말며,
너는 마땅히 선정(禪定)과 신통(神通)의 자재한 힘에도 집착하지 말라.
란카왕이여, 이와 같은 일들만이 여실한 수행자의 행할 바라,
능히 모든 외도의 사뙨 논리를 항복받고, 능히 모든 허망한 사견을 깨트릴[破] 것이며,
능히 일체견[一切見], 아견(我見)의 허물을 없애고,
능히 일체 미세한 식(識), 행(行)을 떠나 대승행을 닦을 것이다.
란카왕이여, 너는 마땅히 속몸 송두리째 여래의 땅에 들어가서 진실한 행을 닦으라.
이렇게 수행하는 자 최상의 청정한 법을 얻으리라.
란카왕이여, 너는 네가 얻은 도를 버리지 말고, 삼매, 사마파티[三摩跋提]를 잘 닦으되,
성문과 연각과 외도의 삼매경에 집착하여 좋은 낙으로 여기지 말라.
또는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들의 수행하는 것도 너는 분별하지 말라.
란카왕이여, 외도는 나라는 소견[我見]에 집착하여 아상(我相)이 있기 때문에 허망스리 분별
하며,
외도를 사대(四大)의 모양이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법에 집착하여 그것들이 실로 있는 것으로 여기며
성문과 연각은 무명(無明)이 행(行)으로 반연함을 보고 그것이 실로 있다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진실한 <공(空)>을 떠나고서 허망스리 분별하며,
온통 유법(有法)에 집착하여 보는 것[能見]과 보여지는[所見] 마음속에 떨어지느니라.
란카왕이여, 이 훌륭한 도법은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몸속 깊이 때닫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훌륭한 대승법을 얻어서 삼계(三界)에 몸을 자유로 받아날 수 있게
하느니라.
란카왕이여, 이 대승행에 들어감이란 능히 중생의 가지가지 눈에 낀 백태와
가지가지 알음알이의 물결을 없애주고, 외도의 모든 소견과, 하는짓들에 떨어지지 않게 하느
니라.
란카왕이여, 이는 대승행에 들어가게 함이요, 외도의 행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외도의 행이라는 것은 몸안에 <나(我)>가 있다고 보는 행이다.
의식과 물질의 두 법을 보고 그것이 실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생기고[生] 멸함[滅]이 있는 것을 보게 되나니라.
착하다. 란카왕이여, 이 뜻을 생각하는구려. 너의 생각함은 바로 부처를 보는 것이니라.”
그때에 라바나 란카왕이 또한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부처님께 진실한 행과 법을 물어
서
모든 외도의 행을 떠나고, 마음속 깊이 수행하여,
관찰하는 경계도 응화(應化) 부처님의 하시는 일을 떠나리니,
그것은 더 훌륭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진실한 수행자들이 법을 증득할 때에 얻어지는 삼매,
최상의 낙이니, 만일 그 낙을 얻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수행자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크게 자비하신 여래 세존께 물어 보리라.
여래는 능히 번뇌(煩惱)의 섶을 태워 없애셨고, 불자들도 또한 태워 없앴다.
여래는 모든 중생의 마음과 번뇌를 잘 아시며
여래는 두루 일체지의 곳[一切智處]까지 도달하셨으며
여래는 참으로 옳고 그른 모양을 잘 아시었다. 내가 지금 마땅히 묘한 신통력으로 여래를
뵙고,
여래를 뵙고서는 얻지 못한 것은 얻고, 이미 얻은 것은 퇴타하지 않으며,
분별이 없는 삼매, 사마파티를 얻고, 더욱 여래의 행하신 것을 만족하게 얻으리라.’ 라고
하였다.
그때에 부처님은 란카왕이 무생법인(無生法因)을 얻을때가 온 것을 참으로 밝게 아시고,
십두 나찰왕을 불쌍히 여기시므로 숨었던 궁전과 몸이 전과 같이
가지 가지 보배 그물로 장엄된 산성 가운데서 나타나게 하시었다.
그때에 십두 나찰 란카왕은 모든 궁전이 도로 본래와 같이 보이며, 낱낱 산중엔 곳곳마다
부처님,
세존, 응공(應供),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가 있어 서른 두가지 모양으로
묘하게 장엄하신 몸이 산중에 계시는 것이 보이며,
그리고 스스로 자기 몸도 두루 여러 부처님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또한 모든 불국토도 보이
며
여러 국왕들이 몸의 덧없는 것을 생각하되,
‘왕위와 처자, 권속과 오욕락을 탐하여 속박 되었기에 해탈할 수 없다’하고,
문득 국토와 궁전과 처첩(妻妾)과 코끼리와 말과 값진 보물을 흩어 버리고,
부처님과 스님에게 보시하기도 하며, 산중에 들어가서 출가 수도 하는 것도 보이며,
또한 어떤 불자는 산속에서 용맹정진 하다가 몸을 주린 범과 사자와 나찰에게 던져 주어
불도를 구하는 것도 보이며, 또한 어떤 불자는 나무숲아래 있으면서 경전을 독송하고,
사람들에게 연설하여 불도를 구하는 것도 보이며, 또한 어떤 보살은 괴로워 하는 중생을 생
각하여
도장(道場)에 앉아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불도를 사유(思惟)하는 것도 보이며,
또한 낱낱 부처님 앞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이 있어 몸속 깊이 수행하는 경계를 말씀한 것도
보이며,
또한 야차 권속들이 둘러 모시어 명자(名字)와 글귀를 말하는 것이 보이었다.
그때에 부처님은 지혜로써 현재의 여러 대중을 관찰하시니, 그는 육안(肉眼)으로 보신 것이
아니요,
사자와 같이 날쌔고 신속하게 보는 것이었다.
‘하하...’하고 크게 웃으시며, 정수리의 살 상투에서 한량없는 광명을 놓으시며,
어깨와 갈비와 허리와, 밥통과 가슴의 卍자가 있는 곳과
모든 털 구멍에서도 모두 한량없는 광명을 놓으시니
, 그 광명은 공중의 무지개와 같고 천 배나 되는 햇빛 같으며,
세계가 없어질 때의 큰 불이 치성하게 타오르는 모양과 같았다.
제석과 범천왕과 사천왕들은 허공중에서 여래를 관찰하여, 부처님이 수미산(須彌山)에 앉으
시고,
란카산 위를 마주 대하여 ‘하하...’하고 크게 웃으심을 보았다.
그때에 보살 대중과 제석과 범천왕과 사천왕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되,
‘무슨 인연으로 여래, 응공(應供),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께서는
모든 법에 걸림 없으시면서 전에 없던 이러한 ‘하하...’하고 크게 웃으심을 하시옵고,
또한 스스로 몸에서 한량없는 광명을 내시고서, 묵연히 계시어 깊은 지혜의 경계만을 생각
하시되,
훌륭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사자(師子)의 보는 것처럼 란카왕을 보시며
진실한 행을 생각 하시는고.’ 하였다.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전번에 란카 라바나 왕의 청함을 받았는지라,
곧 란카왕을 생각하시며, 그리고 여러 큰 보살 대중의 마음과 행의 법을 아시고
또한 미래의 모든 중생들은 모두 명자만을 좋아하고, 설법함에는 마음이 미혹하였기에
의심을 내고, 일체 성문과 연각과 외도의 행에 집착하지만, 부처님은 모든 알음알이의 행을
떠나시고,
능히 저와 같이 크게 웃으신 것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이 대중들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하여 부처님께 물어 말씀하셨다.
“부처님이시여, 무슨 인연과 무슨 일로 ‘하하...’하고 크게 웃으셨나이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또한 착한 대혜여, 그대는 능히 세간의 망상으로 분별하는
마음은
사뙨 견해이며 뒤바뀐 것임을 잘 관찰하는구려.
그대는 참으로 삼세(三世)의 모든 일을 잘 알고 이러한 일들을 묻는구려.
그대의 묻는 것처럼 지혜 있는 사람들도 역시 그와 같이 묻나니,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위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이 란카왕도 옛적 여러 부처님께 이와 같은 두 법을 물었으며,
지금도 또한 나에게 이와 같은 두 법을 묻고자 하나니,
이 두법은 일체 성문과 연각과 외도는 아무도 이 두법의 모양을 알지 못하느니라.
대혜여, 이 십두 나찰이 또한 미래의 여러 부처님께 이 두법을 물을 것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 짐짓 라바나 왕에게 물으시었다.
“란카왕이여, 그대가 나에게 물으려거든 그대의 의심나는대로 모두 다 물어보라.
내 모두 잘 답하여 그대의 의심을 없애주고 기쁨을 얻게 하리라.
란카왕이여, 그대가 하망스리 분별하는 것을 떠나고, 모든 지위에서 닦아 가는 방편(方便)을
얻어
진실한 지혜를 관찰하고, 능히 속몸의 진실한 삼매와 수행하기 좋아하는 삼매에 들게 되면,
부처님이 곧 그대를 거두어 주시리니, 그대의 몸은 사마타(奢摩他)안락의 경지에서 잘 머물
러
성문과 연각의 깨끗지 못한 삼매를 벗어나고 부동지(不動地)와
선혜지(善慧地)와 법운지(法雲地)에 들어가고, 진실한 무아(無我)의 법을 잘 알 것이며,
큰 보배 연꽃자리 위에서 앉아 한량없는 삼매를 얻고 부처님의 직위를 받으리라.
란카왕이여, 그대는 응당 오래지 않아 자신도 또한 이와 같은 연꽃자리 위에 앉아서,
으레히 머물게 됨을 볼 것이며, 한량없는 연꽃과 한량없는 보살이 각각 모두 연꽃자리에 앉
아
자기네들끼리 둘러서 서로 볼 것이며, 각각 오래지 않아
모두 헤아릴 수 없는[不可思議]경지에 머물게 되리니,
이른바 한결 같은 행과 방편의 행을 일으켜 여러 지위 가운데에 머물러서
능히 헤아릴 수 없는 경계를 볼 것이며, 여래 경지의 한량없고 가없는 가지 가지 법상(法相)
을 볼 것이니,
이는 성문과 연각과 사천왕과 제석과 범천왕들의 전혀 보지도 못하는 바니라.”
그 때에 란카왕은 부처님, 세존께서 자기의 물음을 들어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곧 저 깨끗하고 한량없이 빛나는 큰 보배연꽃과 뭇 보배로 장엄한 산 위에서
한량없는 하늘여인[天女]이 저절로 그 [란카왕]의 주위를 둘러 호위하게 하며,
한량없는 가지 가지 이채로운 꽃과 가지 가지 좋은 향, 뿌리는 향,
바르는 향과 보배 깃발과 보배 일산과 보배 갓과 영락과 몸의 꾸미개등을 나타내며,
또한 세상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가지 가지 훌륭한 장엄구(莊嚴具)를 나타내고,
또 한량없는 가지 가지 악기(樂器)를 나타내는데, 여러 하늘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乾達婆)
와
아수라(阿修羅)와 가루라(迦樓羅)와 긴나라(緊那羅)와 마후라가와
사람인듯 사람 아닌듯한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악기보다 좋은 것이었다.
또한 삼계(三界)인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에 있는 모든 악기를 죄다 변화로
만들어 내며,
또한 시방의 여러 부처님 세계에 있는 가지 가지 훌륭하고 기묘한 악기를 변화로써 모두 다
만들어내며,
또한 변화로써 한량없는 큰 보배 그물을 만들어서 두루 부처님과 보살 대중 위에 덮으며,
또 한량없는 가지 가지 보배 깃발을 세웠다.
라바나왕이 이와 같이 변화로 하는 일들을 다하고는,
몸이 허공에 오르니, 높이가 다라수(多羅樹)의 七배였다.
허공중에 있으면서 가지 가지 풍류와 가지 가지 꽃과, 가지 가지 향과,
가지 가지 의복을 비 내리듯하여 허공중에 가득한 것이 큰 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것으로 부처님과 불자들에게 두루 공양하였다. 공양하기를 마치고 위로부터 내려와서,
즉시 제二의 번개 광명 큰 보배 연꽃인 여러 가지 보배로 된 산위에 앉았었다.
그 때에 부처님은 그 란카왕가 앉는 것을 보시고,
미소를 띄우시면서 란카왕의 <두가지 법> 묻기를 허락해 주셨다.
이 때에 란카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두가지 법을 제가 이미 과거의 여러 부처님, 응공(應供), 정변지께 물었압
더니,
그때 부처님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엔 명자(名字)와 글귀에만 의지하므로 또한 부처님께 묻겠아오니,
부처님은 응당 저를 위하여 말씀하시라 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응화(應化), 화불(化佛)의 이 두법을 말씀한 것은 근본여래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근본여래는 삼매 안락의 경지를 닦아 얻으신 이라,
마음과 알음알이 밖에의 모든 경계는 말씀하시지 아니 하옵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일체 법에 자재하옵시니 원컨대 세존,
응공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께서는 이의 두 법을 말씀하옵소서.
여러 불자들과 및 저희도 듣기를 원하옵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알아 들으시고 즉시 란카왕에게 말씀하셨다.
“란카왕이여, 그대는 이 두 법을 물으라.”
그 때에 야차왕(란카왕)은 가지 가지 금관(金冠)과 영락과 금의 꾸미개를 고쳐 입고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어찌 하물며 법 아닌 것이
랴.
’하옵시니 세존이시여, 어찌 두 법을 다 버리라 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무엇이 법이오며, 무엇이 법 아닌 것이옵니까.
세존이시여, 법을 버리는데 어찌 둘이 있다하여 분별하는 상(相)에 떨어져서
허망스리 있다 없다 작다 크다는 법들을 분별하오리까.
세존이시여, 아라야식[阿梨耶識]의 명(名)과 식(識)을 아는 모양이 있는바 체상(體相)은
허공중에 털바뀌가 머물러 있는 것과 갔아오니, 그는 깨끗한 지혜와 경계가 아니옵니다.
알바인[新知] 수행자가 알아야할 법이다.
세존이시여, 법성이 만약 이와 같을진대 어찌 버리라 하시옵니까.”
부처님은 란카왕에게 말씀하셨다.
“란카왕이여, 그대가 병(甁)등이 무상(無常)하게 부서지는 법칙을 보지 못했는가.
이는 어리석은 [毛道] 범부들이 경계를 분별하는 차별인 모양이니라.
란카왕이여, 무슨 까닭으로 법과 아닌 것의 차별 된 모양을 그와 같은 것으로 취하지 않느
냐.
그는 어리석은 범부들의 분별하는 마음으로부터 있는 것이요,
성인의 증득한 지혜로는 볼 것이 있다고 한것이 아니니라.
란카왕이여, 병(甁)등은 고사하고라도 가지 가지 모양과 사법도
어리석은 범부만이 있는 것이라고 한 것이요, 성인은 있는 법이라고 여기지 않느니라.
란카왕이여, 비유컨대 하나의 불이 궁전과 동산숲과 풀과 나무를 불태우는데,
가지 가지의 불이 보이고, 광명과 불빛과 불꽃이 각각 차별하는 것이 가지 가지 섶의 풀과
나무의 길고 짧음을 따라서 분별함에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을 보게 되나니,
이 가운데서 무슨 까닭으로 법과 법 아닌 차별의 모양이 있는 것을 그와 같이 알지 않으랴.
란카왕이여, 불꽃뿐만 아니라, 하나의 계속되는 몸에 있어서도
가지 가지 모양의 차별이 있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란카왕이여, 하나의 종자도 한결같이 계속하여 움이 트고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와
나무숲인 갖가지 다른 모양이 생기나니, 그와 같아서 생겨진 안팎의 모든 법과 무명(無明)과
행(行)과
오음(五陰)과 십팔계(十八界)와 육입(六入)등의 모든 법과 삼계에서 태어나는 것도 모두 차
별이 있나니라.
또한 좋은 형상을 나툼과 언어(言語)와 가고 오는 동작과 훌륭한 지혜도 모양이 다르니라.
한 모양(아라야식)의 경계인데도 여러 모양을 취하므로 하, 중, 상의 차별인 수승한 모양과
더럽고 깨끗하고 좋고 좋지 않는 모양을 보게 되나니라.
란카왕이여, 가지 가지 법 가운데서 차별상(差別相)을 볼 뿐만 아니라,
진실한 도를 깨닫는 이의 안으로 증득하는 행(行)가운데도 또한 가지 가지의 다른 모양을
볼수 있거든,
어찌 하물며 법과 법 아닌 것이야 가지 가지 차별상을 분별함이 없으랴.
란카왕이여, 법과 법 아닌 가지 가지 차별상이 있느니라.
란카왕이여, 무엇을 법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일체 외도와 성문과 연각과 어리석은 범부들이
분별하는 소견에서 원인인 실물로부터 근본이 되어 가지 가지 법이 생긴다는 것이니,
이러한 법들을 마땅히 버리고 여의며, 상(相)에 취착(取着)하여 분별을 내거나
자심법(自心法)을 보고 진실로 여기지 말라.
란카왕이여, 병(甁)이란 진실한 법이 없는 것이언만,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들은 허망하게 분
별하나니라.
법은 본래 형상이 없는 것임을 참으로 알고 관찰한다면, 모든 법을 놓아 버린 것이라 말할
것이니라.
란카왕이여, 무엇을 법 아닌 것이리라 하느냐, 말하자면 몸이란 형상은 있는 것이 아니요,
마음만 있을 뿐이니, 망상분별(妄想分別)을 없애야 한다.
모든 범부는 사실인 법과 사실 아닌 법을 보지만,
보살은 이를 참다이 보아서 이와 같이 법 아닌 것을 버리느니라.
란카왕이여, 또한 무엇이 법 아닌 것이냐, 말하자면 토끼, 말, 나귀,
낙타의 뿔과 돌 계집의 아이는 몸도 없고 모양도 없는 것이어늘,
그럼에도 어리석은 범부는 그를 취하여 없다 하며 세간(世間)의 의리로 여겨서 명자를 말하
나니,
그의 모양은 취할 수 없는 것이 저 병(甁)등의 법과 같아서 가히 버려야 하느니라.
지혜있는 이는 토끼뿔들의 명자를 이와 같이 허망하게 분별하는 것을 취하지 않나니,
그도 또한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과 법 아닌 것을 다 버려야 하느니라.
란카왕이여, 그대가 지금 나에게 법과 법 아닌 것을 어찌 버려야 하느냐고 묻는 것을 나는
이미 말했노라.
란카왕이여, 그대가 ‘말하되 제가 과거의 응공(應供)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께 이미 이 법
을 물었더니,
저 부처님께서는 이미 저를 위하여 말씀하셨다 하니,
란카왕이여, 그대가 말한 과거는 곧 분별하는 상이며, 미래와 현재도 역시 분별인 것이다.
란카왕이여, 내가 말한 진여(眞如)의 법체가 참이다고 하는 것도 또한 분별인 것이다.
단 물질을 분별하여 참 진리라고 한 것만은 진실한 지혜를 증득하고
모양이 없는 지혜를 좋아하여 수행하기를 위한 것이다. 그러하므로 분별하지 말것이니라.
여래는 지혜의 몸인지라, 지혜의 몸이므로 마음속으로도 분별하지 말 것이요,
뜻으로도 나와 남과 수명[命]등이라는 것을 취하지 말 것이니라. 어찌하여 분별하지 말라 하
느냐,
의식(意識)으로서 가지 가지 경계를 취착(取着)함은 물질형상인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은 취할수도 없으며 분별할 수 없고 분별 못하는 까닭이니라.
란카왕이여, 비유컨대 벽위에 여러 가지 그려진 그림과 같아서 일체 중생도 또한 그와 같나
니라.
란카왕이여, 일체 중생이 풀과 나무와 같아서 업(業)도 없으며 행(行)도 없느니라.
란카왕이여, 모든 법과 법 아닌 것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느니라.
란카왕이여, 일체세간의 법은 모두 눈홀림과 같거늘 모든 외도와 범부는 이를 알지 못함이
니라.
란카왕이여, 만일 능히 이와 같이 보고 참답게 본다면 바로 본 것이요 만일 달리 본다면 잘
못 본 것이요
만일 분별한다면 두가지를 취하는 것이니라.
란카왕이여, 비유컨대 거울속에 모양이 스스로 제 모양을 보는 것 같으며
또한 물속에 그림자가 스스로 제 그림자를 보는 것 같으며 달빛과 등불빛이 방안에 있으면
서
그 그림자가 스스로 제 그림자를 보는 것 같으며, 허공중에 메아리 소리가 스스로 소리를
내고
그를 제 소리인양 하는 것과 같아서, 만일 이와 같이 법과 법 아닌 것을 취한다면,
이는 모두 허망한 망상(妄想) 분별이다. 그러므로 법과 법 아닌 것을 아지 못하고,
허망한 더욱 더하여 적멸(寂滅)을 얻지 못하리라.
적멸이란 것은 일심(一心)인 것이요, 일심은 곧 여래장(如來藏)이니,
이는 자기 속몸 지혜의 경지에 드는 것이며, 무생법인(無生法忍)삼매를 얻는 것이니라.
二, 문 답 품(問答品)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여러 대혜보살과 함께 여러 부처님의 세계에서 노시더니,
부처님의 신력을 입고서, 이 자리로부터 일어나 옷을 고쳐 입고 합장하고
공손히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부처님의 지혜와 대비(大悲)시여,
세간에서도 나고 죽음 떠나셨네
그것(生滅)은 허공의 꽃이거니
있고 없는 것 얻을 수 없으리.
부처님의 지혜와 대비시여,
모든 법을 환(幻)으로 여기시고
마음과 뜻과 의식을 멀리 떠나시니
있고 없는 것 얻을 수 없으리.
부처님의 지혜와 대비시여,
세상이 모두 꿈속 같기에
단견과 상견 멀리 떠나시니
있고 없는 것 얻을 수 없으리.
부처님의 지혜와 대비시여,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
둘다 없어 깨끗하시니
있고 없는 것 얻을 수 없으리.
부처가 열반에 들지 않으시고,
열반 역시 부처에 머무르지 않아
깨달음과 깨달을 법 모두 여의고
있고 없는 두가지 함께 떠나셨네.
부처를 만일 이같이 관찰하여
고요히 생멸(生滅)을 여읜다면
그 사람은 현재나 또는 후세에
집착의 때 나쁜 소견 없으리.
그때에 대혜 보살 마하살은 법다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서 스스로 성명을 말하였다.
저의 이름은 대혜이옵니다.
대승법 통달하기 원하여
지금 백여덟의 물음으로써
무상존(無上尊)께 우러러 청합니다.
제일 훌륭하신 부처님은
대혜 보살의 물음 들으시고
모든 중생을 관찰하시며
여러 불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 여러 불자와
또한 대혜 보살이 묻기에
나는 곧 그대들을 위하여
나의 깨달은 경지 말하리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그 물은 것을 부처님께서 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을 듣
고,
부처님의 발 밑에 이마를 대고 예배하며, 합장하고 공손히 게송으로 물었다.
어찌하면 모든 지각 깨끗하오며
무슨 원인으로 각(覺)이 있나이까
무슨 원인으로 미혹을 보고
무슨 원인으로 미혹이 있나이까.
무슨 원인으로 여러 국토와
변화한 모양과 외도가 있나이까
어떤 것을 불자라 이름하며
고요한 법의 차례이옵니까.
해탈의 경지에 어떻게 가오며
속박 그것은 어떻게 벗으리까
선(禪)은 무슨 법을 관하오며
무엇 때문에 三승(乘)이 있나이까.
무슨 인연으로 법이 생기고
지음과 짓는 바(所作) 있아오며
무슨 원인으로 함께 다른 말이며
어찌하여 없는 데로부터 나타나나이까.
무슨 원인으로 무색정(無色定)과
또한 멸진정(滅盡定)이 있읍니까
어떤 것이 생각 없어진 정이오며
어떻게 정으로부터 깨어납니까.
어찌하여 인과(因果)가 나오며
무슨 원인으로 몸이 거주(去住)합니까
무슨 원인으로 물건을 보오며
어찌하여 여러 지위가 생기옵니까.
삼유(三有)를 없앨 이는 누구시며,
그의 몸은 어느 곳에 이르고
어느 곳에서 머무르시며,
그 어떤 불자들이옵니까.
어찌하면 신비로운 신통과
자재한 삼매를 얻나이까
어떤 원인으로 정심(定心)을 얻습니까
거룩하신 부처님은 말씀하소서.
어떤 원인으로 장식(藏識)과
뜻과 의식이 되었나이까.
무엇 때문에 모든 법을 보는지
어떻게 그 소견 끊으리까.
무엇이 성과 비성[性非性]이오며,
어찌 마음뿐이고 법은 없는데
무슨 원인으로 법상을 말하오며
무엇을 무아(無我)라 말하나이까.
무슨 까닭으로 중생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세법은 있아오며
무슨 까닭으로 떳떳함 볼수 없고
또한 단멸도 볼수 없나이까.
어찌하여 부처와 외도 두 모양이
서로가 어기지 않으오며,
무슨 까닭으로 닥아오는 세상에
여러가지 이부(異部)가 있나이까.
어찌하여 공(空)했다 말하오며
무슨 까닭으로 생각이 흐릅니까
무슨 원인으로 태장(胎藏)이 있아오며,
어찌하여 세계가 변동하질 않습니까.
그가 어찌 환(幻)과 꿈 같으며,
건달바와 또는 아지랑이와
물속의 달과 같다 하시온지
세존이시여, 그를 말씀하소서.
어떤 것을 각의 갈래[覺文]라 하오며
보리의 부분[菩提分]은 어떻습니까
어찌하여 나라가 어지럽고
무슨 까닭으로 있다고 보나이까.
무슨 원인으로 생멸하지 않으며
무엇 때문에 허공꽃과 같다 합니까
무슨 원인으로 세상일 아오며
무슨 원인으로 문자 없이 말하나이까.
무엇을 분별없는 것이라 하오며
무슨 원인으로 허공 같다지요
진여(眞如)는 몇 종류 있아오며
바라밀의 마음은 몇 가지옵니까.
지위의 차례는 어떤 것이온데
진여는 차례가 왜 없나이까
무엇이 두 가지 무아(無我)이오며
어쩌면 아는 경계 깨끗하오리까.
지혜와 계(戒)는 모두 몇 종류며
중생의 생(生)하는 것 어떻습니까
여러가지 보배로운 물건들인
금과 마니주는 뉘 만들었읍니까.
어느 것이 말을 냈아오며
중생의 갖가지로 다른 것과
오명(五明)인 모든 기술을
누가 능히 이렇게 말했나이까.
가타(伽陀)가 몇 종류나 있아오며
어떤 것이 길고 짧은 구절이옵니까
법은 또한 몇 종류가 있아오며
뜻을 풀이함도 얼마이옵니까.
무슨 원인으로 음식의 종류 있아오며
어찌하여 애욕이 생기나이까.
어떤 것을 왕(王)이라 하오며
전륜왕(轉輪王)과 소왕(小王)이옵니까.
무엇이 국토를 보호하는 왕이며
모든 하늘은 몇 종류나 되지요
무슨 원인으로 땅이 있으며
해와 달과 별들이 있나이까.
해탈은 몇 종류나 있아오며
수행하는 자도 몇 가지옵니까
제자는 몇 종류가 있아오며
아사리는 얼마나 되옵니까.
부처님은 몇 분이 되시오며
본 생일[本生事]은 몇 가지옵니까.
악마는 몇 종류가 있아오며
이학(異學)은 몇 가지옵니까.
자성(自性)은 몇 가지가 있아오며
마음 또한 몇 종류 있나이까
어찌하여 가명(假名)을 시설하온지
세존께서는 이를 말씀하소서.
무슨 원인으로 바람과 구름 있으며
어찌하여 슬기로움 있나이까
무슨 까닭으로 나무, 숲이 있아온지
세존께서 이를 말씀하소서.
어찌하여 코끼리와 말과 사슴을
사람들이 그를 잡아 먹나이까.
무슨 인연으로 난쟁이가 되는지
세존께서 이를 말씀하소서.
무슨 원인으로 육시(六時)가 생겼으며
이천티카는 어찌 되었나이까.
남녀와 또한 사내답지 못한 것은
어찌 된 것인지 말씀하소서.
어쩌면 수행이 퇴타하오며
어쩌면 수행하여 전진합니까
어떤 사람에게 수행함을 가르치는데
그들로 어떤 법에 머물게 합니까.
모든 중생들의 오가는 것은
어떤 인연과 어떤 모양들이옵니까
무슨 인연으로 부자[富]가 되온지
세존께서 이를 말씀하소서.
무엇을 석가족(釋迦族)이라 하오며
어떤 인연으로 석가족이 있나이까
무슨 인연으로 감자종(甘蔗種)과
장수선(長壽仙)이 있나이까.
장수선은 누구와 친하오며
어떻게 그를 교수하였나이까
허공같이 넓으신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말씀하소서.
무슨 인연으로 세존께서는
어느 때와 어느 세계에서도
갖가지 몸과 말을 나투시는데
불자들이 둘러 모시나이까.
무엇 때문에 고기를 아니 먹게 하여
고기 먹는 것을 끊으라 하시나이까
고기 먹는 여러 족속들
무슨 까닭으로 고기를 먹나이까.
어찌하여 세계가 일월의 모양과
수미산과 연꽃 모양 같으오며,
또 사자의 훌륭한 모양과 같은
그것을 저희 위해 설명하소서.
어지럽게 기우러진 부세계(覆世界)와
인다라(因陀羅)의 그물과도 같은
모든 보배로운 국토들은
무슨 원인인지 설명하여 주소서.
그것이 공후와 비파와
북과 각가지 꽃모양 같은 것으로
해와 달빛도 없이 된 국토들은
무슨 원인인지 설명하여 주소서.
어떤 것이 화불(化佛)이오며,
어떤 것은 보불(報佛)이옵고,
그리고 지불(智佛)은 어떠하온지
그 원인을 설명하여 주소서.
어찌하여 욕계(欲界)에서는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지 않으시고
색구경천(色究竟天)의 욕계 떠난데서
도를 얻게 되었나이까.
부처님 열반하신 후에는
어떤 사람이 정법을 수호하오며
세존께서 세상에 얼마간 계시옵고
정법은 언제까지 유지하나이까.
여래께서 몇 가지 법을 세우시며
보시는 견해 또한 얼마이옵니까
비니(毘尼)와 비구는 어떤 것이온지
세존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어쩌면 갖가지로 변화하오며,
어떤 원인으로 온갖 고요함이 오며
성문과 벽지불은 어떠하온지
세존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어찌하면 세간트임[世間通]이고
어찌하면 출세간트임[出世間通]이며
七지(地)의 마음은 어떠하온지
세존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승가(僧伽)는 몇 종류 있아오며
어찌하여 파승(破僧)이 되오며
의방논(醫方論)은 어떠하옵니까
세존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카샤파불과 크라쿠찬다부처님과
카나캄무니불이 모두 <나>라 하시어
항상 여러 불자들에게
어찌 이러한 말씀 하셨나이까.
무슨 까닭으로 인아(人我)를 말씀하며
또한 단, 상(斷常)을 말씀하시어
오직 한 마음 있는 것만을
말씀하시지 않으시나이까.
어찌하여 남녀숲[男女林]과
하리 암말라카[訶梨 阿摩羅勒]와
계라(鷄羅)와 또한 철위(鐵圍)와
금강등 여러 산이 있나이까.
또한 다른 한량없는 산에도
가지 가지 보배로 장엄하고
선인(仙人)과 건달바들이 가득하오니
세존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크고 하늘 같으신 부처님[大天佛]은
그가(대혜보살) 여러 가지 게송에서
대승의 모든 파라미타문과
부처 마음인 최상법문 들으시고.
착하다. 착하다. 이 물음이여,
대혜, 그대는 잘 들으렸다
내가 지금 그 차례대로
그대의 물음을 말해 주리라.
생(生)과 또한 불생(不生)과
열반과 공(空)과 찰나(刹那)는
유전하여 자체가 없나니라
부처님과 보살들과
성문과 벽지불이며
외도와 형색 없는 것[無色]들
수미산과 산과 바다와
사천하의 여러 토지들
해와 달과 별들이며
외도하늘과 아수라와
해탈과 자재한 신통과
힘껏 사유한 삼매들
적멸과 뜻같은 신족[如意足]과
각지(覺支)와 모든 도품들과
선정과 또한 무량(無量)과
오음(五陰)과 가고 오는 것들
사공정(四空定)과 멸진정과
마음 내어 설법함과
마음과 뜻과 의식과
무아법(無我法)이 다섯 있는 것들
자성(自性)의 상과 생각하는 것과
소견(所見)과 능견(能見) 두 가지와
어떠한 갖가지 근성들과
금과 마니주의 성질들
이천티카와 또한 사대(四大)와
황란(荒亂)함과 및 한 부처와
지혜로서 얻게 하는 것과
중생들의 있고 없는 것들
코끼리와 말과 새와 짐승을
어찌하여 잡아 먹는 것과
비유는 원인과 서로 합한 것임
힘껏 설법함은 어떠한 것인고
무슨 까닭으로 인과(因果)가 있을까
숲과 같은 미혹이 참이던가
마음뿐이고 경계는 없으며
모든 지위도 차례가 없다네.
온갖 변화함과 모양 없는 것과
의방(醫方)과 공교론(工巧論)과
주술(呪術)인 모든 명처(明處)를
무슨 까닭으로 나에게 묻느냐.
여러 산과 수미산의 땅이
그 모양 크고 작은 것과
바다와 해와 달과 별들을
어찌하여 나에게 묻느냐.
상, 중, 하인 중생의 몸들이
각각 얼마의 미진(微塵)인가
주와 보(步)로부터 十리(里)와
四十리와 二十리에 이른다.
토끼털과 문틈의 티끌은 얼마며
염소털과 보리알의 티끌은 얼마냐
한되(一升)는 몇 보리알이며
반되[半升]는 몇낱의 숫자련고.
한 섬과 또한 열 섬[十斛)과
백만과 또한 일억이며
빈바라(頻婆羅)는 얼마의 티끌이고
겨자(芥子)씨는 몇 분자인고.
몇 겨자가 풀씨를 이루고
풀씨 몇이 팥을 이루며
몇 수(銖)가 한 양(兩)을 이루고
몇 양이 한 근을 이루어
이러한 차례의 수대로
몇근이 수미산을 이룬 것인가.
불자여, 이제 무슨 까닭으로
나에게 이러한 것은 묻지 않는고.
연각과 또한 성문과
부처님과 불자의 몸들은
작은 분자 얼마로 된 것인지
무슨 까닭으로 이를 묻지 않는고.
불꽃은 몇낱의 분자며
바람 또한 몇 분자련고
몸의 부분마다 몇 분자이고
털구멍과 눈썹은 몇일까.
어떤 것을 자재왕(自在王)과
전륜왕(轉輪王)이라 하느냐
어떤 왕이 수호왕(守護王)이며
해탈법 신축하여 말함이냐.
갖가지 중생의 하고픈 것을
어찌하여 나에게 묻느냐
음식은 어찌 된 것이며
어째서 남녀숲[男女林]이 있느냐.
금강의 견고한 산을
나에게 말한들 무엇하랴
어찌하여 환(幻)과 꿈속 같고
들사슴의 갈증같은 사랑이었던고.
무슨 원인으로 구름이 있으며
무슨 원인으로 육시(六時)가 있고
무슨 원인으로 갖가지 맛[味]과
남녀와 남녀 아닌 것이 있느냐.
어떤 원인으로 장엄 된 것을
불자여, 이를 어찌 묻느냐.
어찌하여 여러 좋은 산에는
선인과 건달바로 장엄했던고.
해탈하면 어느 곳에 도달하며
어느 묶임으로 속박했을까
어떤 것이 선정의 경계며
또한 열반과 외도이냐.
어찌하여 까닭 없이 되었고
무엇 때문에 속박함을 보느냐,
어찌하면 모든 지각이 깨끗하며
무슨 까닭으로 모든 지각 있었느냐.
어찌하면 지은 업 없앨 것을
나에게 말함은 참 고마워라
어떻게 모든 생각을 끊으며
어떻게 삼매에서 일어나느냐.
삼유(三有)를 없앨 이 누구며
몸은 어느 곳에서 어찌 될는지
어떤 것을 인아(人我)가 없다하며
어떤 것이 세속에 의한 말이냐.
그대 어찌하여 아상(我相)과
또한 무아(無我)를 묻느냐
어떤 것을 태장(胎藏)이라 하는데
그대 이를 어찌 나에게 묻느냐.
어떤 것이 단상(斷常)의 견해며
어떤 것이 마음에 얻은 정이며
어떤 것을 말과 지혜와
계성(戒性)과 여러 불자라 하느냐.
잘 아는 스승과 제자와
가지가지 중생이 어떤 것이냐
어떤 것이 음식과 악마와
허공과 총명한 시설이냐.
어찌하여 나무숲이 있는 것을
불자여, 이를 어이 묻느냐
어떤 것이 가지 가지 세계며,
어떤 것이 장수선인(長壽仙人)이냐.
어떤 것이 가지 가지 스승인 것을
그대 이를 어찌 나에게 묻느냐,
어찌하여 추루(醜陋)한 이가 있어
사람들에게 천함이 되느냐.
욕계에서 아니하고 색구경천에서
도 이룬 것을 나에게 어이 묻느냐,
어떤 것이 세간트임이며
어떤 것을 비구라 하느냐.
어떤 것이 화불과 보불임을
어찌하여 나에게 묻느냐
어떤 것이 진여지혜의 부처이며
어떤 것이 여러 스님들이냐.
북과 공후와 같은 세계들이
어찌하여 광명을 떠나 있으며
어떤 것이 마음땅인 것을
불자여, 나에게 물으려무나.
이곳 저곳 모든 중생을
불자여, 이는 응당 물어야 하네
낱낱 모양이 서로 합한 것이여,
모든 소견의 허물 멀리 떠났네.
모든 외도의 법도
또한 떠났느니라,
이와 같이 내 말한 것을
그대는 잘 들을지어다.
위에서 말한 백팔의 소견은
여러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라
나도 이제 조금 말하노니
불자여, 자세히 잘 들으라.
생긴다는 소견[生見], 생기지 않는다는 소견[不生見], 떳떳하다는 소견[常見],
떳떳함이 없다는 소견[無常見], 상인 소견[相見], 상 없는 소견[無相],
생각을 유지하며 변해진다는 소견[住異見], 생각을 유지하며 변해진 것 아니라는 소견[非住
異見],
찰나인 소견[刹那見], 찰나 아닌 소견[非刹那見], 자성을 떠난 소견[離自性見],
자성을 떠난 것 아니라는 소견[非離自性見], 공의 소견[空見], 공 아닌 소견[非空見],
단멸의 소견[斷滅見], 단멸 아닌 소견[非斷滅見], 마음인 소견[心見], 마음 아닌 소견[非心見],
치우친 소견[邊見], 치우침 아닌 소견[非邊見], 중도의 소견[中見], 중도 아닌 소견[非中見],
변한다는 소견[變見], 변하지 않는다는 소견[非變見], 반연의 소견[緣見], 반연아닌 소견[非緣
見],
원인의 소견[因見], 원인 아닌 소견[非因見], 번뇌의 소견[煩惱見], 번뇌 아닌 소견[非煩惱見],
애착의 소견[愛見], 애착 아닌 소견[非愛見], 방편의 소견[方便見], 방편 아닌 소견[非方便見],
교묘한 소견[巧見], 교묘 아닌 소견[非巧見], 깨끗한 소견[淨見], 깨끗함 아닌 소견[非淨見],
서로 합하는 소견[相應見], 서로 합한것 아닌 소견[非相應見], 비유의 소견[譬喩見],
비유아닌 소견[非譬喩見], 제자인 소견[弟子見], 제자 아닌 소견[非弟子見], 스승인 소견[師
見],
스승 아닌 소견[非師見], 성품인 소견[性見], 성품 아닌 소견[非性見],
법의 소견[棄見], 법 아닌 소견[非棄見], 적정의 소견[寂靜見], 적정 아닌 소견[非寂靜見],
원의 소견[願見], 원 아닌 소견[非願見], 삼륜의 소견[三輪見], 삼륜 아닌 소견[非三輪見],
상의 소견[相見], 상 아닌 소견[非相見], 있다 없다고 하는 소견[有無立見],
있다 없다고 아니하는 소견[非有無立見], 둘이 있다는 소견[有二見], 둘이 없는 소견[無二見],
속몸 거룩한 지혜에 반연하는 소견[緣內身聖見],
속몸거룩한 지혜에 반연하지 않는 견[非緣內身聖見],
법락을 나타낸다는 소견(現法樂見), 법락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소견[非現法樂見],
국토의 소견[國土見], 국토아닌 소견[非國土見], 작은 티끌의 소견[微塵見],
작은 티끌 아닌 소견[非微塵見], 물의 소견[水見], 물 아닌 소견[非水見],
활의 소견[弓見], 활 아닌 소견[非弓見], 사대의 소견[四大見], 사대 아닌 소견[非四大見],
수의 소견[數見], 수 아닌 소견[非數見], 신통의 소견[通見], 신통 아닌 소견[非通見],
허망의 소견[虛妄見], 허망 아닌 소견[非虛妄見], 구름인 소견[雲見], 구름 아닌 소견[非雲見],
공교라는 소견[工巧見], 공교 아닌 소견[非工巧見], 배워 지혜나는 곳의 소견[明處見],
배워 지혜나는 곳 아닌 소견[非明處見], 바람인 소견[風見], 바람 아닌 소견[非風見],
땅의 소견[地見], 땅 아닌 소견[非地見], 마음의 소견[心見], 마음 아닌 소견[非心見],
붙인 이름의 소견[假名見], 붙인 이름 아닌 소견[非假名見], 자성인 소견[自性見],
자성 아닌 소견[非自性見], 가리움의 소견[陰見], 가리움 아닌 소견[非陰見],
중생의 소견[衆生見], 중생 아닌 소견[非衆生見], 지혜의 소견[智見], 지혜 아닌 소견[非智見],
열반의 소견[涅槃見], 열반 아닌 소견[非涅槃見], 경계의 소견[境界見], 경계 아닌 소견[非境
界見],
외도의 소견[外道見], 외도 아닌 소견[非外道見], 어지러운 소견[亂見],
어지러운 것 아닌 소견[非亂見], 눈홀림인 소견[幻見], 눈홀림 아닌 소견[非幻見],
꿈인 소견[夢見], 꿈 아닌 소견[非夢見], 아지랑이의 소견[陽炎見], 아지랑이 아닌 소견[非陽
炎見],
그림자 모양인 소견[像見], 그림자 모양 아닌 소견[非像見], 불바퀴의 소견[輪見],
불 바퀴 아닌 소견[非輪見], 건달바의 소견, 건달바 아닌 소견, 하늘인 소견[天見],
하늘 아닌 소견[非天見], 음식의 소견[飮食見], 음식 아닌 소견[非飮食見],
음욕의 소견[淫欲見], 음욕아닌 소견[非淫欲見], 견의 소견[見見], 견아닌 소견[非見見],
바라밀의 소견[婆羅密見], 바라밀 아닌 소견[非婆羅密見], 계의 소견[戒見], 계 아닌 소견[非
戒見],
해와 달과 별의 소견[日月星宿見], 해와 달과 별들 아닌 소견[非日月星宿見],
제라는 소견[諦見], 제 아니라는 소견[非諦見], 과위의 소견[果見], 과위 아닌 소견[非果見],
적멸의 소견[滅見], 적멸 아닌 소견[非滅見], 멸진정에서 일어난다는 소견[起滅盡定見],
멸진정에서 일어나는 것 아닌 소견[非起滅盡定見], 병 고친다는 소견[治見],
병 고치는 것 아닌 소견[非治見], 상의 소견[相見], 상 아닌 소견[非相見],
갈래 종류의 소견[支見], 갈래 종류 아닌 소견[非支見], 공교명의 소견[巧明見],
공교명 아닌 소견[非巧明見], 다야다의 소견[禪見], 다야다 아닌 소견[非禪見], 미혹의 소견
[迷見],
미혹 아닌 소견[非迷見], 나타난다는 소견[現見], 나타난 것 아닌 소견[非現見], 보호함의 소
견[護見],
보호하는 것 아닌 소견[非護見], 종족의 소견[族姓見], 종족 아닌 소견[非族姓見],
신선의 소견[仙人見], 신선 아닌 소견[非仙人見], 왕의 소견[王見], 왕아닌 소견[非王見],
잡아먹는 소견[捕取見], 잡아 먹는 것 아닌 소견[非捕取見], 진실하다는 소견[實見],
진실 아닌 소견[非實見], 기억하는 소견[記見], 기억 아닌 소견[非記見], 이천티카의 소견[一
闡提見],
이천티카 아닌 소견[非一闡提見], 남녀인 소견[男女見], 남녀 아닌 소견[非男女見],
맛의 소견[味見], 맛아닌 소견[非味見], 짓는 것인 소견[作見], 짓는 것 아닌 소견[非作見],
몸이라는 소견[身見], 몸이라는 것 아닌 소견[非身見], 지각의 소견[覺見], 지각아닌 소견[非
覺見].
움직임의 소견[動見], 움직임 아닌 소견[非動見], 몸 부분의 소견[根見], 몸 부분 아닌 소견
[非根見],
하염 있는 소견[有爲見], 하염 있는 것 아닌 소견[非有爲見], 인과의 소견[因果見],
인과 아닌 소견[非因果見], 형색 막바지의 소견[色積竟見], 형색 막바지 아닌 소견[非色積竟
見],
시절의 소견[時見], 시절 아닌 소견[非時見], 나무 숲의 소견[樹林見], 나무 숲아닌 소견[非樹
林見],
가지가지의 소견[種種見], 가지가지 아닌 소견[非種種見], 연설의 소견[設見],
연설 아닌 소견[非設見], 비구인 소견[比丘見], 비구 아닌 소견[非比丘見],
비구니인 소견[比丘尼見], 비구니 아닌 소견[非比丘尼見], 주지인 소견[住持見],
주지 아닌 소견[非住持見], 문자의 소견[文字見], 문자 아닌 소견[非文字見]들이니라.
대혜여, 이 백팔의 소견은 과거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그대와 여러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울 것이니라.
三, 집일체불법품(集一切佛法品) (1)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모든 알음알이[識]가 몇가지로 발생[生]하며,
유지[住]하고 없어지는[滅] 것이 있나이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모든 알음알이의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은
생각으로 헤아리는 자의 능히 알 바가 아니니라.
대혜여, 모든 알음알이마다 두 가지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이 있나니 대혜여,
두 가지가 없어지는 것이란 첫째는 모양이 없어지는 것이요,
둘째는 계속함이 없어지는 것이니라.
대혜여, 모든 알음알이가 또한 두 가지 유지함이 있나니
첫째는 모양이 유지함이요 둘째는 계속하여 유지함이니라.
대혜여, 모든 알음알이가 두 가지 발생함이 있나니,
첫째는 자체 모양이 발생함이요, 둘째는 계속하여 발생함이니라.
대혜여, 알음알이가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세 가지라하느냐.
첫째는 움직이는 알음인 전상식(轉相識)이요,
둘째는 처음 기동하는 알음인 업상식(業相識)이요,
셋째는 참모양 자혜의 알음인 지상식(智相識)이니라.
대혜요, 여덟 가지 알음알이가 있거니와 줄여 말하면 두 가지이니, 무엇을 두 가지라고 하느
냐.
첫째는 밝게 나타내는 알음인 요별식(了別識)이요,
둘째는 사물을 분별하는 알음인 분별사식(分別事識)이니라.
대혜여, 밝은 거울속에 모든 물건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과 같아서 밝게 나타내는
알음인 요별식도 또한 가지 가지 거울 영상(影像)인 경계를 나타내느니라.
대혜여, 밝게 나타내는 알음인 요별식과, 사물을 분별하는 알음인 분별사식의
이 두 가지 알음은 차별없이 서로서로 돕는 원인이 되나니라.
대혜여, 요별식(了別識)은 헤아릴 수 없는 훈습[不思議薰]과,
헤아릴 수 없는 변화[不思議變]의 원인이니라.
대혜여, 사물을 분별하는 알음인 분별사식(分別事識)은 경계를 분별하여 취하는 원인과,
끝없이 오면서 희론망상으로 훈습한 것이니라.
대혜여, 아라야식[阿梨耶識]의 허망하게 분별하는 가지가지 훈습이 없어지면
모든 감각기관도 또한 없어지리니 대혜여, 이를 자체모양이 없어지는 것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계속함이 없어진다는 것은 속하는 원인이 없어지면 계속함이 없어지고,
인연이 없어지면 계속함도 없어지나니라.
대혜여, 말하자면 그는 법에 의지하고 인연에 의지한 것이다.
법에 의지한다 함은 까닭없는 희론 망상으로 훈습함을 말함이요,
인연에 의지한다 함은 자심(自心)의 알음알이가 경계를 보고 분별함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진흙덩이와 미진(微塵)이 서로 다르지 않고 같지도 않으며 다른 것도 아니
오,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오(非異非不異), 금과 금 꾸미개도 또한 그러하여 다르지도 않고 갈지
도 않나니라.
대혜여, 만일 진흙덩이가 작은 분자와 다르다면 저 작은 분자로 된 것이 아니련만,
그러나 실로 저 작은 분자로서 된 것이니, 이러므로 다르지 않나니라.
만일 작은 분자와 같을진대 진흙덩이와 작은 분자가 응당 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다.
대혜여, 이와 같아서 움직이는 알음인 전식(轉識)과 아라야식이 만일 둘이 서로 다른 모양이
라면
전식이 아라야식에서 나온 것이 아닐 것이며, 만일 둘이 서로 같다면 전식이 없어질 적에는
아라야식도 또한 응당 없어져야 할 것이어늘, 그럼에도 자체인 아라야식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혜여, 모든 알음알이의 모양만이 없어지나니,
그 없어진다는 것은 처음 기동하는 알음인 업상(業相)이 없어진 것이다.
만일 없어진다 해서 어찌 아라야식도 없어지랴.
대혜여, 만일 아라야식이 없어진다면 이것은 외도의 단견(斷見)인 희론과 같을 것이다.
대혜여, 저 외도들은 이러한 말을 하나니, 이른바 ‘모든 경계를 떠나고는 계속하는 알음이
없어지고,
계속하는 알음이 없어지면 곧 모든 알음알이도 없어진다.’고 한다.
대혜여, 만일 계속하는 알음이 없어진다면 끝없는 옛적부터 왔던 모든 알음알이도 응당 없
어질 것이니라.
대혜여, 모든 외도들은 계속하는 모든 알음알이가 짓는 것으로부터 생겼다 말하나니라.
그리고 알음알이가 눈과 물질과 허공과 밝음과 화합으로서 생겼다고 말하지 않으며,
짓는 것이 있다고만 말하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외도가 말한 짓는 것이냐. 그 훌륭하고 묘한 것과,
사람과 자재(自在)한 것과, 시간과 작은 분자들이 그 짓는 것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또한 일곱 가지 자성(自性)이 있나니, 무엇이 일곱이냐.
첫째는 만덕(萬德)과 만선(萬善)을 모은 집자성(集自性)이요, 둘째는 변함 없는 성자성(性自
性)이요,
셋째는 덕이 밖에 나타나는 상성자성(相性自性)이요, 넷째는 사대(四大)의 성질인 대성자성
(大性自性)이요,
다섯째는 원인의 성질인 인성자성(因性自性)이요, 여섯째는 인연의 성질인 연성자성(緣性自
性)이요,
일곱째는 불과를 성취하는 성성자성(成性自性)이니라.
대혜여, 또한 일곱 가지 제일의(第一義)가 있나니, 무엇이 일곱이냐. 첫째는 마음의 경계요,
둘째는 지(智)의 경계요, 셋째는 혜(慧)의 경계요, 넷째는 두 견[二見]의 경계요,
다섯째는 두 견을 벗어난 경계요, 여섯째는 불자의 지위를 지난[過拂子地]경계요,
일곱째는 여래의 지위에 들어가서 안으로 행하는 경계니라.
대혜여, 이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여러 부처님,
응공(應供)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의 성자성 제일의(性自性第一義)의 마음이니라.
대혜여, 이 성자성 제일의의 마음에 의지하므로 부처님은 아주 세간과
출세간의 부처 지혜 안목을 얻으시고,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인 모든 법을 건립하시나니,
건립하는 바는 외도의 사뙨 견해와 같지 않느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외도의 사뙨 견해와 같지 않다고 하느냐.
말하자면 그는 자기 마음인 경계를 분별하여 망상으로 보면서
자기 마음의 생각으로 본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이니라.
대혜여,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실체가 없는 것을 제일의(第一義)라 하여,
있다 없다하는 두 가지 견해인 말들을 하느니라.
대혜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허망스리 분별하여 물질이 있다고 하였기에 세 가지 괴로움을 끊어야 하나니,
무엇이 세가지냐. 말하자면 아는 것이 없는[無知]것과, 애착[愛]과 업의 인연[業因緣]이니,
자기 마음에서 보는 바 눈흘림과 같은 경계를 없앨 것이니라.
대혜여, 모든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들이 이러한 말을 하되,
‘법이 본래 처음부터 생긴 것이 아니것만 인과(因果)에 의하여 나타난 것이라’하며,
또한 이러한 말을 하되, ‘참으로 물질이 있는데 모든 인연에 의지함으로
五음(五陰)과 十八계(十八界)와, 六입(六入)과 생각이 발생함과, 유지함과 없어지는 것이 있
나니,
생긴 것은 없어지기 때문이라’하느니라.
대혜여, 저 사문과 바라문이 말한 ‘계속하는 자체는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며,
생(生)과 멸(滅)과 열반과 도(道)와 업(業)과 과(果)와 진리는 파괴하여 없어지는 모든 법이
라’ 함은,
단멸의 논리요, 내가 말하는 바는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현재의 법은 오랫동안 가히 얻을 수 없는 까닭이며, 근본을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병(甁)이 깨뜨려짐에 병의 쓰임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느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불에 그슬린 종자는 움이 날 수 없는 것과 같느니라.
대혜여, 저 오음과 十팔계와 육입은 멸하는 것이니, 과거의 음(陰), 계(界), 입(入)도 멸하며,
현재의 음계, 입도 또한 멸하나니라. 무슨 까닭이냐. 자심(自心)의 허망한 분별로 본 것이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저 오음과 십팔계와 육입의 계속하는 자체가 없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만일 본래부터 생긴 것이 없는데 세 법[三法]에 의해서 가지가지 알음알이가 생긴
것이라면
거북은 어찌 털이 나지 않으며, 모래는 어찌 기름이 나지 않느냐.
그대들의 세운 결정의(決定義)는 곧 저절로 파괴 될 것이며,
그대들의 있다 없다 말한 것과 성취하는 사업과 인과도 또한 파괴 되리라.
대혜여, 만일 그와 같이 세 법의 인연에 의한다면, 모든 법의 인과인 제모양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있고 없는 제모양과, 비유와 교법[阿含]과,
스스로 깨달아 관찰하는 것들이 응당 생길 것이니,
이는 자기네의 견해로 훈습하는 마음에 의하여 그와 같은 말을 한 것이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들이 또한 그러한 나쁜 소견의 해를 입고 사뙨 견해와 미혹한 뜻으로
지혜가 없으면서 괜히 일체지(一切智)의 말이라고 자칭 하느니라.
대혜여, 만일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관찰하되, 모든 법이 자성(自性)을 떠났기에
뜬 구름과 불바퀴와, 건달바의 성과 같아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눈홀림과 아지랑이와, 물 속의 달과 같고 꿈과 같아서
안팎의 마음이 끝없는 옛적부터 허망하게 분별함과, 희론에 의하여 나타난 것이다.
자기 마음의 허망한 분별로 보고 취할 수 있는 인연도 여읜 것이며,
망상을 없애는 것의 말과 말할 바도 떠난 것이며, 몸의 생활하는데 가져야할 법도 떠난 것
이며,
아라야식이 경계를 취하여 서로 합하는 것도 떠난 것이며, 고요한 경계에 들어간 것이며,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떠난 것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마음을 사유하고 관찰하여 이렇게 살아간다면,
대혜여, 이는 큰 보살이라 이와 같은 보살은 오래지 않아
곧 세간[生死]과 열반이 평등한 것인 마음을 얻으리라.
대혜여, 그는 선교방편(善巧方便)과 개발[開單]하는 방편으로 모든 중생계가 모두 환(幻)과
같고
거울 속에 얼굴과 같기 때문에 인연이 생기는 것도 없으며, 멀리 속경계를 여읜 것이며,
마음이 바깥 경계를 나툰 것임을 관찰하고서 차례로 형상없는 경지에 들어가며,
차례로 아래 지위로부터 위의 지위에 이르는 삼매경(三昧境)에 들어가며,
삼계(三界)가 자심(自心)의 환상인 것을 믿나니라.
대혜여,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응당 여환삼매(如幻三昧)를 얻을 것이며,
자기 마음의 고요한 경지에 들어 갈 것이며, 피안(彼岸)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며,
짓는 것으로 생겨진 법을 떠날 것이며,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얻을 것이며,
여래의 몸에 들어갈 것이며, 여래의 변화하는 몸에 들어갈 것이며,
모든 힘과 신통이 자재하여 대자대비(大慈大悲)로 장엄한 몸에 들어갈 것이며,
여러 부처님 국토에 들어갈 것이며, 일체 중생들의 좋아하는데로 들어갈 것이며,
마음과 뜻과 의식의 경계를 떠날 것이며, 이 몸을 변하여 묘한 몸을 얻을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반드시 여래의 최상으로 묘한 몸을 얻으리라.
대혜여, 보살이 여래의 몸을 얻으려거든 마땅히 오음과 十八계와, 六입인 마음과 인연으로
화합한 법을
멀리 여의고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허망한 분별과 희론을 떠날 것이며,
모든 법은 오직 마음뿐이니, 응당 이와 같이 삼계(三界)의 원인도 끝없는 옛적부터
허망한 분별과 희론으로 있는 것임을 알고, 여래의 경지는 고요하여 생(生)함이 아닌 것임을
관찰하여 속몸의 거룩한 행(行)에 나아갈 것이니라.
대혜여, 그대는 응당 오래지 않아 마음이 자재(自在)하고 공용(功用)이 없는 행의
구경(究竟)에 도달함을 얻으리니, 뭇 색상이 마니주(摩尼珠)의 비춤을 따르듯이,
변화하는 몸은 모든 중생의 미세한 마음속에 까지 들어갈 것이며, 마음의 경지에 들어감으
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차례로 모든 지위에 들어가게 하리라.
그러므로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보살이 수행할 마음속의 법을 잘 알아야 하느니라.”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또한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원하옵노니 세존이시여, 여러 보살 마하살을 위하여 마음과 뜻과 의식(意識)과
다섯 법의 자체가 서로 합하는 법문을 말씀 하시옵소서.
이는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의 수행하실 곳이라,
마음의 사뙨 견해와 경계로 화합한 것을 멀리 떠난 것이요,
이는 모든 언어(言語)와 비유(譬喩)의 체상(體相)을 능히 쳐 부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여러 부처님의 말씀하신 마음 법이오니, 이 란카성 말라야산 큰 바다속의 여러 보살을
위하여
아라야식이 큰 바다 물결과 같은 경계임을 관찰하시옵던 것을 말씀하옵소서.
이는 법신여래(法身如來)가 말씀하실 법인가 하옵니다.”
그 때에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 가지 인연이 있어 눈알음[眼識]이 생기나니, 무엇이 네 가지냐.
첫째는 마음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모르고 바깥 경계를 취한 까닭이요,
둘째는 끝없는 옛적부터 허망하게 색상의 경계를 분별한 훈습과 희론 등에 집착한 까닭이
요,
셋째는 알음알이의 본성이 그러한 까닭이요, 넷째는 가지 가지 색상을 보기 좋아하는 까닭
이니라.
대혜여, 이를 네 가지 인연이 아라야식[阿梨耶識]의 바다에서 큰 파도를 일으켜
능히 움직이는 알음인 전식(轉識)을 내는 것이라 이름 하느니라.
대혜여, 만일 눈알음[眼識]이 알음알이를 일으키면 일체 몸의 부분인 감각 기관[諸根]과
털 구멍에서도 일시로 전식(轉識)이 나는 것이 거울속에 어떤 물상이 일시로 나타남과 같다.
또한 인연을 따라서 차례로 나는 것도 있느니라.
대혜여 마치 바닷물에 모진 바람이 부는 것과 같아서 마음의 바다에서도
알음의 파도[識波]가 일어나서 끊이지 않는 것은 사상(事相)을 따른 까닭이며,
번갈아 둘이 서로 떠나지 못한 까닭이며, 업체가 서로 묶이게 한 까닭이며,
형색의 자체를 깨닫지 못한 까닭이며, 다섯알음[五識]이 구르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저 다섯 알음의 근본인 요별식(了別識)을 떠나지 못한 것을 의식(意識)이라 하나니,
의식은 저 요별식과 함께 항상 흘러 구르나니라.
대혜여, 다섯 알음과 모든 알음알이가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번갈아 서로 돕는 원인이 되어 마음의 소견으로 허망하게 분별하며,
모든 경계를 취한다’고 하지 아니하나, 그러나 저들이 각각 다르지 않고
서로 함께 분별하는 경계를 나타내나니, 이와 같이 저 알음은 미세하며 생멸(生滅)하거늘,
삼매를 닦는 자 이 미세한 훈습임을 알지 못하고 수행하는 자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내가 모든 알음알이를 끊고 삼매에 들어갔노라’하나 그러나 수행하는 자 실로 모든 알음
알이를 끊고
삼매에 드는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종자(種子)를 훈습(熏習)하여 모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고
바깥 경계를 취하는 알음알이만 없어진 것이니라.
대혜여, 이와 같이 미세한 아아야식의 행상(行相)은 부처님과 十지에 들어간 보살 마하살을
제외하고는
그밖에 성문(聲聞)과 벽지불과, 외도와 수행자들은 능히 알지도 못하며,
삼매에 들어간 지혜의 힘으로도 또한 능히 알지 못하리니, 이는 모든 지위의 행상을 알지못
한 까닭이며,
지혜 방편의 차별로서 잘 판단하는 것을 알지 못한 까닭이며,
능히 부처님의 모든 선근(善根) 쌓은 것을 알지 못한 까닭이며,
스스로 나타내는 경계와 분별하는 희론을 알지 못한 까닭이며,
가지 가지 많은 숲과 같은 아라야식의 굴택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이는 오직 처음과 중간과 끝까지 참다히 수행하는 자라야
이에 능히 제 마음속의 허망한 소견을 알아 볼 것이며,
능히 한량없는 국토에서 여러 부처님께 지위를 받게 될 것이며,
한량없는 자재한 힘과 신통과 삼매를 얻을 것이며, 선지식(善知識)과 불자들에게 의지하여
마음과 뜻과 의식(意識)과 자심(自心)의 자체 경계를 능히 알아 얻을 것이며,
생사(生死)의 큰 바다는 업(業)과 애착[愛]과 무지(無智)로써 원인이 되어 있는 것을 알 것
이니라.
대혜여, 그러므로 참다히 수행하는 자는 마땅히 선지식을 찾아 친근할 것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큰 바다의 물결은
모진 바람이 일기 때문인 것,
크나 큰 파도가 바다를 치면서
끊일 새 없이 항상 이누나.
아라야식도 또한 그러하여
경계의 바람이 불기 때문에
갖가지 알음알이의 물결이
뛰놀고 구르면서 나노나.
푸르고 붉은 색과 흰 마노와
소금과 젖맛과 또 석밀(石蜜)과
여러 꽃나무와 과일들과
해와 달의 광명이여.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다.
바닷물에 파도가 일듯이
일곱가지 알음도 마찬가지로
마음과 화합하여 함께 난다네.
비유컨대 바다물이 움직이면
가지 가지 파도가 구르듯이
아라야식도 또한 그렇기에
가지 가지 알음이 나는 것일세.
마음과 뜻과 의식이여,
모든 상이라고 말했나니
모든 알음 딴 모양 없으며
능견과 소견상이 아니네.
비유하자면 바다물과 파도는
둘이 서로 차별 없는 것처럼
알음과 마음도 그와 같아서
다를 점 역시 없는 것이라네.
마음 능히 모든 업 싸모으고
뜻은 널리 모은 것을 다루며,
의식은 곧 잘 알바를 분별하고
다섯 알음은 분별을 나투네.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게송으로 부처님께 물었다.
푸르고 붉은 여러 색깔은
알음알이가 이렇게 봅니다만,
물과 파도의 상대적인 법은
어이 이처럼 말씀 하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답하셨다.
푸르고 붉은 온갖 색깔은
파도속엔 모두 없는 것,
전식을 말한 심중에는
범부를 알리기 위한 말이다.
그러나 저 업은 모두 없나니
마음은 취하는 것 떠난 것이며
취할 바와 또한 취하는[能取]이
저 파도와 같은 것일세.
몸과 재물과 살림살이도
중생의 알음으로 보여진 것이니
그러므로 전식이 나타나서
물과 파도가 서로 같은 것이라네.
바다의 물결이 움직인다면
움직이어 날뛰는 것 알면서도
아라야식이 움직이어 구른데도
어찌하어 알지 못하느냐.
범부들이 지혜가 없기에
아라야식을 바다 같다하여
파도가 움직이는 상대법으로
그를 비유하여 말한 것일세.
그 때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또한 게송을 말하였다.
하늘에 떠오른 밝은 태양은
그 빛이 두루 위 아래와
중간의 허공과 뭇 중생을
빠짐없이 골고루 비추나니라.
부처님의 출세하심 또한 같아서
범부에게 진실법 알리기 위하심이라,
부처님은 이미 최상법 얻으시니
진실법을 어이 말씀 안하시리.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답하셨다.
만일 진실법 말하려고 하면
저의 마음 진실치 못하리
비유하자면 바다의 파도와
거울속의 얼굴과 꿈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처럼
마음의 경계도 또한 그렇건만
제대로 경계가 갖추지 못하므로
차례로 나타나는 것일세.
알음은 인식할 바를 인식하며
뜻이란 그렇다고 여기고
다섯 알음은 보는 경계 나투나니
그러나 삼매중엔 이런 것 없다네.
비유컨대 공교한 그림 스승과
또한 그의 제자 그림장이가
포백에 여러 모양을 그리듯이
나의 설법함도 또한 그렇다네.
포백은 본래 문채 없으며
붓과 그릇 뭇 색소 아니건만
보는 이들로 기쁘게 하여
보기좋게 여러 모양 그린다네.
말은 진실과 먼 것이며
진실은 모든 명자 초월했다네.
내가 얻은 진실한 그 법은
참으로 마음속 깊이 아는 것이네.
그 깨달음과 깨달을 바를 떠났건만,
참다히 말한 것은
그 곧 진실하게 수행하는
불자를 위하여 하는 것일세.
어리석은 사람엔 달리 말하여
갖가지가 모두 환 같아서
보는 것마다 진실 아니라고
이와 같이 갖가지로 말함은
진실과 진실아닌 일을 따라서
이런 사람 위하여 말한 것이니
말이 그들에게 합하지 않으면
저이들엔 말하지 아니하네.
저 병든 여러 사람에게
어진 의사 약을 주듯이
여래가 모든 중생 위함도
그 마음과 근기 따라 말하네.
그 법은 망상의 경계가 아니며
성문의 정도도 또한 아니고
오직 부처님 세존의
스스로 깨달은 경지일세.
대혜여, 만일 보살 마하살이 마음의 허망한 분별과,
능히 취함과 취할 바 경계상(境界相) 여읜 것을 알고자 할진대, 마땅히 시끄러운 것을 여의
고
수면개(睡眠蓋)를 떠나고서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항상 스스로 수행하는 방편을 깨달아서
외도들의 모든 희론과 성문, 연각의 법을 떠난다면
그는 마땅히 마음에서 나타나는 허망한 분별상을 알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지혜의 마음에 머물러 서고자 할진대, 가장 거룩한 지혜의 세 가지
모양을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할 것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가장 거룩한 지혜의 세 가지 모
양이냐.
말한바 있는바 없는 모양과, 여러 부처님의 자기 원으로 주지(住持)하는 모양과,
속몸의 거룩한 지혜로서 깨닫는 모양이니, 이를 수행하면 능히 절름발이 나귀의 지혜를 버
리고
곧 보살의 제 八지에 들어가서 세 가지 거룩한 지혜의 모양을 닦을 것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있는바 없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성문과 연각과 외도를 관찰하는 모양이니
라.
대혜여, 무엇이 여러 부처님의 자기 원으로 주지하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여러 부처님이 처음부터 스스로 원(願)을 닦아 주지한 모든 법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속몸의 거룩한 지혜로서 스스로 깨닫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온갖 법에 집착한 바 없이 환(幻)같은 삼매를 얻고,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가서 수
행함이니라.
대혜여, 이것을 가장 거룩한 지혜의 세 가지 모양이라 한다.
만일 이 세 가지 모양을 성취한다면 스스로 깨닫는 거룩한 지혜의 경지에 능히 도달하리니,
그러므로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가장 거룩한 지혜의
세 가지 모양을 구하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배울 것이니라.”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여러 큰 보살 대중의 생각하는 마음을 알으시고
여래의 감싸주신 힘을 입어서 부처님께 거룩한 지혜와 행으로 분별하는 법문을 물으셨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희들을 위하여 거룩한 지혜와 행으로 분별하는 법문체와,
백팔의 소견에 의하여 분별하는 말씀과, 여래, 응공(應供)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께서
여러 보살 마하살을 위하여 분별하여 말씀하신 제모양과 같은 모양인 망상 분별의 자체와,
수행하는데 차별인 법을 말씀하옵소서.
저희와 여러 보살은 이 망상 분별의 자체와 법행(法行)의 차별을 잘 알았으므로
능히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가 깨끗하오며, 모든 지위를 잘 알고,
성문과 벽지불의 사마파티 낙을 벗어나고, 여래의 헤아릴 수 없는 경계를 얻어서 수행하옵
기에
다섯 법 자체의 행상을 여의고, 부처님의 법신체(法身體)와 진실한 행에 들어 갔아오며,
여래법신으로서 잘 결정하는 곳은 환(幻)같은 경계로 이룬 것임을 알아 얻었아오며,
모든 국토에서는 두시타[兜率天]로부터 아카니타천에 이르면서 여래의 법신(法身)을 얻었나
이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였다.
