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p Context::set('xe_version', __ZBXE_VERSION__);?>

불교의 이해
2014.09.17 18:05

나란다축제-부처님의 생애

조회 수 8427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나란다축제 대비 <부처님의 생애> 책 요약

 

제 1장 탄생과 성장

 

● 하늘나라 도솔천

- 부처님 먼 전생 연등부처님 시절 수메다(선혜, 무구광)가 연등부처님께 부처가 될 수기를 받음. 

- 깟사빠 부처님 출현시 조띠빨라(호명보살)가 청정한 범행을 닦았고, 선행을 많이 닦아 도솔천에

  태어남.

-조띠빨라는 사천년 동안 천인들을 교화하고 도솔천을 떠나 다음 태어날 곳으로 수메루 남쪽

  잠부따빠로 정함.

-그 곳의 사카족의 까삘라왓투라는 왕국의 숫도다나왕과 마야왕비 태에 들 것이라고 말함.

 

● 거룩한 탄생

-마야왕비의 꿈: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전륜성왕이 될 왕자 잉태라는 해몽)

-왕비는 해산을 위해 친정인 데와다하로 가던 중 기원전 624년 4월8일 룸비니 동산에서 아소까(무하)나무아래에서 왕자 출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왕자 출산 7일만에 마야왕비 죽음->이모 마하빠자빠띠가 키우게 됨

● 아시따 선인의 예언

-선인 아시따는 먼 훗날 ‘세존’이라는 칭호를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를 성취한 성인이 될 것이라 예언

- 농경제에사  잠부나무 아래에서의 선정


● 태자비 야소다라

-태자 나이 19세에 꼴리야 숩빠붓다왕의 딸 야소다라와 결혼

● 호화로운 궁중 생활과 성문 밖의 고통

-동서남북의 왕궁 4문의 출입시 생노병사의 고통과 괴로움을 보고 출가결심

● 새로운 희망과 라훌라의 탄생

-29세에 거리에서 수행자를 만남

-라훌라 탄생(태자에겐 속박이지만 부왕과 아내에겐 새 위안이 될 것이라 생각)


제 2장 구도의 길

 

● 집을 나서다

-새 왕자 탄생 축하연 칠일 째 태자비와 라훌라를 두고 까삘라성의 문턱을 넘음(늙고 병들어 죽어야만 하는 이 고통과 근심을 해결하지 못 한다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BC 595년 2월 8일

● 슬픔에 젖은 까삘라 왓투

● 숫도다나왕의 설득

● 스승을 찾아 웨살리로

-선인 박가와: 힘든 고행이 윤회라는 괴로움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고통의 연속일 뿐

-알라라까라마 선인: 무소유처정

-마가다국을 향해 길을 떠남

● 고행의 길

● 고행을 버리다

-육신을 학대하는 수행은 극심한 고통만 남김. 고행은 깨달음의 방편이 될 수 없음. 애욕과 선하지 못한 것들을 떠나면 즐거움이 일어난다는 깨달음의 입구로 깊은 사유와 선정에 잠김.

 

제 3장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

 

★ 수자따(수자타)의 우유죽

- 수자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에게 최초의 공양을 올릴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꿈을 꿈 - 발우와 함께 우유죽공양 / 최초로 공양을 올린 자가 됨

- 네란자라의 샛강 숩빠띳타따에서 머리, 수염 자르고 몸 씻음

- 보살: 기슭의 나무아래서 우유죽 공양함

- 함께 고행하던 5비구(꼰단냐, 왑빠, 밧디야, 마하나마, 앗사지)가 보살을 타락한 사문이라 비난하고 떠나감


★ 보리수 아래에서

- 솟티야 라는 풀 베는 남자로부터 반석위에 깔 꾸사풀 8다발 받음

- 반석위에 꾸사풀을 깔고 삡팔라나무(보리수)아래에 동쪽을 향해 앉음

- 보살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 맹세함


★ 마라의 유혹과 위협

- 마라(마왕 빠삐요=마왕 파순)가 온갖 장애를 불러 옴

- 마라는 세 딸(땅하, 아라띠, 라가)보내 유혹하지만 실패함.

- 타화자재천의 모든 군대와 무기를 동원하지만 위협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마라에게 연민을 느낌

- 보살이 손가락을 땅에 대자(항마촉지인) 대지가 진동하고 대지의 여신아 나타남

- 여신은 보살이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을 분이라 하고, 마라를 꾸짖음


★ 깨달음

- 선정의 단계: 애욕을 떠난 기쁨/마음이 하나가 되어 삼매에 든 즐거움/ 기쁨에 대한 탐착마저 떨쳐버리고 몸이 가볍고 편안해짐/ 즐거움도 괴로움도 여읜 청정한 상태 도달

=> 보살은 무엇에도 장애받지 않아 자유로워졌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 초저녁에 숙명통을 얻음(마음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중생들의 무수한 과거생애를 아는 것)

- 한밤중에 천안통을 얻음(중생계의 죽고 태어나는 모습을 낱낱이 아는 것)

- 새벽녘에 누진통을 얻음(모든 번민과 고통 더러움이 사라진 것)

- 선정에 든지 7일째 동쪽 하늘에 샛별이 뜨는 것을 보고 완전한 깨달음 얻음

- 29세 출가, 수행 6년째, 35세에 부처가 됨, 기원전 589년 12월 8일


★ 천인들의 축복

- 새로 출현하신 부처님을 찬탄하기위해 천인들이 노래함

 

★ 성도 후 49일

- 성도 후 7일 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보리수 아래서 해탈의 즐거움을 누림

- 7일 째 되는 밤 12연기를 명료하게 사유함

- 12연기: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 두 번째 칠 일: 아자빨라나무 아래에서 법의 즐거움을 누림 => 한 바라문에게 올바른 바라문이 어떤 사람인지 설함

- 네 번째 칠 일: 마라가 다시 나타남 => 열반에 대해서 설함

- 다섯 번째 칠 일: 무짤린다 나무 아래에서 법의 즐거움을 누림 => 이때 큰 비가 내려 무짤린다 용왕이 부처님을 감싸줌/ 무짤린다 용왕에게 법의 깨달음과 행복에 대해 설함

- 여섯 번째 칠 일: 라자야따나나무 아래에서 법의 즐거움 누림 => 땁뿟사, 발리까 두 상인 곡물을 바치며 귀의 함

- 일곱 번째 칠 일: 다시 아자빨라나무 아래서서 보냄 => 범천의 권청이 있었음


★ 범천의 권청

- 부처님은 중생들의 실상을 보고 진리를 설파하려던 마음을 주저하심

- 의도를 알아차린 제석천(대범천/범천)이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해 줄 것을 간절히 간청함

 

제 4장 전법의 길

 

★ 와라나시(바라나시)로 가는 길

- 첫 설법 대상으로 두 스승을 떠 올렸으나 이미 세상을 떠남

- 알라라깔라마: 무소유처정/무소유처삼매, 웃다까라마뿟따: 비상비비상처정/해탈 가르침

- 함께 고행하던 5명의 수행자에게 설법하기위해 와라나시 녹야원으로 향함

- 5비구 만나러 가던 중, 한 수행자 우빠까 만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함

- 활짝 열린 사람에게는 삼라만상 모두가 침된 스승/부처이고,

닫힌 사람에게는 부처가 와도 깨달음은 멀다 (출처: 불교아카데미교재)

 

녹야원의 다섯 수행자

- 와라나시 녹야원 도착/보름달이 환히 비출 때 부처님은 진리의 수레바퀴 굴리기 시작

- 초전법륜에서 중도, 팔정도, 사성제, 8고,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 말씀하심

- 꼰단냐, 왑빠, 밧디야, 마하나마, 앗사지 순으로 깨달음을 얻고 구족계를 받음

- 삼법인, 오온 무아와, 무상에 대해서 설함

- 부처님이 법륜을 굴리신지 5일째 되는 날 여래, 응공, 정변지와 더불어 여섯 아라한이 존재한다고 선언


야사의 귀의

- 녹야원에서 부유한 집안 장자 야사 만남, 설법, 교화, 출가, 여섯 번째 비구가 됨

- 야사의 부모도 오계를 받고 삼보에 귀의/최초의 재가신도/우바새(남), 우바이(여)


법을 전하라

- 야사를 설득하러 온 친구들 설법 듣고 출가(55명)

- 부처님 포함 61명의 아라한이 있게 됨

- 전도선언 : 60명의 비구에게

“나와 그대들은 신과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전법의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겨 길을 떠나라.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가지 말고 혼자서 가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을 잘 설하라.”

- 부처님도 전도를 위해 우루웰라로 가던 중 30명의 청년을 제도

:부부동반 소풍, 그 중 한 명이 기생을 데려옴, 기생이 귀중품 훔쳐서 달아남

“달아난 그 여자를 찾는 일과 자기 자신을 찾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좋다, 그러면 거기 앉으라. 내가 그대들에게 자신을 찾아주겠다.”


