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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다’이라는 것은 산스크리트어로 ‘프라즈냐 파라미타’를 음사한 것으로 여기서의 반야는 ‘지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지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지혜(知惠)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지혜(知惠)는 차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은 거미줄에 나비가 걸려 있을 때 그 거미줄을 치우고, 나비를 날아가게 해 준다. 이때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는 거미를 나쁜 존재, 나비를 좋은 존재라고 하는 차별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범부의 지혜(知惠)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미도 나비도 모두 열심히 살아가는 생물이다. 거기에는 어떤 차별도 없다. 모든 생명을 무차별, 평등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이른바 깨달음의 눈이고, 그것이 [반야심경]에서 가르치는 지혜(知慧)이다. 이 같이 지혜의 눈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우리들은 항상 차별의 지혜(知惠)로써 사물을 보고 만다. 차별의 눈이 아닌 부처의 지혜(知慧)를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바로 [반야심경]이다.
그러면 바라밀다(파라미타)란 무엇인가? 그것은 \'완성\'을 의미한다. 이것도 물론 일반적인 완성과는 다르다. 즉 그것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완성을 의미한다.완성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이 걸음 자체가 완성인 것이다. 따라서 반야바라밀다라는 것은 \'지혜의 완성\'이다. 그러나 \'완성이 없는 완성\'이다. 우리들이 \'지혜의 완성\'을 향해 계속 전진하는 그 모습이 바로 \'반야바라밀다\'인 것이다.
파라미타를 좀더 확대 해석하면 파람(피안)+이(건너다)+타(일)라고도 할 수 있다. 즉 파라미타를 \'피안으로 건너가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후대에는 일반화되었다. \'피안\'이라는 것은 강의 저편이다. 우리들은 강의 이쪽 편(차안)에 있다. 차안은 번뇌와 미망의 세계이다. 미망의 차안에서 물살이 급한 강을 건너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것이 파라미타의 의미이다. 번뇌의 차안에서 깨달음의 피안으로 건너간다고 하는 이 비유는 불교의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강을 건너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헤엄쳐서 건너간다.\"- 이것이 답이다.
바로 소승불교는 강을 건너갈 때 헤엄을 치면서 건너갔다. 헤엄을 치기 위해서는 맨몸이어야만 한다. 재산을 짊어지고는 불가능하다. 물살이 급하고 강의 폭이 넓기 때문에 일체를 버리고 맨몸이 되지 않으면 헤엄을 칠 수 없다. 물론 처자식과도 함께 건널 수도 없다. 오로지 자신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익사해 버린다. 피안에 건너갈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의 수승한 수행자들 뿐이다. 이처럼 소승불교의 수행방법은 재산이나 권속을 모두 버리고 맨몸이 되는 것이다. 즉\'출가주의\'였다. 출가자만이 도피안할 수 있는 것이 소승불교이다.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의 이런 이기주의를 비난하고 있다.자신 한 사람만의 깨달음을 얻고 그것에 만족하는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공격한다. 그리하여 대승불교는 출가자나 재가자가 모두 함께 피안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어떻게 하면 헤엄쳐 건널 수 없는 재가신자들까지 저 언덕에 갈 수 있을까?\" 라는 이 질문의 해답이 \'프라즈나 파라미타\' 즉 \'지혜로써 저 언덕에 건너간다\'이다. [반야심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지혜로써 저 언덕에 건너가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이것은 간단히 말해 \'건너지 않고 건너가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들은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과 번뇌의 세계인 차안을 차별하여 반드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으로 건너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소승불교인들이 특히 이러한 생각에 집착하고 있지만 [반야심경]은 \'공(空)\'을 시설하여 그러한 차별에 집착하지 말라고 설한다. 원래는 차안도 피안도 없고, 깨달음도 번뇌도 없고 모두 \'공\'한 것인데 우리들이 멋대로 피안이다 차안이다 차별하고 그것에 속박되어 집착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피안도 차안도 없다는 것을 아는 바로 그 순간 \'공\'을 깨달을 수 있고,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게 되는 이것이 바로 \'건너지 않고 건너가는 방법\'이다.

- 이글은 제가 읽던 책에서 해석이 쉽게 잘된 부분을 발췌해서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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