“어떤 외도는 사뙨 소견으로 공하여 있는바 없다함에 집착하여 허망한 생각으로 분별하되,
‘지혜의 원인이 둘이 있으니, 자체와 자체없는 것이라’하며, 토끼의 뿔이 없는 것을 보고
분별하되,
‘토끼뿔이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또한 없다’ 하나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사대(四大)의 공덕이 실로 있는데,
보는 이가 각각 차별의 모양이 있는 것을 보고 생각하되,
‘실로 토끼뿔이 있다고 하는 허망한 집착과, 망상 분별은 없으나
그러나 소뿔은 참으로 있다’고 하느니라.
대혜여, 저 외도들은 두 견해에 떨어져서 유심(唯心)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망상 분별로서 스스로 마음에 허물만 더하나니라.
대혜여,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등도 오직 마음으로 분별함이다.
그 토끼뿔을 분별하지 말고, 있다 없다함을 떠날 것이니라.
대혜여, 또한 모든 법도 분별하지 말고, 있다 없다함을 떠날 것이니라.
대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있다 없다함을 떠났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하되
‘토끼뿔이 있다는 분별을 할 수 없으므로 토끼뿔의 없다고 하는 분별도 아니 할 것이라’
한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서 토끼뿔이 없는 것을 분별하지 아니할 것이라 함이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내지 미세한 작은 티끌을 분석하고 관찰할지라도 진실한 것은 보지
못하고,
성인(聖人)의 지혜에 멀어질 것이다. 또한 소뿔이 있다고도 분별하지 말 것이니라.”
그 때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어리석은 범부가 분별상으로 보지않고, 추리하는 지혜로서 분별
한다면
그 사람은 없는 것을 보는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이는 분별하는 마음을 관찰함도 아니며, 그 사람은 없는 것을 본것이라고도 못하
리니,
무슨 까닭이냐. 허망한 분별심 때문에 뿔에 의하여 분별심이 있는 것이니라.
대혜여, 허망한 뿔에 의하여 분별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의지하는 법에 의지한
것이다.
유무(有無)의 상대적인 법을 떠난다면 그 불이 없다는 것도 보지 않으리라.
대혜여, 만일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고도 또한 분별이 있다면 그는 응당 뿔을 떠나서 있을
것이요,
뿔로 인하여 있지 아니 하리라.
대혜여, 만일 저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지 못한다면,
그의 법과 내지 작은 티끌을 분석하여 관찰한다 하여도 진실한 것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리라.
대혜여, 이 모두가 마음을 떠난 것이 아니어서 저 법은 응당 없는 것이리니,
그 두 법의 있고 없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만약 이와 같이 본다면 어떤 법은 있고 어떤 법은 없으랴.
대혜여, 만일 있고 없는 것을 분별 못하리니, 이 뜻이 어떠하냐면, 소뿔은 있다고 보며,
토끼뿔은 없다고 보는 이러한 분별을 할 수 없는 것이니라.
대혜여, 이는 원인이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며, 있다 없다는 뜻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니,
외도와 범부와 성문들의 있다 없다 말하는 이 두 뜻은 모두 성립할 수 없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다른 외도는 물질이 원인이 있다고 보고 괜히 망상으로
물질의 길고 짧은 것에 집착하며, 허공은 형상과 분제(分齊)가 없는데
물질은 허공과 달라서 분제가 있다고 보나니라.
대혜여, 허공은 곧 물질이니, 물질이 허공에 들어 있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물질이 곧 허공이니, 이(물질)의 법에 의하여 저(허공) 법이 있고,
저 법에 의하여 이 법이 있는 까닭이며, 물질에 의해서 허공을 분별하며,
허공에 의하여 물질을 분별하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사대(四大)의 종류가 생길 적에 제 모양이 각각 다르고 허공에 머무르지 아니하나,
사대 속에는 허공이 없는 것은 아니리라.
대혜여, 토끼뿔도 또한 그와 같아서 소뿔이 있음으로 인하여 토끼뿔이 없다고 말함이니라.
대혜여, 또한 저 소뿔을 분석하여 작은 분자를 만들면
저 작은 분자의 모양은 분별하려 해도 볼 수 없으리니, 저 어떤 법은 있으며 어떤 법은 없
으랴마는,
그럼에도 있다 없다고들 말한단 말인가. 만일 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다른 법도 또한 그러하
리라.”
그 때에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토끼뿔과 소뿔과 허공과 물질이 다르다는 허망한 소견들을 버릴
것이니라.
대혜여, 그대는 또한 마땅히 여러 보살을 위하여 그들에게 토끼뿔등의 상을 떠나라고 말할
것이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자심(自心)의 소견으로 허망하게 분별하는 모양을 알아야 하느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서 모든 불자를 위하여
그들에게 스스로 마음에서 일체 허망한 경계를 나타낸 것을 말해 줄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물질은 마음속엔 없는 것을
경계에 의하여 있다고 보나니,
속 알음과 중생의 견해와
몸과 살림살이와 사는 곳과
마음과 뜻과 또한 의식과
본성과 다섯가지 알음법과
두 가지 무아(無我)가 깨끗 하다고
여래는 항상 이렇게 말하네.
길고 짧고, 있고 없는 것들이
번갈아 가면서 서로 생기나니,
없는 것 때문에 있는 것 이루고
있는 것 때문에 없는 것 되나니라.
작은 미진체(微塵體)를 분별하여도
물질이란 헛된 생각 아니하고
다만 마음의 안주하는 곳이더라도
나쁜 소견은 깨끗할 수 없으리.
이 허망한 지혜로 알바 아니며,
성문들도 또한 알지 못하리.
오직 여래만의 말한 바인
스스로 깨닫는 경계라네.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자심(自心)의 현류(現流)를 깨끗이 하기 위하여,
또한 여래께 청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마음의 현재 흐르고 있는 번뇌를 깨끗이 없애리까.
차츰 차츰 깨끗하옵니까. 일시에 깨끗하여 지나이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마음의 현류(現流)를 깨끗이 함은 차츰 깨끗하여지고, 일시로 깨끗하여 지는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암마라(菴摩羅)의 과일이 점차로 성숙한 것이요, 일시로 된 것이 아닌 것
과 같으니라.
대혜여, 중생의 자심 현류(自心現流)를 깨끗이 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로 깨끗하여지고 일시에 아니 되나니, 비유컨대 질그릇을 만드는 이가
여러 그릇을 만들적에 점차로 된 것이요, 일시에 된 것이 아닌 것과 같으니라.
대혜여, 부처님이 모든 중생의 자심현류를 깨끗이 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로 깨끗하게
한 것이요,
일시에 깨끗하게 한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대지(大地)가 모든 나무숲과 약초와 만물을 내는데 점차로 자라게 한 것이
요,
일시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부처님이 중생의 자심현류를 깨끗하게 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로 깨끗하게 한
것이요,
일시에 깨끗하게 한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모든 음악과 노래와 춤과 글씨 쓰기와 그림 그리기와,
가지가지 기술을 배우는데 점차로 알아진 것이요, 일시에 아는 것이 아닌 것과 같으니라.
대혜여, 부처님이 중생의 자심현류를 깨끗이 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로 깨끗하게 한 것
이요,
일시에 깨끗하게 한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분별하는 마음이 없이 일시에 모든 색상을 함께 나타내는 것
같아서
여래, 세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분별함이 없이 중생의 자심현류(自心現流)를 깨끗이 하되
일시에 깨끗하게 한 것이요, 점차로 깨끗하게 하지 아니하여
그들로 하여금 고요하여 분별이 없는 곳에 머무르게 하나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해와 달의 광명이 일시에 모든 색상(色相)을 두루 비추고,
선후(先後)가 있지 아니하는 것과 같느니라.
대혜여, 여래, 세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중생으로 하여금
자심(自心)의 번뇌와 습기(習氣)의 허물을 떠나게 하고,
일시에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가장 훌륭한 경계를 보여 주나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아라야식이 현재의 경계와, 자기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 등을 분별하는데 일시에 아는 것이요, 선후가 없는 것과 같느니라.
대혜여, 보불(報佛)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시에 중생계를 성숙케 하여
그를 수행함이 청정한 곳인 형색 막바지 하늘[色空竟天]의 깨끗하고 훌륭한 궁전에 두시나
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법신불과 보신불이 모든 광명을 놓으시는데
응화불이 있어서 여러 세계를 비추는 것과 같느니라.
대혜여, 속몸의 거룩한 행과 광명의 법체로 세간의 있다 없다하는
사뙨 소견을 비추어 없애는 것도 또한 그와 같나니라.
대혜여, 법신불과 보신불의 말씀하신 일체 법은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인 것이며,
마음에서 훈습하는 모양을 나타냄으로 인한 것이며,
허망한 분별과 희론으로 인하여 서로 묶인 것이며, 말한 바 법과 같아서 이러한 법 자체가
없는 것들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요술하는 이가 요술로서 가지가지 모양을 만들거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를 보고 사실 있는 것로 여기지만,
그러나 그 여러 모양은 실로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대혜여, 허망한 법체는 인연법에 의한 것이니, 사실이 있다고 집착함과 분별함으로서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공교로운 환사(幻師)가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에 의하여 가지 가지 일들을 지어내
며,
주술(呪術)과 인공의 힘으로 모든 중생의 모양과 빛깔과 몸매를 만들어 내나니,
이를 환인상(幻人像)이라 한다. 중생들은 그 눈홀림인 가지 가지 모양을 보고 사람인양 집착
하건만
그러나 실은 사람이 아니니라.
대혜여, 중생들은 그를 보고 비록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실로 인체(人體)는 없느니라.
대혜여, 이 인연 법체가 마음의 분별을 따름도 또한 그와 같나니,
그는 마음의 가지 가지 환(幻)을 본 것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허망상(虛妄相)에 집착함은 분별심의 훈습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니라.
대혜여, 이것을 이름하여 허망한 체상을 분별한 것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이를 보신불의 설법하신 모양이다.
법신불의 설법은 마음이 서로 합하는 것을 여읜 것이며,
안으로 거룩한 행을 증득하신 경계니 대혜여, 이를 법신불의 설법하신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응화부처님의 하시는 일이란 보시와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과
선정(禪定)과 지혜를 말씀하시며,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과 해탈 등을 말씀 하시고,
알음알이의 행상이 차별한 것을 건립하며, 외도와 형색없는 것의 사마파티 차례를 말씀하시
나니라.
대혜여, 이들 화신불의 하시는 일과 화신불의 설법하시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법신불의 설법은 모든 반연을 떠났으며, 능관(能觀)과 소관(所觀)을 떠났으며,
하는 일들의 모든 상을 떠났나니, 대혜여, 이는 범부와 성문과 연각과 외도의 경계가 아니니
라.
그 까닭은 외도들은 허망한 아상(我相)에 집착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이와같은 속몸으로서 스스로 깨달아 수행하는
훌륭한 법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자심상(自心相)을 보고 진실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도 하느니라.
대혜여, 성문승(聲聞乘)이 두 가지 차별상이 있나니,
말하자면, 속몸으로 훌륭한 지혜를 증득하였다는 것과,
허망한 모양에 집착하여 실물이 있는 것으로 분별하는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성문의 속몸으로 훌륭한 지혜를 증득하였다는 것이냐.
말하자면, 떳떳함이 없는[無常]것과 괴로움[苦]과, 공함[空]과 무아[無我]의 경계인 것과,
진리와 욕심을 떠남과, 고요함인 것과, 五음과 十팔계와 六입인것과, 제모양과 같은 모양인
것과,
안팎의 없어지지 않는 모양인 것과 진실한 법을 본 것과,
마음의 삼매를 얻고 마음의 삼매를 얻고나서 선정(禪定), 해탈(解脫)과,
삼매 도과(道果)와 사마파티와 물러가지 않는 해탈을 얻은 것과,
헤아릴 수 없는 훈습인 변역생사(變易生死)를 떠난 것과, 속몸으로 거룩한 안락의 행과 법을
얻고,
성문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니라.
대혜여, 이를 성문의 속몸으로 훌륭한 지혜를 증득하였다는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성문의 속몸으로 증득한 거룩한 행과 삼매 안락의 법에 들어 갔었지
만
그러나 적멸인 공문(空門)의 낙을 취하지 않으며, 사마파티의 낙을 취하지 않고
중생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본원력을 일으켜 수행하나니,
그러므로 그를 비록 알고 있지만 그것을 취하여 최상으로 여기지 않나니라.
대혜여, 이를 성문의 속몸으로 훌륭한 수행과 낙을 얻은 것이라 하나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응당 속몸으로 훌륭한 수행과 낙을 증득하는 것을 수행하여도
그를 취하거나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성문의 허망한 모양에 집착하여 실물이 있는 것으로 분별하는 것이냐.
말하자면, 사대(四大)의 굳음과 젖음과 뜨거움과 움직이는 모양과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모
양들과
짓는 것 없이 생겨나는 것과 제모양과 같은 모양인 것과 합당하는 교리와
옛적의 훌륭한 견해와 좋은 말들이니라.
그 법에 의하여 허망하게 집착하며, 그것이 참으로 있다고 여기는 것이니
대혜여, 이것이 성문의 허망한 모양에 집착하여 실물이 있는 것으로 분별하는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저 성문법을 응당 알건만 버리며 버리고는 법무아(法無我)에 들어가
고,
법무아에 들어가고는 인무아(人無我)에 들어가며
인무아를 관찰하고는 차례로 여러 지위에 들어 가나니라.
대혜여, 이를 성문들이 허망한 모양에 집착하여 실물이 있는 것으로 분별하는 것이라 하나
니
대혜여, 말한바 성문승의 두 가지 모양이 있다는 것을 내 이미 위에서 말했노라.”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이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떳떳함[常]과 헤아릴 수 없는 법과 제일의(第一義)법을 세
존이시여,
외도들도 또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과 인과(因果)를 말하나니, 이 뜻은 어떠하옵니아
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해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외도들이 말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것과 인과는 성립하지 못하리니 무슨 까
닭이냐.
대혜여, 외도가 말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은 원인인 제 모양과 서로 합하지 않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외도들이 말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만일 원인인 제 모양과 서로 합하
지 못할진대
이 어느 법이 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외도들은 떳떳함과 헤아릴수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없느니라.
대혜여, 외도가 말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만일 원인인 제모양과 서로 합한 것
이라면,
응당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아닐 것이니, 원인인 모양이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될 수 없느니라.
대혜여, 내가 말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과, 제일의(第一義)는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제일의 모양의 인과로 더불어 서로 합하나니, 있고 없는 것을 여읜 까
닭이며,
속몸으로 증득하는 모양인 까닭이며, 저 모양이 있는 까닭이며,
제일의지(第一義智)의 원인과 서로 합하여 있고 없는 것을 떠난 까닭이며,
짓는 바가 아닌 까닭이며, 허공과 열반과 적멸(寂滅)과 비유(譬喩)와 서로 합하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라.
대혜여, 내가 말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외도의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다는 이론과 같지 않느니라.
대혜여, 이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부처님, 여래,
응공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의 참으로 떳떳한 법이니,
이는 부처님의 거룩한 지혜로 몸속 깊이 체득한 까닭이며,
마음과 뜻과 의식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대혜여, 이러므로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과 몸속 깊이 체득할
바
거룩한 지혜와 행법(行法)을 수행할 것이니라.
대혜여, 외도들의 떳떳하다 함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떳떳함이 없는 법[無常法]의 원인과 서로 합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떳떳함이 없다. 그리고 원인과 부합하지도 않고 이름만 얻었을 뿐이니,
그러므로 떳떳한 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라.
대혜여, 만일 외도의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일진대,
그는 곧 유무법(有無法)을 보고서 떳떳하다 말함이니,
그의 법은 추리하는 알음으로 떳떳함이 있다고 말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나도 또한 그와 같이 곧 그의 법으로 인하여 있다 없다는 견해를 짓는다면
떳떳함이 없는 것도 응당 떳떳하리니 무슨 까닭이냐. 원인이 없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외도들이 만일 원인이 서로 합하여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이룬다고 말한다
면,
저 외도는 원인인 제 모양이 있고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니, 토끼뿔과 같으리라.
대혜여, 이 떳떳하다 함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외도들의 허망한 분별이나,
무슨 까닭이냐. 토기뿔이 없는 것을 괜히 허망하게 분별한 것이며, 자체 원인이 없는 까닭이
니라.
대혜여, 나의 떳떳하다 함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오직 몸속 깊이 체득할 원인인 것이며,
있다 없다고 함을 떠난 것이다. 그러므로 떳떳하며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이는 바깥 모양이 없는 까닭이며, 떳떳한 법과 서로 합하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외도들은 바깥 모양이 없는 것을 보고, 추리하는 알음으로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알고서
떳떳한 것으로 여기므로, 저 외도들은 떳떳함과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자체 원인의 모양과 저 원인의 모양임을 알지 못하니,
그것은 몸속의 거룩한 지혜로 체득할 경계인 까닭이니라.
대혜여, 저 외도들은 나의 법엔 응당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은 생사(生死)와 망상의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열반을 구하되,
세간과 열반이 차별 없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모든 법과 법 아닌 것들을 분별하여
여러 감각기관을 없애고 미래의 경계를 취하지 않으며, 괜히 그를 열반이라 하고
몸속 깊이 체득할 수행법을 알지 못하며, 아라야식이 움직여 굴러가는 것을 알지 못하나니
라.
대혜여, 그러므로 저 어리석은 사람은 삼승법(三乘法)이 있다 말하고,
능히 마음 생각만 고요하면 적멸법 얻는 것임을 알지 못하나니라.
그러므로 저 지혜없는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
여래, 응공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의 자심(自心)에서 나타난 경계를 알지 못하여,
바깥 마음의 경계에만 집착 하느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저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나고 죽는 바퀴속에서 항상 굴르기만 하고 머물러 쉬지 못하나
니라.
대혜여, 과거와 현재의 여러 부처님이 모두 온갖 법이 생(生)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나니,
무슨 까닭이냐. 말하자면, 마음에서 있고 없는 법을 본 것이니,
만일 있고 없는 것을 떠난다면 온갖 법이 생하지도 않으리라.
그러므로 대혜여, 모든 법은 생하는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모든 법이 토끼뿔과 나귀와 낙타들의 뿔과 같나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가 망상 분별로서 모든 법을 분별한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생하는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모든 법의 자체는 생하는 것이 아니요, 몸속 깊이 체득할 거룩한 지혜의 경계이며,
모든 범부의 자체와 분별인 두 경계가 아니니라.
대혜여, 이는 아라야식의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과, 오는 자체 모양들인 것이며,
능히 취함(能取)과, 취하여 질 것들을 나타내여 흘러 굴르는 것이며,
모든 범부들의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두 모양인 마음에 떨어진 것이며,
모든 법을 분별하여 있다, 없다는 소견을 낸 것이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이와 같은 법임을 알 것이니라.
대혜여, 내가 말한 다섯 가지 승성(乘性)의 체득하는 법이라 함은 무엇이 다섯 가지냐하면,
첫째는 성문승성의 체득하는 법이요, 둘째는 벽지불승성의 체득하는 법이요,
셋째는 여래승성의 체득하는 법이요, 넷째는 부정승성(不定乘性)의 체득하는 법이요,
다섯째는 무성(無性)의 체득하는 법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성문승성의 체득하는 법이냐. 말하자면, 五음과 十八계, 六입등 법을 말한 것
이며,
제 모양과 같은 모양과, 체득하는 지혜의 법을 말한 것이며,
그 몸의 털구멍까지 평화롭고 기뻐하여 상지(相智)를 즐겨 닦고,
인(因)과 연(緣)이 서로 떠나지 아니한 모양은 닦지 않나니라.
대혜여, 이를 성문승성의 체득하는 법이라 하나니, 저 성문의 사람들은 사뙨 견해로 체득한
지혜이므로
굵은 번뇌만을 여의고, 무명(無明)이 훈습하는 번뇌는 떠나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네의 체득한 모양을 보고서 말하기를,
‘초지에서와 내지 五지와 六지에서 모든 번뇌를 떠난 것이 자기네의 떠난 것과 같다고’하
나,
훈습하는 무명의 번뇌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변역생사[不可思議變易生死]에 떨어지나니라.
그럼에도 이러한 말을 하되 ‘나는 낳는 몸이 이니 다했으며,
범행(梵行)이 벌써 이루었고 하는 일을 다 마쳤으며, 다시 뒷 세상의 몸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들은 인무아(人無我)에 들어 갔었고,
내지 생각을 내면서 열반을 얻었노라고 까지 하나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열반을 체득하려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하되,
‘나와 남과, 중생과 수명과, 짓는 이와 받는 이를 깨달은 사람은 그가 곧 열반이라’하며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모든 법이 인연으로 인하여 있는 것을 보고서, 열반이라는 생각을
내나니라.
대혜여, 저 모든 외도들은 열반과 해탈이 없나니, 법무아(法無我)의 도리를 보지 못한 까닭
이니라.
대혜여, 이를 성문승인 외도성(外道性)이라 함이니,
그들은 떠나지 못한 곳에서 떠났노라는 생각을 내나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이러한 사뙨 견해를 버리고 진실한 행을 수행할 것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벽지불승성의 체득하는 법이냐. 말하자면 연각의 체득하는 법을 말함을 듣고
온 몸의 털이 쭈뻣하여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리며, 시끄러운것을 좋아하지 않고
모든 인연법을 관찰하기 때문에 인연법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자신의 가지가지 신통은 떠나기도 하며 합하기도 하며 갖가지로 변화한다 함을 듣고는
곧 그의 마음이 그에 따라 들어가나니라. 대혜여, 이를 연각승성의 체득하는 법이라 하나니,
그대는 마땅히 이 연각을 수순하여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대혜여, 무엇이 여래승성의 체득하는 법이냐. 대혜여, 여래승성의 체득하는 법이 네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냐. 첫째는 진실한 법을 체득하는 성질이요, 둘째는 진실법을 떠나 체득하는
성질이요,
셋째는 자신이 속으로 거룩한 지혜를 체득하는 성질이요,
넷째는 바깥쪽 모든 국토를 훌륭하고 묘하게 장엄하는 법을 체득하는 성질이니라.
대혜여, 만일 이의 낱낱 법을 들을적에도 아라야의 마음이 바깥 몸의 의지(依止)할 것과 살
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과 헤아릴 수 없는 경계를 나타낸 것이라 하여도 놀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대혜여, 이는 여래승성을 체득한 사람이니 대혜여 이를 여래승성의 법을 체득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부정승성(不定乘性)의 체득하는 법이냐.
대혜여, 어떤 사람이 이 세 가지 법을 말함을 듣고 낱낱 법에 좋아하는 바가 있다면
그를 수순하여 말해 줄 것이니 대혜여, 삼승(三乘)을 말함은 수행하는 경지를 이르키기 위한
것이며,
모든 성질의 차별함은 구경(究竟)의 경지가 아니라고 말하여
최후에 고요한 경지를 취함을 건립코자 함이니라.
대혜여, 저 세 종류의 사람은 번뇌장(煩惱障)의 훈습을 떠나고 청정한 법을 얻을 것이며,
법무아의 도리를 보고 삼매의 낙과 행을 얻을 것이며,
그리고 성문과 연각이라도 필경에는 여래의 법신을 체득할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흐름 거슬러 두루 닦는 이
한번 오가고 영영 오지 않는 이
삼계에 공양받을 아라한(阿羅漢)
이들은 모두 마음 미했다네.
내가 말한 삼승법(三乘法)과
일승(一乘)과 또한 비승(非乘)은
여러 성인의 진실한 견해건만
그러나 범부는 그를 알지 못하네.
제일의(第一義) 법문이란
두 교법을 떠났나니라.
그러나 삼승법을 세워 말함은
고요한 곳에 머무르도록 함이니라.
여러 선나와 또한 무량(無量)과
형색 없는 것과 사마파티와
생각 없는 정과 멸진정은
이것 모두 마음속엔 없는 것일세.
대혜여, 무엇이 무성승(無性乘)이냐.
이천티카[一闡提]를 말함이니 대혜여, 이천티카는 열반의 성질이 없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해탈법 가운데서 믿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는 열반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대혜여, 이천티카가 두 종류 있으니, 무엇이 둘이냐. 첫째는 모든 착한 뿌리를 불태워 없애
는 것이요,
둘째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중생계(衆生界)를 다 없앨 원을 가진 것이다.
대혜여, 어떤 것을 모든 착한 뿌리를 불태워 없애는 것이라 하느랴. 말하자면 보살장(菩薩
藏)을 비방함이니,
그가 이런 말을 하여 ‘저 법은 수다라(修多羅)와 비니(毘尼)와 해탈의 말을 따른 것이 아
니라’하여
모든 선근(善根)을 버리나니, 그러므로 그들은 열반을 얻지 못하느니라.
대혜여, 중생을 불쌍히 여겨 중생계를 다 없앨 원을 가진 것은 이는 바로 보살들이니,
대혜여, 보살이 방편으로 원을 세우되
‘만일 모두 중생이 열반에 들지 않으면
나도 또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함인, 그러므로 보살 마하살도 열반에 들지 않나니라.
대혜여, 이를 두 종류의 이천티카는 열반의 성질이 없다고 말함이니,
이 뜻으로 말미암아 꼭 이천티카의 행을 취해야 하느니라.”
대혜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두 종류의 이천티카 중에서 어떤 이천티카가 언제고 열반에 들어가지 않
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하셨다.
“보살이 이천티카가 항상 열반에 들지 않나니라. 무슨 까닭이냐.
능히 모든 법이 본래부터 열반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열반에 들지 않나니라.
그리고 모든 선근(善根)을 버리는 이천티카는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저 모든 선근을 버리는 이천티카는 만일 부처님이나 선지식(善智識)을 만난다면
보리 마음을 발하고, 모든 선근을 내게 되어 열반을 체득하리니,
어찌 된 것이냐. 여러 부처님, 여래께서는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보살인 일천티카만이 언제고 열반에 들지 않나니라.
입능가경(入楞伽經) 중편1
三, 집일체불법품(集一切佛法品) (2)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세 법의 자체 모양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니,
대혜여, 무엇이 세 법의 자체 모양이냐. 첫째는 허망하게 명자(名字)를 분별하는 모양이요,
둘째는 인연 법체의 제 모양인 모양이요, 세째는 제일의 제 법체의 모양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허망하게 명자를 분별하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명자를 따라서
허망하게 모든 법의 모양을 분별함이니, 이를 허망하게 명자를 분별하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인연 법체의 제 모양인 모양이냐.
대혜여, 인연 법체의 제 모양인 모양이란 것은 경계와 사법을 따라서 나는 것이다.
대혜여, 인연 법체의 경계와 사법은 여러 부처님, 여래, 응공, 바르고 두루 아시는 이께서
허망하게 분별하는 차별이라 말씀하시나니라. 그것은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가지냐. 첫째는 허망하게 명자와 희론에 집착하여 분별함이요,
둘째는 허망하게 명자상(名字相)에 집착하여 경계상(境界相)과 사법 모양을 분별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허망하게 명자상과 경계상과 사법상에 집착하는 것이냐.
말하자면 곧 저의 안과 바깥법의 제모양과 같은 모양이니라.
대혜여, 이를 인연 법체의 두가지 제 모양인 모양이라 하나니,
그는 저의 법에 의하여 저 법이 생(生)하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대혜여, 이를 인연 법체의 제 모양인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제일의 제 법체의 모양이냐. 말하자면 부처님 여래는 명자상과 경계상과
사법상을 떠나고 거룩한 지혜로 수행하는 경계니,
대혜여, 이를 제일의 제모양인 여러 부처님의 여래장(如來藏) 마음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명상을 분별하는 것과
또한 인연법이 두 모양인데,
진여(眞如)의 바르고 묘한 지혜만은
이것이야말로 제일의 상(相)이라네.
“대혜여, 이를 다섯 법의 제 모양을 관찰하는 법문이라 하며,
부처님과 보살의 속으로 체득할 경계를 수행하는 모양이라 함이니,
그대와 여러 보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할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두가지 무아(無我)를 잘 관찰할 것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두 가지냐. 첫째는 인무아(人無我)의 지혜요, 둘째는 법무아(法無我)의 지혜
니라.
어떤 것이 인무아의 지혜냐. 말하자면 나와 내것이라 함과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등을 떠나
고,
지(智)와 업(業)과 애착으로 생(生)하는 것이 없으며, 눈과 빛깔들에 의하여 허망하게 집착
하는 것과,
제 마음에서 일체의 모든 감각기관과 몸과 집들을 나투어 보인 것과, 제 마음의 분별로 분
별한 것과,
분별하는 알음알이인 것과, 강물의 흐름과, 종자와 등불 타오름과 바람과 구름과 같아서
생각 생각이 굴르면서 앞 뒤가 차별하며, 가볍게 날뛰고 움직여 굴르는 것은 원숭이와 같으
며
깨끗지 못한 곳을 좋아함은 파리와 같으며 만족이 없는 것은 불과 같은 것과
끝없는 옛적부터 희론 경계로 훈습한 것과, 마치 두레박의 바퀴와 수레 바퀴가 돌고 움직임
과 같아서
삼계에서 가지 가지 형태와 몸을 받아 나는 것이
요술로서 시체를 산 사람처럼 일으켜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들이니라.
대혜여, 이와 같이 모든 법의 모양을 관찰하는 선교방편(善巧方便)의 지혜를 이름하여
인무아를 잘 아는 지혜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법무아의 지혜냐. 말하자면 참다히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의 모양을 분별
함이니
대혜여, 보살이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등이 나와 내것이라 함이 없으며,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들은 업과 애착의 줄로 인하여 번갈아 서로 묶이는 인연으로 생긴 것
이며,
<나>도 없고 <짓는>것도 없는 것임을 관찰함이니라.
대혜여,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등은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을 여읜 것이언만
진실치 못한 상(相)과 분별에 의하여 이름을 얻어진 것이다. 어리석은 범부는 망상 분별로서
그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진실법을 체득한 이는 있다고 보지 아니하니라.
대혜여, 보살이 이와 같이 관찰하여 마음과 뜻과 의식과 다섯 법의 체상은 모두 여읜 것이
며,
모든 인연은 없는 것이라고 본다면, 법무아 지혜인 경계를 잘 안다고 할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이 법무아를 잘 알고서 진여를 관찰하고 수행을 닦는다면 오래지 않아
마땅히 첫 환희지(歡喜地)를 얻을 것이며, 환희지를 잘 관찰하면
이와 같이 모든 지위가 차례로 더욱 밝아져서 내지 법운지(法雲地)까지 체득하게 되리니,
보살이 그 법운지에 머무르면 한량 없는 모든 보배가 사이 사이마다 얽히고 꾸며져서
큰 연꽃자리와 큰 보배궁전에서 진실한 업과 환(幻)의 경계를 닦아서 나는 것처럼 그 위에
앉을 것이며,
여러 수행을 같이 하는 불자들이 공손히 둘러 모실 것이며, 시방의 여러 부처님이 손을 펴
시고
그의 정수리에 물 부어 부처의 지위를 주시는 것이 전륜왕이 그 태자의 정수리에 물을 부어
줌과 같아서
불자의 지위를 벗어날 것이며, 불자의 지위를 벗어나고는 부처님 법을 관찰하고
참다히 수행하여 모든 법에서 자재(自在)함을 얻을 것이며,
자재함을 얻고나면 여래의 최상 법신을 얻을 것이라 말하리니, 이는 법무아를 보았기 때문
이니라.
대혜여, 이를 진실한 법무아의 모양이라 하나니라.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은 마땅히 이와같이 배울 것이니라.”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비방함이 있고 없는 것을 저희를 위하여 말씀하옵소서.
세존이시여, 저희와 여러 보살 마하살이 만일 이를 듣는다면 있고 없는 사뙨 소견을 벗어나
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서는
단견과 상견의 사뙨 견해를 멀리 여의고 곧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건립하리이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의 청함을 또한 받으시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속엔 단견과 또한 상견
몸과 살림살이와 사는 곳 없거늘
마음이 어리석고 지혜 없어서
물건 없는 데서 있다고 보나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게송의 뜻을 다시 설명하려고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 가지 비방을 건립하는 모양이 있나니, 무엇이 네가지냐.
첫째는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요, 둘째는 올바른 견해가 아닌 것을 건립하는 모양
이요,
세째는 원인이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요, 네째는 자체가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니
대혜여, 이를 네가지 건립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이 비방하는 모양이냐.
대혜여, 사뙨 소견으로 건립한 바 법은 실상(實相)을 볼 수 없음을 관찰하고
곧 모든 법을 비방하여 말하되 ‘모두가 없다’고 하나니 대혜여,
이를 이름하여 비방을 건립한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은 있지 않는 법이라 분별하며,
끝없이 오면서의 희론은 진실함이 있지 않다 하기 때문에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에 집착하
되,
‘이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필경에는 다르지 않다’고 한 것이니라.
대혜여, 이는 한량 없는 옛적부터 오면서 번뇌의 훈습과 집착으로서 생긴 것이다.
대혜여, 이를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올바른 견해가 아닌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냐.
대혜여, 저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 가운데에는 나와 남과, 중생과 수자(壽者)와 짓는 이와 받
을 이가 없거늘
사뙨 견해를 세워서 나와 남들이 있다고 말하나니 대혜여, 이를 올바른 견해가 아닌 것을
건립함이라 이름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원인이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처음 알음알이는 원인이 있어서 생긴 것이 아니니,
본래 생긴 것은 아닌데 후에 생긴 것이 환(幻)이 본래 없지만 물건으로 인하여 생긴 것과
같아서
눈과 빛깔과 밝음과 생각으로 인하여 알음알이가 생긴 것이요, 생겼다가 도로 없어진다’함
이니라.
대혜여, 이를 원인이 있지 않는 것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을 건립하여 법을 비방하는 모양이냐.
말하자면 허공과 없어짐[滅]과 열반은 짓는 것도 없고 물건도 없다 하여 집착함을 세운 것
이다.
대혜여, 저 세 법인 허공과 멸(滅)과 열반은 있고 없는 것을 여읜 까닭이니라.
대혜여, 모든 법은 토끼와 말과 나귀와 낙타의 뿔과 헛보이는
허공의 털바퀴(毛輪)와 같아서 있다 없다고 보는 모양을 여읜 것이니라.
대혜여, 비방함을 세우는 모양은 범부들이 허망하게 분별하여 모두가 오직 마음임을 알지
못하고
모든 법이 있다고 본 것이니, 이는 성인(聖人)의 본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이를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을 건립하여 법을 비방하는 모양이라 함이니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올바르지 못한 견해로 법을 비방함을 세우는 것을 멀리 떠날 것이니
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참다히 심(心)과 의(義)와 의식(意識)과 다섯 법의 체상과
두가지 무아(無我)를 알고서 중생을 편안케 하기 위하여 가지 가지 종류와 형상을 나타내나
니,
저 허망한 것과 같아서 분별할 바 없는 것은 인연법에 의해서 가지 가지가 있는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또한 그와 같아서 중생들에 의하여 가지 가지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
여의주가 모든 중생의 마음 생각을 따르듯이 모든 부처님 세계의 대중 가운데서 환(幻)같고
꿈 같으며
메아리 같고 물속의 달과 거울속의 얼굴과 같은 것을 나타내며,
모든 법의 생멸(生滅)과 단, 상(斷相)을 멀리 떠났으며, 여래의 성문과 연각승 떠난 것을 나
투기도 하며,
부처님의 법을 듣고 즉시 한량 없는 백천만억의 깊고 깊은 삼매를 얻으며, 삼매를 얻고는
삼매의 힘에 의하여 한 부처님의 세계로부터 또 딴 부처님의 세계에 이를 때마다
여러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여러 궁전속에서 태어나는 것을 보이어 삼보(三寶)를 찬탄하
며,
부처 몸을 나투고 보살과 성문 대중들이 둘러 모신데서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이 경계를 나타낸 진리에 들어가게 하고, 바깥 경계에 대하여
물질이 없고 물질이 있는 것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있다 없다고 건립하는 것을 멀리 여의게 하나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불자여, 세상의 온갖 것이
오직 마음뿐 딴 법 없다고 본다면
모든 것을 몸으로 짓지 않더라도
힘을 얻어 마음대로 이루리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이 또한 다시 부처님께 청하여 말하였다.
“원하옵노니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일체 법이 공하여 생(生)함도 없고 둠이 없으며,
자체모양을 떠난 것을 말씀하여 주옵소서. 저희와 여러 보살 대중이 법이 공하여
생함이 없고 둘이 없으며, 자체모양을 떠난 것을 알게 되오면 있다 없다하는
허망한 망상을 떠날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히 얻을 것이옵니다.”
그때에 부처님이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내가 마땅히 그대를 위해 널리 분별해 말하리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기쁩니다. 세존이여, 순순히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공(空)이라는 것은 바로 망상 법체(妄想法體)인 어구(句)니라.
대혜여, 그 망상 법체에 집착함에 의하여 말하되, ‘법이 공하여 생함이 없고 자체가 없으
며,
둘이 아니라’고 한 것이니라.
대혜여, 공함이 일곱 가지가 있나니 무엇이 일곱이냐.
첫째는 모양이 공함이요, 둘째는 일체 법의 있는 물질과 없는 물질이 공함이요,
세째는 행(行)이 공함이요, 네째는 행 아닌 것이 공함이요, 다섯째는 일체 법이 말없는 것의
공함이요,
여섯째는 제일의인 거룩한, 지혜 큰 것[第一義聖智大]의 공함이요, 일곱째는 저와 저가공[彼
皮空]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모양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일체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이 공함이라는
소견이
번갈아 서로 쌓여 모인 것이니, 대혜여, 낱낱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할진대
한 법도 있을 수 없고, 제 모양과 다른 모양인 두 모양을 떠난 것이어서,
모양들이 있을 수도 볼 수도 없기에 제 모양이 공한 것이라 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일체 법의 있는 물질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자체모양에 실로 법이 있다고
하나
대혜여, 모든 법의 자체 모양은 있고 없는 것이 모두 공했나니,
그러므로 자체 모양의 있는 물질과 없는 물질이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행(行)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五음등이 <나>와 <내것>이라 함을 떠났는
데
인연과 짓는것과 업에 의하여 생기게 되나니 대혜여, 이러하므로 행이 공한 것이라 하느니
라.
대혜여, 어떤 것이 행 아닌 것이 공함이냐. 말하자면 五음법 가운데는 본래 열반일 뿐 행은
있지 않음이니,
대혜여, 이를 행 아닌 것이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일체 법이 말없는 것의 공함이냐. 말하자면 허망한 생각으로 모든 법을
분별한 것이어서
말로서는 말할 수 없나니 대혜여, 이를 일체 법이 말없는 것의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제일의인 거룩한 지혜, 큰 것의 공함이냐.
말하자면 자기 몸이 안으로 거룩한 지혜와 법이 공함을 체득하여
모든 사뙨 견해와 훈습의 허물을 떠난 것이니
대혜여, 이를 제일의인 거룩한 지혜, 큰 것의 공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저와 저가 공함이냐. 말하자면 어떠 어떠한 법에는 저 법은 없고 이 법은
있으며,
저법은 있고 이 법은 없나니, 이러하므로 저와 저가 공함이라 말한 것이다.
대혜여, 내가 옛적에 사슴어미[鹿母 = 一名 鹿子母니 人名으로 女子의 이름]를 위하여 말한
전당(殿堂)이 공했다 함은 코끼리와 말과 소와 염소 등이 없으므로 공했다 함이요,
여래 비구(比丘)들이 있으므로 공함이 아니라 한 것이다.
그리고 전당에는 전당 자체가 없고 비구에도 비구 자체가 없고 코끼리와 말과 소와
염소들이 딴 곳에도 없는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이러한 모든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도 또한 얻을 수 없고,
이와 저의[此彼] 곳을 떠났기에 내가 저와 저가 공함이라 말한 것이니라.
대혜여, 이를 일곱 가지 공함이라 한 것이다.
대혜여, 이의 ‘저와 저가 공함’이 가장 거칠고 옅음이 되나니,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저와 저가 공한 것을 떠날 것이요, 닦을 것은 없나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생하지 않는[不生]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자체가 생하지 않으며 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 것만 세 법에 의하여 생(生)함이라
말하고,
본래 생하지 않는 것에 의하여 불생(不生)이라고 말한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자체 모양 없는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말한 자체모양이 없다는 것은 일체 모든 법의 자체가 본래 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법이 자체가 없고, 계속되는 자체도 찰나 동안에도 머무르질 않는
다’고 말한 것이니라.
대혜여, 보고 나서는 달라져서 달라지는 모양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법의 자체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을 둘이 아닌 법의 모양이라 말하옵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두 법의 모양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햇빛과 그림자와 길고 짧고 검고 흰 이러한
법들이
각각 이름이 다르나니 둘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없다. 대혜여, 저 세간(世間)과 열반과도 같
아서 모든 법도
각각 둘이 있나니 대혜여, 어떤 열반인들 그 곳에 세간이 없으며,
어느 곳의 세간인들 그 곳에 열반이 없으리요.
다르다는 것은 모양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이 둘이 아니라 말하니라.
모든 법이 둘이 아니라는 것은 세간과 열반이 둘이 없는 까닭인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는 마땅히 모든 법이 공했으며, 생함이 아니요.
자체가 없고 둘이 아닌 것을 닦아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항상 공한 법 말함은
단견과 상견 떠난 것이니,
죽고 삶은 환과 꿈 같은데
그러나 그의 업만은 없질 않네
허공과 그리고 열반이여
둘 없앤 것도 또한 이러한데
범부들은 괜히 분별하건만
성인은 있고 없는 것 떠났다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모든 법이 공했으며 생함이 아니요. 자체가 없고 둘이 아닌 것들은
모두 여래의 말씀하신 수다라 속에 들어 있나니, 모든 법문엔 이러한 뜻을 모두 말하였나니
라.
대혜여, 모든 수다라에서는 여러 중생의 마음을 따르기 때문에 분별로서 알려 주었나니
대혜여, 비유컨대 아지랑이를 잘 알지 못한 새와 짐승들은 허망한 집착으로서 물이라고 생
각하건만
그러나 아지랑이 속에는 실로 물이 있지 않는 것과 같아서
대혜여, 모든 수다라에서 말한 법도 또한 그와 같나니, 범부들의 마음속으로 분별하는 것을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요. 진실한 성인의 지혜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뜻을 따르고 말한 바 명자나 글귀에는 집착하지 말 것이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여래 갈무리의 자성[如來藏自性]은 청
정하여
三十二 모양을 갖추고서 일체 중생의 몸속에 있건만 욕심 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진실치 못
한
번뇌의 때로 더럽혔으며, 五음과 十八계와 六입의 옷에 얽히고 싸인 것이 피었기에
값진 보배가 때옷 속에 묻힌 것과 같다 하시옵고, 세존께서 또한 말씀하시되
‘떳떳함이고 항상함이고 청량(淸凉)함이며, 변치 않는다’ 하옵시니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 할지라도 외도도 또한 말하기를
‘나에게 신비한 나[神我]가 있어 항상 있으며, 변치 않는다’하옵니다.
여래께서 또한 여래 갈무리는 항상 떳떳하며 내지 변치 않는다 말씀하시오나 세존이시여,
외도도 또한 말하기를 ‘떳떳한 것으로 된 것인 <나>는 모든 인연에 따르지 않고도
자연히 모든 것에 두루하고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나이다.
만일 그와 같을진대 부처님과 외도의 말이 다를것이 없겠나이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시었다.
“대혜여, 내가 말한 여래 갈무리가 떳떳하다 함은 외도들의 있다고 한 신아(神我)와는 같지
않나니라.
대혜여, 내가 여래 갈무리를 말하는데 공함과 실제(實際) 진리와 열반과 생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않는다는[不生不滅]것과 모양 없으며,
원(願)함 없다는 등의 말과 글귀로서 여래 갈무리를 설명하였노라.
대혜여, 여래 응공 정변지(正遍知)는 여러 어리석은 범부들이 무아(無我)란 말을 들을 적에
는
놀래고 두려워 하는 생각 내는 것을 위하기 때문에 내가 여래장(如來藏)을 있다고 말한 것
이다.
그러나 여래장은 분별할 바 없으며, 고요하고 모양 없기에 여래장이라 말한 것이니라.
대혜여, 현재와 미래의 모든 보살은 응당 <내>가 있다는 상(相)에 집착하지 말 것이니
대혜여, 비유컨대 질그릇 만드는 이가 진흙과 미진(微塵)과 바퀴와 끈와 인공(人功)과 손과
나무와
방편의 힘에 의하여 여러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나니,
대혜여, 여래 세존도 또한 그와 같이 저 법이 <나>라 함이 없고, 모든 분별하는 모양이 없
는데서
지혜와 교묘한 방편으로 여래 갈무리라 말하며, 혹은 무아(無我)를 말하기도 하며,
혹은 실제와 열반등의 가지 가지 명자와 글귀를 말하여 알려 주는 것이
그 질그릇 만드는 이가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대혜여, 내가 말한 여래 갈무리는 외도가 말한 <나> 있다는 것과 같지 않느니라.
대혜여, 내가 여래 갈무리를 말한 것은 외도의 <나>라 함에 착함을 위한 것이니,
그들을 포섭하려고 여래 갈무리를 말하여 저 외도들로 하여금 신아(神我)가 있다고 하는
허망한 소견과 마음에 집착한 곳을 벗어나고,
三해탈의 문에 들게 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노라.
대혜여, 이러한 뜻으로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는 여래 갈무리를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한 여래 갈무리가 있다는 것은 외도의 신아(神我)가 있다고 집착한 것과
다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모든 외도의 사뙨 견해를 버리기 위하여 부처님이 이러한 말을 한 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여래의 <나>라 함이 없는 법을 닦아 배울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이니 나니하고 그리고 五음과
뭇 인연과 또한 작은 티끌과
자성이 제대로 지은 것이여
이가 곧 마음의 허망한 분별일세.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미래의 모든 중생을 관찰하고서 또한 부처님께 청하여
말하였다.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을 위하시어 진실한 수행법을 말씀하옵소서.
저 여러 보살들이 진실한 수행법(修行法)을 듣기만 하오면 진실한 수행자가 되오리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가지 법이 있어야만 큰 진실한 수행자라 할 것이니 무엇이 네가지냐.
첫째는 제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아는 것이요,
둘째는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멀리 떠나는 것이요,
세째는 바깥법의 있고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요,
네째는 속 몸으로 체득한 지혜를 좋아하여 닦는 것이니
대혜여, 보살이 이와같은 네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큰 진실한 수행자라 할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알아 관찰함이냐.
말하자면 삼계(三界)가 다만 한 마음으로 된 것이며, <나>와 <내것>을 떠난 것이며,
움직이는 것도 없고 지각(知覺)함도 없으며, 취하고 버리는 것을 떠났으며,
끝없이 오면서부터 삼계의 훈습함과 희론의 마음에 허망스리 집착한 것이며,
가지 가지 색[色]과 행(行)에 항상 묶인 것이며,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속에 육도(六道)가 허망하게 나타난 것들을 관찰함이니
대혜여, 이를 보살 마하살이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잘 아는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을 모든 보살 마하살이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멀리 떠난
다고 하느냐.
말하자면 모든 법이 눈홀림 같고 꿈 같은 것이며, 모든 법의 자타(自他) 두가지가 없는 것이
며,
그 생기지 아니하건만 제 마음에서 나타나는 지견(知見)을 따르는 것이며, 바깥 법이 없는
것이며,
여러 알음알이가 일어나지 않고 모든 인연의 모임이 없는 것으로 관찰하는 것이며
三계가 인연으로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며, 안과 바깥의 모든 법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음
은
실체가 없기 때문인 것이며, 모든 법이 있다고 하는 바르지 못한 견해를 멀리 떠난 것이며,
모든 법이 환(幻)의 모양과 같은 데에 들어가는 것이니,
보살이 그 때엔 초지(初地)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것이라
심(心)과 의(意)와 식(識)과 다섯법의 체상을 멀리 떠나며, 두 무아[二無我]와 뜻과 같은 몸
을 얻고,
그리고는 내지 제八 부동지(不動地)의 뜻과 같은 몸을 얻나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뜻과 같은 몸이라 하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뜻을 따라 빨리 갈 수 있고 생각하는 대로 곧 이르되 걸리는 것이 없으므로
뜻과 같은 몸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뜻과 같다고 말한 것은 석벽(石壁)과 산이 막히기를
한량없는 백천만억 유순(由旬)이어도 본래 보았던 바 경계를 생각만 한다면
자기 마음속엔 장애물이 구애될 것 없이 자유로이 가게 되느니라.
대혜여, 뜻과 같은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여환(如幻) 삼매의 자재한 신력을 얻어
그 몸을 장엄하고 모든 거룩한 지혜의 종류에 나아가는 몸이기에 걸림 없이 뜻을 따라 가
되,
본원력(本願力)의 경계를 생각하므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교화하나니,
대혜여, 이를 보살 마하살이 생각이 발생하며 유지하고 없어지는 것을 떠난 것이라 하느니
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바깥 법의 있고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냐.
말하자면 보살은 모든 법이 아지랑이 같고 꿈 같고 털바퀴 같으며,
끝없이 오면서 가지가지 희론 분별과 망상 훈습에 집착된 것이며,
일체 법이 체상(體相)없는 것임을 보고서 거룩한 지혜의 경계를 체득하려고 수행하나니라.
대혜여, 이를 보살의 바깥 법의 있고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라 한다.
이가 곧 큰 여실수행(如實修行)을 성취한 자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이와 같이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여쭈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일체 법 인의 모양을 말씀하옵소서.
저희와 여러 보살들이 모든 법인연의 모양을 잘 아오면, 있다 없다 하는 바르지 못한 견해
와
망상으로 모든 법을 분별하여 차례로 생긴 허물과 일시로 생긴 허물을 여의게 되리라 하옵
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이 두가지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 있나니,
이른바 안[內]과 바깥 법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은 이른바 진흙덩이와 나무 기둥과
바퀴와 줄과 사람의 공력과 방편의 인연으로 병(甁)이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진흙덩이 등의 인연으로서 병이 생기는 것과 같아서 실[絲]로 짠 것과 초석(草席)과
짜는 틀을 끼움과 젖의 즙과 인공(人功)으로 타락[酪]이 생기고, 타락이 생기고는 수가 생기
고,
수가 생기고는 제호를 얻나니라.
대혜여, 이를 바깥 법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함이니 밑[下]에서 부터 위에 이르러[上上]
도
그러함인 것을 응당 알 것이니라.
대혜여, 무엇이 안의 법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냐. 대혜여, 이른바 무명(無明)과 업(業)과 사
랑인
이러한 법들을 안의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하나니
대혜여, 무명등과 음(陰), 계(界), 입(入)등으로 인한 것임을 인연으로 모인 모양이라 이름함
이니,
여러 범부들은 그를 허망스리 분별하여 각가지 다른 모양으로 보나니라.
대혜여, 인연이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이 되느냐. 첫째는 당인(當因 = 자체인 원
인을 말함)이요,
둘째는 상속인(相續因)이요, 세째는 상인(相因 = 자체에서 움직이는 모양인 원인)이요,
네째는 작인(作因)이요, 다섯째는 요인(了因)이요, 여섯째는 상대인(相對因)이니라.
대혜여, 당인이란 것은 인연을 지으면 능히 안과 바깥법을 내는 것이니라.
대혜여, 상속인은 안과 바깥의 법과 음(陰)의 종자 등을 능히 반연하는 것이니라.
대혜여, 상인은 능히 상속(相續)을 내고 차례로 일을 지으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니라.
대혜여, 작인은 능히 증상(增上)하는 인(因)을 짓는 것이 전륜왕(轉輪王)과 같은 것이니라.
대혜여, 요인은 일이 생기는 것을 허망스리 생각하고서
능히 나타나게 보이는 것이 등불이 색상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대혜여, 상대인은 그 없어질 때엔 허망하게 생긴 법이 보이지 않고 상속(相續)하는 일이 끊
어지는 것이니라.
대혜여, 이러한 모든 법은 범부들이 자심(自心)에서 허망하게 분별함이니라.
대혜여, 이의 모든 법은 차례로 생긴 것이 아니요, 일시(一時)에 생긴 것도 아니니 무슨 까
닭이냐.
대혜여, 만약 일체 법이 일시에 생긴 것이라면 원인과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니,
인과의 제 모양을 볼 수 없을 것이요, 만일 차례로 생긴 것이라면
제 모양을 얻을 수 없음에 차례로 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마치 아들이 있지 않음에 아버지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자기 마음에서 차제(次第)와 상속(相續)이 서로 합하지 않는 것을
관찰하므로
이러한 말을 하되, ‘인연(因緣)과 차체연(次第緣)과 소연연(所緣緣)과 증상연(增上緣)들이
능히 모든 법을 낸다’고 하나니
대혜여, 이러한 차제(次第)로서는 모든 법이 생기지 않나니라.
대혜여, 이는 허망한 분별로서 법체상(法體相)을 취한 것이니, 일시와 차례로도 모두 생겨진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이는 자심중(自心中)에서 몸과 살림살이가 나타나 보인 까닭이니라.
대혜여, 제 모양과 같은 모양과 바깥 법은 원래 없는 법이니, 그러므로 차례로 일시에 생겨
진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그는 다만 허망한 알음알이가 자심의 견해를 낸 것이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인연으로 생겨진 일들이 차제로 일시에 생긴 법이라고 하여
올바르지 못하게 보는 것을 떠나야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인연법도 없어 생하지 않나니
생하지 않으므로 멸하지 않고
생멸(生滅)과 인연이 모두 허망하여
생도 아니며 멸도 아니라네.
이러한 인연 모두 아니라 함은
어리석은 이 허망하게 집착하기 때문이며
있고 없는 연기법 생함 아니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생김 아니니라.
그는 삼계에서 훈습한
미혹의 마음 때문이니
인연이란 본래 없으며
생도 멸도 아니었네.
세상의 온갖 유위법(有爲法)을
돌 계집과 허공 꽃으로
관찰하여 능, 소취(能所取) 떠나면
허망한 소견 나지 않으리라.
현재 나타나 있는 것 본래부터
모두 생(生)함이 아니며,
인연인 연기법(緣起法)도
본래부터 있는 것 아니니,
이러한 모든 법들은
자체가 전혀 공한 것이며
또한 머무를 곳도 없건만
세속을 따라 있다고 말함이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언어상(言語相)을 분별함이라.
말하는 심법문(心法門)을 말씀하옵소서.
저희와 여러 보살들이 언어상을 분별함이라 말하는 심법문을 얻어 잘 알게 되오면
곧잘 말과 뜻의 두가지 법을 통달하여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오며,
보리를 얻고는 말과 뜻으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한 알음을 얻게 하겠나이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가지 허망한 모양인 언어가 있나니라. 무엇이 네가지가 되느냐.
첫째는 상언설(相言設)이요, 둘째는 몽언설(夢言設)이요, 세째는 망집언설(妄執言設)이요,
네째는 무시언설(無始言設)이니라.
대혜여, 상언설이란 것은 이른바 색(色) 등의 모든 모양에 집착하므로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몽언설이란 것은 본시 수용하던 허망한 경계를 생각하되 경계의 꿈에 의하여 깨닫
고는
허망한 경계, 진실치 아니한 것에 의지하여 생긴 것임을 아는 것이니라.
대혜여, 집착언설이란 것은 본시 듣는 바와 짓는 바 업을 생각하여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무시언설이란 것은 끝없이 오면서부터 희론번뇌와 종자훈습에 집착하여 생긴 것이
니라.
대혜여, 내가 말하던 네가지 말인 허망한 집착을 내 이미 말했노라.”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 다시 이의 뜻으로써 부처님께 청하여 여쭈려고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저희를 위하여 네가지 허망하게 언어(言語)의 상(相)에
집착한 것을 거듭 말씀하옵소서.
중생의 언어는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이오며, 어떻게 출현하오며, 무슨 원인으로 나게 되나이
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그 머리와 가슴과 목구멍과 코와 입술과 혀와 어금니와 이로부터 굴르므로,
화합하여 소리가 나는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입속의 언어가 허망한 법상(法相)과 다른 것이옵니까. 다르지 아니한 것이옵
니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언어는 허망한 법상과 다른 것도 아니며, 다르지 아니한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
이냐.
저 허망한 법상으로 인하여 언어가 나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만일 언어가 그와 다르다면 응당 원인이 없이 생겨졌어야 하리라.
대혜여, 만일 그와 다르지 않다면 언어는 능히 현진의 경계를 말로 표현함을 알리지 못하여
야 하리라.
대혜여, 그러나 저 언어는 현전의 경계를 능히 알리고도 남음이 있나니,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며,
다르지 아니한 것도 아니니라.”
대혜 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언어가 바로 제일의(第一義)가 되옵니까, 언어로서 설명할 바가 제일의가 되
옵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언어가 바로 제일의가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제일의로 하여금 언어를 수순하여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가게 함이니, 그러므로 언어로서 제일의를 설명함이 있을 뿐이요,
언어가 바로 제일의(第一義)는 아니니라.
대혜여, 제일의는 거룩한 지혜로 깊이 증득할 바요, 언어의 법은 아닌 것이다. 이는 지혜의
경계니,
언어로서는 그 경계를 알릴 뿐이니라.
대혜여, 제일의를 설명하는 언어도 이 생멸(生滅)의 법이니,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않고 인연으로 화합하여 언어가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인연으로 화합한 그것은 능히 제일의를 나타내지 못하리니 무슨 까닭이냐.
제모양[自相]과 다른 모양[他相]이 없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언어로는 능히 제일의를 나타내지 못하니라.
대혜여, 자심에서 바깥의 있고 없는 법들을 보고서 분별함을 따르기에 제일의를 능히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가지가지 언어로 허망스리 분별하는 상을 떠날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허망하여
진실한 자체가 없나니,
그러므로 여러가지 말로서
있다 없다 하지 못하리라.
공함과 또한 공함 아님을
범부는 잘 알지 못하나니
모든 법은 자체상이 없으며
중생이라 말함도 또한 그러하네.
있다 없다 분별하는 법은
마치 꿈과 환(幻)같나니,
일체 법을 관찰하여 열반에도
세간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리.
왕과 부자 어른들이
여러 아들을 기쁘게 하려고
진흙으로 만든 새짐승을 먼저 주고
진실한 물건은 다음에 주듯이
나도 여러 불자를 기쁘게 하려고
가지가지 법과 자체 법이며
거울 모양과 같은 것들을 말하고서
최후에야 실상법을 말하노라.
그때에 거룩한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여러 보살과 및 저희를 위하여 있는 것과 없는 것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俱]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없는 것을 떠난 것이어서 모든 외도는 행하지 못할 바며,
거룩한 지혜로서 스스로 증득한 깨달음으로만이 행할 수 있는 법을 말씀하옵소서.
그는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을 떠난 것이오며, 제일의의 참다운 법성(法性)에 드는 것이오며,
모든 지위의 차례와 최상으로 청정한 것이오며, 여래의 땅에 들어 가는 것이오며,
본원력에 의지하여 여의주(如意珠)와 같이 한량없는 경계와 수행하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
이오며,
일체 법에서 자심으로 차별상을 나투어 보이는 것이오니, 저희와 일체 보살들은
이와같이 망상으로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고, 일체 중생에게 편안함과 좋은 것들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만족하게 할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대혜여, 그대는 모든 천인(天人)을 불쌍히 여겨,
그들로 안락과 이익이 많게 하려고 능히 나에게 이러한 뜻으로 묻는구려.
착하고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내 마땅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
하겠노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범부는 오직 이 마음으로 보여진 것을 능히 깨닫지 못하고
밖으로의 가지 가지 법상(法相)에 집착하여 참으로 있는 것으로 여기나니,
그러므로 허망스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게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
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분별하나니, 그는 자심의 훈습으로 인한 것이며,
허망스리 분별하는 마음을 의지함인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뭇 짐승들이 목마름에 시달려 아지랑이를 보고 마음이 착란하여 그를 물
이라 생각하고
동서로 헤매면서 물이 아님을 알지 못함과 같나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범부들의 어리석은 마음으로 생(生), 주(住), 멸(滅)의 법을 보고
잘 분별하지 못한 것은 끝없이 오면서 허망하게 희론 훈습과,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에 집착하여 미혹한 마음으로 시달려서
가지 가지 모든 색경계(色境界)를 좋아하여 구함이니,
그러므로 범부들이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
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에 떨어지느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범부가 건달바(乾達婆)의 성(城)을 보고 참 성이라고 생각을 내는 것은
끝없이 오면서 허망하게 성이라고 분별하는 생각의 종자와 훈습으로 인하여 보는 것과 같나
니
대혜여, 저 성은 성이 아니며, 성 아닌 것도 아니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도 또한 그와 같아서 끝없이 오면서의 희론과 훈습에 인하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법들에 집착하나니
대혜여, 그는 오직 마음에서 허망스리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어떠한 사람이 꿈속에서 여러 남자와 여인과 코끼리와 말과
수레와 도보(步)와 성읍(城邑)과 취락(聚落)과 소와 물소와 동산 숲과 나무와 각가지 산과
하수(河)와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과, 궁전과 누각과 가지 가지로 장엄한 것이 광대하고 화려한 것을
보기도 하며,
자기 몸이 그 속에서 있는 것도 보다가 문득 꿈이 깨어 깨닫고서는 그 광대한 성읍들을 생
각한다면
대혜여, 그대 뜻에는 어떻다고 할까. 그 사람을 성자(聖者)라고 할수 있느냐.”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의 사뙨 소견으로 본 여러 가지도 또한 그와 같나니,
그는 모든 법을 꿈속에 있는 마음에서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같은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의 견해에 집착한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그림속의 모양은 높지도 않으며, 낮지도 않는 것과 같건만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괜히 모든 법이 높고 낮음이 있는 것으로 보나리라.
대혜여, 닥아오는 세상에서 외도의 사뙨 소견에 의하여 마음에 훈습함이 더욱 더하여 허망
스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분별하리니, 대혜여, 저 외도는 자신도 버리고 남도 버리면서
이러한 말을 하되, ‘모든 법은 생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아니하여 있고 없는 것이 모두
고요하다’하나니,
그 사람을 이름하여 올바르지 못한 견해라 하느니라.
대혜여 저 외도는 인과법(因果法)도 비방하나니, 사뙨 소견에 빠진 까닭이라,
일체 착한 뿌리와 깨끗한 법[白法]과 청정한 종자를 뽑아 버리나니라.
대혜여, 수승한 법을 구하려면 마땅히 그와 같은 법을 말하는 사람을 멀리 할 것이니,
그 사람은 마음이 자타(自他)의 두 소견에 집착하였으며, 허망한 법에도 집착하였으므로
법을 비방하는데 떨어질 것이며, 사뙨 마음을 가졌기에 악도(惡道)에 들어가리라.
대혜여, 비유컨대 눈병으로서 허공중에 털바퀴[毛輪]가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하되,
‘이와 같이 푸르고 누르며, 붉고 흰 것을 보지 못하느냐’고 함과 같나니라.
대혜여, 그러나 저 털바퀴(毛輪)는 본시 자체가 없나니 무슨 까닭이냐.
보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외도들이 사뙨 소견에 의지하여 허망스리 분별함도 또한 그와 같나니라.
허망스리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이 모든 법을 내었다고 집착하느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하늘의 비가 물거품을 내어 수정 구슬 같거든 어리석은 범부는
허망한 소견으로 집착하여 구슬이라는 생각을 내어 동서(東西)로 헤매는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그러나 저 물거품은 보배 구슬이 아니며 보배 구슬 아닌 것도 아닌 무슨 까닭이냐.
구슬이라고 취하여 취(取)하지 못할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저 외도의 허망한 마음으로 인하여 분별하며 훈습함도 또한 그와 같다.
그가 있지 않는 법을 말하여 ‘인연에 의지하여 생겼다’고 하며,
또한 ‘실로 법이 없어지는 것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대혜여, 저 외도가 삼종량(三種量)과 오분론(五分論)을 세워서 이러한 말을 하되,
‘실로 성자(聖者)의 안으로 증득하는 법이 있는데,
두 자체[二自體]를 떠난 것이라’하여 허망하게 분별하느니라.
대혜여, 심(心), 의(意), 식(識)을 떠나면 이 몸을 변해서 문득 성인(聖人) 종류의 몸을 얻으
리니,
여러 가지 행을 수행하되 그러한 마음이 없이 자심의 소견과 허망한 경계를 취하는 것을 떠
날 것이며,
여래의 지위에 들어가서 자신이 정진(精進)하여 거룩한 지혜를 증득할 것이니
여실히 수행하는 자는 있다 없다는 마음을 내지 않나니라.
대혜여, 여실히 수행하면 반드시 이와같은 경계를 얻을 것이니라.
대혜여, 만일 유무법(有無法)을 취함이 있다면 곧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되리라.
대혜여, 유무법(有無法)과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말함은 이는 응화불(應化佛)의 말이요,
법불(法佛)의 말이 아니니라.
대혜여, 응화 여래가 이와 같은 법을 말함은 어리석은 범부의 보는 마음을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수행하게 함이요, 참다운 수행을 건립하여 자신(自身)의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와 삼매락행(三昧樂行)을 보여줌은 아니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사람이 물 속의 나무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저것은 그림자가 아니며, 그림자 아닌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나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나무가 없으면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저 외도가 사뙨 소견의 마음에 의하여 망상으로 훈습함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는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을 분별하나니, 이는 망상으로 분별함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그는 오직 마음에서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인연을 따라 모든 색상을 비추어 나타내되
분별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나니 대혜여, 저(거울에 비추어 나타난 것)은 색상도 아니며
색상 아닌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인연이 있으면 나타나 보이고 인연이 없으면 나타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자심의 분별로 색상이 있고 없는 것을 본 것이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들이 자심의 망상으로 거울의 색상을 분별함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들을 본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여러 음향이 사람과 산과 강물과 허공과 집으로 어울려서 들리는 것과 같
나니,
저 들리는 바 음향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소리로 인하여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는 자심의 허망과 분별 훈습으로서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
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보나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큰 땅이 풀과 나무와 동산숲이 없는 곳에 햇빛과 먼지와 흙이 어울림으로
인하여
물결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나니라. 그러나 저 물결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닌 것과 같나니 무슨 까닭이냐.
중생으로 하여금 그들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와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그와 같아서 끝없이 오면서 번뇌의 마음과
희론으로 훈습함을 인하여 생(生)과 주(住)와 멸(滅)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
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분별하나니,
이는 성인이 몸소 깊이 증득하는 지혜의 문에서 아지랑이를 목이 타게 좋아하는 일들을 보
여준 것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주술(呪術)의 힘에 의하여 죽은 사람과
기관목인(機關木人 = 움직이도록 만든 나무 사람)을 이르키기도 하며,
중생의 산 몸이 없는데도 피사카(전광귀癲狂鬼)의 힘과 공교한 환사(幻師)의 힘에 의하여
가고 오게 하는 일들을 하거든, 어리석은 범부는 그에 집착하여 실로 있는 것으로 여기나니,
그 오고 가고 하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들이 사견(邪見)의 마음에 떨어진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허망한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에 집착하나니,
그러므로 범부와 외도는 허망하게 이와 같은 법을 내세우나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생(生), 주(住), 멸(滅)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과 있고 없는 것과 있고 없는 것 아닌 것과,
떳떳함과 떳떳함 아닌 것들을 떠날 것이니,
이것이 몸소 깊이 거룩한 지혜로 분별함을 증득함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五음과 알음알이는
물 속의 나무 그림자 같고,
꿈과 환으로 보는 것 같나니,
의식에 의해 취하지 말지어다.
모든 법은 털바퀴 같으며
아지랑이를 물로 여기는 것 같나니,
삼계의 모든 것을
환과 꿈으로 관찰하리.
만약 이와 같이 관찰하여
수행하면 해탈을 얻으리라
여름날에 물을 찾는 짐승이
아지랑이에 착각 일으킴 같느니
그곳에 물이 없건마는
허망한 생각이 물로 보듯이
알음알이의 종자로서
경계에 통한 소견 같느니라.
어리석어서 진실인양 취(取)하나
저 법 생김이란 헛보임 같은데
끝없는 세월의 어리석음으로
물질을 취함이 품에 안음 같느니라.
쐐기로서 쐐기 나오게 함 같아서
범부를 속여 들어가게 하는 법이며
환술로 시체를 일으키는 기관이라
꿈, 번개, 구름이듯 항상 그러하네.
세간을 이와 같은 것으로 관찰하면
유(有)를 끊고 해탈을 얻으리.
아지랑이는 허공중에
모든 알음 있지 않나니
모든 법을 이와 같음으로 관찰하여
일체 법에 집착하지 말라
여러 알음알이는 이름뿐이니
모든 상이 공했기 때문이니라.
五음을 보는 것 헛 보이는 털바퀴거니,
어느 법엔들 분별하랴
그 그림과 헛 보인 털바퀴며
환이요, 꿈이요 건달바니라.
불바퀴와 새가 물로 여긴 아지랑이는
실로 없건만 있다고 보나니
떳떳함과 무상함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이며,
그는 끝없이 오면서
속박 되었는
범부의 미혹한 마음에
의지하여 된 것일세.
밝은 거울 보배 마니(摩尼)와
맑은 물 깨끗한 눈(眼)에서
가지 가지 색상이 나타나거든
허망스리 가지 가지 빛깔을 보느니라.
일체 법은 진실함 없는 것이
꿈과 돌 계집 같으며
짐승이 허공에 아지랑이를
물로 알고 좋아함과 같느니라.
대혜여, 부처님 여래의 설법은 네가지 견해를 떠났나니 말하자면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을 여읜 것이다. 있다 없다 내세우는 것을 멀리 떠난 것이니라.