깟사빠(가섭) 삼형제의 제도

- 마가다국의 가장 크고 명망 높은 바라문 교단으로 웨다를 읽으며 불을 섬김

- 부처님께서 우루웰라 깟사빠 찾아감/ 독룡항복

- 깟사빠 삼형제와 천명의 제자 부처님께 귀의

: 우루웰라깟사빠와 제자 500병/나디깟사빠와 제자 300명/가야깟사빠와 제자 200명

가야산 꼭대기에서

- 마가다의 수도 라자가하로 향하던 중 가야산 정상에서 불을 섬기던 깟사빠 삼형제 제자들에게 불의 설법을 하심

- 12처(6근, 6경) => 안이비설신의가 탐진치로 불타올라 생노병사의 고가 치솟고 있음을 설하심


중도 : 극단을 배제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삶


12연기: 무명(어리석음)에서부터 생노병사의 괴로움이 발생하는 12단계를 설명한 것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4성제 (고집멸도: 네 가지 거룩한 진리)

-고성제: 현실/삶은 괴로움이라는 통찰의 진리

-집성제: 괴로움의 원인, 즉 무명과 애욕으로 괴로움이 일어남

-멸성제: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이나 해탈의 상태

-도성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열반에 이르는 길, 8정도


8정도: 정견(바르게 보는 것), 정사유(바른 생각), 정어(바른 말), 정업(바른 행동),

                  정명(바른 생활), 정정진(바른 노력), 정념(바른 억념, 바른 관찰), 정정(바른 마음집중)


8고

- 생

- 노

- 병

- 사

- 애별리고(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고통)

- 원증회고(미워하는 이와 만나야하는 고통)

- 구부득고(얻고자 하나 얻어지지 않는 고통)

- 오음성고(오온집착의 쌓임이 모두 고통이라는 것)


삼법인(4법인)

-제행무상: ‘모든 것은 변한다’ 만물유전(모든 것은 끊임없이 흘러가 변한다)의 세계관

-일체개고: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

-제법무아: 고정된 본체와 성질이 없다. 모든 존재는 여러 가지 조건(인연)이 모여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열반적정(4법인): 모든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

=> 영원하고(상), 즐거우며(락), 참다운 나(아)를 회복한, 절대 평화의 청정한 세계(정)

열반4덕 : 상.락.아.정(常.樂.我.淨)


오온(색수상행식) : 색(육체), 수(느낌), 상(생각), 행(의지작용), 식(식별)

     오온은 물질(색, 몸, 지수화풍)과 정신(마음, 수상행식)


12처(6근, 6경)

-일체 모든 것은 인식주관인 6근(안이비설신의)과,

-인식대상인 6경(색성향미촉법-형상,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에 포섭된다는 교리


제5장 교화의 터전 라자가하


죽림정사

1.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후,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 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라자가와로 돌아왔다.
2. 종파와 상관없이 수행자들의 편의를 제공하며, 평화롭고 한적한 랏티와나숲의 사당에 머물렀다.

3. 깟사빠(카사파)

마가다국, 잉가국 백성들에게 오래전부터 존경 받아온 인물 로써, 우루웰라 숲에서살던 사람이라 우루웰라 깟사빠 라 불린다.

불을 섬겨왔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타고 있는 탐욕과 노여움의 불은 모르고 지내왔던 깟사빠는 “오욕의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으면 영원한 안락,즉 열반을 누릴것이다” 는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4. 흰머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깟사빠는 “세존은 저의 스승이시고, 저는 제자입니다” 라며 부처님께 예배하자, 라자가하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인다.

고요해진 대중에게 부처님께서 보시, 계율, 천상에 태어나는 올바른 길 에 대해 설법하시고, 고집멸도 의 진리를 알려주신다.

5. 죽림정사 : 부처님의 교단이 가지게 된 최초의 절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서 일반인과 같이 지내는것은 좋지않으며, 부처님과 비구들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수행하기에 적합하며 울창한 대숲도량을 보시함 - 부처님께서 보시의 복덕을 찬탄하심.


사리뿟따(사리불) 와 마하목갈라나(목련존자)의 귀의


1. 기락가사맛자


리자가하 최대축제로 칠일동안 산꼭대기에서 열리는 제사.

신분과 계급의 장벽을 넘어 춤, 노래, 연극등으로 즐기는 축제.

우빠띳사, 꼴리따 는 산자야 (라하가하의 명사)종파의 제자가 되었지만,

스승에게 만족할수 없었다.

인간의 희노애락에 염증을 느낀 영리한 두 소년은 부처님께 구족계를 받을수

있도록 간청한다.

그들은 어머니 성을 따리 사리뿟따 와 마하목갈라나 로 불렸다.


시기와 질투


죽림정사 에 터전을 둔 부처님 교단이 점점 큰 승가로 변모함.

1) 깟사바 삼형제와 천명의 비구

2) 사리뿟따 와 마하목갈라나 그리고 250 비구

3) 사리뿟다 외삼촌 인 꼿티따 와 동생인 우빠세나, 쭌다 그리고 레와따

4) 소나난다 : 앙가국 수도를 영지로 하사 받을 만큼 학식, 명성 높으며, 마가다국

제일의 바라문 도 부처님께 귀의

5) 꾸따단따 : 카누마따를 영지로 받은 바라문

6) 딸라뿌따 : 예인 마을 촌장

7) 요다지와 : 전사들 마을 촌장

8) 핫타로하 : 코끼리부대 마을 촌장

9) 앗사로하 : 기병마을 촌장

10)아시반다까뿟따 : 창병마을 촌장 등 수많은 마가다국 지도자들이 권위를 버리고 부처님께 귀의함

출가 귀의자가 많아질수록 비난, 원망의 소리가 높아지나 부처님께서 근거 없는 소문은 오래가지 않으며, 길어봐야 이레를 넘기지 않을것이다라고 말씀하심.

나날이 부처님 과 제자들의 지혜와 덕을 칭송 하는이가 많아졌다.

빔비사라왕과 우바새들은 부처님 교단의 일원으로 신행 과 수행을 겸비하며 승가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빨리: 부처님과 신. 구.의 삼업의 경중에대해 대론후 귀의함.

그후 외도들로부터 교단 옹호 하는데 적극 앞장섬.

사리뿟다, 마하목갈라나 : 늦게 출가하고도 교단을 지도, 관리하는 두비구에 대해

동료들의 끊임없는 불만토로함. 두비구는 늘 현명하고 겸손하게 처신함.

“비구들이여, 사리뿟다 와 마하목갈라나를 따르고 가까이하라. 그들은 청정한 삶을
돕는 훌륭한 벗이다. 사리뿟따는 생모와 같고, 마하목갈라나는 양모와 같은 사람이다.“

이렇게 두 비구의 지도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나타날때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하깟사빠의 귀의


삡빨리: 마가다국 마하띳따의 부유한 바라문 아들.

8살부터 네가지 웨다등 다양한 학문 통달. 일찍이 출가수행에 뜻을 둔 청년이

20세 되던해 부모님 뜻에 따라 맛다국 사갈라의 꼬시야 종족 장자의딸

밧다까삘라니와 결혼.

세속생활이 “불난초가” 처럼 여긴 두사람은 결혼후에도 순결을 지키며 출가수행에

같은뜻을 갖고서 라자가하로 가던길에 부처님과 만남.

부처님은 일주일 동안 오직 삡빨리를 위해 식사, 잠자리를 같이하며 법을 설하심.

팔일째 되는날 마하깟사빠는 모든 번뇌, 집착에서 벗어난 아라한이 되었다.


계율의 제정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터전잡고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교단에 들어오면 삼귀의로 맹세함.

부처님께서 승가의 위계와 질서유지 위해 입단절차를 제도화 함.

- 비구가 되기위해서는 구족계를 받도록함.

1) 화상(덕높으신 스님) 선택하여 평생 스승으로 모시며, 세속의 부모자식 같이 서로 보살피고 돌보게 함.

2) 화상은 제자에게 필요한 덕목과 행동 하나하나 지도 하며, 필요한 물품을 마련할수있게 해줌.

3) 제자는 화상을 섬기고 의식주 모두 마음써 불편 없도록 함.

4) 화상을 정해 수학한 이만이 스승인 화상의 보증아래 비구가 될 자격 갖게함.

5) 승가구성원 모두 모인 자리에서 출가하려는 본인과 그의 보증인이 될 화상을 거론 하며 대중의 뜻을 물음.

6) 대중에게 세 번 물어 이의제기가 없을 경우에만 승가가 동의한 것으로 인정 후

비구가 지켜야할 계목을 알려주며 출가허락.

아사리제도 - 화상이 곁에 없는 이들을 가르치고(이주, 사망, 타종교로전향 등 이유)

지도하며, 일상생활에서도 스승과 제자로서 서로 보살피게 한 제도.


사미 - 미성년자의 출가는 허락 되었지만 정식 비구로 인정되지 않았음.

라자가하에서 우빨리 와 16명 청년이 마하목갈라나에게 출가후

어린탓에 추위, 굶주림, 사람들의 모욕을 견디기엔 너무 어리다는것을 느끼신

부처님 께서 만20세 넘는 사람에게만 구족계주심.


초기 출가자에게 기본방침인 4의지 일러주심

1) 걸식 : 걸식생활의 의지

2) 분소의 : 분소의를 입는 생활의 의지

3) 수하좌  : 나무아래서 좌선하는 생활의 의지

4) 부란약 : 동물의 대소변 이용해 진기약을 사용하는 생활의 의지


구족계 항목들이 점점 늘어남

1) 포살 : 보름에 한번씩 승가구성원들이 의무적으로 모여 계경을 낭송하고 잘못을 참회하는 의식

2) 안거 : 우기동안에는 한곳에 거주하며 수행 매진하는 시기

3) 자자 : 안거를 함께한 이들 모두모여 보고, 듣고, 의심한 허물들에 대해 토론하고 참회하는 의식


제6장 고향에서의 전법


부왕의 초대


부처님은 라자가하에 계시면서 고향인 까삘라에 가지 않으셨다.

기다리다지친 숫도다나왕은 아홉 번 사신을 보냈지만 부처님 설법듣고 모두

출가해 버린다. 이에 어린시절 같이놀던 부처님 친구 깔루다이를 특사로 보내어 환궁을 권유케함.

깔루다이 역시 비구가 되었지만 부왕과의 약속을 잊지않고 간절한 소망을 담아 숫도다나왕과 사까족의 기다림을 알림. 깔루다이의 애절하고 진정성있는 소망을 부처님께서 받아서 까삘라 로 향하게 됨.


다시찾은 까삘라왓투


라자가하에서 60유순 거리를 두달만에 까삘라에 도착하심.

사까족 백성들이 왕궁으로 난길을 청소하고 꽃을 뿌리며 환호하지만, 부처님은 성밖 니그로다숲으로 향하심.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고 기다린 왕궁의 숫도다나왕과 대신 모두 황당하였지만 왕은

부처님(아들)을 보기위해 니그로다숲으로 향하심.

