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승가사 북한산 산행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처음으로 북한산행을 하신다는 법우님도 계셨구요..
승가사는 어머니따라 자주 가던 사찰이라서 자연스럽고 행복해 하신
법우님도 계셨구요..
승가사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중턱으로 기억나는데요..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포대화상 석불상이 뚝하니 지키고 있지요.
우리 연수원장님은 포대화상석상에 젖꼭지도 만지고 배꼽도 만지고 막 그러시더라구요.... 남자인 저도 옆에서 보기 민망했지만..
마음은 순수하신것이니 뭐라 할 수 없지요..(속으로 변태같에 ㅋㅎ)
농담 농담...^^ 도선사에도 경내도량에도 포대화상이 있습니다.거기에도 배를 하도 신도님들이 만져서 배가 맨질맨질 하지요...
포대화상에 관한 백과사전적 의미를 올립니다...
출처는ㅡ문화원형백과사전홈(다음에서 포대화상치면 나오지요.)
포대화상(布袋和尙)은 중국 후량(後梁)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契此)이다.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이었다. 또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녔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 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렸다. 기이한 행적을 수없이 남겼으며 사람들의 길흉화복이나 날씨 등을 예언하여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참 미륵일세. 항상 세인에게 나뉘어 보이건만 아무도 미륵임을 아는 이 없네” 라는 게송을 남기고 반석 위에 단정히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대화상이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임을 알아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에는 포대화상이 재물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있는데 아마도 포대를 메고 다녔던 그의 행적 때문인 듯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현대에 들어 포대화상에 대한 신앙과 함께 기복적인 이유에 의해 포대화상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이 많이 제작되고 있는데 중국적인 영향이다. 조선시대 작품으로 몇 점의 포대화상도가 전하는데 본래 선종화의 하나로 그려졌던 것이며 현대에 만들어지는 중국적인 포대화상과는 차이가 있다.
즐거운 시간이 되셨길 바라면서 내일 화요일 법회때 우리 법우님들 만나뵐께요.. 건강사랑행복기쁨성취보람된 나날 되소서..........
11월24일 청산유수 사랑 해광 234기장 이재형 두손모아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