대혜여, 일체 부처님 여래의 설법은 실제(實際)와 인연과 적멸(寂滅)과 해탈에 의지하느니
라.
대혜여, 일체 부처님 여래의 설법은 구경(究竟) 경계에 의지한 것이며 자성(自性)을 인한 것
이 아니고
자재천(自在天)이라 하며, 인(因)이 없고
미진(微塵)과 시간이라고 하는 이러한 설법을 따르지 아니하노라.
대혜여, 부처님의 설법은 두가지 장애[障]인 번뇌장(煩惱障)과 지장(智障)을 떠났느니라.
큰 장사주(大商主)가 여러 사람들을 거느리고 차례로 처음 보는 아주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 이르러 두듯이, 여래로 사람들을 차례로 안치하여 그들로 하여금
법과 지위의 차별상(差別相)을 잘 알게 하느니라.
대혜여, 네 가지 선(禪)이 있나니, 무엇이 네 가지가 되느냐,
첫째는 어리석은 범부의 행하는 선(禪)이요, 둘째는 뜻[義]을 관찰하는 선이요,
세째는 진여(眞如)를 생각하는 선이요, 네째는 부처님 여래의 선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어리석은 범부의 행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성문과 연각과
외도인 수행자가 인무아(人無我)와 자기의 몸, 다른 이의 몸을
골쇄(사람의 몸이 백골로 되었다고 관하는 백골관(白骨觀)임)로 관하므로 무상(無常)함이며,
괴로움[苦]이며 <나> 없으며[無我], 깨끗지 못한 것[不淨]이라 하고 모든 상에 집착함도 이
와 같고
이와 같아서 결정코 필경에는 다르지 않다 하여 이와 같이 차례로 앞에서 관한[前觀] 것으
로 인하여
차례로 올라가서 내지 비상(非想)과 멸진정(滅盡定)의 해탈에 이르나니,
이를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와 성문들의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뜻을 관찰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인무아와 자기의 몸 다른 이의 몸을 관
하였음으로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와 자기 몸과 다른 이의 몸인 자타(自他)의 모양이 진실함이 없는 것
을 보고,
법무아(法無我)와 모든 지위의 행상(行相)과 뜻과 차제(次第)를 관찰함이니
대혜여, 이를 뜻을 관찰하는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진여를 관찰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허망한 분별의 인연을 관찰하여
두가지 무아(無我)를 참다이 알고 일체 모든 법이 진실한 체상이 없는 것을 참다이 분별하
여
그 때로서 분별함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에 고요한 경계를 얻음이니
대혜여, 이를 진여를 관찰하는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여래를 관찰하는 선이냐. 말하자면 참다이 여래의 땅에 들어가며,
안의 몸[內身] 거룩한 지혜의 모양과 삼공(三空)과 삼종락(三種樂)의 행에 들어 갔으므로
능히 중생에게 베풀 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을 이룬 것이니
대혜여, 이를 여래를 관찰하는 선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범부들의 행하는 선과
뜻을 관찰하는 선과
진여를 관하여 생각하는 선과
구경인 여래 청정선이여
마치 해와 달의 모양과
파드마[鉢頭摩]와 바다 모양과
허공과 불이 다한 모양인양
수행자가 이렇게 관한다면,
이와 같은 갖가지 모양은
외도에 떨어지는 법이며,
또한 성문과 벽지불들의
수행함에 떨어진 것이다.
일체 것을 버리고 떠나면
이는 곧 있는 바[所有] 없음이니,
이 곧 여여한 진실상에
수순하여 들어 간 것이라.
그때엔 시방 세계에서
여러 부처님이 진여의 손으로
그 수행자의 이마를 만져 주시며
진여의 모양이 없는 데에 들게 하리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께서 열반을 말씀하시니, 열반이란 것은 어떤 법을 말하여 열반이라 하나이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열반이란 것은 모든 알음알이의 법체상을 굴려서 소멸한 것이며
모든 소견으로 훈습함을 돌이켰으며 심(心)과 의(意)와
아라야식의 법상 훈습을 돌이켰음으로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나와 및 여러 부처님이 이와 같은 열반을 말함은 이 법체와 경계가 공한 것이니라.
대혜여, 열반이란 것은 말하자면 안의 몸 거룩한 지혜로 수행할 경계인 것이며,
유무법(有無法)을 허망하게 분별함을 떠난 것이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떳떳함이 아니라 하느냐.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인 분별법을 떠난 것을 말함
이니
이러므로 떳떳함이 아니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단멸이 아니라 하느냐.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일체 성인이 안의 몸으로 증득함을 말함이니 이러므로 단멸이 아니니
라.
대혜여, 반열반이란 것은 죽음도 아니요, 멸함도 아니니라.
대혜여, 만약 반열반이 죽음의 법이라면 응당 삶의 속박이 있을 것이니라.
대혜여, 만약 반열반이 멸하는 법이라면 응당 유위법(有爲法)에 떨어질 것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반열반이란 것은 죽음도 아니며, 멸함도 아니요, 여실(如實) 수행자의 귀의
할 바니라.
대혜여, 열반이라 말함은 가히 취할 바도 아니며 가히 버릴 바도 아니요 단멸도 아니며
떳떳함도 아니요 하나 뜻도 아니며 가지가지 뜻도 아니니 그러므로 열반이라 이름함이니라.
대혜여, 성문의 열반이란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하여 모든 법을 깨닫나니,
그러므로 성문의 열반이라 이름하니라.
대혜여, 벽지불의 열반이란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모든 경계를 보리니,
떳떳함이 없으며[無常] 낙이 없으며[無樂] <나>가 없으며[無我] 깨끗함이 없다[無淨]하여
전도(顚倒)한 상을 내지 않나니라.
그리하여 성문과 벽지불은 구경 아닌 곳에서 열반이란 생각을 내나니라.
대혜여, 나는 그대를 위하여 두 법체상(體相)을 말하리니, 무엇이 둘이 되느냐.
첫째는 언설에 집착하는 체상이요, 둘째는 세상일에 집착하는 체상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언설(言設)에 집착하는 체상이냐. 말하자면
끝없이 오면서 언설(言設)에 집착하고 희론 훈습으로서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세상일에 집착하는 체상이냐. 말하자면,
오직 이 자심(自心)임을 여실히 알지 못하고 바깥 경계를 본 것이니라.
대혜여, 여러 보살 마하살이 두가지 원력(願力 = 부처님의 원력)으로 주지(住持)함에 의하여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 정례(頂禮)하고서 의심된 일을 묻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두가지 원력으로 주지(住持)함이냐. 첫째는 사마, 삼매파티에 의지하여 주
지함이요,
둘째는 온 몸이 낙(樂)을 얻음이니,
부처님, 여래의 손으로 그의 이마를 만져 주심을 받아 주지하는 힘인 것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초지(初地) 가운데 머물러 부처님의 주지하는 힘을 받으므로
이 보살의 대승 광명 삼매에 들어갔다고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대승 광명 삼매에 들고나면 그때엔 시방 세계의 여러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 보살에게 주지하는 힘을 주시므로 몸과 입과 뜻을 나타내어 보이시
나니라.
대혜여, 금강장(金剛藏) 보살 마하살과 및
그 밖에 성취 여시공덕상(成就如是功德相) 보살 마하살 같은 이들이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보살 마하살은 초지 가운데에 머물러서 삼매, 사마파티의 힘으로
주지(住持)함과 백천만억 겁(劫)에 닦아 모은 선근(善根)의 힘으로써 차례로 참다히 알아
모든 지위에서 대치(對治)하는 법상(法相)을 성취하나니,
그 보살 마하살이 법운지(法雲地)에 이르러서는
큰 보배 연꽃 궁전의 사자(師子) 자리 위에 앉아 있을 것이며,
동류인 보살 마하살의 권속들도 둘러 모시는데 보배 관[寶冠]과 영락(瓔珞)으로
그의 몸을 장엄한 것이 잠부나다 염부단금(閻浮檀金)와 참파카[葡瞻]와 해와 달의 광명과 같
고,
연꽃의 빛보다 수승하리라. 그 때엔 시방 세계의 여러 부처님께서 각기 그의 손으로
멀리 연꽃 자리 위에 있는 보살 마하살의 이마를 만져 주시리니,
이는 자재왕(自在王)과 제석왕과 전륜왕(轉輪王)이 그 태자의 정수리에 물 부어
왕위를 전수함을 얻은 것과 같은 것이니라.
대혜여, 저 지위를 받은 보살과 그 권속인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의 손으로
그 이마를 만져 주심으로 온 몸의 낙(樂)을 얻나니,
그러므로 보살의 이마를 만져서 주지하는 힘이라 말함이니라.
대혜여, 이를 이름하여 보살 마하살의 두 가지 주지하는 힘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이 두 가지 주지하는 힘을 의지하므로 능히 일체 여래의 몸을 관찰
하나니라.
대혜여, 만일 이 두 가지 주지하는 힘이 없다면, 부처님, 여래를 얻어 보지 못하리라.
대혜여, 만일 보살 마하살이 이 두가지 주지하는 힘을 떠나서 능히 설법한다면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응당 설법하리니 무슨 까닭이냐
이른바 부처님의 주지하는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여래의 주지(住持)하는 힘에 의지하므로 산하(山河)와 석벽과 풀과 나무와 동산 숲
과
또한 가지가지 종류와 성읍과 취락과 궁전과 집들이 모두 능히 설법하는 소리를 낼 것이며,
저절로 풍류 소리가 날것이어든, 대혜여, 어찌 하물며 유심자(有心者)인 귀먹은 이와 눈먼
이와
벙어리와 한량없는 중생들이 모든 고뇌(苦惱)를 떠난 것이랴. (이것은 말 아니 하여도 알수
있는 것임)
대혜여, 부처님 여래의 주지하시는 힘으로 한량없이 중생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느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보살 마하살이 삼매, 사마파티에 들적 과 및
여러 지위에 들어갈 때엔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 주지하는 힘을 주시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마업(摩業)과 번뇌와 산란심(散亂心)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성문의 선정(禪定)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며 안의 몸으로 여래의 지위를 증득하기
위한 것이며,
안의 몸으로 법을 증득하는 것을 증장(增長)하기 위함이니라.
대혜여, 그러므로 여러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 보살들을 위하여 주지하는 힘을 지어
주시나니라.
대혜여, 만일 여래가 보살을 위하여 주지하는 힘을 지어 주지 않는다면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과 마사(魔事)에 떨어질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는 큰 자비로 여러 보살을 거두어 주시나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은 자신의
본원력이 청정함에 의하여
삼매에 들고 지위를 받는데
초지에서 十지에 이르는 동안
인중존(人中尊)이신 부처님의 신력으로
주지함을 지어 주시나니라.
三, 집일체불법품(集一切佛法品) (3-1)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十二인연이 인(因)으로부터 과(果)가 생한다’ 말씀하시고,
‘자심의 망상분별인 소견의 힘으로 생긴다’고 말씀하지 않으시니,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 할지라도, 외도도 또한 ‘인으로부터 과가 생긴다’고 말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가 또한 말하기를 ‘자성(自性)과 자재천(自在天)과 시간과
작은 티끌들의 인으로부터 일체법이 생한다’고 하나이다.
부처님도 또한 ‘인연에 의하여 모든 법이 생한다’ 말씀하시고,
‘스스로 건립한 법은 있지 않다’ 말씀하지 아니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는 또한 유(有)와 무(無)로부터 ‘모든 법이 생겼다’ 하오며,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은 본래 없는데,
인연에 의지하여 생기고 생겼다가는 도로 없어진다’ 하시오며,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무명(無名)으로부터 행(行)을 반연하며,
내지 안식(眼識)등에 의지함이 있으므로 일체 법이 생긴다’고 하시니,
세존의 말씀과 같을진대 또한 모든 법이 인이 없어도 생기는 있으오리니
무슨 까닭이냐 하오면 인(因)으로부터 생함이 아니기에 일시(一時)인 것이요
전후(前後)로 생함이 아니니, 이 법으로 인하여 이 법이 생긴 까닭이옵니다.
세존께서 스스로 말씀하시되, ‘허망한 인법(因法)으로 인하여 이 법이 생겼다’하시니,
차례로 생긴 것이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러할진대 외도의 설법이 수승하고,
여래는 그와 같지 못하오리니 무슨 까닭이냐 하오면, 세존이시여,
외도는 말하기를 ‘인(因)이 인연 없이도 능히 과(果)를 낸다’하고
여래의 설법하심은 ‘인도 또한 과에 의지하고 괴도 또한 인에 의지한다’하시니,
만일 그렇다면, 인연은 인도 과도 없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러할진대 저[彼]와 이[比]의 인과(因果)가 전전(展轉)히 무궁(無窮)하겠나
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이 법으로부터 저 법이 생한다’하시니,
만일 그렇다면 인이 없이 법이 생긴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지금 마땅히 말하겠노라.
내가 말한 ‘이 법으로 인하여 저 법이 생긴다’는 것은 외도가 세운바 ‘인과는 인이 없
다’는 법과,
또한 ‘인으로 부터 생겼다’는 것과는 같지 않나니, 나는 그와 같이 아니하노라.
내가 말한 ‘모든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은 인연이 없다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잡란(雜亂)함도 아니며 또한 전전히 무궁한 허물도 없으리니,
무슨 까닭이냐, 능히 취하며 [能取] 가히 취할[可取]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외도는 자심에서 나타나 보인 것임을 알지 못하므로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법에 집착하고,
오직 자심에서 안과 바깥 법을 본 것임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한 것이니라.
대혜여, 저 외도는 자심 안의 경계를 알지 못하므로, 있고 없는 물질을 보나니,
그러므로 외도는 이와 같은 허물이 있는 것이요 나의 허물은 아니니라.
나는 항상 ‘인연이 화합하여 모든 법이 생하고, 인이 없이 생(生)함은 아니라’ 말하노
라.”
대혜 보살은 또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말함이 있으므로 응당 모든 법이 있는가 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이 없다면 응당 말하지 않으리니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언설(言設)에 의하여 응당 모든 법이 있는가 하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법이 없고도 말은 또한 있나니, 말하자면 토기뿔과 거북털과 돌계집등은 세상에서
말이 있나니,
대혜여, 그대가 말한 ‘말이 있으므로 응당 모든 법이 있다’고 한 이 뜻은 벌써 깨졌느니
라.
대혜여, 일체 국토마다 언어(言語)로 설법함은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언어는 오직 사람의 마음에서 분별하여 말함인 것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똑바로 보기만 하고 깜짝이지 않고, 말이 없어도 설
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바로 모양만 보여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다만 눈썹만 움직여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오직 눈모양만 움직여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웃기만 하여서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하품하고 입을 벌려서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기침하여서도 설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생각만 하여서도 설
법함이며,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몸짓하여서도 설법함이니라.
대혜여, 저 무슨(無瞬) 세계와, 또한 중향(衆香) 세계와, 보현(普賢) 여래, 응공,
정변지의 세계에서는 그의 보살 마하살이 여래의 눈이 잠깐도 깜작이지 않으심을 관찰하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며, 또한 한량없는 수승한 삼매법을 얻나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는 ‘말이 있으므로 응당 모든 법이 있다’고 말하지 말 것이니라.
대혜여, 여래는 또한 여러 세계 가운데에 일체 작은 벌레와 모기와 등애와 파리들인 중생의
종류들이
말하지 않고도 한가지로 자기네의 일을 지어 이루는 것을 보았노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저 허공과 토끼의 뿔과
또한 돌 계집은
없는 것이나, 말은 있나니
이와 같이 공연히 분별함이니라.
인연으로 화합한 법이거늘
어리석어서 분별 내나니
진실한 법을 알지 못했기에
삼유(三有) 가운데서 윤회하느니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또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말씀하신 떳떳하다 말씀하신 법은 어떤 법에 의하여 이러한 말씀을
하셨나이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미혹법(迷惑法)에 의하여 내가 떳떳하다 말함이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성인도 또한 세간의 미혹법을 보나, 전도(顚倒)한 마음은 아니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아지랑이와 불바퀴와 털바퀴와 간달바성과 눈홀림과 꿈과 물 속의 달과
거울속의 얼굴을 세상에서 지혜 없는 자는 여러 색상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나니,
그는 전도(顚倒)한 견(見)인 것이다. 지혜 있는 자는 분별은 내지 아니하나,
저 미혹의 일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저 가지가지 미혹의 일을 보나, ‘진실이다’고 하는 마음은 내지 않나니,
무슨 까닭이냐. 유무법을 떠났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대혜여, 어찌하여 미혹 법이 유(有)와 무(無)를 떠난 것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어리석은 범부는 가지가지 경계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귀(餓鬼)가 큰 바다와 강가[恒阿]의 물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과 같나니라.
대혜여, 이 미혹법은 있다 말할 수도 없고, 없다 말하지도 못할 것이니,
대혜여, 딴 중생은 저 물인 것을 보기 때문에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대혜여, 미혹의 일도 또한 그와 같나니, 성인은 전도한 견(見)을 떠났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미혹법이 떳떳하다 말한 것은 생각이 차별하기 때문인 것이니라.
대혜여, 미혹법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모양을 보나, 미혹법은 다르다, 차별이다, 분별하지 않
나니,
그러므로 대혜여, 미혹법은 떳떳함이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미혹법을 진실이 된다 하느냐, 성인은 미혹법 가운데도 전도한 마음을 내
지 않으며,
또한 사실인 마음도 내지 않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성인이 저 미혹법을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 생각을 일으키면 거룩한 지혜의 일이 날
수 없느니라.
대혜여, 조금이라도 생각을 일으킨다면, 범부라고 말할 것이요, 성인이라고 말하지 않나니라.
대혜여, 저 미혹법을 분별하여, 전도라, 전도 아니라 한다면, 능히 二종성(二種性)이 나나니,
무었이 二종이냐 첫째는 능히 범부성을 생함이요, 둘째는 능히 성인성을 생함이니라.
대혜여, 저 성인성(聖人性)이 능히 세가지 차별인 성(性)을 생하나니,
이른바 성문과 벽지불과 불국토의 차별성인 것이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가 미혹법을 분별하여 능히 저 성문승성(聲聞乘性)을 생함이
냐.
대혜여, 이른바 저 미혹법의 제모양과 같은 모양에 집착하여 능히 성문승성을 이룬 것이다.
대혜여, 이를 미혹법이 성문승성(聲聞乘性)을 능히 내고 이룬 것이라 하나리라.
대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가 미혹법을 분별하여 능히 저 벽지불승성을 내는 것이냐.
대혜여, 이른바 저 미혹법에 집착하여, 모든 법의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하고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능히 벽지불승성(酸支佛乘性)을 낸 것이니,
대혜여, 이를 미혹법이 능히 벽지불승성을 내고 이룬 것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지혜 있는 자가 곧 저 미혹법을 분별하여 능히 불승성(佛乘性)을 내는 것
이냐,
대혜여, 이른바 저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이 오직 자심임을 보고,
유(有), 무(無)법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대혜여,
이와 같이 미혹법을 관찰하여 능히 여래승성을 내고 이름이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것을 성(性)의 뜻이 된다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일체 어리석은 범부가 곧 저 미혹법을 분별하여 가지가지 일을 보고,
능히 세간에 있는 바 승성을 내는 것이냐, 모든 법이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결정코 다르지 아니함을 관찰함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저 미혹법은 어리석은 범부가 허망하게 가지가지 법체를 분별함이니라.
대혜여, 저 미혹법은 사실인 일도 아니며, 사실 아닌 일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성인은 저 미혹법을 관찰하되, 허망하게 분별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성인은 심(心), 의(意), 식(識)의 신상(身相)을 돌이켰고,
번뇌 습기를 떠났나니, 그러므로 성인은 저 미혹법을 돌이켰기에 진여(眞如)가 된다 함이니
라.
대혜여, 이를 무슨 법이라 하느냐, 대혜여, 이는 진여법이라 이름함이니,
분별을 떠난 법이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이뜻으로서, 나는 거듭 진여의 법체가 분별을 떠난 것임을 선설(宣設)하노니,
저 진여가운데에는, 그 허망한 분별법을 떠난 것임이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 미혹법은 있는 것이옵니까, 없는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미혹법은 가지가지 상에 집착한 것이므로 있다 이름 함이나,
대혜여, 저 미혹법이 망상(妄想)가운데에 만일 있을진대,
일체 성인은 응당 모두 있다, 없다하는 허망한 법에 집착함을 떠나지 못하여야 할 것이다.
대혜여, 외도가 말한 ‘十二인연이 인(因)으로부터 생(生)함과
인으로부터 생하지 아니함이 있다’는 것과 같아서, 이 뜻도 또한 이와 같나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약 미혹법이 눈흘림으로 본 것 같다면 이 미혹법은 미혹과 다를 것이니,
그는 미혹법이 능히 법을 생(生)하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미혹법이 번뇌의 허물을 내는 것이 아니니, 대혜여,
만일 미혹법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모든 허물은 나지 아니하리라.
대혜여, 일체 환(幻) 술법은 사람의 공력과 주술(呪術)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요.
자심의 분별하는 번뇌로 생기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대혜여,
저 미혹법은 모든 허물을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사람이 미혹법을 본 것임이니라.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의 허망한 것의 미세한 일에 집착하여 모든 허물이 생긴 것이요,
성인을 말함은 아니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인은 미혹을 보지 않고
세간은 진실함이 없어서
미혹이 곧 진실이며
진실법도 또한 미혹이라네.
미혹이 서로 생함 있는 듯 한 것을
버리고 떠났다 하여도
그는 곧 미혹이니,
깨끗지 못함, 눈가리움 같나니라.
“대혜여, 그대는 ‘환이란 것이 없는 것이라.
일체법이 또한 없는 것도 환(幻)과 같다’ 말하지 말 것이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모든 법이 환과 같은 상에 집착한 이를 위하여 모든 법이 환과 같다 말씀하시
고,
모든 법이 전도(顚倒)한 상에 집착한 이를 위하여 모든 법이 환과 같다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이 환의 모양과 같다 함에 집착하였다면,
일체 법이 모두 환의 모양과 같다고 말씀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모든 법이 전도한 모양이라 함에 집착하였을진대,
일체 법이 환과 같다고 말씀하시지 아니 하시리니, 무슨 까닭이냐 하오면, 세존이시여,
색(色)에는 가지가지 인상(因相)이 있어 보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색에는 모든 상이 있어 환과 같이 볼만한 딴 원인이 있지 않사오니,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모든 법에 집착한 일체가 환과 같다고 말씀하시지 아니할 것이옵니
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지가지 법상에 집착했다 하여 모든 법 일체가 환과 같다고 말함은 아니니라.
대혜여, 모든 법은 전도한 것이어서 빨리 없어지는 것이 번개와 같기 때문에 환과 같다 말
함이니라.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은 비유컨대 번개 빛이 곧 보였다가 곧 없어지는 것과 같으나,
범부는 보지 못하느니라.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이 또한 그와 같거늘,
일체 법을 자심에서 같은 모양, 다른 모양으로 분별하여,
능히 관찰하지 못하므로 여실히 보지 못하나니, 색등의 법에 허망스리 집착한 때문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색(色)등의 법을 보지 아니한 이에겐
환이 없는 법이라 말하노니,
그러므로 상하(上下)에 어기지 않음이니라.
그리고 나는 일체 법을
본성 있는 것 볼수 없는 것이
여환(如幻) 무생체(無生體)라 말하노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모든 법이 생하지 않음[不生]을 또한 환과 같
다고 말한다면,
곧 세존의 전후(前後) 말씀하신 바가 스스로 상위(相違) 함이 없겠나이까.
여래께서 일체 ‘모든 법이 환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일체 법 생하지 않음이 환과 같다 말한 것은 앞뒤가 상위(相違)한 허물이 되지 않으
리니,
무슨 까닭이냐, 일체 어리석은 범부들이 생법(生法)과 불생법(不生法)을 보지 못하고,
자심의 유무(有無)와, 바깥 법의 유무(有無)를 능히 깨닫지 못함이니,
무엇 때문이냐, 능히 불생법(不生法)을 보지 못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내가 이와 같이 모든 법을 말한 앞뒤가 상위한 것은 있지 않나니라.
대혜여, 나는 외도가 내세운 인과의 뜻이 합당하지 않는 것을 막으려고....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 말하노라.
대혜여, 일체 외도의 어리석은 무리들이 이러한 말을 하되, ‘유와 무로부터 일체 법이 생긴
다’하고,
자심의 분별과 집착의 인연으로 생하는 것을 말하지 않나니라.
대혜여, 나는 모든 법의 유(有)도 또한 불생(不生)이며, 무(無)도 또한 불생이라 말하노니,
그러므로 대혜여, 나는 모든 법을 불생이라 말하노라.
대혜여, 내가 일체 법이 있다[有]고 말한 것은 제자(弟子)들을 두호하여
그들로 하여금 두 법을 알게 함이니, 무엇이 둘이 되느냐,
첫째는 모든 세간(世間)을 섭취(攝取)함이요. 둘째는 모든 단견(斷見)을 두호하기 위함이니
라.
무슨 까닭이냐, 업(業)에 의하므로 가지가지 몸이 있어서 육도(六道)에 태어남을 받나니,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을 있다 말하여 세간을 섭취하나니라.
대혜여, 내가 일체 법을 환과 같다 말한 것은 일체 어리석은 범부로 하여금
필경에 능히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여의게 함이니,
모든 범부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집착하여 사건(邪見)에 떨어지고,
다만 자심이 허망하게 본 것임을 능히 알지 못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집착 인연으로서 생긴 법을 떠나게 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나는
‘일체 모든 법이 환 같고 꿈 같아서 실체가 없다’ 말한 것이니,
무슨 까닭이냐, 만일 이와 같이 말하지 아니한다면,
어리석은 범부는 사견의 마음에 집착하였기에 자신과 타인을 기광하고,
일체 법을 여실히 보는 것을 떠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을 여실견(如實見)에 머무르는 것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자심이 모든 법을 보는데에 들어간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대 말한바와 같이 모든 법은
일체 생함이 아니라 함은
이는 인과를 비방 함이며
여실견이 아니니라.
내가 유생(有生) 법을 말함은
세간을 포섭하기 위함이다.
모든 법을 환과 같이 보아서
보는 상에 집착 아니하노라.
부처님은 또한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지금 여러 보살 마하살을 위하여, 명(名), 구(句), 자(字), 신(身)인 상을 말하
리니,
보살이 명, 구, 자, 신인 상(相)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며, 명, 구, 자, 신인 상에 의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요, 보리를 얻고서는,
중생을 위하여 명, 구, 자, 신인 상을 말하나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곧 말씀하여 주시옵기를 원하옵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혜여, 어떤 것이 명신(名身)이냐, 말하자면 어떠 어떠한 법에 의하여 명신이라 이름 지
음이니,
사물(事物)의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나니 대혜여, 이를 내가 명신(名身)이라 말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구신(句身)이냐, 말하자면,
뜻[義]과 사물을 결정함인 구경(究竟)에 보이는 뜻인 것이니,
대혜여, 이를 내가 구신이라 이름 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자신(字身)이냐, 말하자면, 문구의 필경인 것이니라.
대혜여, 또한 명신은 어떤 법에 의하여 명(名), 구(句)를 요별(了別)하고,
제 형상을 능히 요지(了知)하는 것이니라.
대혜여, 또한 구신은 구(句)와 사(事)의 필경인 것이니라.
대혜여, 또한 명신은 이른바 모든 글자는 이름을 따라서 차별함이니,
아(阿)자로부터 하자에 이르니 명신(名身)이라 이름함이니라.
대혜여, 또한 자신(字身)은 소리의 장단(長短)과
음운(音韻)의 고하(高下)를 말하여 ‘자신’이라 이름하니라.
대혜여, 또한 구신(句身)은 골목길 발자국인 것이니,
사람과 코끼리와 말과 여러 짐승의 발자국등과 같은 것을 구(句)가 된다 이름하니라.
대혜여, 또한 명자(名字)는 색(色)과 四음이 없는 것을 말함이니, 명에 의하여 말한 것임이니
라.
대혜여, 또한 명자(名字) 상은 능히 명자상을 요별(了別)함을 말함이니라.
대혜여, 이를 명, 구, 자, 신인 상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명, 구, 자, 상을 그대는 마땅히 배워서 사람들을 위하여 연설하여 줄 것
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명신(名身)과 또한 구신(句身)과
그리고 자신(字身)의 차별을
범부는 어리석게 계교하고 집착함이여
코끼리가 깊은 진흙에 빠짐 같도다.
대혜여, 미래 세상에 지혜 없는 자는 사견(邪見)의 마음으로써 여실법(如實法)을 알지 못하
므로
세간론(世間論)을 따라서 스스로 지자(智者)라 말하여,
지자가 있어서 사견상(邪見相)과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을 떠난 여실법을 묻는
다면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이러한 말을 하되, ‘이 물음은 옳지 않으며,
바른 생각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하나니, 말하자면 색(色) 등의 법과
떳떳함과 무상(無常)함이 같음이 되느냐, 다름이 되느냐,
이와 같은 열반과 유위(有爲)인 모든 행(行)이 같음이 되느냐 다름이 되느냐,
형상가운데에 있는바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이 같음이 되느냐, 다름이 되느냐,
짓는 이[作者]와 짓는 바[所作]가 같음이 되느냐, 다름이 되느냐,
사대(四大) 가운데에 색(色)과 향(香)과 미(味)와 촉(觸)이 같음이 되느냐, 다름이 되느냐,
능견과 소견이 같음이 되느냐, 다름이 되느냐, 진흙덩이와 미진(微塵)이 같음이 되느냐, 다름
이 되느냐,
지자(智者)의 아는 바가 같음이 되느냐, 다름이 되느냐,
이와 같이 위로 올라서 차제상(次第相)과,
위로 올라서 무기(無記) 치답을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했다 함이니, 이는 나를 비방함이니
라.
대혜여, 나는 이와 같은 법을 말하지 아니한 것은 외도가 사견에서 말함을 막기 위함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외도들이 말한 것은 ‘몸이 곧 명(命)이니,
몸이 달라짐에 명도 달라진다’함이니, 이와 같은 것의 법은 외도의 말한 바라,
이는 무기(無記)법이니라.
대혜여, 외도는 인과의 뜻에 미(迷)했기에 그러므로 무기(無記)라 함이요,
나의 법에서 말한 무기는 아니니라.
대혜여, 우리 불법에서는 능견과 가견(可見)인 허망한 생각을 떠나서 분별심(分別心)이 없나
니,
그러므로 나의 법에서는 답할 것 없이 그냥 두는 치답이 있지 않나니라.
모든 외도들은 가취(可取)와 능취(能取)에 집착하여, 다만 자심에서 보여진 법임을 알지 못
하므로
저이들을 위하여, 나는 법을 묻는 이에게 네가지로 답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였으나,
四무기 치답만은 나의 법에서 함이 아니니라.
대혜여,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 중생을 위하여 네가지로 답하여 말하는 데에
치답이 있는 것은 때를 기다려서 하기 위하므로 이러한 법을 말함이다.
또는 근기가 성숙 못한 이를 위한 것이요, 근기가 성숙한 이를 위한 것은 아니니,
그러므로 내가 치답의 뜻을 말했노라.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이 만일 짓는 것과 인연을 떠나며, 생하지 않으리니,
짓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나는 일체 법이 불생(不生)이라 말하노라.”
부처님을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였다.
“일체 모든 법은 체상이 없느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일체 모든 법은 사실인 체상이 없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스스로 증득한 지혜로서 일체 모든 법의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하건대,
모든 법이 있지 않나니, 그러므로 나는 ‘일체 모든 법은 사실인 체상이 없다’고 말하노
라.”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모든 법은 또한 취(取)하는 상도 없나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뜻으로서 일체 모든 법은 또한 취하는 상도 없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제모양과 같은 모양에도 법을 가히 취할 것이 없나니
그러므로 나는 법을 가히 취할 것이 없다 말하노라.”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모든 법은 또한 버리는 상도 없느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모든 법은 또한 버리는 상도 없다 하시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하건대, 법을 가히 버릴것이 없나니,
그러므로 나는 일체 모든 법은 또한 버리는 상도 없다 말하노라.”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불멸(不滅)이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일체 모든 법은 불멸이라 하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제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하건대, 체상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은 불멸이라 말하노라.”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무상(無常)하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일체 모든 법은 무상하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모든 법은 항상 무상한 상이며, 항상 불생(不生)인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모든 법이 무상하다 말하노라.
대혜여, 또한 다시 나는 일체 법을 무상이라 말하노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일체 모든 법을 무상이라 하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형상이 생(生)하지 않으며, 생하지 않는 체상이기에 그러므로 항상 무상함이니,
그리하여 나는 모든 법이 무상하다 말하노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기론(記論四記答) 이 네가지 있나니,
그렇다고 바로 답하는 직답(直答)과,
반문해서 답하는 반질답(反質答)
분별하여 답하는 분별답(分別答)이며,
답할 것 없이 그냥 두는
사치답(捨置答) 그것인데,
이로써 모든 외도들의
있다, 없다, 함을 제어하노라.
상카야[僧法]와 베세시카[毗世師]는
모두 무기(無記)라고
이와 같은 말로
그들은 말한다.
바른 지혜로 관찰하건대
자성이란 얻을 수 없나니,
그러므로 말할 수 없다하며,
체상이 없다고 말하노라.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세존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스로타아판나[須陀洹]등
행(行)의 차별상(差別相)을 말씀하여 주옵소서.
저희와 일체 보살 마하살들이 스로타아판나등의 수행상(修行相)을 잘 아오면,
여실히 ‘스로타판나’, ‘사크르다가민’(斯陀含), ‘아나가민’(阿那含), ‘아르한’(阿羅
漢)을 알아서,
이와 같이 중생을 위하여 말 하오리니, 중생이 듣고서는 두 무아상(二無我相)에 들며,
두가지장[二種障]이 깨끗하여 차례로 지위와 지위의 수승한데에 나아가서,
여래의 불가사의(不可思議) 경계인 수행을 얻을 것이며, 수행처(修行處)를 얻고는
여의보(如意寶)가 중생이 생각하는 수용경계(受用境界)와
몸과, 입과, 뜻의 행(行)을 따르는 거와 같으리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지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다”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잘 받아 듣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스로타판나’(須陀洹)는 세가지 과(果)의 차별이 있나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세가지 옵니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하(下)와, 중(中)과, 상(上)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스로타판나’의 하(下)가 되느냐,
말하자면 삼유(三有)가운데서 일곱번이나 생(生)을 받는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중(中)이 되느냐, 말하자면, 삼생(三生)이나 오생(五生)만에 열반에 드는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상(上)이 되느냐, 말하자면, 곧 일생(一生)에 열반에 드는 것이니라.
대혜여, 이 세가지 스로타판나는 세가지 결박[結]이 있나니, 말하자면 하와 중과 상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세가지 결박이냐, 말하자면 신견(身見)과 의(疑)와 계취(戒取)니라.
대혜여, 저 세가지 결박은 위로 올라서 잘 닦아 정진하여야만 아르한(阿羅漢)을 얻나니라.
대혜여, 신견(身見)이 두가지가 있나니, 무엇이 둘이 되느냐, 첫째는 구생(俱生)이요.
둘째는 허망한 분별로서 나는 것이니, 인연으로 분별하는 법과 같나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인연 법상(法相)에 의하여 허망한 분별로서 실상(實相)이라고 함과 같다.
그러나 저 인연법 가운데는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니,
있다 없다 분별함이란 실상(實相)이 아닌 까닭이니라.
어리석은 범부는 가지가지 법상에 집착하는 것이,
새와 짐승들이 아지랑이를 보고, 물이라고 생각함과 같나니라.
대혜여, 이를 ‘스로타판나’의 신견(身見)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이냐,
지혜가 없기 때문이며, 끝없는 세월로 오면서 허망하게 상(相)을 취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이 신견의 때[垢]는 인무아(人無我)를 보아야만 능히 멀리 떠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스로타판나’의 구생신견(俱生身見)이냐, 이른바 자기 몸과,
다른 이 몸인 그 두가지와, 四음(陰)과 무색(無色)과 색음(色陰)이 날적엔
四대(大)와 四진(塵) 등에 의하여 피차 인연이 서로 화합하여 색(色)이 생기는 것을 보고,
스로타판나는 그를 알고서 능히 있다, 없다, 하는 사견(邪見)을 떠나며 신견을 끊고,
신견을 끊고서는 탐심(貪心)을 내지 아니 하나니,
대혜여, 이를 스로타판나의 신견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스로타판나의 의(疑)의 모양이냐,
말하자면 법을 증득하는 데에 잘 보는 것을 얻고서,
신견과 두견[二見]인 분별의 마음을 먼저 끊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에서 의심을 내지 않으
며,
또한 다른 높은 이[尊者]에게 높다고 여김과 깨끗하고 깨끗지 아니하다는 마음을 내지 않나
니,
대혜여, 이를 스로타판나의 의(疑)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스로타판나의 계취(戒取)의 모양이냐,
말하자면 몸을 받아 날 곳[受生處]이 괴로운 것임을 잘 보았나니,
그러므로 계상(戒相)을 취하지 않나니라.
대혜여, 계취(戒取)라는 것은 모든 범부들이 계(戒)를 지니고 정진하여 가지가지 착한 행으
로
안락한 경계를 구하며 하늘에 태어나려고 함이니, 저 스로타판나는 이러한 것을 취하지 아
니하고,
오직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고 회향(回向)하는 것을 취하여 수승한 곳에 나아가서
모든 망상(妄想)을 떠나고, 무루계분(無漏戒分)을 닦나니 대혜여,
이를 스로타판나의 계취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스로타판나는 세가지 결박인 번뇌를 끊고 탐(貪), 진(嗔), 치(痴)를 떠나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탐(貪)을 말씀하옵시니
“스로타판나는 어떠한 탐(貪)을 떠났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스로타판나는 여인들로 더불어 어울림을 떠나서 현재의 낙으로
미래의 고인(苦因)을 심으려 하지 아니하고, 치고 두들기며,
탄식하고 끼어안으며[嗚抱] 곁눈으로 보는 것을 멀리 떠났나니라.
대혜여, 스로타판나는 그와 같은 탐심을 내지 않나니,
무슨 까닭이냐 삼매락(三昧樂)인 행(行)을 얻었기 때문이다.
대혜여, 스로타판나는 이와 같은 등의 탐은 떠났으나, 열반의 탐은 떠나지 못했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사크르다가민’(斯陀含)의 과(果)의 모양이냐,
말하자면 한번 감인[一往]데, 색상(色相)을 보고 눈앞에 곧 마음을 내나,
허망한 분별의 생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에, 선(旋)의 수행하는 모양을 잘 보나니,
그러므로 세간에 한번 왕래하면서 문득 고(苦)를 끊어 다하고 열반에 드나니,
이를 ‘사크르다가민’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아나가민(阿那含)의 모양이냐 말하자면
과거, 현재, 미래의 색상 가운데서 있다 없다하는 마음 낸 것을 보았기에,
허망 분별심(分別心)인 모든 결박[結]으로 하여금 나오지 못하게 하나니,
그러므로 ‘아나가민’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아르한(阿羅漢)의 모양이냐, 말하자면 분별로서 사유(思惟)함과
사유할 바와 삼매와 해탈과 힘과 통(通)함과 번뇌와 괴로움등인 분별심을 내지 않나니,
그러므로 아르한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께서 세가지 아르한을 말씀하셨나니,
여기서는 어떠한 아르한을 말하여 아르한이라 이름하나이까.
세존이시여, 결정(決定), 적멸(寂滅)을 얻었다고 말하는 나한(羅漢)이옵니까,
보리원(菩提願)과 선근(善根)과 선근 잊는 것을 말한 나한이옵니까,
교화하려고 응화(應化)한 나한이옵니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결정 적멸을 얻었다. 말하는 성문 나한이요, 다른 나한은 아니니라.
대혜여, 다른 나한은 말하자면 일찍이 보살행을 수행한 자며, 또한 응화불(應化佛)이 화현한
나한이니,
본원(本願)인 선근과, 방편의 힘으로 여러 부처님 국토에 태어나고 대중가운데에 나타나서
부처님의 큰 회중(會衆)을 장엄한 것이니라.
대혜여, 그는 거래(去來)를 분별하여 가지가지 일을 말하되,
증득할 과(果)에서 능사유(能思惟)와 소사유(所思惟)로 사유하는 것을 멀리 떠났으므로
자심(自心)이, 견(見)과 소견(所見)이 된 것임을 보았나니,
그 과(果)를 얻은 모양이라 말할 것이니라.
대혜여, 만일 ‘스로타판나’가 이러한 생각을 하되, 이것이 세가지 결박이니,
나는 세가지 결박을 떠났노라 하면, 대혜여, 이는 三법을 본 것이며 신견(身見)에 떨어진 것
이니,
그가 만일 이와 같을진대, 세가지 결박을 떠나지 못하리니,
대혜여, 그러므로 스로타판나는 이와 같은 마음을 내지 않나니라.
대혜여, 만약 선(禪)과 무량(無量)과 무색계(無色界)를 떠나려고 한다면
응당 자심의 보는 상을 멀리 떠날것이며, 소상(少相)인 적멸정(寂滅定) 삼마파티상을 멀리
떠날 것이니라,
대혜여, 만일 이와 같이 아니한다면 저 보살은 마음에서 모든 법을 보리니, 사유하는 마음이
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선(禪)과 사무량(四無量)이며,
무색(無色)의 삼마파티요
소상(少相)인 적멸정은
모두 마음속엔 없나니라.
흐름 거슬러 무루 닦는 이,
또한 한번 가고 오는 이와
오지 않는 이와 아르한 이
그는 모두 마음 미했다네.
능소(能所)의 소유로 사유함이란
진제(眞諦) 보는 것, 떠난 것이며,
오직 이 허망한 마음이니
그를 능히 알면 해탈 얻으리라.
입능가경(入楞伽經),중편 2
三, 집일체불법품(集一切佛法品) (3-2)
대혜여, 두가지 지혜가 있나니, 무엇이 둘이 되느냐, 첫째는 관찰하는 지혜요,
둘째는 허망한 분별로 상을 취하여 머무르는 지혜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관찰하는 지혜냐, 말하자면 어떠한 지혜로서 일체 모든 법의 체상(體相)
은
四법을 떠나서 법을 가히 얻을 수 없다고 관찰함이니, 이를 관찰하는 지혜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四법이냐, 말하자면 같음과, 다름과 함께[俱]와, 함께 아닌[不俱] 것이니,
이를 四법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四법을 만일 떠난다면 일체법은 가히 얻을 수 없으리니,
대혜여, 만일 일체 법을 관찰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四법에 의하여 모든 법을 관찰할 것이니
라.
대혜여, 망상 분별로서 상을 취하여 머무르는 지혜란 이른바 굳음[堅]과 뜨거움[熱]과 젖음
[濕]과
움직이는[動]데에 집착하여 허망스리 四대상(大相)을 분별하므로
인(因)과 비유를 내세우는 데에도 집착하고 진실 아닌 법을 내세우고서 진실로 여김이니,
대혜여, 이를 허망한 분별과 집착으로 상을 취하여 ‘머무르는 지혜’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이를 두가지 지혜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필경에 이 두가지 모양을 알고는,
법무아(法無我)에 나아가서 진실한 지혜의 지위행상을 잘 알 것이며, 알고서는,
곧 초지(初地)에 올라가서 百 삼매를 얻고, 삼매의 힘에 의하여 百 부처님과 百 보살을 볼
것이며,
과거와, 미래의 각각 百겁의 일을 능히 알고 百 부처님의 세계를 비추리라.
百 부처님의 세계를 비추고는 모든 지위에 올라가는 지혜 모양을 잘 알 것이다.
그 본원력으로서 날세고 신속하게 가지가지 신통을 보이고 나툴 것이며,
법운지(法雲地)에서는 법우(法雨)에 의하여 지위를 받고,
여래의 안으로 얻는 구경 법신인 지혜자리를 증득할 것이요,
십무량(十無量)인 선근과 원(願)에 의하여 이리저리 중생을 교화하여 가지가지로 응화하며
자신이 가지가지 광명을 보이고 나타내리니,
자신이 증득하는 지혜와, 삼매락을 수행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응당 사대(四大)와 사진(四塵)의 모양을 잘 알아야 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의 四대와 四진의 모양을 잘 아는 것이냐.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할 것이니,
말한바 진실이란 말하자면 四대가 없는 곳이니,
四대를 본래 생하지 아니한 것으로 관찰함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고서는 또한 이러한 생각
을 하되,
‘관찰한 것은 오직 자심의 견(見)과 허망한 각지(覺知)며, 그로써 외진(外塵)을 본 것이요,
실물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그는 명자(名字) 뿐이며, 분별심으로 본 것이라
이른바 삼계(三界)도 四대와 四진의 상을 떠난 것이라 하여 이와 같이 보고서,
네가지 견(見)을 떠나 청정 법을 보며, ‘나’과 ‘내것’이라 함을 여의고,
제모양인 여실(如實)법 가운데에 머무르나니라.
대혜여, 제모양[自相]인 여실 법가운데에 머무르는 것이란,
말하자면 건립한 모든 법에 생(生)함이 없는 제모양 법가운데에 머무름이니라.
대혜여, 四대 가운데에 어찌하여 四진이 있느냐, 대혜여,
말하자면 망상(妄想)으로 부드럽고 연하며(柔軟), 습윤(濕潤) 함을 분별하므로
안팎의 수대(水大)를 내었나니라.
대혜여, 망상으로 따뜻함이 증장(增長)하는 힘을 분별하므로 안팎의 화대(火大)를 내었나니
라.
대혜여, 망상으로 ‘가볍고 굴르며 움직이는 모양’을 분별하므로 안팎의 풍대(風大)를 내었
나니라.
대혜여, 망상으로 ‘있는 바 굳은 모양’을 분별하므로 안팎의 지대(地大)를 내었나니라.
대혜여, 망상으로 안팎과 또한 허공을 분별하므로 안팎[內外]의 생각[想]이 생겼으며,
허망한 안팎의 사견(邪見)에 집착하므로 五음(陰)의 취락(聚落=집단)과 四대와 四진이 생겼
나니라.”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알음알이(識)가 능히 가지가지 경에게 집착하고,
다른 도[異道] 구하기를 좋아하여 저 경계를 취한 것이니라.
대혜여, 四대가 넷이 있나니, 색(色), 향(香), 미(味), 촉(觸)이니라.
대혜여, 四대는 원인이 없나니, 무슨 까닭이냐,
말하자면 땅의 자체와 형상과 장단(長短)이 四대 상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형상, 대소(大小), 상하(上下) 용모에 의하여 모든 법을 내었나니,
형상과 대소와, 장단을 떠나서 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외도가 허망하게 四대와 四진을 분별하는 것은 나의 법 가운데서 이와 같이 분별함이 아니
니라.
대혜여, 내 그대를 위하여 오음(五陰) 체상(體相)을 말하겠노라.
대혜여, 어떤 것이 五음의 모양이냐, 말하자면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니라.
대혜여, 四음(陰)은 색(色)상이 없는 것이니, 말하자면, 수, 상, 행, 식이니라.
대혜여, 색은 四대에 의하여 생겼나니, 四대는 피차(彼此)가 같지 아니한 모양이니라.
대혜여, 색상이 없는 법은 허공과 같거니, 어찌 네가지의 수(數), 상(相)을 이루랴.
대혜여, 비유컨대, 허공은 수상을 떠났는데, 허망스리 분별하여 이는 허공이라고 함과 같나
니라.
대혜여, 음의 수상(數相)은 모든 상을 떠났으며, 유무상(有無相)을 떠나고, 四상을 떠났건만,
어리석은 범부는 모든 수상을 말하나니, 성인이라 할수 없느니라.
대혜여, 내가 말한 ‘모든 상이 환(幻)과 같아서 가지가지 형상이 하나와 둘의 모양을 떠났
다’함은
가명(假名)에 의하여 말한 것이니, 꿈과 거울의 물상[鏡像]과 같아서 소의(所依)를 떠난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만일 성인의 지혜로 수행하여 분별함에는 五음이 허망함으로 보나니,
대혜여, 이를 五음의 五음 체상이 없는 것이라 이름함이니라.
대혜여, 그대는 지금 마땅히 이와 같은 허망하게 분별하는 상을 떠날 것이니라.
이러한 것을 떠나고는, 여러 보살을 위하여 모든 법상(法相)을 여읜 적정(寂靜)의 법을 말해
줄 것이니,
외도의 모든 견(見)의 상을 막기 위함이니라.
대혜여, 적정 법을 말하여 청정한 무아(無我)의 상을 증득하고 원행지(遠行地)에 들어가며,
원행지에 들어가고는 한량없는 삼매와, 자재(自在)한 여의생신(如意生身)을 얻으며,
제법 여환삼매(諸法如幻三昧)를 얻으며, 자재한 신통력(神通力)을 얻어 행하여 진취하고
일체 중생을 수순하여 자재한 작용이 큰 땅과 같으리라.
대혜여, 비유컨대 큰 땅이 일체 중생에게 뜻을 따라 쓰임과 같나니,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중생의 쓰임을 따르는 것이 또한 그와 같나니라.
대혜여, 외도의 말하는 네가지 열반이 있나니 무엇이 넷이 되느냐, 첫째는 자체상(自體相)
열반이요,
둘째는 가지가지 모양이 있고 없는 열반이요, 세째는 자각체(自覺體)가 있고 없는 열반이요,
네째는 모든 음(陰)의 제모양과 같은 모양과 상속체(相續體)를 끊은 열반이니,
대혜여, 이를 외도의 네가지 열반이라 함이요, 나의 말한바는 아니니라.
대혜여, 나의 말한 바는 허망한 경계를 보고 분별하는 알음알이가 없어진 것을 열반이라 이
름하느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어찌 여덟 가지 알음알이[識]를 말씀하지 아니 하시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덟가지 알음알이[識]를 말하느니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만일 세존께서 여덟가지 알음알이를 말씀하실진대 무슨 까닭으로
다만 의식(意識)이 전멸(轉滅)한다 말씀하시고, 七식(識)이 전멸한다 말씀하시지 아니 하시
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념(念), 관(觀)에 의지하여 있기 때문에, 전식(轉識)이 멸하면 七식이 또한 멸하느니
라.”
대혜여, 의식은 경계에 집착하고 취하여 생긴 것이니,
생기고는 가지가지 훈습(熏習)으로 아라야식을 증장(增長)하므로
‘나’와 ‘내것’이라 함을 떠난 모양에서 허망한 공(空)에 집착하여 분별을 내나니라.”
대혜여, 저 두가지 식(識)은 차별상(差別相)이 없나니 아라야식에 의하여
자심에서 나타난 경계를 관(觀) 함을 따라서 망상으로 집착하여 가지가지 마음이 생(生)하
는 것이
묶은 대(竹)가 번갈아 서로 인(因)이 되는 것과 같으며, 큰 바닷 물결과 같으므로 생멸(生
滅)이 있나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의식이 전멸하면 일곱가지 식도 전멸하나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열반을 취하지 않으며,
또한 짓는 상[作相]도 버리지 않아
허망한 마음 굴려서 없앴거니,
그러므로 열반 얻었다 말하리.
저 인(因)과 념(念)에 의하여
의(意)는 모든 경계에 취향하며
식은 심(心)과 더불어 인을 짓고
심(心)은 식의 소의(所依)가 되나니.
물의 흐름이 고갈하면
파랑이 곧 일지 않듯이,
이러한 의식 없어지면
가지가지 식도 나지 않나니라.
대혜여, 내가 그대를 위하여 허망한 분별 법체의 차별상을 말했노니,
그대와 보살 마하살은 잘 분별하여 허망 법체인 차별의 모양을 알 것이며,
허망 법체인 차별의 모양을 알고는, 분별과 분별할 바인 법을 떠나서,
자신이 안으로 수행하는 법을 잘 알고 외도의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경계를 멀리 떠나
며,
가지가지 허망하게 분별하는 인연법의 체상을 멀리 떠날 것이요,
멀리 떠나고는 다시 허망한 상을 분별하지 말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허망한 분별 법체인 차별의 모양이냐,
대혜여 허망한 분별 자체인 차별상이 열 두 가지가있나니라.
무엇이 열 둘이 되느냐, 첫째는 언어(言語) 분별이요, 둘째는 가지(可知) 분별이요,
셋째는 상(相) 분별이요, 넷째는 재(財) 분별이요, 다섯째는 실체(實體) 분별이요
여섯째는 인(因) 분별이요. 일곱째는 견(見) 분별이요, 여덟째는 건립(建立) 분별이요,
아홉째는 생(生) 분별이요, 열째는 불생(不生) 분별이요, 十一은 화합(和合) 분별이요,
十二는 박(縛)과 불박(不縛)인 분별이니, 대혜여 이를 분별 자체상인 차별상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언어 분별이란 말하자면 가지가지 언어(言語)는 아름답고 묘한 음성을 좋아하여 집
착함이니,
대혜여, 이를 언어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가지 분별이란 말하자면 이러한 생각을 하되, ‘응당 현전의 법과 사실인 일의 모양
이 있어서,
성인의 수행함도 저 법에 의지하여 언어가 생긴 것임을 안 것이라’하여 이와 같이 분별함
이니,
대혜여, 이를 가지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상 분별이란 말하자면 곧 저 가지 경계 가운데 열(熱)과 습(濕)과 움직임[動]과
굳은[堅]것인 가지가지 모양을 고집하여 사실인양 하는 것이,
허공에 아지랑이를 새, 짐승들은 그를 보고 물이라고 생각을 내는것과 같음이니,
대혜여, 이를 상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재 분별이란 말하자면 금(金), 은(銀) 등의 가지가지 보배인 경계를 좋아함이니,
대혜여, 이를 재(財)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자체 분별이란 말하자면 유법(有法) 자체 형상을 전념(專念)하되,
‘이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다르지 않고, 정견(正見)의 견(見)이 아니라’고 분별함이
니,
대혜여, 이를 자체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인(因)분별이란 말하자면 어떠 어떠한 인(因)과 어떠 어떠한 연(緣)에서,
유(有)와 무(無)를 요별(了別)하여 인상(因相)으로 요별하는 상을 내는 것이니,
대혜여, 이를 인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견 분별이란 말하자면 유와, 무와, 같음과 함께와 함께 아닌 것인 사견(邪見)을,
외도는 집착하여 분별함이나, 대혜여, 이를 견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건립 분별이란 말하자면 ‘나’와 ‘내것’이라 하는 상을 취하여 허망한 법을 말
한 것이니,
대혜여, 이를 건립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생 분별이란 말하자면 뭇 인연에 의지하여 유무 법가운데서 집착심(執着心)을 낸 것
이니,
대혜여, 이를 생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불생 분별이란 말하자면 일체 법이 본래 생함이 아니니,
본래 없기 때문이며, 인연에 의하여 있고 인과가 없다는 것이니,
대혜여, 이를 불생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화합 분별이란 말하자면 어떠 어떠한 법이 화합한 것은 금(金바늘) 누(縷실)가 한가
지로 함과 같고,
어떠 어떠한 법이 화합한 것은 금바늘과 누가 어울림과 같다 함이니,
대혜여, 이를 화합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박과 붙박인 분별이란, 말하자면 묶이는 인에 집착함이란 박과 같다는 것이니 대혜
여,
사람이 방편으로 줄을 맺어서 매듭을 만들어 맺었다가 도로 푸는 것과 같다 함이니,
대혜여, 이를 박과 붙박인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이를 허망한 분별 법체인 차별의 모양이라 이름한다.
이 허망한 분별 법체인 차별의 모양에서 일체 범부들이 유와 무에 집착하며,
법상인 가지가지 인연에 집착한 것이니, 그러므로 대혜여,
법체 차별의 모양을 분별하여 가지가지 법을 보고 집착하여 사실로 여기는 것이 눈홀림에
의하여
가지가지 일을 보는 것과 같건만 범부는 분별하되, 눈홀림과 달라서 이러한 법이 있는 것으
로 아나니라.
대혜여, 나는 가지가지 법가운데서 눈홀림과 다르지 않다 말하여,
또한 다르지 아니함도 아니라 하노니, 무슨 까닭이냐, 만일 눈홀림이 가지가지 법과 다를진
대,
응당 눈홀림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법>이 나지 않을 것이며, 만일 눈홀림이 곧 가지가지 <
법>일진대,
응당 달리 보이지 않으련만, 이는 눈홀림이며, 이는 가지가지 <법>이라 하여 차별함을 보나
니,
그러므로 나는 ‘다르지 않으며 다르지 아니함도 아니라’ 말하노라. 그러므로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 마하살은 눈홀림이 실(實)이 있고 실이 없다 분별하지 말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은 경계에 의해 속박하며
지각도 경계를 따라 나나니
고요하고 수승한 곳에서만
평등한 지혜 나나니라.
망상(妄想) 분별로서는 있으나 (가지가지의법)
연기(緣起) 법엔 없거늘
허망을 취해 미란(迷亂) 했기에
다른 힘으로 생김을 아지 못하네.
가지가지 인연으로 생긴 법이란
바로 환(幻)이며 진실 아니니
저 가지가지 생각으로
허망하게 분별하면 될수 없으리.
저 생각이란 이 과실(過失)이며
모두 마음 속박으로 조차 생함인데
어리석은 사람 지혜 없어
인연법을 분별 한다네.
이 모든 망상의 자체는
곧 이 연기별이라
망상이 가지가지 있으므로
뭇 인연 가운데서 분별하나니.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와
제三 인(因) 없이 나는 것이며
망상으로서 세제를 말하나니
이를 끊으면 성인 경계라네.
비유컨대 수행자는 이가
한 일[一事]에서 가지가지 나타냄 같으나
저 법은 가지가지가 없나니
분별상도 이와 같다네.
눈에 각가지 눈병처럼
망상으로 뭇 색상 보나니
눈병은 색(色) 비색(非色) 아니듯이
지혜 없이 법을 취함도 그러하다네.
진금(金)의 때[垢]를 여읜 것 같으며
물이 탁한 진흙 떠남 같고
허공이 구름을 떠났듯이
참 법의 깨끗함 또한 그렇다네.
망상법은 있지 않으며
인연법도 또한 없는데
유(有)를 취하고 무(無)를 비방함이여
이는 분별로 보는 이의 견(見)이니라.
망상이 만일 진실 아니며
인연법이 만일 진실이라면
인을 떠나서 응당 법이 생기며
실(實)법이 생한 것이리.
허망으로 인해 법이라 이름 한 것이며
모든 인연 생함을 본 것이니
망상과 이름이 서로 떠나지 아니하여
이와 같이 허망이 생긴 것이라네.
허망은 본래 진실함 없나니
모든 상을 벗어나면
그제사 청정한 법 알으리니
이를 제일의라 이름 한다네.
망상은 열 둘[十二]이 있으며
인연법도 여섯 가지 있지만
속몸으로 증득할 경계는
저 차별이 있지 않나니라.
五법이 진실함이며
三종(種)도 마찬가지니
수행하는 이 이를 행하면
진여(眞如)를 여의지 않으리.
중생과 인연이여
저 법 분별함이라 이름한다
그 모든 망상의 모양이
저 인연으로부터 생기나니.
진실한 지혜로 잘 관찰하면
인연도 망상도 없으리
제일의에는 물건 없거니
어찌 지혜로서 분별하랴.
만일 진실이 법 있다 한들
있고 없는 것 멀리 떠났느니라.
만일 있고 없는 것 떠났는데도
어찌 두 법이 있다하랴.
두 법체를 분별하여서
두가지 법체가 있는 것이요
허망으로 각가지를 본 것이니
청정만이 성인의 경계니라.
망상인 각가지를 본 것이며
인연속에서 분별함이라네
만일 이와 달리 분별하는 이는
외도에 곧 떨어지리라.
망상으로 망상을 말하고
견(見)을 인해 어울려 나나니
두가지 망상을 떠나면
바로 이 진실법이니라.
그 때에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로 수행하는 모양과
一승(乘)법을 말씀하옵소서. 그리하오면 다른 이로 말미암지 않고
일체 부처님의 국토에 돌아 다니면서 불법을 통달할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
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아함(阿含)의 명자(名字)법과 여러 논사(論師)의 말한 바 분별 법상을 떠나고,
고요한 곳에서 홀로 앉아 자신의 속 지혜를 사유(思惟)하고 모든 법을 관찰하여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가지가지로 보는 허망한 모양을 떠나며,
마땅히 부지런히 수행하여 여래지(如來地)의 상상(上上)인 증지(證智)에 들어갈 것이니,
대혜여, 이를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수행하는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또한 다시 삼계(三界) 가운데서 一승(乘)을 닦는 것이 있나니, 대혜여,
무엇이 一승의 모양이냐, 대혜여, 여실히 一승도를 깨달음이니
그러므로 나는 말하여 一승이라 이름하노라.
대혜여, 어떤 것이 여실히 一승도를 깨달은 모양이냐.
말하자면 가취(可取)와 능취(能取)의 경계를 분별하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 모든 법상을 내
지 않음이니,
일체 모든 법을 분별하지 않음에 머무른 까닭이니라.
대혜여, 이를 여실히 一승도를 깨달은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一승도를 깨달은 모양이란 일체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과 범천등도
일찌기 얻어 알지 못한 것이요, 오직 나만은 제외니라.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말하여 一승도의 모양이라 이름하노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三승(乘)을 말씀하시고 一승을 말씀하지 아니하시
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성문과 연각은 능히 스스로 열반 증득함을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나는 오직 一승도만
을 말하노라.
대혜여, 일체 성문과 벽지불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받아서 세간을 싫어하여 떠나고
스스로 능히 해탈을 얻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나는 오직 一승도를 말하노라.
대혜여, 일체 성문과 벽지불은 지장(智障)을 떠나지 못하고,
업과 번뇌와 습기장(習氣障)을 여의지 못했나니 그러므로 나는 오직 一승도를 말하노라.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은 법무아(法無我)를 증득하지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변역생[不可思議變易生] 떠남을 얻지 못했나니, 그러므로 나는 모든 성문을 위하여 一승도를
말하노라.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이 만일 일체 모든 허물과 훈습을 떠나고 법무아를 얻어 증득한다면,
그때엔 모든 허물을 떠날 것이며, 삼매 무루(無漏)에 취(醉)한 법을 깨어나고서,
출세간(出世間)인 무루계(無漏界) 가운데의 일체 공덕을 수행할 것이며,
수행하고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자재 법신(自在法身)을 얻으리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천승(天乘)과 범승(梵乘)이며
성문과 연각승과
제불 여래승이라하여
내가 이러한 여러 승[諸乘]을 말함은
그 마음 생멸 있기 때문이요
여러 승은 구경(究竟)이 아니니
만일 저 마음이 멸진(滅盡)한다면
승과 승(乘)이라 할자도 없으리.
승의 차별이 있지 않는데
나는 一승이라 말하며
중생을 인도하려고
여러 승을 분별하여 말했나니라.
해탈이 세가지 있으며
또한 두 법무아인데
두가지 장(障)을 떠나지 못하면
참 해탈과는 먼 것이라네.
비유컨대 바다에 뜬 나무는
으례 물결 따라 굴르듯이
모든 성문 또한 그러하여
상풍(相風)에 표탕(漂湯) 하나니.
수번뇌(隨煩惱)는 떠났으나
훈습 번뇌에 묶이고
삼매락에 맛 붙쳐서
무루계에서 편히 머무르네.
완전한 나아감 있지 않고
또한 물러가지도 않아
삼매를 얻은 몸이
한량없는 겁에 깨어나지 못함이여.
비유컨대 혼취한 사람이
술기운 없어지면 깨어남 같나니
불(佛)의 위 없는 체성 얻어야만
이것이 나의 참 법신이라네.
四, 불심품(佛心品)
그 때에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 지금 그대를 위하여 뜻대로 나는 몸[意生身]인 수행(修行) 차별을 말하리니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뜻대로 나는 몸이 있나니, 무엇이 셋이 되느냐.
첫째는 삼매락(三昧樂) 사마파티를 얻어 뜻대로 나는 몸이요,
둘째는 여실히 모든 법상을 알아서 뜻대로 나는 몸이요,
셋째는 종류로 나는데 짓는 것 없는 행인 뜻대로 나는 몸이니,
보살이 초지(初地)로부터 여실히 수행하여 올라가는 지위에서 증득하는 지혜를 얻는 모양이
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삼매락 사마파티를 얻어 뜻대로 나는 몸이냐.
말하자면 제三 제四 제五 지(地)에서 자심의 고요한 행과 가지 가지 행으로서
큰 바다인 마음과 파도인 전식(轉識)의 모양이 사마파티의 낙에 들어감이라,
이는 의식(意識)으로 나는 것이라 이름함이니, 자심의 경계임을 보았으므로
여실히 있고 없는 모양을 아나니 대혜여, 이를 뜻대로 나는 몸의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여실히 모든 법상을 알아서 뜻대로 나는 몸이냐.
말하자면 보살 마하살이 八지(地) 가운데서 관찰하여, 모든 법이 상이 없고,
환과 같은 등인 법이어서 모두 있는 바 없는 것임을 깨달아 얻어서 몸과 마음을 전변(轉變)
하여
여환삼매(如幻三昧)와 기외 한량 없는 사마파티 낙의 문과 한량 없는 모양인 힘을 얻어
자재한 신통이 묘한 꽃으로 장엄한듯 하며, 신속함이 뜻과 같고 마치 환(幻)과 꿈과 물속의
달과
거울속의 모양과 같아서 四대로 나는 것이 아니면서, 四대가 모이듯이
신분(身分)을 구족하고 일체 수행으로서 뜻과 같이 자재함을 얻어
여러 부처님의 국토와 대중에 따라 들어가나니, 대혜여,
이를 여실히 모든 법상을 알아서 뜻대로 나는 몸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종류로 나는데 짓는 것 없는 행인 뜻대로 나는 몸이냐.
말하자면 자신이 안으로 일체 모든 법의 여실락상(如實樂相)과 법상락(法相樂)을 증득함이
니,
대혜여, 이를 종류로 나는데 짓는 것 없는 행인 뜻대로 나는 몸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저 세 가지 몸을 관찰하여 알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의 법은 대승(大乘)도 아니며
말과 명자도 아니며
체(諦)와 해탈도 아니요
없는 경계도 아니라네.
그러나 마하연(摩訶衍)의
사마파티 자재함으로서
가지가지 뜻대로 나는 몸이
자재하기 꽃으로 장엄함이라네.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말씀하신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이 五무간(無間)업을 행한
다는 것은,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五무간업이온데
선남자와 선여인이 五무간 업(業)을 행하여 무간(無間)에 들어가나이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
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五무간이란 것은 첫째는 어머니를 살해함이요, 둘째는 아버지를 살해함이요,
셋째는 아라한을 살해함이요, 넷째는 화합한 승단을 파괴함이요,
다섯째는 악심(惡心)으로 부처님 몸에 피를 나게 함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중생의 어머니냐. 말하자면 다음에 다시 태어남을 받는데
탐심과 기쁨이 함께 나는 것이 어머니로 인연하여 성립함과 같나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아버지가 되느냐. 말하자면 무명(無明)이 아버지가 되어 六입(入) 취락을
내느니라.
대혜여, 저 두 가지 능히 나는 근본을 끊으면 부모를 살해함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아라한을 살해함이냐. 말하자면 모든 사(使)는 쥐독[鼠毒]이 발함과 같나
니,
모든 사(使), 원(怨)의 근본을 빼내어 나지 않게 함이니, 대혜여, 이를 아라한을 살해함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화합 승단을 파괴함이냐. 말하자면 五음의 다른 모양이 화합하여 싸이고
모였나니,
그를 완전히 끊고 깨트리는 것을 승단 파괴함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악심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게 함이냐.
말하자면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인 바깥 자심상(自心相)과 여덟 가지 식신(識身)을 보고
무루(無漏) 三해탈문에 의하여 구경에 여덟 가지 식(識)인 부처를 끊나니,
악심으로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함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이것을 안 몸의 다섯 거지 무간이라 이름함이니,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무간을 행한다면 무간이라 이름하게 되리니,
무간이란 것은 여실한 법 증득함을 이름함이니라.
대혜여, 내 그대를 위하여 바깥 다섯 가지 무간의 모양을 말하리니,
여러 보살이 이 뜻을 듣고는 다음 세상에 의심을 내지 아니하리라.
대혜여, 어떤 것이 바깥의 다섯 가지 무간이냐. 말하자면 아버지, 어머니, 아라한을 살해함과
화합 승단을 파괴함과 부처님 몸에 피를 내는 행이니,
이 무간은 저 세가지 해탈문엔 능히 낱낱 해탈을 얻어 증득하지 못하리라.
오직 여래의 힘으로 주지(住持)함에 의하여 응화한 성문과 보살과 여래의 신력(神力)으로서
다섯 가지 죄인을 위하여 의심(疑心)을 참회하며,
이의 의심을 끊고 그로 하여금 선근(善根)을 내게 하려고 저 죄인을 위하여 응화(應化)의
말을 하였느니라.
대혜여, 만일 다섯 가지 무간죄를 범한 자는 필경 도분(道分)을 증득하여 들어감을 얻지 못
하리라.