아들에게 다가갈수록 숫도다나왕의 가슴에 쌓여있던 원망과 분노가 봄눈녹듯 녹아버리고, 아들에게 예배를 올림.

숫도다나왕이 예배하자, 장로, 수많은 대신과 장수, 백성들도 차례로 절을 하며 부처님께 예를 갖춤.

사까족의 교만을 꺽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나서 부처님께서 갖가지 방편으로 사성제를 설하심.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숫도다나왕은 부처님께 왕궁생활의 화려함과 왕자의 권위를 내세우며 왕궁으로 같이 돌아갈것을 권유하지만 세상의 온갖 영화보다도 자유로운 마음인 현재가 만족스럽다며 거절함.

궁으로 돌아온후, 삿달타가 사까족의 자랑이며, 찰제리 가문의 순수혈통의 긍지임을 인정하고, 숫도다나왕이 신하모두에게 부처님께 귀의하여 가르침을 받들도록 함.

고향에서의 걸식

부처님께서 사문의 전통대로 집집마다 차례로 걸식하는것을 알게된 숫도다나왕은 절망한다.

숫도다나왕이 명예로운 찰제리 가문에서 아들처럼 밥을 얻으러 다닌자는 한사람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자 본인은 부처님 종족이라며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 아님을 말하게된다. 이에 부처님께 다가갈 방법은 정중히 부처님과 비구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는길이라는것을 알게된다.


야소다라와의 재회


궁중에서 공양을 마친후 부모님과 궁중의 여인들을 위해 법을 설하심.- 악을 경계하고 바른법을 닦는 집안에 제수명을 누리지 못하는 자는 없다고 말씀하심.

어머니(이모) 마하빠자빠디 가 예전에는 늘 비단옷을 입었는데 지금의 분소의가 불편하지 않은지 궁금해 하시니 탐욕이 가득했던 과거이야기라며 그어떤옷보다 분소의가 더 좋다고 하심.

부인 야소다라의 슬픔과 원망을 묵묵히 지켜보지만, 부처님 출가후에도 늘 부처님을 믿고 사랑하고 그리워했다는것을 들으시며 부인과의 부부인연은 금생만이 아니라고 말씀하심.


난다의 출가


부처님의 이복동생 (이모 마하빠자빠띠의 아들) 난다의 결혼식날 형님인 부처님뜻을 어기지 못하고 출가함.


라훌라의 출가


아버지인 부처님께 “저에게 물려줄 재산을 주세요” 라며 라훌라는 니그로다숲까지 따라오게 됨. 부처님 제자인 사리뿟따에게 사미로 받아주라고 하시자 보살피고 지도해줄 스승이 됨. 마하목갈라나는 라훌라의 머리깍고 가사 입혀주시며 출가를 도움. 나이어린 손자까지 출가한것을 본 왕이 비통함에 부처님께 애원하게됨 - 미성년자의 출가는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얻도록 함.


왕자들의 출가


사까족 왕자 - 권력과 재산을 버리고 부처님께 귀의

사까족의 교만과 오만 무례함에 참회하며 시중을 들어온 이발사 우빨리 먼저 비구로 만들어 달라고 원함.


1)  아누룻다 - 곱게 자라 유독 게으르고 나태함을 꾸짖음. 그후 지나친 정진으로(피로, 수면부족, 시력잃음) 천인의눈을 얻고 열반의 기쁨을 누림.

2) 밧디야 - 가장 먼저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음

3) 데와닷따

4) 아난다

5) 바구

6) 낌빌라

7) 우빠난다

우빨리 : 매우 진중한 사람으로 계율을 칼날처럼 지킴. 승가의 규율을 제일 잘 알고,  잘지키는

사람이라 칭찬하심.(이발사)

마하나마 : 나중에 사까족 왕이됨.

비구들에게 공양베풀며 약재를 언제든지 허용할만큼 승기를 공경, 봉양 하였음.


제7장 교단의 성장


사왓티의 상인 수닷따

부처님께서 고향방문을 마치시고 시따와나에 머무실때였다.

상인 수닷따가 라자가하의 부잣집인 그의 처남집에 방문했을때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에 초대하기위해 모두가 분주했다.

이에 상인 수닷따는 부처님을 실제 뵐수있다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부처님이

계시는 숲으로 가게된다. 온갖 두려움을 떨친 노고에 보답하듯 부처님께서

진리의 보물을 주시고, 위험과 재난이 도사린 세상에서 행복으로 가는길을

일러주시는 법을 설하신다.

수닷따는 부처님의 넘치는 은혜에 보답할 기회로 정사를 짓기를 간청한다.

부처님께서는 거듭 간청하는 수닷따의 청을 받아들이시며,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곳을 좋아하신다 고 말씀하신다.

수닷따는 사왓티로 돌아가서 부처님께서 머무르기에 알맞은 장소를 물색할일을

사리뿟따와 함께하게된다.


기원정사의 건립


사리뿟따와 함께 여러곳을 물색중 수땃따가 적당한곳을 찾았다.

꼬살라국의 태자인 제따(jeta) 소유의 동산이었다. 하지만 돈이 아쉽지 않은

태자는 자신의 동산을 팔이유가 없었다.

간청하는 수땃따에게 농담으로 동산을 덮을만한 황금을 갖고오면 팔겠다는

말을 건네자 거래가 성사된거라며 분쟁이 시작되었다.

확대된 분쟁은 꼬살라국 최고법정에서 “말에는 신의가 있어야 하며, 누구나

자신이 한말에 책임을 져야한다. 농담이라도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수 없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는 판결을 받고 수땃다는 환호한다.

수땃따가 많은 재물을 낭비하면서까지 동산을 사려는, 그의 순수한 열정과

부처님을 향한 확신과 사랑을 느끼고 제따 태자는 동산을 드리겠다고한다.

단, 동산의 입구에 화려한 문을 세우고 제따와나라마(기원정사)라는 이름을

새길수 있도록 제안한다.

제따태자는 수닷따에게 목재를 지원하는 한편 땅값으로 받으돈으로 동산 입구에

아름다운 정문을 세운다. 오랜 노력 끝에 정사가 완성되고 낙성식에서

이 정사를 부처님께 바치겠다고 말하는 수닷따를 가로막으시며 “ 이 정사를

이미 교단에 들어온, 현재들어오는, 미래에 들어올 사방의 비구들에게

보시하십시오” 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수닷따는 “제따태자께서 보시한 숲에 수닷따가 세운 이 정사를 과거. 현재.

미래의 사방승가에 보시합니다.” 하고 외친다.


* 아나타삔디까 (장자) : 시왓티 사람들은 수닷따를 고독한 이들에게 물자를 공급해주는 사람.

* 기수급고독원(죽림정사) : 제따태자의 숲에 세운 정사


빠세다니왕의 귀의


- 빠세다니왕 : 전통학문과 그리스 문물까지 두루섭렵한 국제적 감각을 지닌 실력자.

                           빔비사라왕의 누이와 결혼

-말라까 : 빠세다니의 여러명의 왕비중에 가장 사랑받는 여인이며, 아름답고 총명함.

                 일찍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며, 틈만나면 부처님을 뵐것을 권유하였다.

                사랑하는 왕비 말라까의 청으로 부처님을 만나기위해 기원정사로 향하게됨.


아무리 존경받는 수행자라해도 나이도 같은또래이고 완전한 지혜 갖춘자라 인정하기가 싫어짐. 이에 부처님께서 미소를 보이시며 “ 대왕이여, 이 세상에 아무리 작아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네가지 있습니다. 왕자. 독사. 불씨. 수행자 이 네가지는 아무리 작아도 가벼이 보아서는 안됩니다.” 라고 말씀하시자, 앞뒤말에서 빈틈을 찾아 볼수 없는 부처님께 빠세나디왕은 예의를 갖추고 물러난다.

어느날, 늦둥이 아들을 잃은 바라문 이 모든 고뇌를 해결해주는분이 기원정사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부처님을 찾아간다.

“ 바라문이여, 사랑스럽고 은혜로운일이 있으면 따라서 근심하고 슬퍼할 일이 생깁니다”는 말씀을 이해할수 없는 바라문이 이상한 소문을 내고, 궁궐까지 퍼지게 된다.

말리까는 빠세나디왕에게 예를 들며 부처님 말씀을 이해시키자 왕이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를 향해 예배하였다.

그후 빠세나디왕은 부처님이 사왓티에 계실때는 늘 찾아뵙는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제자의 예를 다하였다.

꼬살라국의 빠세나디왕은 살라나무숲에 작은 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왕비 말라까와 함께 교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웨살리 재앙의 퇴치

깨달음을 이루신후 4년, 죽림정사에 머무실 때 웨살리에 재앙이 찾아와 가뭄이 계속되고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이 구걸할 기력조차 잃어버리고 역병이 창궐해 사람들은 악취에 시달리며 공포에 떨었다. 릿치위족 사람들은 국사의 아들 마할리를 대표로 왕실의 바라문과 왕자들로 사절단을 구성해 마가다국을 방문해 빔비사라왕과 부처님께 격식을 갖추고 예를 다해 웨살리를 구해 줄 것을 청하게 되고 칠일동안 악취와 질병의 기운을 싯을 듯이 물리치게 되신다.

웨살리의 총사령관 시하 장군이 개종하여 우바새로 살 것을 허락해달라 했지만 부첨님 께서는 “명망있는 사람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하시며 니간타들에게도 평등하게 공양 할 것을 말씀하신다.


사까족과 꼴리야족의 물싸움

깨달음을 이루신후 5년, 로히니 강을 사이에둔 사까족과 꼴리야족의 땅에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다. 농부들은 서로에게 양보해줄 것을 요구하며 서로에게 험한 말을 하며 전쟁도 불사 하겠다며 싸우고 있었다. 마하 깟사빠의 아내 밧다까벨라니도 비구니 승가가 생기자 교단에 합류하게 된다.


