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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
2011.07.09 00:17

덕숭산 수덕사 이야기 - ③

조회 수 8318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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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출가자의 마음은 물론 결연하다.
자신의 바탕이고 생명자체인 혈연을 끊고, 인간이면 당연시 취급되는 갖가지 욕망까지도 저버린 채 집을 떠나 왔으니 그야말로 못할 일이 무엇이며 걸릴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행자생활이 며칠 지나고 나면 그들은 세속을 떠나 더욱 번민스러운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해 한다.
그리고는 결국 출가한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떠난다는 의미가 아님을 그때서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더욱더 다잡을 계기로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수덕사의 출가자는 이러한 위기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만공탑을 찾지 않았을까?

만공탑은 여느 사찰에서 흔히 보아온 그런 모습이 아니다.
모든 격식을 배제했음에도 스님의 정신을 오릇이 닮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스님은 1871년 3월 17일 전북 태인에서 출생했다.
속명은 도암이었고, 휘는 월면, 만공은 법호다.
어머니가 그를 잉태했을때, 신룡이 구슬을 토하는 꿈을 꾸고 낳았다 하고, 두 살이 되던 해 그아버지의 꿈에 한 노승이 찾아와 “이 얘를 데려다 큰 중을 만들겠다” 하여 보통인물이 아님을 일찌감치 알려놓았다.

그가 13세 되던 해 과연 계룡산 동학사로 들어가 진암이란 스님에게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
그 뒤 만공은 자신의 사상과 생애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한국 선풍의 중흥조 경허선사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서 사미계를 받고 깨침을 얻은 후 1904년 34세때 마침내 경허화상으로부터 전법계를 받고 그의 전법제자가 되었다.
9척장신에 형형한 눈, 그리고 추상같은 도풍으로 승속간 대중들에게 위엄과 법력을 떨쳤던 당대의 기걸승.
그에 대한 일화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청정비구인가 하면, 젊은 여자의 벗은 허벅다리를 베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하여 일곱 여자의 허벅다리를 베고 자기도 했다.
그래서 칠선녀와선이란 문자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세상사가 마음의 놀림에 달려있다는 것을 일찍이 만공은 한 생애를 걸림 없이 호탕하게 살아 나갔던 것이다.
1937년 그러니까 만공의 나이 67세로 접어들었을 때다.
조선총독 남차랑이 각본산 주지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붙였다.
조선불교 진흥책에 관한 견해를 한 마디씩 피력해보라는 회의였다. 이는 다름아닌 대처승제도를 승인하여 한국불교를 왜색하려는 그들의 형식적 모임이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노승의 이에서 벽력같은 사자후가 튀어나온 것은 그때였다.

“당신네들의 사찰령이 시행된 뒤로부터 조선의 중들은 모두 취처육식하는 파계승이 되어 버렸소.
조선의 중들을 이 지겨응로 만들어 놓은 역대 총독들은 모두 무간지옥에 떨어져 고생을 할 것이요.
그러니 이분네들을 건져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들 주지부터가 먼저 계를 지키고 힘써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조선불교의 진흥책이요.”

한 차례의 막힘도 없이 일길해 버린 만공스님의 말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총독은 통역해 줄 것을 명했고, 스님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느낀 다른 주지들에 의해 노장이 망령이 든 것이라는 얼버무림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일제시대 이후 색바래기 시작한 승풍은 승려의 생명선가지 위협하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만공스님의 이러한 우려와 기개가 그래도 명줄이 되어 이어진 것이니 그가 길러낸 수많은 선지식들이 그 역할을 담당해 내었다.
눈푸른 그의 제자들과 스님의 사상은 오늘의 정혜사를 중심으로 승풍진작을 위한 선우도량의 결성에서도 이어져 참으로 반갑다.
출가자는 이렇게 하여 이 곳에서 올곧은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이다.

뚜렷한 족적의 한암 스님은 물론이고 청춘을 불사를 곳의 김일엽스님이 또한 여승들의 스승이 되고 있는 것이다.
수덕사가 이렇듯 한암스님과 지어놓은 인연으로 현재까지도 선우도량과 같은 승풍확립을 위한 계속된 노력을 해나가니 한국불교가 어둡다고만은 할 수 없겠다.
초발신의 출가자는 만공탑에 쓰인 글귀를 일고서 귀가를 서두른다.

다음번 출가를 준비하기 위하여.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나니 뜻은 나를 찾아 얻는데 있나니라...”



출처 : http://cafe.naver.com/bujeok
  • profile
    덕광행 김종희 2011.07.11 20:42
    마니주 총무님의 글~ 너무 좋은데요^^ 이번 수덕사 수련회가 더욱 기대됩니다ㅎㅎㅎㅎㅎ
  • ?
    마니주 임경분 2011.07.11 22:06
    저도 읽고 이글 참 좋다 ~~ 생각되어 바로 가져왔다는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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