자심(自心)이 오직 허망임을 보고 몸과 살림살이와 의지하여 머무를 곳과,
<나>와 <내것>이라 하는 상을 분별하여 보는 것을 떠나서,
한량없는 가없는 겁(劫)에서 선지식(善知識)을 만나고, 이도(異道)의 몸에서도
자심이 허망하게 보는 허물을 떠나는 것만은 제외 되리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탐애(貪愛)는 어머니가 되고
무명(無明)은 아버지이며,
경계 요달함은 부처이고
모든 사(使)는 아라한 이요,
음취(陰聚)는 승(僧)이 된다 함이니
무간의 상속함 끊으면
다시는 업의 간잡(間雜) 없이
진여인 무간을 얻으리라.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저희를 위하여 여래의 지각(知覺)의 상을 말씀하옵소서.”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여실히 인무아와 법무아를 알며, 여실히 두가지 장(障)을 능히 알았으므로
두 가지 번뇌를 멀리 떠났나니 대혜여, 이를 여래의 여실한 지각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이 이 법을 얻은 자도 또한 부처라 이름하리니
대혜여, 이러한 인연으로 나는 一승을 말하노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두 무아(無我)와 二장(障)과
두 번뇌를 잘 알아서
부사의변(不思議變)을 얻으면
이를 부처의 지각이라 이름하네.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대중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나는 과거의 일체 부처님께서다'라고 하시며, 또한 여러 가지 『본생경(本生經)』을 말씀하시되, '나는 그 때에 정생왕(頂生王)과 여섯 어금니인 큰 코끼리와 앵무새와 비야바(毗耶婆) 선인(仙人)과 제석왕(帝釋王)과 선안(善眼) 보살이 되었다'라고 하시어, 백천(百千)의 이와 같은 경전에서 모두 본생(本生)을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네 가지 평등에 의하여 여래·응공·정변지는 대중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나는 그 때 포류손불(抱留孫佛)·포나함모니불(抱那含牟尼佛)·가섭불(迦葉佛)이 되었노라'라고 한 것이다.
무엇이 넷이 되는가? 첫째는 자(字)의 평등이요, 둘째는 어(語)의 평등이요, 셋째는 법(法)의 평등이요, 넷째는 신(身)의 평등이다.
대혜여, 이 네 가지 평등법에 의지하기 때문에 부처님·여래께서는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대혜여, 어떤 것이 자(字)의 평등인가? 어떠한 명자(名字)로서 과거 부처님을 부처라 이름하는데, 나도 저 명자와 같고 또한 부처라 이름하니, 저 명자는 저 명자로 더불어 같아서 다름이 없고, 다를 것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혜여, 이를 자의 평등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여러 부처님의 어(語)의 평등인가? 과거 부처님께서는 육십사종의 미묘한 범(梵) 음성인 언어(言語)로서 설법하셨다.
대혜여, 미래의 여러 부처님도 또한 육십사종의 미묘한 범 음성인 언어로 설법하시기를, 가릉빈가(迦陵頻伽 : 극락정토에 있는 새로서 사람머리를 하고 있으며, 울음소리가 미묘함)의 범 음성의 미묘함이 더하지도 줄지도 아니하며, 다르지 않고 차별도 없으리니, 대혜여, 이를 여러 부처님의 어(語)의 평등함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여러 부처님의 신(身)의 평등인가? 대혜여, 나와 여러 부처님의 법신과 색신(色身)과 상호(相好)로 장엄함도 다름없고 차별도 없지만, 오직 제도할 중생들인 저와 저 중생의 여러 가지로 나는 곳을 따라서 여러 부처님·여래가 여러 가지 몸을 나타낸 것이니, 대혜여, 이를 여러 부처님의 신의 평등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여러 부처님의 법(法)의 평등함인가? 저 부처님과 또한 나도 37보리분(菩提分) 법과 10력(力), 4무외(無畏) 등을 얻었으니, 대혜여, 이를 여러 부처님의 법의 평등함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이 네 가지 평등한 법에 의하므로 여래는 대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 과거에 정생왕(頂生王) 등이었다'라고 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가섭불(迦葉佛)과 포류손불(抱留孫佛)과
포나함불(抱那含佛)이 나라고
여러 불자에게 말함은
네 가지 평등함에 의한 것이었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어느 밤에는 큰 보리를 증득하였으며, 어느 밤에는 반열반(般涅槃)에 들겠으며, 나는 그 중간에 한 자(字)도 말하지 아니했으며, 부처님의 말씀은 말씀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세존이시여, 어떠한 뜻에 의하여 '부처님의 말씀은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여래는 두 가지 법에 의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하였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자신이 안으로 증득한 법에 의함이요, 둘째는 본래 머무는 법에 의함이니, 나는 이 두 법에 의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대혜여, 어떤 것이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법에 의함인가? 저 과거의 여러 부처님·여래께서 증득하신 법이니, 나도 또한 이와 같이 '더하지도 줄지도 않는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모든 경계'를 증득하여 언어(言語)로 분별하는 상을 떠나고, 두 가지 명자(名字)를 떠났노라.
대혜여, 어떤 것이 본래 머무는 법인가? 대혜여, 말하자면 본래 다니던 길이 평탄한 것이니, 비유컨대 금·은·진주 등의 보물이 그곳에 있는 것과 같다.
대혜여, 이를 법성(法性)의 본래 머무는 곳이라 이름함이니, 대혜여, 여러 부처님·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거나, 세상에 출현하시지 아니 하거나 간에 법성(法性), 법계(法界)의 법은 법의 제자리에 머물러서 법의 증득함이 상주(常住)함은 성(城)의 본 길과 같다.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벌판인 들 가운데를 가다가 본 성의 평탄하고 바른 길을 보고 향하여 곧 성을 따라 들어가며, 성에 들어가서는 여러 가지 쾌락을 누리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과 같다.
대혜여, 그대의 뜻에는 어떠한가? 저 사람이 이 길을 처음 만들고서 성을 따라 들어간 것인가? 또한 여러 가지 모든 장엄을 처음으로 만든 것인가?"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나와 과거의 일체 여러 부처님의 법성·법계의 법은 제자리에 머물러서 법을 증득함과 상주(常住)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대혜여, 나는 이 뜻에 의하여 대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어느 밤에는 큰 보리를 증득하였으며, 어느 밤에는 반열반(般涅槃)에 들겠으며, 이것의 중간에 한 자(字)도 말하지 아니 하였으며, 또한 이미 말했고 앞으로 말하며, 현재 말함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어느 밤엔 도(道)를 이루었고
어느 밤엔 열반하리며,
이것의 중간에도
나는 전혀 말한 바가 없노라.
안으로 몸소 증득한 법으로서
나는 이와 같이 말했으니,
시방(十方) 부처님과 나의
모든 법은 차별이 없도다.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다시 청하여 말하였다.
"원하오니 세존께서는 일체법의 있고 없는 모양을 말씀하시어 저희와 다른 보살 대중으로 하여금 이를 듣고 있고 없는 상을 떠나서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이 많이 두 견해에 떨어지니, 무엇이 두 견해인가? 첫째는 유(有)를 보는 것이요, 둘째는 무(無)를 보는 것이니, 모든 법이 있음을 보며, 모든 법이 없음을 보기 때문에 구경(究竟)법이 아닌데서 구경인 생각을 낸다.
대혜여, 어떤 것이 세상 사람의 유(有)의 견해에 떨어진 것인가? 말하자면 '실로 인연이 있어서 모든 법을 내었기에 실유(實有)가 아닌 것이 아니요, 실로 법이 생(生)함이 있기에 법이 생(生)함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함이다.
대혜여, 세상 사람이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이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라고 말함이며, '세간에 인도 없고 연도 없이 모든 법을 생(生)한다'라고 비방함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세간 사람의 무(無)의 견해에 떨어진 것인가? 말하자면 탐욕[貪]과 성냄[嗔]과 어리석음[痴]을 말하기를, '실로 탐·진·치가 있다'라고 하며, 또한 말하기를, '탐·진·치가 없다'라고 하여 있고 없음을 분별함이다.
대혜여, 만약 어떠한 사람이 있어 말을 하기를, '모든 법은 없으니, 모든 물상(物相)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대혜여, 만약 또한 어떤 사람이 있어서 말을 하기를, '성문과 벽지불은 탐욕도 없고 성냄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다'라고 하며, 다시 말하기를, '먼저는 있었다'라고 한다면, 이 두 사람은 어떤 사람이 수승하고 어떤 사람은 같지 못한가?"
대혜보살은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먼저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없다' 하는 이 사람이 같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나의 물음을 잘 아는구나. 대혜여, 먼저는 실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고 말하고, 나중에는 없다고 말함은 위세사(衛世師)들과도 같지 않을 뿐이니, 그러므로 같지 못한다.
대혜여, 일체 성문·벽지불의 법을 없애는 것과도 같지 않을 뿐이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실로 안과 바깥의 모든 법이 없기 때문이며, 동일함도 다름도 아니기 때문이며, 모든 번뇌가 동일함도 다름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혜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법은 안 몸[內身]에서도 가히 얻을 수 없으며, 바깥 법에서도 또한 가히 얻을 수 없으니, 실체(實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불허(不許)한다.
대혜여, 내가 불허한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는 것을 불허함이니, 그러므로 저 사람은 성문·벽지불의 법을 없앤다. 무슨 까닭인가? 여러 부처님·여래는 고요한 법을 아시고 성문과 연각은 법을 보지 않기 때문이며, 능박(能縛)과 소박(所縛)의 인(因)이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만약 능박이 있으면 반드시 소박이 있을 것이요, 만약 소박이 있으면 반드시 능박의 인이 있을 것이다.
대혜여, 이와 같이 말하는 자는 모든 법을 없애는 것이라 이름할 것이니, 대혜여, 이를 법상(法相)이 없는 것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나는 이러한 뜻에 의하여 다른 경(經)에서 말하기를, '차라리 아견(我見)을 일으키기를 수미산(須彌山)의 크기와 같이 하여 교만을 일으킬지언정 모든 법은 공(空)하여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라고 한다.
대혜여, 증상만(增上慢)인 사람으로서 '모든 법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는 모든 법을 없애고,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인 견해에 떨어진 것이며, 제
마음에서 나타난 법을 본 것이고, 외물(外物)은 무상(無常)하므로 모든 모양을 되풀이하여 저것과 저것이 차별이 있음을 본 것이며, 음(陰)·계(界)·입(入)의 상속하는 자체와 저것과 저것의 인(因)이 되풀이함으로 생기는 것을 본 것이니, 자심이 허망하게 분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이와 같은 사람은 부처님의 법을 없애는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유(有)와 무(無)는 이변(二邊)인데
그를 마음의 경계로 삼으니,
모든 경계의 법을 떠나야만
평등하여 마음이 고요하리.
경계의 법을 취함이 없고
비유비무(非有非無)도 없애고서,
진여(眞如)와 같이 본래 있는 것으로
그것이 성인의 경계라네.
본래 없는데 생(生)함이 있고
생겼다가 도로 없어지며,
유(有)도 아니요 무생(無生)도 아닌 것으로,
그는 나의 가르침에 머물지 못하리.
외도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나도 아니고 또 다른 이도 아니고
인연으로부터 이룬 것 아니니,
어찌 있다고들 말하랴.
만약 인연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면
어찌 없다고들 말하랴.
사견(邪見)으로 생법(生法)을 논함이요
망상으로 유무(有無)를 계탁(計度)함이다.
만약 생한 바가 없는 것을 안다면
또한 멸한 바가 없는 것도 알리.
세상이 모두 공적(空寂)함을 관(觀)한다면
그는 유무(有無)에 떨어지지 않으리.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은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여래·응공·정변지·천인사(天人師)께서는 저희와 일체 보살을 위하여 정법(正法)을 수행하는 모양을 건립하십시오. 저희와 일체 보살마하살이 정법을 수행하는 모양을 잘 알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함을 얻을 것이며, 일체 허망한 각(覺), 관(觀)과 마(魔)의 일을 따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내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두 가지 법이 있어서 여러 부처님·여래·보살·성문·벽지불이 정법(正法)을 수행하는 모양을 건립하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정법을 건립하는 모양[宗通]이요, 둘째는 정법을 건립함을 말하는 모양[說通]이다.
대혜여, 어떤 것이 정법을 건립하는 모양인가?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수숭한 법의 모양이니, 문자(文字)와 어언(語言)과 장구(章句)를 떠나고, 능히 무루(無漏)인 정계(正戒)와 여러 가지 증득하는 지위에 나아가서 상법(相法)을 수행하고 모든 외도의 허망한 각(覺), 관(觀)과 모든 마(魔)의 경계를 떠나며, 일체 외도와 모든 마군(魔)을 항복 받고, 자신의 안으로 증득하는 법을 나타내 보이며 여실히 수행함이니, 대혜여, 이를 정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인가? 구부(九部)인 여러 가지 교법을 설하여 '동일함·다름·있음·없음'이라고 하여 상(相)을 취하는 것으로부터 떠나게 하기를, 먼저 선하고 교묘(善巧)한 방편을 말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좋아하는 곳에 들게 한다. 중생이 믿는 저와 저의 법을 따라서 저와 저의 법을 말함이니, 대혜여, 이를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정법을 닦고 배울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안으로 증득함을 건립함과
설법하는 모양과 이름을
만약 능히 잘 분별한다면
다른 교를 따르지 아니하리.
바깥 모든 법은 실로 없으니,
범부의 분별함이듯이
만약 모든 법이 허망하다면
어찌하여 해탈을 취하랴.
모든 함이 있는 생멸(生滅) 등의
상속함을 관찰한다면
두 견해만 증장(增長)함이요,
인연을 능히 알지 못하리.
열반은 식(識)을 떠난 것이라
오직 이 한 법만이 진실함이니,
세간은 허망하기가 환과 꿈과 같고
파초(芭蕉)와 같은 것으로 관찰함이여.
비록 탐·진·치가 있은들
짓는 자가 있지 않으리.
애욕으로부터 모든 음(陰)이 생겼으니,
있는 것은 모두 환과 꿈이라네.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또다시 청하여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여러 보살을 위하시어 진실 아닌 망상(妄想)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법이 진실 아닌 망상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일체 중생을 편안하게 하며, 일체 중생을 이익 되게 하며,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며, 일체 세간의 천인(天人)을 애민(哀愍)히 여겨 나에게 이러한 일을 묻는구나.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 중생이 진실 아닌 허망한 생각에 집착한 것은 여러 가지 허망한 법을 봄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허망한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인 모든 경계에 집착한 탓이며, 자심(自心)의 견(見)에 들어가서 허망한 생각을 내는 탓이며, 유(有)와 무(無)의 두 견해와 붕당(朋黨)의 비법(非法) 더미 가운데 떨어져서 외도의 허망한 이견(異見)으로 훈습함을 증장하고 성취한 탓이다.
대혜여, 바깥 모든 희론의 뜻[義]을 취하므로 허망한 심(心)과 심수법(心數法)을 일으킴이 풀 묶음과 같아서 나와 내 것이라 하는 법을 분별한다.
대혜여, 이러한 뜻으로 진실 아닌 망상을 내는 것이다."
대혜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진실 아닌 허망한 생각에 집착하는 것은 여러 가지 허망한 법을 봄으로 나온 것입니다. 허망한 능취와 가취인 일체 경계에 집착하여 자심의 견에 들어가서 허망한 생각을 내며, 유·무의 두 견과 붕당인 분별 더미 가운데 떨어져서 외도의 허망한 이견으로 훈습함을 증장(增長)하고 성취하며, 바깥 모든 희론 의를 취하므로 진실 아닌 망상이 허망한 심과 심수법을 일으키는 것이 풀 묶음과 같아서, 나와 내 것이라 함을 취한 것이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제일의제(第一義諦) 또한 마땅히 그와 같아서 아함(阿含)인 성인이 말씀하신 바 법을 멀리 떠났으며, 모든 근(根)을 멀리 떠났으며, 세 가지로 세우는 법과 비유와 인(因)의 모양을 멀리 떠났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 한 곳에는 여러 가지의 분별 집착과 여러 가지의 허망한 생각이 나는데, 무슨 까닭으로 제일의제에는 허망한 분별로서 분별을 내는 것이 붙지 아니합니까?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설법은 평등한 말이 아니오며, 까닭 없이 말한 것입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한 곳은 생(生)함이고, 한 곳은 생함이 아닌 때문입니다.
만약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면, 두 붕당에 떨어질 것이니, 허망한 분별로서 분별을 내는 데에 집착함을 보기 때문이며, 세존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요술쟁이가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하여 여러 가지 색상을 내는 것과 같다'라고 하신 때문이며, 세존께서 말씀하신 '여러 가지 허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말할 수 없지만, 분별을 떠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신 때문입니다.
이와 같다면 여래께서는 세간론(世間論)에 떨어지고, 사견(邪見)인 마음 붕당인 더미 가운데에 들어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허망을 분별함은 생도 아니요[不生], 멸도 아니니[不滅], 무슨 까닭인가? 있고 없음을 분별하는 상을 내지 않는 까닭이며, 일체 바깥에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아니한 까닭이다.
대혜여, 자심을 보기를 여실히 보기 때문에 허망한 분별이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니다.
대혜여, 나의 이 말한 바는 오직 어리석은 범부를 위하여 말함이니, 자심의 분별로 여러 가지를 분별하여 먼저의 마음을 따라 나며, 여러 가지를 분별하여 상에 집착함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만약 내가 말하지 아니한다면 어리석은 범부는 자신의 허망한 각지(覺知)를 떠나지 못하고, 나와 내 것이라 하는 견해에 집착함을 떠나지 못하며, 인과(因果)인 모든 인연의 허물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여실히 두 가지 마음을 깨달아 알므로 일체 모든 지위의 행상을 잘 알며, 모든 부처님의 자신이 행하는 바 안으로 증득하는 경계를 잘 알며, 5법체(法體)를 굴리고 분별상을 보아서 여래의 지위에 들어갈 것이다.
대혜여, 이러한 일로 인하므로 나는 일체 중생들이 진실 아닌 허망에 집착하여 마음을 낸다고 말한다.
제 마음에서 여러 가지의 모든 의(義)를 분별하니, 이러한 뜻으로 일체 중생이 여실의(如實義)를 알면 해탈을 얻는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인(因)과 연(緣)으로부터
세간이 생겼으니,
망상으로 사구(四句)에 집착하기에
그는 나의 설법 알지 못하네.
세간은 유무(有無)로 생함이 아니고
유무를 떠나서 불생(不生)인데,
어찌하여 어리석은 이들은
인연에 의하여 생긴 법을 분별하는가?
만약 능히 세간(世間)을
유무를 유무 아닌 것으로 보면,
허망한 마음을 굴려서
진실한 무아(無我)법 얻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함이 아니요
인연에 의하여 생겼으니,
모든 인연이 바로 과(果)이지만
과로부터 유(有)를 생함이 아니네.
과로부터 과를 생함도 아니니,
만약 그렇다면 두 과가 있어야 하리.
만약 두 과가 있다면,
과로부터 과를 얻기 어려우리라.
생각[念]과 생각할 바[所念]를 떠나
모든 유위(有爲)법을 관찰하면
유심(唯心)의 법임을 보게 되리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마음의 양체(量體)와 형상은
인연과 모든 법을 떠난 것이요,
구경엔 참되고 청정함 있으니
나는 이와 같은 심량(心量)을 말한다.
세제아(世諦我)는 거짓 이름함이니
그는 진실한 일 없는 것이며
모든 음(陰)도 거짓 이름이라
가명(假名)일 뿐 진실 법이 아니라네.
네 가지 평등함이 있으니,
상(相)과 인(因)과 생(生)과 무아(無我)라,
이와 같은 네 가지 평등은
수행하는 자의 법이다.
일체 모든 견(見)을 굴리며
능(能)·소(所)의 분별을 떠나
견(見)도 아니고 또한 생(生)함도 아니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유(有)도 아니요 무(無)의 법도 아니며,
유무인 모든 법을 떠나서
이와 같이 심(心)과 법을 떠났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진여(眞如)와 공(空)의 실제(實際)와
열반과 법계(法界)이며,
뜻대로 나는 몸인 몸과 마음이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분별은 훈습에 의해 묶이고
마음은 경계에 의하여 나지만,
중생은 바깥 경계만을 보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볼 수 있는 바깥 법은 없지만,
마음이 모두 이와 같은 몸과
살림살이와 사는 곳을 나타내나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한다.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한 바와 같아서 그대와 여러 보살은 음성과 언어의 뜻[義]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시니,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보살이 언어의 뜻에 집착 않은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언어가 되며, 어떤 것이 뜻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음성인가? 끝없는 예로부터 훈습과 언어와 명자로 화합하여 분별하는 것이 목구멍과 코와 이[齒]와 볼과 입술과 혀가 어울려서 움직이고 구름을 따라 저 언어를 내어 모든 법을 분별함이니, 이를 음성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뜻[義]이 되는가? 보살마하살이 듣고[聞] 생각[思]하고 닦는[修] 거룩한 지혜의 힘에 의하여 고요한 곳에서 홀로 앉아 사유(思惟)하기를, '어떤 것이 열반이며 열반에 나아가는 도(道)인가?' 하여, 안으로 자신이 수행하는 경계와 지위마다 곳곳에서 수행하는 수승한 모양을 관찰하여 저 끝없는 예로부터 훈습의 인(因)을 전변(轉變)시키니, 대혜여, 이를 보살이 뜻[義]의 모양을 잘 아는 것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언어의 뜻[義]을 잘 아는 것인가? 대혜여, 보살은 언어와 음성과 뜻이 동일함도 아니며, 다름도 아님을 보는 것이다.
대혜여, 만약 언어가 뜻과 다르다고 한다면 마땅히 저 언어와 음성을 따르므로 뜻이 있지 아니할 것이지만, 뜻은 저 언어에 의하여 요별(了別)된다.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켜고 여러 가지 보배를 관찰하기를, 이곳은 이와 같고 이와 같으며, 저 곳은 이와 같고 이와 같다고 함과 같다.
대혜여, 보살은 언어와 음성에 의하여 언어(言語)를 떠남을 증득하고, 자신이 안으로 수행하는 뜻에 들어간다.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은 생함도 아니며 멸함도 아니요, 자성(自性)이 본래 열반에 든 것이다.
삼승(三乘)과 일승(一乘)과 5법(法)인 마음과 모든 법체(法體) 등을 언어와 음성과 뜻과 같이 모든 인연에 의하여 상(相)을 취하고, 유무(有無)의 견(見)에 떨어져서 모든 법을 비방하기도 하며, 모든 법체가 각각 다른 모양에 머무른 것임을 보고 다른 모양이라 분별하여 이와 같이 분별하고는 여러 가지 법상(法相)이 환(幻)과 같음을 보며, 여러 가지 분별을 보게 되니, 대혜여, 비유컨대 환인 여러 가지를 달리 분별함과 같아서 성인이라 이르지 못할 것이요, 이는 범부의 보는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언어와 음성을 분별하여
모든 법을 건립하였으니,
저를 건립하기 때문에
악도(惡道)에 떨어지네.
5음(陰) 가운데 나가 없으며,
나 가운데에도 5음이 없지만
저 망상만 아니라면,
또한 나가 없는 것도 아니네.
범부는 허망하게 분별하여
모든 법 참으로 있다고 보지만,
만약 저 보는 바와 같다면
일체를 마땅히 참으로 보아야 하리.
일체법이 만약 없다면
염정(染淨)도 또한 없겠지만,
저 보는 것은 이와 같지 않으니,
또한 없는 것도 아니네.
대혜여,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하여 지혜(智)와 식(識)의 모양을 말하리니, 그대와 여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저 지혜(智慧)와 식(識)의 모양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여실히 지혜와 식의 모양을 수행함으로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대혜여, 세 가지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세간지(世間智)요, 둘째는 출세간지(出世間智)요, 셋째는 출세간상상지(出世間上上智)이다.
대혜여, 식은 생멸(生滅)하는 모양이요, 지혜는 생멸하는 모양이 아니다. 또한 대혜여, 식은 저 유무의 여러 가지 모양에 떨어진 것이고, 저 유무의 여러 가지 모습의 인(因)에 떨어진 것이다.
대혜여, 지혜의 모양이란 유상(有相)과 무상(無相), 유·무의 인상(因相)을 멀리 떠났으니, 지혜의 모양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모든 법에 나아감은 식의 모양이라 이름하며, 모든 법에 나아가지 아니함은 지혜의 모양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지혜는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을 관찰함이요, 둘째는 생하는 모양과 멸하는 모양을 관찰함이요, 셋째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모양을 관찰함이다.
대혜여, 어떤 것이 출세간지(出世間智)인가? 성문과 연각이 허망하게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을 분별함이니, 이를 출세간지라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출세간상상지(出世間上上智)인가? 부처님·여래·보살마하살이 일체 모든 법이 고요하여 생하지 않고 멸하지 않음을 관찰하여, 여래지(如來地)에서 무아(無我)로 증득하는 법을 얻어서 저 있다 없다고 하는 붕당의 두 견해를 떠난 것이다.
대혜여, 말하는 바 지혜라는 것은 장애가 없는 모양이요, 식이라는 것은 저 모든 경계를 식별하는 모양이다.
대혜여, 식이라는 것은 화합하여, 지음[作]과 짓는 바[所作]를 일으키니, 식의 모양이 된다고 이름함이요, 걸림 없는 법과 서로 합하는 것은 지혜의 모양이 된다고 이름함이다.
대혜여, 얻을 바 없는 모양[無所得相]은 지혜가 된다고 이름함이니,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로써 수행하는 경계이므로 모든 법에 출입함이 물 속의 달과 같으니, 이를 지혜의 모양이라 이름한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식(識)은 능히 모든 업을 모으며
지혜는 능히 분별을 요달(了達)하고
혜(慧)는 능히 무상(無相)과
묘한 장엄의 경지를 얻는다.
식은 경계에 속박이 되나
지혜는 모든 경계를 요달하며,
무상(無相)과 수승한 경계에는
혜(慧)가 머무르는 곳이라네.
심(心)과 의(意)와 의식(意識)이
모든 상을 멀리 떠났으나,
성문(聲聞)은 법을 분별하니
이는 제자(弟子)가 아니라네.
고요하고 수승한 정진·인욕과
여래의 청정한 지혜여,
착하고 수승한 지혜를 내지만
모든 행하는 바를 멀리 떠났네.
나에게 세 가지 지혜가 있으니,
저에 의하여 성인이라 이름을 얻었고,
저 생각에서 분별하여
능히 유무(有無)를 들려주네.
이승(二乘)의 행을 떠났으며
지혜로는 경계에서
유무를 취하는 생각과
성문으로부터 나온 것을 떠났다네.
오직 이 마음뿐이며
지혜의 때[垢] 없는 모양에
능히 들어가느니라.
대혜여, 외도는 아홉 가지 전변(轉變)인 봄[見]이 있으니, 무엇이 아홉 가지인가? 첫째는 형상(形相)의 전변(轉變)이요, 둘째는 상(相)의 전변이요, 셋째는 인(因)의 전변이요, 넷째는 상응(相應)의 전변이요, 다섯째는 견(見)의 전변이요, 여섯째는 물(物)의 전변이요, 일곱째는 연료별(緣了別)의 전변이요, 여덟째는 작법요별(作法了別)의 전변이요, 아홉째는 생(生)의 전변이니, 대혜여, 이를 아홉 가지 전변인 견(見)이라 이름한다.
아홉 가지 전변인 견에 의하므로 전변을 말하기를, 유(有)와 무(無)로부터 나는 것이라 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외도 형상의 전변인가? 대혜여, 비유컨대 금(金)으로 장엄구인 가락지와 비녀와 영락을 만들면, 여러 가지가 각기 달라서 형상은 비록 다르나 금의 체성(體性)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니, 일체 외도들이 '모든 법의 형상이 전변한다'라고 분별함 또한 이와 같다.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모든 법이 전변함에 의하여 인한 것이다'라고 분별하니, 대혜여, 그러나 저 모든 법은 또한 이와 같음도 아니며, 이와 같지 아니함도 아니니, 분별에 의한 까닭이다.
대혜여, 이와 같은 일체 전변도 또한 그러하다고 마땅히 알 것이니, 비유컨대 젖과 타락[酪]과 술과 과일 등이 익어감에 하나하나 전변함과 같아서 일체 외도의 '전변이다'라고 분별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그러나 진실인 법이 있어 전변할 것이 없으니, 그는 자심(自心)에서 유(有)와 무(無)를 능히 취하리라 보고, 유와 무를 분별한 때문이다.
대혜여, 일체 범부도 그와 같아서 자심의 분별에 의하여 일체 모든 법을 낸 것이다.
대혜여, 법이 생함이 없고, 법이 전변함도 없는 것이 환과 꿈속에서 모든 색상을 보는 것과 같다.
대혜여, 비유컨대 꿈속에서 모든 일을 보는 것은 석녀(石女)가 나고 죽는 것과 같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전변함과 때[時]와 형상과
사대(四大)의 종류와 모든 근(根)이며,
중음(中陰)과 모든 취하는
이러한 취함이란 지혜가 아니네.
인연이 세간을 내었다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니,
인연과 세간은
건달바(乾闥婆)의 성(城)과 같다.
그 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일체 모든 법의 상속(相續)과 상속 아닌 것을 잘 말씀해 주십시오. 원하오니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의 상속과 상속 아닌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와 일체 여러 보살 대중이 모든 법의 상속과 상속 아닌 모양인 선교(善巧) 방편을 잘 알아, 알고서는 모든 법의 상속과 상속 아닌 모양에 집착하는 데 떨어지지 아니하고, 일체법의 상속과 상속 아닌 언어와 문자와 망상을 떠나고서 힘이 자재한 신통을 얻어 노닐면서 교화하며, 시방의 일체 불국토 대중 가운데서 다라니(陀羅尼)1)의 문(門)으로 인(印)할 바를 잘 인(印)하며, 10무진구(無盡句) 굴릴 바를 잘 굴리며, 여러 가지 변화와 광명이 빛나는 것은 비유컨대 사대(四大)와 해와 달과 여의주와 같아서 자연히 행하여 중생이 수용하게 하며, 모든 지위에서의 자심이 분별하는 모양을 나타낸 것을 속히 떠나고, 일체법이 환과 같고 꿈과 같음을 보이며, 여러 부처님의 땅에 의지함을 보이기도 하여 중생계에서 그의 적응할 바를 따라서 설법하고 섭취(攝取)하여 그들로 하여금 일체 모든 법이 환상과 같고 꿈같은 데에 머물게 하여 있거나 없다고 하는 일체 붕당(朋黨)과 생멸(生滅)인 망상과 다른 언설과 뜻을 떠나고, 몸을 전변(轉變)하여 자재하게 수승한 곳에 가서 태어나리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모든 법의 상속(相續)과 상속 아닌 것은 성문 같은 이의 뜻[義]에 집착한 상속과 상(相)에 집착한 상속과 연(緣)에 집착한 상속과 유무(有無)에 집착한 상속과 생(生)과 불생(不生)을 분별하는 것에 집착한 상속과 멸(滅)과 불멸(不滅)을 분별하는 것에 집착한 상속과 승(乘)과 비승(非乘)을 분별하는 것에 집착한 상속과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분별하는 것에 집착한 상속과 지위와 지위의 모양을 분별하는 것에 집착한 상속과 스스로 분별함을 분별하는 것에 집착한 상속과 유무(有無)를 분별하여 외도와 붕당에 드는 것에 집착한 상속이니, 대혜여, 이와 같은 어리석은 범부는 한량없는 다른 마음으로 분별함이 상속하고, 어리석게 분별함은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것과 같아서 자심의 견(見)에 의하여 분별의 실타래가 상속하며 어울림을 좋아하여 자기도 얽으며, 남도 얽어서 유(有)와 무(無)에 집착하여 화합함이 상속한다.
대혜여, 그러나 상속과 상속 아닌 모양은 없으니, 모든 법이 고요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혜여, 보살은 일체법을 보아도 분별하는 상이 없으니, 그러므로 '일체 보살의 고요한 법문을 보았다'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그는 여실히 바깥 일체법을 능히 알아서 유와 무를 떠나며, 여실히 자심(自心)의 보는 상[見相]을 깨달아서 모양이 없는 자심상(自心相)에 들어간다.
대혜여, 유무법을 분별함을 봄으로 상속이라 이름함이요, 모든 법이 고요함을 보았음으로 상속이 아니라 함이니, 상속하는 상(相)도 없으며, 모든 법상(法相)에 상속함이 없는 것이다.
대혜여, 속박이 없으며 해탈이 없지만, 두 견(見)에 떨어져서 자심으로 분별하므로 속박이 있고 해탈이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의 있음과 없음을 능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세 가지 상속이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및 애락(愛樂)으로 난 것이니, 이 상속 때문에 후생(後生)이 있다.
대혜여, 이 상속은 중생의 상속이니, 오도(五道)에 태어남이다.
대혜여, 상속을 끊는 이는 상속이 없으며, 상속의 모양이 없느니라.
대혜여, 인연인 상속에 집착하므로 3유(有)에 태어나서 모든 식(識)이 전전(展轉)히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니, 3해탈문을 보고 3유에 집착된 인(因)인 식(識)을 전멸(轉滅)하면, '상속을 끊은 것이다'라고 이름한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진실이 아님을 허망하게 분별하니,
상속의 모양이라 이름하네.
저를 능히 여실히 알면
상속의 그물 곧 끊어지리.
만약 소리를 취해 진실이라 한다면
누에가 고치로 자기를 얽음과 같으니,
자심의 망상이 속박하는데도
범부는 그를 능히 알지 못하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어떠한 분별심(分別心)들로서 어떠한 법들을 분별하는데, 저것과 저것의 법은 저것의 이와 같고 이와 같은 체상(體相)이 없고, 오직 자심의 분별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오직 자심의 분별 뿐이요, 저 법상이 아니라면, 세존의 말씀과 같이 일체 모든 법은 염(染)과 정(淨)이 없겠으니, 무슨 까닭인가?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 모든 법은 허망한 분별로 나타난 것이요, 실체(實體)가 없다'라고 하신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그대의 말한 바와 같다.
대혜여, 일체 어리석은 범부는 모든 법을 분별하지만, 저 모든 법은 이와 같은 상이 없는 것이요, 허망한 분별로서 '실로 있다'라고 한 것뿐이다.
대혜여, 그는 범부들이 허망하게 모든 법의 체상(體相)을 분별함인 허망한 각지(覺知)인 것이요, 여실한 견(見)은 아니다.
대혜여, 성인의 일체 모든 법의 자체와 성질과 모양을 아는 것과 같이하여 성인의 지혜에 의지하며, 성인의 견해에 의지하며, 성인의 혜안(慧眼)에 의지하여 여실히 모든 법의 자체를 알 것이다."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여러 성인들과 같이 성지(聖智)에 의하고, 성견(聖見)에 의하고, 성혜안(聖慧眼)에 의하면 육안(肉眼)과 천안(天眼)이 아니며, 일체 모든 법의 체상을 깨달음도 이와 같은 상(相)이 없어서 범부의 허망한 분별과 같지 아니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면 어리석은 범부로서 허망한 망상(妄想)을 떠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능히 여실하게 성인의 경계를 깨달아서 허망한 식(識)을 떠나야 할 것이다."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 어리석은 범부는 전도(顚倒)된 견(見)이 아니며, 전도되지 않은 견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능히 성인의 경계인 여실한 법체를 보지 못하고 전변하는 유무(有無)의 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성인도 또한 분별함이 있으나, 일체 여러 가지의 모든 일은 이와 같은 상이 없으니, 자심에서 경계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 성인도 법체(法體)가 있음을 보고 법상(法相)을 분별하지만, 세존께서는 인(因)이 있다고 말씀하지 아니 하시며, 인이 없다고도 말씀하지 아니 하시니, 무슨 까닭인가? 법상(法相)이 있다는 데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경계를 보되 이와 같이 보지 아니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무궁(無窮)한 허물이 있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있는 바 법상은 자체상(自體相)이 없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법의 체상이 있다고 분별함을 인하여 모든 법이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어찌 분별함에 저와 같이 분별하지 아니하는지, 마땅히 저와 같이 분별함에 저와 같이 분별하지 아니하는지, 마땅히 저와 같이 분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분별상(分別相)이 다른 모양이며, 자체상(自體相)도 다른 모양입니다.
세존이시여, 저 두 가지 원인은 서로 같지 아니하여 저것과 저것의 분별과 법체가 서로 다른데, 어찌하여 범부는 이와 같이 분별하는지, 이의 인(因)은 성립하지 못한 것이 저 보는 바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일체 중생의 허망한 분별심(分別心)을 끊기 위하므로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저 범부의 허망한 분별과 같은 이러한 법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모든 중생의 유(有)와 무(無)로 보는 일을 막으시면서 실법(實法)인 거룩한 지혜의 경계에 집착하게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또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무(無)의 견해에 떨어지게 합니까?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은 고요하여 모양이 없고, 거룩한 지혜의 법체(法體)는 이와 같은 상(相)이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일체 모든 법이 고요하여 모양이 없다고 말하지 아니 하였으며, 또한 모든 법이 모두 없다고 말하지 아니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無)의 견해에 떨어지게 아니하였으며, 또한 일체 성인의 경계가 이와 같은 데에 집착하게 아니하였으니, 무슨 까닭인가? 내가 중생을 위하여 놀래는 것과 두려워함을 떠나게 함이니, 모든 중생이 끝없는 세월로 오면서 모든 법의 체상(體相)이 실로 있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성인만이 법의 체상이 실로 있는 것을 안다'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모든 법이 고요하여 모양이 없다'라고 말하였다.
대혜여, 나는 '법체가 있다·없다'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나는 '자신의 여실히 증득하는 법'을 말하니, 나의 법을 듣고 모든 법이 고요하여 모양이 없는 것을 수행하면 진여(眞如)의 모양이 없는 경계를 얻어 보고, 제 마음에서 나타난 법에 들어가서 바깥 모든 법의 있다 없다고 보는 것을 멀리 떠나고 3해탈문을 얻을 것이며, 얻고는 여실한 인(印)으로 모든 법을 잘 인(印)하며,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지혜를 관찰하여 있다 없다라고 보는 것을 떠날 것이다.
대혜여, 보살은 마땅히 모든 법이 생(生)하지 않는다고 내세우지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법을 내세우면 모든 법이 있는 것과 같을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모든 법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대혜여, '모든 법이 있다'라고 내세움으로 인하여 일체법이란 내세우는 법 가운데서 같다고 말함이니, 무슨 까닭인가? 그는 같지 않다고 하여 일체법이 생함이 아니라고 내세운 까닭이다.
그러므로 일체법을 내세우며 말하는 이 말은 저절로 깨진다. 무슨 까닭인가? 내세우는 가운데 저 내세움이 없는 까닭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저 내세움은 나지 않으리니, 모든 법의 차별이 없는 모양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고 내세우는 것은 저절로 깨짐이라 이름함이니, 그는 3법과 5법이 화합하여 있는 것을 내세운 것이기 때문에 내세운 것을 떠나면 있음과 없음이 나지 않는다.
대혜여, 저의 내세움은 모든 법 가운데에 들어가서 있고 없는 법을 보지 않은 것이다.
대혜여, 만약 그가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라고 내세워서 말하기를, '일체법은 생함이 아니라'라고 한다면, 대혜여, 이와 같이 말하는 이는 내세우는 것이 곧 깨지리니, 무슨 까닭인가? 내세우는 것을 떠나면 있고 없는 모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니, 대혜여, 그의 내세움은 '저 일체가 생하지 않는 법체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다'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니, 많은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또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라'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3법과 5법의 저것과 저것의 인(因)이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대혜여, 또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다'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저 3법과 5법이 함이 있는 무상(無常)을 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법이 생함이 아니다'라고 내세우지 말 것이다.
대혜여, 이와 같이 마땅히 '일체법이 공(空)하며 일체 모든 법이 환과 같고 꿈과 같다'라고 말하니, 보지 못한 모양을 보았기 때문이며, 모든 법의 모양이란 미혹한 견(見)과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며, 오직 일체 어리석은 범부들로 하여금 놀래고 두려워함을 떠나게 함이다.
대혜여, 모든 범부는 있다 없다고 하는 사견(邪見)에 떨어져 있으므로 범부들은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하는 것을 들으면, 놀래고 두려워한다.
모든 범부는 듣고 놀래며 두려워하고는, 대승법을 멀리 떠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체(自體)도 없고 식(識)도 없으며
아리야식(阿梨耶識)도 없는데,
어리석은 이 허망하게 분별하니,
사견(邪見)은 더러운 시체와 같네.
일체법이란 생함이 아니니
딴 견해로 말이 될 수 없네.
모든 법은 모두 생함이 아니기에
인연으로 이루워짐도 아니네.
일체법은 생함이 아니니,
이와 같은 법을 세우지 말라.
같음과 같음 아님이 이루지 못하니
그러므로 세움이 무너지네.
비유컨대 눈에 병이 있으면
허망하게 털 바퀴를 보는 것과 같아,
있다 없다 분별함은
범부의 허망한 견해라네.
3유(有)란 거짓 이름이며,
진실한 법체가 아니거늘
거짓 이름을 진실인양 고집하여
범부들이 분별을 일으키네.
일과 모양과 거짓 이름이여
마음과 뜻으로 수용하니,
불자는 그를 멀리 떠나서
고요한 경계에 머물러야 하네.
물이 없는데서 물이라고 여김은
짐승들의 허망한 생각이니,
범부의 법을 보는 것이 그러하지만
성인은 그렇지 않다네.
성인은 보는 것이 청정하여
3해탈과 삼매에 나서
생멸(生滅)을 멀리 떠나고
걸림 없는 고요함을 얻었다네.
수행함도 있는 바 없으며,
또한 없는 것도 보지 않아
있고 없는 법 평등하기에
그러므로 성과(聖果)가 난 것이라네.
있고 없는 법은 어떠한데
어찌하여 평등을 이루는가?
그는 마음에서 보지 않음이다.
안과 바깥 법은 무상(無常)하니,
만약 저 법을 능히 없애면
마음을 보고 평등을 이루리라.
그 때에 거룩한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면, 지혜로 관찰함은 능히 눈앞의 경계인 모든 법을 보지 못하고, 그 때엔 오직 내심(內心)임을 잘 알며, 심(心)·의(意)·의식(意識)을 여실히 깨달아서 법을 가히 취함이 없으며, 또한 능히 취함이 없으니, 그러므로 지혜는 또한 능히 분별하여 취할 것이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지혜를 능히 취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모든 법의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과 다르고, 다른 법의 모양과 여러 가지 다른 법체가 같지 아니함을 보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모든 법의 여러 가지 체상(體相)이 다르지 아니함을 보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산과 바위와 석벽과 담과 장막과 나무숲과 풀과 나무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장애한 바이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아주 멀고 아주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늙은이와 젊은이가 눈멀고 어두워서 모든 근(根)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의 다르고 다른 법상(法相)과 다르고 다른 법체(法體)와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이 같지 않음으로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이라면, 세존이시여, 만약 그렇다면 저 지혜는 지혜가 아니오니, 무슨 까닭인가? 눈앞의 사실인 경계를 능히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법의 여러 가지 체상(體相)과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에 다름을 보지 아니하기 때문에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한 것이어서, 만약 그렇다면 저 지혜는 지혜라 말하지 못하리니, 무슨 까닭인가? 사실로 있는 경계를 능히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눈앞의 경계가 있는데, 여실히 보는 것을 지혜가 된다고 이름하며, 만약 산과 바위와 석벽과 담과 장막과 나무숲과 풀과 나무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서 아주 멀고 아주 가까우며, 늙은이와 젊은이가 눈멀고 어두워서 모든 근(根)을 갖추지 못함으로서 능히 알고 보지 못한다면, 저 지혜는 지혜가 아니니, 사실인 경계가 있는데도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아서 '지혜가 없다'라고 말한 이 뜻은 옳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진실한 지혜는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나는 그대가 이와 같이 말한 '경계는 없는 것이요, 오직 자심(自心)의 견(見)이다'라고 하는 것에 의하지 아니하고, 나는 '오직 자심의 견임을 깨닫지 못하고 모든 외물(外物)을 보고 있다 없다고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경계를 보지 아니한다.
지혜로서 경계를 보지 아니한 이는 마음에도 행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나는 '3해탈문에 들어가는 지혜로 또한 볼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모든 범부는 끝없는 세월로 오면서 허망하게 분별하여 희론(戱論)으로 훈습함에 의하여 그 마음을 훈습함으로 이와 같이 분별하여 바깥 경계의 형상과 있음과 없음을 보니, 이와 같은 허망한 마음을 떠나게 하기 위하므로, '일체법이 오직 자심의 견이다'라고 말하였다.
나와 내 것이라 함에 집착하므로 오직 자심임을 능히 깨닫지 못하고, '이는 지혜이며, 이는 경계이다'라고 허망하게 분별한다. '이는 지혜이며, 이는 경계이다'라고 허망하게 분별하므로 바깥의 법을 관찰하기를, 있음과 없음은 보지 못하고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경계와 일이 있는데도
지혜로 능히 보지 못하니,
그는 지혜가 없어 지혜가 아니요.
허망하게 보는 이의 말이다.
모든 법 한량없다 말함도
이 지혜로 능히 알지 못함이요,
장애와 멀고 가까움이라 함도
이는 허망한 지혜며 참 지혜가 아니네.
늙은이와 젊은이, 모든 근(根)이 어두워
능히 지혜를 내지 못하네.
그러나 실로 경계가 있어
그 지혜는 진실한 지혜가 아니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끝없는 몸과 희론인 번뇌와 분별인 번뇌와 환상인 몸에 의하여 '자체법[自法]이다'라고 세우고, 자심이 바깥 경계를 나타내는 것에 집착하며, 명자(名字)와 글귀와 말에 집착하여 능히 정법(正法)을 건립할 줄 알지 못하며, 바른 행[正行]을 닦지 아니하고 네 가지 구(句)인 청정한 법을 떠난다."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말씀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설법하실 바 법상(法相)을 건립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와 일체 보살들이 미래 세상에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을 잘 알면, 외도의 사견(邪見)과 성문과 벽지불의 바르지 못하게 보는 법에 미혹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말할 것이다."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과거와 현재의 여래·응공·정변지의 설법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이요, 둘째는 여실한 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다.
대혜여, 어떤 것이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인가? 여러 가지 공덕과 수다라(修多羅)와 우바제사(優波提舍)1)로 중생의 신심(信心)을 따라서 설법하니, 대혜여, 이를 설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여실한 법을 건립하는 모양인가? 어떠한 법에 의지하여 바른 행을 닦고, 자심(自心)이 모든 법을 허망하게 분별함을 멀리 떠나므로 같음과 다름, 갖춤과 갖추지 못함인 붕당(朋黨) 더미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심(心)·의(意)·의식(意識)을 떠나서 안으로 거룩한 지혜로 행할 바인 경계를 증득하고, 인연이 서로 합하는 견해도 떠나며, 일체 외도의 삿된 견해를 떠나고, 일체 성문과 벽지불의 견해를 떠나며, 있다 없다고 하는 붕당의 견해를 떠남이니, 대혜여, 이를 여실한 법을 건립하는 모양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닦고 배울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두 가지 법인
설법과 여실한 법을 건립하였으니,
명자(名字)에 의하여 설법함이며
여실한 수행자를 위함이었네.
입능가경(入楞伽經), 하편1
五, 로가야타품(盧迦耶陀品)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는 어느 때에 말씀하시되,
로가야타(외도의 이름이니 순세(順世)라 번역함)의 가지가지 변설(辯設)을 만일 친근하거나
그 사람에게 공양하면 욕식(欲食)(탐욕인 공양, 즉 세간의 재리)을 섭수(攝受)함이요,
법식(法食)(법의 공양, 즉 출세간의 법리(法利))을 섭수함이 아니라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로가야타의 가지 가지 변설을 친근하거나 공양하면, 욕식을 섭수
함이요,
법식을 섭수함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로가야타의 가지 가지 변재와 교묘한 말과 글귀는 세간을 미혹함이요,
진여(眞如)법에 의하여 말함이 아니며, 진여의(義)에 의하여 말함이 아니요,
다만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의 정(情)에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세속의 일만을 말함이니,
다만 공교로운 말로서, 말과 글귀가 아름답고 교묘할 뿐이요, 정의(正義)를 잃었나니
대혜여, 이를 로가야타의 가지 가지 변재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허물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로가야타의 이와 같은 변재는 다만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를 포섭함이요,
여실한 법성(法性)에 들어가서 설법함은 아니다.
그는 일체 법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했으므로 두 갓(二邊)인 사견(邪見)더미 가운데에 떨
어져서,
자기도 정도(正道)를 잃고, 또한 다른 사람까지 잃게한다.
그러므로 능히 모든 갈래[諸趣]에서 윤회(輪廻)함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오직 자심(自心) 뿐임’을 보지 못하고, ‘바깥 법의 모양이 있다’ 함에 분별하며 집착하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허망스리 분별함을 떠나지 못하나니라.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로가야타가 비록 가지 가지 교묘한 변재로 모든 법을 말하기 좋아
함이 있으나,
바른 이치를 잃었으므로 생(生), 노(老), 병(病), 사(死)와, 우(憂), 비(悲), 고(苦), 뇌(惱)인
‘일체 고(苦)의 더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가지 가지 명자(名字)와 글귀와 비유와
공교로운 말에 의하여 사람을 미혹하고 속인다’고 말하노라.
대혜여,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여러 논(論)을 널리 짓고, 스스로 성논(聲論)을 지었는데,
저 로가야타 의한 제자가 세간 신통을 증득하고, 제석천궁에 올라가서 논법(論法)을 내세우
면서
이러한 말을 하되 카우시카여, 내가 그대와 함께 내기를 하겠노니,
그대로 더불어 논의 하여 만일 이기지 못하면 굴복하기로 다짐하겠다 하고,
일체 천인(天人)으로 하여금 알아 보게 하고는, 곧 함께 다짐 하되,
‘내가 만일 그대를 이기면, 그대의 천 수레 바퀴[千輻輪]를 꼭 쳐부실 것이요,
내가 만일 이기지 못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디 마디를 끊어서 그대에게 사과하겠노라’
로가야타인 제자는 용의 몸을 나타내어 석제환인과 더불어 논의하여
그의 논법으로 곧 능히 저 석제환인을 이기고 그로 하여금 굴복하게 하고서
곧 하늘 가운데서 천 수레바퀴를 쳐부시기를 작은 티끌 같이하고, 즉시 인간에 내려왔느니
라.
대혜여, 로가야타인 바라문은 이와 같은 가지 가지 비유가 서로 합하며,
내지 축생(畜生)의 몸까지 나타내고 가지 가지 명자에 의하여,
세간의 하늘 사람과 아수라(阿修羅)를 미혹시키며,
세간의 일체 중생들도 생멸(生滅)법에 집착하게 하거늘, 어찌 하물며 사람 뿐이랴.
대혜여, 이러한 뜻으로 응당 로가야타인 바라문을 멀리할 것이니,
저 말을 따르면 능히 고(苦)의 더미가 생기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응당 로가야타인 바라문을 친근하며, 공양하여 물으며 청하지 말 것이다.
대혜여, 로가야타인 바라문의 말한 바 법은 다만 현전(現前)한 몸 지혜[身智]의 경계만을 보
고서
세속 명자에 의하여 사뙨 법을 말함이니라.
대혜여, 로가야타인 바라문의 지은 바 논(論)은 백천 게송이 있는데,
후세 말세에 나누어져서 많은 부(部)가 되어 각각 이름이 다르지만,
그는 자심의 견인(見因)에 의하여 지은 바니라.
대혜여, 로가야타인 바라문에게는 제자로서 그의 논법을 받을리가 없기에,
그러므로 후세에 나누어져서 많은 부의 가지 가지 다른 이름이 되었느니라.
대혜여, 외도들의 속 마음은 여실한 알음이 있지 않기 때문에 가지 가지 인(因)과
가지 가지 다른 알음에 의하여 제 마음대로 만들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며,
자재(自在)와 인(因) 등에 집착하나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의 지은 논 가운데는 이러한 법은 없고,
오직 이 일체 로가야타의 가지 가지 인문(因門)에서 백천만 법을 말한 것이언만,
그러나 그는 이 로가야타임을 알지 못하나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일체 외도가 오직 로가야타만을 말하여, 세간의 가지 가지 명자와
글귀와 비유에 의하여 모든 인(因)에 집착한다면
세존이시여, 시방 일체 국토의 중생과 하늘 사람과 아수라들이 부처님 계신 곳에 모이면,
여래께서 또한 세간의 가지 가지 명자와 글귀와 비유로서 설법하시고,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신 법은 말씀하지 아니하신다면,
만약 그러할진대 또한 일체 외도의 말한 바와 같아서 다르지 아니하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로가야타를 말하지 아니하며, 또한 모든 법이 오지 않고 가지 아니함도 말하지 아니
하노라.
대혜여, 내가 말한 모든 법이 오지 않고 가지 않는다함은
대혜여, 어떤 것을 오는 것이라 이름함이냐. 대혜여,
말한 바 오는 것이란 나서 모임[生聚], 화합하여 생긴 것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을 가는 것이라 이름 함이냐. 대혜여,
말한 바 가는 것이란 이름하여 멸(滅)함이라 하느니라.
대혜여, 내가 말한 ‘가지 않고 오지 않는 것이란 불생(不生) 불멸(不滅)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나의 말함은 저 외도의 법과 같지 않나니, 무슨 까닭이냐.
외물(外物)이 있고 없는 데에 집착하지 아니한 까닭이며, 자심의 견(見)임을 내세워 말한 까
닭이며,
두 곳[二處]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상(相)과 경계를 분별 아니하는 까닭이며,
여실히 자심의 견(見)임을 아는 까닭이며, 자심의 분별하는 소견을 내지 않는 까닭이며,
일체 상(相)을 분별하지 아니한 것이기에, 능히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인
三해탈문에 들어가나니, 이 ‘해탈이 된다’ 이름하나니라.
대혜여, 나는 기억하고 있다. 과거 어느 곳에 있을적에,
그 때 어느 로가야타인 큰 바라문이 있어 나의 처소에 와서 나에게 청하여 말하였다.
‘고마다[瞿曇]여, 일체 짓는 것이냐
대혜여, 나는 그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일체 짓는 것이라 함은 이는 제一의 로가야타니라’
바라문은 말하였다.
‘고타마여, 일체 짓는 것이 아니냐.’
나는 그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일체 짓는 것이 아니라 함은 이는 제二의 로가야타니라.’
그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일체 떳떳[常]함이냐. 일체 무상(無常)함이냐. 일체 생(生) 함이냐. 일체 불생(不生)이냐.’
나는 그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제六의 로가야타니라.’
대혜여, 그 로가야타는 또한 나에게 말하였다.
‘고타마여, 일체 같음이냐. 일체 다름이냐, 일체 한겁이냐, 일체 한겁이 아니냐,
일체 모든 법이 인(因)에 의하여 생기고, 가지 가지 인(因)으로 생김을 보느냐.’
대혜여,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제十一의 로가야타니라.’
대혜여, 그는 또한 나에게 물었다.
‘고타마여, 일체 무기(無記)냐, 일체 유기(有記)냐. <나> 있느냐, <나> 없느냐. 이 세상이
있느냐.
이 세상이 없느냐. 후세가 있느냐. 후세가 없느냐. 해탈이 있느냐, 해탈이 없느냐.
일체 공(空)이냐. 일체 공이 아니냐. 일체 허공이냐. 일체 연멸(緣滅)이 아니냐. 열반이냐.
고타마여, 짓는 것이냐. 짓는 것이 아니냐. 중음(中陰)이 있는 것이냐. 중음이 없는 것이냐.’
대혜여, 나는 그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일체가 모두 로가야타며,
나의 말한 바는 아니요, 이 그대의 설법이니라.
바라문이여, 나는 말하되 끝없는 희론과, 허망한 분별과 번뇌로 훈습함을 따르기에
저 三유(有)를 말함이니,
오직 이 자심의 분별로 나타나 있는 것임을 깨지 못한 것이다.
바깥 법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외도 법과 같은 것은 아니니라.’
대혜여, 외도는 말하기를 아(我)와 근(根)과 의의(意義)인
세 가지가 화합하여 능히 알음을 낸다고 하였으나
나는 이와 같이 아니하며, 나는 인(因)을 말하지도 않으며, 또한 인(因)이 없다 말하지도 아
니하고,
오직 자심의 분별로서 가히 취함[可取]과 능히 취하는[能取] 경계의
상(相)이 있는 것을 본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거짓 이름인 인연의 모임으로 모든 법이 생긴다’고 말하였노라.
그는 그때 바라문과 및 다른 경계도 아니니, 아견(我見)에 떨어졌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열반과 허공과 연멸(緣滅)이 三수(數)를 이룬 것이 아니거늘,
어찌 하물며 짓는 것과 지음과 지음 아닌 것이 있다고 말하랴.
대혜여, 또한 로가야타인 바라문이 있어 나에게 와서 물어 말하였다.
‘고타마여, 세간의 무명(無明)과 애착[愛]과 업(業)의 인(因)으로
三유(有)가 생겼느냐. 인(因)이 없는 것이냐.’
나는 그 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두 법인 로가야타요, 나의 법은 아니니라.’
바라문은 또한 나에게 물어 말하였다.
‘고타마여, 일체 법이 제 모양과 같은 모양에 떨어진 것이냐.’
나는 그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이는 로가야타요, 나의 법은 아니니라.
바라문이여, 다만 심(心)과 의(意)와 의식(意識)이 외물(外物)에 집착함이 있으면
모두 이 로가야타요, 나의 법은 아니니라.’
대혜여, 로가야타인 바라문은 또한 나에게 물어 말하였다.
‘고타마여, 혹 어떤 법이 로가야타 아닌 것이 있느냐. 고타마여,
일체 외도가 가지 가지 명자와 글귀와 인(因)과 비유를 건립하여 말한 것은 모두 이 우리의
법이니라.’
나는 그때 대답하여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법이 그대의 법 아님이 있으며, 건립 아니한 것도 아니며,
또한 가지 가지 명자와 글귀를 말하지 아니한 것도 아니며,
또한 뜻에 의하고 뜻에 의하여 말하지 아니함도 아니건만,
그러나 로가야타의 건립한 법은 아니다.
바라문이여, 법은 로가야타가 아님이 있나니라.
저 법은 일체 외도나 그대도 요달하여 알지 못하리니, 허망스리 바깥 진실 아닌 법과,
분별과 희론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을 분별하는 마음 멀리 떠난 것이라 하느냐. 있고 없는 것이란
자심에서 나타난 모양임을 관찰하여 여실히 깨달음이니,
그러므로 일체 분별을 내지 아니하며,
바깥 모든 경계인 법을 취하지 아니하여 분별하는 마음이 쉬고,
스스로 머무를 곳인 고요한 경계에 머무나니, 이를 로가야타가 아니라 이름한다.
이는 나의 말하는 법이요, 그대가 말함은 아니니라.
바라문이여, 스스로 머무를 곳에 머무르는 것이란 불생(不生) 불멸(不滅)이니,
불생 불멸이란 것은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니라.
바라문이여, 이를 로가야타가 아니라 이름하느니라.
바라문이여, 줄여 말하건대 어떠한 곳인 알음알이가 행하지 아니하며 취하지 아니하며
물러가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며 생하지 아니하며 집착하지 아니하며 좋아하지 아니하며
보이지 아니하며 보지 아니하며 머무르지 아니하며 부딪히지 아니함이 이 머무름이 된다 함
이니,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으니라.
바라문이여, 가지 가지 모양에 집착하며, 자아(自我)가 애착인 모든 인(因)에 화합한 것은
이 바라문인 로가야타 법이요, 나의 법은 아니니라.’
대혜여, 로가야타인 바라문이 나의 처소에 와서 이러한 법을 묻기에,
나는 그때 그에게 대답하였다.
‘바라문이여, 아까 말한 바와 같느니라’
그때에 바라문은 말 없이 가면서,
그러나 나에게 참법[眞法]을 건립함은 묻지 아니하였다.
그때 바라문은 마음속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되, ‘이는 사문(沙門)이며 석자(釋子)라서
우리 법엔 등졌으니 이는 참으로 불쌍하도다’ 그럼에도 그는 ‘일체법이 인(因)이 없고,
연(緣)이 없고, 생(生)하는 모양이 없다’고 말하며, 자심의 분별로 나타난 법이여서
만일 능히 자심의 나타난 모양임을 깨달으면,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진다’고 하였느니라.
대혜여, 그대는 지금 나에게 묻되, ‘무슨 까닭으로 로가야타의 가지 가지 변설을
친근, 공양, 공경하면 그 사람은 다만 욕미(欲味)만을 섭수하고
법미(法味)를 섭수함이 아니라 하느냐’고 묻느냐.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식구(食句)라 이름하며, 어떤 것을 법구(法句)라 이름하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그대는 능히 미래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와 같은 두 뜻을 묻는구려.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내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식(食)이 되느냐, 말하자면 식미(食味)와 촉미(觸味)니,
구할 방편을 좋아하여 공교로움과 아첨으로 맛을 붙여 바깥 경계에 집착함이니,
이와 같은 등인법은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나니,
능히 둘이 없는 경계인 법문 의(義)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또한 식(食)이라 이름한 것은 사견(邪見)에 의하여 음(陰),
유(有)의 갈래가 생겨 생(生), 노(老), 병(病), 사(死)와
우(憂), 비(悲), 고(苦), 뇌(惱)를 떠나지 못하여
애착이 유(有)에서 나나니, 이러한 등인 법을 식(食)이 된다 이름하나니라.
그러므로 나와 일체 부처님은 저 로가야타인 바라문을 친근,
공양하는 것은 식미만을 얻고, 법미는 얻지 못한다고 말하노라.
대혜여, 어떤 것이 법미(法味)가 되느냐. 말하자면 여실히 두가지 무아(無我)를 알아서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의 모양을 보았기에,
그러므로 분별하는 상(相)을 내지 아니하며,
여실히 모든 지위의 상상(上上) 지혜를 능히 알므로
그때엔 능히 심(心), 의(意), 의식(意識)을 떠나서
여러 부처님의 지혜와, 지위를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일체 구가 다한 곳[無盡句]을 섭취하며,
여실히 일체 부처님의 자재(自在)한 곳을 능히 아나니, 법미가 된다고 이름한다.
그는 일체 사견(邪見)과 희론 분별인 二변(邊)에 떨어지지도 않나니라.
대혜여, 외도의 설법은 흔히 중생으로 하여금 二변(두갓)에 떨어지게 하나니,
지혜 있는 이로 하여금 二변에 떨어지게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이냐.
대혜여, 외도들은 흔히 단(斷)과 상(常)을 말하나니,
인(因)이 없기 때문에 상견(常見)에 떨어지며
인(因)이 멸함을 보므로 단견(斷見)에 떨어지나니라.
대혜여, 내가 말한 여실견(如實見)은 생멸(生滅)에 집착하지 않음이니,
그러므로 나는 법미가 된다고 말하노라.
대혜여, 이것을 내가 말한 식미와 법미라 이름함이니라.
대혜여, 그대와 여러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이 법을 배울 것이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을 섭취하는데
계(戒)로서 모든 악 항복받고
지혜로 사견(邪見) 없애노니
三해탈이 증장(增長) 하여지네.
외도의 허망스리 말함은
모두 세속의 말이니,
사견의 인과(因果)로서
정견(正見)없이 세운 말이었네.
내가 건립한 법이란
허망한 인연의 견해 떠나서
제자를 위해 말함이며
세속 법을 떠난 것이었네.
마음 뿐이요, 바깥 법 없나니
二변(邊)의 마음인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없는 법으로
단상(斷常)의 견해 떠났다네.
마음이 행하는 곳이란
모두 세속논(世俗論)이니,
만일 자심(自心)을 관찰하면
모든 허망 보지 않으리.
오는 것은 인(因)이 생함 본 것이며
가는 것은 과(果) 없어짐 본 것이니,
여실히 거래(去來)를 알아서
허망을 분별 아니하리.
상(常)과 무상(無常)과 짓는 것을
피차(彼此)의 물건으로 여기지 말 것이니,
이와 같은 모든 법은
모두 세속론이라네.
6. 열 반 품(涅槃品)
그 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열반을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열반이란 것은
어떠한 법으로서 열반이라 이름 하나이까.
외도들도 각기 열반을 허망스리 분별하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모든 외도들은 허망스리 열반의 모양을 분별하나니
저와 같은 외도의 분별하는 바는 이 열반이 아니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외도는 모든 경계를 싫어하며, 음(陰), 계(界), 입(入)을 보고
모든 법의 무상(無常)한 것을 없애고,
심(心)과 심수(心數)법이 나지 않으며,
현전에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즐거운 경계도 생각하지 아니하여
모든 음(陰)이 없어진 곳은 등불이 꺼지고,
가지 가지 바람도 그침과 같아서 모든 상(相)을 취하여
망상(妄想)으로 분별하지 않는 것을 <열반>이 된다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저 외도는 이와 같은 법을 보고 열반이라는 생각을 낸 것이요,
견(見)이 없어지므로 열반이 된다 이름 함은 아니니라.
대혜여, 혹 어떤 외도는
방(方)으로부터 방(方)에 이르는 것을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나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모든 경계가 바람과 같다고 분별하나니,
그러므로 분별이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나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이러한 말을 하되,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인 경계를 보지 아니하여
없어지지 않는[不滅]것이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나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이와 같은 말을 하되, 분별을 보지 아니하고,
상(常)과 무상(無常)을 보는 것이 <열반>이 된다 고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이와 같은 말을 하되, 분별로서 가지 가지 다른 모양을 보기에,
능히 모든 괴로움을 내었나니,
자심의 소견으로서 허망스리 일체 모든 상(常)을 분별함이라 하여
모든 상을 두려워 하며, 모양이 없는[無相] 것을 보고 깊은 마음으로 좋아하여
열반이라는 생각을 내나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일체 법의 제 모양과 같은 모양을 보고, 멸(滅)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법이 있는 것이라고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 고 이름하나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아인(我人)과 중생(衆生)과 수명(壽命)과 수자(壽者)인
모든 법이 멸하지 아니함을 보고, 허망스리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또한 다른 외도는 지혜가 없으므로 보는 바(自性)과 사람의 수명(壽命)이
전변(轉變)한다 분별하고, 전별함을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이와 같은 말을 하되,
죄(罪)가 다하므로 복덕(福德)도 또한 다하는 것이 <열반>이된다 이름 하나니라.
대혜여, 어떤 나른 외도는 말하되,
번뇌가 다하여 지혜에 의지하므로 <열반>이 된다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다른 외도는 이와 같은 말을 하되, 중생을 자재천(自在天)이 만들어냄을 보았다고
하여,
허망하게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되, 모든 중생은 번갈아 한가지로 하는 인(因)으로 난 것이요,
다른 인(因)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니, 저와 같은 외도는 인(因)에 집착하여,
아직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고 어두워서 허망하게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
하나니라.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되, 진체의 도를 증득하였다고 하여,
허망스리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나니라.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이와 같은 말을 하되, 지음[作]과 짓는 바[所作]가 있어서
한가지로 화합하였다 하여, 같음과 다름과 한겁과 한겁 아닌 것을 보고
허망스리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되, 일체 법이 자연히 생기는 것이 요술쟁이가
가지 가지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하여, 가지 가지 보배와 가시[棘]등인 물건이
자연히 나는 것을 보고 허망스리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나니라.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되, 만물(萬物)이 때[時]로 짓는 것이라 하여 시절임을 깨달아
알고,
허망스리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다른 외도는 말하되, 물건 있는 것을 보며 물건 없는 것을 보므로,
있고 없는 물건을 보는 것이라 하여 이와 같이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하나니라.
대혜여, 다른 법과 지혜를 내세우는 이는 말하되, 여실히 보는 것은 오직 자심이라 하여,
바깥 모든 경계를 취하며 집착하지 아니하고, 네 가지 법[四種法]을 떠나며 일체 법이
저(彼)와 저의 법 같음을 보고 자심의 분별하는 상을 보지 않으며, 二변(邊)에 떨어지지 아
니하고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경계를 보지 아니하며, 세간은 일체 진실 아님을 내세우며,
여실법에 미한 것임을 보고 ‘모든 법을 취하지 아니함을 진실이 된다’고 이름하며
자신이 거룩한 지혜를 증득하므로서
여실히 두가지 무아[二種無我]를 알고 두가지 번뇌의 때[垢]를 떠나서,
二장(障)이 청정하며, 여실히 상상(上上) 지위의 모양을 능히 알고,
여래 지위에 들어가서 여환(如幻) 삼매를 얻고, 심(心), 의(意), 의식(意識)을 멀리 떠나서
이와 같은 등의 견(見)을 분별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나니라.
대혜여, 또한 어떤 외도는 사견(邪見)의 각관(覺觀)으로 모든 논(論)을 말하기에,
여실한 정법(正法)으로 더불어 서로 합하지 못하나니,
지혜 있는 이는 꾸지람이 될 것을 멀리 떠나느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등인 외도는 모두 二변에 떨어져서 허망하게 분별하므로 진실한 열반이
아니니라.
대혜여, 일체 외도는 이와 같이 열반을 허망스리 분별하기에 세간에 머무르는 사람도 없으
며,
열반에 드는 사람도 없나니, 무슨 까닭이냐. 일체 외도는 자심논(自心論)에 의하여
허망스리 분별하므로 여실한 지혜가 없나니,
저와 같은 외도의 제 마음에서 분별함은 이와 같은 법이 없으며,
가고 오며 요동하여 이와 같은 외도의 열반은 없나니라.
대혜여, 그대와 일체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일체 외도의 허망한 <열반>을 멀리 떠날 것이
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외도는 <열반>이란 소견으로
각기 분별 일으키나니,
모두 심상(心相)으로부터 생함이요
해탈 방편은 없는 것이라네.
능박(能縛)과 소박(所縛)을 떠나지 못하고
모든 방편 멀리 떠나서
스스로 해탈인양 생각하나
실로 해탈은 없나니라.
외도의 내세우는 법이란
뭇 지혜로 제각기 달리 취함이니,
그는 모두 해탈 아니요
어리석어 괜히 분별함이네.
일체 어리석은 외도는
지음과 짓는 바를 허망스리 보나니,
그러므로 해탈 없으면서
유무(有無)법을 말한다네.
범부는 희론만을 좋아하여
진실한 지혜는 듣지 않고
三계(界)의 근본은 여실한 지혜로
고(苦)를 없앤 것이라고 말하나니,
비유컨대 거울속의 모양이
비록 보이나 있지 않음 같아서
훈습 거울에 마음 나타나는데
범부는 둘이 있다고 말하네.