왕비 케마의 출가

깨달음을 이루신후 6년,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머무실 때 였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신심이 더욱더 깊어졌다. 빔비사라왕의 권유에도 죽림정사를 찾지 않던 셋째 왕비 케마는 어느날 몰래 부처님을 찾아 뵙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순식간에 늙은 노파가 되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귀의 할 것을 허락해달라 왕께 청하게 되고 수많은 여인들이 출가하게된다.

비자야 비구니는 여러번 정사를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12처를 관찰하고 4성제와 5선근의 능력과 깨달음을 얻는 7가지 방법, 8가지 바른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실천하며 환희심과 안락함이 충망한 나날을 보냈다.


남쪽 아완띠까지

부처님의 출현은 멀리 남쪽 아완띠까지 전해졌다. 출가를 원하는 이들의 사정을 말씀드려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엄한 계율 적용을 적절히 가감하는 청을 하여 수정함으로써 아완띠에도 새로운 승가가 쉽게 정착할수 있게 하셨다.


제8장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


붉은 옷을 입은 찐짜

불교공동체가 확립되고 도처에 정사가 건립되면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여 사왓티에 머무시던 부처님은 가사와 발우만을 들고 삼십삼천 하늘나라로 올라가 어머니 마야부인과 천녀들에게 설법을 설하시며 지내시다 마하목갈라나의 청으로 상깟사 성문밖으로 하강하셔 사리뿟다와 수부띠의 지혜로움을 칭찬하시고 기원정사로 돌아오셨다

외도들(아지위까와 니간타)의 이성 잃은 행동으로 바라문소녀찐짜라는 여인의 술책으로 부터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히하게 되었다.


악기를 연주하듯

짬빠의 부유한 장자의 아들 소나꼴리위사라는 비구는 밤낮으로 수행정진 했으나 결과가 체득되지 않아 회의를 거듭하고 있는 중 부처님께서 악기연주에 비유하여 너무 급하여 초조한 마음을 갖지도 말고 태만으로 흐르지도 말고 “항상 가운데길로 걸어 속세의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꼬삼비 분쟁

꺠달음을 이루신후 8년 베사깔라 동산에서 보내셨다. 당시 왓사에게 정복되어 우데나의 아들 보디가 총독으로 파견되어 있었다. 꼬가나다성 낙성식에 부처님을 초청하고 귀의하여 삼보를 받드는 우바새가 되었다. 어느날 걸식하러 성안으로 들어가던길에 칠순의 노부부를 만나게 되었고 부처님 과거 오백생동안의 부모님 이셨다고 하신다. 노부부에게 “몸이란 무너지고 아프기 마련이다 몸은 아프지만 마음만은 아프지 말자”생각하며 살라 말씀하시며 오온이 뭉쳐진 이몸을 ‘나’라고 생각하거나 나의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몸에 집착하지 않으면 몸이 변하고 무너져도 통곡하거나 탄식하지 않으며 슬픔이나 번민으로 괴로울 필요가 없으니 ‘몸은 아프지만 마음만은 아프지 않다’는 뜻임을 가르치신다


마음밭의 경작

깨달음을 이루신후 11년, 부처님께서 닥카나기리 지역의 에까날라에 머무실 때 바라드와자족 바라문이었던 까씨바라드와자라는 큰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는 파종하는날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마을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나누어 주다가 부처님께 못마땅한 눈길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린후 드시라고 거드름을 피우며 얘기한다. 까씨바라드와자는 부처님의 계송을 듣고 음색을 드렸으나 그 음식은 세상천지 먹을사람이 없다는 모욕을 듣고 근처 도랑에 버렸으나 온통 거품으로 뒤덮이는 것을 보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웨란자에서의 안거

깨달음을 이루신후 12년, 안거 시기가 다가오자 부처님께서는 오백비구와 함께 안거를 청하였던 바라문왕 악기 닷따의 청을 받아들여 웨란자로 향하셨으나 성문을 닫아걸고 누구의 방문도 허락지 않았고 마침 그곳은 기근이 겹쳐 탁발조차 어려웠다. 그때 목동 말 사료 보리라도 공양하시도록 하여 받아 안거를 하며 지냈다. 다가오자 아난다에게 악기닷따 왕에게 작별인사를 전하도록 하고 왕은 부처님께 4개월분의 양식을 공양 할 것을 간청하였으나 부처님께서는 7일분의 양식만을 허락하시자 부처님의 발 앞에 남은 양식을 흩뿌렸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먹어야할 곡식을 땅에 뿌려 밟고 지나가게 하는 것은 보시도 아니고 곡식을 받는것도 아니라고 하시며 게송으로 축원하셨다.


소 치는 다니야

위데하 왕국의 담마꼰다의 다니야라는 사람은 부유한 아들로 태어나 그에게는 많은 황소와 암소 그리고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있어 늘 가진것들에 대해 행복함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다.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슬퍼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슬퍼 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슬픔이 있나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습니다”


행복과 파멸의 문

부처님께서 사왓티 기원정사에 계실 때 한반중이 지나 아름다운 천인이 기원정사를 찾아와서 행복과 파멸에 이르는 문에 관해 설법을 듣게된다.


죽은 아들과 겨자씨

슬픔에 가득찬 여인이 사왓티 거리를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며 사람들에게 애원하며 다닐 때 부처님께서 한번도 죽어나간 사람이 없는 집을 찾아 겨자씨 한줌을 얻어 오면 여인의 말대로 해준다 하셨다. 그러나 아무리 헤매며 다녀도 그런 집은 없었고 쌍둥이를 잃은 여인의 얘기를 듣고 출가하여 설법을 잘하는 비구니로 존경 받았고, 두타행을 잘 실천하는 비구니로 존경받았다.


제 9장 평화와 평등의 가르침


시자 아난다

(1) 안냐따꼰단냐 - 첫 번째 시자.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제자. 이후 교향 도나왓투에서 교화를 펼침. 그의 가장 뛰어났던 제자가 조카 뿐나(여동생 만따니의 아들).

(2) 뿐나 - 사리뿟따가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대론할 만큼 명석하고 설법에 뛰어난 비구. 연로한 스승 안냐따꼰단냐를 대신해 부처님을 시봉.

(3) 그 후 많은 제자들이 시자 임무를 감당했지만 모두가 충실히 이행한 것은 아님.


1. 수낙캇따 - 릿차위 왕자 출신. 시문에 탁월한 재능, 학식이 많았다. 신통을 가르쳐 주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침묵한다는 이유로 니간타로 개종한 후, “고따마는 논리적 추리와 말재주만 가졌을 뿐”이라며 부처님을 비방하며 돌아다녔다.


2. 메기야 - 시중드느라 수행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는 혼자 수행해보고 싶다며 3번이나 간청하였고 결국 허락하심.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초췌한 얼굴로 돌아온 그에게 부처님은 ‘진리의 길을 가고 그 열매를 따도록 너를 차례차례 성숙시켜 줄 다섯 가지 법’을 말씀해 주심. (훌륭한 벗, 계율, 좋은 법문, 노력, 예리한 지혜.)


3. 나가사말라 - 사꺄족 왕자 출신. 꼬살라를 유행할 때 갈래길에서, 왼쪽 길로 가자는 그의 청을 부처님은 세 번 다 거절하셨고 그는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자기가 원하던 길로 혼자 가버림. 얼마 후 그는 도적을 만나 상처투성이 몰골로 헐레벌떡 돌아왔다.


(4) 아난다 - 깨달음을 얻으신 후 20년, 부처님이 항상 나를 따르며 시중들어줄 한 사람을 선출하기를 원하시자 기원정사에 머물던 여든 명의 장로들이 차례차례 시자가 되길 청했지만 모두 거절하시고 마지막으로 아난다에게 차례가 돌아와 물으셨다. “그대는 왜 시자가 되길 청하지 않는가?”세 차례나 물은 뒤에야 일어나 합장하고 8가지 조건을 제시. 이를 허락하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모시고 시중들겠다고 말하자 부처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심.


진리의 어머니 위사카


(1) ‘미가라의 어머니(녹자모)’, ‘어머니 위사카’

* 위사카의 가족 : 할아버지-멘다까, 아버지-다난자야(사께따의 백만장자), 시아버지-미가라(사왓티의 부호), 남편-뿐나왓다나(미가라의 아들)

위사카는 부처님께서 앙가의 밧디야를 방문하셨을 때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부처님을 초청하러 왔던 7살의 영특했던 어린 소녀였는데, 아버지를 따라 사께따로 오게 되었음.

다난자야는 16살 딸 위사카를 사왓티의 뿐나왓다나와 결혼시키며 지참금으로 500대의 수레에 보배를 가득 실어 함께 보냄. 그러나 니간타 교도인 시아버지와 부처님과 스님들을 존경해온 며느리 위사카는 다음날부터 틀어지기 시작했고 걸식하는 비구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자신을 두고 “저희 아버님은 묵은 것만 잡수신다”는 며느리의 말에 진노한 미가라는 법정에 재판을 청구하기에 이른다. 법정의 판결은‘며느리를 돌려보내려면 지참금의 곱을 반환하라’는 것이었고, 지참금만큼 자신의 재산을 덜어주면 미가라 자신은 알거지나 다름없었으므로 위사카의 옷자락을 붙잡고 용서를 빌었다.

위사카는 그녀의 권리를 인정받고 다음 날 당당히 부처님과 비구들을 집으로 초청했지만 여전히 며느리가 못마땅했던 시아버지는 휘장을 내려버리나 공양이 끝나고 부처님의 설법이 시작되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다 법문이 끝날 무렵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께 용서를 빌고 우바새가 되겠다고 함. 며느리에게도 공손히 합장하며 “진리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한 너는 나의 어머니이다.”라고 하며 그날부터 ‘나의 어머니’라 부르며 존경하였고 사람들은 위사카를 ‘미가라의 어머니(녹자모)’, 교단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를 승가 대중도 존경해 ‘어머니 위사카’라 불렀다. 늘 삼보에 대한 공경심을 잃지 않았던 위사카는 부처님 앞에서 여덟 가지 소원을 간청함.

(2) 동원정사 (녹자모강당) - 나날이 가세가 번창한 위사카는 천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정사를 건립하여 부처님 교단에 기증. 사왓티 동쪽 성문 밖에 위치해 동원정사라 불림.

(3) 그 외, 굳건한 신심과 아름다운 선행, 빛나는 지혜로 칭송받은 우바이들.

1. 쭐라수밧다 - 수닷따 장자의 딸. 위사카처럼 개종을 강요하는 시집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결국 시댁 식구 모두를 삼보에 귀의시킴.

2. 다난쟈니 - 남편의 구박과 살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한결같이 “여래·응공·정변지께 귀의합니다”를 되뇌임.

3. 숩삐야 - 와라나시. 병들어 죽어가는 비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을 베어 먹임.

4. 위말라 - 늘 조용히 정사를 찾아 주변을 청소하고 허물어진 곳을 수리.


사리뿟따의 사자후

안거 해제일, 부처님을 시작으로 수많은 비구들이 차례차례 자자를 마치고 부처님께 작별 인사를 드릴 때였다. 상기된 얼굴로 사리뿟따를 비난하는 이가 있어 부처님은 이미 떠난 사리뿟따와 사왓티에서 안거한 비구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모이게 하셨다. 몸과 입과 마음의 움직임에 한순간도 주의력을 놓치지 않는 사리뿟따임을 너무도 잘 아는 아난다는 “오늘 사리뿟따께서 사자후를 하실 겁니다.”하고 큰소리로 덧붙였다. 사리뿟다가 동원정사로 돌아오자 부처님께서는 많은 이들의 스승인 사리뿟따가 대중의 의심을 산다는 건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라며 사실관계를 물으셨고 “세존이시여, 제 마음은 대지와 같고, 걸레와 같고, 전다라와 같고, 뿔이 잘린 황소와 같아 맽힘도 없고 원한도 없고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습니다. 이렇게 당신으로 인해 눈뜬 진리 안에서 선을 쌓으며 자유롭게 노닐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리뿟따의 온화한 몸짓은 코끼리보다 웅장하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사자의 포효보다 우렁찼다. 사리뿟따를 비난한 비구는 눈물로 참회하였다.

부처님 못지않게 훌륭했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은 사리뿟따였다. 먼훗날 먼저 입적한 제자의 유골을 받아들고 부처님께서는 “사리뿟따는 지혀롭고 총명했으며 재주도 많았다. 그는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았으며 늘 용감하였다. 사리뿟따를 잃은 여래는 가지가 부러진 고목과 같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살인자 앙굴리말라


(1) 스승의 부인의 유혹을 뿌리쳤지만 나쁜 꾀에 휩싸여버린 아힘사까.

본래 사왓티의 명문가 출신으로, 민첩하고 단정하며 총명해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이였다. 아버지는 꼬살라왕을 보좌하던 바라문 박가와이고 어머니는 만따니. 본래 이름은 ‘아힘사까’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이’라는 뜻.

그에게 연정을 품었던 스승의 부인은 그를 유혹하지만 달아나듯 빠져나가자 연정은 곧 분노와 원한으로 바뀌었고, 부인의 모함으로 가장 아끼던 제자를 오해하며 괘씸하게 여긴 스승은 한 가지 꾀를 내어‘하루해가 지기 전에 사람 100명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완성하면 너는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될 것’이라며 속였다. 스승의 말씀 속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려는 생각조차 불경스러운 일로 여겼던 제자 아힘사까는 광기의 살인자가 됨.


(2) 잘리니숲으로 직접 찾아가신 부처님, 그리고 앙굴리말라의 귀의.

잘리니숲으로 달아난 그를 만나기 위해 부처님께서 직접 찾아가셨고 이미 이성을 잃은 앙굴리말라가 100명을 채울 마지막 한 사람으로 어머니를 죽이려는 순간이었다. 환한 불빛에 멈춘 그는 부처님으로 대상을 바꾸지만 어찌된 일인지 왔던 길을 거슬러 걸어가는 세 걸음 쯤 앞선 부처님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멈춰라, 이 겁쟁이 사문아.”

“나는 이미 멈추었는데 그대는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구나.”

“나는 해치려는 마음을 모두 멈추었는데 그대는 아직 해치려는 마음 멈추지 못하고 있다. (···) 나는 번뇌 망상을 끊고 진리에 머물러 있는데 그대는 진리를 보지 못해 그릇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누구보다 총명했던 앙굴리말라는 번개라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어 땅바닥에 엎드려 부처님께 귀의했다. 그날 밤, 부처님께서는 잘못된 소견에 휩싸여 자신과 남들을 해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는 중생들의 실상,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결박에 묶여 고통스러워하는 윤회의 긴긴 삶, 자유롭고 평화롭고 청정한 삶을 말씀해주셨다.


(3) 빠세나디왕의 약속, 사왓티 사람들의 분노와 아힘사까의 노래

그날 오후, 꼬살라국의 빠세나디왕이 사왓티의 살인마를 잡으러 다니다 먼지투성이가 되어 기원정사를 찾아왔다. 부처님은 “만일 그가 출가해 저의 제자가 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셨고 “평생 받들어 섬겨야지요.”라고 답한 빠세나디왕은 애착이 사라지고 두려움도 벗어버린 그의 침착한 목소리와 부처님과의 약속으로 더 이상 그에게 과거를 묻지 않았고 부처님의 발아래 예배하였다.“항복하지 않는 이를 항복시키고 성숙하지 못한 이를 성숙시키니,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존의 은혜로 이제 나라의 근심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거리로 걸식에 나섰던 그는 분노한 사람들에 의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와야만 했고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계셨던 부처님은 피 묻은 그의 얼굴을 씻어주며 말씀하셨다.

“아힘사까, 참아내야 한다. 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아주 오래갈 것이다.”앙굴리말라는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밝은 목소리로 ‘고통에 인욕하며 스스로를 항복받아 해님이 온 세상을 밝게 비춤과 같음’을 노래하였다.


똥통을 지던 니디


(1) 천한 신분의 니디의 출가

사왓티 거리에서 변소를 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던, 더벅머리에 악취가 나는 니디를 사람들은 손이 닿는 것조차 싫어했다. 어느 날 인분이 가득한 무거운 통을 짊어지고 가다 뒤늦게 부처님을 발견하고는 급히 비켜서려던 것이 그만 벽에 부딪히면서 부처님과 아난다의 가사에도 오물이 묻어버렸다. 부처님께서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이 용서를 비는 니디의 손을 말없이 끌어 강에서 손수 씻어주시고는 “네 옷은 더러워졌지만 네 마음은 더할 바 없이 착하구나. 그런 네 몸에선 아름답기 짝이 없는 향기가 난단다. 니디야,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이어 출가를 권유하시며 맑은 물을 니디의 정수리에 부어주며 말씀하셨다. “염려말아라. 니디야, 나의 법은 청정한 물이니 너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으리라.(···중략···) 나의 법에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남자도 여자도, 피부색의 차이도 없단다. 오직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증득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란다.”

똥통을 푸던 니디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에 사왓티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투덜거렸고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더러운 진흙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오직 지혜와 덕행만이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여러분, 그 사람들을 공경하십시오.”


(2) 부처님의 따뜻한 보호와 가르침 속에 빛을 발한 진흙 속에 감춰진 보석들

-무시당하고 소외받던 사람들에게 더욱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셨던 부처님.


1. 쭐라빤타까 - 사왓티 출신으로, 4구의 게송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우둔한 사람이었다. 뛰어난 지혜로 정사에서 존경받았던 형 마하빤타까는 결국 동생의 게으름과 무지를 꾸짖으며 쫓아버리지만 부처님께서 손을 잡아주셨고 ‘때를 없애라’는 한마디만 가르쳐주셨다. 걸레로 늘 쓸고 닦으며 깨끗해지고 더러워지는 모습들을 관찰한 그는 남모르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여 그를 비웃는 이들에게 18가지 신통 변화를 보여주고는 말했다. “여러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면 아무리 쉽고 간단하더라도 반드시 한마음으로 게으름 없이 실천해야 합니다.”

2. 꾸마라깟사빠 -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잉태한 사실도 모르고 출가했다가 데와닷따(라자가하 승가의 책임자)의 추방을 받을 뻔 했지만 사왓티로 찾아가 부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부처님은 위사카를 비롯한 사왓티 우바이들의 도움을 얻어 그녀의 임신 시기를 밝히게 하여 그녀의 결백을 입증해 주셨다. 그녀에게서 태어나 수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법사가 된 이가 꾸마라깟사빠이다.


누더기를 걸친 마하깟사빠

깨달음을 이루신 후 27년, 그 후 16년 동안 부처님은 매년 우기를 사왓티(동원정사와 기원정사)에서 보내셨는데 어느 날, 긴 머리카락에 낡고 악취를 풍기는 누더기를 입은 채 향실로 들어서는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부처님께 귀의해 진리를 체득하고 교만을 잠재우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평생을 분소의를 걸치고서 인적이 드문 숲과 들에서 지내며 걸식한 음식만으로 살았던 마하깟사빠였다. 나병환자가 담아주는 썩어가던 손가락이 함께 떨어진 음식을 먹으면서도, 먹고 난 뒤에도 그는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다. 주어진 음식, 잠자리, 주어진 옷에 만족하며 늘 겸손하고, 소박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살았다.

볼품없고 더럽기 짝이 없는 늙은이에게 당신 자리의 반을 내어주며 ‘나의 제자’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부처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비구들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깟사빠 역시 4선·8정·4무량심·3명·6통을 완전히 갖춰 밤낮없이 항상 그곳에 머문다. 마하깟사빠의 수행과 공덕과 지혜는 나 여래와 더불어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젠 늙었으니 정사에서 지내며 가볍고 부드러운 옷을 입으라는 부처님의 권유에도, 그는 “세존이시여, 제자는 오랫동안 두타행을 익혀왔고, 많은 이들에게 두타행을 찬탄해 왔습니다.”라며 정중히 거절하였다. 이어 두타행의 두 가지 이익에 대해 대답했고 부처님은 크게 칭찬하셨다.