유심(唯心)으로 보여짐을 알지 못하여
그러므로 둘이라 분별하나니
마음 뿐임을 여실히 알면
분별은 곧 나지 않으리.
마음은 갖가지로 이름하나
능견(能見)과 가견(可見) 떠났으며
보이는 상도 볼 수 없거늘
범부는 괜히 분별 한다네.
三유(有)도 오직 망상(妄想)이며
바깥 경계도 실로 없건만,
망상으로 갖가지 보는 것을
범부는 그를 알지 못하네.
경(經)마다 분별로서
가지가지 다른 명자(名字) 말했으나,
그 언어(言語)를 떠난 법이어서
말할 수도 얻을 수도 없다.
7. 법 신 품(法身品)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는 당신의 증득하신 바
안으로 깨달아 아시는 법을 말씀하시옵기 원하옵나이다.
어떠한 법을 법신이라 이름하나이까. 저희와 일체 보살은 여래 법신의 모양을 잘 아오면,
자신과 다른 이 까지도 함께 의심이 없는데에 들어갈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그대의 의심 되는 바를 뜻대로 물으라. 그대를 위하여 분별
해 주리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또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 응공, 정변지의 법신(法身)은 짓는 법[作法]이옵니까. 짓지 않는 법입니
까.
인(因)이옵니까, 과(果)이옵니까, 능견(能見)이옵니까,
소견(所見)이옵니까, 말함입니까, 말할 바이옵니까,
이 지혜이옵니까, 지혜로 깨달을 바이옵니까.
이와 같은 말과 귀절은 여래의 법신과 다른 것이옵니까. 다르지 아니한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응공, 정변지의 법신 모양이라고 하는 이러한 말과 구절은 짓는 법이 아니며,
짓지 않는 법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二변(邊)은 허물이 있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만일 여래를 이 짓는 법이라 말한다면, 이는 무상(無常)이니,
만일 무상이라면 일체 작법도 응당 여래일 것이다. 그러나 불(佛),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는 이 작법을 허가하지 아니하시나니라.
대혜여, 만일 여래 법신이 짓는 법이 아니라면, 이는 몸이 없음이니 한량없는 공덕과
일체 행(行)을 수행하였다 말한 것은 이 곧 허망이리라.
대혜여, 만일 짓는 것이 아니라면, 응당 토끼뿔과 돌계집과 같아서
짓는 인(因)이 없기에 또한 몸도 없을 것이다.
대혜여, 만일 법이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라면, 저 법체는 네 가지 상(相)을 떠난 것이리라.
대혜여, 저 네가지 법은 세간 연설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만일 법이 네 가지 법을 떠난 것이라면, 저 법은 다만 명자만 있는 것이 돌계집과
같으리라.
대혜여, 돌계집 등은 명자와 글귀의 법일 뿐이니, 말하건대 四법과 같나니라.
만일 四법에 떨어지는 것이라면 지혜 있는 이는 취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일체 ‘여래를 묻는 어구’는, 지혜 있는 이는 응당 알아야 하느니라.”
부처님은 또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일체 모든 법이 <나>(我)없음을 말하리니, 그대는 무아(無我)의 이치를 잘들으라.
대저 무아는 안 몸의 무아니, 안 몸이 무아이다. 그러므로 무아니라.
대혜여, 일체 모든 법에 자기 몸이 있는 것이 되느냐.
다른 몸이 없는 것이 되느냐. 그는 소와 말과 같나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소의 몸은 말의 몸이 아니며, 말[馬]은 또한 소가 아니니,
그러므로 있다 없다 말할 수 없으나, 그러나 저 자체는 없는 것이 아니니라.
대혜여, 일체 모든 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자체 상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건
만,
어리석은 범부는 모든 법의 무아(無我)인 체상을 알지 못하나니,
분별하는 마음 때문이요, 분별 아니하는 마음은 아니다.
대혜여, 이와 같아서 일체 법이 공했으며, 일체 법이 나지 않는[不生]것이며,
일체 법이 체상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니라.
대혜여, 여래 법신도 또한 이와 같아서, 五음 가운데에서 같음도 아니며 다름도 아니니라.
대혜여, 여래 법신이 五음과 같다면, 곧 이<무상>이니, 五음은 짓는 바 법이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여래 법신이 五음과 다르다면 곧 두 법이 있어서 체상이 같지 아니함이
소의 두 뿔이 서로 같아서 다르지 아니하나,
별개의 자체가 있어서 길고 짧음이 다른 것 같음과 같을 것이다.
대혜여, 만일 이와 같을진대 일체 모든 법이 응당 다른 모양이 없으면서 다른 모양이 있는
것이,
소의 왼 쪽 뿔이 오른 쪽 뿔과 다르며,
오른 쪽 뿔이 왼 쪽 뿔과 달라서 이와 같은 길과 짧은 것이
서로 상대하여 각각 다른 것과 같으며, 색(色)의 가지 가지가 피차(彼此) 차별함과 같나니
라.
대혜여, 이와 같은 여래 법신의 모양은 五음 가운데에서 같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다르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요,
해탈 가운데에서도 같다고 말하지 못하며 다르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요.
열반 가운데에서도 같다고 말하지 못하며,
다르다고 말할 수 없어서 이와 같이 해탈에 의하므로
여래 법신의 모양이라고 말하나니라.
대혜여, 만일 여래 법신이 해탈과 다를진대, 곧 색상과 같아서 곧 무상(無常)일 것이요,
만일 여래 법신이 해탈과 다르지 않을진대, 곧 능증(能證)과 소증(所證)의 차별이 없으련만.
대혜여, 수행하는 자는 능증과 및 소증을 보나니, 그러므로 같음이 아니다.
대혜여, 이와 같이 가히 알 경계는 같음도 다름도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
대혜여, 만일 법이 떳떳함 있는 것도 아니며, 떳떳함 없는 것도 아닐진대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요, 유위(有爲)도 아니며 무위(無爲)도 아니요,
각(覺)도 아니며 불각(不覺)도 아니요,
능견(能見)도 아니며 가견(可見)도 아니요, 음(陰), 계(界), 입(入)을 떠난 것도 아니며,
음, 계, 입에 즉(卽)한 것도 아니요, 명(名)도 아니며 경계도 아니요,
한겁도 아니며 한겁 아님도 아니요 상속(相續)도 아니며 상속 아님도 아니요,
일체 모든 법을 벗어난 것이니라.
만일 모든 법을 벗어났다면 그 이름만 있을 뿐이요, 만일 다만 그 이름만 있다면,
저 법은 생(生)함이 아니리니 생함이 아니므로 저 법은 멸함도 아니니라.
멸함이 아니므로 저 법은 허공과 같아서 평등하나니라.
대혜여, 허공은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다. 만일 법이 인도 아니며 과도 아닐진대
저 법은 가히 관찰할 수 없을 것이요, 가히 관찰할 수 없다면 저 법은 모든 희논을 벗어난
것이요.
만일 일체 희논을 벗어날진대 여래 법신이라 이름할 것이니, 이를 여래, 응공,
정변지의 법신의 모양이라 이름할 것이다.
그 일체 모든 감관[根]과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과 감관을 떠나서
과(果)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고,
이미 각, 소각(覺, 所覺) 떠났으며,
능견(能見)과 가견(可見) 떠났다네.
모든 인연과 五음에서
부처님은 보는 법이 없나니,
만일 보는 법 없을진대
어떻게 분별한다 하랴.
지음도 지음 아님도 아니며
인(因)도 또 과(果)도 아니요
음(陰)도 음 떠남도 아니며,
또한 딴 곳에 있지도 않나니,
어떠한 마음으로 분별하랴,
분별로는 능히 보지 못할 것이며
저 법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모든 법은 법 그대로라네.
먼저 있으므로서 없다 말하고
먼저 없으므로 있다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없다 말할 수 없고
또한 있다고도 말하지 못하리.
아(我)와 무아(無我)에 미하였기에
다만 음성에만 집착하나니.
그는 二변에 떨어져서
되지 않는 말로 세간을 망치네
일체 모든 허물 떠나면
나의 법을 곧 보리니
이는 바른 견해라서
부처님 비방 아니하리.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은 또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해설하옵소서.
여래께서는 곳곳에서 말씀하시되, ‘모든 법이 생(生)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다’ 하셨나
이다.
세존께서는 또한 말씀하시되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 것이 여래 법신이라 이름함이니,
그러므로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없는 법이기에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다 이름하셨나이까.
여래의 딴 이름으로서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한 것이옵니까.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되 ‘모든 법이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도 아니함은 있다 없다는 법을 내세우는 것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일체 법이 생함이 아닐진대 이는 일체 법이라 말하지 못할 것이니
일체 법이 생하지 않는 까닭이옵니다.
만일 딴 법에 의하여 이러한 이름이 있을진대, 세존은 응당 저희를 위하여 말씀하시리라.”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
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법신은 없는 물건도 아니며 또한 일체 법이 생하지 않음도 멸하지 않음도 아니며
또한 인연에 의하여 있다고도 말하지 아니할 것이며,
또한 허망스리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아니함이라’고 말함도 아니니라.
대혜여, 내가 항상 불생(不生), 불멸(不滅)이라 말한 것은
뜻대로 나는 몸[意生身]이라 이름함이다.
여래 법신은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의 경계가 아니며,
또한 七지(地)에 머무르는 보살의 경계도 아니니라.
대혜여, 내가 말한 불생 불멸은 곧 여래의 딴 이름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제석과 왕과 불란타라(不蘭陀羅)와 손과 손톱과
신체와 땅과 부미(浮彌)와 허공과 무애(無碍)인, 이와 같은 등의 가지 가지 명호가 이름은
다르나
뜻은 한가지이니, 많은 이름에 의하여 ‘많은 자체인 제석등이 있다’고 말하지 아니하리라.
대혜여, 나도 또한 이와 같아서, 사바세계 가운데에서 三아승지(阿僧祗) 백천의 명호인데,
범부는 비록 말하나 이것이 여래의 딴 이름임을 알지 못하느니라.
대혜여, 혹 어떤 중생은 여래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자재(自在)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일체지(一切智)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일체 지자(智者)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구세간(救世間)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도자(導者)된 것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장자(將者)가 된 것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승자(勝者)가 된 것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묘자(妙者)가 된 것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세존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부처이므로 아
는 자도 있으며,
우왕(牛王)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사자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선인(仙人)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범자(梵者)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나라연(那羅延) 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승자(勝者)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가라라(迦羅羅) 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구경(究竟)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아리타니미(阿梨陀尼彌)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달(月)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해 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바루나(婆樓那)이므로 아는 자
도 있으며,
비야사(毘耶娑)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제석(帝釋)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힘[力] 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바다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불생(不生)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불멸(不滅)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공(空) 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진여(眞如)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실제(實際)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열반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법계(法界)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법성(法性)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상(常) 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평등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불이(不二)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무상(無相)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연(緣)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불체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인(因)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
며,
해탈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도(道)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실체(實諦)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일체지(一切智)이므로 아는 자도 있으며, 의생신(意生身) 이므로 아는 자도 있나니라.
대혜여, 이와 같은 등의 가지 가지 여래, 응공, 정변지의 사바세계와, 딴 세계 가운데에서
三아승지인 백천 명호는 더하지도 줄지도 아니하는데, 중생은 모두
‘물 속의 달과 같이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아니한 것으로’ 아느니라.
그러나 범부는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므로 二변의 상속(相續)하는 법 가운데에 떨어진다.
그러나 모두 나에게 공경하며 공양하느니라.
그리고 명자와 구의(句義)를 잘 알지 못하므로 차별상을 취하여 능히 스스로 알지 못하고
명자에 집착하므로 허망스리 불생 불멸을 분별하여 ‘없는 법이다’ 이름하고,
여래의 명호가 차별한 모양이 인다라(因陀羅)와 제석과 왕과
불란타라(佛蘭陀羅) 등과 같음을 알지 못하나니, 능히 이름[名]과 진실을 결정하지 못하고
명자와 음성을 수순하여 법을 취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나니라.
대혜여, 미래 세상에 어리석은 범부는 이와 같은 말을 하되, ‘이름과 같아서 뜻도 또한 이
와 같다.
그런데도 다른 이름에 뜻이 있음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무슨 까닭이냐.
뜻은 체상이 없기 때문이라’하며, 또한 이러한 말을 하되,
‘명자와 음성에 다르지 않고 뜻이 있나니 명자와 음성이 곧 뜻이다.
무슨 까닭이냐. 명자의 체상을 알지 못한 까닭이라’ 하나니라.
대혜여,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음성이 곧 생(生)이며 곧 멸이요, 뜻은 생멸이 아님’을 알지
못하느니라.
대혜여, 음성의 성질은 명자에 떨어짐이나 뜻은 한가지로 명자에 떨어지지 않나니,
유(有), 무(無)를 떠났기 때문이며, 생(生)함이 없고 체(體)가 없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여래의 설법은 자기 음성에 의하여 말함이요, 모든 명자가 이 유(有),
무(無) 임을 보지 않으므로 명자에 집착하지 않나니라.
대혜여, 만일 사람이 명자에 집착하여 말하는 자는 그 사람은 잘 설법한다고 하지 못하리니
무슨 까닭이냐 법은 명자가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의 경(經) 가운데서 말하며, ‘불, 여래는 끝까지 한 자도 말하지 아니하
였으며,
한 이름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하노니 무슨 까닭이냐. 모든 법은 명자가 없나니 뜻에 의함이
요,
말이 없나니 분별에 의하여 말함이다.
대혜여, 만일 설법하지 아니한다면 불, 여래의 법륜(法輪)이 단멸(斷滅)하리니,
법륜이 단멸하면 또한 성문과 연각과 보살이 없을 것이요, 성문과 연각과 보살이 없다면,
어떠한 사람을 위하여 어떠한 법과 어떠한 일을 말하랴.
대혜여, 그러므로 보살 마하살은 응당 언설(言說)과 명자에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대혜여, 명자와 글귀는 고정한 법이 아니요, 중생의 마음에 의하여 말함이니,
불, 여래는 중생의 믿음을 따라서 모든 법을 말함은
그들로 하여금 심(心), 의(意), 의식(意識)을 멀리 떠나게 함이요,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를 말하ㄹ여 모든 법을 건립함은 아니다.
여실히 일체 모든 법의 고요한 모양을 능히 아는 까닭이며, 다만 자심(自心)을 보고
알 바인 법을 깨달아서 두가지 마음으로 분별하는 상을 떠났기에 이와 같이 말하지 아니하
느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은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다.
만일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문자와 말만을 따르는 자는 사견(邪見)에 떨어져서,
자신도 제일의체(第一義諦)를 잃고 또한 다른 사람까지 망가뜨려서 깨닫지 못하게 하느니라.
대혜여, 모든 외도들은 각기 자기 이론에 의지하여 딴 소견으로 말하느니라.
대혜여, 그대는 응당 일체 지위의 모양을 잘 알며, 낙설(樂設) 변재인 문사(文辭)와 글귀를
잘 알며,
일체 모든 지위의 모양을 잘 알고서 명구와 낙설 변재에 진취하여
모든 법의 뜻과 상응(相應)하는 모양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때엔 자신이 무상(無相) 법락에서 낙수(樂受)를 받을 것이며,
대승 가운데에 머물러서 중생으로 하여금 알게 할 것이다.
대혜여, 대승을 취하는 자는 곧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과 보살을 섭수함이며,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과 보살을 섭수함은 곧 수승하고 묘한 법장(法藏)을 섭수함이며,
법장을 섭수함은 곧 불종(佛種)이 끊어지지 않게 함이며,
불종이 끊어지지 않게 함은 일체 수승하고 묘한 나는 곳[生處]을 끊어지게 않음이니,
저 수승한 곳의 여러 보살들이 저 곳에 나기를 원하는 까닭이며,
모든 중생을 대승법 가운데에 두어서 十자재력(自在力)으로
모든 중생의 형색과 모든 번뇌[諸使]를 따라서, 그리고 능히 따라 나타내어 여실법을 말하느
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여실법이냐. 여실법이란 다름이 아니요,
차별이 아니며 취(取)함이 아니고 버림[捨]이 아니여서
모든 희론을 떠났기에 여실법(如實法)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선남자, 선여인은 문자와 음성에 집착하지 말것이니 일체 법은 문자가 없기 때문이
다.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지시할 적에 손가락으로 써 지시하거든
저 어리석은 사람은 곧 손가락에만 집착하고,
손가락으로 인하여 지시하는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아서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음성을 듣고는 명자인 손가락에 집착하고
목숨이 마칠 때 까지도 마침내 능히 문자의 손가락을 버리고 제일의를 취하지 못하나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곡식은 범부의 먹는 것이지만 방아를 찧질 않으며, 밥 짓지 않으면 먹을
수 없나니,
만일 그 어떤 사람이 밥을 마련하지 못한 것을 먹는다면, 미친[顚狂] 것이라 이름할 것이니,
모름지기 차례로서 밥을 짓고 익혀야만 바야흐로 먹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대혜여, 불생 별멸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공교로운 지혜와 방편의 행을 닦지 않는다면
법신(法身)을 구족 장엄할 수 없으리라.
대혜여, 명자에 집착하고서 뜻을 얻었다고 말하는 자는 저 어리석은 사람이
방아찧음과 밥 지을 줄을 알지 못하고 문자인 곡식을 먹으며,
뜻인 먹음을 얻지 못함과 같나니,
이러한 뜻으로 마땅히 뜻을 배우고 문자에 집착하지 말 것이니라.
대혜여, 말한 바 뜻이란 열반을 이름함이다.
명자를 말함은 분별하는 상에 묶이어 세간의 알음을 내는 것이다.
대혜여, 뜻이란 많이 들은[多聞] 사람을 따라서 얻어지나니라.
대혜여, 많이 들음이라 함은 뜻의 공교한 방편을 말함이요, 음성의 공교한 방편이 아니다.
대혜여, 뜻 방편이란 일체 외도의 사뙨 말을 떠난 것이며, 또한 화합하고 섞임도 아닌 것이
니,
이와 같이 말하는 자는 자신이 외도의 사뙨 법에 떨어지지 않으며,
또한 다른 이로 하여금 외도의 법에 떨어지게 아니하나니,
대혜여, 이를 많이 들어서 뜻 방편이 있는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뜻을 얻고자 하는 자는 응당 다문지자(多聞智者)를 친근하여 공양하고 공경할 것이
요,
명자에 집착하는 자를 응당 멀리 떠나며, 응당 친근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 때에 대혜 보살은 부처님의 신력을 입고,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 세존께서 말씀하신 ‘일체 법이 불생(不生) 불멸(不滅)이다’ 함은
기특한 것이라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이냐. 일체 외도도 또한 모든 인(因)이 불생 불멸이
라 말하며,
여래께서도 또한 허공과 수(數) 아닌 연멸(緣滅)과 열반계( 涅槃界)가 불생불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도 또한 '모든 인연에 의하여 모든 중생이 생겼다'라고 말하며, 여래도 또한 '무명(無明)과 애착과 업과 분별하는 인연으로 모든 세간이 생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여래께서는 또한 '인연과 명자가 서로 다르고, 바깥 인연에 의하여 능히 모든 법을 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외도도 또한 '바깥 인연에 의하여 모든 법을 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외도의 말과 더불어 차별이 있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는 '인(因)과 작은 티끌(微塵)과 수승함(勝)과 자재천(自在天)과 범천(梵天) 등인 그 아홉 가지 인연으로서 모든 법이 불생불멸한다'라고 말하며, 여래께서는 또한 '일체 모든 법이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은 것으로, 유무(有無)를 가히 얻을 수 없으며, 모든 4대(大)가 멸하지 않아 자기 모양[自相]이 불생불멸이다'라고 말씀하시니, 불·여래의 여러 가지 말씀을 따른다면 외도의 말한 바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외도들도 또한 '모든 대(大)가 대(大)의 체(體)를 떠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모든 대(大)를 분별하며, 여래도 또한 그리하여 모든 대를 분별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뜻으로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가 외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같지 않다면 여래께서는 마땅히 있는 바 다른 모양을 말씀하실 것이며, 만약 다른 모양이 있다면, 마땅히 외도의 말한 바와 같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불·여래께서 자기 법에서 수승한 모양을 말씀하지 아니하신다면 모든 외도에도 또한 마땅히 부처님께서 계시리니, '모든 법이 불생불멸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신 것처럼 한 세계에 많은 부처님께서 계셔서 함께 출세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며,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한 세계에서도 마땅히 많은 부처님께서 계시겠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말한 바 유무(有無)의 인(因)이 차별이 없는 까닭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그의 말이 헛되고 그름이 없는데,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당신의 법에서 수승한 모양을 말씀하시지 아니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설법한 바 '불생불멸이다'라고 하는 것은 외도의 불생불멸과 같지 않으며, 또한 저 '불생(不生)하는 무상(無常)한 법이다'라고 함과 같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모든 외도는 '실로 체성(體性)이 있어서 불생불멸인 모양이 있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와 같이 '있다', '없다'고 하는 붕당(朋黨)더미에 떨어지지 않는다.
대혜여, 내가 말한 '유무법을 떠났다'는 것은 생(生)·주(住)·멸(滅)의 모양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일체 여러 가지 색상이 환과 같으며 꿈과 같이 보니, 그러므로 그 '있다',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대혜여, 어찌하여 그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형색와 체상은 보고 보지 못함과 취하고 취하지 못함이 있는 까닭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일체 모든 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한다.
대혜여, 오직 자심의 분별로 봄을 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일체 세간의 모든 법은 본래 생함이 아니며 멸함이 아닌데, 그럼에도 모든 범부는 분별을 내니, 성인(聖人)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마음으로 진실 아닌 의(義)를 분별함은, 비유컨대 범부가 건달바성을 보며 환사(幻師)가 짓는 여러 가지 환상인 사람과 여러 가지 코끼리와 말을 보되, 그것들이 들어가며 나가는 것을 보고 허망하게 분별하여 말하기를, '이들이 이와 같이 들어가며, 이와 같이 나간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대혜여, 그러나 그 곳에는 참으로 사람이 출입함도 없고, 오직 자심의 견(見)의 미혹으로 분별함이니, 생(生)과 불생(不生)의 법도 또한 이와 같다.
대혜여, 그러나 그 곳에는 참으로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인 모든 법이 없는 것이 저 환사가 짓는 환상의 일들과 같다.
그러나 저 환사는 생함도 아니며, 멸함도 아니다.
대혜여, 모든 법의 유무(有無)도 또한 하는 바가 있지 않으니, 생멸(生滅)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직 모든 범부가 전도(顚倒)된 마음에 떨어져서 생멸(生滅)을 분별함이니, 성인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혜여, 전도(顚倒)라는 것은 마음대로 분별하기를, 이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으며, 저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지 않음이며, 또한 전도된 분별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전도하는 자는 모든 법이 '있다', '없다'고 함에 집착하고 고요함을 보는 것이 아니다. 고요함을 보지 못한 자는 허망한 분별을 능히 멀리 떠나지 못하니, 그러므로 대혜여, 고요함을 본 것을 수승한 모양이라 이름할 것이다.
모든 모양을 보지 않음을 수승한 모양이라 이름함이니, 능히 생인(生因)의 상(相)을 끊지 못한 까닭이다.
대혜여, 무상(無相)이라고 말함은 일체 모든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떠남이니, 생함이 없고 상(相)이 없는 것은 나의 말한 바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열반이라 말한 것은 모든 법의 여실히 머무는 곳을 본 것임을 말함이니, 분별하는 심(心)과 심수(心數)의 법을 멀리 떠나고, 차례로 여실히 수행함에 의하여 스스로 속 몸의 거룩한 지혜로 증득하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음을 말하여 열반이 된다고 이름한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 생한다는 견해를 막기 위하여
무생법(無生法)을 건립하였으니,
내가 말한 '법은 인(因)이 없다'고 함을
범부는 능히 알지 못하네.
내가 말한 법은 인(因)이 없다고 함을
범부는 알지 못함이여.
일체법은 생함이 아니며
또한 없다고도 할 수 없으리.
건달바와 환상과 꿈과 같이
모든 법은 원인이 있지 아니하며
모든 법은 공하여 모양이 없으니
어찌 내가 말함이 될 것인가.
화합하는 인연을 떠났기에
지혜로도 능히 보지 못하며,
공(空)이란 본래 생함이 아니니,
그러므로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하나하나 인연으로 화합하였기에
보이는 물건이지만 얻을 수 없으니,
외도가 볼 바도 아니요,
화합함도 얻을 수 없으리.
꿈과 환상과 털 바퀴와
건달바와 아지랑이를
원인이 없이 허망하게 보지만,
세간 일도 또한 그러하네.
무인론(無因論 : 無因無緣論)을 항복 받아
능히 무생의(無生義)를 이루니,
무생을 능히 이룬다면
나의 법이 없어지지 않으리.
무인(無因)의 모든 논(論)을 말하면
외도는 놀래며 두려워한다.
어찌하여 어떤 사람은
무슨 까닭으로 어떤 곳에서
모든 법 '인(因)이 없다'라고 하는가.
인도 아니요, 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
지혜 있는 자 그를 능히 보면
생멸의 견해 능히 떠나리.
법에 생(生)과 불생(不生)이 없음은
인연상(因緣相)이 없기 때문이니,
만약 법의 명자(名字)가 되면
뜻이 없음[無義]을 내가 말하네.
법이 유무(有無)로 생함이 아니며
또한 인연을 기다림도 아니요,
현전(現前)의 법이 이름 있는 것도 아니니,
또한 공(空)이 아닌 말이라 이름하네.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의 경계도 아니요
7지(地)에 머물러 있는
그 곳만이 무생(無生)인 모양이네.
모든 인연법을 떠났기에
모든 인연을 막기 위하여
'건립함이 유심(唯心)이다'라고 말하여
나는 말하기를 '무생(無生)이다'라고 이름한다.
모든 법이란 인연이 없으며
능소(能所)의 분별을 떠나서
유무의 붕당을 떠났기에,
나는 말하여 '무생'이라 이름하네.
마음은 보여진 법도 떠났으며
두 법체도 또한 떠났으니,
몸을 전변한 의정상(依正相)을 나는 말하여 '무생'이라 이름하네.
외물(外物)도 실(實)과 실 아님이 아니니
또한 마음의 취할 바도 아니요,
환상과 꿈과 털바퀴이며
건달바와 아지랑이라네.
모든 견해가 멀리 떠난 것을
무생의 모양이라 함이니,
이와 같은 공(空) 등의 법과
여러 문구도 마땅히 알리라.
생(生)과 공(空)도 아니며
생과 공이 없는 것이지만
모든 인연이 화합하여,
생(生)도 있고 또 멸(滅)도 있으니,
모든 인연 떠나면
생도 멸도 아니라네.
인연 떠나면 법이 없고
화합 떠나면 얻을 수 없으리.
외도는 허망하게 분별하여
같음과 다름이 있다고 보지만
유무와 생함이 아닌[不生] 법에는
유무(有無)를 얻을 수 없으리.
다만 화합한 모든 법으로서
생멸이 있는 것을 본 것이니,
다만 명자만이 있어서
이리 저리 얽매였다네.
저 인연의 얽매임을 떠나면
생하는 법을 얻을 수 없으리.
생하는 법에 생함을 보지 않으면
모든 외도의 허물을 떠날 것이다.
내가 말한 인연의 얽매임을
모든 범부는 알지 못하니,
만약 인연의 얽매임을 떠나면
다시 다른 법은 있지 않으리.
이는 인연이 없는 말이며
인연의 얽매임을 파괴한 뜻이니,
등불이 모든 색상을 나타냄과 같아서
얽매임으로 남도 또한 그렇다네.
이는 얽매임을 떠난 것이며
별로 또한 법의 생함이 있으니
생하는 법 본래 자체가 없어서
자성(自性)이 허공과 같다네.
얽매임을 떠나 법을 구함은
어리석은 사람의 아는 바가 없는 것,
다시 다른 무생(無生)이 있으니
성인의 얻은 바 법이라네.
저 생함에 생함 없는 자는
이는 무생인(無生忍)이니,
만약 모든 세간을 보면
곧 이 얽매임을 본 것이리.
일체가 모두 얽매임이니
곧 마음이 정(定)을 얻어야 하며,
무명과 애착과 업 등은
곧 안의 얽매임이라네.
굴대과 진흙덩이 바퀴와
종자(種子)는 바깥의 큰 얽매임이며,
만약 법이 있다 해도
인연으로부터 나는 것이리.
얽매임의 뜻[義]을 떠나면
그는 성교(聖敎)에 머무름 아니니,
만약 생하는 법이 없다면
그는 어느 얽매임이 될 것인가.
이리 저리 서로 남으로
이를 인연이라 이름함이니,
굳음·젖음·뜨거움·움직임의 법에서
범부는 분별을 낸다.
얽매임을 떠나면 다른 법이 없으니
그러므로 자체 없다 말함이네.
의사가 여러 병을 치료할 적에
병에 따라 대치함과 같아서,
논함은 차별이 없지만,
병이 다르므로 처방이 다르듯이
나는 모든 중생이
번뇌의 허물에 오염됨을 생각하고서
근기와 힘의 차별을 알고
감당함을 따라 말함이지만,
나의 법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근기와 병을 따라 달리 말했지만
나에겐 오직 일승법이니
8성도(聖道)가 청정함이었네.
8. 무상품(無常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또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무상(無常)을 말씀하시고, 모든 외도 역시 무상을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명자와 장구(章句)에 의하여 말씀을 하시기를, '모든 행이 무상함은 생멸의 법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은 진실한 것입니까? 허망한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다시 몇 가지 무상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일체 외도가 허망하게 여덟 가지 무상을 분별하여 말하니,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짓는 바를 열어 일으켜[發起] 짓지 않음이니, 이를 무상이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열어 일으킨다고 이름하는가? 생하는 법[生法]과 생하지 않는 법[不生法]과 항상된 법[常法]과 항상됨이 없는 법[無常法]이니, 열어 일으켜 무상이 된다고 이름한다.
둘째는 형상이 휴식함을 무상이 된다고 이름함이요, 셋째는 색(色) 등이 곧 무상이요, 넷째는 색이 전변(轉變)하므로 달라지는 무상이니, 모든 법이 상속(相續)하다가 자연히 멸하는 것이 우유와 타락[酪]이 전변함과 같다. 일체법에서 그 변함을 보지 아니하며, 또한 멸함을 보지 않음이니 무상이 된다고 이름함이다.
다섯째는 다시 다른 외도들이 있어 물건이 없는 것으로서 무상이 된다고 이름함이요, 여섯째는 유법(有法)과 무법(無法)이 모두 무상함이니, 일체법은 본래 생함이 아니므로 무상이 된다고 이름함이니 무상법이 그 가운데에 화합하였기 때문에 무상함이요, 일곱째는 다시 다른 외도들이 있어서 '본래 없다가 후에 있음을 무상이 된다'고 이름함이니, 말하자면 모든 대(大)의 나는 바 모양이 없어지므로, 그 생함을 볼 수 없고, 상속체(相續體)를 떠났기 때문에 무상이 된다고 이름한다. 여덟째는 불생(不生)의 무상이니, 말하자면 항상됨이 아니니, 그러므로 무상이다. 모든 법의 유무와 생(生)과 불생을 보거나 미진(微塵)까지 관찰하여도 법의 생함을 보지 않으므로 '불생이다'라고 말함이니, 모든 법이 생하지 않음이다.
대혜여, 이를 무생무상(無生無常)의 모양이라 이름한다. 그러나 모든 외도는 저 법이 생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모든 법의 불생을 분별하여 무상이라고 말한다.
대혜여, 외도가 무상의 법을 분별하여 물건이 있다고 말하니, 저 외도는 자심(自心)의 허망으로 무상과 상과 무상 아님을 분별함이니,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자체가 멸하지 않는 까닭이니, 자체가 멸하지 않는 것은 무상의 자체가 항상 멸하지 않는 까닭이다.
대혜여, 만약 무상법이 물건이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모든 법을 낼 것이니, 저 무상이 능히 인(因)을 짓기 때문이다.
대혜여, 만약 일체법이 무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면 모든 법의 유무(有無)가 마땅히 나타나리니, 무슨 까닭인가? 막대·나무·기와·돌과 같아서 능히 파괴되며, 파괴되어질 물건이어서 모두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 가지 다르고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상의 인(因)은 일체법에 없는 법이며, 또한 인(因)도 아니며, 또한 과(果)도 아니다.
대혜여, 또한 모든 허물이 있으니, 저 인과는 차별이 없기 때문에, 이는 무상이며, 저는 과(果)라 말하지 못할 것이니, 인과가 차별되는 까닭이다.
일체법이 상(常)이라고 말하지도 못할 것이니, 일체법이 인(因)이 없는 까닭이다.
대혜여, 모든 법에 인(因)이 있지만, 그러나 범부는 다른 일이 능히 다른 과를 내지 못함을 깨닫지 못한다.
대혜여, 만약 다른 일이 능히 다른 과를 낸다면, 인이 다른 것이 마땅히 일체 모든 법을 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또한 다시 허물이 있으니, 마땅히 인과의 차별로 차별을 볼 것이다.
대혜여, 만약 그 무상이 물건이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인체(因體)의 짓는 바 일과 같을 것이다.
또한 다시 허물이 있으리니, 한 법에 곧 마땅히 일체 모든 법을 구족하여 일체 짓는 바와 같아서, 인과와 업상(業相)의 차별이 없을 것이다.
또한 다시 허물이 있으리니, 스스로 무상(無常)이 있으면, 무상은 무상의 자체(自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시 허물이 있으리니, 일체 모든 법의 무상이 마땅히 항상됨일 것이다.
또한 다시 허물이 있으리니, 만약 그 무상이 모든 법과 같다면 3세(世)법에 떨어질 것이다.
대혜여, 과거 색(色)은 무상과 같으므로 이미 멸했으며, 미래 법은 아직 나지 않아서, 색의 무상함과 같으므로 나지 않음이요, 현재의 있는 법은 색을 떠나지 못했으니 색이 저 모든 대상(大相)으로 더불어 5대(大)에 의지하고 진(塵)에 의지하였기 때문에, 그러므로 멸하지 않음이니, 저것과 저것이 서로 나지 않는 까닭이다.
대혜여, 일체 외도는 모든 대(大)를 '멸함이 아니다' 라고 하기 때문에, '3계(界)가 대에 의지하고 미진(微塵)에 의지한다'라고 하니, 그러므로 저 법에 의하여 생(生)·주(住)·멸(滅)을 말한다.
대혜여, 이 법을 떠나고는 다시 4대(大)와 모든 진(塵) 등의 법이 없으니, 저 외도의 허망한 분별로서 '일체법을 떠나고도 다시 무상이 있다'라고 함이다. 그러므로 외도는 '모든 대(大)가 불생불멸이다'라고 말하니, 자체상이 항상 멸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말하기를, '열어 일으켜[發起] 일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 두는 것을 무상이 된다고 이름한다'라고 한다. 모든 대(大)가 다시 모든 대를 열어 일으킴은 있으나, 저것과 저것의 다른 모양과 같은 모양이 생멸 아닌 법은 없다.
모든 법의 생멸 아님을 봄으로 저 곳에서 무상이라고 하는 지혜를 낸다.
대혜여, 어떤 것을 형상이 휴식함을 무상이라 이름함인가? 말하자면 능조(能造)와 소조(所造)인 형상으로, 형상이 다름을 본 것은 길고 짧음과 같다.
모든 대(大)가 멸함은 아니나, 모든 대의 형상이 전변함을 보지만, 저 사람은 '승구(僧佉)1)'법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대혜여, 또한 '형상이 무상하다'라고 한 것은, 말하자면 어떤 사람은 색(色)에 나아가서[卽] '무상이다'라고 이름함이니, 저 사람은 형상이 무상함을 본 것이요, 모든 대가 무상한 법이라 함은 아니다.
만약 모든 대(大)가 무상이라면, 곧 세간의 일체로서 세상일을 논설할 수 없으리니, 만약 세상일을 논한다면, '로가야타의 사견(邪見) 붕당에 떨어져서, 일체 모든 법이 이름뿐이다'라고 말할 것이며, 또한 모든 법의 자체상(自體相)이 생함을 볼 것이다.
대혜여, 전변(轉變)함이 무상이란, 말하자면 모든 색의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을 본 것이요, 여러 대(大)가 전변함은 아니니, 비유컨대 금으로 장엄구(莊嚴具)를 만들면 형상은 전변함을 보이지만 금의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닌 것과 같아서 다른 법의 전변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대혜여, 이와 같이 외도는 허망한 분별로 법의 무상함을 보고 '불[火]이 여러 대(大)를 태우지 않으며 자체도 타지 않으나, 저 여러 대의 자체가 차별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대혜여, 모든 외도는 말하기를, '만약 불이 능히 여러 대를 태운다면, 곧
여러 대가 단멸할 것이니, 그러므로 타지 않는다'라고 한다.
대혜여, 나는 말하기를, '대(大)와 모든 진(塵)은 상(常)도 아니며, 무상도 아니다'라고 하니, 무슨 까닭인가? 내가 바깥 경계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 까닭이다. 나는 '삼계(三界)가 다만 자심(自心)이다' 라고 말하고, '여러 가지 모든 상이 있다'라고 말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불생불멸이라 말한다.
오직 4대(大)의 인연이 화합했을 뿐이요, 대와 진(塵)은 실로 있는 법이 아니며, 허망한 마음으로 두 가지 가취(可取)와 능취(能取)의 법을 분별함이니, 여실히 두 가지 분별을 능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바깥의 유무(有無)인 보는 상을 떠나면, 오직 자심의 분별과 작업(作業)이니, 이름은 생함이나 업은 생하지 않으니 유무의 분별심(分別心)을 떠났기 때문이다.
대혜여, 무슨 까닭으로 항상됨도 아니며, 항상됨 아님도 아닌가? 세간과 출세간의 상상(上上)인 모든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상됨이라 말하지 아니할 것이다.
무슨 까닭으로 무상이 아닌가? 오직 이 자심의 분별인 견(見)임을 능히 깨닫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상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외도는 사견(邪見)으로 2변(邊)에 집착하는 것에 떨어져서 자심의 허망한 분별임을 알지 못하니, '성인의 무상을 분별함'이 아니다.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이 모두 세 가지 있으니 무엇이 셋이 되는가? 첫째는 세간의 법상[世間法相]이요, 둘째는 출세간의 법상[出世間法相]이요, 셋째는 출세간 상상의 수승한 법상[出世間上上勝法相]이다. 언어(言語)에 의하여 여러 가지로 설법하여도 범부는 깨닫지 못하며 알지 못한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처음으로 지어짐과
형상이 다름을 멀리 떠났지만,
'무상이다', '물건이 있다'라고 이름하여
외도는 허망하게 분별하네.
모든 법은 멸함이 없고
여러 대(大)도 자성(自性)에 머무름인데
여러 가지 견해에 떨어져서
외도들은 무상(無常)이라 말하네.
저 모든 외도는 말하기를,
'모든 법은 생멸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여러 대의 자체(自體)는 스스로 떳떳하니
어떤 법이 무상일 것인가.
일체 세간은 오직 마음 뿐으로,
마음에서 두 경계를 본 것이니,
가취(可取)와 능취(能取)의 법과
아(我)와 아소(我所)법은 없는 것이네.
삼계의 위아래 법을
나는 모두 마음이라 말하니,
모든 마음법을 떠나면
다른 것을 다시 얻을 수 없으리.
9. 입도품(入道品)
그 때 거룩하신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또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세존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일체 보살과 성문과 벽지불의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체상(體相)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와 일체 보살들이 만약 멸진정에 들어가는 차제상(次第相)의 교묘한 방편을 잘 앎을 얻는다면, 성문과 벽지불의 삼매(三昧)·삼마발제(三摩跋提)인 멸진정의 낙(樂)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의 미혹한 법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초지(初地)로부터 6지(地)에 이르러 멸진정에 들며, 성문과 벽지불도 또한 멸진정에 든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7지(地)에서 생각 생각이 멸진정에 드니, 여러 보살이 모두 능히 일체법의 유무(有無)상을 멀리 떠난 까닭이다.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은 능히 생각 생각이 멸진정에 들지 못하니, 성문과 벽지불은 유위(有爲)의 행(行)에 반연하여 멸진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취(可取)와 능취(能取)의 경계에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성문과 벽지불은 7지(地)에서 생각 생각이 멸진정에 능히 들어가지 못한다.
성문과 벽지불은 놀래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내니, 모든 법이 다른 모양이 없는 데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모든 법의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인 법과 법 아님, 선(善)과 불선(不善)의 법,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이 있음을 깨닫고 멸진정에 드니, 그러므로 성문과 벽지불은 능히 7지에서 생각 생각이 멸진정에 들어가지 못하며, 선교(善巧) 방편인 지혜가 없는 것이다.
대혜여, 7지 보살마하살은 성문과 벽지불의 심(心)·의(意)·의식(意識)을 전멸(轉滅)한다.
대혜여, 초지와 내지 6지(地) 보살마하살은 삼계(三界)가 다만 자심의 심·의·의식이요, 나와 내 것이라는 법을 떠나서 오직 자심의 분별임을 보고, 바깥 법의 여러 가지인 모든 모양에 떨어지지 않는다.
오직 이 범부의 속마음이 어리석어서 2변(邊)에 떨어져서 가취와 능취의 법을 보지만, 아는 것이 법이기 때문에 끝없는 예로부터 오면서, 몸과 입과 뜻과 망상과 번뇌와 희론의 훈습으로 모든 법을 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대혜여, 8지에서는 일체 보살과 성문과 벽지불이 열반이라는 생각에 든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자기 자심의 삼매와 부처님의 힘을 입어서 삼매락(三昧樂)의 문에 들어가서 열반에 떨어져 머무르지 아니하니, 여래의 지위를 만족하지 못한 까닭이다.
만약 저 보살이 삼매문에 머무르는 자는 일체 중생을 휴식하게 하며 도탈(度脫)하기를, '여래종(如來種)을 끊으며, 여래가(如來家)를 멸함은 여래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모든 경계를 보이기 위함이니, 그러므로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한다.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은 삼매락의 문인 법에 떨어지니, 그러므로 성문과 벽지불은 열반이라는 생각은 낸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초지로부터 7지에 이르러서는 공교로운 방편을 갖추어서, 심·의·의식의 상(相)을 관찰하여, 나와 내 것이라 함으로 상을 취하는 법을 멀리 떠나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관찰하고,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을 관찰하여 4무애(無礙)인 공교로운 방편의(方便義)를 잘 알고, 자재(自在)롭게 차제로 모든 지위와 보리분법(菩提分法)에 들어간다.
대혜여, 내가 만약 모든 보살마하살의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인 법을 말하지 않는다면, 일체 보살은 모든 지위의 차례를 여실히 알지 못하고, 외도의 사견(邪見) 등의 법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여, 나는 차례로 모든 지위의 모양을 말하였다.
대혜여, 만약 사람이 차례로 모든 지위에 들어간다면 다른 도(道)에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말한 '모든 지위의 차례인 모양'은 오직 자심에서 모든 지위의 차례 및 삼계에서 여러 가지 행상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범부는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모든 범부는 깨달아 알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나와 일체 부처님께서 모든 지위의 차제의 모양과 삼계의 여러 가지 행상(行相)을 건립함을 말한다.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은 제8보살 지위의 적멸(寂滅)삼매의 낙문(樂門)을 좋아하고 취하였으므로 오직 자심의 견(見)임을 잘 알지 못하고, 자기 모양과 같은 모양의 훈습으로 장애함에 떨어지므로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의 견해인 허물에 떨어져서 분별하는 마음으로 열반이 된다고 이름하며, 능히 모든 법의 고요함을 알지 못한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고요한 삼매락의 문을 봄으로서 본원(本願)을 기억하고 생각하여 큰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건져주며, 10무진(無盡)의 여실행인 지혜를 아니, 그러므로 곧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허망하게 분별하는 마음을 멀리 떠나며, 능취와 가취의 경계를 멀리 떠나는 것을 열반에 들어간 것이라 이름함이니, 여실한 지혜로서 '일체 모든 법이 오직 이 자심임'을 아니, 그러므로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은 심·의·의식을 취하지 않으며, 바깥 법이 실로 있다는 상에 집착하지 아니하지만, 그러나 불법의 수행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 근본지(根本智)에 의하여 전전(展轉)히 수행하여 자신에게서 부처님·여래의 증득하신 땅의 지혜를 구하려고 함이다.
대혜여, 사람이 잠을 자면서 꿈에 큰 바닷물을 건너려고 큰 방편을 일으켜 자신을 건너려고 하다가 건너지 못하고서 중간에 문득 꿈에서 깨면, 이러한 생각을 한다. '이것이 사실인가? 허망한 것인가?' 그는 또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모양은 사실도 아니며, 허망도 아니요. 오직 나의 본래 진실 아닌 경계를 허망하게 분별하는 훈습의 인(因)으로 여러 가지 형색을 본 것이니, 형색의 뒤바뀜은 유무를 떠난 것이 아니며, 의식의 훈습으로 꿈속에 보인 것이라 함과 같다.
대혜여,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8지(地)에서 분별하는 마음과 초지와 7지의 모든 법 같은 모양이 꿈과 같고 환상과 같아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고, '모든 공용(功用)인 가취(可取)와 능취(能取)의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고, 심(心)과 심수(心數)법을 보아서, 상상분법(上上分法)을 얻지 못한 수행자를 위하여, 그로 하여금 얻게 한다.
보살마하살이 수승한 법을 수행하는 것을 열반이 된다고 이름함이요, 모든 법을 멸하는 것을 열반이 된다고 이름함이 아니다.
보살마하살은 심·의·의식의 분별하는 상을 멀리 떠나므로 무생인(無生忍)을 얻는다.
대혜여, 제일의(第一義)에는 또한 차제도 없으며, 차제행(次第行)도 없어서 모든 법의 고요함이 또한 허공과 같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문과 벽지불이 제8보살지의 적멸락(寂滅樂)의 문에 들어간다'라고 하시며, 여래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성문과 벽지불은 다만 이 자심의 분별임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시고, 또한 말씀하시기를, '모든 성문은 인무아(人無我)만을 얻고 법무아공(法無我空)은 얻지 못했다'라고 하시니, 만약 이 말씀과 같다면 성문과 벽지불은 오히려 능히 초지의 법도 증득하지 못하였는데, 어찌 8지의 적멸락의 문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 지금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말할 것이다.
대혜여, 성문이 세 가지 있으니, 8지(地)의 적멸문에 들어갔다고 말한 것은, 옛적에 보살행을 닦은 자가 성문의 자리에 떨어졌다가 다시 본심에 의하여 보살행을 닦아서 한가지로 8지의 적멸락의 문에 들어간 것이요, 증상만(增上慢)인 적멸의 성문(聲聞)은 아니다. 그는 능히 보살행에 들어가지도 못했으며, 아직 삼계가 유심(唯心)임을 깨닫지 못했으며, 아직 보살의 모든 법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아직 모든 바라밀과 10지의 행을 수행하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결정(決定)의 적멸인 성문은 능히 저 보살의 행하는 바 적멸락의 문을 증득하지 못한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일 뿐, 가진 바가 있지 않으니
모든 행과 부처님의 지위를
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께서
항상 이와 같이 말씀하시네.
7지(地)는 마음의 자리[心地]요,
가진 바가 없는 것은 8지(地)이고,
2지는 행(行)이라 이름하며,
다른 자리를 나의 자리[我地]라 하네.
속 몸으로 증득함과 청정함은
이는 나의 자리라 이름하니,
자재하고 가장 훌륭한 곳인
아가니타천(阿迦尼咤天)에서
불꽃 같이 빛나게
묘한 광명 내나니.
여러 가지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삼계를 변화로 만들어내네.
3계의 빛을 변화로 나타내며
혹은 옛적의 교화가 있는
그 곳엔 모든 승(乘)을 말하니,
이것이 나의 자재(自在)한 자리라네.
10지(地)가 초지로 되기도 하며,
초지가 8지로도 되고
9지가 7지로도 되며
7지가 8지로도 된다네.
2지가 3지로 되기도 하며
4지가 5지로도 되고
3지가 6지도 되지만,
적멸에는 무슨 차제가 있으랴.
결정인 모든 성문(聲聞)은
보살행을 행하지 않으며,
한가지로 8지에 들어가는 이는
본래 보살행을 닦은 이라네.
입능가경(入楞伽經) 하편2
10. 문여래상무상품(問如來常無常品)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 응공, 정변지는 떳떳함이옵니까. 무상(無常)함이옵니까.”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여래, 응공, 정변지는 떳떳함도 아니며 무상함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二변은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유와 무인 二변에는 응당 과실이 있을 것이다.
대혜여, 만일 여래를 떳떳한 법이라고 말한다면, 곧 떳떳한 인(因)과 같을 것이다.
대혜여, 외도가 말한 ‘미진(微塵)인 모든 인이 떳떳함이요, 지어진 법은 아니다’고 하기
때문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여래를 떳떳함이라 말하지 아니 할 것이니,
지어진 법이 아닌데 떳떳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니라.
대혜여, 또한 여래를 떳떳함이 아니라고 말하지 아니할 것이니,
무상이라 말한 것은 곧 하염이 있는, 지어진 법인 五음에 가견(可見)과,
능견(能見)의 법이 없어 짐과 같을 것이니, 五음은 없어지기 때문에 五음이 없어진다면,
부처님, 여래도 또한 응당 한가지로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여래는 없어지는 법이 아
니니라.
대혜여, 무릇 지어진 법이란 모두 무상한 것이니,
병(甁)과 의복과 수레와 쌓은 자리[疊席]등은 모두 지어진 법이니, 그러므로 무상하느니라.
대혜여, 만일 일체가 모두 무상하다 말할진대, 일체지(一切智)와 일체 사람과 일체 공덕도
또한 응당 무상하여 일체 지어진 법의 모양과 같을 것이다. 또한 다시 허물이 있나니,
만일 일체가 모두 무상하다 말할진대 부처님 여래도 응당 이 지어진 법일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여래는 이 지어진 법이 아니니,
다시 더 이상 수승한 인(因)이 있다고 말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되, ‘여래는 떳떳함도 아니며, 또한 무상함도 아니라’ 말하노라.
대혜여, 여래는 떳떳함이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허공의 성질이라서 또한 모든 공덕을 수행함도 없는 때문이니라.
대혜여, 비유컨대 허공은 떳떳함도 아니며 무상함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떳떳함과 무상함을 떠났기 때문이며, 같음과 다름과, 함께와 함께 아님과,
있음과 없음과 있는 것 아님과 없는 것 아님과, 떳떳함과 무상함과,
떳떳함 아님과 무상함 아닌 것들에 떨어지지 아니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 모든 허물을 떠났기에 가히 말할 수 없느니라.
대혜여, 또한 여래를 떳떳함이라 말하지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이냐.
만일 떳떳하다 말할진대, 토끼, 말, 낙타, 나귀, 거북, 뱀, 파리, 고기[魚]들의 뿔과 같을 것이
다.
그러므로 여래를 떳덧함이라 말하지 아니할 것이다.
대혜여, 또한 여래를 떳떳함이라 말하지 아니할 것이니,
불생(不生)인 떳떳함에 떨어질까 두려워 함이다. 그러므로 여래, 세존을 떳떳하다 말하지 아
니할 것이다.
대혜여, 다시 다른 법이 있어서, 여래, 세존을 떳떳함이라 말할 수 있나니,
저 법에 의하므로 여래 세존을 떳떳함이라 말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이냐,
안으로 증득하는 지혜로서 떳떳한 법을 증득함에 의하기에,
그러므로 여래를 떳떳함이라 말할 수 있나니라.
대혜여, 부처님 여래의 안으로 증득한 지혜의 법은 떳떳하며 항상이며
청량(淸凉)이며, 불변(不變)이니라.
대혜여, 불,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 만일 세상에 출현하지 아니 하시드라도,
법성(法性)은 항상 이와 같고, 법체도 항상 이와 같고, 법의 궤칙(軌則)도 항상 이와 같나니,
저 법성은 일체 성문과 벽지불들의 또한 일찍 듣지 못한 바며, 또한 일찍 보지 못한 바며
이와 같은 법체는 허공가운데도 아니거늘, 어리석은 범부는 깨닫지 못하나니라.
대혜여, 불, 여래의 안으로 증득한 지혜는 저에 의하여 얻어진 이름인 것이다.
대혜여, 여실한 지혜에 의하여 수행하므로 부처가 된다 이름함을 얻어진 것이요,
심, 의, 의식과 무명과 五음으로 훈습하여 얻어진 이름이 아니니라.
대혜여, 일체 三계는, 진실 아닌 망상과 분별과 희론으로 얻어진 이름이니라.
대혜여, 진실하지 못한 분별인 두가지 법은, 떳떳함과 무상함이라 이름되느니라.
그러나 불 여래는 두 법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능취와 가취인 二변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여래는 고요하여 두 법이 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를 떳떳함이라’ ‘무상함이라’ 말하지 못할
것이다.
대혜여, 무릇 말한 바는 ‘떳떳함이라’ ‘무상함이라’고 말함을 얻어지나,
일체 분별을 멀리 떠나서 다한 자는 ‘떳떳함이라’ ‘무상함이라’ 하는 법을
취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일체 범부에게 ‘떳떳하다’ ‘무상하다’고 분별하지 못하게 막나니
진실인 고요한 법을 얻은 자는 분별을 없애고 분별을 내지 않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떳떳함과 무상을 떠나서
떳떳함도 무상함도 아니니
만일 이와 같이 부처를 보면
그는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으리.
만일 떳떳함과 무상함을 말하며
모든 공덕 허망이라 하면
지혜 없는 이의 분별함이니
그러므로 상(常)과 무상, 말함을 막았다.
법을 내 세우는 이는
모두 여러 허물이 있나니
만일 능히 유심(唯心)임을 본다면
그는 모든 허물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11. 불성품(佛性品)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또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는 저의를 위하여 말씀하옵소서.
선서(善逝)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음, 계, 입의 생(生)하며, 무엇이 멸(滅)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일체 범부는 생(生), 멸(滅), 주(住)에 의하여, 고(苦) 다함을 보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열반의 모양을 알지 못하나이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갈무리는 선(善)과, 불선(不善)의 인(因)이다.
능히 육도(六道)로 더불어 생사(生死)의 인연을 짓나니 비유컨대,
재주 부리는 아이들이 가지 가지의 재주를 부려냄과 같아서,
중생이 여래 갈무리[如來藏]에 의지하여 五도(道)에서 나고 죽느니라.
대혜여, 여래장(如來藏)은 나와 내것이라 함을 떠났지만, 모든 외도들은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三계에서, 나고 죽는 인연이 끊어지지 않느니라.
대혜여, 외도들은 허망하게 아(我)를 계교하므로 능히 여래장을 여실히 보지 못하나니,
외도는 끝없는 세월로 오면서 허망한 집착과 가지 가지 희론과 모든 훈습이었기 때문이다.
대혜여, <아라야>식은 여래장이라 이름하나니, 무명인 七식(識)으로 더불어 함께 함이
큰 바다에 물결이 항상 끊히지 아니함과 같아서, 몸과 함께 낳았던 까닭이니라.
무상(無常)의 허물을 떠나며, 아(我)의 허물을 떠나면 자성(自性)이 청정하리라.
그외 七식이란 심, 의, 의식등의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한 생멸(生滅)의 법이니,
七식은 저 허망한 인(因)으로 말미암아 난 것이다.
능히 모든 법을 여실히 분별하지 못하고,
높고 낮고 길고 짧은 형상을 보고 명상(名相)에 집착하므로
능히 자심으로 하여금 색상을 보며, 능히 고락(苦樂)을 얻으며, 능히 해탈의 인을 떠나며,
명상으로 인하여 수번뇌(隨煩惱)인 탐(貪)이 나게되며,
저 생각하는 인(因)에 의하여 여러 근(根)이 멸진(滅盡)하므로 차제로 나질 않기에,
기외 자의(自意)의 분별에서도 고락인 감수(受)가 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소상정(少想定)과,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며,
사마파티와 四선(禪)과, 실체(實諦) 해탈에 들어가나니라.
그러나 수행 하는 이는 ‘해탈이다’라는 상(相)을 내나니, 허망한 상을 전멸함을 알지 못한
까닭이니라.
대혜여, 여래장식(如來藏識)은 <아라야>식 가운데에 있지 않나니,
그러므로 일곱가지 식(識)은 생함도 있으며, 멸함도 있거니와
여래장식은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나니 무슨 까닭이냐.
저 일곱가지 식은 모든 경계와 생각함과 관(觀)하는 것에 의하여 나는 것이다.
이 七식의 경계는 일체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와 수행자도 능히 깨달아 아지 못하나니,
여실히 인무아(人無我)를 알지 못한 까닭이며, 음, 계, 입의 법들을 보는 까닭이니라.
대혜여, 여래장은 여실히 五법의 체상과 법무아(法無我)를 본 것이므로 생함이 아니며,
여실히 여러 지위의 차례와 전전히 화합함을 아는 까닭이다.
다른 외도는 바르게 보는 것이 아니기에 능히 관찰하지 못하나니라.
대혜여, 보살이 부동지(不動地)에 머무르면, 그때엔 열가지 삼매문 등을 얻어서 상수(上首)가
될 것이며
한량없고 가없는 삼매를 얻고 삼매와 부처님의 주지(住持)하심에 의하여 헤아릴 수 없는 불
법과
자기의 본 원력(願力)을 관찰하므로 삼매문의 실제(實際) 경계를 막아
두호[遮護=삼매낙을 받지 않음] 하고, 막아 두호하고는 자기 속몸의 거룩한 지혜로
법을 증득하는 진실한 경계에 들어가서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의 수행으로 관찰할 바 경계와 같지 아니 하나니라.
그때엔 저 열가지 성도(聖道)를 지나서 여래의 ‘뜻대로 나는 몸’[意生身]과,
지혜의 몸에 들어가서 모든 공용인 삼매 마음을 떠나느니라. 그러므로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수승한 법인 여래장 <아라야>식을 증득하려 할진대
응당 수행하여, 하여금 청정하게 할 것이다.
대혜여, 만일 여래장 <아라야식>을 얻는 것이라 이름한다면
<아라야식>을 떠나고는 생도 없고 멸도 없으리라.
일체 범부와 모든 성인도 저 <아라야식>을 의지하므로 생도 있으며, 멸도 있나니라.
<아라야식>을 의지하므로 모든 수행자는 자기 속몸의 거룩한 행을 증득하는 데에 들어가
서,
법락행(法樂行)을 나타내면서 쉬지 않나니라.
대혜여, 이 여래의 마음인 <아라야식> 여래장식의 경계는 일체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들은
능히 분별하지 못하리니 무슨 까닭이냐.
여래장은 이 청정한 모양이거늘 객진 번뇌(客塵煩惱)가 더럽힌 것으로 깨끗하지 못하나니라.
대혜여, 나는 이 뜻에 의하여, 스리말라 부인과, 다른 보살 마하살인 깊은 지혜 있는 이를
위하여
여래장 아라야식이 七종(種)식과 함께 나는 것을 전멸상(轉滅相)이라 이름한다고 말하였으
며,
여러 성문과 벽지불들을 위하여 법무아를 지지하였으며,
스리말라를 대해서는 여래장은 이 여래의 경계라고 말하였노라.
대혜여, 여래장식 <아라야식>의 경계는 나와 지금 그대와 여러 보살과 깊은 지혜 있는 이
만이,
능히 이 두가지 법을 분별할 것이요. 기외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들의 명자에 집착하는 이는
능히 이 두 법을 요달하여 아지 못하리라.
대혜여, 그러므로 그대와 및 여러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이 법을 배울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아주 깊은 여래장이
七식으로 더불어 함께 나서
두 법을 취하여 나는 것을
여실히 나지 않는 것으로 알으리.
거울 모양과 같이 마음에 나타남은
끝없는 습기로 훈습한 바니
만일 여실히 관찰한다면,
모든 경계 다 공하여 없으리.
어리석은 이, 달 가르킴 볼 적에
손가락만 보고 달 보지 않듯이
명자에 집착하고 계교하는 이는
나의 진실을 보지 못하리.
심(心)은 공교로운 재주 부리는 이 같고
의(意)는 교활한 자 같으며
의식(意識)과 五식은
허망스리 경계를 취하네.
재주 부리는 아이들이
서로 어울림과 같이
범부를 속여 의혹함이었네.
12. 오법문품(五法門品)
그때에 거룩하신 대혜 보살 마하살은 부처님께 또한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노니, 여래, 응공, 정변지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말씀하옵소서.
선서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五법 체상과 무아(無我)의 차별인 행상을 말씀하옵소서.
저희와 일체 보살들이 만일 五법 체상과 두 가지 무아의 차별상을 잘 앎을 얻으오면,
이 법을 수행하여, 차례로 일체 여러 지위에 들어갈 것이오며, 이 법을 수행하면,
능히 일체 불법 가운데에 들어가오리니, 불법에 들어가는 자는,
내지 여래 자신이 안으로 증득한 지혜의 땅에도 들어갈 것이옵니다.”
부처님은 거룩한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착한 대혜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 보살은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였다.
“내 그대를 위하여 五법 체상과, 두가지 무아의 차별인 행상을 말하겠다.
대혜여, 어떤 것이 五법이냐. 첫째는 명(名)이요, 둘째는 상(相)이요, 세째는 분별이요,
네째는 정지(正智)요, 다섯째는 진여(眞如)이니라.
안으로 몸소 수행하여 성인의 지혜를 증득하고 단상(斷常)의 견해를 떠나서
여실히 수행함을 나타내는 자는 삼매의 낙(樂) 사마파티의 행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대혜여, 일체 범부는 五법 체상과, 두가지 무아를 아지 못하고, 오직 자심으로 바깥 물건을
보기에,
그러므로 분별하는 마음을 내나니, 성인일 수 없느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범부가 분별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성인일 수 없다고 하시나이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범부는 명상에 집착하여 생(生)하는 법을 수순하고,
생하는 법을 수순하고는 가지 가지 모양을 보고
<나>와 <내것>이라 하는 사견(邪見)의 마음 가운데에 떨어져서,
일체 법상을 집착함이 구족하고 집착하고는
무명의 어둠이 가리운 곳에 들어가며 가리운 곳에 들어가고는 탐심(貪心)을 일으키며
탐심을 일으키고는 능히 탐, 진, 치의 업을 조작하며 업행(業行)을 조작하고는
능히 스스로 그치지 아니하여 누에고치를 짓듯이 분별하는 마음으로써 스스로 몸을 얽어서
六도의 큰 바다 험난한 데에 떨어져 있어서,
두레박이 회전함과 같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나니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일체 모든 법이 환과 같음을 아지 못화며, ‘나와 내 것이라 함이 없는’ 것을 아지 못한다.
모든 법의 진실 아닌 것은 망상 분별에서 난 것인데 가견(可見)과 능견(能見)의 떠남을 아
지 못하며,
생(生), 주(住), 멸(滅)상을 떠남을 아지 못하며, 자심의 허망으로 생긴 것을 아지 못하고,
‘자재천(自在天)과 시간(時)과, 미진(微塵)과, <나>로 수순하여 생긴 것이라’고 말하나니
라.
대혜여, 어떤 것이 명(名)이 되느냐. 말하자면 안식(眼識)과 현전의 색 등인 법상(法相)이니,
소리의 모양 귀의 모양, 코의 모양, 혀의 모양, 몸의 모양과 같은 것이다.
대혜여, 이와 같은 모양을 나는 말하여 ‘명상이된다’고 이름하노라.
대혜여, 어떤 것이 분별이냐, 어떠한 법에 의하여 이름을 말하며 상(相)을 취하여 요별(了別)
하되
‘이 법은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필경에 다르지 않다’ 함이니 말하자면 코끼리, 말, 수레,
도보(步) 인민(人民)등으로 가지 가지 모양을 분별함이니, 이를 분별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어떤 것이 정지(正智)이냐. 명상을 관찰하여 관찰하고는 사실인 법을 보지 않나니,
그는 번갈아 함께하는 인(因)이 생하므로 보이는 것이니, 번갈아 함께 함이 생한다는 것은
여러 식(識)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며, 분별식(分別識)의 모양이 단멸도 떳떳함도 아닌 것이
니,
그러므로 일체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의 땅에 떨어지지 않나니라.
대혜여, 이를 정지(正智)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보살 마하살이 정지(正智)에 의하여 명상법을 취하여 ‘있다’고 하지 아니하며
보이지 않는 모양을 취하여 ‘없다’고 하지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이냐. 유무(有無)인 사견(邪見)을 떠났기 때문이다.
명상을 보지 아니 함은 이 정지의 뜻이니, 그러므로 나는 말하여 ‘진여(眞如)가 된다’ 이
름하노라.
대혜여, 보살이 진여 법에 머무르는 자는 모양없는 고요한 경계에 얻어 들어가리니,
들어가고는 보살의 처음 환희지(歡喜地)에 얻어 들어 가리라.
보살이 처음 환희지를 얻을 때엔, 百 금강(金剛) 삼매명문(明門)을 증득하여
二十五유(有)의 일체 과업(果業)을 버리고 떠나서 성문과 벽지불의 땅을 지나서
여래의 집 진여의 경계에 머물러 여실히 수행하여 五법의 모양이 눈홀림 같고 꿈 같음을 알
고
여실히 일체 모든 법을 관찰하여 안으로 몸소 거룩한 지혜를 증득하며 수행하는 것을 일으
켜
이와 같이 전전히 허망한 세간의 각관(覺觀)으로 좋아하는 땅을 멀리 떠나서,
차례로 법운지(法雲地)에 이르며 법운지에 들어가고는 차례로 삼매의 힘이 자재함과
신통(神通)의 모든 꽃으로 장엄한 여래의 땅에 들 것이다.
여래의 땅에 들고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가지 가지 광명과 응화할 장엄의 몸을 나타내
는 것이
물속의 달과 같으며, 무진구(無盡句)에 의하여 묶인 바를 잘 풀어주되 중생의
‘믿는 것을 따라서 설법하여 심, 의, 식인 몸을 떠나게 하느니라.
대혜여, 보살이 진여에 들어가고는 부처님 지위 가운데의 이와 같고,
이와 같은 햔량없고 가없는 법을 얻나니라.’
대혜 보살은 부처님께 또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五법이 三법[敎法 行法 證法]에 들어가는 것이옵니까.
三법이 五법 가운데에 들어가는 것이옵니까. 자체상이 각각 차별한 것이옵니까.”
부처님은 대혜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三법이 五법 가운데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대혜여, 비단 三법이 五법 가운데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八종식과, 두가지 무아(無我)도, 또한 五법에 들어가느니라.
대혜여, 어찌하여, 三법이 五법 가운데에 들어가는 것이냐.
대혜여, 명상은 분별 법상이 된다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저 二법 분별에 의하여 심과 심수(心數)법이 나나니 일시인 것이요,
전후(前後)가 아닌 것이 해가 광명과 함께함과 같아서, 일시에 가지 가지 모양을 분별함이
있나니.
대혜여, 이를 셋의 모양[三相]이 인연의 힘에 의하여 난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정지(正智)와 진여는 제일의제(第一義諦) 모양이라 이름함이니, 불멸법(不滅法)에 의
한 까닭이다.
대혜여, 자심의 견(見)에 집착하여, 법을 분별하는 차별이 여덟 가지 있나니,
모든 상을 분별하여 사실로 여기는 까닭이다.
<나>라 함과, 내것이라 하는 생멸(生滅)법을 떠나면, 그때엔 두 무아(無我)법을 얻어 증득하
리라.
대혜여, 五법 법문은 부처님의 땅에 들어가며 여러 지위의 법상도 또한 五법문 가운데에 들
어가며
일체 성문과 벽지불의 법도 또한 五법문의 가운데에 들어가며
여래의 안으로 몸소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의 법도 또한 五법문 가운데에 들어 가느니라.
대혜여, 五법은 상(相)과 명(名)과 분별과 진여와 정지(正智)이니라.
대혜여, 어떤 것을 상이 된다 이름하느냐. 상이란 보이는 색의 형상과,
상모(相貌)가 수승하고 수승하지 못한 것이니 이를 ‘상이 된다’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저 법상에 의하여 분별하는 상을 일으키되, ‘이는 병(甁)이며, 이는 소, 말, 염소며,
이 법은 이와같고 이와 같아서 다르지 아니한다’ 함이니 대혜여, 이를 ‘명(名)이 된다’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저 법에 의하여 이름을 세우며 저 모양을 요별(了別)하며, 시현(示現) 하나니
그러므로 저 가지 가지 명자인 소, 염소, 말 등을 세움이니 이를 ‘분별 인심과 심수 법이
라’ 이름하느니라.
대혜여, 명상과 내지 미진(微塵)을 관찰하여 항상 한 법상도 보지 않음이니,
모든 법의 진실 아닌 것은 허망한 마음으로 분별을 내기 때문이다.
대혜여, ‘진여라’ 말함은 ‘허망 아닌 것이라’ 이름함이니,
결정코 필경에 자성(自性) 자체를 다하는 것이 진여상을 바로 본 것이다.
나와 여러 보살과 및 여러 부처님, 여래, 응공, 정변지는 말하되,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
다’고 하노라.
대혜여, 이와 같은 등은 정지(正智)를 수순하여, 단멸(斷滅)도 떳떳함도 아니요,
분별이 없나니 분별이 행하지 않는 곳에는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지혜를 수순하
여,
일체 외도와 성문과 벽지들의 악견(惡見)과 붕당과 바르지 못한 지혜 속을 떠났느니라.
대혜여, 五법과 二법상과 여덟가지 식(識)과 두가지 무아와, 일체 불법은 모두 五법 가운데
에 드나니
대혜여, 그대와 보살 마하살은 수숭한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마땅히 닦아 배울 것이니라.
대혜여, 그대가 五법을 알면,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리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五법 자체상과,
여덟가지 식과
두 가지 무아법은
대승에 섭취함이라네.
명상과 분별과
三법의 자체상과
정지와 진여는
이 제일의 모양이라.