시체를 태우는 막대기들

삼보에 귀의하고 출가한 이들 가운데는 과거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승가에 들어와 여전히 잘못된 습성대로 사는 자들도 있었다.

(1) 띳사 - 부처님의 고모인 아미따의 아들. 왕의 혈통으로서 인사를 받기만 하고 살아온 그는 출가하고도 인사하는 법이 없었고 멀리서 비구들이 찾아와도 나아가 맞이할 줄을 몰랐다.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했지만 오랜 세월 익힌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2) 깔루다이 - 지식도 많고 명망도 높았으며 유능하고 사교성도 뛰어나 늘 신자들에게 환영받았지만 유난히 음욕이 강해 늘 여인들과 문제를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부처님께서 꾸짖었지만 그의 습성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3) 찬나 - 부처님의 마부 역시 계율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4) 승가에 보시된 물품은 구족계를 받은 순서에 따라 공평히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멧띠야와 붐마자까와 같은 이들은 이 작은 차이를 두고 분란을 일으켰다. 빤두까와 로히따까와 같은 이들은 좋은 잠자리와 음식을 두고 주먹질에, 가는 곳마다 폭력을 일삼고 불화와 반목을 조장하였다. 승가의 구성원이 되고도 그에 합당한 위의와 덕행을 갖추지 못하거나 교만과 성욕과 탐욕과 분노에 자신을 맡기는 비구들을 부처님은 엄하게 꾸짖으셨다.

“그대들이 (발우를 들고 집집마다 걸식하는) 출가자의 삶을 선택한 까닭은 오직 하나이다. 길고 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 명심하라. 출가한 이유를 잊어버리고, 출가한 목적을 잊어버리고, 세간에 있을 때의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는 재가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도 놓치고, 출가자가 얻을 수 있는 행복도 놓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런 이는 화장터에서 시체를 태울 때 쓰는 막대기와 같다. (···) 그런 불결한 막대기는 마을에서 장작으로도 쓰지 않는다.


데와닷따의 반역


(1) 권력과 명예에 맛들린 데와닷따와 그의 새로운 무리들

빔비사라왕이 죽림정사를 바쳤지만 부처님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우기가 끝나면 전법 여행을 떠나셨다. 그러나 데와닷따는 빔비사라왕의 후원이 끊이지 않는 죽림정사를 떠나지 않았고, 라자가하에서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명석한 두뇌에 유창한 언변, 비위를 맞출 줄 아는 사교성 덕분에 주위에는 항상 권력과 재산을 향유하는 이들이 넘쳐났고 아자따삿뚜가 태자가 되어 실권을 장악하면서 태자의 스승인 그의 위세는 더욱 높아졌다. 아자따삿뚜는 스승을 위해 매일같이 500대의 수레로 음식을 날랐는데 데와닷따는 고루 분배하지 않고 자기를 따르는 이들에게만 공양과 물품을 공급함으로써 새로운 무리를 형성했고 그를 따르는 이들은 나날이 늘어갔다. 부처님은 그들을 부러워하는 비구들을 두고 항상 말씀하셨다. “많은 보시와 드날리는 명성은 수행자에게 타오르는 불과 같고 털이 긴 양이 가시넝쿨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 바나나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으면 말라죽듯, 감당하기 힘든 공양과 명성은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좋은 공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2) 데와닷따의 야욕과 분노, 날라기리 코끼리를 조복하는 부처님

자신에게 교단의 통솔을 맡겨달라는 탐욕스러운 데와닷따의 거듭되는 간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에게조차 맡기지 않고 있는데 너처럼 다른 이가 뱉어버린 가래침을 주워 삼키는 이에게 어찌 맡기느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데와닷따는 아자따삿뚜가 빔비사라왕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분노로 더욱 날카로워진 야욕을 드러내며 부처님을 살해하려 하였다. 아자따삿뚜의 지원으로 궁수를 파견했지만 궁수들이 부처님께 감화되었고, 큰 바위를 굴려도 바위는 산산조각 나며 부처님의 발을 다치게 했을 뿐이었고, 전장의 선봉에 서던 사나운 코끼리 날라기리에게 술을 잔뜩 먹여 풀어놓아도 부처님 앞에서는 눈빛이 선해지며 두 무릎을 꿇었다. 그 후 어느 날 라자가하로 들어서던 부처님께서는 말없이 발길을 돌리셨는데, 길목에 데와닷따가 있어 피한 것이었다. “세존이시여, 데와닷따가 두려우십니까?”“악한 사람을 상대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아난다, 어리석은 사람과는 만나지 말라. (···) 어리석은 사람과는 말로써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은 하는 짓마다 법답지 못하단다.”


(3) 별도의 승가 선언, 가야산으로 찾아간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부처님의 관용과 타이름에도 불구하고 데와닷따는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그럴싸한 명분으로 위장하며 승가의 분열을 조장하였다. ‘수행자라면 반드시 고행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꼬깔리까를 비롯한 비구들과 비구니, 그리고 새로 출가한 500명의 왓지족 출신 비구들을 이끌고 아자따삿뚜가 지어준 거대한 정사가 있는 가야산으로 가 별도의 승가를 선언하였다.

부처님은 형식적인 고행이 열반의 길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지적하며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에게 500명의 새내기 비구들을 데려오라 명하셨다.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가 자신의 승가에 합류할 것으로 오인한 데와닷따는 기뻐 환영하며 거창한 연설을 늘어놓고는 이들에게 설법을 맡기고 곧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그 사이 마하목갈라나는 신통력을 보였고 사리뿟따는 위의를 갖추어 바른 법을 설하여 비구들은 잘못을 깨닫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되돌아갔다. 부처님은 그들의 경솔함을 꾸짖지 않고 조용히 타이르셨다. “지혜로운 사람과 가까이하라. 사람이 본래 악한 것은 아니지만 악인을 가까이하면 훗날 그 악명이 천하에 퍼지게 되느니라.”


(4) 꼬깔리까와 데와닷따의 최후

한참 후 라자가하에서 돌아온 고깔리까는 텅 빈 정사에서 홀로 잠든 데와닷따를 보고 화가 치밀어 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자신들의 추종자를 잃어버린 고깔리까는 분통이 터져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를 근거도 없이 비방하고 나섰고, 청정한 수행자를 비방하는 것은 큰 죄라고 부처님께서 누차 타이르셨지만 그런 부처님에게까지 불만을 터트렸다. 얼마 후 온몸에 부스럼이 생겨 피를 흘리며 죽어간 그를 두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도끼를 입에 물고 태어나 악한 말로 자기 몸을 스스로 찍는다. (···) 그의 죄는 입에서 나온 것이다.”

데와닷따 역시 꼬깔리까에게 걷어차인 다음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몸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병석에 눕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데와닷따는 들것에 실려 세존이 계신 사왓티로 찾아갔지만 부처님께서는 “데와닷따는 끝내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고만 말씀하셨다. 심한 갈증을 느낀 데와닷따는 문 앞의 시원한 연못을 보고 내려달라고 했고 그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갑자기 불길이 치솟아 그를 휘감아버렸다. 오역죄를 저지른 데와닷따는 참회할 기회도 갖기 못하고 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아자따삿뚜의 참회


왕자 탄생을 계기로, 아자따삿뚜는 어머니 웨데히에게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듣게 된다. 퉁퉁 부어오른 자신의 손가락을 밤새도록 빨아 뼛속까지 배었던 고름이 터지게 하고 입을 떼면 또 울까 싶어 그 고름까지도 모두 삼키셨던 아버지 빔비사라왕의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잘못을 뉘우치며 주저앉아 통곡하였다.

그 날 이후 온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에 주치의 지와까는 세존만이 대왕의 병을 고칠 수 있다 하였지만, 오랜 벗 빔비사라왕을 죽이고 데와닷따와 모의해 부처님마저 살해하려 했던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의심에 망고동산으로 향하는 그의 행렬은 자꾸만 멈췄다. 그때마다 지와까가 용기를 주었고 드디어 강당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 순간,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짓눌렀던 의심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거룩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왕은 희열을 주체할 수 없었고 부처님의 맑은 목소리에는 한 점 질책도 원망도 묻어 있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또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른다. 선하고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부지런히 실천하고, 악하고 무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마음가짐과 행동은 삼가라.”고 일어주셨고, 눈물로 참회하는 아자따삿뚜왕에게 다시 따뜻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잘못을 잘못인 줄 알고 뉘우치는 이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이익을 얻고 편안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아자따삿뚜왕은 삼보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었고 이후 교단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항상 부처님께 자문을 구하였다. 선정을 베풀며 법도에 따라 국정을 시행한 아자따삿뚜왕은 마가다국을 강국으로 성장시켰다.


제 10장  마지막 유행


파멸하지 않는 일곱 가지 법


(1) 쇠퇴하지 않는 7가지 법

깨달음을 이루신 후 44년, 아자따삿뚜왕의 대신 왓사까라(雨舍)가 부처님께 찾아와 강가 북쪽의 강력한 경쟁자 왓지연맹을 토벌하려는 왕의 뜻을 전하고, 부처님의 의견을 여쭈었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왓지사람들이 존중하고, 지키고, 실천하는 7가지 법도에 대해 하나하나 물으시고는 말씀하셨다. “아난다, 이 7가지를 잘 지켜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화목한다면 그들은 강성할 것이다. 그런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며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왓사까라는 일어나 합장하며 물러났고 마가다국과 왓지연맹의 불화는 잠시나마 불씨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왓사까라가 돌아간 후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비구들을 강당에 모으고‘쇠퇴하지 않는 7가지 법’에 대해 하나하나 일러주시고는 “이 7가지를 지킨다면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며 정법은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 올바른 법과 올바른 대중이 머무는 승가는 파괴되는 일 없이 나날이 번창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2) 마하깟사빠의 염화미소

법문을 듣던 대범천이 하늘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새하얀 연꽃을 바치고 물러갔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연꽃을 대중에게 들어 보이며 아무 말씀 없이 눈만 깜빡이셨다.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 틈에서 오직 한 사람, 마하깟사빠만이 빙그레 웃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리를 보는 바른 안목과 열반의 오묘한 마음을 그대 마하깟사빠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잘 보호하며 널리 전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라.”