13. 항하사품(恒河沙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명자(名字)에 의하여 말씀하심과 같아서, '과거·미래·현재 여러 부처님의 수가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여래의 입에 의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저희들이 수순하여 취하겠습니다. 또한 다시 뜻이 있는 것입니까? 원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말한 명자와 장구(章句)대로 이와 같이 취하지 말 것이다.
대혜여, 3세(世)의 부처님께서 항하의 모래뿐만이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세간에서 뛰어난 것을 비유한 것은 비유함과 같은 것만은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세간에서 뛰어난 것을 비유로서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음'을 결정하여 말할 수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내가 말한 바는 다만 적은 부분일 뿐이다.
대혜여, 나와 여러 부처님·여래·응공·정변지의 말한 바 비유는 다만 적은 뜻만을 말한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어리석은 범부와 외도들은 '모든 법이 떳떳하다'는 것에 집착하여 사견(邪見)을 증장(增長)하고 세간을 수순하여 생사에 윤회하니, 그들은 싫증을 내기 쉽고 듣고는 놀라며 두려워한다.
또한 여러 부처님께서 항하의 모래와 같다고 함을 들으면, 문득 여래의 위없는 성도(聖道)에서 얻기 쉽다는 생각을 내고, 출세의 법을 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부처님·여래가 항하의 모래 수와 같다고 말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내가 다른 경(經)에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시는 것이 우담바라꽃과 같다고 하면 중생이 듣고는 말하기를, '불도(佛道)는 얻기가 어렵다'고 하여 닦아 정진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나는 '불·여래가 항하의 모래 수와 같다'라고 말하였다.
대혜여, 내가 '부처님의 출세하시는 것이 우담바라꽃과 같다'라고 한 것은 가히 교화할만한 중생에 의하여 한 뜻이니, 그러므로 나는 '부처님께서 우담바라꽃과 같다'라고 말하였다.
대혜여, 우담바라꽃은 세상에서도 일찍이 본 사람이 없으며, 미래에도 또한 보지 못할 것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는 세상에서 일찍 보았으며, 현재에 보고 미래에도 볼 것이다.
대혜여, 내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자신의 얻은 바 법에 의하여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우담바라꽃과 같다'라고 말한 것으로, 여러 부처님·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대혜여, 나는 속 몸으로 증득한 법에 의하여 설법한다. 그러므로 세간을 뛰어넘는 비유를 말한다. 모든 범부와 믿음이 없는 중생은 능히 나의 말한 바 비유를 믿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자기 속 몸의 거룩한 지혜의 경계를 말함에 비유로도 말할 수 없으니, 심·의·의식을 멀리 떠나고 모든 견해의 자리를 뛰어넘는 것인 부처님·여래의 진여(眞如)법은 가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 가지 비유를 말하였다.
대혜여, 내가 말한 '여러 부처님께서 항하의 모래 수와 같다'라고 함은 이 적은 부분[少分]인 비유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는 평등하여 평등 아닌 것이 아니니, 분별[能分別]과 분별되는 것[所分別]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항하에 있는 모래를 고기와 자라와 거북과 용과 소와 염소와 코끼리와 말과 모든 짐승이 밟을지라도, 그러나 저 항하의 모래는 분별을 내지 않으며 성내지 않고 또한 나를 괴롭게 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니, 분별이 없으므로 모든 더러움[垢]을 깨끗이 떠났기 때문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응공·정변지도 또한 이와 같아 속 몸으로 거룩한 지혜를 증득하여, 만족한 모든 힘과 신통과 자재한 공덕이 항하의 모래와 같은데, 일체 외도와 사론(邪論)인 모든 스승과 어리석은 이 '고기와 자라'인 것들이 성내는 마음으로 여래를 헐뜯고 꾸짖어도 여래는 동하지 않고 분별을 내지 않으며 본원력(本願力)으로 중생에게 삼매(三昧)·삼마발제(三摩跋提)를 주어 일체 모든 낙(樂)으로 하여금 만족하게 함으로써 분별하지 않는다.
대혜여, 그러므로 나는 부처님·여래가 항하의 모래 등과 같다고 말한 것은 평등하여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이니, 애착인 몸을 떠났기 때문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항하의 모래가 땅을 떠나지 못함과 같다.
대혜여, 불이 대지(大地)를 태울지라도 불이 땅과 다르지 않으므로 불이 땅을 태우지 않으니, 지대(地大)에는 불의 상속(相續)하는 자체(自體)가 있기 때문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전도된 지혜에 떨어져, 자심에서 분별하여 말하기를, '땅이 불에 태워 지게 된다'라고 하지만, 그러나 땅은 타지 않으니, 땅을 떠나고서 다시 4대(大)인 불의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부처님·여래·법신의 체(體)는 항하의 모래와 같아서 멸하지도 아니하며 없어지지도 않는다.
대혜여, 비유컨대 항하의 모래가 한량없고 가없는 것과 같다.
대혜여, 불·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세간에 출현하여 한량없는 광명을 놓고 일체 부처님의 큰 모임[大會]에 두루하며, 중생을 교화하려고 그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한다.
대혜여, 항하의 모래는 다시 나는 모양[生相]이 아님이 저 미진(微塵)과 같아서, 미진인 체상(體相)이 이와 같이 머무른다.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세간에서 생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으니, 부처님·여래께서는 유(有)의 인(因)을 끊으셨기 때문이다.
대혜여, 항하의 모래가 만약 항하에서 나간다 해도 또한 나가는 것을 보지 않으며 항하 가운데에 들어간다 해도 또한 들어가는 것을 보지 않으며, 또한 생각을 일으키기를, '내가 항하에서 나가고 들어간다'라고 하지 않는다.
대혜여, 부처님·여래의 지혜의 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도 다 멸도(滅度)함이 아니며, 또한 증장(增長)함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은 몸[身]이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일체 몸이 있는 것은 모두 무상하고 마멸(磨滅)하는 법이요, 몸이 없는 법은 아니지만 부처님·여래께서는 오직 법신(法身)인 것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소유(蘇油 : 우유로 만든 향유)를 얻으려고 하는데, 항하의 모래를 눌러 짠다면 마침내 얻을 수 없으니, 소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는 중생에게 고뇌(苦惱)의 압박한 바 되어도 성냄은 얻을 수 없으니, 자기의 법계상(法界相)을 버리지 않으며, 자기의 법미상(法味相)을 버리지 않으며, 본원력(本願力)을 버리지 아니하고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어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구족함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며, 내가 '만약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지 못한다면, 나의 몸도 또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라고 함이다.
대혜여, 항하의 모래가 물을 따라서 흐르고 마침내 물을 거슬러 흐르지 아니함과 같다.
대혜여, 부처님·여래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함도 또한 그러하여 열반을 따라 순종하고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대혜여, 그러므로 '부처님·여래께서 항하의 모래와 같다'라고 말하였다.
대혜여, 항하의 모래가 물을 따라 흐른다 함은 간다는 뜻이 아니니, 만약 부처님·여래께서 간다는 뜻이 있다면 부처님·여래께서는 마땅히 무상하여 멸함일 것이다.
대혜여, 세간의 본제(本際 : 근본실제)도 오히려 가히 알지 못하는데, 알지 못한 것을 내 어찌 그에 의하여 간다는 뜻을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간다는 뜻이 되지 않는다.
대혜여, 간다는 뜻이란, '단멸의 뜻이 된다'라고 이름할 것이니, 어리석은 범부는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만약 중생이 세간에서 윤회하면서도 가고 오는 본제(本際)를 가히 알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해탈을 얻으셨으며,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해탈이라 말함은, 일체 희론과 번뇌와 끝없는 훈습과 분별하는 마음을 떠났으므로, 여실히 오직 제 마음에서 바깥의 분별하는 바를 나타내어 마음이 회전(廻轉)한 것을 능히 앎이니, 그러므로 나는 말하여 '해탈이 된다'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해탈이라 말한 것은 멸하는 법이 아니니, 그러므로 그대가 지금 나에게 묻기를, '만약 본제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해탈을 얻었는가'라고 하는 이 물음은 성립하지 못한다.
대혜여, 본제라고 말한 것은 이 분별하는 마음이니, 동일한 체(體)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대혜여,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면 다시 중생이 없으니, 바로 '분별은 중생이 된다'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진실한 지혜로서 내외(內外)법을 관찰하면 가지(可知)와 능지(能知)인 법이 없는 것이다.
대혜여, 일체법은 본래 고요한 것이다.
대혜여, 여실히 오직 제 마음에서 허망한 분별을 나타낸 것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므로 분별하는 마음을 낸 것이니, 여실히 아는 자는 분별을 내지 않는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러 부처님을 관찰하기를,
'비유컨대 항하의 모래와 같아서
멸함도 또한 생함도 아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능히 부처님을 보리라.
모든 진구(塵垢)를 멀리 떠나서
항하의 모래가
물 흐름을 따르나 변치 않듯이
법신도 또한 이와 같네.
입능가경 제8권
14. 찰나품(刹那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일체 생멸(生滅)하는 모양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일체법이 생각 생각에 머무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법이라는 것은 이른바 선법(善法)·불선법(不善法)·유위법(有爲法)·무위법(無爲法)·세간법(世間法)·출세간법(出世間法)·유루법(有漏法)·무루법(無漏法)·내법(內法)·외법(外法)이다.
대혜여, 줄여 말하면 5음(陰)법이니, 심(心)·의(意)·식(識)으로 인하여 훈습하며 증장한 것이다.
모든 범부인 사람들은 심·의·식으로 인하여 훈습함으로 선(善)·불선(不善)인 법을 분별한다.
대혜여, 성인은 현재 삼매(三昧)·삼마발제(三摩跋提)의 무루(無漏)인 선법(善法)의 낙행(樂行)을 증득하였다.
대혜여, 이를 선법(善法)이라 이름한다.
대혜여, 말한 바 선(善)·불선(不善)의 법이라 말한 것은 이른바 8식(識)이니, 무엇이 8식이 되는가? 첫째는 아리야식(阿梨耶識)이요, 둘째는 의(意)요, 셋째는 의식(意識)이요, 넷째는 안식(眼識)이요, 다섯째는 이식(耳識)이요, 여섯째는 비식(鼻識)이요, 일곱째는 설식(舌識)이요, 여덟째는 신식(身識)이다.
대혜여, 5식신(識身)은 의식신(意識身)과 함께 하여 선·불선의 법이 전전(展轉)히 차별되며 상속(相續)하지만, 자체는 차별이 없이 생하는 법을 수순하여 생겼다가 다시 멸하지만, 자심(自心)이 허망한 경계를 나타낸 것을 알지 못하고, 곧 멸할 때엔 능히 경계와 형상의 크고 작음과 수승하고 묘한 모양을 취한다.
대혜여, 의식이 5식신(識身)과 함께 서로 응하여 나는데, 한 생각의 순간[刹那]도 머무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나는 저 법을 말하여,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한다.
대혜여, 찰니가(刹尼迦 : 刹那)라고 말한 것은 공(空)이 된다고 이름함이요, 아리야식은 여래장이라고 이름함이니, 의(意)와 전식(轉識)과 함께 훈습함으로 '공이 된다'고 이름하며, 무루(無漏)인 훈습법을 구족하였으므로 '불공(不空)이 된다'고 이름함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깨닫지 못하고 모든 법이 찰나도 머무르지 아니함에 집착하여, 사견(邪見)에 떨어져서 말하기를, '무루의 법도 또한 찰나 동안도 머무르지 아니한다'라고 하니, 저 진여(眞如)인 여래장을 깨뜨리는 것이다.
대혜여, 5식신(識身)은 6도(道)에 나지 않으며, 고락(苦樂)을 받지 않으며, 열반의 인(因)도 짓지 않는다.
대혜여, 여래장은 고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생사(生死)의 인(因)은 아니지만, 다른 법은 함께 생(生)하며, 함께 멸하여 네 가지 훈습[四種熏習 : 無明·妄心·妄境·淨法의 네 가지 훈습]에 의하여 취(醉)한 것이다.
그러나 범부는 사견(邪見)으로 훈습함을 알지 못하고, '일체법이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대혜여, 금강(金剛)인 여래장과 여래의 증득하신 법은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대혜여, 여래께서 증득하신 법이 만약 찰나 동안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면 일체 성자(聖者)는 성인(聖人)을 이룬 것이 아닐 것이다.
대혜여, 성인 아닌 것이 아니니, 성인이기 때문이다.
대혜여, 금강은 한 겁(劫) 동안 머물러 있어도, 무게와 부피가 그대로 있어 더하지도 줄지도 않는다.
대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가 모든 법을 분별하여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그러나 범부는 나의 뜻을 얻지 못했으니, 안팎의 모든 법은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함을 알지 못함이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또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6바라밀(波羅蜜)법이 만족하여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는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6바라밀이 되며, 어찌하면 만족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바라밀의 차별이 세 가지 있으니, 이른바 세간바라밀(世間波羅蜜)과 출세간바라밀(出世間波羅蜜)과 출세간상상바라밀(出世間上上波羅蜜)이다.
대혜여, 세간바라밀이라 말한 것은 어리석은 범부가 나[我]와 내 것[我所]이라고 하는 법에 집착하여, 2변(邊)에 떨어져서 여러 가지 수승하고 묘한 경계를 위하여 바라밀을 행하고, 색(色) 등의 경계와 과보(果報)를 구함이다.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 : 布施波羅蜜)·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 : 持戒波羅蜜)·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 : 忍辱波羅蜜)·비라바라밀(毘羅波羅蜜 : 精進波羅蜜)·선바라밀(禪波羅蜜 : 禪定波羅蜜)·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행하여 범천(梵天)에 태어나기도 하며, 5신통(神通)인 세간의 법을 구한다.
대혜여, 이를 세간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출세간바라밀이라고 말한 것은 성문과 벽지불이 열반인 마음을 취하여 바라밀을 수행함이다.
대혜여, 저와 같은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는 자신에서 열반락을 구하기 위하여 세간바라밀의 행을 행하며, 성문과 연각은 또한 다시 이와 같이하여 자신을 위하며, 열반락을 구하여 출세간바라밀을 행하며, 저 구경락(究竟樂)이 아닌 것을 구한다.
대혜여, 출세간상상바라밀은 여실히 다만 이 자심(自心)의 허망한 분별로써 바깥 경계를 나타낸 것을 능히 앎이니, 그 때엔 실로 오직 이 자심에서 안과 바깥의 법을 나타낸 것임을 알고 허망한 분별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안팎의 자심과 색상을 취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여실히 일체법을 알므로 단나바라밀을 행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는 안온(安穩)한 낙(樂)을 얻게 하니, 그러므로 이를 단나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저 일체법을 관찰하고 분별을 내지 않으며, 청량(淸凉)한 법을 수순하니, 이를 시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고, 저 수행함을 알아서,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경계가 진실이 아님을 여실히 아니, 이를 보살의 찬제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어떻게 정진행(精進行)을 닦는 것인가? 초(初)·중(中)·후(後) 밤에도 항상 부지런히 수행하여 여실법을 수순하여 모든 분별을 끊음이니, 이를 비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보살이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서, 외도의 능취와 가취의 경계를 따르지 아니함을 선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어떤 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인가? 보살이 여실히 자심의 분별하는 상을 관찰하여, 분별함을 보지 아니하고 2변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여실한 수행에 의하여 몸을 전변하여 한 법도 생함을 보지 않으며, 한 법도 멸함을 보지 않고 자신이 안으로 증득하는 거룩한 행을 수행함이니, 이를 보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대혜여, 바라밀의 뜻[義]을 이와 같이 만족시키는 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공(空)과 무상(無常)과 찰나(刹那)를
어리석은 이는 유위(有爲)라고 분별하여,
강물과 등불과 종자와 같다고 하며
공과 무상과 찰나라고 한다네.
찰나의 뜻[義]을 분별하여
찰나도 또한 이와 같다고 하나,
찰니가(刹尼迦 : 刹那)는 불생(不生)이라서
고요하여 짓는 바 떠났네.
일체법은 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찰나의 뜻이라 말한다.
물질은 생하면 멸함이 있으나
범부를 위해 말을 아니하네.
상속하는 법을 분별하며
망상으로 6도(道)를 보지만,
만약 무명(無明)이 인(因)이 되어
모든 마음 능히 낸다한들
형색도 생하지 아니 했으니
중간이야 어디 의지해 머무르랴.
생하면 곧 멸함이 있으니
다른 마음도 저를 따라 나는 것이네.
형색은 한 생각 머무름이 아니니
어느 법에서 생함을 관찰하랴.
어느 인(因)에 의해서 생긴 법이랴?
마음은 인(因)없이 생하는 것이네.
그러므로 생하는 것 성립하지 않으니,
어떻게 생각이 무너짐 알 것인가.
수행자가 정(定)을 증득하여
금강과 불사리(佛舍利)로
광음천(光音天) 궁전에서
세간에 파괴되지 않는 일과
그 증득한 법의 진실을
여래께서는 지혜로 성취하였네.
비구가 평등한 법을 증득하면
어찌 생각이 머무르지 않음을 볼 것인가.
건달바(乾闥婆)와 환상인 것이리.
무엇 때문에 생각이 머무르지 않음인가?
4대(大)와 보여진 형색이 없음이니,
4대가 어찌 하는 일이겠는가?
15. 화품(化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또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세존께서 여러 아라한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기(授記)를 주셨으며, 여래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여래께서는 열반에 들지 않는다'라고 하셨으며, 여래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여래·응공·정변지는 어느 밤엔 큰 보리를 증득하였으며, 어느 밤에는 반열반(般涅槃)에 들겠고, 그 중간에 한 자(字)도 말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래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불·여래께서는 항상 무각정(無覺定)·무관정(無觀定)에 드신다'라고 하시며, 또한 말씀하시기를, '여러 가지 응화(應化)를 지어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모든 식(識)의 생각 생각이 차별되어 머무르지 않으며, 금강 밀적(金剛密迹)1)이 항상 따라서 모시고 호위한다'라고 하시며, 또한 말씀하시기를, '세간의 본제(本際)는 알기가 어렵다'라고 하시고, 또한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반열반에 드는데, 만약 열반에 들지라도 마땅히 본제는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원수와 적(敵)은 없다. 그러나 모든 마군(魔)이 나타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여래께서 일체 업장(業障)을 끊었지만, 칭차마나손타리(稱遮摩那孫陀利) 등의 비방함을 받았으며, 부처님께서 사리나(娑梨那)촌에 들어가서는 마침내 공양을 얻지 못하고 빈 발우로 나오셨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와 같을진대 여래께서는 곧 한량없는 죄업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일체 죄와 허물을 떠나지 않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훌륭한 대혜여,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일찍 보살행을 행하였던 성문들에게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의지하는 이를 위하여 수기를 주었다.
대혜여, 내가 성문에게 수기를 준 것은 겁약(怯弱)한 중생으로 용맹심(勇猛心)을 내게 하기 위함이다.
대혜여, 이 세계 및 다른 부처님 국토에 여러 중생이 보살행을 행하기를, 또한 성문의 법행(法行)을 좋아하는 이가 있기에 저를 돌이켜서 큰 보리를 취하도록 하기 위하여 응화(應化) 부처님께서 마땅히 교화할[應化] 성문(聲聞)을 위하여 수기함이요, 보신(報身) 부처님과 법신(法身) 부처님께서 기별(記莂)을 주시는 것은 아니다.
대혜여, 성문과 벽지불과 열반에는 차별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번뇌를 끊는 것은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뇌장(煩惱障)을 끊은 것이요, 지장(智障)을 끊은 것은 아니다.
대혜여, 법무아(法無我)를 보면 지장을 끊고, 인무아(人無我)를 보면 번뇌장을 끊는다.
대혜여, 의식을 굴리므로 법장(法障)과 업장(業障)을 끊으며, 의(意)와 아리야식(阿梨耶識)의 훈습을 굴리므로 구경(究竟)의 청정함이다.
대혜여, 나는 항상 본래 법체(法體)에 의하여 머무르고, 다시 법을 내지 않으며, 본래 명자(名字)와 장구(章句)에 의하여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모든 법을 말한다.
대혜여, 여래께서는 항상 뜻과 같이 알며, 항상 생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각(覺)이 없고, 관(觀)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여래께서는 네 가지 머무르는 자리[四住地]를 떠나고, 두 가지 죽음[死]과 두 가지 장애[障]와 두 가지 업(業)을 멀리 떠났다.
대혜여, 7종의 식(識)과 의(意)와 의식(意識)과 눈·귀·코·혀·몸이 생각 생각에 머무르지 아니하며, 허망한 훈습으로 인하여 무루(無漏)인 모든 선법(善法)을 떠난 것이다.
대혜여, 여래장(如來藏)은 세간에서 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오지도 가지도 않고, 항상 청량하며 변치 않는다.
대혜여, 여래장에 의지하므로 세간과 열반과 고락(苦樂)의 인(因)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범부는 알지 못하고 공(空)과 허공(虛空)과 전도(顚倒)에 떨어진다.
대혜여, 금강밀적(金剛密迹)은 항상 응화 여래를 따라 모시고 호위하여 에워싸는 것이요, 법신 부처님과 보신 부처님께서는 근본 여래·응공·정변지는 아니다.
대혜여, 여래께서는 모든 근(根)과 크고 작은 모든 양(量)을 멀리 떠났으며, 일체 범부와 성문과 벽지불들을 멀리 떠났다.
대혜여, 여실히 수행하여 진여낙행(眞如樂行)의 경계를 얻는 자는 근본 부처를 알 것이니, 평등한 법인(法忍)을 얻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금강밀적은 응화불을 따르는 것이다.
대혜여, 응화불이란 비방도 없으며 업도 없어서, 응화불도 법불·보불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같지도 않으니, 질그릇을 만드는 이[陶師]가 바퀴 등으로 만드는 바 일을 짓는 것과 같아서, 응화불이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짓는데 진실상(眞實相)과 달리 설법하고, 안으로 증득한 바 법과 거룩한 지혜의 경계를 말하지 않는다.
대혜여, 일체 범부와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들은 6식(識)이 멸함을 보고 단견(斷見)에 떨어지며, 아리야식을 보지 못하고 상견(常見)에 떨어진다.
대혜여, 자심(自心)을 보지 못하고 본제(本際)를 분별하니, 그러므로 세간을 본제가 없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자심의 견(見)을 멀리 떠나는 자는 해탈하여 열반의 증득을 얻었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는 네 가지 훈습하는 습기(習氣)를 멀리 떠났으니,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3승(乘)과 또한 비승(非乘)과
여러 부처님과 한량없는 승(乘)이며
일체 수기한 부처의 지위를
'모든 번뇌 끊었다'라고 말하네.
안으로 증득했던 거룩한 지혜와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겁약한 중생이 이끌려고,
그러므로 숨겨 말하였네.
여래의 증득한 지혜로
저 도(道)를 또한 말했으니,
중생은 이에 의해서 도에 들어가고
2승은 열반이 없는 것이네.
욕색(欲色)과 유(有)를 보며
네 가지 훈습인 땅에
의식(意識)이 또한 생하니,
의식과 함께 머무름 보네.
견(見)과 의(意)와 안식(眼識) 등과
상(常)과 무상과 단멸이며
상견(常見)이 의(意) 등에 의하여
열반의 견(見)을 일으키네.
16. 차식육품(遮食肉品)
그 때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간의 나고 죽는 데에 유전(流轉)하며, 원결(怨結)이 서로 연속하여 모든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은 모두 고기를 먹으며, 번갈아 서로 살해함으로 말미암아 탐내며 성내는 것을 증장(增長)하여 벗어남을 얻지 못하고, 심히 큰 괴로움이 된 것이라고 관찰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고기를 먹는 사람은 큰 자비(慈悲)의 종자를 끊는 것이니, 성도(聖道)를 닦는 이는 마땅히 먹지 않아야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사견법(邪見法)의 로가야타(盧迦耶陀)인 세속에 떨어지는 논(論)을 말하여 단(斷)·상(常)·유(有)·무(無)의 견해에 떨어졌지만, 모두 고기 먹는 것을 금하여 자기도 먹지 아니하며, 다른 이가 먹는 것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찌 여래의 청정한 법에서 범행(梵行)을 닦는 이가 자기도 먹고, 다른 이도 먹는 것을 일체 제어하지 않겠습니까?
여래·세존께서는 모든 중생을 자비(慈悲)하시는 것이 한결같은데, 어찌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어지신 세존이시여, 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원컨대 저희를 위하여 고기를 먹는 허물과 먹지 않는 공덕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와 일체 보살들은 듣고서는 여실한 수행에 의지함을 얻으며, 널리 선전하고 유포하며, 현재와 미래의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알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거룩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착한 대헤여, 그대는 큰 자비로 중생을 불쌍히 여기므로 능히 이 뜻을 묻는구나.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지신 세존이시여, 가르치심을 잘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저 고기 먹는 것은 한량없는 허물이 있어, 보살마하살이 큰 자비를 닦으려면 고기를 먹지 말 것이니, 먹으며 먹지 않는 공덕과 죄과(罪過)를 내 조금 말할 것이니,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대혜여, 내가 관찰하건대, 중생이 끝없는 예로부터 고기 먹은 습관으로 고기 맛을 탐착(貪着)하며, 번갈아 서로 살해하여 현성(賢聖)을 멀리 떠나고, 생사(生死)의 괴로움을 받는다.
고기 맛을 버리는 자는 정법(正法)의 말을 듣고, 보살의 지위에서 여실히 수행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을 것이며,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성문·벽지불 자리를 거쳐 쉴 곳에 들게 할 것이며, 쉬고 나면 여래의 자리에 들게 될 것이다.
대혜여, 이와 같은 것들은 이롭게 함과 자비한 마음으로 근본을 삼는다.
고기 먹는 사람은 큰 자비의 종자를 끊으니, 어찌 마땅히 이와 같은 큰 이익을 얻겠는가. 그러므로 대혜여, 내가 관찰하건대, 중생이 6도(道)에 윤회하여 나고 죽음에 있으면서, 서로서로 생육(生育)하여 번갈아 부모·형제·자매가 되었으니, 남자거나 여자거나 중간이건 밖에건 내외(內外) 육친(六親) 권속이 혹은 다른 갈래인 선도(善道)·악도(惡道)에 태어나기도 하며, 항상 권속이 되었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내가 관찰하건대, 중생이 번갈아 서로 고기를 먹는 것에는 친척이 아님이 없다고 본다.
고기 맛을 탐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번갈아 서로 잡아먹으며, 항상 살해할 마음을 내고, 괴로움인 업만을 증장하여 생사에 유전하여 벗어남을 얻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여러 악한 나찰(羅刹)들은 부처님의 말씀하신 것을 듣고 모두 악심(惡心)을 버리며, 고기 먹는 것을 끊고, 번갈아 서로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중생의 생명을 보호하기를 자기 생명을 보호하기 보다 더하고, 일체 고기는 떠나버리고 먹지 않으며,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6도(道)를 살펴보니, 저희들이 잡아먹은 고기는 모두 저희들의 친척입니다.
이제야 고기를 먹는 것은 중생의 큰 원결(怨結)이 오며, 큰 자비종자를 끊고, 좋지 못한 업만을 증장하여 큰 괴로움의 근본임을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지금부터 고기를 끊고 먹지 아니하겠으며, 저희 권속들에도 또한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으며, 여래 제자로서 먹지 않는 이가 있으면 저희는 마땅히 밤낮으로 친근하여 옹호(擁護)할 것이며, 만약 고기를 먹는다면 저희는 마땅히 큰 이익이 아닌 것을 지어 주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나찰 악귀(惡鬼)는 항상 고기를 먹는 자들인데, 나의 말한 바를 듣고 오히려 자비한 마음을 발하여 고기를 버리고 먹지 않거든, 하물며 나의 제자는 선법(善法)을 행하는 자이니,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겠는가? 만약 고기를 먹는 자는 마땅히 알라. 곧 중생의 큰 원수며, 나의 성종(聖種)을 끊는 것이다.
대혜여, 만약 나의 제자가 내가 말한 바를 듣고도 살펴보지 아니하고, 고기를 먹는 자는 마땅히 알라. 바로 전다라(旃陀羅)1) 종족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며, 나는 그의 스승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혜여, 만약 나와 더불어 권속이 되려고 한다면 일체 모든 고기를 마땅히 먹지 아니하여야 할 것이다.
대혜여, 보살은 마땅히 이 모든 고기는 모두 부모의 고름과 피와 부정한 붉음[赤]과 흰 것[白]으로 화합함에 의하여 깨끗하지 못한 몸이 생긴 것으로 관찰할 것이니, 그러므로 보살은 고기가 깨끗하지 못함을 관찰하여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다.
대혜여, 고기 먹는 사람은 중생이 그 기운을 들으면 모두 놀래며 두려워하고 도주(逃走)하여 멀리하리니, 그러므로 보살은 여실한 행을 닦아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다.
대혜여, 비유컨대 전다라와 사냥꾼과 백정과 물고기·새를 잡는 사람들이 일체 가는 곳에는 중생이 멀리 보고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기를, '나는 지금 반드시 죽었도다. 오는 자는 큰 악인(惡)이니, 죄와 복을 알지 못하고 중생의 생명을 끊어서 눈앞의 이익만을 구하려고, 지금 여기에 와서 우리들을 찾는다. 지금 우리들의 몸은 모두 고기 덩어리로 되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지금 잡으려고 온 것이니, 우리들은 반드시 죽었구나'라고 함과 같다.
대혜여, 사람이 고기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능히 보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이와 같은 놀램과 두려움을 내게 한다.
대혜여, 일체 허공과 땅의 중생도 고기 먹는 자를 보면 다 놀래고 두려워하여 의심하는 생각을 일으키되, '나는 지금 죽게 될까? 살게 될까? 이와 같은 악한 사람은 자비한 마음을 닦지 아니했기에 또한 승냥이와 이리[豺狼]가 세간에 노닐며 다닐 때에 항상 고기 먹을 것을 찾는 것과 같으며, 소가 풀을 먹는 것과 쇠똥구리[蜣]·말똥구리[蜋]가 똥을 따르되, 배부르고 만족함을 알지 못함과 같다.
나의 몸은 고기라서 바로 그의 밥이니, 마땅히 만나지 말아야겠다라고 하고서 곧 버리고 도주하며, 이를 떠나서 멀리 가나니, 사람이 나찰을 두려워함과 같아서 다름이 없다.
대혜여, 고기를 먹는 사람은 능히 중생의 보는 자로 하여금 모두 이와 같은 놀램과 두려워함을 내게 하니, 마땅히 알라. 고기를 먹는 것은 중생의 큰 원결(怨結)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자비를 수행하고 중생을 포섭하기 위하여 저를 마땅히 먹지 말 것이다.
그는 성혜인(聖慧人)의 먹을 바가 아니요, 나쁜 이름이 유포되며, 성인의 꾸짖는 것이니, 그러므로 대혜여, 보살은 중생을 포섭하기 위하므로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다.
대혜여, 보살은 중생의 신심(信心)을 두호하기 위하여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보살이라 말한 것은 중생이 모두 알기를 부처님·여래의 자비한 마음의 종자로서, 능히 중생에게 귀의할 곳이 되기 때문에, 듣는 이는 자연히 의심과 공포를 내지 아니하고, 친우(親友)라는 생각과 선지식(善知識)이라는 생각과 두려워하지 않는 생각을 내니, 귀의 할 곳을 얻었으며, 안온(安穩)한 곳을 얻었으며, 좋은 도사(導師)를 얻은 것을 말함이다.
대혜여, 고기를 먹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능히 중생에게 이와 같은 신심을 내게 한다.
만약 고기를 먹는다면, 중생이 곧 일체 믿는 마음을 잃고 곧 말하기를, '세간에는 믿을 만한 것이 없다'라고 하여 신근(信根)을 끊으리니, 그러므로 대혜여, 보살은 중생의 믿는 마음을 두호하기 위하여 일체 고기를 모두 마땅히 먹지 아니할 것이다.
대혜여, 나의 모든 제자는 세간에서 3보(寶)를 비방함을 두호하기 위하여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세간에서 어떤 사람이라도 고기 먹는 것을 보면 3보를 헐뜯고 비방하여 말하기를, '불법에서 어느 곳에 마땅히 진실한 사문과 바라문과 범행을 닦는 자가 있으리요. 성인의 본래 마땅히 먹어야 할 바를 버리고 중생의 고기를 먹으니, 마치 나찰이 고기를 먹고 배를 채우며, 취해 자고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한다.
세간에 범인의 호귀(豪貴)한 세력에 의하여 고기를 찾아서 잡아먹는 것은 나찰왕이 중생을 놀래고 두렵게 하는 것과 같으니, 그러므로 곳곳마다 이러한 말을 부르짖되, '어느 곳에 마땅히 진실한 사문과 바라문과 깨끗한 행을 닦는 이가 있으리요. 법도 없으며 사문도 없으며 비니(毘尼)도 없으며, 깨끗한 수행자도 없다'라고 하여, 이와 같은 한량없고 가없는 나쁜 마음을 내어 나의 법륜(法輪)을 끊고, 성종(聖種)을 끊어 없애니, 일체가 모두 고기를 먹는 허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나의 제자는 나쁜 사람이 3보를 헐뜯고 비방함을 두호하기 위하여 마땅히 고기를 생각하는 생각도 내지 아니할 것이지, 어찌 하물며 고기를 먹겠는가.
대혜여, 보살은 청정한 불국토를 구하며,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요, 마땅히 모든 고기는 죽은 사람의 시체와 같은 것으로 관찰하여 눈으로 보려고도 아니하며, 기운을 들으려고도 하지 말아야 하거늘, 어찌 하물며 맡으며 입 속에 넣으랴. 일체 모든 고기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대혜여, 죽은 시체를 불태우면 냄새 기운이 좋지 못하며, 다른 고기를 불태워도 냄새나며, 더러움과 같아서 다르지 않으니, 어찌 그 가운데서 먹고 먹지 않음이 있으리요.
그러므로 대혜여, 보살이 청정한 불국토를 구하며,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다.
대혜여, 생사(生死)를 벗어남을 구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자비한 행에 전념(專念)하며, 욕심이 적고 만족한 줄을 알며, 세간의 괴로움을 싫어하고 해탈을 속히 구하려고 하여 마땅히 시끄러운 것을 버리고, 공한(空閑)한 곳에 나아가서 시타림(屍陀林)1) 아란야(阿蘭若)의 곳에 머물러 무덤 사이와 나무 아래서 홀로 앉아 사유(思惟)하기를, '세간에는 하나도 즐거울 것이 없다'라고 관찰하여 처자와 권속은 칼과 족쇄[枷鎖]와 같은 생각을 하며, 궁전과 대관(坮觀)은 감옥과 같은 생각을 하며, 모든 보배는 똥 무더기와 같은 생각을 하며, 모든 음식을 볼 적엔 고름·피와 같은 생각을 하며, 음식을 받아먹는 것은 부스럼과 종기에 약을 바르는 것 같이하여, 생명을 보존하는 것에 있을 뿐, 성도(聖道)에만 생각을 두고 맛을 탐하지 아니하여 술·고기·파·부추·마늘·염교[薤]인 냄새나는 맛을 모두 버리고 먹지 않을 것이다.
대혜여,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참으로 수행함이니, 족히 일체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을 것이다.
만약 세간을 싫어하고 떠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재미[滋味]에만 탐착하여 술·고기·5신채(辛菜)를 먹는다면 마땅히 세간의 믿음과 보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대혜여, 어떤 중생은 과거에 일찍 닦았던 한량없는 인연과 적은 선근(善根)이 있을지라도 나의 법을 들으면 신심으로 출가(出家)하며, 나의 법에 있을 것이요, 과거에 일찍 나찰의 권속이 되었거나 호랑이·사자·고양이·살쾡이 속에서 태어났으면 비록 나의 법에 있을지라도 고기를 먹었던 여습(餘習)으로 고기를 먹는 자를 보면 기뻐하며 친근하고, 성읍·취락·탑사(塔寺)에 들어가서도 술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으로 즐거운 낙을 삼으리니, 온 천하가 보기를 나찰과 같이 여길 것이며, 죽은 시체를 다투어 먹는 것과 같아서 다를 것이 없으니, 스스로 자기 과실로 나의 무리가 나찰 권속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비록 가사를 입고 수염과 털을 깎았으나 생명 있는 자를 보면, 마음에 공포 내기가 나찰을 두려워함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만약 나를 스승으로 여긴다면 일체 고기는 모두 마땅히 먹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혜여, 세간의 사견(邪見)인 모든 주술(呪術)하는 이도 만약 고기를 먹으면 주술을 이루지 못하니, 사술(邪術)함에도 오히려 고기를 먹지 않는데, 하물며 나의 제자가 여래의 위없는 성도(聖道)와 출세 해탈을 구하기 위하여 큰 자비를 닦아 정진하며 고행(苦行)하여도 오히려 얻지 못할까 두려울 것인데, 어느 곳에 마땅히 이와 같은 해탈이 있어서 저 어리석은 사람이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대혜여, 나의 모든 제자는 출세의 해탈락을 구하기 위해서 마땅히 고기를 먹지 말 것이다.
대혜여, 고기를 먹으면 능히 색력(色力)과 입맛을 일으키게 하지만, 사람은 탐착이 많아진다. 마땅히 자세히 관할 것이니, 일체 세간에 신명(身命)이 있는 자는 각각 스스로 보중(寶重)히 여기고, 죽는 고통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목숨을 보호하며 아끼는 것은 사람이나 축생(畜生)이나 다름이 없으니, 차라리 옴[疥]이 있는 야간(野干)의 몸을 좋아할지언정 목숨 버리고 하늘의 낙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이는 죽는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대혜여, 이로써 관찰하건대 죽음이 큰 괴로움이 되며 두려워 할 법이니, 자신도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어찌 마땅히 다른 고기를 먹으리요.
그러므로 대혜여, 고기를 먹고자 하는 자는 먼저 몸을 생각하고, 다음에 중생을 생각해서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다.
대혜여, 대저 고기를 먹는 자는 모든 하늘도 멀리 하는데, 어찌 하물며 성인이겠는가? 그러므로 보살은 성인을 보기 위하여 마땅히 자비를 닦고,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다.
대혜여, 고기를 먹는 사람은 잠자는 것도 괴로우며, 일어날 때에도 또한 괴로우며, 만약 꿈속에 여러 가지 나쁜 것을 보아도 놀래고 두려워서 머리털이 곤두서고 마음이 항상 불안(不安)할 것이니, 자비심(慈悲心)이 없으므로 착한 힘이 없어지며, 만약 그 조용한 곳에 홀로 있어도 흔히 사람이 아닌 것들이 그 편을 엿볼 것이며, 호랑이와 사자도 또한 와서 엿보아 그 고기를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놀래고 두려워서 편안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대혜여, 고기를 먹는 자는 탐심을 채우기도 어렵고 먹는 것도 양(量)을 모르고 과식하여 소화가 되지 않고, 4대(大)와 입 기운의 누린내와 비린내만을 더하게 된다.
또한 그 속에는 한량없는 나쁜 벌레가 있어서 몸이 부스럼과 옴과 백라(白癩)와 질병인 여러 가지 좋지 못한 것이 많아서 현재의 범부도 듣고 보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인데, 어찌 하물며 미래의 병 없고 향기롭고 결백한 사람 몸을 가히 얻을 수 있겠는가?
대혜여, 나는 말하기를, '범부가 정명(淨命)을 구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먹음을 먹어라'라고 하며, '오히려 마땅히 마음에 아들의 고기와 같이 생각하라'라고 하는데, 어찌 하물며 성인의 먹는 것 아닌 것을 먹으라고 허락하겠는가?
성인이 그를 떠나는 것은 고기가 능히 한량없는 허물을 내어 출세의 일체 공덕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어찌 내가 제자들에게 모든 고기와 피와 깨끗하지 못한 것의 맛을 먹으라고 허락하겠는가?
내가 허락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나를 비방함이다.
대혜여, 내가 제자들에게 성인의 마땅히 먹을 바 음식을 먹으라고 함은 성인이 멀리하는 음식을 말함이 아니니, 성인의 먹음이란 능히 한량없는 공덕을 내며 모든 허물을 멀리 떠난 것이다.
대혜여, 과거와 현재의 성인의 먹음이란 이른바 멥쌀[粳米]과 대맥(大麥)과 소맥(小麥)과 대두(大豆)와 소두(小豆)와 여러 가지 기름과 꿀과 감자(甘蔗)와 감자 즙과 건타말(蹇陀末)·사탕 간제(干提) 등이니, 때를 얻는다면 먹는 것을 들어 주고 깨끗함이라 한다.
대혜여, 미래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 여러 가지 비니(毘尼 : 律, vinaya)를 말하여 고기 먹을 수 있다고 말하리니, 과거의 고기 먹던 훈습으로 고기 맛에 애착하여 자기 마음의 견해대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요, 부처님과 성인께서 좋은 음식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대혜여, 고기를 먹지 않는 이는 과거에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고 모든 선근(善根)을 심었기 때문에 능히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비니에 굳게 머물러 모든 인과를 믿으며, 몸과 입까지도 능히 스스로 절량(節量)하여 세간의 모든 맛에 탐착함이 되지 않으며, 고기 먹는 자를 보면 능히 자비한 마음을 낼 것이다.
대혜여, 나는 기억하니, '과거에 왕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자로(師子奴)이고, 여러 가지 고기를 먹으며 고기 맛에 애착하여 차례로 사람 고기를 먹기까지 하였다. 사람 고기를 먹음으로 인하여 부모·형제·처자·권속이 모두 버리고 떠나가며, 일체 신민(臣民)과 국토와 취락은 곧 모반하여 함께 그의 목숨을 끊었었다.
고기를 먹는 자는 이와 같은 허물이 있으니, 그러므로 마땅히 일체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다.
대혜여, 자재천왕(自在天王)은 화신이 비둘기가 되고 석제환인(釋提桓因)은 이 천주(天主)였음에도 과거에 고기 먹던 습기(習氣)로 화신이 매[鷹]가 되어, 이 비둘기를 놀라게 하며 쫓았으니, 비둘기는 와서 나에게 투신하였다. 나는 그 때 시비왕(尸毘王)이었는데, 중생들이 번갈아 서로 잡아먹는 것을 불쌍히 여겨, '몸의 고기로써 비둘기를 대신하여 매에게 주겠다'라고 하고, 살을 베어도 부족하기에 몸이 저울 위에 올라서 큰 괴로움을 받았었다.
대혜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세상에 오면서 고기 먹던 훈습으로 자기 몸과 다른 몸도 이와 같은 허물이 있거든, 어찌 하물며 부끄럼 없이 항상 고기를 먹겠는가?
대혜여, 또한 다른 왕이 있었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 이었다. 말을 타고 노닐다가 말이 놀라는 바람에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시종자(侍從者)를 잃고 돌아갈 길을 알지 못했었다.
고기를 먹지 아니한 까닭으로 사자와 호랑이는 보고도 해칠 마음이 없었으며, 암사자와 함께 욕사(欲事)를 행하게 되어 내지 아들 반족왕(班足王) 등을 낳았다.
과거 세상에 고기를 먹던 훈습으로 사람의 왕이 되었어도 또한 항상 고기를 먹으며, 칠가촌(七家村)에 있어서도 많이 고기 먹기를 좋아하며, 고기 먹는 것이 너무 지나쳐서 드디어 사람의 고기를 먹으며 남녀를 낳으니 모두 나찰이 되었다.
대혜여, 고기 먹는 중생은 과거의 고기 먹던 훈습에 의하여 흔히 나찰·사자·호랑이·승냥이·표범·고양이·살쾡이·솔개·올빼미·독수리·매·닭 등으로 태어난다.
생명이 있는 유(類)는 각각 스스로 몸을 지키어 함부로 못하게 하며, 기아(飢餓)의 괴로움을 받으면서 항상 악한 마음으로 다른 고기 먹기를 생각하다가 목숨이 다하면 또한 악도(惡道)에 떨어져 태어나고, 사람의 몸은 얻기가 어려운데, 어찌 하물며 열반(涅槃)의 도(道)를 얻겠는가?
대혜여, 마땅히 알라. 고기 먹는 사람은 이와 같은 한량없는 모든 허물이 있을 것이며, 고기를 먹지 않는 자는 곧 한량없는 공덕의 더미일 것이다.
대혜여, 그러나 범부들은 이와 같은 고기를 먹는 허물과 먹지 않는 공덕을 알지 못하니, 내 지금 고기 먹음을 들어주지 않는 것을 대략 말할 것이다.
대혜여, 만약 일체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또한 사람들의 중생을 살해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고기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만약 고기를 먹을 수 없으면 여러 곳에 구하여 사오니, 재리(財利)를 위하는 자는 죽여서 판매하는데, 사는 자를 위하여 죽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는 자도 죽이는 자와 다름이 없다. 그런 까닭으로 고기를 먹는 것은 능히 성도(聖道)를 방해한다.
대혜여, 고기를 먹는 사람은 고기 맛에 애착하여 축생(畜生)을 가릴 것 없는 데에 이르며, 이에 사람 고기까지 먹는데, 어찌 하물며 노루·사슴·꿩·토끼·거위·기러기·돼지·염소·닭·개·낙타·나귀·코끼리·말·용·뱀·물고기·자라 등의 물과 육지에 생명 있는 것들을 먹지 않겠는가?
고기 맛에 애착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방편을 베풀어서 중생을 살해하기를, 여러 가지 저라(罝羅 : 짐승 잡는 그물)와 기망(機網 : 새 잡는 그물)을 만들어서 산에다 그물을 치고 땅에다 그물을 치며, 강물을 끊어 트기도 하며, 바다를 막아 방축하기도 하여 여러 물과 육지를 휩쓸어 그물과 돛과 함정과 활과 칼과 독한 화살을 안치하기를 빈틈없이 하기에 허공과 땅과 물의 여러 가지 중생을 모두 살해하게 되니,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대혜여, 사냥꾼과 백정과 고기 먹는 사람들은 악심(惡心)이 견고하여 능히 차마 못하는 짓을 행하며, 모든 중생의 형체가 곱고 살찌며, 피부와 살이 충실하고 좋은 것을 보면 번갈아 서로 가리켜 말하기를, '이것은 잡아먹음직하다'라고 하여 한 생각도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心]을 내지 않으니,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고기를 먹는 사람은 큰 자비의 종자를 끊는다'라고 말한다.
대혜여, 내가 관찰하건대, 세간에서 고기로서 생명 아닌 것이 없으니, 자기가 죽이지도 아니할 것이요, 사람을 시켜서 죽이지도 아니할 것이며, 다른 것으로도 죽이지 아니할 것이다.
생명으로부터 오지 아니한 고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고기가 생명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음식이라면, 내 무슨 까닭으로 사람들이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는가. 세간을 모두 구해 보아도 이러한 고기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고기 먹는 것을 죄라고 말하며, 여래의 종자를 끊기 때문에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혜여, 내가 열반한 후 미래 세상에 법이 멸하려 할 때, 나의 법에 출가한 자가 있어서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나는 사문(沙門) 석자(釋子)다'라고 자칭하면서 나의 가사를 입고 어리석기는 어린 아이 같으면서 율사(律師)라 자칭하고 2변(邊)에 떨어져서 여러 가지 허망과 각관(覺觀)으로 고기 맛에 탐착하며, 자심의 견해를 따라 말하기를, '비니(毘尼)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라고 하며, 또한 나를 비방하여 말하기를, '부처님·여래께서는 사람들에게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라고 하며, 또한 말하기를, '제도에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였다'라고 할 것이다.
또한 나를 비방하여 말하기를, '여래·세존께서도 스스로 고기를 먹었다'라고 할 것이다.
대혜여, 내가 상액(象腋)·앙굴마라(央掘魔羅)·열반(涅槃)·대운(大雲) 등인 일체 수다라(修多羅)에서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또한 고기는 식미(食味)에도 들어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혜여, 내가 만약 성문 제자들에게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허락하였다면, 나는 마침내 입으로 항상 큰 자비와 여실행(如實行)을 찬탄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시타림(屍陀林)에서 두타행(頭陀行)을 하는 자를 찬탄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대승을 수행하고 대승에 머무르는 자를 찬탄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고기 먹지 않는 이를 찬탄하지 않을 것이지만, 나도 스스로 먹지 아니하고 다른 이의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나는 보살행을 닦는 것을 권하며, 고기 먹지 않는 것을 찬탄하며, 중생 보기를 마땅히 외아들같이 하라고 권한다.
어찌 내가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한다고 말하겠는가.
나는 제자들이 3승(乘)행을 닦는 자에게 속히 과위(果位)를 얻게 하기 위하여, 일체 고기를 금하여 모두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데, 어찌 나의 비니(毘尼)에서 사람들에게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한다고 말하리요.
또한 다시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다른 수다라(修多羅)에서 세 가지 고기는 사람에게 먹는 것을 허락하였다'라고 함은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비니(毘尼)에서 차제로 끊게 함을 알지 못함이니, 무슨 까닭인가?
대혜여, 고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다른 이가 죽인 것이요, 둘째는 스스로 죽은 것이다.
세상 사람은 말하기를, '고기는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이 있으니, 코끼리·말·용·뱀·사람·귀신·원숭이·돼지·개·소는 먹을 수 없고, 나머지는 먹을 수 있다'라고 한다.
백정은 먹고 먹지 못할 것을 묻지 않고 일체를 모두 죽여 곳곳에서 팔기 때문에, 중생이 죄 없이 살해함을 당하니, 그러므로 타살(他殺)과 스스로 죽음[自死]을 모두 먹을 수 없다고 정한 것이다.
견(見)·문(聞)·의(疑)란 것은 이른바 타살이요, 견·문·의가 아닌 것은 이른바 스스로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나는 비니(毘尼)에서 말하기를, '무릇 있는 고기는 모두 사문 석자(釋子)에게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니, 청정한 혜명(慧命)을 더럽히고 성도분(聖道分)을 장애 하니, 어느 방편으로도 먹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만약 말하기를, '부처님의 비니(毘尼)에서 세 가지 고기를 말한 것은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위함이요, 먹는 것을 허락하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굳게 비니에 머무르는 것이요, 나를 비방함이 아니다.
대혜여, 지금 이 능가(楞伽) 수다라(修多羅)에서는 '모든 때, 모든 고기는 또한 어느 방편으로도 먹을 수 없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대혜여, 내가 고기 먹는 것을 금하는 것은 한 사람만 위하는 것이 아니요, 현재와 미래에도 일체 먹을 수 없다고 함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만약 저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율사(律師)라고 말하면서 비니에서 사람들에게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말하고, 또한 나를 비방하여 말하기를, '여래도 스스로 먹었다'라고 한다면, 저 어리석은 사람은 큰 죄장(罪障)을 이루어 오랫동안 좋지 못한 곳[無利益處]과 성인이 없는 곳과 법을 듣지 못할 곳에 떨어질 것이며, 또한 현재와 미래의 현성(賢聖) 제자도 얻어 보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부처님·여래를 얻어 볼 수 있겠는가?
대혜여, 성문인(聲聞人)들의 항상 먹어야할 바는 쌀과 밀가루와 기름과 꿀과 여러 가지 깨(麻)와 팥이니, 능히 정명(淨命)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비법(非法)으로 저축하며 비법으로 받아 취하면 나는 '부정함이다'라고 말하며, 그도 오히려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피와 살의 부정한 것을 먹겠는가.
대혜여, 나의 성문과 벽지불과 보살 제자도 법식(法食)으로 먹고 음식으로 먹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여래이겠는가.
대혜여, 부처님·여래께서는 법식의 법에 머무름이요, 음식의 몸이 아니며, 일체 음식에 머무르는 몸이 아니다.
모든 살림살이와 자생(資生)과 애착과 유(有)와 구하는 등을 떠나서 일체 번뇌와 습기의 허물을 멀리 떠나고, 잘 분별하여 심(心)과 심소(心所)와 지혜와 일체지(一切智)와 일체 견(見)을 알아서, 모든 중생을 보는데 평등하게 불쌍히 여긴다.
그러므로 대혜여, 나는 모든 중생들을 외아들같이 보니, 어찌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겠는가. 또한 따라 기뻐하지도 않는데, 어찌 하물며 스스로 먹겠는가.
대혜여, 이와 같이 모든 파·부추·마늘·염교[薤]는 냄새나고 더럽고 깨끗하지 못하여 능히 성도(聖道)를 장애하며, 또한 세간, 인천(人天)의 깨끗한 곳을 장애 하는데, 어찌 하물며 부처님 정토(淨土)의 과보(果報)이겠는가.
술도 이와 같아서 능히 성도를 장애하며, 능히 선업(善業)을 손해하고 능히 모든 허물을 내니, 그러므로 대혜여, 성도를 구하는 자는 술·고기·파·부추·마늘 등인 능히 훈습하는 맛은 모두 마땅히 먹지 아니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대혜보살이 물었다.
술·고기·파·마늘·부추를
부처님께서 부정하다고 하여
일체 먹는 것을 허락 안 하셨네.
나찰(羅刹)들의 먹는 바요
성인의 먹을 맛이 아니니,
먹는다면 성인의 꾸짖는 것이며
나쁜 이름이 널리 퍼지네.
원하오니 부처님께서
먹는 죄와 먹지 않는 복을
분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대혜여, 그대는 잘 들어라.
내가 먹는 허물을 말하리라.
술·고기·파·마늘·부추는
성도분(聖道分)에 장애 되는 것이네.
내가 삼계(三界)의
성도(聖道)를 얻은 이들을 관찰하건대,
끝없는 세계로부터 오면서
이리 저리 모두 친척이었네.
어찌 그 가운데
먹고 먹지 않음이 있으랴.
고기의 온 바를 살펴 보건대
나온 곳이 가장 깨끗하지 못하니,
고름과 피로 어울려 나왔으며
오줌과 똥·콧물이 합해졌으니,
깨끗한 행을 수행하는 자는
잘 관찰하여 마땅히 먹지 않으리.
여러 가지 고기와 파와
술도 또한 마시지 않으며,
여러 가지 부추와 마늘을
수행하는 자는 항상 멀리하리.
항상 마(麻) 기름을 멀리하고
뚫어진 구멍 평상에서 자지 않으며,
작은 벌레 날려 버리니,
다른 목숨 해칠까 끊는 것이네.
육식(肉食)은 몸의 힘을 기르니
힘으로 말미암아 삿된 생각이 나며,
삿된 생각으로 탐욕이 나기에
그러므로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였네.
고기 먹음으로 탐심(貪心)이 나며,
탐심으로 미취(迷醉)를 이루고,
미취로서 애욕이 자라나서
생사(生死)를 해탈하지 못한다네.
이롭게 하려고 중생 죽이며,
고기를 위해 돈과 재물 추구하니,
저 두 사람의 악업(惡業)은
죽으면 규환(叫喚)지옥에 떨어지네.
세 가지 깨끗한 고기라고 이름함은
보지도 듣지도 의심도 아닌 것이니,
세상에는 이러한 고기 없는 것,
태어나면 먹히는 고기 속에 떨어지리.
냄새나고 더러워서 싫어함인
전광(顚狂)한 속에 항상 태어나며,
흔히 전타라(旃陀羅)와 사냥꾼과
백정의 집에 태어날 것이다.
혹은 나찰녀(羅殺女)와
또한 고기 먹는 곳에 태어나니,
나찰·괭이·살쾡이 등은
고기 먹는 것으로 그 가운데 태어났네.
『상액(象腋)경』·『대운(大雲)경』과
『열반경』과 『승만(勝鬘)경』과
또 『입능가경』에서도
나는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네.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도 또한 꾸짖는 바이니,
고기를 먹고도 부끄럼이 없으면
생생(生生)에 항상 전광(顚狂)한다.
먼저 보고 듣고 의심인 것을 말하여
이미 일체 고기를 끊었거늘,
망상으로 깨닫지 못하여
고기 먹을 생각을 낸다.
저 탐욕의 허물이
성해탈(聖解脫)을 장애함과 같아서
술·고기·파·마늘·부추도
모두 성도(聖道)에 장애가 된다.
미래 세상의 중생은
고기에 대하여 어리석게 말하기를,
이는 깨끗하여 죄가 없으니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먹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하리.
깨끗한 먹는 약과 같이 생각하고
아들 고기 먹는 것 같이하여
만족을 알고 싫어하여
수행함엔 걸식(乞食)을 행해야 하네.
자비한 마음에 안주(安住)하는 이에겐
나는 늘 싫어하며 떠나라고 말하니,
사자와 승냥이 호랑이들이
항상 함께 놀게 되리라.
고기를 먹으면 보는 이가 두려워하니
어찌하여 먹을 수 있으랴.
고기를 먹으면 자비한 마음이 끊어지고
열반 해탈 떠나게 되리라.
성인의 가르침도 또한 어기나니,
그러므로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네.
먹지 않으면 범종(梵種)에 태어나리.
도를 닦는 이와
지혜롭고 부귀한 이는
모두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라네.
17. 다라니품(陀羅尼品)
그 때 세존께서는 거룩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나의 『능가경』 주(呪)를 자세히 듣고 받아 가질 것이다.
이 주(呪)는 과거·미래·현재의 여러 부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으며, 현재 말씀하시며, 미래에 말씀하실 것이다.
대혜여, 내 또한 말하나니, 여러 법사(法師)와 『능가경』을 수지(受持) 독송(讀誦)하는 이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주문을 말씀하셨다.
대혜여, 이를 능가 대경(大經)의 주문구(呪文句)라 이름하니, 선남자·선여인과 비구·비구니·우바새(優婆寒)·우바이(優婆夷)들은 이 문구를 능히 수지 독송하며, 사람들을 위하여 연설해 줄 것이니, 어떤 사람이라도 능히 그의 죄과(罪過)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늘과 하늘 여자, 용과 용녀, 야차와 야차녀, 아수라와 아수라녀, 가루라와 가루라녀, 긴나라와 긴나라녀, 마후라가와 마후라가녀, 부다(浮多)와 부다녀, 구반다(鳩槃茶)와 구반다녀, 비사도(毘舍闍)와 비사도녀, 오다라(嗚多羅)와 오다라녀, 아파라(阿波羅)와 아파라녀, 나찰과 나찰녀, 다가(茶伽)와 다가녀, 오주하라(嗚周何羅)와 오주하라녀, 가타복다라(伽吒福多羅)와 가타복다라녀, 사람과 사람 아닌 것,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여자들이 능히 그의 허물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악한 귀신이 있어 사람을 해쳐 속히 저 악한 귀신으로 하여금 가도록 하려거든, 이 다라니 주를 백 번 굴리면 저 악귀(惡鬼)는 놀래고 두려워하여 부르짖고 곡하고서 빨리 도주하리라."
부처님께서 또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이 법을 보호하는 법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또 다라니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주문을 말씀하셨다.
"대혜여, 이 다라니 주의 문구를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수지 독송하며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능히 더불어 과실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늘[天]과 하늘 여자, 용(龍)과 용녀, 야차(夜叉)와 야차녀, 아수라(阿修羅)와 아수라녀, 가루라(迦樓羅)와 가루라녀, 긴나라(緊那羅)와 긴나라녀, 마후라가(摩睺羅伽)와 마후라가녀, 건달바(乾闥婆)와 건달바녀, 부다부(浮多浮)와 부다부녀, 구반다와 구반다녀와, 비사사와 비사사녀와, 오다라와 오다라녀와, 아발마라(阿拔摩羅)와 아발마라녀와, 나찰(羅刹)과 나찰녀와, 오달아라(嗚闥阿羅)와 오달아라녀, 가타복단나(伽吒福單那)와 가타복단나녀, 사람[人]과 사람 아닌 것[非人],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여자들인 그는 모두 능히 그의 허물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대혜여, 만약 사람이 이 주(呪)의 문구를 수지하거나 독송하면, 그 사람은 일체 『능가경』을 외운 것이라 이름함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다라니 구(句)를 말하여 일체 모든 나찰을 막으며, 일체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호지(護持)하는 자를 보호한다."
입능가경(入楞伽經) 9 - 총품(總品, 게송)
十八, 총 품(總品) (1)
그때에 세존께서는 이 수라다의 깊은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느 여름날에 새, 짐승은 아지랑이를
미혹한 마음에서 물로 본다
새 짐승은 물로 여겨 사랑하지만
저 물은 사실이 아니었네.
이와 같은 식(識)의 종자로서
모든 경계 움직임 보인 것이니
어리석은 중생에겐
눈 흐려 허깨비 것이었네.
사유(思惟)로서 사유할 바와
능히 사유함을 떠나고서
진실체(諦)를 보아서 분별하면
능히 해탈 알아 얻으리.
이 모든 법이란 견고함 아니요
허망한 분별로 난 것이다
허망한 분별은 공했거늘
저에 의하여 괜히 분별함이었네.
五음과 식(識) 등의 법은
물속의 나무 그림과 같고
눈홀림과 꿈을 보는 것 같나니
식(識) 가운데서 분별하지 말지어다.
요술로 시체(屍體)를 일으키는 기관이며
꿈, 번개, 구름과 항상 같나니
셋 상속하는 법 끊으면
중생이 해탈 얻으리.
사뙨 생각의 법에 의하여
그러므로 식이 나는 것 있나니
八, 九 가지가지 알음알이는
물속의 파도와 같다네.
훈습의 종자법에 의하여
항상 몸을 굳게 묶으며
마음은 경계에 유전하는 것이
철(鐵)이 자석에 끌리는 것 같네.
의지함인 모든 중생이여,
진성(眞性)이란 모든 지각 떠났으며
모든 짓는 일과 알음과
알 바 법도 멀리 떠났다네.
환(幻)같은 삼매를 수행하여
十지의 행을 벗어나리
그대는 심왕(心王)법을 관찰하라
마음과 경계 알음알이를 떠났네.
그때엔 항상 유전하는 마음 알고서
항시 변치 않는 데에 곧 머무르고
연꽃 궁전에 머무나니
환 같은 경계의 모양이었네.
저 수승한 곳에 머무르고서
모든 자재행(自在行)을 얻으며
마니주가 색상을 나투듯이
중생 제도 사업 지어주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도 없으며
모든 분별심 없어졌나니라
어리석은 이는 지혜없이 취하기에
돌 계집 아이 꿈 같다네.
고요함과 무생(無生)이며
五음과 인(人)과 상속(相續)과
인연과 모든 경계와
공(空)과 유(有)와 비유(非有)를
나는 모든 방편으로 말함이요
이와 같은 진실상이 없거늘
어리석은 이 사실 있는양 하나니
능상(能相) 가상(可相)은 모두 없네.
나는 일체 법을 깨달았으나
일체를 깨달음도 아니며
나는 일체지(一切智) 있으나
그러나 일체지 없다네.
범부는 어리석게 분별하여
스스로 세상에서 지자(智者)라 말하나
나는 일찍 깨닫지 아니했으며
또한 중생을 깨닫게도 아니하네.
일체 법은 마음 뿐이요
모든 음도 털바퀴 같다
털바퀴 모양은 필경 없나니
어느 곳에 분별함이 있으랴.
본래 없고 처음 생긴 물건이란
모든 인연에도 또한 없으며
돌 계집과 허공 꽃이거니
만일 유위(有爲)라고 본다면
그때엔 볼 바[可見]를 볼 것이요
미(迷)한 것을 보면 법이 곧 머무르며
나도 열반에 들지 않으리니
상(相)과 업을 멸하지 않는 것이리.
분별식(識)만을 멸하는 것이
이 곧 나의 열반이요
법상을 멸함은 아니거늘
어리석은 이 괜히 분별하네.
폭류하는 물이 다하면
그때엔 파도 나지 않듯이
가지가지 식(識)이 없어지면
없어지고는 다시 나질 않으리.
공(空)함이요, 식(識)의 모양 없어서
환과 같아 본래 나지 않음이요
유무(有無)이면서 유무를 떠났나니
이 모든 법 꿈 같은 것이네.
내가 말한 하나인 실법(實法)은
모든 각관(覺觀)을 떠났으며
성인의 묘한 경계라서
두 법 체상을 떠났다네.
반딧불 모양 보는 것 같아서
가지가지 진실한 것 없나니
세간에서 四대와 가지가지를
보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네
풀, 나무, 돌에 의지하여
눈홀림인 모양 보임 같나니
저 눈홀림은 이러한 모양 없듯이
모든 법체도 이와 같다네.
취착(取着)함과 취착할 바도 없으며
해탈도 속박도 없고
눈홀림 같고 아지랑이 같으며
꿈과 눈[眼] 속의 티 같나니라.
만일 이와 같이 실답게 보고
모든 분별의 때[垢]를 떠나면
곧 여실한 정(定)에 머무르리니
그는 나를 보는데 틀림 없으리라.
이 가운데엔 심식(心識)이 없고
허공과 아지랑이 같나니
이와 같이 모든 법 안다 한들
그러나 한[一]법은 알지 못하리.
유무(有無)의 모든 반연 떠났기에
그러므로 모든 법 생(生)함 아니며
삼계(三界)도 마음이 미혹한 것이니
그러므로 가지가지 보인 것이라네.
꿈과 세간의 법인
이 두 법은 평등하나니
보여질 바와 살림살이와
모든 촉감과 또한 양[量]이며
몸과 무상(無常)과 세간과
가지가지 색(色)도 또한 그러하네.
세간에서 높으신 이의 말씀은
이와 같이 짓는 바 일이라네
마음은 삼계(三界)의 증자인데
미혹으로 현재와 미래를 보나니.
세간의 분별을 알으면
이와 같은 진실법 없으리라
세간을 이와 같이 본다면
능히 생사(生死)를 떠나리니
생(生)과 불생(不生)은
어리석음과 미혹으로 본 것이네.
불생(不生)과 불멸(不滅)은
지혜 닦는 이가 본다
아카니(阿迦尼)의 묘한 경계는
모든 악행(惡行) 떠난 곳이라네.
항상 분별이 없는 행과
모든 심수(心數) 떠난 법으로
역통[力通]이 자재함 얻고
삼매에 도달하는 곳에서
그 곳에 정각(正覺) 이루었나니
화불(化佛)이 이 가운데서 이루셨네.
모든 법은 생멸(生滅) 아니어서
모든 법이 이와 같은 체성이라네
응화의 한량없는 억(億)의 수가
그 체성 속에서 출세하시어
어리석은 사람을 불법에 들게하는데
메아리 같아 사의(思議)할 수 없네.
처음, 중간, 끝을 멀리 떠났으며
유무(有無)의 법까지 떠나서
두루 움직이지 않고 청정하여
모든 모양 없는데서 모양 나투시네.
식성(識性)이 법신을 덮어서
일체 몸 가운데에 있나니
미혹은 이 환으로 있는 것이요
환은 미혹의 인(因)이 아니라네.
마음엔 미혹의 법 없으며
또한 조금 있지 않음도 아니다
마음이 두 법의 속박에 의하여
아라야식 이 일어난 것이라네.
다만 마음이 이와 같이 본 것이요
아(我)와 법은 폭류수(瀑流水)와 같나니
세간을 이와 같이 관찰하면
그때엔 모든 마음 굴리리라.
이는 나의 참 제자로서
진실한 법행(法行) 성취하리
뜨거움, 젖음, 굳음, 움직임을
어리석은 이 모든 법이라 분별하여
사실 아닌 것을 있다고 생각하나
능상(能相)과 가상(可相) 없나니라
여덟 가지 물건으로 한 몸과
형상과 모든 근(根)이었네.
어리석은 이 모든 형색 분별하여
미혹의 몸 그물에 얽히고
여러 인연이 화합하므로
어리석은 분별이 난 것이다.
이와 같은 법 알지 못했기에
삼계 가운데서 유전하나니라
모든 법과 또한 언어는
이 중생의 분별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법은 없는 것이어서
화현함과 꿈 같은 것이니
모든 법이 이와 같은 것으로 관찰하여
세간과 열반에 머무르지 아니하리.
마음의 가지가지 종자로서
마음의 경계를 나타내 보인 것이니
볼 바인 분별이 생기기에
어리석은 이는 두 법을 좋아하네.
무지(無智)와 애착과 업은
심(心)과 심법(心法)의 인(因)이니
딴 힘인 법에 의해 생겼으므로
타력(他力)의 법이라 말하네.
법에 의하여 분별하는 일들은
마음이 경계에 미혹함이니
그러므로 분별함 될 수 없고
미혹한 사뙨 분별이라네.
마음이 인연에 묶임에 의하여
그러므로 모든 몸 내었나니
만일 모든 인연 떠난다면
나는 ‘법을 보지 않음이라’ 말하리.
모든 인연법을 떠나며
모든 법상(法相)을 떠나서
모든 법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으면
나는 ‘경계를 보지 않음이라’ 말하리.
왕(王)과 장자(長者)들이
가지가지 새 짐승을
집과 들에 모아두고
여러 아들에게 보이듯이
나도 이와 같은 모든 상(相)과
가지가지 거울 모양인 법을
속몸 지혜로 아들 삼아서
실제(實際)법을 말하노라.
큰 바다의 물결은
바람의 인연으로 생기어
능히 일어 날뛰고 현전(現前)하여
그리고 끊칠 새 없듯이
아라야식도 항상
바람인 경계에 의해 일어나며
가지가지 물결인 알음알음이가
능히 날뛰고 생겨 끊어지질 않네.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모양은
중생은 이와 같이 보나니
가견(可見)은 모든 상(相) 없는데
모도(毛道)는 이와 같이 본다네.
아라야인 근본식(本識)과
의(意)와 의식(意識)은
가취와 능취 떠난 것이니
나는 ‘이와 같은 모양’ 말하노라.
오음(五陰)중엔 아(我)도 없으며
인(人)과 중생도 없다
생(生)은 여러 식(識)이 생(生)함이요
멸은 곧 여러 식이 멸함이네.
그림속의 높고 낮음 같아서
보이지만 이와 같은 것 없나니
이와 같은 모든 물체는
보이지만 이와 같은 모양 없다네.
건달바의 성(城)과 같으며
새 짐승의 물을 갈애(渴愛)하듯이
이와 같은 보여진 것 보이지만
지혜로 관찰함엔 이러한것 없나니라.