강가강을 건너 웨살리로


[마가다국] 라자가하→암바랏티까→사리뿟따의 고향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나무 동산→강가강 남쪽 기슭의 빠딸리 마을 ((→ 강가강을 건너 →))

[왓지연맹] 꼬띠 마을→나디까 마을→웨살리


(1) 빠딸리 마을 - ‘고타마의 문’, ‘고따마의 나루’

강가강·손강·간다끼강의 합류지점으로 교통의 요충지인 빠딸리.

아자따삿뚜왕의 대신 왓사까라와 수니다가 파견되어 새로운 도시를 건설중이었고 두 대신과 빠딸리 백성들은 부처님과 제자들을 맞아 정성을 다하였다. ‘계율을 어기는 행실 나쁜 사람에게 있는 다섯 가지 손실’과 ‘계율을 지키는 행실 바른 사람에게 있는 다섯 가지 이익’에 대해 밤늦도록 설법해 주신 부처님을 빠딸리 백성들은 나루까지 따라와 배웅하였는데, 부처님이 나서신 빠딸리의 성문을 ‘고따마의 문’, 강가강의 나루를 ‘고따마의 나루’라 부르며 기념하였다.


(2) 웨살리 - 진정한 보배를 깨달은 미녀 암바빨리의 공양

쾌락을 찬탄·향유하며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던, 나라 밖까지 소문난 미녀 암바빨리가 가장 먼저 부처님을 찾아왔다. 쾌락의 천박함을 꾸짖고 탐욕의 위험과 재앙을 경고하는 부처님에게 그녀가 제 발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처님은 그녀의 용기와 진실한 마음을 칭찬하시고는 진정한 보배에 대해 말씀하셨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세월의 힘에도 파괴되지 않는 보배는 무엇입니까?” 빼어난 미모만큼 영리한 암바빨리가 합장하고 공손히 여쭈었다. “참다운 법에 따라 수행한 공덕은 세월의 힘이 감히 침범하지 못합니다. (···) 바른 법만큼은 나의 뜻대로 영원히 곁에 머물며 큰 위안과 기쁨이 되어줍니다. (···) 당신이 가진 미모와 재력 역시 고통을 초래하는 덫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암바빨리는 망고나무숲에서의 공양을 청하였고 부처님은 이를 허락하셨다. 500명의 릿차위 귀족들 역시 뒤늦게 그녀의 망고숲으로 달려왔다. 웨살리에서의 첫 공양을 기녀가 차지했단 소식에 자존심이 상한 그들은 많은 보상을 제시하며 양보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녀는 첫마디에 거절했고, 다음 날 공양을 부처님께 간청하였으나 화려한 의상과 수레로 권력과 재력을 드러내는 귀족들의 공양을 거절하고 부처님께서는 암바빨리의 공양을 선택하셨다.


벨루와에서의 안거


(1) 자등명 법등명의 가르침


깨달음을 이루신 후 45년, 웨살리에 심한 기근이 찾아와 많은 비구들이 한꺼번에 걸식하기 어렵게 되자, 부처님께서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인근으로 흩어져 이 어려운 우기를 견디라’고 말씀하시고는 아난다와 함께 벨루와 마을에서 안거하셨다. 벨루와에 계시는 동안 부처님은 심한 병을 앓으셨고, 고통스러워하시는 부처님을 눈물로 지키던 아난다가 두려움과 슬픔으로 몸둘 바를 몰라하자 말씀하셨다. “아난다, 여래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이미 모든 것을 말했다. 여래만 아는 법을 손에 꼭 움켜잡고 너희에게 가르치지 않은 그런 것은 없다. 여래 혼자만 가지고 갈 법이란 없다. 또한 여래만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아난다가 눈물을 닦고 합장하였다. “세존께서 계시지 않으면 저희는 누구를 믿고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너 자신에게 의지하라, 너 자신 밖의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너 자신에게 전념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라. 법을 떠나 다른 것에 매달리지 말라. 불굴의 의지로 게으름 없이 자기 몸[身] 을 깊이 관찰하고 정신을 집중한다면, 그런 수행자는 육신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날 것이다. 느낌[受]과 마음[心]과 법[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자기와 법을 등불로 삼고 의지한다는 것이다.”


(2) 대지의 진동, 그리고 중각강당에서의 4념처, 팔정도 등에 관한 설법


웨살리로 들어가 걸식하신 부처님은 아난다와 함께 짜빨라쩨띠야로 가셨다. 나무 아래에 고요히 앉아 삼매에 드셨을 때 하늘과 땅이 뒤집힐 듯이 대지가 진동하자 놀란 아난다가 부처님께 연유를 여쭈었다. “여래가 장차 교화를 끝내고 생명을 버리고자 마음먹을 때, 땅이 크게 진동한다. 아난다, 나는 오래지 않아 멸도할 것이다.”

울먹이며 부디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간청하는 아난다에게 부처님은 중각강당으로 가자고 하셨고 웨살리 인근의 비구들이 모두 모이자 부처님께서는, 4념처(念處)·4의단(意斷)·4신족(神足)·4선(禪)·5근(根)·5력(力)·7각의(覺意)·8정도(正道)를 자상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여래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잘 헤아리고, 잘 분별해 그에 맞게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 눈물을 거두라. (···) 그대들에게 늘 말하지 않았는가? 은혜와 사랑은 덧없고, 한 번 모인 것은 흩어지기 마련이라고. 이 몸은 내 소유가 아니며, 이 목숨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마지막 공양과 마지막 가사


웨살리를 벗어나 보가의 아난다쩨띠야에 머무신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네 가지 큰 교법(敎法)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당신이 멸도한 후 비구들 중 누군가가 “이것은 ···에게서 들었다”(네 가지)고 하는 것이 있을 경우, 그것을 법과 율에 의거해 자세히 살핀 다음 합당하면 받들고 합당하지 않으면 배척하라고 일러주셨다.


(1) 쭌다의 마지막 공양


다시 길을 나선 부처님은 빠와 교외의 망고나무동산에 머무셨는데 그곳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소유지였다. 쭌다는 특별히 부처님을 위해 전단나무에서 자라는 귀한 버섯으로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다른 비구들에게 주지 말고 나머진 땅에 묻어버리라고 말씀하셨다. 공양이 끝나고 ‘네 종류의 사문’에 대한 설법을 마치신 후 쭌다의 집을 나선 부처님은 곧 심한 설사 증세를 보였다. 고통을 참으면서도 자신이 올린 공양 탓에 자책할 쭌다를 염려한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지금 바로 쭌다에게 찾아가 이렇게 전하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셨을 때 최초로 올린 공양과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 올린 공양은 그 공덕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쭌다여, 그대는 여래께 마지막 공양을 올렸기에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2) 뿍꾸사의 마지막 가사


빠와를 향해 달려오는 한 무리의 마차 행렬이 급히 멈추더니 선두에서 무리를 지휘하던 한 사내가 다가와‘수레가 지나가는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선정과 우렛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선정 중에 어느 것이 더 깊은지’에 대해 부처님께 질문하였다. 아뚜마 마을의 어느 초막에서 뇌성벽력이 천지를 뒤흔드는 것도 모른 채 고요히 선정에 들었던 일화를 들려주자 그는 무릎을 꿇고 두 벌의 황금빛 옷을 부처님께 바쳤다. 부처님은 그를 위해 차근차근 가르침을 설해주셨고 빠와에 사는 뿍꾸사는 삼보에 귀의하며 우바새가 되었다.

아난다는 목이 마른 부처님을 위해 까꿋타강으로 가기를 청하였고 그곳에서 부처님은 맑은 물을 마시고, 깨끗이 목욕도 하셨다. 꾸시나라를 향해 히란냐와띠강을 건너 언덕 북쪽에 자리한 말라족의 살라나무숲 우빠왓따와로 들어섰다.


두 그루 살라나무 아래에서


(1) 최상의 공양이란


부처님께서 조용히 삼매에 드셨을 때, 두 그루 살라나무의 새하얀 꽃잎이 비처럼 흩날려 부처님의 몸을 덮자 아난다는 ‘살라나무의 신들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구나’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느새 삼매에서 깨어나신 부처님이 또렷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아난다, 꽃을 뿌린다고 여래를 공양하는 것은 아니란다. (···) 사람들이 스스로 법을 받아들여 법답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다. 5온(蘊), 12처(處), 18계(界)에 ‘나’와 ‘나의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여래에게 올리는 최상의 공양이란다.”


(2) 작별을 고하러 온 수많은 신들, 장례에 대해 묻는 아난다


유난히 몸집이 컸던 우빠와나가 부처님 앞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을 때 부처님은 명령을 내리듯 물러가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신들이 우빠와나 비구 때문에 부처님을 볼 수 없다고 한탄했기 때문이었다. 반열반이 가까웠음을 직감한 아난다가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하냐고 거듭 세 번을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전륜성왕의 장례법에 따르라. 화장한 다음 사리를 거두고 네거리에 탑을 세워 길을 오가는 사람들 모두 그 탑을 보고 진리를 사모함으로써 살아서는 행복을 누리고 죽어서는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하라.” 부처님은 힘겹게 아난다에게, 마지막으로 꾸시나라 말라족에게 오늘 밤 여래가 살라나무숲에서 멸도에 들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고 얘기를 전해들은 말라족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였다.