헤아림과 생각함 떠났으며
인(因)도 아니며 과(果)도 아니요
능각(能覺)과 소각(所覺) 떠났고
능견(能見)과 가견(可見) 떠났다네.
음(陰)과 인연에 의해 깨달을 것이니
인견(人見)과 가견(可見) 없나니라
만일 가견(可見)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 법을 닦으랴.
인연과 인(因)과 비유와
뜻 세움[立意]과 인연이며
꿈과 건달바와 털바퀴와
아지랑이와 해와 달과
빛과 불꽃과 환 등인 비유로
나는 ‘모든 법 생함인 것’ 막노라.
꿈과 환(幻)같은 미혹으로서
괜히 중생을 분별함이니
삼계에 의지하지도 않으며
안과 밖에도 또한 모두 없어
‘모든 유(有) 생(生)하지 않음’ 보면
이는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리.
환과 같은 삼매[如幻三昧]와
뜻과 같은 몸[如意身]과
모든 신통과 자재함과
힘과 마음인 가지가지 법 얻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함 아니며
공하여 법체상도 없것만
저 사람은 미(迷)하고 깨닫지 못하여
인연 따라 생멸(生滅)하나니,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 같아서
마음에서 자심(自心)을 본 것이며
바깥 가지가지 모양을 본 것이요
실로 보여질 법은 없나니라.
골상(骨相)과 불상(佛像)과
모든 四대(大) 헤어짐을 보며
잘 살피는 마음으로 능히 아는 것이
세간상(世間相)을 주지(住持)함이라네.
몸과 주지함과 살림살이여,
가취(可取)인 세 가지 경계로다.
식(識)은 식(識)의 경계를 취하고
의식(意識)은 셋을 분별하나니
분별함과 가분별(可分別)과
있는 바 명자의 경계로서
능히 진실법 보지 못함이니
그의 각(覺)은 미(迷)하여 보지 못함이라네.
모든 법의 자체 없는 것을
지혜 있는 이 능히 깨닫나니
수행자가 그렇게 생각 쉬고서
상(相)이 없는 곳에 머무르리.
만일 먹으로 닭[鷄]을 그리면
어리석은 이는 우리 닭이라고 하나니
어리석은 범부의 취착과 같아서
三승(乘)이 모두 한가지라네.
성문인 사람도 없으며
또한 벽지불도 없것만
보는바 성문의 색(色)과
또 여래를 보는 것은
보살의 큰 자비로서
이 화신(化身)을 보인 것이네.
三계가 오직 마음이요
두 가지 체상을 떠났나니
저의 여러 상을 전변(轉變)하면
그가 곧 진여(眞如)라네.
법과 인(人)인 행상과
해와 달의 빛나는 것이며
큰 마니의 보배로서
분별 없이 사업을 짓나니
제불의 법은 이와 같것만
눈병에서 털바퀴 취함이라네.
이와 같이 법을 분별하여
어리석고 허망스리 취착하네
생, 주, 멸(生, 住, 滅)을 떠났으며,
상(常)과 무상(無常)도 떠났느니라.
보여진 염정(染淨)의 법이란
공중의 털바퀴 같으며
이아리풀에 중독된 사람이
여러 모양인 대지(大地) 보는것 같나니라.
일체 금빛 같이 보이나
저엔 금이 일찍 있지 않나니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은
끝없는 심법(心法)의 더럽힌 것이다.
눈홀림과 아지랑이 생기면
어리석은 이 사실인양 하나니라.
한[一]종자와 종자 아닌 것이여,
큰 바다도 한 종자인 것이며
또한 한량없는 종자이니
그대는 마음의 종자를 관찰하라.
한 종자가 청정하면
한량없는 종자를 굴리리라.
평등하여 분별 없으나
일으키면 곧 생사(生死)이어서
능히 가지가지 종자를 내나니
그러므로 종자를 말하노라.
인연은 불생(不生)인 법이며
인연은 불멸(不滅)인 법이다.
생(生)하는 법은 오직 인연이거늘
마음이 이와 같이 분별함이여.
삼계가 오직 거짓이름이요
실로 사법(事法)의 자체 없는데
망각(妄覺)하는 이 이를 분별하여
거짓이름 취(取)하여 사실로 여기네
모든 법의 실체를 관찰하면
나는 ‘미혹했다’고 말하지 않으리
실체인 불생(不生)법을
관찰하면 해탈 얻으리라.
나는 ‘환(幻)과 없는 것’ 보지 않으며
‘모든 법 있다’고 말하지 않노니
뒤바뀜과 신속함 번개와 같기에
그러므로 ‘환 같다’고 말하노라.
본래 생김과 처음 생김도 아니요
모든 인연이 체성이 없고
곳과 자체도 없어서
오직 말만이 있을 뿐이라네.
인연이 생멸함인 것 막지 않으며
인연이 화합함인 것 막지 않고
모든 어리석은 소견으로
‘인연으로 생긴다’ 분별함 막노라
실로 식(識)의 자체 법 없으며
사법과 근본식도 없거늘
어리석은 이 분별을 내나니
시체와 같은 악각(惡覺)이니라.
삼계가 다만 마음임을
모든 불자(佛子) 능히 본다면
곧 종류인 몸을 얻을 것이요
지음과 유위(有爲)법을 떠나리라.
힘과 신통과 자재와
한가지[共]인 상응(相應)법 얻고
일체 색(色)을 나투리니
심법(心法)이 이와 같이 나니라.
심(心)과 색(色)이 없는데도
끝없이 마음 미혹했나니
그때엔 수행하는 이
무상(無相)을 얻어 보고
지혜 가운데에서 관찰하여
모든 중생들의
상(相)과 법과 거짓이름과
뜻으로 움직인 법 취함을 보지 않으리.
나의 모든 제자 이를 지나서
분별없이 수행해야 하리
건달바성과 눈홀림과
털바퀴와 아지랑이를
사실 없는데서 사실로 보나니
모든 법의 체성 이와 같나니라.
마음대로 모든 법 본 것이요
이와 같은 체상(體相)없나니라.
일체 법은 생(生)함 하니건만
다만 미혹한 법 본 것이니
모도(毛道)의 미혹한 분별은
두 법에 머무르기 때문이었네
처음 식(識)이 분별을 내고서
가지가지로 종자를 훈습하네
식은 폭수(瀑水)가 일어남 같나니
그를 끊으면 불생(不生)이라네.
가지가지 염관(念觀)인 법이
만일 다만 심중(心中)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벽(壁)과 같거니
무슨 까닭으로 생함 아니랴.
만일 소상(少相) 관(觀)이 있으면
마음이 인연을 따라 나니라.
만일 인연으로 부터 난다면
유심(唯心)이라 말하지 못하리라
마음이 자심(自心)을 취했기에
법도 없고 인연 생함도 없다
심법(心法)의 체성을 청정하여
허공 가운데라서 훈습 없나니라.
허망스리 자심을 취하기에
그러므로 마음이 나타나나니라.
외법(外法)은 보여짐도 없나니
그러므로 ‘유심(唯心)이라’ 말하노라.
근본식(本識)은 다만 마음이며
뜻은 능히 경계를 생각하여
능히 모든 경계를 취하나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하노라.
심(心)은 항상 무기(無記)인 법이며
의(意)는 두 갓으로 모양 취하네
현재 법을 취함은 이 식(識)이니
그는 선(善)과 불선(不善)이라네.
두 가지 식의 모양 떠난 것이
이가 제일의문(第一義門)이라네
三승(乘)의 차별을 말하였으나
고요함은 이러한 모양 없다네.
만일 마음이 고요함에 머무르고
부처님의 땅에서 행하는 것이라면
이는 과거 부처님의 말씀하신 것이요
현재와 미래도 또한 이와 같다네.
처음 七지(地)는 마음의 땅이며
고요함은 제八지(地)라네
二지(地)는 이 행(行)의 곳이요
그밖에 지위는 아(我)의 법이라네.
스스로 안의 몸이 청정한 것은
이 아(我)가 자재한 땅이다
자재하고 구경(究竟)인 곳의
아카니탁천에서 나타난다네.
여러 불꽃들이
광명을 내는 것과 같아서
가지가지 마음으로 좋아하기에
변화로 삼계를 지었나니라
혹 중생을 교화할 수 있으면
변화로 三유(有)를 지어내고
그 곳에서 모든 법 말하나니
이 나의 자재한 처지었네.
지위엔 시절도 없으며
국토의 전변(轉變)함 또한 그러하여
심지법(心地法)을 초과 하였나니
이는 고요한 과(果)에 머무름이네.
사실 없는데 사실이라 하여
그 가지가지를 보나니
어리석은 이의 전도한 취착이며
이가 가지가지 전도(顚倒)라네.
만일 분별이 없다면
사법 있어도 상응(相應)하지 않으리
심(心)은 모든 색(色)이 아니나니
그러므로 분별 없나니라.
모든 선(善)과 무량(無量)과
무색(無色)의 삼매임이여,
모든 상(相)은 필경 멸하나
그러므로 모음속엔 없나니라.
스로타판나[須陀洹]의 과(果)법과
오가고 돌아오지 않는 이[往來, 不還]와
또한 아라한의 과위들이여,
모두 마음 미(迷) 했다네.
공(空)과 무상(無常)과 찰나를
어리석은 이 유위(有爲)라 분별하네
강물과 종자의 비유로서
찰나의 뜻을 분별하나니
찰나는 분별이 없어서
모든 짓는 바 법을 떠났다
일체 법이 생김 아니기에
나는 찰나의(義)라 말하노라.
유(有)와 무(無)를 생김이라 말함은
상카야[僧法]등의 허망한 말이요
일체 법이 무기(無記)라 함도
또한 그이들의 말이었네.
네 가지 기법(記法)이 있나니
일왕답(一往答)과 반문(反問)이며
분별차별답(分別差別答)과 묵답(默答)인데
그는 외도를 막으려고 함이네.
세체(世諦)는 일체 유(有)이고
제일의체(第一義諦)는 무(無)이다.
실체(實諦)는 모양이 없나니
이 가 제일의체라네.
허망한 법임을 보았기에
그러므로 세체(世諦)를 말하였다.
언어(言語)에 인하여 생긴 것이니
이와 같은 실체는 없다네.
사법 없는데 말만이 있음이여,
세체(世諦) 가운데엔 실로 없나니
이 곧 전도(顚倒)인 사법이라
보여짐도 또한 없다네.
만일 사법이 전도로서 있다면
고요함엔 필경 없으리라
전도한 사법에 의하여
모든 법 생김을 본 것이라네.
필경엔 결정코 없나니
곧 체상이란 없나니라
보는바 가지가지 법은
훈습인 번뇌로 생긴 것이네.
마음이 바깥 경계에 미혹하여
전경(前境)을 취착하나니
분별이 분별 없어서
이 공(空)이며 실상(實相)법이라네.
눈홀림인 여러 모양 같고
나무잎을 금빛이라 함과 같아서
이 보여지는 사람은 보나니
마음의 무명(無明)으로 훈습함이니라.
성인[聖]은 미(迷)를 보지 않으며
중간에 진실도 보지 않아
미혹이 곧 진실이니
진실은 곧 중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미혹 멀리 떠나고서
만일 능히 모든 상(相)을 낸다면
곧 이 그 미혹이니
눈병 같아 깨끗함 아니라네.
눈병으로 털바퀴 보듯이
미혹에 의해 모든 법 취하나니
모든 경계 가운데에서
어리석게 이 법이라 취착하네.
모든 법이 털바퀴 같으며
아지랑이를 물로 미혹함이어서
三계(界)도 꿈과 눈홀림 같나니
수행하여 해탈 얻어야 하리.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이
능히 분별을 내며
박(縛)과 가박(可縛)과 인(因)이
여섯 가지 해탈의 인(因)이라네.
지위와 모든 체(諦)도 없으며
국토와 및 화불(化佛)도 없고
불(佛)과 벽지와 성문은
오직 마음에서 분별함이라네.
인체와 五음(陰)은
모든 인연과 미진(微塵)과
훌륭한 사람이 자재(自在)로 지었다 함은
오직 이 마음의 분별이라네.
마음은 일체 곳에 두루했나니
일체 곳이 모두 마음이다.
마음을 잘 관찰하지 못한 탓이요
심성(心性)은 모든 상(相)이 없나니라.
五음 가운데엔 아(我)가 없고
아(我) 가운데엔 五음이 없다.
이 법을 없다고 분별하나
저 법은 없는 것도 아니니라.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과 같이
일체 법이 있다하여
이와 같이 실로 있다고 보나니
일체 진실임을 응당 보리라.
일체 법이 만일 없을진대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리.
어리석은 이는 이와 같이 보나니
저 법은 이와 같지 않나니라.
미혹으로 분별하는 상(相)은
이 타력(他力)의 분별이니,
저 상(相)의 있는바 이름이란
이 분별상(分別相)이라 이름 하나니라.
명상(名相)은 이 분별이니
인연과 사법이 화합한 것이다
만일 저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가 제일의(第一義)인 모양이라네.
보신불(報身佛)과 실체불과
변화한 바 부처님의 모양과
중생과 또한 보살과
아울러 시방의 국토며
습기(習氣)와 법신과 화신불과
또한 화신불로 짓는 것은
이 모두 아미타불의
국토로부터 나온 것이라네.
응화(應化)의 설법하신 바와
보불(報佛)의 설법함은
수다라에서 널리 말했나니
그대는 응당 비밀인 뜻임을 알으리.
있는바 불자의 설법과
또한 여러 여래는
이 모두 화불의 말씀인 것이요,
순숙(淳熟)한 이[報佛]의 말씀 아니라네.
이 모든 법은 생김 아니며
저 법도 없는 것 아니어서
건달바 성(城)과 눈홀림이며
꿈과 변화인 것과 같은 것이라네.
가지가지가 마음 따라 구르나니
유심(惟心)이요, 다른 법 아니다.
마음이 생(生)하면 가지가지 생하며
마음이 멸(滅)하면 가지가지 멸하나니라.
중생이 허망스리 분별하여
물건 없는데 물건 보나니
없는 뜻은 오직 마음인 것이요
분별 없으면 해탈 얻으리라.
끝없는 세상에의 희론(戱論)은
번뇌에 의지했나니
모든 분별로 훈습하였였기에
그러므로 사견(邪見)이 나느니라
식(識)은 분별이 없는 뜻이요
진여(眞如)는 이 지혜의 경계니
저를 굴리면 이 고요함이라
이가 성인[聖]의 경계라네.
뜻을 관찰하는 사유(思惟)는
모든 범부의 사유함이요.
진여를 생각하는 사유는
부처님의 깨끗한 사유라네.
모든 법체를 분별하나
일체 법은 생김이 아니다
타력(他力)의 인연에 의하여
중생은 미혹으로 분별하나니라.
타력이 만일 청정하면
분별과 상응(相應)하는 것 떠나리라
저를 굴리면 바로 진여이요
분별을 떠나면 이 진여행(行)이니라.
분별하며 분별하지 말 것이니
분별은 사실이 없다.
미혹인 법을 분별함이란
취(取)와 가취(可取) 다하지 않으리라.
바깥 분별인 경계를 보고
이 실체라고 분별하여
마음을 분별하며 분별한다면
저 법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리라.
사견(邪見)으로 바깥 의(義)를 본 것이니
의(義)는 없고 다만 마음인 것이다.
양(量)을 관찰하여 상응하면
능히 취와 가취를 멸하리라
바깥 경계는 없는 것이언만
어리석은 이 괜히 분별하여
훈습으로 마음을 증장하기에
모든 법이 생긴 것 같나니라.
두 가지 분별을 멸하면
진여 지혜의 경계니
법 없는 모양에서 생김이란
부사의(不思議)인 성인의 경계라네.
명상(名相)과 분별과
실체와 두 가지 모양과
바른 지혜와 진여는
이 실체를 성취함이니라.
부모에 의하여 화합되며
아라야와 의(意)가 합하는 것이
타락과 병(甁)들과 쥐와 같이
한가지로 적(赤) 백(白)이 증장하네.
메시와 두터운 포창(泡瘡)인
부정(不淨)함이 절(節)에 의해 다하는데
업풍(業風)이 四대를 자라게 하는것이
과일이 성숙함과 같다네.
五와 및 五, 五에서
또한 아홉 가지 구멍이 있고
털과 껍질이 두루 덮어서
이와 같이 증장하여 자라나네.
생기는 것 똥 속의 벌레와 같고
사람이 잠 자다가 깨어남 같으며
눈으로 색(色)을 보고 생각 일으켜
증장하여 분별 내나니라.
분별과 또한 전념(專念)이
이[齒]와 입술이 화합한 것을 트고서
입으로 비로소 말하는 것이
앵무새가 소리를 희롱함 같나니라.
모든 외도는 정(定)을 말하나
대승(大乘)에는 결정 아닌 것이라,
중생의 마음에 의한 정(定)이며
사견(邪見)이기에 능히 가까히 할 수 없네.
나의 법은 안으로 증득한 지혜니
허망한 각(覺)은 그 경계가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서 입멸한 후에는
누가 가지고 나를 위해 말하랴.
여래가 멸도한 후에는
미래에 응당 사람 있으리니,
대혜여, 그대는 잘 들으라
나의 법 지닐 사람은 있으리라.
남쪽의 큰 나라 가운데에
대덕(大德) 비구가 있으리니
이름은 용수(龍樹) 보살 일 것이요
유무(有無)의 소견 능히 깨트리고
사람을 위하여 나의 법인
대승, 위 없는 법을 말할 것이며
환희지(歡喜地)를 증득하고서
안락국(安樂國)에 왕생(往生)하리라.
지혜로 법을 관찰함에는
진실 법체를 볼 수 없나니
그러므로 말할 수 없으며
말함도 또한 체성 없나니라.
만일 인연으로 생겨진 법이라면
있다 없다 말하지 못하리
인연 가운데엔 물건 있다기에
어리석은 이, 있다 없다 분별하네.
사견(邪見)인 두 사뙨 소견이니
나는 아(我) 법(法) 떠남 알았노라.
일체 법의 명자를
한량없는 겁(劫)이 항상 배웠나니라.
배우고 또한 다시 배우고서
번갈아 서로 분별하나니
만일 명자를 말하지 않으면
세간 사람 미혹하리니
그러므로 명자를 지은 것은
마혹의 법을 없애기 위함이다
세 가지 분별에 의하여
어리석은 이 법을 분별하네.
명자에 의해 미혹한 분별이며
인연으로 능히 생겼다고 하나,
법은 멸함도 생김도 아니요
자성(自性)이 허공과 같나니라.
법은 체성 없는 것이 체성이요
분별하는 상(相)도 곧 체성이니
그림자와 눈홀림과
아지랑이와 꿈과 메아리며,
불 바퀴와 건달바 이어서
모든 법이 이와 같이 나나니
둘이 아닌 진여(眞如), 공(空)은
실제(實際)며 법의 체성이니라.
내가 말한 분별 없음이
저 법상을 성취하였네
입과 마음의 경계는 허망함이니
진실과 허망 세운 그것이네.
마음이 二변(邊)에 떨어지기에
그러므로 분별이 성립함이다
유(有)와 무(無)는 二변에 떨어진 것이니
마음 경계에 있기 때문인 것이네.
모든 경계 멀리 떠나서
그때엔 바로 마음 멸하고
취착하는 경계를 떠나면
저 멸(滅)은 유무(有無)가 아니니라.
만일 성인의 경계라면
어리석은 사람은 능히 아지 못하리
멸(滅)하고서 진여에 머무름이란
지혜 있는 이만 능히 보리라.
저 법과 같이 머무른다면
지혜 있는 이만 보리니
법체가 이와 같지 않음은
모든 법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쇠를 보고
분별하여 금이라고 하여
금 아닌 것을 금으로 보듯이
외도의 법을 취함도 그와 같느니라.
본래 없는데 처음 생겼다 말하여
처음 생긴 후 도로 없어지며
인연 따라 있다 없다 한다 함이여
이 말은 나의 교법 아니니라.
처음과 종말이 없는 법이여,
이와 같은 모양의 머무름 없나니
세간의 머무른 모양이란
사뙨 깨달음은 알지 못한 때문이네.
과거의 법도 있는 것이요
미래의 법도 없는 것 아니며
현재의 법도 또한 있나니
응당 법이 생긴다고 말하지 못하리.
전변[轉]하는 시간과 행상(行相)과
모든 대(大)와 여러 감관[根]으로
허망스리 중음(中陰) 취하나니
만일 각자(覺者)가 아니면
일체 불(佛), 세존께서는
‘인연으로 생긴다’고 말하지 않으리.
인연이 곧 세간인 것이니
건달바의 성(城)과 같은 것이라네
다만 법과 인연이 화합하여
이 법에 의해 법이 생기나니
모든 화합인 법을 떠나면
멸도 아니며 또한 생(生)도 아니라네.
거울과 물 가운데에서와
눈[眼]과 그릇과 마니(摩尼)에서
모든 거울인 모양 보이나
모든 그림자란 없는 것이라네.
짐승이 헛된 물을 사랑하듯이
가지가지 색(色)을 보고서
가지가지 있는 것 같으나
꿈과 돌 계집애와 같다네.
나의 법은 대승도 아니고
소리도 명자도 아니며
체(諦)도 해탈도 아니요
고요한 경계도 아니라네.
그러나 나의 법은 대승이며
모든 삼매로서 자재하고
뜻과 같은 가지가지 몸이
자재스럽게 꽃으로 장엄하였네.
일체(體)와 별체(別體)이면서
인연 가운데엔 없는 법이나
줄여 말하면 모든 법 생(生)함이요
널리 말하면 모든 법 멸함이라네.
불생공(不生空)이 이 하나[一]이며
그리고 생공(生空)이 이 둘[二]이다.
불생공은 수송함이요
생멸(生滅)은 바로 이 공(空)이라네
진여와 공과 실제(實際)와
열반과 법계(法界)와
몸과 뜻인 가지가지를
나는 ‘다른 이름인 법이라’ 말하였네
경(經)과 비니(毘尼)와 비담(毘曇)에서
아(我)가 청정함 분별하였나니
명자에 의지하고 뜻에 의하지 않으면
그는 무아(無我)를 알지 못하리라.
외도도 부처도 아니며
아(我)도 딴 것도 또한 아니요
인연 따라 유법(有法) 이룬 것이니
어찌 ‘모든 법 없다’고 하랴.
어떤 사람이 유(有)를 성취하였고
인연 따라서 무(無)를 말하느냐
설법함에 사견(邪見)을 내고서
유무(有無)로 괜히 분별함이었네.
만일 사람이 불생(不生)을 보며
또한 법의 불멸(不滅)을 본다면
그 사람은 유무를 떠나서
세간의 고요함 보리라.
중생의 분별인 소견으로
보여진 것은 토끼뿔 같나니
분별이란 이 미혹이어서
새가 아지랑이 사랑함 같다네.
허망스리 법을 분별하고
그에 의해서 분별하는 소견이었네.
인연과 분별은 없는 것이니
인(因) 없기에 응당 분별 않으리.
물 없는데서 물을 취하는
짐승과 같이 괜히 애착 내나니
어리석은 이는 이와 같이 보거니와
성인은 이러한 것 없다네.
성인은 견(見)이 청정하여
三해탈을 내었기에
생사(生死)의 법을 떠나고서
고요한 곳 수행하나니라.
깊고 묘한 방편으로
국토의 기묘한 일 알고서
내 모든 제자 위해 말함이이나
소승(小乘)을 위함은 아니라네.
三유(有)는 이 무상(無常)한 것이니
공(空)이요 무아(無我)며 아(我)를 떠났나니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인 것을
나는 성문을 위해 말했노라.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고
세간을 떠나 홀로 행하면
나는 연각의 과(果)라 말하노니
사량(思量)의 경계가 아니니라.
바깥의 실체(實體)를 분별함은
타력(他力)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자신(自身)의 미혹을 본다면
그때엔 모든 마음 굴리리라.
十지(地)가 곧 초지이며
초지(初地)가 곧 八지(地)이요
九지(地)가 곧 七지(地)이고
七지가 곧 八지이며
二지(地)가 곧 三지(地)이고
四지(地)가 곧 五지(地)이며
三지(地)가 곧 六지(地)이어서
고요함엔 차체 없나니라.
모든 법은 항상 고요하며
수행자도 법이 없나니
유무(有無)법이 평등하면
그때엔 성과(聖果)를 얻으리라.
모든 법은 체상(體相) 없거니
어찌하여 없는 법에서
능히 평등을 지으랴
고요하여 분별 없나니라.
만일 모든 마음과 안팎의
움직이는 법을 보지 않으면
그때에 모든 법을 멸하고서
평등한 마음 보리라.
어리석은 이 끝없이 유전(流轉)하면서
법을 취함이 품에 안음 같고
범부를 속이며 유전함은
쐐기로 인해서 쐐기 내는 것 같아서
저 인(因)과 관찰에 의하여
의(意)와 함께 경계를 취하며
식(識)의 종자에 의하여
능히 마음의 인(因) 짓나니라.
닦아 얻음과 주지(住持)함과
종류인 몸을 따라 얻음과
꿈 가운데에 얻은 바인
이의 신통 네 가지 있다네.
꿈 가운데에 얻은바 신통과
여러 부처님의 인(因)에서
종류의 몸을 취하여 얻은
저 신통은 진실한 신통 아니니라.
훈습한 종자로 마음을 훈습하여
법이 생겨서 굴르는 것 같으나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기에
그를 위하여 ‘모든 법 생긴다’ 말하노라
바깥 물건을 분별하여
모든 법상이 성취하기에
그때엔 마음이 민몰(悶沒)하여
자기 미혹을 보지 못하나니라.
무슨 까닭으로 생(生)을 말하며
무슨 까닭으로 무견(無見)을 말하며
볼수 없는데서 보는 것이온지
원컨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어떠한 사람을 위하여
어떠한 법이 있다 말하고
어떠한 사람 위해서는
어떠한 법이 없다 말씀하나이까.
마음 자체는 스스로 청정하건만
의(意)가 일어나서 함께 혼탁했나니
의(意)와 일체 식(識)이
능히 훈습하는 종자 지었나리라.
아라야가 몸을 내었고
의(意)는 나가서 모든 법 구하여
의식은 경계를 취(取)하고
미혹의 소견은 탐하여 취하나니라.
자심(自心)에서 보는 바 법인
외법(外法)은 외법 없나니
이와 같이 미혹을 관찰하고
항상 진여를 생각하리.
선(禪)을 닦는 자의 경계와
업(業)과 부처님의 위대한 일인
이 세 가지는 사의(思議)할 수 없고
지혜 있는 이의 경계라네.
과거, 현재, 미래와
열반과 허공을
나는 세체(世諦)에 의해 말함이나
진체(眞諦)는 명자가 없나니라.
二승(乘)과 외도들은
사견(邪見)에 집착하여
마음속 미몰(迷沒)하면서
바깥 법을 분별하네.
연각과 불과 보살이여
라한은 부처님을 보는데
보리의 굳은 종자가
꿈속에서 성취하네.
어떤 곳이 어떤 것 되오며
어찌하여 어떤 인(因)이 되고
하는 바는 무슨 뜻이 되나이까
원컨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환(幻)의 마음에서 고요함 버리고
있다 없다는 붕당의 말이 있네
마음속의 미혹이 견고하여
환이있다 없다들 말하네.
생멸상(生滅相)이 상응(相應)하여
상(相)과 가상(可相) 있고 없는 것이라네
분별은 오직 의(意)인데
다섯 가지 식(識)과 함께 한다네.
거울 모양과 물의 파도인 것들은
마음의 종자로부터 생기나니
만일 심(心)과 의(意)와
모든 색(色)이 나지 않는다면,
그때엔 뜻과 같은 몸 얻고
부처의 땅에 도달하리라.
모든 연(緣)과 음(陰)과 계(界)여
이는 법의 자체상이라네.
거짓 이름과 사람의 마음은
꿈과 같고 털바퀴와 같다네
세간을 환과 꿈 같이 보아서
진실을 얻어 의지하리.
모든 상(相)이 실상(實相)과 합하여
침량(斟量)의 인(因)을 떠나고
성인의 안으로 얻는 경계이리니
항상 묘행(妙行)을 관찰하리.
미혹하여 침량하는 인(因)으로
세간을 진실로 여기게 하나니
일체 희론을 떠나야 하며
지혜로서 미혹에 머무르질 않으리.
모든 법은 체상이 없나니
공(空)과 상(常)과 무상(無常)이다.
마음이 어리석음에 머물러서
미혹했기에 분별하나니라.
모든 법을 말하는 자여
무생(無生)을 말함 아니다
하나와 둘과 또 둘[二]에서
흘연(忽然)과 자재와 유(有)이며
때[時]와 훌륭함과 미진(微塵)과
연(緣)에 의하여 세간을 분별하나니
세간과 종자는 이 식(識)이어서
저 인(因)에 의지해서 생기나니라.
벽에 의지한 그림 모양과 같아서
사실을 알면 바로 없어지리니
사람이 눈홀림 보는 것 같아
생사(生死)를 본 것 또한 그러하네.
어리석은 사람은 어둠에서
속박과 해탈이란 생각 일으키나니
안과 밖의 가지가지와
모든 법과 인연 그것이었네.
이와 같이 관찰하고 수행하여
고요한 곳에 머무르고
훈습 가운데서 무심(無心)하면
마음이 훈습과 함께 아니하리라.
마음은 차별상(差別相)이 없는데
훈습이 마음에 얽힌 것이니
때[垢]와 같은 훈습이며
의(意)는 식(識)을 따라 난 것이라네.
비단[帛]과 같이 마음도 또한 그러하여
훈습에 의하여 나타나지 않나니
물건 같고 물건 없는것 아니기에
나는 ‘허공 같다’ 말하노라.
아라야인 몸 가운데에는
물건이 있고 없는 것 떠났나니
의식(意識)이 전멸(轉滅)하면
마음이 혼탁한 법을 떠나리라.
일체 법을 깨달았기에
나는 마음 부처라 말하노라.
三세(世)를 끊었으며
유무(有無) 법을 떠났네.
세상 법은 넷이 상응(相應)하며
모든 유(有)는 모두 환(幻) 같나니
이 두 법인 체상(體相)이요
七지(地)는 마음으로 난다네.
딴 지위도 또한 성취(成就)이고
二지(地)와 부처님 지위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와
욕계(欲界)와 열반이여
일체가 마음의 경계요
몸 가운데를 떠나지 않았다
만일 모든 법의 생김을 본다면
이는 미혹인 법을 낸 것이리.
자심(自心)에 미혹임을 깨달으면
이는 모든 법의생(生)함이 아니다
무생은 법의 체상이요
생(生)은 곧 세간에 집착함이네.
모든 상을 환 같이 볼 것이니
법의 체상은 이와 같나니라
자심(自心)에서 허망스리 취함이니
모든 법을 분별하지 말지어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이를 위하여
三승(乘)과 一승을 말했으며
또한 무승(無乘)을 말했노니
모든 성인이란 고요함이라네.
나의 법엔 두 가지 있나니
상법(相法)과 증득함’이다
네 가지 침량(斟量)하는 상(相)으로서
양(量)과 상응(相應)법을 세웠노라.
형체와 모양과 수승함과 종자로서
미혹함을 보게 되어
명자와 행처(行處)를 분별하나
성행(聖行)은 실로 청정하다네.
분별과 분별에 의하여
그러므로 분별상이 있나니
분별과 분별을 떠나면
실체이고 성인의 경계라네.
떳떳하고 진실하고 변함 아니어서
자성인 사법이며 실체이다
진여는 심법(心法)을 떠났으며
분별을 멀리 떠났다네.
만일 청정한 법이 없으면
또한 더러움도 없으리니
청정한 마음이 있으므로
더러운 법이 있음을 보나니라.
청정함은 성인의 경계이기에
그러므로 진실인 사법도 없나니
이 모든 법의 체상(體相)이
성인의 경계이라네.
인연으로부터 세간이 생겼나니
모든 분별을 떠나서
환과 꿈과 같다고 하면
법을 보고 해탈 얻으리라.
번뇌의 훈습 가지가지가
마음과 함께 상응하여 나기에
중생은 바깥 경계만을 보고
심법(心法)의 체성을 보지 못하나니라.
심법은 항상 청정하여
미혹으로 생김이 아니다
미혹은 번뇌로부터 일어나나니
그러므로 마음을 보지 못하네.
미혹이 곧 진실이니
딴 곳이란 얻을 수도 없다
음(陰)도 아니요 딴 곳도 아니니
음과 행(行)을 여실임으로 관찰하리
견(見)과 능견상(能見相)을 떠나서
만일 유위(有爲)법을 보고
자심(自心)과 세간을 본다면
저 사람은 능히 상(相)을 떠나리라.
유심(唯心) 법을 보지 말며
외의(外義)를 분별하지 말고
진여관(眞如觀)에 머물러서
마음의 경계를 벗어나야 하리.
마음 경계를 벗어나고는
모든 고요함도 멀리 떠나서
수행하여 고요함에 머무르면
수행자의 고요함에 머무름이리라.
마하연[大乘]을 보지 아니해도
저절로 고요하리니
모든 원(願)이 청정함에 의하여
지(智)와 무아(無我)도 고요하리라
응당 마음 경계를 관찰하며
또한 지혜의 경계도 관찰하고
지혜로서 경계를 관찰하여
상(相) 가운데에 미(迷)하지 아니하리.
마음의 경계는 고체(苦諦)이고
지혜의 경계는 집(集)이며
二체(諦)와 불지(佛地)는
이 반야의 경계라네.
과위 얻음과 열반과
또한 사 성도(聖道)로
일체 법을 깨달아서
청정한 불지(佛智)를 얻으리.
눈[眼]과 색(色)과 밝음과
허공과 심(心)과 의(意)인
이와 같은 것들이 화합하여
식(識)이 아라야로부터 난다네.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와 수(受)여,
이름도 사법도 없는 것이니
인(因)이 없이 분별하는 자여,
비각(非覺)을 취하는 것 같나니라.
의(義) 가운데에도 이름[名] 없으며
이름 가운데에 의(義)도 그러하여
인(因)과 무인(無因)이 생기나니
분별하고 분별하지 말지어다.
일체 법은 진실함 없고
언어도 또한 그러하며
공(空)과 불공(不空)의 의(義)도 그러한데
어리석은 이 법을 보고 옳게 여겨
‘진실에 머무른다’ 괜히 생각하여
사견(邪見)으로 거짓 이름을 말하네.
한 법이 다섯 가지로 되나니
여실히 멀리 떠나야 하네.
다섯 가지는 마(魔)의 법이니
초월하여 유무(有無)를 벗어나야 하네
수행의 경계가 아니요
이는 외도의 법이니라.
유(有)와 사뙨 법은 구하지 않으며
또한 상(相), 견(見), 아(我)도 없어야 하리
짓는 것 스스로 떳떳한 법이라 함은
오직 말로서만 난 것이라네.
실체(實諦)는 말 할 수도 없는데
적멸(寂滅)로서 법을 나타내나니
아라야식(識)에 의지하여
의식(意識)이 능히 굴러나네.
의지함이란 심의(心意)에 의지함이니
능히 전식(轉識)을 내나리라
의지한곳 허망으로 이루었으나
진여는 이 심법(心法)이라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능히 심성(心性)의 자체를 알리라.
떳떳함과 무상(無常)함과
의상(意相)과 사법이며
생(生)과 불생(不生)분별함을
행자(行者)는 응당 취하지 않으리
두 법을 분별하지 말 것이니
식(識)은 아라야로부터 나나니라.
한 의(義)에서 두 마음인 법이
이와 같이 생하는 것 알지 못하고
一二인 법을 취하나니
이는 범부의 경계라네.
말하는 이와 말함과 공(空)도 없나니
마음을 보기 때문인 것이다
자심을 보지 못하였기에
그러므로 견(見)의 그물이 나나니라.
모든 인연은 불생(不生)이며
모든 감관[根]도 이와 같나니
계(界)와 五음도 없으며
탐(貪)도 유위(有爲)도 없다네.
본래 업을 짓는 것도 없고
지음도 유위(有爲)도 아니며
제(除)함도 없고 속박도 없고
속박도 해탈도 없다네.
무기(無記)도 물건도 없고
법도 비법(非法)도 없으며
시간도 열반도 없고
법체도 또한 없다네.
부처도 실체(實諦)도 없으며
인(因)도 과(果)도 또한 없고
전도(顚倒)와 멸(滅)도 없으며
멸(滅)도 생(生)도 또한 없네.
十二지(支)도 또한 없고
변(邊)과 무변(無邊)도 또한 그러하여
모든 사견 떠났나니
그러므로 유심(唯心)이라 말하노라.
번뇌와 업과 몸이며
짓는 자와 과보(果報)여
꿈과 아지랑이와
건달바 성(城)들과 같다네.
심법(心法) 가운데에 머물러서
그리하여 모든 법상(法相)을 내고
심법 가운데에 머무르므로
단(斷)과 상(常)을 보나니라.
열반 가운데에는 음(陰)도 없고
아(我)도 상(相)도 또한 없으며
능히 유심(唯心)에 들어가서
해탈하고 상을 취하질 않는다네.
땅을 보임이 무슨 허물이랴
중생은 바깥을 보기 때문이다
마음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지만
훈습 때문에 나타나질 아니하네
때[垢] 가운데엔 흰 것 보이지 않고
흰것 가운데엔 때가 보이지 않나니
구름이 허공을 덮은 것 같아서
그러므로 마음이 나타나질 않네.
마음은 능히 모든 업 짓고
지(智)는 그 속에서 분별하며
혜(慧)는 능히 고요함 관찰하여
크고 묘한 법체를 얻는다네.
마음은 경계에 의해 얽히고
지(智)는 각관(覺觀)에 의해 나며
고요함인 수승한 경계는
혜가 그 속에서 행하느니라.
심(心)과 의(意)와 의식이
상(相) 가운데에서 분별하나니
분별 없는 체성을 얻어야 하리
二승(乘)은 참 제자(弟子)가 아니라네
고요하고 수승한 사람에겐
부처님의 지혜 청정하네
능히 승의(勝義)를 내고서
이미 모든 행상(行相) 떠났네
‘법체가 있다’ 분별하며
‘타력(他力)의 법은 없다’하여
미혹에서 분별함을 취하나니
타력을 분별하지 말지어다.
모든 대(大)가 색(色) 있는 것 아니며
색(色)있는 것은 모든 대 아니요
꿈과 환과 건달바며
짐승의 물 아닌 것 갈애 함이니라.
나에게 세 가지 지혜 있어서
언어 의지 했음이 성인이란 이름이었네.
마음은 법 가운데에 생김 없나니
그러므로 마음은 보이지 않네.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을
중생은 훈습에 의해 보나니
저 분별하는 상(相)에 의하여
모든 법을 말하였노라.
二승과 상응(相應)함을 떠났고
혜(慧)는 법상(法相) 나타냄 떠났는데
허망스리 법을 취하므로
성문(聲聞)은 법을 본다네.
능히 유심(唯心)에 들어가면
여래 지혜가 청정하리.
진실과 진실 아닌 것이여,
인연으로부터 생긴 법이네.
一과 二는 사견(邪見)이어서
필경 능히 취착하리라
가지가지 모든 인연은
환과 같아 실이 없다네.
이와 같은 모양인 가지가지는
능히 분별 이루지 못하고
번뇌상에 의지하여
모든 속박이 마음으로부터 나네.
분별의 법임을 알지 못하면
타력(他力)도 분별일 것이니
있는 바 분별인 체성은
곧 타력인 법이니라.
가지가지 분별의 견(見)이
타력에서 분별하나니라.
세체(世諦)와 제일의(第一義)와
제三 인(因)없이 생함인 것이다.
분별은 상속(相續)이라 말하고
그를 끊으면 곧 성인의 경계라네
수행자는 하나인 일이건만
오직 마음이 가지가지로 본 것이라네
저 곳에는 마음의 체성 없나니
이와 같은 분별상은
사람의 눈[眼]속에 눈병 같아서
가지가지 색(色)을 분별하네.
눈병은 색(色)과 비색(非色) 아니며
어리석게 타격을 봄도 그러하여
금이 진구(塵垢)를 떠남 같고
물이 진흙을 떠남 같나니라.
허공이 구름을 떠남과 같이
이와 같이 분별을 깨끗이 하리.
성문이 세 가지 있나니
응화(應化)함과 원으로 태어남과
탐(貪), 진(嗔), 치(痴)의 때를 떠난 것이니
성문은 법으로부터 태어나네.
보살도 또한 세 가지이다
여래는 상(相)이 없것만
중생심(衆生心)의 마음속에게
불, 여래 형상을 보인 것이니
분별하면 이와 같은 것은 없고
타력(他力)인 법체로 있나니라.
유무(有無)인 二변(邊)을 보나니
보므로 분별 보게 된다
만일 분별 법이 없으면
타력이 어찌 있으랴.
법체 있는 것 멀리 떠난들
실로 법체는 생함 있나니
분별에 의지하여
타력으로 본 것이라네.
명(名)과 상(相)이 화합함에 의하여
그리하여 분별을 내나니
항상 성취한 바 없고
타력으로 분별이 나나니라.
그때에 알음[知]이 청정하면
제일의(第一義)인 실체일 것이다
분별은 열 가지 있고
타력은 여섯 가지 있나니라.
진여(眞如)는 이 속몸이니
그러므로 다른 모양이 없다.
五법은 이 진실인 법이요
또는 세 가지 실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진여 법을 무너트리지 않으리니
별과 구름의 형상이요
해와 달의 형체와 같으리.
중생의 보는 마음은
보여질 훈습으로 생김이라네
모든 대(大)는 자체 없나니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이 아니었네.
만일 색(色)이 대로부터 생겼다면
모든 대(大)가 모든 대를 생하려니와
이와 같이 대를 생한 것이 아니기에
대 가운데엔 四대(大)가 없나니라.
만일 참으로 四대이라면
이 땅과 물 들에 인한 것이리니
진실과 거짓 이름인 색(色)과
환으로 생기고 지음도 그러함이네.
꿈과 건달바와
짐승의 물로 사랑함이 제五이다
이찬티카도 다섯 가지며,
모든 성(性)도 또한 이와 같네
五승(乘)과 비승(非乘)이며
열반도 여섯 가지이요
음(陰)은 二十四가 있으며
색(色)은 또한 여덟 가지 있네
부처는 二十四가 있으며
불자도 두 가지 있고
도문(度門)은 백 가지이요
성문은 세 가지 있나니라.
제불(諸佛)의 국토는 하나이고
불(佛)도 또한 하나 있다네.
해탈은 세 가지 있고
심려(心慮)는 네 가지 있다네.
아(我)와 무아(無我)는 여섯 가지이요
가지(可知)의 경계는 네 가지라네
모든 인연을 여의고
또한 사견의 허물도 떠나리.
속몸을 알고 때[垢]를 여의면
대승의 위없는 법일 것이다
생(生)과 불생(不生)이
여덟 가지와 아홉 가지 있나니
一시(時)로 증득함과 차제로 함이나
법 세움은 오직 하나이라네
무색(無色)이 여덟 가지 있으며
선(禪)의 차별도 여섯 가지라네.
연각과 불자의
능취(能取)함이 일곱 가지 있다
三세(世)의 법 없는 것이요
떳떳함과 무상(無常)도 또한 그렇다네.
짓는 것과 업과(業果)는
꿈속에 짓는 일과 같다네
불(佛)은 종래로 불생(不生)이며
성문과 불자도 또한 그러하네.
마음은 가견(可見)을 떠났었고
또한 항상 환의 법과 같건만
출태(出胎)하여 법륜(法輪) 굴리며
출가하고 또는 두리타[兜率]에서 나리고
모든 국토에 머무르면서
그 보였지만 생함 아니니
가고 행(行)과 중생과
설법함과 열반인 것이다.
실체(實諦)와 국토와 각(覺)은
인연으로부터 생긴 법이다
세간의 모든 나무숲이며
무아(無我)와 외도행 이라네.
선승(禪乘)과 아라야와
과위[果]증득함과 부사의(不思議)며
달과 별의 종류와
모든 왕(王)과 아수라(阿修羅)며,
야차와 건달바여,
업으로 인하여 발생한다
불가사의변(不可思議變)은
물러나서 훈습의 연(緣)에 의지하나니라.
변역(變易)을 끊으면
그때 번뇌의 죄는 소멸하리라
일체 모든 보살의
여실히 수행하는 자라면,
재물과 보물과
금, 은과 말과 코끼리와
소와 염소와 종들[奴婢]과
미곡(米穀)과 전택(田宅)을 저축 아니하리.
뚫어진 구멍인 평상에 눕지 않고
진흙으로 땅을 바르지 않으며
금, 은과 적백(赤白)인 구리[銅]와
발우와 모든 그릇을
청정한 행을 닦는 자는
일체를 저축 아니하네
가우세야[諦奢耶]인 명주 의복은
일체 입질 아니하네.
캄발라[欽婆羅]인 가사를
소 똥과 풀의 열매와 잎과
푸르고 붉은 진흙물로
흰색을 물들여 무너뜨려야 하네.
석니(石尼)와 쇠[鐵]와
흰 마뇌와 유리인
이러한 발우는 두도록 하나니
마타량(摩陀量)에 만족함이었네.
옷을 베고 끊기 위하여
네치[四寸]의 칼은 두도록 하나니
칼날은 반달 같이 굽다
기술은 배우지 말아야 하네.
여실히 수행하는 사람은
사고 팔고 하질 아니하고
필요한 일은 백의(白衣)와
우파사카[優婆塞]에게 빌린다네.
항상 모든 감관을 두호하며
여실한 뜻을 알고
수다라(修多羅)를 독송하며
비니(毘尼)를 배울 것이다.
백의(白衣)와 더불어 섞이지 않을 것이니
수행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조용한 곳이나 무덤 사이와
굴속과 나무숲 아래서와
시타림(屍陀林)의 풀 가운데에와
내지 한데[露地]에서
여실한 수행을 하는 사람은
응당 이런 곳에 머물러야 하네.
세 옷[三衣]은 항상 품에 지니고
기외 돈과 재물은 저축 않으며
몸이 의복을 필요할 적에
타인이 스스로 주면 받아주리.
걸식 하려고 출행할 적엔
좌우를 돌아 보지 말고
앞의 六척(尺)의 땅만 보고
태연스럽게 바로 나아가리.
벌이 꽃을 채취함 같이
걸식도 또한 이와 같네
비구와 비구니가
뭇 사람속에서 혼잡한다면
나는 불자에게 말하되
‘이는 나쁜 생활이라’고 하노니
여실히 수행하는 자는
이러한 곳엔 걸식 아니하네.
왕과 소왕(小王)과 왕자(王子)와
대신(大臣)과 장자(長者)에게
음식 구하기 위해서는
일체 가질 아니하리.
죽은 집이나 생가(生家)에서와
친가와 사랑하는 집에서와
비구와 혼잡한 속에서는
수행자는 걸식 아니하리.
절 집에서 연기[烟]가 끊칠새 없이
항상 가지가지 음식을 지으며
짐짓 사람을 위해 지은 것은
수행자는 응당 먹지 않으리.
유무(有無)인 붕당(朋黨)과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인 속박 떠날 것이니
수행자는 세간을 관찰하여
생멸(生滅)의 법 떠나고서
삼매의 힘이 상응(相應)하고
모든 신통 자재하리니
만일 분별 내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진여 법 얻으리라.
미진(微塵)과, 훌륭한 사람으로부터
인연인 가운데에도 분별 말 것이니
모든 인연이 화합함인 것을
수행자는 분별 아니하리.
세간을 분별하는
가지가지가 훈습으로부터 생겼나니
수행자는 여실히 관찰하되
三유(有)가 환과 꿈 같다고 하리.
三유와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인 것 분별 아니하며
유무(有無)의 비방 떠나고
또한 유무의 견(見)도 떠나리.
음식은 약을 먹음과 같나니
몸과 마음은 항상 정직하여
한 마음으로 전일하게
불, 보살을 공경하리.
여실히 수행하는 자는
응당 모든 율(律)의 모양과
수다라경(修多羅經)을 알고
모든 법상(法相)을 간택(簡擇)하리라.
五법의 체성과 마음으로
아상(我相)없는 것을 수행하여
안의 법신과 여러 지위와
불지(佛地)를 청정히 한다네.
너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큰 연꽃이 머무를 것이요
부처님은 큰 자비에서
뜻과 같은 손으로 그 이마 만져주시리.
六도(道)에서 가고 오는
모든 유(有)엔 싫어하는 마음 내고
여실한 행(行)을 발기하여
시타림(屍陀林)속에 들어가네.
해와 달의 형체와
꽃과 바다 모양이며
허공과 불[火]과 가지가지를
수행자는 보는 법이라하여
이와 같은 여러 모양 본다면
외도 법을 취(取)한 것이요
또는 성문의 도(道)와
연각의 경계에 떨어지리라.
이와 같은 것들을 멀리 여의고
고요한 자리에 머무르면
그때엔 부처님의 묘한 광명이
모든 국토를 지나가서
저 보살의 이마를 만져 주리니
이마를 만져주신 묘한 모양은
진여 법을 수순함이니
그때엔 묘한 몸 얻으리라.
인(因)없는 법체 있다하며
단(斷) 상(常)법 떠났다고 하면
유무 법을 비방함이며
이는 중도[中進]를 분별함이니라.
인(因)이 없다고 분별하나니
인이 없는 것은 이 단견(斷見)이다
가지가지 바깥 법을 보나니
이 사람은 중도(中道)를 멸함이다.
모든 법상을 버리지 아니하고
단절(斷絶)상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유무(有無)는 법을 비방함이라하여
이와 같이 중도(中道)를 말하네.
깨달음이란 다만 속마음이요
외법(外法)을 멸함은 아니나니
허망한 분별만 굴리면
곧 이 중도 법이니라.
오직 마음이요 가견(可見)은 없나니
마음 떠나면 경계는 나지 않으리
이것이 곧 중도 법이라고
나와 여러 부처님은 말하노라.
생(生)과 불생(不生)과
유물(有物)과 무물(無物)을 공했으며
모든 법은 자체 없나니
두 법을 분별하지 말지어다.
이 유(有)법을 분별하여
어리석은 이 해탈이라 분별하며
마음의 분별을 지각 않을젠
二취상(取相)을 떠났다고 하네
자심(自心)의 견을 깨달으면
그때엔 두 견(見) 떠나서
여실히 멀리 떠남을 아나니
분별상을 없앤 것은 아니니라.
가견(可見)인 마음을 여실히 알면
그때엔 분별이 남을 알리니
모든 분별이 나지 않으면
이는 진여(眞如)의 마음 떠난 것이라네.
모든 외도의 도의 허물 떠나고서
만일 모든 법 생김 본다면
그는 지자(智者)의 응당 취할 것이라
열반하나 멸함은 아니라네.
이 법을 알면 부처일 것이니
나와 다른 부처님은 말하노라
만일 모든 법을 달리 본다면
이는 외도의 일을 말함이다.
불생(不生)에서 생(生)을 나타내며
불퇴(不退)에서 항상 퇴함을 나타내고
동시에 물속의 달과 같이
만억 국토가 보게 하네.
한 몸과 또한 한량없는 몸에서
불이 타고 비를 퍼부우나
마음과 심체(心體)는 다름 아니니
그러므로 다만 이 마음이라 말하노라.
심중(心中)엔 다만 이 마음이요
마음은 마음 없이 나나니
가지가지 색(色)과 형상을
보는 바도 오직 이 마음이라네.
부처님과 성문의 몸과
벽지불의 몸들과
또한 가지가지 색신(色身)을
다만 이 내심(內心)이라 말하네.
무색계(無色界)의 무색(無色)과
색계(色界)와 그리고 지옥에서
색(色)을 나타냄은 중생 위함이니
다만 이 마음의 인연이었네.
환과 같은 삼매의 법과
몸이 뜻과 같이 태어남과
十지(地)의 마음이 자재함이여,
보살은 전의(轉依)로 그를 얻었다네.
자심에서 명자를 분별함과
희론으로서 흔들리며,
보고 들음에서 지각(覺)이 나나니
어리석은 이는 상(相)에 의해 지각하네.
상(相)은 이 타력(他力)인 체성이요
그는 명자에 의해 분별함이니
분별은 이 모든 상(相)이어서
타력의 법에서 나느니라.
지혜로 모든 법 관찰하면
타력도 상(相)도 없고
필경 성취함도 없으리니
지(智)가 어디 의해서 분별하라
만일 성취한 법이 있다면
유무(有無)법을 떠난 것이다
유무의 체성을 떠났거니
두 체성이 어찌 있으랴.
두 가지 체성을 분별하면
두 가지 체성은 응당 있으리니
분별의 견(見)인 가지가지가
청정하면 성인의 경계라네.
분별은 이 가지가지이고
분별은 이 타력인 것이다
만일 달리 분별한다면
이는 가도의 말에 떨어짐이라네.
이 분별이라고 분별하면
이 인(因)의 체상이 나타날 것이요
분별로서 분별을 말하면
이 인상(因相)이 생기는 것 나타날 것이다.
두 분별을 떠나면
곧 이 법을 성취함이다
국토와 불(佛)의 화신(化身)과
一승(乘)과 또한 三승과
열반과 일체는 공(空)하여
일체 생함을 떠났나니라.
불(佛)은 三十 차별이요
차별도 또한 열 가지 있네
일체 국토와 기세계(器世界)는
중생의 마음에 의함이니
법상을 분별함과 같이
가지가지 법을 나타내 보이었네.
저 법은 가지가지 없으며
법신불과 세간도 그러하네
법신불(法身佛)은 이 참 부처이요
기외는 저에 의한 화현이네.
중생은 자기의 종자로
일체 부처 모양을 보나니
미혹이 얽힌 마음에 의하여
능히 분별을 내나니라.
진(眞)은 분별을 떠나지 아니했고
또한 상(相)에도 떠나지 않아
실체(實體)와 낙(樂) 받는 것이며
화신이 또한 화신 짓나니라.
불(佛)의 덕이 三十六이니
이는 불의 실체이라네
푸르고 붉은 소금과
흰 마뇌와 젖과 석밀(石密)이며
잎과 과일과 꽃 들과
달과 같은 광명이
같음도 다름도 아니어서
물 가운데의 파도와 같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식(識)이
마음과 함께 화합하여
큰 바다가 굴러 변함과 같다
그러므로 파도인 가지가지라네.
아라야도 또한 그러하며
명식(名識)도 또한 이와 같다네
심(心)과 의(意)와 의식(意識)은
외상의(外相義)를 분별함이었네.
八식(識)은 차별상이 없어
능견(能見)과 가견(可見) 아닌 것이
큰 바다의 물과 파도 같아서
차별상이 있지 아니하네.
모든 식(識)은 마음 가운데에
전변(轉變)함을 얻을 수 없나니
심(心)은 능히 모든 업(業)을 지으며
의(意)는 능히 분별한다네
의식은 능히 법을 알며
五식(識)은 허망하게 보나니
푸르고 붉고 흰 가지가지는
중생의 식(識)이 나타나 보인 것이네.
물과 파도의 상대적인 법을
무니(牟尼)께서는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푸르고 붉고 흰 가지가지는
물과 파도속엔 이것이 없나이다
어리석어 모든 상을 보기에
마음 가운데에 굴른다 말함이니
마음 가운데엔 이런 체성이 없으므로
마음 떠나면 바깥 견(見)도 없으리라.
만일 가취(可取)가 있을진대
응당 능취(能取)도 있으리라.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인 것이며
물과 파도가 서로 같음이라 말하네.
중생의 식(識)이 나타나 보인 것은
물과 파도가 서로 같음이니
큰 바다에 물과 파도 이는 것이
춤추듯이 굴르며 나타나네.
근본식(本識)도 이와 같이 굴르는데
무슨 까닭으로 알아 취하지 못하느냐
어리석어서 지혜 없기에
근본식이 바다 물결 같다 하여
물과 파도가 굴르는 상대로서
이런 까닭과 비유를 말했노라.
해가 세상에 떠오르면
평등하게 중생을 비추는 것 같다네
이와 같은 세존의 등불은
어리석은 이 위해 설법 아니했고
진여 법에 머무르나니
무슨 까닭으로 진실 말하지 아니하랴.
만일 실법을 말하면
심중(心中)에 실법(實法) 없으리니
바다 가운데 물과 파도 같으며
거울과 꿈과 같나니라.
만일 자심의 경계라면
평등히 보고 앞 뒤 없거니와
일시(一時)인 경계는 없나니
그러므로 차제로 나느니라.
식(識)은 능히 모든 법을 알며
의(意)는 또한 능히 분별하고
五식(識)은 법을 나타내거니와
고요함은 차제 없나니라.
세간의 그림장이와
그림장이[畵師]의 제자와 같이
나는 묘한 법에 머물러서
진실한 수행자 위해 말하노라.
분별과 분별을 떠났고
이 속몸의 진실한 지혜니
나는 모든 불자에게 말함이요,
어리석은 사람을 취함은 아니네.
또한 환의 가지가지와 같아서
보여진 것 이와 같은 없듯이
가지가지를 말함도 또한 그러하며
말함과 말하지 않음도 또 그러하네.
한 사람 위해 설법함이요
딴 사람 위해 설법 하니함이니
사람의 병이 같지 않으므로
의사(醫師)의 약 처방이 다르듯이
부처님의 중생을 위함도
마음 따라 모든 법 말하고
외법(外法)인 종자에 의하여
현법(現法)을 분별하여 말한다네.
마음이 타력(他力)법에 의하기에
가취(可取)는 이 분별이나니
마음 종자에 의지하여
바깥 경계를 관찰하고 취하나니라.
두 가지로 미혹을 굴리는 것이요
다시 제三의 인(因)이 없나니
미혹이 나지않기 때문이라
어느 법에 의해 나지 않음이랴.
六十, 十八 법이기에
그러므로 유심(唯心)이라 말하노라
자심에서 바깥 법을 보고
저들 보고서 아(我)를 떠나네.
만일 마음의 분별에 들어가면
능히 모든 법상(法相) 떠나리라.
아라야에 의하여
능히 모든 식(識)을 내나니라.
어리석은 이 내신(內身)에 드는 것을
마음이 밖에 드는 것 보인 것이라하고
별과 털바퀴를 취하여
꿈속에서 보는 색(色)과 같다하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가 떳떳하다고
분별함인 이러한 것 없나니
건달바성과 눈홀림과
새 짐승의 물로 사랑함과 같도다.
이와 같이 보는 것 있지 않나니
타력 법도 또한 그러하네.
아(我)와 모든 감관과 형상을
나는 세 가지 마음이라 말하노라
심(心)과 의(意)와 의식(意識)은
자체상을 떠났으며
심(心)과 의(意)와 의식(意識)은
타체상도 떠났다네.
심과 의와 의식은
아(我)도 없고 二체도 없다
五법의 자체상은
이 부처님의 경계라네.
성취하는 상은 세 가지 있지만
한 훈습의 인(因)에 의하나니
채색(彩色)은 한 가지이지만
벽 위에 가지가지 보이는 것 같네.
두 가지 무아(無我)인 마음과
의(意)와 모든 식의 모양과
다섯 가지 법의 체상인
아성(我性=佛性)에는 이러한 것 없다네.
모든 심상(心相)과 식(識)을 떠났고
의(意)의 모양도 떠나서
모든 법체가 이와 같나니
이는 나의 경계라네.
모든 법체를 떠난 것은
이 여래의 체성이다
몸과 입과 의업(意業)이여
그는 백법(白法)을 짓지 못하네.
여래의 체성은 청정하여
모든 수행함 떠났나니
자재하고 청정한 모든 신통과
삼매의 힘으로 장엄 하였네.
가지가지 뜻대로 나는 몸이여,
이는 청정한 여래 성(性)이라네
속몸의 지혜는 때[垢]를 떠나고
모든 인상(因相)도 떠났다네.
八지(地)와 불지(佛地)는
이 여래의 성(性)이며
원행지(遠行地)와 선혜지(善慧地)와
법운지(法雲地)와 불지(佛地)여,
이는 부처의 체성이요
다른 지위는 三승과 섞임이라네
중생 몸의 차별에 의하고
또는 어리석은 모양을 위함이었나니
일곱 가지 지위를 말하였고
그리하여 부처는 심지(心地)를 말하였네
입과 몸과 마음의 모든 장애는
七지(地) 가운데엔 이것이 없나니라.
八지(地) 가운데의 묘한 몸은
꿈에 폭포수 모양인 것 같다네
八지와 五지(地)에서
가지가지 기술을 배우네.
일체 여러 불자(佛子)는
三유(有) 가운데에 왕(王)이 되는데
생(生)과 불생(不生)과
공(空)과 불공(不空)을 분별 아니하네.
실(實)과 불실(不實)이여,
심중(心中)에는 이러한 것 없나니
이는 실(實)이며 이는 실 아니라고
이런 일을 분별 말지어다.
연각과 성문을
불자 아니라고 말하네
유(有)와 무(無)는 진실 아니요
또한 공한 모양도 없다네.
거짓 이름과 진실법은
마음 가운데엔 일체 없다네
세체(世諦)에 의해 법이 있고
제일의에는 모두 없다네.
진실 법과 미혹은 없나니
이는 모두 세체(世諦)법이네
일체 법과 무법(無法)을
나는 거짓 이름이라 말하네
언어와 수용(受用)을
어리석은 이는 진실로 보나니
언어의 법으로부터
경계가 실로 있다는 것이네
언어로부터 생긴 법이요
법은 이와 같은 것 없나니라
벽을 떠나서 그림 없는 것 같고
또한 그림자 본형을 떠남과 같네.
본래 깨끗한 식(識)도 또한 그러한데
물의 파도이기 나타나지 않네
환 같은 마음도 또한 그러하며
의(意)는 교활(狡猾)한 자 같다네.
식(識)이 다섯 가지와 함께 하여
분별하는 견(見) 채색(彩)과 같네
이는 참 법의 훈습이라 하나
있는 바 모여 변화로 되었네.
이는 제불(諸佛)의 근본이요
기외는 응화불(應化佛)이라네
마음이 가견(可見) 가운데에 미했나니
가견(可見)은 마음속엔 없는 것이네.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은
바로 아라야에서 나타난 것이네
심(心)과 의(意)와 의식과
실체와 다섯 가지 법이며
두 가지 무아(無我)가 청정함은
불, 여래의 말씀한 것이네.
허망한 각(覺)의 경계도 아니요
성문도 또한 그러하네
이는 속 몸의 경계이니
불, 여래는 그를 말하네.
길고 짧은 것들이 상대하여
피차가 서로 의지하여 나기에
유(有)는 능히 무(無)를 이루고
무는 능히 유를 이루며
또는 미진(微塵)을 분별하나
색(色)의 자체는 분별 아니하네.
다만 이 마음이라 말하여도
사견(邪見)은 능히 깨끗하지 못하리
이 가운데엔 분별이 공했고
불공(不空)도 또한 이와 같다네.
유무(有無)는 다만 분별인 것이니
말할 법엔 이와 같은 것 없다네
공덕이 미진(微塵)과 합했다 하여
어리석은 이는 색(色)으로 분별하네.
낱낱 미진(微塵)은 없나니
그러므로 이 뜻[義] 없는 것이네
자심에서 형상을 보고
중생은 밖에서 있다고 보네.
밖에는 가견(可見)의 법 없나니
그러므로 이 뜻 없나니라
마음은 털바퀴와 눈홀림과
꿈과 건달바성과 같네.
불 바퀴와 새 짐승의 물로 사랑함은
실로 없는데도 사람은 보나니
상(常)과 무상(無常)과 一과
二와 또한 二아닌 것을
끝없는 허물에 묶인 바로서
어리석은 이는 미혹해서 분별하네.
나는 三승을 말하지 않고
다만 一승을 말한 것은
중생을 포섭하기 위함이니
그러므로 一승을 말했노라.
해탈이 세 가지 있거니와
또한 법무아(法無我)도 말했노라
평등한 지혜와 번뇌는
해탈에 의해서 분별함이네.
또한 물속의 나무가
물결에 표류(漂流)함과 같이
이와 같은 어리석은 성문은
모든 상(相)에 표탕(漂蕩)하기에
그는 구경처(究竟處)가 없으며
또한 환생(還生)하질 아니하네.
적멸(寂滅) 삼매를 얻어서
한량 없는 겁(劫)동안 깨어나지 못하나니
이는 성문의 정(定)이요
나와 보살의 정(定)은 아니니라.
모든 수번뇌(隨煩惱)는 떠났지만
훈습 번뇌에 속박하여
삼매락(樂)의 경계에 취(取)해서
저 무루계(無漏界)에 머무르네.
세간에 술 취(醉)한 사람이
술 기운 없어진 후에 깨어나듯이
저 사람도 그러한 후에사
나의 불법신체를 얻으리.
코끼리가 깊은 진흙에 빠져서
몸이 동서(東西)로 동요하듯이
이와 같은 삼매에 취(取)한
성문도 빠진 것 그와 같다네.
입능가경(入楞伽經) 10 - 총품(總品, 게송) 2
一八, 총 품(總品) (2)
제불(諸佛)의 주지하시는
원력이 청정함에 의하여
직위 받음과 삼매와
공덕과 또한 十지(地)여
그 허공과 토끼뿔이며
또는 돌 계집 아이인 것이니
분별하는 법은 이와 같아서
없는데 명자(名字)를 말함이네.
인훈습종(因熏習種)인 세간의
있지도 없지도 않는 곳에서
능히 보고 해탈 얻으면
법무아(法無我)를 알으리라.
실체(實體)에는 명자를 분별함이요
타체(他體, 依他起性)는 인연으로부터 나나니
나는 이 성취(圓成實性)라고 말하노니
여러 경에서도 항상 이를 말했노라.
자(字), 구(句), 명신(名身) 등인
명신의 수승한 법에서
어리석은 사람의 분별함은
코끼리가 깊은 진흙에 빠짐 같네.
천승(天乘)과 범승(梵乘)과
또한 성문승(聲聞乘)과
여래와 연각인
나는 이러한 승(乘)을 말하였노라.
모든 승(乘)은 다할 수 없나니
마음이 이와 같이 생(生)함이네
마음이 전멸(轉滅)한다면
승(乘)과 승인 자도 없으리라.
심(心)과 분별과 식(識)과
의(意)와 또한 의식(意識)이여
아라야가 셋이 있는데
사유심(思惟心)은 딴 이름이었네
수명(命)과 따뜻함과 식(識)인데서
아라야는 명근(命根)이었네
의(意)와 그리고 의식(意識)은
이 분별의 딴 이름이었네.
심(心)은 몸을 주지하고
의(意)는 항상 모든 법 지각하며
의식은 자심의 경계로서
모든 식(識)과 함께 분별하네.
나는 애착은 어머니요
무명(無名)은 아버지라 말하노니
모든 경계를 알아 깨달으면
그러므로 부처라 말하노라.
모든 사(使)는 이 원가(怨家)이며
뭇 화합은 이 음(陰)이니
상속(相續)하는 자체가 없어서
그를 끊으면 무간(無間)이라 이름하네.
두 아(我)의 번뇌 없어짐과
두 가지 무아(無我)와
불가사의 변(不可思議變)과
생사(生死) 없으면 부처라 이름하네.
의(意)는 상응하는 법체이며
아법(我法)은 이 속몸이니
만일 능히 이와 같이 보면
그는 망각(妄覺)을 따르지 않으리라.
실로 모든 법은 없는데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은
허망한 법에 의지한 것이니
어찌 해탈을 얻으랴.
생멸이 화합한 속박으로
유위(有爲) 법을 본 것이니
二견(見)을 증장하였기에
인연 법을 잃지 아니하네.
파초와 꿈과 환(幻) 등이어서
이 세간은 이와 같다네
오직 한 법만이 진실함이니
열반은 의식(意識)을 떠났다네.
탐심과 진심(嗔心)이 있으며
어리석음과 인(人)이 있고
애착으로부터 음(陰)이 생겼나니
음(陰)과 유(有)는 또한 꿈과 같나니라.
어느 밤에 법을 증득했고
어느 밤엔 멸도[滅]에 들겠다는
이 두 중간에
나는 한 자(字)도 말 아니하였네.
속몸으로 법을 증득했다는
나는 이와 같은 말에 의지하노니
저 부처님과 나의 몸이여,
수승한 법 말한 것 없노라.
실로 신아(神我)인 물건 있다하나
五음(陰)은 저의 모양 떠났네
음(陰)의 체성이 실로 있다지만
저 음 가운데엔 아(我) 없네.
각기 자기 견(見)의 분별로
수번뇌(隨煩惱)와 사(使)가 있나니
세간의 자심(自心)을 얻으면
고통 벗어나 해탈 얻으리라.
모든 인(因)과 인연으로
세간이 이와 같이 생겼나니
이 네 법이 상승함이라
그는 나의 교법에 머무르지 아니하네.
유(有)와 무(無)도 생법(生法)도 아니요
유무(有無)를 떠나 불생(不生)이거니
어리석은 이는 어찌하여
인(因)과 연(緣)으로부터 생겼다 분별하랴.
유무(有無)인 四구(句)를 떠나고서
만일 능히 세간을 본다면
그때엔 심식(心識)을 굴리고
곧 무아(無我) 법을 얻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生)김 아니니
그러므로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
모든 연(緣)이 곧 이 과(果)이니
과(果) 가운데에 유(有)가 생하였네.
과 가운데에 두 가지 생겼기에
과 가운데엔 응당 둘이 있으리라
그러나 둘 가운데에 과 없으며
과 가운데에도 물건 보지 못하네.
관(觀)과 가관(可觀)을 떠나서
만일 유위(有爲)법을 볼진대
마음 떠나면 오직 이 마음이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惟心)이라 말하네.
양(量)은 실체와 형상이
연(緣)을 떠난 실체이어서
구경(究竟)이며 제일 청정함이니
나는 이와 같은 양(量)을 말하노라.