마지막 제자 수밧다


슬픔에 젖어 찾아와 인사하는 꾸시나라 말라족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건강과 장수를 빌어주셨다. 달이 높이 뜬 한밤중에도 행렬은 끝이 없었고 아난다는 부처님이 피로하실까 염려하여 500명을 한꺼번에 인사시켰다. 숲에 다시 무거운 침묵이 감돌 때, 정적을 깨고 수밧다라는 한 늙은 바라문이 찾아왔다. 아난다는 부처님이 몹시 힘들어하신다며 거듭 거절하였지만 부처님께서는 그를 막지 말라며 허락하셨다. 수밧다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며 스승을 자처하는 많은 사상가들이 정말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인지’를 여쭈었고, 부처님은 그런 의심은 그만두는 게 좋다고 하시며 팔정도의 가르침을 말씀해 주셨다.

“수밧다, 8가지 올바른 길이 있습니다. 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이 그것입니다. 이 팔정도를 실천하는 사람을 사문이라 합니다. (···) 첫 번째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이르는 것(수다원)이고, 두 번째는 생사를 한 번 더 되풀이한 다음 깨닫는 것(사다함)이며, 세 번째는 이 세상에서 죽은 뒤 다시 태어나지 않고 깨달음을 얻는 것(아나함)이며, 네 번째는 이 세상에서 완전한 아라한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가르침에 팔정도가 없다면 거기에는 올바른 사문이 있을 수 없습니다. (···) 수밧다, 나의 가르침에는 팔정도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이에게는 사문들의 첫 번째 과위(果位)도 두 번째 과위도 세 번째 과위도 네 번째 과위도 있습니다.”

출가할 수 있는지를 여쭙는 수밧다에게 부처님은‘4개월 동안 기다려야 하지만 그 기간 역시 당신의 마음가짐에 달릴 것일 뿐’이라며 허락하셨고 수밧다는 그날 밤 구족계를 받고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등불은 꺼지고


(1) 아난다를 위로하시는 부처님

“아난다, 눈물을 거두어라. 너는 오랫동안 나에게 정성을 다하였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너처럼 여래를 잘 섬기진 못했을 것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 머지않아 무지와 탐욕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이룰 것이다.”이어 비구들에게 아난다가 가지고 있는 4가지 탁월함에 대해 말씀하셨다.


(2) 멸도 후의 스승은 부처님의 법과 율

승가의 규율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찬나 비구를 멸도하신 후에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쭙자 부처님께서는 ‘범단벌’로 다스리라고 하시며 “모든 비구들에게 명하여 그와 더불어 말하지 말고, 서로 왕래하지도 말며, 그를 가르치지도 말고, 일을 시키지도 말라.”고 하신 후 이어 말씀하셨다. “내가 떠난 뒤에는 법과 율이 너희의 스승이다. 아난다, 오늘부터 모든 비구들에게 소소한 계는 버려도 좋다고 허락한다.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하여 예의와 법도를 따르도록 하라.”


(3) 반열반(般涅槃, 무여열반)에 드신 부처님

“모든 것은 변하고 무너지나니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으므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니라.”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시고는 눈을 감자 등불이 꺼졌다. 깊은 어둠과 침묵 속에서 흐느낌이 새어나오자 부처님 곁을 지키던 아누룻다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세존의 선정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세존께서는 지금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계십니다. 세존께서는 제4선에서 깨어나 반열반에 드실 것입니다.”

부처님은 멸수상정에서 깨어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드셨고, 비상비비상처정에서 깨어나 무소유처정에, 그렇게 차례로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제4선·제3선·제2선·초선에 드셨다. 그리고 초선에서 깨어나 제2선·제3선·제4선에 드셨고 제4선에서 반열반하셨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지 80년, 깨달음을 이루신 후 45년인 기원전 544년 2월 15일의 일이었다.


다비와 불사리탑


(1)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미신 부처님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하루종일 조곡을 울리며 공양하였다. 6일이나 조곡을 그치지 않다가 7일째 되는 날, 남문 밖으로 부처님의 시신을 옮겨 다비하기로 결정했지만 어쩐 일인지 움쩍도 하지 않았다. 스님들 가운데 가장 어른인 아누룻다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신들은 북문을 통해 꾸시나라 거리로 들어가 시의 중앙에서 세존의 시신에 공양하고 동문으로 나와 마꾸따반다나에서 다비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아난다의 설명에 따라 부처님의 법구(法軀)를 씻고 안치하며 다비 준비를 모두 마친 후 장작에 불을 붙이려 하자 이번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이윽고 마하깟사빠가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도착하였고 부처님의 시신을 직접 뵙고자 청하였다. 아난다는 이미 다비 준비를 마친 상태라며 거절했지만 마하깟사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신 쪽으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향나무로 쌓은 높은 단 아래까지 온 마하깟사빠가 걸음을 멈추자 튼튼한 철곽이 철커덩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리며 황금 관 밖으로 부처님께서 두 발을 내미셨다. 그 발아래 마하깟사빠가 조용히 예배하며 이마를 조아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자 부처님께서는 두 발을 다시 관 속으로 거두셨고 저절로 붙은 불은 하늘을 삼킬 듯 치솟았다.


(2) 불신과 반목의 자리를 관용의 장으로 바꾼 현명한 도나와 사리탑

사리를 수습하여 공회당에 모시고 7일동안 공양을 올렸다. 그 사이 각국의 사신들이 도착하였고, 마가다국의 아자따삿뚜, 웨살리의 릿차위족, 까삘라왓투의 사꺄족, 알라깝빠의 불리족, 라마촌의 꼴리야족, 웨타디빠의 바라문들, 빠와의 말라족이 사리의 분배를 요구하면서 공회당은 작은 전쟁터로 변했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아자따삿뚜왕의 사신으로 온 도나가 입을 열었다. “늘 관용을 말씀하신 거룩한 분의 사리를 두고 이러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우리 모두 우정을 다지고 화목으로 하나가 됩시다. 부처님의 사리를 공평하게 나누어 온 세상에 사리탑을 세웁시다. 그리하여 인류 모두가 세상의 빛인 부처님을 믿고 따르게 합시다.”긴 침묵이 흐르고 꾸시나라의 말라족이 한 발 물러서면서 부처님의 사리를 8등분으로 나누어 분배할 수 있었고, 지혜로운 바라문 도나가 사리를 담았던 그릇을 자신에게 달라고 간청하자 모두들 흔쾌히 승낙하였다. 뒤늦게 삡팔리와나의 몰리야족이 찾아와 화장터의 타고 남은 재를 가지고 돌아가 탑을 세웠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


(1) 마하깟사빠의 결집 제안과 아라한과를 증득한 아난다


마하깟사빠는 늦게 출가한 사꺄족 출신의 한 비구가 부처님을 늙은이라 칭하며 ‘살아서 늘 잔소리만 했는데 이제 자유를 얻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고 말하던 일을 전하며, 탄식하는 장로들에게 교단의 영원한 스승이 될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결집하여 교단의 튼튼한 반석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설법을 많이 듣고 지혜가 뛰어난 아라한 가운데 499명이 추천되고 마지막으로 아난다가 추천되었으나 마하깟사빠는 그는 아라한이 아니라며 끝내 거부하였다. 결국 500번째 자리를 비워둔 채 비구들은 라자가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꾸시나라를 떠났다.

뿐나의 도움으로 바른 견해를 얻긴 했지만 여전히 배울 것이 남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던 아난다는 스승이 계시는 동안 아라한이 되지 못한 슬픔, 결집에 참석이 허락되지 않는 슬픔에 견딜 수 없었다. 설법을 요청하는 웨살리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설법을 전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던 아난다에게 왓지족 출신의 한 장로가 다가와 충고했다. “사람들이 없는 숲으로 들어가 고요하고 행복한 열반의 법을 마음 깊이 간직하십시오. 사람들과 어울려 시끌벅적 떠든다고 당신에게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몰래 웨살리를 떠난 아난다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만 골라 라자가하로 향하며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지만 고요한 열반은 잠시 찾아왔다가 이내 흩어져버리곤 했다. 결집이 다가왔다. 실의에 빠진 아난다는 불현듯 ‘모든 고뇌와 번민은 ‘나’를 집착함에서 생긴다.’는 뿐나의 옛말을 떠올리고는 “나는 왜······ ‘나’는!” 고뇌의 뿌리를 찾아낸 아난다는 새벽 먼동이 틀 무렵, 지친 몸을 잠시 누이려던 순간 마침내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2) 웨바라산의 칠엽굴에서의 결집 -우빨리와 아난다


다음 날, 아난다는 아자따삿뚜왕의 후원으로 잘 다져진 바닥, 두 개의 높은 법상이 마련된 칠엽굴로 찾아갔다. 500개의 자리가 모두 채워졌고 장로 우빨리가 먼저 교단의 생명인 율을 암송하였다. 율장은 오랜 기간에 걸쳐 결집되었고 마무리될 무렵 아난다가 일어나 ‘부처님께서 승가 대중이 원할 경우 아주 소소한 계율들은 빼버려도 좋다고 말씀하셨다’며 마하깟사빠에게 말했다. 그러나 무엇이 소소한 계율인지 미처 여쭙지 못했음에 굴 안이 소란스러워졌지만 마하깟사빠의 엄격한 지휘 아래 율장의 결집은 마무리되었다.

법을 결집할 차례가 오자 모든 장로들이 한결같이 아난다를 추천하였다. 마하깟사빠는 소소한 계율이 무엇인지 부처님께 확인하지 않아 대중의 화합을 깨뜨릴 빌미를 남겼던 허물을 물었고 아난다는 허물을 인정하며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진중하고 진솔한 아난다의 참회를 온 대중이 침묵과 합장으로 받아주었다. “이와 같이 저는 들었습니다.······”영원히 꺼지지 않을 지혜의 등불이 다시 타올랐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4길 49-2 2층 (수송동) 조계사청년센터(03144)
Tel)02-735-3724, Fax) 02-722-4994, Email) jgs1977@daum.net
COPYRIGHT© 1977-2012 조계사청년회 ALL RIGHT RESERVED. designed by 겨울나기

LOGIN INFORMATION

로그인
비쥬얼 이미지