만일 거짓 이름을 아(我)로 여긴다면
실법(實法)을 가히 보지 못하리니
이와 같은 음(陰)과 음의 체성은
거짓 이름이요 진실 아니네.
평등이 네 가지 있나니
상(相)과 인(因)과 생(生)이며
무아(無我)도 또한 평등함이며
넷은 수행자의 법이니라.
일체 견(見)을 전환[轉]하여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이
견(見)도 아니며 생(生)도 아니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惟心)이라 말하노라.
법이 없고 또한 없는 것 아니어서
유무(有無)의 체성을 떠났나니
진여는 마음을 떠났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惟心)이라 말하노라.
진여는 공(空)과 실제(實際)와
열반과 법계(法界)와
뜻대로 나는 몸과 마음이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하노라.
분별이 훈습에 의하여
가지가지가 가지가지를 내며
중생은 마음이 바깥을 보기에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하노라.
가견은 외물(外物)이 없고
마음의 가지가지 견(見)과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을 본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유심이라 말하노라.
성문의 극진한 지혜에서
불, 여래는 낳을 것이다
일체 벽지불은
화합함 없이 생(生)하나니라.
바깥 색상(色相)은 없는 것이요
자심에서 바깥 법 본 것이니
자심을 깨달아야 하는데
어리석은 이는 유위(有爲)를 분별하네.
어리석은 이는 외법(外法)임을 알지 못하고
자심에서 가지가지를 보나니
비유로서 어리석은 사람 막아 말하되
네 가지 법에 집착 했다고 하노라.
인(因)도 없고 분별 없음과
비유와 다섯 가지 논(論)과
자심의 체성과 형상을
능히 알면 슬기로운 것이리.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에 의하면
이는 분별인 상(相)이니
분별에 의지하여
분별이 거기서 나타나네.
낱낱 분별이 화합함은
이 한 종자의 인(因)이다
객(客)이 둘이요, 법도 둘이니
그러므로 사람 마음 나지 않는다네.
분별인 심(心)과 심법(心法)은
三계 가운데에 머물러서
모든 법을 나타냄이니
저 자체는 허망함이라.
인(因)이 나타나는 화합에 의하여
그러므로 十二입(入)이 있나니
인(因)에 의해서 화합을 관찰하는
나는 이러한 법을 말하지 아니하네.
거울속에 물상을 보며
눈병으로 털바퀴 보듯이
이와 같이 훈습하는 마음에 의하여
어리석은 사람 마음에서 본 것이네.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이 함께하여
분별을 내었나니
외도의 분별함과 같은
이러한 바깥 모양은 없나니라.
어리석은 사람이 노끈을 알지 못하고
그를 뱀이라고 하듯이
자심의 의(義)를 알지 못하고
바깥 법을 분별한 것이라네.
노끈은 노끈의 자체에서
一과 二의 자체를 떠났지만
노끈을 분별하기 때문이니
이는 자심(自心)의 과실이네.
어떤 법 어떤 체성에 의지하랴
분별로는 능히 보지 못하리
저(彼)를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모든 법체는 이와 같음이라네.
유(有)에 의하므로 무(無)를 말하고
무에 의하므로 유를 말함이니
그러므로 무를 말할 수 없고
또한 유를 말할 수도 없나니라.
곧 분별과 분별이여
이는 저 법체 아니니라
어찌하여 견(見)은 체성 없느냐
분별을 내었기 때문이네.
색(色)의 자체는 색의 자체 없나니
병(甁)과 모직[氈] 등과 같다
보여진 것은 이 없는 법이니
어찌 분별함 있으랴.
만일 분별이 미혹이라면
유위(有爲)법의 끝없는 데에서이다.
어느 법이 중생을 미(迷)하게 하였는지
무니께서는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모든 법은 법의 체성 없고
오직 이 마음이라 말하노니
자심을 보지 못하고서
분별을 일으킨 것이라네.
만일 분별이 없다면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인
저 법은 딴 체성 없을 것인데
그러나 지혜로는 능히 깨닫지 못하네.
만일 성인이 저 법 있다면
범부의 허망한 저 법 아닐 것이니
만일 성인에게 허망한 저것 있다면
성인과 어리석은 이 다름 없으리.
성인은 미혹이 없나니
마음 청정함을 얻었기 때문이네
어리석은 사람은 신심(信心)이 없기에
그러므로 분별하며 분별하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하여 말하되
허공에서 과일 가지고 오리니
너는 과일 가지고 울지 말라 하거든
아이는 그 가지 가지 과일을 가지듯이
나는 모든 중생에게
가지 가지 과일을 분별하여
탐내도록 가지 가지로 말하였으나
유무(有無)인 붕당(朋黨)을 떠났노라.
만일 본래 법체 없을진대
인(因)도 인을 따름도 아니요
본래 생함 아니면서 처음 생함이나
또한 그 자체는 없는 것이라네.
몸도 없고 또한 생(生)함도 아니며
인연을 떠나 곳도 없나니
생멸인 모든 법체는
인연을 떠나 곳[處]이 없네.
대략 이와 같이 관찰하여
유무(有無)는 딴 곳 아니라 하리
인연으로부터 생긴 법을
지혜 있는 이는 분별 하지 말지어다.
一체 二체라 말함은
외도의 어리석은 말이다
세간은 환과 꿈 같나니
인연으로부터 생함도 아니니라.
언어(言語)의 경계에 의하여
대승 위 없는 법을
나는 요의(了義)에 말했건만
어리석은 이는 깨닫지 못하네.
성문과 외도는
질투에서 설법하기에
뜻[義]엔 서로 합하질 못하나니
망각(妄覺)에 의해 말한 때문이네.
상(相)과 체와 형상(形相)과 명(名)을
이 네가지 법이라하나니
이와 같은 법을 보아서
그러므로 분별을 내나니라.
一과 二와 많음[多]을 분별 함이여,
그는 범천(梵天)의 속박 따름이니
해와 달과 모든 하늘이라 하는
이러한 견(見)은 나의 제자 아니네.
성인은 정법(正法)을 보고
여실한 수행으로써
능히 허망한 상(相)을 굴리고
또한 거래(去來)를 떠났네.
이는 해탈의 인(因)이며
내가 제자에게 가르침이니
유무법을 떠났고
또한 거래상(相)을 떠났네.
가지 가지 색(色)과 식(識)을 굴리고
만일 일체 업을 멸한다면
응당 상(常)과 무상(無常) 아닐 것이요
세간의 생하는 법 없으리라.
굴릴 때에 만일 업이 멸하여
색(色)이 저 곳을 떠나서
유무(有無)의 과실(過失)을 떠났으나
업(業)은 아라야에 머무르네.
색(色)은 멸하는 체상이요
식(識) 가운데에 유(有)도 또한 그러하며
색과 식이 함께 화합하여
모든 업(業) 읽지 아니하네.
만일 저와 함께 화합하였다면
중생이 모든 업 읽으리
만일 화합한 업을 없애면
속박도 열반도 없으리라.
만일 저와 함께 없어진다면
세간 가운데에 나서
색(色)도 또한 함께 화합하여
차별 없는 것 응당 있으리라.
차별 있다 또 차별 없다 함은
다만 이 마음의 분별이다
모든 법의 생멸(生滅)없는 체성은
유무인 붕당을 떠났다네.
거짓 이름과 인연 법은
번갈아 서로 차별 없나니
색(色) 가운데의 무상(無常)이
번갈아 서로 모든 법 낸다네.
피차(彼此)인 상(相) 떠남이란
분별로서 알지 못하리라
있는 것 없거니, 무엇 성립하랴
색(色) 가운데의 무상(無常)과 같나니라.
만일 분별을 잘 본다면
곧 타력(他力)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요
이는 타력(他力)의 법에서
또한 분별 일으키지 않으리라.
만일 분별을 없앤다 하면
이는 나의 법을 없앤 것이요
나의 법 가운데에서
또한 유무(有無) 비방함인 것이다.
이 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 있든지
이는 나의 법륜(法輪)을 없애나니
저와 함께 말하지 말지어다.
지혜 있는 이는 함께 말하지 않을 것이니
비구(比丘) 법과 같지는 아니하네
이미 분별을 없었다 하고
허망스리 유무 떠났다고 보나니라.
견(見)은 털바퀴와 환 같고
꿈과 건달바 같으며
또한 견은 아지랑이 같나니
이는 유무를 본 것이니라.
저 사람은 불법 배우는 것 아니니
만일 그를 포섭하려는 사람 있다면
그 사람은 二변(邊)에 떨어질 것이요
또한 딴 사람까지 무너트리리라.
만일 고요한 법 알면
이는 여실한 수행자요
유무 법을 떠나리니
응당 그 사람을 포섭하리.
세간의 어느 곳에서는
금과 은인 모든 보배를 내듯이
가지 가지로 만드는 업 없건만
그러나 중생은 수용하네.
중생의 진여인 체성은
업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 아니요
견(見) 아니므로 업(業)이 없으며
또한 짓는 업으로 생김도 아니네
모든 법이 법의 체성 없음은
성인의 분별함인 것이요
모든 법이 있다 함은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이네.
만일 법이 이와 같음이 없고
어리석은 이의 분별함과 같다면
일체 법은 없으리니
중생도 또한 더러움 없어야 하리.
모든 법은 마음에 의해 있으며
번뇌도 또한 이와 같아서
태어남과 죽음과 모든 세간이
모든 감관[根]을 따라 구르네.
무명(無明)과 애착이 화합하여
그리고 몸을 내었나니
딴 사람의 항상 법이 없다 함은
어리석은 이의 분별인 것이네.
만일 인(人)과 법(法)이 생함 아니라면
수행자는 감관[根]을 보지 않으리
만일 모든 법이 없고도
능히 세간의 인(生死의 인)을 짓는다면
어리석은 사람도 짓는 것 떠나고서
저절로 해탈 얻으리라
범부와 성인이 차별 없거니
유무(有無)가 어찌 성립하랴.
성인은 법체 없나니
三해탈을 닦았기 때문이네
五음과 인(人)과 법은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 있도다.
모든 인연과 감관을
나는 성문을 위해 말했노라
인연은 없고 오직 마음이며
묘한 일과 모든 지위와
속몸의 진여 청정함을
불자를 위해 말하였노라.
미래 세상에
나의 법륜(法輪)을 비방하면서
몸에는 가사를 입고
유무(有無)인 모든 법 말하리라
법의 인연 없는 것이
이 성인의 경계라네.
법체 없다고 분별함은
망각자(妄覺者)의 분별인 것이네
미래 세상에 사람 있으되
찌끼[糠]먹은 어리석은 종류들이
인(因)이 없다는 사견(邪見)으로
세간 사람을 파괴하리라.
미진(微塵)으로부터 세간이 생겼으나
그러나 미진은 인(因)이 없고
아홉 가지 물건은 이 떳떳함이라 하여
사견(邪見)으로 이와 같이 말하네.
물건으로부터 물건 생기고
공덕이 공덕을 내는데
이 법은 법과 다르고
분별하는 이 자체가 옳은 것이다
만일 본래 없다가 처음 생겼다면
세간은 응당 근본이 있으리라 한다.
나는 말하되 세간에는
본제(本際)가 있지 않다 하노라
三계의 모든 중생은
본래 없고 처음 생겼다면
개와 낙타와 나귀는 뿔이 없으나
반드시 응당 <뿔>나는 것은 틀림 없으리라.
눈[眼]은 본래 없다가 처음 생겼으며
색(色)과 식(識)도 또한 그러하네
자리[席]와 갓[冠]과 흰 모직 등도
진흙 덩이 속에도 응당 나리라.
모직 가운데에는 병(甁)이 없고
부들[蒲] 가운데에도 또한 모직 없다
一은 一가운데에 진실함이니
무슨 까닭으로 인(因)이 나지 않음이랴.
곧 목숨이며 곧 몸이니
이는 본래 없다가 처음 생김이라 하네
이것은 그이의 설법이요
나는 모든 법 다르다고 말하노라.
나는 인연 법을 알고서
그런 후에 저의 법 막았노라
저 사견을 막고서
그런 후에야 자법(自法)을 말하노라
그러므로 외도 법을 알고서
그런 후에야 정법(正法)을 말하노라.
제자들이 미혹할까 두려워하여
유무(有無) 법을 세웠노라.
훌륭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이 생겼다 함은
카피라[迦毘羅]의 나쁜 뜻이었네.
그는 모든 제자를 위하여 말하되
모든 공덕은 전변(轉變)하여
실(實)도 아니며 비실(非實)도 아니요
연(緣)으로부터 아니고 곧 연이니
모든 인연이 없기 때문이며
실법(實法)의 불생(不生)임도 없다하네.
유무 법을 떠났으며
인(因)도 연(緣)도 떠나고
생멸(生滅)법을 떠나서
자체인 법이 보여짐도 떠났도다.
세간은 환과 꿈 같아서
모든 인연 법을 떠났나니
인연이라는 소견 세우기에
그러므로 분별 내나니라.
새와 짐승이 물 아지랑이로 사랑함과
건달바와 털바퀴 같아서
유무 법을 떠났으며
인(因)과 연(緣)을 떠났다네.
三유가 인(因) 없음을 보고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도 보리라
어떤 사람 사법(事) 없으리요마는
다만 내심(內心)만이 있을 뿐이니라.
마음의 사법을 멀리 떠난다면
유심(唯心)이라고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바깥의 사법을 관찰한다면
중생은 마음을 일으키리라.
어찌하여 마음이 인(因) 없으리요
유심(唯心)이라 말할 수도 없으리
진여(眞如)와 유심(唯心)만 있다면
어느 사람인들 성법(聖法)없으랴.
유(有)와 비유(非有)라 함이여
그는 나의 법 알지 못함이네
능취(能取)와 가취(可取)의 법으로서
만일 마음이 이와 같이 난다면
이는 세간의 마음이니
응당 유심(唯心)이라 말하지 못하리.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이
만일 꿈속에 생(生)함 같다면
응당 두 가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두 모양 없나니라.
칼이 스스로 베이지 못하며
손가락이 또한 스스로 가르키지 못하듯이
마음도 스스로 보지 못함도
그 일이 또한 이와 같다네.
딴 것도 인연도 아닌데
분별함과 분별하는 사법이며
五법과 두 마음이나
고요함은 이와 같은 것 없다네.
능생(能生)과 생(生)이며
또는 두 가지 법상(法相)에
나의 뜻은 능생(能生) 없고
설법에도 자상(自相)이 없다.
가지 가지 형상 자체에서
만일 분별을 낼진데
허공과 토기 뿔들인
저 체성은 없음 응당 나리로다.
만일 모든 법상이 있을진데
응당 바깥 사법 있으리라
바깥 분별은 없기 때문에
마음 떠나면 다시 법은 없으리.
끝없는 세간에서
바깥 모든 법 없나니라
마음은 생인(生因)이 없으나
그러나 바깥 의(義)를 보나니라.
만일 인(因)이 없이 생장(生長)한다면
토끼 뿔도 또한 응당 나리라
증장하는 인(因)이 없거니
어찌하여 분별을 내랴.
현재에 법 없는 것과 같아서
이와 같이 본래도 또한 없네
자체가 화합한 체성도 없거니
어찌하여 마음이 능히 생하랴.
진여와 공(空)과 실제(實際)와
열반과 법계(法界)와
일체 법 생(生)함 아닌 것이
이 제一의(義)인 법이라네.
범부는 유무에 떨어져서
인과 연을 분별하나니
인(因)은 없어 본래 생함 아니언만
三유(有)를 알지 못하도다.
마음에서 가견(可見)을 본 것은
무시(無始)로 달리 본 것이다
시초도 없고 또한 법도 없거니
어찌하여 견(見)의 다름이 나랴.
만일 물건 없이 능히 생(生)한다면
가난한 사람도 응당 재물 많으리라
어찌하여 물건 없는데도 마음이 생하는지
무니께서는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이 일체 무심(無心)이나
그러나 모든 법 없지 않으며
건달바와 꿈과 환이어서
모든 법은 인(因)이 있지 아니하네.
생함 없고 체상이 없는
공(空)한 법을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화합한 법을 떠난 것이여,
이는 모든 법 보지 않음이다.
그때엔 공(空)이며 무생(無生)이니
나는 법상(法相) 없다고 말하네
꿈과 털바퀴와 환과
건달바와 물론 사랑함이네.
인(因) 없는데 견(見) 있나니
세간 법도 또한 그러하네
이와 같이 하나[一]에 화합하여
가견(可見)을 떠나면 없도다.
외도의 견(見)이 아니니
화합함도 이와 같음 없도다
의(依)가 무인(無因)임을 항복 받으면
무생(無生)을 성취하리라.
만일 능히 무생(無生)을 이루면
나의 법륜(法輪)이 멸하지 않으리
인(因) 없는 모양을 말하면
외도는 두려워함을 내나니라.
어찌하여 어떤 사람 위하랴
어느 곳에서 모든 법 나왔느냐
어느 곳에서 법이 생겼느냐
인(因)이 없이 법 생겼도다.
인 없는 가운데에 나서
두 인(因)이 없나니
만일 능히 지혜 있는 이의 견(見) 있다면
그때엔 사견(邪見)을 굴리리라.
생(生)을 말하여 일체 법이라 하고
무생(無生)을 물건 없음이라 하노니
모든 인연을 관찰하면
그때엔 사견(邪見)을 굴리리라.
법이 있으므로 이름[名] 있고
법이 없으므로 이름 없으며
법이 없으면 생(生)함 아니요
또한 인연을 기다림 아니네.
이름은 법에 의(依)함 아니요
이름은 체성 없는 것 아니네
성문과 벽지불과
외도는 그 경계가 아니라네.
七지(地)에 머무르는 보살이여,
그는 생(生)하는 상이 없나니
인연 법을 굴리기에
그러므로 인(因)의 뜻을 막았느니라.
오직 마음에 의함을 말하나니
그러므로 나는 무생(無生)을 말하노라
인 없이 모든 법 생하였기에
분별과 분별을 떠났다네.
유(有)와 무(無) 세움을 떠났기에
그러므로 나는 무생을 말하노라
마음은 가견(可見)을 떠났으며
또한 두 체성을 떠났다네.
의지(依止)인 법을 굴리기에
그러므로 나는 무생(無生)을 말하노라
바깥 법체를 잃지 않으며
또한 내심(內心)을 취하지 않네.
일체 사견(邪見)을 떠났다니
이것이 무생(無生)인 모양이었네
이와 같은 공(空)과 무상(無相)인
일체를 응당 관찰하리.
생함 아니요, 공(空)하고 공한 법이니
본래 불생(不生)이 이 공(空)인 것이다
모든 인연이 화합하여
생(生)과 멸(滅)이라네.
화합한 법을 떠나서
생도 아니며 멸(滅)도 아니다.
만일 화합법을 떠났다면
또한 실법체(實法體)도 없으리라.
같은 체성과 다른 체성은
외도의 분별함인 것이네
유무(有無)가 생(生)하지 않는 법은
실(實)도 생(生)도 불생(不生)도 아니네.
모든 인연을 떠났다니
생(生)과 불생(不生)은
오직 이 명자이어서
피차 번갈아 서로 연쇄함이었네.
가생(可生)인 체성은 필경 없으며
차별 인연으로 연쇄함이었네
가생(可生)을 떠나서 생(生)함 없나니
이는 외도를 떠난 것이었네.
나는 오직 이 연쇄라고 말하나
그러나 범부는 알지 못하네
그러나 가생(可生)인 법체는
연쇄를 떠나면 다시 차별 없네.
저 사람은 인(因)을 말함 없고
모든 인쇄를 파멸하여 없애나니
등불이 모든 물건 비추어 요달하듯이
연쇄도 또한 응당 비추어 요달하리.
만일 다시 딴 법 있다면
연쇄의 체성 떠나리
체성도 없고 또한 불생(不生)이어서
자성이 허공과 같네.
연쇄 법을 떠났건만
어리석은 이는 달리 분별하나니
이는 생함 아닌
성인의 얻은바 법과 다른 것이네.
저 법은 생(生)이면서 불생(不生)이니
불생(不生)이 무색(無生)인 것이다
만일 모든 세간이
곧 이 인연의 연쇄임을 본다면
세간이 무슨 연쇄이랴
그때엔 마음이 정(定) 얻으리니
무명(無明)과 애착과 업 등은
이는 안의 연쇄 법이니라.
깃발과 진흙덩이와 바퀴 등으로
四대(大)가 바깥 법임을 요달하나니
다른 법체에 의하여
이는 인연으로부터 생(生)김이라 하네.
연쇄의 체성 뿐만 아니라
양(量)과 아함(阿含)에도 머물지 않네
만일 생하는 법이 없을 진대
지혜는 무슨 법으로 인(因)이 되었으랴.
저 법이 번갈아 서로 나나니
이 모든 인연도 아니다
뜨거움, 젖음, 움직임, 굳음을
어리석은 이는 법으로 분별하네.
이 연쇄는 법이 없나니
그러므로 체상이 없다네
의사[醫]가 병에 의하여
병 다스림 말함이 차별 하듯이
병 논함은 차별이 없으련만
병에 따라서 차별하나니
나는 중생의 몸에 의하여
번뇌탁[濁]을 말해 주네.
모든 근기와 힘을 알고서
나는 어리석은 이를 위해 말하노라
번뇌와 근기는 차별하나
나의 교법은 차별 없나니라.
나에게 一승(乘)이 있나니
시원스리 성도(聖道)에 드는 것이었네
병(甁)과 모직과 갓과 뿔이여,
토끼 뿔은 인(因)이 없네.
인(因)이 없는데 저에 의해 생겼나니
저 인(因) 법은 없는 것이었네
저는 인(因)이 없는 법이니
그대는 무(無)를 취하지 말지어다.
인이 있음에 의하므로 없음이요
무(無)에 의하여 상응(相應)이 아니네
유법(有法)은 무(無)에 상대함이니
이는 함께 상대인 법이라네.
만일 조금 있는 법에 의한다면
조금 있는 법을 본 것이다
인(因)없이 소법(少法)을 봄이니
소법은 이 인 없는 것이네.
만일 저가 딴 법에 의함이라면
피차가 번갈아 서로 보리니
이와 같이 무궁(無窮)한 허물일 것이며
소(少)도 또한 소(少)의 체성 없으리라.
색(色)과 나무 등에 의하여
환 같은 가견(可見)법이 있나니
이와 같이 일에 의지하여
사람의 보는 것이 가지 가지 있네.
요술 장이는 색(色) 등이 아니요
나무도 아니고 또한 돌도 아니다
어리석은 이는 환 같은 것 보나니
환인 몸에 의지함인 것이다.
사실인 일에 의하여
만일 작은 일이라도 본다면
견(見)은 두 법 없거니
어찌하여 작은 일 보랴.
분별은 분별 없으나
그러나 분별 없는 것 아니니
만일 분별이 없는 법이라면
속박도 해탈도 없으리라.
분별은 없는 법이기에
그러므로 분별을 내지 않으리니
만일 분별을 내지 않는다면
유심(唯心)이라 말하지 못하리라.
가지 가지 마음이 차별함이요
법 가운데엔 진실 법 없나니
진실한 법이 없기 때문에
해탈도 세간도 없나니라.
외물(外物)은 가히 볼 것 없는데
어리석은 이 괜히 분별하네.
거울 모양에 나타남과 같은 마음에서
훈습으로 마음이 미몰(迷沒)함이네.
일체 법은 생함 아니요
있는 것 아니면서 생함 있는 것 같나니
이는 일체가 유심(唯心)인 것이라
모든 분별을 떠났었네.
어리석은 사람은 법을 말함에
인연이라 하기 지자(智者)아니다
실체는 마음을 떠난 것이요
성인의 마음은 청정함이라네.
상카야[僧法]와 베세시카[毘世師]와
나체인 바라문과
또한 자재천(自在天)은
진실 없고 사견(邪見)에 떨어지네.
체성도 생(生)함도 없고
공(空)과 환 같아 때[垢] 없네.
부처님은 무슨 말 하였으며
부처님은 어느 사람 위해 말함이드냐.
수행이 청정한 사람은
사견인 각관(覺觀)을 떠났다네
여러 부처님은 법대로 말씀하시며
나의 말함도 또한 이와 같노라.
만일 일체가 유심(唯心)이라면
세간은 어느 곳에 머무르고
가고 오는 것은 어떤 법에 의하며
어찌하여 땅 가운데를 보느냐.
새가 허공중에서
바람을 의지하여 가는데
머무르지 않고 관찰하지 않고
땅 위에서 가듯이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은
분별인 바람이 움직임에 의하여
자심(自心) 가운데에서 가고 오는 것이
공중에 나는 새와 같네.
몸과 살림살이와 형기(器)보는 것을
부처는 마음이 이와 같다 말하네
어떤 원인으로 현재 보는 것이
유심(唯心)인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몸과 살림살이와 주지함을
현재 보는 것 훈습에서 난 것이니
수행이 없는 중생은
현재 보고 분별을 낸다네.
경계는 분별하는 체성이며
마음은 경계에 의해 난 것이니
가견(可見)인 마음을 알면
다시 분별을 내지 않으리라.
만일 능히 분별을 보고
각(覺)과 소각(所覺) 떠나면
명(名)과 명(名)이 서로 합하지 않으리니
이는 유위(有爲)법이라 말하리.
이는 오직 이 가각(可覺)이요
명(名)과 명이 서로 혼합 않음이니
만일 사람이 각지(覺知)와 달리한다면
자각(自覺) 타각(他覺) 아니리라.
五법의 실법체와
여덟 가지 식(識)과
두 가지 무아(無我)는
대승에 포섭함이라네.
만일 지(知)와 가지(可知)를 보아서
고요히 세간을 본다면
명(名)과 명 가운데의 분별이
그 때엔 다시 나지 않으리라.
명자 분별을 짓는 것이
저를 보면 다시 나지 않으리.
자심을 보지 못했기에
그러므로 분별이 나나니라.
四음(陰)은 모든 상(相) 없나니
그는 수(數)가 없는 법이다
어찌하여 색(色)이 여러가지이며
四대(大)가 각기 다른 모양이냐.
모든 상(相)의 법을 버리면
모든 대(大)와 대는 없으리라
만일 다른 색상이 있다면
모든 음(陰) 입(入)을 보지 못하리.
경계와 근(根)과 식(識)에 의하여
그러므로 여덟 가지 식(識)이 났나니라
상에 의하면 세 가지 있거니와
고요함은 이와 같음 없다네.
아라야와 의(意)와 아(我)와
아소(我所)와 지혜에는
두 법 취함으로 인한 것이니
그를 알면 법이 곧 법이리.
피차의 법을 떠나서
만일 서로 떠나지 않음 보면
세간은 오직 마음의 분별일 것이다
세존은 저희 위해 말씀하옵소서.
또한 다시 둘인 아(我)와
아소(我所)를 분별하지 아니하고
분별을 증장하지 않으면
또한 의식(意識)의 인(因)도 없으리라.
인(因)과 연(緣)을 떠났으며
물건도 아니고 또 생함도 아니다
분별은 다만 이 마음인 것을
세존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모든 인연을 떠났으며
능견(能見)과 가견(可見) 떠났나니
자심(自心)의 가지 가지를 본다면
허망한 분별임을 가히 보리라.
자심의 견(見)임을 알지 못하고
마음과 다른 뜻임을 깨닫지 못하여
견(見) 없이 사견이 성립하고
만일 지혜에서 보지 못할진대
저것은 무슨 까닭으로 있지 않는가
저 사람은 마음에 유(有)를 취함이었네.
유무(有無)가 아니라 분별하여
그러므로 유(有)인 마음 내지 않으며
유심(惟心)인 견(見)임을 알지 못하기에
그러므로 분별을 내는 것이라네.
분별과 분별이 없음이여,
이는 인(因)이 없다함을 멸한 것이다
네 가지 붕당을 막고서
만일 모든 법이 인(因)이 있다면
이는 명자상(名字相)과 다름이라
그 사람은 짓는 것 이루지 못하리라.
그는 응당 다름이 스스로 날 것이요
그렇잖으면 응당 인(因)이 날 것이다
인연이 응당 화합한 것이리니
인연으로 생긴 법 막으리라.
나는 떳떳하다는 허물을 막노니
만일 모든 인연이 무상(無常)하다면
이는 불생(不生) 불멸(不滅)이며
어리석은 이의 무상(無常)한 견(見)일 것이다.
멸상(滅相)인 법은 법 없는 것이니
인(因)을 짓는 것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상(無常)이 유(有)냄을
어찌 사람이 보지 못하랴.
나는 중생을 포섭하는데
계(戒) 지닌 것으로 항복 받으며
지혜로 사견(邪見) 없애고
해탈에 의하여 증장(增長)하네.
일체 세속에서의
외도는 허망한 말을 하고
인과(因果)의 사견에 의하나니
자법(自法) 능히 성립 못하네.
다만 스스로 세우는 법만 이루고
인연과 과(果)를 떠나서
모든 제자들에겐
세속 법을 떠났다 말하네.
유심(惟心)이요, 가견(可見)은 없나니
마음이 두 가지를 나타낸다
가취(可取)와 능취(能取)를 떠났으며
또한 단(斷)과 상(常)을 떠났네.
다만 마음이 움직이고 구르는 것은
모두 세속 법인 것이다
다시 일으키고 굴러 나지 않으면
세간이 자심임을 보리라.
오는 것은 이 일이 생함이요
가는 것은 이 일이 멸함이다
여실히 거래(去來)를 알면
다시 분별을 내지 않으리라.
떳떳함과 무상함과 짓는 것이여,
또한 피차를 짓지 아니하도다
이와 같은 일체는
이 모든 세속의 법이라네.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와
축생과 아귀(餓鬼)와 야마(夜摩)에
중생이 저 곳으로 가기에
나는 六도(道)를 말했노라.
상, 중, 하(上中下)의 업인(業因)으로
능히 저 곳에서 나나니
모든 착한 법 잘 두호하면
수승한 곳인 해탈 얻으리.
부처님은 생각 생각이 생멸(生滅)하여
나고 죽고 또 물러가는 것 말하여
비구(比丘) 대중을 위해 말씀하신 것을
무슨 뜻으로 저희 위해 말씀하나이까.
마음이 제二에 이르지 않으면
멸하고 무너져서 계속 않나니
나는 제자를 위하여
생각이 전전(展轉)히 생멸한다 말했노라.
색(色)과 색을 분별로서 있다하여
생하고 멸하고서 곧 마나니
분별하면 곧 인(因)이요
분별을 떠나면 인(因) 없나니라.
내가 염법(念法)을 말함은
저에 의한 것으로 나의 말함 마쳤노니
색상(色相) 취함을 떠나면
생도 멸도 아니라네.
인연은 연(緣)으로부터 생겼으며
무명(無明)과 진여(眞如)등은
두 법에 의해 생긴 것이나
진여에는 이러한 체성 없나니라.
인연이 연(緣)으로부터 생겼나니
만일 그렇다면 딴 법 없을 것이요
떳떳함으로부터 과(果)가 생기고
과(果)는 곧 이 인연일 것이다.
외도와 다름 없고
인과가 서로 혼잡하리니
부처님과 여러 부처님의 말과
큰 무니도 다름 없다네.
이 한 길[一尋]인 몸 가운데에서
고체(苦諦)외 집체(集諦)와
멸체(滅諦)와 도체(道諦)를
나는 여러 제자 위해 말했노라.
셋[三自性]을 취하여 진실로 여김은
취(取)와 가취(可取)의 사견(邪見)이니
세간 법과 출세 법을
범부들은 분별하네.
나는 다른[他] 법을 알았기에
그러므로 三법 말하여
저 사견(邪見)을 막기 위함이니
실체라 분별하지 말지어다.
말해 본들 고정한 법 없고
또한 다시 마음 생(生)함 없다
진실은 또한 二취(取) 아니니
진여(眞如)엔 두 가지 없는 것이네
무명(無明)과 애착과 업(業)과
식(識) 등이 사견으로부터 나나니
무궁한 허물 짓지 않으면
짓는 가운데에도 유(有) 생하지 않으리.
모든 법 네 가지로 멸한다 함은
지혜 없는 이의 말한바요
두 가지로 생(生)한다 분별함은
물질 있는 것과 물질 없는 것이네.
네 가지 법을 떠나고
또한 네 가지 소견 떠나면
두 가지 분별이 나는 소견도
다시 나질 않으리라.
모든 법은 본래 생(生)함 아닌데
지혜의 차별에서 일어나서
현재 모든 법 나고 있으나
평등하게 모두 분별 말지어다.
원컨대 큰 무니 어른이시여,
저희와 일체를 위하시어
법의 상응(相應)함과 같이
두 가지인 두 견해 떠남을 말씀하소서.
저희는 사견을 떠났으며
기외 여러 보살들도
항상 유무(有無)를 보지 않나니
저 법을 보지 않기 때문이었나이다.
외도와 화합하여 섞임 떠났고
성문과 연각 떠나서
부처님은 성인의 법 증득하시고
저희 위해 말함을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이다.
전도(顚倒)의 인(因)과 연(緣)의 인(因)과
무생(無生)과 일체와
딴 이름인 모든 미혹은
지자(智者)는 멀리 떠날 바이네.
비유컨대 구름, 비, 누각[樓]과
궁각(宮閣)과 무지개와
아지랑이와 털바퀴와 환인
유무(有無)는 마음 따라 나네.
모든 외도는 분별하여
세간이 제 인[自因]으로 생겼다 하나
불생(不生)인 진여법과
실제(實際)와 공(空)이라 하는
이 모든 딴 법의 이름을
없는 물건이라 분별 말 것이요
색(色) 위에서의 가지 가지에도
없는 법이라 분별하지 말지어다.
세간의 손과 손톱으로
자재롭게 능히 물건 부수듯이
이와 같은 일체 법을
없는 법이라 분별 말지어다.
색(色)과 공(空)이 다르지 않음 떠나서
또한 생기는 법체도 없나니라
없다 다르다 분별 아니할 것이니
분별하면 사견에 집착하리라.
분별과 가분별(可分別)은
모든 사상(事相) 취하는 것이요
길고 짧고 모나고 둥근 것들은
분별하는 상(相)에 포섭된 것이라네.
분별은 심(心)의 법이요
가분별(可分別)은 의(意)이니
만일 능히 법과 같이 안다면
능상(能相)과 가상(可相) 떠나니라.
외도는 불생(不生)을 말하며
아(我)와 법(法)을 취하여
이와 같은 상(相)을 분별하나
이 두 견(見)은 차별 없다네.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했느냐
만일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저 사람은 양(量)에 들어가서
능히 나의 설법 알으리라.
견(見)을 인함은 이 침몰(沈沒)한 것이요
무생(無生)은 이 의지함 아니니
이 두 가지 뜻을 알았기에
그러므로 나는 무생(無生)을 말하노라.
모든 법이 생김 없는 것을
무니는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인(因)이 없어 서로 상대함 아니요
법이 섞임도 있지 않나니
인(因)도 생김도 없어서
인(因)의 견(見)인 외도와 다르며
유무(有無)를 떠나 법 없나니
그러므로 유심(唯心)이라 말하였네.
생(生)과 불생(不生)에서
법 떠나면 사견(邪見)이요
인(因)없고 생김 없다 말한데서
유(有)를 말하면 인(因)에 집착함이네.
자연(自然)이요 짓는 자 없나니
짓는 것이라면 이 사견이네
방편과 모든 원(願)등인
이러한 견(見)을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만일 모든 법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三세(世)를 낸 것이오며
가취(可取)와 능취(能取)를 떠나서
생함도 멸함도 아니다면
물건으로부터 딴 물건 보며
저 법에 의해서 마음 나고
모든 법이 변화를 내지 않는다고
어찌하여 저희에게 말씀하셨나이까.
실로 있는데도 알지 못하기에
그러므로 나는 설법 하노라 하여
무니의 여러 법 가운데에서
앞 뒤 말이 상위(相違) 하나이다.
외도의 모든 허물 떠났고
전도(顚倒)의 인(因)도 떠났는데
생(生)과 불생(不生)을
큰 스승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유(有)와 무(無)를 떠나고
인과(因果)를 잃지도 않으며
지위와 차제를
一무상(無相)이라 말씀하셨나이다.
세간이 二변(邊)에 떨어진 것은
모든 견(見)의 미혹 때문이니
생(生)과 무생(無生)등이라 하여
적멸(寂滅)의 인(因)을 알지 못하였네.
나는 三세(世)의 법도 없으며
나는 또한 설법도 아니한다.
둘이 있으면 다 허물 있나니
제불(諸佛)은 둘이 청정하네.
모든 법은 공(空)이요 찰나(刹那)며
체성 없고 생김 아니다.
사뙨 법이 마음을 가리웠다 말하나니
분별하면 여래 아니라네.
생(生)과 불생(不生)을
원컨대 저희 위해 말씀하소서
어찌하여 어떠한 법들이
경계를 떠나서 나리요
색(色)이 구족하여 화합함은
희론으로부터 모인 것이었네.
바깥 색상(色相)을 취하여
분별함으로부터 났나니
저 법을 아는 자라면
이는 여실히 아는 것이네.
성인(聖)의 체성을 수순하여
마음이 다시 나지 않으며
일체 대[大, 四大]를 떠나서
생법(生法)이 상응(相應)하지 않으리.
마음의 허망으로 대(大)를 본 것이니
이와 같이 무생(無生)임을 관찰하여
분별과 가별(可別) 아니할 것이니
지혜 있는 이는 분별 아니하네.
분별에서 분별하는
이 둘은 열반 없다네
무생(無生)법에 서고[立]서
환과 같이 법을 보지 않으리.
환 등의 인(因)으로부터 생겨서
건립한 바 모든 법은 부숴지네
견(見)인 마음은 거울 모양 같고
끝없는 훈습의 인(因)이어서
의(義) 같으면서 의(義) 없나니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하므로 관찰 할지어다.
거울 가운데의 색상(色像)은
一, 二의 모양 떠났듯이
가견(可見)인 무(無)와 비무(非無)의
모든 상(相)도 또한 이와 같다네.
건달바와 환(幻) 등을
인연에 의해 관찰할 것이니
이와 같은 모든 법의 체성은
생(生)이요, 불생(不生) 아닌 법이라네.
분별함에 아(我) 법과 같아서
두 가지 모양이 나타나네
아(我)와 법을 말하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네.
상위(相違)와 무인(無因)과
성문인 나한과
스스로 이룬 이와 부처님의 힘인 것이
이가 다섯 가지의 성문이라네.
시간의 간격과 멸하는 것과
제一과 제一을 떠난 것이
이 네 가지 무상(無常)이니
어리석은 이 지혜 없이 분별하네.
어리석은 이는 二변(邊)인
공덕과 미진(微塵)에 떨어져서
해탈의 인(因)을 알지 못하고
유무(有無) 법에 집착하네.
비유컨대 어리석은 사람이
손가락을 달이라고 하듯이
이와 같이 명자(名字)를 좋아하고
나의 설법을 알지 못하네.
모든 대(大)는 각각 다른 모양이고
색의 체성이 서로 나는 것 없다네
그리고 모든 대(大)는 화합하여
대(大)도 없고 대에 의지함도 없네.
불은 능히 모든 색(色)을 태우며
물은 능히 모든 물건 뭉크러지게 하고
바람은 능히 모든 색 움직이거니
어찌 대(大)의 모양이 나리요.
색음(色陰)과 또한 식(識)이여,
이 법은 둘이요 다섯 없나니
이 모든 음(陰)의 다른 이름은
나는 제석(帝釋)과 같다고 말하노라.
심(心)과 심수(心數)가 차별하여
현재 구르므로 모든 법 나나니
四대(大)는 피차가 다르나
색(色)과 심(心)은 그로부터 의지함 아니네.
푸른 것들에 의해 흰 것 있으며
흰것에 의해 푸른 것들이 있으며
인과(因果)에 의하여
공, 유(空有)와 무(無)가 생긴다네.
능작(能作)과 가작(可作)인 짓는 것과
차고 뜨거운 견(見)들인 견(見)이여,
이와 같은 것들인 일체는
허망한 각(覺)으로는 능히 성립 못하리.
심(心)과 의(意)와 기외 여섯인
모든 식(識)이 함께 화합하여
같음, 다름인 체성 떠났는데
나고 죽음이 허망스리 난다네.
상카야[僧法]와 베세시카[毘世師]와
나체[裸形]인 외도는 자재천(自在天)이라고 하여
유무(有無)인 붕당에 떨어지고
고요한 뜻엔 떠난 것이라네.
형상과 용모가 수승하게 나는 것과
四대(大)로 나는 것 아니라 함은
이 외도의 나는 것 말하는
四대와 四진(塵) 이었네.
그밖에는 날곳 없는 데서
외도는 인(因)이라 분별하고
어리석고 깨닫지 못하여
유무인 붕당에 의지하네.
생(生)이란 공심(共心)과 상응(相應)하고
사(死)는 불공(不共)과 상응하며
청정한 실상 법은
지혜와 함께 상응하여 머무르네.
업[業]과 색상(色相)엔
五음(陰) 경계의 인(因)이요
중생이 인(因)의 체성 없기에
무색계(無色界)에는 머무르지 아니하네.
부처님의 말씀하신 법무아(法無我)여,
무색(無色)은 외도와 같은 것이다
무아(無我)를 말함은 이 단(斷)이니
식(識)이 또한 응당 나지 않으리.
마음이 네 가지 머무름 있는데
무색(無色)엔 어떻게 머무르랴
안과 밖에서 모든 법상(法相)은
식(識)이 능히 행하지 못하네.
허망하게 각(覺)하는 이 유(有)라 계교하여
중음(中陰)에 나며 五음(陰)이 있다 하고
이와 같이 무색(無色)에 나며
유(有)이면서 무색(無色)이라 하네.
자연히 응당 해탈할 것이요
중생과 식(識)이 없다 하나니
이는 외도임이 틀림 없는데도
허망한 각(覺)은 능히 알지 못하네.
만일 저 곳이 무색(無色)이라면
그러므로 무색을 보리니
저 무색은 법을 세운 것 아니며
승(乘)과 무승자(無乘者)도 아니네.
식(識)은 종자로부터 나서
모든 근(根)과 함께 화합하였나니
여덟 가지와 색(色)의 一분은
생각인 시간에도 취하질 못하리.
색(色)이 시간에 머무르지 않으며
근(根)도 근(根)과 함께 머무름 아니니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여
모든 근(根)이 생각과 머무르지 않는다 하노라.
만일 색의 체성을 보지 못한다면
식(識)이 어떻게 분별하리요
만일 지(智)가 나지 않는다면
어찌 세간을 내었으랴.
곧 생길 때에 곧 멸한다고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하지 아니하였네
一시(時)도 또한 생각함 아니건만
허망한 분별로 취한 것이었네.
모든 근(根)과 경계여,
어리석음이요 지자(智者) 아니네
어리석은 이는 이름 듣고 취하지만
성인은 여실히 아느니라.
제六은 의지함 없나니
인(因)을 가히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我)를 잘 알지 못하고서
법의 허물 있는 것 떠나려고 하네.
유무(有無) 법엔 두려워 하거니와
깨달은 이는 실지(實智)도 떠난다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인 아(我)를
어리석은 이는 능히 알지 못하네.
一 가운데에도 시설한 법 있으며
다름[異] 가운데도 또한 이와 같네
한가지인 마음 가운데 一체임을
의식(意識)은 능히 안다네.
만일 시설이 마음이라면
심수(心數)는 명자(名字)일 것이다
어찌하여 능취(能取)를 떠나랴
一과 이(異)를 분별함인 것이네.
같은 인(共因)이 견(見)에 의지하여
업(業)과 생(生)과 작업(作業)등이라 하며
불과 같고 이와 같다는 말은
비슷하고 비슷[相似]한 법이라네.
불은 一시(時)의 순간에도
가소(可燒)와 능소(能燒) 다르듯이
이와 같은 아(我)도 인(因)에 의지하거니
망각(妄覺)인들 어찌 그렇지 않으랴.
생(生)과 또한 불생(不生)이여,
마음은 항상 청정하네
망각(妄覺)한 이의 아(我)를 세우는데에
무슨 까닭으로 비유를 말하지 아니하랴.
식(識)의 주림(稠林)에 미혹하고
진실 법을 떠나서
망각(妄覺)에서 동서(東西)로 헤매나니
신아(神我)를 찾는 것 또한 그러하네.
속몸으로 진실한 행 닦는
아(我)는 청정한 모양이라네
여래장(如來藏)은 부처님의 경계요
망각(妄覺)은 그 경계 아니라네.
가취와 능취(可取能取)와
차별인 五음(陰), 아(我)를
만일 능히 이 모양 알면
그때엔 참 지혜 나리.
외도는 말하기를
의식(意識)과 아라야 장(藏)의 체성은
아(我)와 함께 상응한다고 하나
나의 설법은 그렇지 아니하네.
만일 여실히 법을 알면
실체(實諦)에서 해탈 얻으며
수행하여 도(道)를 보면
번뇌 끊어 청정하리라.
마음 자성은 청정하나니
여래의 청정한 법신(法身)이라네
이 법은 중생에 의함이니
변(邊)과 무변(無邊)을 떠났다네.
금과 또한 금빛과
돌의 성질과 진금(眞金)을
도야(陶冶)하는 사람이 능히 나타내나니
중생도 음(陰)에서 또한 그러하네.
사람도 또 음(陰)도 아니요
불(佛)은 이 무루(無漏)인 지혜니
무루이며 떳떳함인 세존이기에
그러므로 나는 귀의함이라네.
마음 자성은 청정한데
번뇌와 뜻으로 짓는 것이
五음과 함께 상응(相應)하는 것을
부처님[設中勝者]은 말씀하소서.
마음 자정은 청정한 것이요
의(意) 등은 이 인연이다
그가 능히 모든 법을 짓나니
그러므로 저 두 가지 염(染)이라네.
의(意) 등인 객진(客塵)과 번뇌 법과
아(我)의 청정한 그것이
번뇌의 염(染)에 의지했나니
때[垢]가 청정한데에 의지함 같네.
옷이 때[垢]를 떠남 같고
또한 금이 때[垢]를 벗어남 같아서
있으나 가히 볼 수 없나니
나의 허물 떠남도 또한 그러하네.
거문고와 소라와 북의
가지가지 미묘한 소리와 같이
음(陰) 가운데에 아(我)도 또한 그러한데
어리석은 이는 一 이(異)로서 찾으려 하네.
땅 속의 모든 보장(寶藏)과
청정한 물과 같아서
음(陰) 가운데에 아(我)도 또 그러하여
실로 있지만 가히 볼 수 없다네.
심(心)과 심수(心數) 법과 공덕이
음(陰)과 화합하였듯이
음 가운데에 아(我)도 또 그러하여
지혜 없는 이는 능히 보지 못하네.
여인(女人)의 태장(胎藏)과 같아서
비록 있으나 보이지 않듯이
아(我)는 五음 가운데에서
지혜 없으므로 보이지 아니하네.
향기로운 약과 무거운 짐과
불과 섶과 같아서
음(陰) 가운데에 아(我)도 또한 그러하건만
지혜 없이 능히 보이지 아니하네.
일대 모든 법 가운데에
무상(無常)과 공(空)이듯이
음(陰) 가운데에 아(我)도 또 그러하건만
지혜 없어 보이지 않음 있다네.
모든 지위와 자재함과
신통과 지위 받음과
위 없는 묘한 여러 법과
기외 모든 삼매와
또는 모든 수승한 경계여,
만일 음(陰) 가운데에 아(我) 없다면
이 모든 법들은
모두 또한 없어야 하리.
어떤 사람 쳐부수어 말하되
만일 아(我)를 응당 보일 수 있다 하면
지자(智者)는 응당 답해 말하되
너의 마음을 응당 나에게 보이라 하리.
진여(眞如) 아(我)가 없다고 말함은
오직 이 허망한 말이니
비구 업을 짓는 자라면
응당 함께 화합하지 말지어다.
이 사람은 유무(有無)를 세우고
두 붕당(朋黨)에 떨어져서
불법을 파괴함이니
그는 나의 법에 머무르지 아니 하리라.
외도의 허물을 떠나며
무아견(無我見)을 불태우고
나로 하여금 치연(熾然)한 것 보는 것이
겁(劫)이 다할적 불꽃 같게 하리.
석밀(石密)과 포도와
젖과 타락[酪]과 우유, 기름 등인
저 곳에 있는 바 맛은
맛 보지 않는 이는 알지 못하듯이
다섯 가지 가운데에서
五음(陰) 아(我)를 취함도 또 그러하네
어리석은 이는 보지 못하나니
지혜로 보아야 해탈 얻으리.
밝음인 모든 비유로는
심법(心法)을 볼 수 없나니
어느 곳 무슨 인연으로도
화합함인것 볼 수 없네.
모든 법의 다른 체상을
一심(心)으론 능히 취하지 못하네
인(因)도 없고 또 생(生)도 없나니
허망각자(虛妄覺者)의 허물이니라.
진실 수행하는 이는 마음을 볼 것이니
마음 가운데엔 마음 보지 못하네
가견(可見)은 견(見)으로부터 나거니와
능견(能見)은 무슨 인(因)으로 나는 것이랴.
나의 성(性)은 카타야나인데
수타바사[首陀會] 하늘에서 나서
중생 위하여 설법하고
열반 성(城)에 나아 갔노라.
이는 과거의 행하던 길이요
나와 여러 부처님은
三천 수다라(修多羅)에서
열반의 법을 말했노라.
욕계(欲界)와 무색계(無色界)에서
부처님은 그곳에 성불 아니 하시고
색계(色界)중 맨 위의 하늘인
욕계 떠난데서 보리 이루셨네.
경계는 속박의 인(因)이 아니요
경계를 따르는 것이 속박이다
지혜는 번뇌를 끊나니
수행자의 날카로운 칼이라네.
아(我)도 눈홀림도 있으나
법의 유무(有無)는 어떠하느냐
어리석은 이는 이와 같음 보지 않나니
어찌하여 아(我) 있고 없는 것이랴.
지음과 짓지 않음 있기에
인(因) 없이 굴러서 나네
일체 법은 생김 아닌 것을
어리석은 이는 깨닫지 못하네.
모든 인(因)은 능히 생김 아니며
모든 연(緣)도 또한 짓는 것 아니어서
저 둘은 능히 생기지 못하거니
어찌 연(緣)이라고 분별하랴.
선후(先後)와 一시(時)를
망각자(妄覺者)는 인(因)이라 말하며
허공과 병(甁)과 제자(弟子)인
일체 물질이 난다고 하네.
부처님은 유위(有爲)로 된것 아니니
모든 상호(相好)로 장엄한 것은
이는 전륜왕(轉輪王)의 공덕이요
부처님의 얻어진 이름 아니네.
부처님은 이 지혜의 모양이어서
사견(邪見)의 허물 떠났으며
속몸인 이 지혜의 견(見)이요
일체 허물을 떠났도다.
귀 먹고 눈 멀고 벙어리와
늙고 젋은 악(惡)을 지닌 사람이여,
이들 일체 사람들은
범행(梵行)이 없는자라 이름하리.
광대하고 승묘(勝妙)한 몸은
이는 전륜왕의 모양이네
출가한 이는 혹 하나, 둘이고
그외는 방일(放逸)하는 자라네.
비야사가나(毘耶娑迦那)와
또는 이사바(梨沙婆)와
가비라샤카[迦毘羅釋迦]는
내가 열반에 든 후 미래 세상에
응당 이러한 것들이 출세하리라.
내가 멸도한 후 백년에는
비야사 위타(毘耶娑圍陀)와
반다바(般茶婆)와
구라바실라(鳩羅婆失羅)가 있어 날 것이요
그러한 후에는
또 다시 모리(毛釐) 등이 있으리라.
다음에는 모리굴다(毛釐掘多)요
다음엔 무도왕(無道王)이 있을 것이며
다음엔 도검의 난(亂)이 있고
다음은 도검의 말세일 것이다.
다음 말세의 세상에는
법도 없고 수행함도 없으리니
이러한 말세(末世)가 지나면
세간에 바퀴 구르듯이
해와 불이 함께 화합하여
욕계(欲界)를 불태우고서
다시 좋은 세계 이루고
기세간(器世間)이 생기리라.
四성(姓)과 국왕과
모든 선인(仙人)과 법에서의
큰 모임에서 공양 보시하면
그 때엔 법이 도로 본래와 같으리라.
설법은 본래 이와 같나니
장행(長行)과 자주(子注)와
자주(子注)에 또한 중작(重作, 해석)인
가지 가지로 한량없이 말하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는[經] 것이
세상에서 묻히고 없어지므로
진실 법을 알지 못하리니
어떤 것이 시비(是非)이랴.
옷을 법대로 염색하되
다듬이질하고 다림질하여 깨끗히 하고
진흙과 소똥 등으로
괴색(壞色)하여 수용하리.
모든 향으로, 몸을 바르는 옷으로
외도의 모양을 떠난 것은
나의 법륜(法輪)을 유통 함이니
이는 여래의 모양이었네.
거른 물 아니면 마시지 않고
허리 띠와 속옷으로
때[時]를 따라서 걸식(乞食)하되
하천(下賤)한 집은 떠나리.
묘한 하늘에와 인간의
수승한 곳에 태어나서
보배로운 모양 성취하여
천인(天人) 가운데에서 자재하리.
법에 의해 수행하는 자는
하늘과 四천하(天下)에 태어 나는데
많은 시간을 수용하다가
탐심 많음에서 도로 없어지리라.
바른 시대[正時]와 三재와
또한 두 악한 세상이며
나와 기외 바른 시대와
석가의 말세인 시대엔
석종(釋種) 싯달타(悉達他)와
八비(臂)와 자재(自在)와
이와 같은 외도들은
내가 멸도(滅)하면 세상에 나오리라.
이와 같이 내 들었다는 것들은
석가 사자(師子)의 말함이니
일찌기 이와 같은 일이 있었고
비야사(毘耶娑)도 이를 말하나니라.
여덟 팔[八臂]인 나라연(羅羅延)과
마혜수라(摩醯首羅)도
이와 같은 말을 하되
나의 변화로 세간을 만들었다 하리.
나의 어머니 이름은 선재(善才)며
아버지 이름 범천왕(梵天王)이요
나의 성(姓)은 가전연인데
모든 번뇌 떠났노라 하리.
섬바(贍婆) 성(城)에 태어나고
나의 아버지와 조부이신
아버지 이름은 월호(月護)이시니
달 종족[種]으로부터 태어났다 하리.
출가하여 진실 행을 닦았고
천 가지 구절(句)을 말하며
열반에 든다고 수기하고
대혜에게 법륜 굴림 부족하네.
대혜(大慧)는 법승(法勝)에게 주며
법승은 미카리에게 주고
미카는 제자가 없어서
그 다음 때엔 법이 없어지리라 하리.
카샤파[迦葉]와 쿠라쿡찬다[拘留孫]와
카나 카무니[拘那含牟尼]와 나는
모든 번뇌 떠났나니
일체 바른 시대라 이름하네.
저 정법(正法)을 지난 후에는
부처님이 있어 여의(如意)라 이름 하리니
거기에는 정각(正覺)을 이루고
사람을 위해 五법 설하리.
二, 三재가 없는 가운데에는
과거와 미래 세상도 또한 그러하여
여러 부처님이 출세 아니 하시고
바른 시대에 세상에 출현하시네.
유상(有相)을 박탈할 사람 없다
의상(衣裳)을 활절(割截) 아니 하고
납의(衲衣)를 째고 모아서 만들며
공작(孔雀)과 같이 색으로 그리네.
두 치[寸]와 혹은 세 치[寸]로서
얼기설기 납의(衲衣)를 깁을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이 아니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의 탐내고 빼앗김이리.
항상 탐욕의 불을 끄고
지혜 물로 항상 씻고 목욕하며
밤 낮 六시(時) 가운데에
여실히 법을 수행 하리.
쏘는 화살과 돌과 나무는
세력이 다하면 도로 나리며
하나를 놓으면 도로 하나가 나리는 것처럼
선(善)과 불선(不善)도 또 그러하네.
하나 가운데엔 많은 종류 없나니
상(相)은 이와 같음 없기 때문이네
바람이 일체에 불어감 같으며
전지(田地)가 불에 타는것 같으네.
만일 하나가 능히 많음을 짓는다면
일체는 짓는것 없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일체 잃음이리니
이는 망각자(妄覺者)의 법이리라.
등불과 종자와 같을진대
어찌 많음이 상사[相似]하리요
하나가 능히 많음을 내었다면
이는 망각자(妄覺者)의 법이리라.
호마[麻]엔 팥이 나지 않고
나락에는 큰 보리 나지 않으며
작은 보리인들 종자 나지 않으리니
어찌 하나가 많음을 내리요.
파니야[波尼]가 성론(聲論)을 내었고
아차파[阿叉波]의 태백(太白)이며
말세에 범장(梵藏)이 있어서
세속론(世俗論)을 말하리.
가다야나가 경(經)을 지으며
야바가(夜婆伽)도 또한 그러하네
부주가(浮稠迦)의 천문(天文)이여,
이는 다음 말세의 논이라네.
바리(婆梨)가 세복(世福)을 말하기에
세상 사람이 복덕에 의지하여
능히 모든 법을 두호하고
왕 파리(婆離)는 땅을 보시하리.
미가마수라(彌迦摩修羅)와
아서라(阿舒羅) 등은
미혹과 왕론(王論)을 말하고
말세엔 여러 신선 나타나리.
싯달타(悉達他)는 석종(釋種)이요
부단타(浮單陀)는 五각(角)인 자라네
바그발리[口力]와 매드하빈은
내가 멸도한 후 출세하리라.
아시나(阿示那) 삼굴(三掘)과
미카라 조관이었네
내가 아란야(阿蘭若)에 있을 적
범천(梵天)이 나에게 보시하였네.
그대는 당래(當來) 세상에
큰 이진구(離塵垢)라 이름할 것이요
능히 참 해탈 말하리니
이는 무니의 모양이라네.
범천(梵天)이 범중(梵衆)과 함께
모든 하늘 대중으로 더불어
녹피(鹿皮) 등을 나에게 보시하고
도로 자재천(自在天)으로 사라졌네.
여러 섞인 얼기설기인 옷이며
걸식하는 발우를 만들어
제석과 四천왕(天王)은
조용한 곳에서 나에게 보시하였네.
무생(無生)과 또한 인(因)과
생(生)과 불생(不生)을 말하고서
불생(不生)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는 다만 언어를 말함이네.
만일 무명(無明) 등의 인(因)이
능히 모든 마음 내었다면
색(色)이 나지 못했을 때엔
중간이 어디에 머무르랴.
즉시 마음에서 멸하고
다시 딴 마음을 낸다면
색(色)은 한 생각도 머무름 아니거니
무슨 법이 능히 생김을 관찰하랴.
무슨 인연에 의지하였느냐
마음은 이 전도(顚倒)의 인(因)이다
그는 능히 법을 이루지 못하리니
어찌 생멸(生滅)을 알으랴.
수행자가 정(定)에 합하면
금안사나인 체성일 것이니
광음천(光音天) 궁전에는
세간 법이 무너지지 않네.
증득할 바 법에 머무름은
이는 일체 부처님과
여래 등의 지혜이니
비구는 그 법을 증득해야 하리
기외 증득한 바 법이란
그 법은 항상 무너지지 않네.
어찌하여 허망스리 보랴
모든 법은 생각해도 머무르질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생각에도 머무르지 않느냐
건달바와 환(幻)인 색(色)이다
모든 색(色)은 四대(大) 없거니
모든 대(大)는 무슨 소위(所爲)이랴.
무명(無明)으로 있는 마음과
끝없는 세계에의 훈습으로
생멸(生滅)에 의한 화합(和合)이니
망각자(妄覺者)의 분별이었네.
상카야[僧法]가 두 가지 있나니
훌륭함과 또는 전변(轉變)이다
훌륭한 속에 과(果) 있나니
과(果)가 또다시 과를 성취하네.
훌륭함은 대(大)의 체상이니
공덕의 차별을 말하는
인과(因果) 두 가지 법은
전변 가운데엔 없다네.
수경(水鏡)은 청정하여
진토(塵土)가 더럽히지 못하듯이
진여(眞如)는 이와 같이 청정하여
중생에 의지 하였다네.
흥거(興渠)와 파와
여인(女人)의 회태장(懷胎藏)과
소금과 소금 가운데 맛과 같아
종자(種子) 어찌 없으랴.
이체와 불이체라 하는
二체인 두 법 떠났고
유(有) 법과 인연 없음인
유위(有爲)에 없는 것 아니라네.
말[馬]가운데엔 소(牛) 없듯이
음(陰) 가운데 아(我)도 그러하여
유위(有爲), 무위(無爲)라 말하는
이 법은 말할 수 없다네.
악견(惡見)인 양(量)과 아함(阿含)은
사뙨 각(覺)의 구염(垢染)에 의함이네
깨닫지 못하고 아(我) 있다 말함이니
인(因)도 인 떠남도 아니었네.
五음 가운데엔 아(我) 없나니
아(我)를 취함은 과실이다
같음과 다름 가운데서
망각자(妄覺者)는 깨닫지 못하네.
수경(水鏡)과 눈[眼] 가운데서
거울속의 모양 보는 것 같아서
一과 이(異) 멀리 떠났나니
음(陰) 가운데 아(我)도 또 그러하네.
가관(可觀)과 능관(能觀)과
선도(禪道)로 중생 보는 것인
이 세 법을 관찰하여
사견(邪見) 법을 떠나야 하리.
곧 지견(知見)을 곧 없애면
구멍속에 허공 보는것 같으리라
모든 법의 전변(轉變)하는 상(相)을
어리석은 사람은 괜히 분별하네.
열반은 유무를 떠났나니
여실(如實) 견(見)인 곳에 머물러서
생멸 법을 멀리 떠나고
또 유무(有無)의 체성도 떠나리.
능견(能見)과 가견(可見)을 떠나며
전변하는 법을 관찰하고
외도의 말을 떠나며
명상(名相)과 형체를 떠나리.
속몸의 사견(邪見)에 의하여
전변하는 법을 관찰하면
모든 하늘과 지옥과
촉감과 핍박과 고뇌이라네.
중음(中陰)의 법은 있지 않거니
어찌 식(識)에 의하여 나리요.
태(胎), 난(卵), 습(濕), 화(化) 등은
중음(中陰) 가운데에 나나니라.
중생의 몸 가지가지에서
응당 가고 오는 것 관찰하여
량(量)과 아함(阿含)이
능히 번뇌 종자 내는 것 떠나리.
모든 외도의 헛된 말을
지혜 있는 자는 취하지 말 것이요
먼저 아(我)를 관찰하고
다음에 인연을 관찰하리.
유(有)를 아지 못하고 유를 말하나니
그러므로 돌계집애[石女兒]가 수승하리
반야(般若)는 육안(肉眼)을 떠났나니
묘한 눈으로 중생을 보리.
유위(有爲)와 음(陰)을 떠나면
묘한 신체인 중생일 것이다
좋고 나쁜 색(色) 가운데에 머물러서
속박을 벗어나 해탈하리.
유위(有爲)에 머무름 묘하게 체득하면
능히 묘한 법신(法身) 보리라
六취(趣) 가운데에 있어서는
망각(妄覺)이요, 그 경계 아니니라.
아(我)는 인도(人道)를 벗어났고
기외 망각자(妄覺者)는 아니며
그리고 아(我)의 마음 생김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이와 같이 나느냐.
강물과 등불과 종자와 같다고
어찌 이와같이 말하지 않느냐
식(識)이 나지 않을 때에는
무명(無明) 등도 있지 아니하네
무명을 떠나면 식(識)이 없거니
어찌 상속하여 나랴.
三세(世)와 또한 무세(無世)와
제五는 가히 말할 수 없네
이는 부처님의 경계요
망각자(妄覺者)가 관찰하는
행(行) 가운데에는 말할 수 없음이니
지혜와 행(行)의 속을 떠났기 때문이네.
모든 행을 취하는 가운데에
지혜는 행의 법 떠났다네
이 법에 의하여 이것이 생겼나니
현재 보인 것이 인(因) 없다네.
모든 인연은 볼 수 없어서
지음 없는 것도 떠났네
바람과 불에 의해 능히 태우나니
바람이 움직임으로 능히 나며
바람이 불을 불어 움직이고
바람이 도로 불을 능히 없애네.
어리석은 이는 분별하지 못하나니
어찌하여 중생이 생긴 것이냐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말하나
의(依)와 소의(所依)를 떠났네.
어찌하여 저 법이 성립함이냐
바람과 불을 어리석은 이 분별하나니
피차(彼此)의 증장(增長)하는 힘이라
피차의 법은 미치지도 못하네.
어찌하여 불이 생김이냐
말 뿐이요, 뜻[義]은 없는 것이네
중생은 이 누구의 조작이냐고
그를 분별함 불과 같도다.
능히 음입(陰入)의 몸을 지은 것은
의(意) 등의 인연으로 생김이네
떳떳함과 무아(無我)의 뜻[義]이
마음과 함께 항상 굴러 나도다.
두 법은 항상 청정하여
모든 인과(因果) 떠났으며
불이 능히 그를 이루지 못하네
망각자(妄覺者)는 알지 못하네.
마음과 중생과 열반은
자성이 항상 청정하다
끝없는 허물과 더럽힘이나
허공과 같아 차별 없네.
외도의 사견(邪見)인 때[垢]는
백상(白象)의 장성함과 같도다
의(意)와 의식(意識)이 덮임에 의함이니
대(大)들도 능히 청정하네.
저 사람은 여실(如實)을 보나니
보고서 번뇌를 깨트리고
비유 주림(稠林)을 버리며
저 사람은 성인의 경지를 취하나니라.
지(知)와 능지(能知)의 차별을
그는 다른 체성으로 분별하네
어둡고 둔한 사람 깨닫지 못하고
또한 다시 말할 수 없다 말하네.
비유컨대 전단 북[鼓]을
어리석은 사람 딴 말 함과 같나니
전단과 침수(沈水)와 같아서
부처님의 지혜도 또한 그러하네.
어리석은 사람이 깨닫지 못함은
허망한 소견에 의한 때문이다
오후에는 받아 먹지 않으며
발우를 가지고 양(量)에 의해 취하리.
입[口] 등의 모든 허물 떠나서
청정한 먹음 것을 것이니
이것이 법과 같은 행(行)인데도
능히 상응(相應)함 알지 못하도다.
법에 의하여 능히 믿으며
사뙨 행(行)을 분별하지 말지어다
세간의 물건에 집착하지 말고
능히 정의(正義)를 취할지어다.
저 사람은 진금(眞金)을 취함이요
능히 법의 등불 켜는 것이니
유무(有無)의 인연과
사견(邪見) 그물과 분별 떠나리라.
일체 번뇌의 때[垢]의
탐심과 진애(嗔碍)를 떠나면
그때엔 다시 나지 않나니
일체 염(染)이 없기 때문이다.
여래는 손을 펴시고
부처님의 지위를 주시리
외도는 인과(因果)에 미혹하고
기외는 인연에 미혹하네.
인(因)이 없고 물건 있다는 것과
단견(斷見)은 성인(聖)에겐 없다네
수(受)는 과(果)에서 전변(轉變)함이니
식(識)과 의식(意識)이라네.
의(意)는 본식(本識)을 따라 나고
식(識)은 의(意)를 따라 나네
일체 식(識)이 근본 식(識)으로부터
능히 나는 것 바다 물결 같네.
일체 훈습의 인(因)으로부터
인연을 따라 난다네
생각의 차별인 연쇄는
자심을 속박하여 경계를 취하네.
형체 모양과 같아서
의(意)와 눈[眼] 등의 식(識)이 나나니
끝없이 오면서 허물과 속박으로
훈습으로 생겨서 경계를 취하네.
밖으로 나타난 심(心)과 모든 법인
외도의 소견 막았네
저에 의해 또한 딴것 생기며
또한 저에 의하여 관(觀)이 생기네.
그러므로 사뙨 소견과
세간과 나고 죽음 생기네
모든 법은 꿈과 환(幻)이며
건달바의 성과 아지랑이와
물 속의 달과 같나니
이는 자심(自心)임을 관찰하리.
행(行)의 차별인 진여(眞如)와
바른 지혜와 환(幻)인 삼매는
수능엄(首楞嚴)의 정(定)과
기외 여러 삼매에 의지하네.
초지(初地)에 들어가서는
모든 신통과 삼매와
지혜와 뜻 같은 몸 얻고
지위를 받아 부처 경지에 들어가네.
그때엔 마음이 생(生)하질 않고
세상의 허망함 보기 때문에
기쁜 지위(歡喜地)와 딴 지위 얻으며
또한 부처님의 지위 얻는다네.
의지(依止)인 몸을 전변[轉]함이
여러 색(色)의 마니(摩尼)와 같고
또한 물속의 달 같아
중생의 사업 지어주네.
유무(有無)인 붕당(朋黨) 떠나며
二와 불(不)二를 떠나고
二승지(乘地)를 벗어나며
제七지(七地)도 뛰어나네.
속몸에서 모든 법 보고
지위마다 그속 청정하여
외도와 바깥 물건 떠나고서
그때엔 대승(大乘)을 말하네.
분별식(分別識)을 굴리고
변역 생멸(變易生滅) 떠나서
토끼뿔과 마니(摩尼) 같다고
해탈 얻은 이는 말하네.
결박에 의해 상응(相應)하듯이
법에 의함도 또한 이와 같네
상응에 의해서 상응하고
딴 것을 분별 말지어다.
안식(眼識)과 업과 수(受)와
무명(無明)과 바른 견해와
눈과 색(色)과 의(意)와
의식(意識)의 염(染) 이와 같다네
(以下는 經家에서 말함)
부처님은 이 묘한 경 설하셨다
거룩하신 대혜 보살과
보살 마하살이며.
라바나 대왕과
숙가 바라나와
응이 등인 나찰과
하늘 용 야차들과
건달바와 아수라와
모든 하늘과 비구, 스님은
크게 기뻐서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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